다니엘의 70이레와 한 이레를 어떻게 바르게 해석할 것인가(단9:20~27)_2018-07-06(금)

by 갈렙 posted Jul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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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70이레와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한 이레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어왔는가 하는 것은 지금도 종말론자들에 있어서는 중요한 이슈다. 그런데 저마다 해석이 다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해석은 환난전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인데, 이것이 정말로 정확히 올바른 해석인지 가르쳐주는 이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사실 세대주의를 제외하고는 종말관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교단은 없기 때문이다. 다들 두리뭉실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세대주의자들은 다르다.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정확히 교리화시켜놓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이 과연 성경대로 한 증언한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선 세대주의의 해석은 어떤 것이며, 다니엘의 70이레와 그 안에 들어있는 한 이레의 언약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성취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 들여다보면, 꼭 나오는 중요한 숫자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42달", "1260일", "한때와 두때와 반때"라는 숫자다. 이것은 다니엘서 나오는 표현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서, 그것은 "3년반"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기간에 대해 저마다 해석이 다르다. 실제로 문자적인 기간인지 아니면 어떤 영적인 기간인지로 나뉜다. 그런데 환난전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이 시기는 어느날 말세가 되었을 때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활동하는 3년반의 기간을 가리키는데, 보통은 후3년반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7년평화협정을 맺고나서 자신이 제대로 활동하는 기간이 바로 42달이자 1,260일이며, 한때와 두때와 반때라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말한다. 적그리스도가 전3년반의 시기에는 평화적으로 지낼 것이지만, 후3년반이 되면 돌변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이고, 만일 자기를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죽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니엘이 말한 바, 한 이레(7년)의 절반이 지난 후에 벌어질 일이라고 주장한다. 고로,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에 해박이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에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7년대환난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은 교회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기 전에 하늘로 휴거되어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대주의자들의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자는 환난전휴거가 가장 성경적인 견해인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이러한 주장의 진위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어느날 환난전휴거론자가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의 해석이 바른 해석일까? 이것을 똑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성경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이때에 필수적으로 나오는 것이 다니엘의 70이레와 그 마지막 기간에 해당하는 한 이레이니만큼, 바른 종말론을 갖기 위해서 반드시 공부해야 할 것이 다니엘의 70이레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다니엘의 70이레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가운데, 가장 성경적인 바른 해석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니엘의 70이레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B.C.605년경 바벨론의 제2대 느부갓네살왕에게 제1차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포로민 정책에 따라 왕궁자문위원에 선발되고, 이어서 총리로 발탁된다. 그리고 다니엘은 3대에서 7대까지의 바벨론 왕들을 섬기게 된다. 하지만 제7대 벨사살왕 때 나라가 망하게 된다. 하지만 다니엘은 잠깐이지만 바벨론을 정복한 메대와 바사국에서도 총리대신이 되어 왕들을 섬기게 된다. 그리고 이제 그의 나이도 80살이 넘어섰다. 그러자 과연 언제까지 자기민족이 남의 나라에서 포로생활을 하게 될까를 고민하면서 책을 읽다가 예루살렘의 황폐함도 70년만이 끝이 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접하게 된다(렘25:11~12, 29:10). 그때는 메대왕 다리오2세가 왕이 되어 통치를 막 시작할 때였다(B.C.539년). 그러자 그때부터 다니엘은 작정하고 기도를 시작한다. 그런데 금식하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전에 본 환상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어 그것을 설명해준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민족과 예루살렘 성의 운명과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정하심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곧 "다니엘의 70이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스라엘의 운명과 미래에 관하여 70이레라는 기한을 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70이레 기간 안에 6가지가 성취된다는 것이다(단9:24). 첫째는 허물이 그치며, 둘째는 죄가 끝나며, 셋째는 죄악이 용서되며, 넷째는 영원한 의가 드러나고, 다섯째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여섯째,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여섯가지 항목을 한 마디로 딱 요약하면, 그때에 메시야가 와서 기름부음을 받을 것이며 그가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인류의 모든 죄들을 속량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70이레의 시작은 언제라고 말씀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70이레의 시작은 이 예루살렘을 중건(회복하고 건축하라)는 영(조서, 말씀)이 날 때라고 말씀하셨다(단9:25). 그러니까 메대왕 다리오2세 이후에 누군가가 예루살렘성을 회복시켜주고 성을 건축하라고 할 때라는 것이다. 그때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다 조사해보면, 바사왕 제5대 아닥사스다 제7년(B.C.457년)의 시기가 가장 적합한 때가 된다. 이때 정말 예루살렘이 도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70이레의 기간 안에 모든 것을 다 끝내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성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왕의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이레와 62이레가 지나갈 것이라고 했다(단9:25). 보편적인 예언의 해석에 따라 이레를 7년이라고 환산하게 되면(민14:34, 겔4:6), B.C.457년부터 69이레(483년)가 지난 시점에 드디어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그때가 바로 A.D.27년으로서, 예수께서 요단강으로 오사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인류의 죄를 전가받으실 때다. 이때 성령이 하늘로부터 비둘기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오셨다. 예수께서 그때 메시야로서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환상의 설명은 계속된다. 69이레 후에 2가지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69이레 후에 언제인지는 모르나 첫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로,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했다(단9:26).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전자는 예수께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3년반이 지난 A.D.31년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지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A.D.70년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한 왕의 백성인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보면, 이것은 후자의 예언성취로 보인다. 왜 예루살렘성과 성전의 파괴가 예수께서 죽으신 직후에 일어나지 않았는가 의구심을 갖는 자도 있겠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요나의 표적에 따라 40일이 지나면 니느웨성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마12:40~41). 당시 니느웨성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함으로 화를 면했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은 회개치 않았기에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딱 40년 뒤에 멸망당하게 된 것이다.

 

3. 다니엘의 마지막 한 이레(7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런데 이제부터가 문제다. 이제 남은 한 이레의 예언이 언제 어떻게 성취되느냐가 문제다. 성경은 이렇게 언급한다.

단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희생제사)와 예물(곡식제사)을 금지할(그칠, 쉬게 할) 것이며포악하여(황폐케 할, 멸망케 할) 가증한 것[들]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그렇다. 한 이레의 언약은 "그"가 많은 사람들과 맺는 언약(약속)이다. 그런데 이 언약을 맺을 당사자에 대해서 세대주의자들은 그가 바로 말세에 출현하게 될 열뿔짐승 곧 세계정부의 지도자 곧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 그가 말세의 어느 때에 출현하여, 이스라엘과 한 이레(7년)의 협정을 맺게 될 것인데, 이때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제3의 성전을 짓도록 허락해줄 것이지만, 한 이레의 절반인 3년반이 지나면 돌변하여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고 자기를 하나님으로 섬기라고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자기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는 자들은 다 죽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기 전에 이미 교회는 휴거되어 공중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주님과 7년공중혼인자치를 하고 있을 것이기에, 교회는 해를 면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상에서는 유대인들이 적그리스도를 숭배하기를 거부하고 순교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해석은 70이레의 한 이레 대한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세대주의자들의 이러한 해석은 무엇이 제대로 된 것인가? 세대주의자들의 모든 해석이 다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한 이레에 관한 해석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드러내는데, 그들이 실수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다니엘의 70이레는 사실 계속되는 490년간에  일어날 일들인 것을 말하고 있는데, 세대주의자들은 69이레까지는 시간적으로 그대로 성취될 것으로 보지만, 나머지 한 이레는 중간기(공백기)를 거친 후에 이뤄질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그러한 공백기가 중간에 들어가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70이레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69이레가 지나고, 예를 들어 243이레 후에 일어날 일들이라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70이레에 중간에 어떤 공백기를 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냥 계속되는 기간에 일어날 일들 곧 바사왕 아닥사스다 7년(B.C.457년) 이후 490년이 지난 시점까지(A.D.31년) 일어날 일들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단9:27에 나오는 "그"를 먼 미래의 적그리스도로 해석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면 아니 된다. 69이레 후에 곧 바로 7년간 일어날 일들이자 그때 있게 될 존재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9이레 후에 다음 한 이레(7년)의 언약기간 중, 한 이레의 절반(3년반)에 희생제사와 곡식제사가 그쳐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A.D.27년 가을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3년반이 지난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약시대부터 약 2천년간 지속되어온 제사를 끝내셨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골고다 언덕에서 치른 속죄제사는 인류의 속죄를 위한 단 번의 최종적인 제사였기 때문이다(히10:8~18). 그리하여 제사를 그치고 쉬게하신 것이다(사실 그가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는 문장을 히브리어로 살펴보보면, 그가 희생제사와 곡식제사를 "쉬게" 한다 혹은 "그치게" 한다는 의미이지, 강제로 중지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므로 단9:27에 나오는 "그"는 초림의 그리스도로 해석함이 온당하다.

  그리고 이제 한 이레의 절반이 남아 있다. 그 시기는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A.D.31~34년의 시간에 해당한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A.D.34년은 예루살렘 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에 공회에 붙들려가서 성전에 관한 설교 하다가 죽임당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때 스데반은 공회(산헤드린공회)에 불들려가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모세 그리고 사울와 다윗왕과 솔로몬왕에 대해서 설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행7:48-51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결국 마지막 한 이레의 끝에 성전제사의 종결을 스데반집사가 말하고 그날 순교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향한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그때부터는 정말로 더이상 성전제사가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결국 성전제사가 종식되어지는 사건이 있고 나서, 요나의 예언에 따라 그때로부터 40년 뒤인 A.D.70년에 유대민족은 멸망을 완전히 멸망당했고,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성전도 완전히 훼파되고 말았으니, 성전제사가 완전히 중단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까지 성전제사가 예루살렘에서 드려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성전의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다(마24:1~2)

 

4. 그렇다면, "황폐하게 할 가증한 물건"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니엘서 9:26~27에 의하면,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하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요 또 하나는 한 왕의 백성이라는 인물이다. 26절에서는 69이레 후에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69이레 후에 3년반이 지나던 해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리고 장차 등장할 한 왕의 백성이 한 명 더 나온다. 그런데 한 왕의 백성(로마의 디도장군)은 한 이레 동안에 등장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때로부터 40년이 지난 뒤에 나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한 왕의 백성은 한 이레 동안에 출현할 인물이라고 나와있지 않고 장차 69이레 후에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만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일은 70이레가 끝나고 40년이 지난 시점에 성취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단9:27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언약을 굳게 맺고 그 이레의 절반(3년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할 인물은 그리스도로 적용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멸망케할(황폐하게 할) 가증한 것"은 한 왕의 백성의 출현과 연결시켜보는 것이다. 그러면 딱 맞아 떨어진다. 왜냐하면 결론적으로 예수께서도 한 이레의 절반에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희생제사와 곡식제사를 종결시켰기 때문이다. "멸망케할 가증한 것"이란 장차 예루살렘에 쳐들어올 "로마의 군대들"이라고 감람산 강화에서 정확히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눅21:20, 마24:15).

  우리는 다니엘서 9:27과 단11:31과 단12:11에 나오는 "멸망케 할 가증한 것"(다 똑같이 히브리어로, "샤렘 쉭쿠츠"라는 단어들이다)이 무엇인지 잘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라고 마음대로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우상인지, 이방인들 자체인지, 이방인들이 가져온 무엇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멸망케 할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하여서는 성경에 나와있는 대로 해석하면 된다. 그것은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 속에 나온다. 예수께서 A.D.31년경, 자신의 죽음 후에 이스라엘민족에게 임할의 멸망을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유대에 있는 자들은 무조건 도망치라고 말씀도 덧붙여주셨다. 그것은 마24:15~16에 나온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평행본문인 누가복음의 말씀을 보면, "멸망의 가증한 것"은 곧 로마의 군대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 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24:15-16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눅21:20-21 너희가 예루살렘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그렇다. 예수께서 마25:14에 말씀하신,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은 단9:27에 나오는 "멸망케할(황폐하게 할) 가증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눅21:20의 말씀에 따라, 로마의 군대들인 것을 알 수 있으며,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 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사실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 성도 될 수 있고, 예루살렘 성전도 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단9:26에 나오는 두 사람은 한 이레 동안에 제사와 예물을 그치할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와 그 뒤 한참 뒤에 등장할 "한 왕의 백성"을 가리키듯, 단9:27에 나오는 두 인물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와 "한 왕의 백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성경에 가까운 해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5. 다니엘의 70이레의 해석의 본질은 무엇인가?

  예언서의 해석은 사실 까다롭다. 하지만 때로는 쉽게 풀릴 수도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씨뿌리는 비유를 들려주신 후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해줌으로 알 수 있었듯이, 다니엘의 "멸망케 할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도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에 따르면 금방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해 다니엘의 70이레는 미래에 있어질 어떤 종말에 관한 기술이 아니라, 이스라엘민족과 예루살렘성의 파괴에 관한 기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의 출현과 죽음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마지막 때가 되면 이스라엘민족(유대인들)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이스라엘민족의 미래에 관한 운명은 다니엘의 70이레로서 종결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로 실제로 B.C.457년에서 A.D.34년 사이에 이미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 안에 메시야가 와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십자가에서 속죄제사를 드리셨다. 그리하여 제사제도를 이미 그치셨다. 그렇다. 이 세상에 이스라엘민족이 존재해야 할 목적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딱 한 가지다. 그들을 통하여 메시야를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메시야가 이미 태어났고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A.D.31년 봄의 절기인 유월절날 해질무렵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3년반 뒤에 스데반의 성전제사의 종결설교를 통해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이미 종료된 것이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은 다니엘의 70이레의 한 이레는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이자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민족과 맺을 평화협정이라고 잘못된 해석을 내놓았다(물론 이러한 해석은 이들의 작품만이 아니다. 이미 16세기 중반, 로마천주교의 리베라신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아니다. 70이레는 69이레 후에 곧바로 이어지는 7년간에 일어날 예언에 해당한다. 그것은 490년 어간에 있을, 이스라엘민족의 운명이자 예루살렘 성에 관한 운명이었던 것이다.

 

6. 나오며

  예언서를 해석하기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어떤 것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예언은 상징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예언이다. 그러나 다니엘의 70이레의 대부분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하지만 은유적으로 표현된 부분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해석하기란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66권의 성경책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고 앞으로 성취될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70이레와 한 이레의 언약도 얼마든지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의 70이레에 대한 환상의 의미를 세대주의자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가고 있다. 아니다. 다니엘의 70이레는 A.D.31년에 예수께서 오시어 이미 속죄제사를 드리셨고, 이미 A.D.34년에 스데반의 죽음으로 완전히 끝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 왕의 백성이 로마의 디도장군을 의미한다는 것조차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 다 알수 있게 되었다. 이 일들은 역사적으로 이미 성취된 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세가 왔다고 하여 너무 쉽게 흔들리지 말라. 우리에게는 기록된 성경과 역사적인 기록들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루어진 일을 가지고 먼 미래의 일로 해석항쳐 미혹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을 우리를 주의해야 한다. 그들로 인하여 오히려 우리가 참 진리에서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일수록 우리는 침착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의 기록들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가다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뚜렷히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지 조금씩 더 잘 보이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7월 6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