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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subtitle>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동탄명성교회입니다.</sub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lang="ko" href="https://dongtanm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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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ghts>Copyright ⓒ 2017 동탄명성교회. All right reserved.</rights>	<entry>
		<title>[금요기도회] [기독론(178)]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3)(렘16:10~13)_2026-08-28(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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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9T01:14:08+09:00</published>
		<updated>2026-08-29T10:59:57+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8-28(금) 금요기도회 제목: [기독론(178)]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3)(렘16:10~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3u_8z97A6JE 기독론(178)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3) (렘 16:10-1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회개는 과연 얼마나 해야 하는가? 천 번이면 되는가, 이천 번이나 삼천 번이면 되는가,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8-28(금) 금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8)]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3)(렘16:10~1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3u_8z97A6JE&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3u_8z97A6JE?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16:10-1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과연 얼마나 해야 하는가? 천 번이면 되는가, 이천 번이나 삼천 번이면 되는가, 아니면 만 번까지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횟수 하나만으로 대답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조상들이 지은 죄의 분량이 다르고 자신이 직접 지은 죄도 다르며, 회개(悔改, repentance)할 때의 진실함도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적은 횟수에도 삶이 달라지고, 어떤 사람은 수천 번을 했는데도 여전히 많은 영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먼저 &lt;strong&gt;회개의 목적과 영적 작동 원리&lt;/strong&gt;를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기도문은 사실 어떤 주문이 아니다.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듯이, 무엇을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죄의 항목과 기도의 방향을 알려 주는 지침서다(마 6:9-13; 눅 11:1-4). 주기도문이 하나님을 움직이는 주술이 아니라 바른 기도를 배우게 하는 틀이듯이, 회개기도문도 죄를 깨닫고 구체적으로 자백하게 하는 안내서이다. 내용을 모르고 입술로만 반복하는 것과 죄를 자기 죄로 인정하며 통회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amp;#39;회개기도문&amp;#39;을 처음 접한 것은 약 6년 전이었다. 선배들이 약 17년 동안 사용하며 보완해 온 기도문이었지만, 처음부터 그 체계와 효과를 자세히 배운 것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성도를 도와주고 싶었으나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에 영안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훈련을 받기로 결심했다. 그때 하루에 한 번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점검받으라는 과제를 받았다. 이유를 다 알지 못했지만 성도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그대로 순종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훈련 과정에서 처음에는 몸 안에 귀신의 영향이 72퍼센트라고 들었고, 회개한 뒤에는 36퍼센트, 12퍼센트, 7퍼센트, 1.5퍼센트라고 안내받았다. 이 수치는 당시 훈련 과정에서 들은 영적 점검의 표현이지 의학적 측정치가 아니다. 실제로는 필자 안에 처리해야 할 영들이 훨씬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안내는 낙심하지 않고 회개를 계속하도록 용기를 주었다. 한 사람의 말이나 한 번의 영적 관찰을 절대화하지 않고, 성경과 반복된 사역의 열매를 통해 전체 체계를 살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기도문으로 계속 회개하시면서 점차 회개기도를 알게 되자 여기에 놀라운 질서가 드러났다.&amp;nbsp; 회개기도문에 나타나 있는&amp;nbsp;&lt;strong&gt;죄의 항목&lt;/strong&gt;는 크게 &lt;strong&gt;하나님께 범한 우상숭배의 죄&lt;/strong&gt;와 &lt;strong&gt;사람에게 범한 생활&amp;middot;성품의 죄&lt;/strong&gt;로 구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십계명으로 말하면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와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의 구조와 비슷했다. 우상숭배의 네 항목은 조상 제사, 부처&amp;middot;불교, 무당&amp;middot;점쟁이, 미신&amp;middot;잡신이며, 생활과 성품의 죄에는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혈기&amp;middot;분노를 비롯한 열아홉 가지로 분류하고 있었다. 필자 최근에 발간한 평생 회개기도문(2026년,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 발행)에는 여기에 열아홉 항목을 더하여 회개기도문에 빠져있는 죄의 항목을 추가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해야 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구원(救援, salvation)을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죄를 통해 들어온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에는 과거의 죄가 예수님의 피로 덮이고 생명을 받지만, 믿은 뒤에 지은 죄는 다시 자백해야 한다. 또한 조상과 자신이 지은 죄를 통하여 들어온 귀신과 뱀을 내보내야 삶을 억누르는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회개기도문이 구원과 저주로부터의 해방에 왜 필요한지, 우상숭배의 죄와 생활&amp;middot;성품의 죄가 귀신과 뱀의 역사로 어떻게 구별되는지, 예수 믿은 뒤의 죄가 최종 구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상죄를 포함한 회개의 세 가지 경우가 무엇인지, 죄의 누적과 형벌의 원리, 회개의 분량과 특사 조치의 관계, 그리고 가족의 대신 회개가 어떻게 생명을 살리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회개기도문은 왜 구원과 저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회개기도문&amp;#39;은 먼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을 때 하는 &amp;#39;회심의 회개&amp;#39;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회개다. 베드로가 &amp;ldquo;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amp;rdquo;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시인하는 것이다(눅 5:8). 이때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덮어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속죄(贖罪, atonement)와 칭의(稱義, justification)의 출발이다. 죄들에 대한 용서를 뜻하는 헬라어 아피에미(ἀ&amp;phi;ί&amp;eta;&amp;mu;&amp;iota;)라는 단어는 원래는 &amp;#39;내버려두다&amp;#39;라는 뜻을 지녔다. 이 단어가 다양하게 쓰이면서 점차로 &amp;#39;보내다, 놓아주다, 탕감하다, 용서하다&amp;#39;는 뜻으로 파생되어 쓰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당장 정죄하지 않고 그 죄를 덮어 주시며 생명 주는 성령을 넣어 거듭나게 하신다. 이 중생(重生, regeneration)을 통해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십자가 위의 한편 강도가 자기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나라를 믿었을 때 그날 낙원에 들어간 것이 그 예다(눅 23:39-4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는 예수를 믿은 그날 죽지 않는다. 이후 수십 년을 살면서 미움과 혈기와 거짓과 음란과 탐욕의 죄를 짓고, 기도 응답이 더디다고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한다. 처음 믿을 때 과거의 죄를 덮어 주셨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지은 죄까지 회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이단세력인 구원파에서는 한 번 믿으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다고 가르친다). 성경을 보라. 믿음의 길에서 파선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었고,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나버리고 말았다(딤전 1:19-20; 딤후 4:10). 믿음을 시작하는 것과 끝까지 지키는 것은 구별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회개기도문은 믿은 뒤 지은 죄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 된다. 미워한 것은 살인과 연결되고, 거짓말과 언어폭력과 우상 의지가 하나님 앞에 죄임을 항목별로 깨닫게 한다. 막연하게 &amp;ldquo;주여, 잘못했습니다&amp;rdquo;라고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떤 죄를 언제 어떻게 지었는지 구체적으로 자백하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백할 때에(다시 그 죄에 대해 말할 때에) 죄 사함을 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며, 죄를 근거로 들어온 더러운 영이 떠날 길이 열린다(요일 1: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죄를 자백하는 또 하나의 목적은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함&lt;/strong&gt;이다. 필자가 회개와 축사(逐邪, exorcism)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자신의 죄를 통해 들어온 귀신과 뱀은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삶의 막힘으로 역사한다. 예수를 믿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영들이 자동으로 모두 떠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그 영을 받아들인 사실을 인정한 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보내야 한다. 회개기도문은 구원을 지키는 회개와 삶의 저주를 끊는 &lt;strong&gt;정결(淨潔)의 회개&lt;/strong&gt;를 함께 하도록 돕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우상숭배의 죄와 생활&amp;middot;성품의 죄는 귀신과 뱀의 역사로 어떻게 구별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기도문에서 &lt;strong&gt;우상숭배의 죄&lt;/strong&gt;와 &lt;strong&gt;생활&amp;middot;성품의 죄&lt;/strong&gt;를 구분한 데에는 영적 이유가 있었다. &lt;strong&gt;우상숭배의 죄를 지을 때에는 내 육체 속에 주로 귀신이 들어오고&lt;/strong&gt;, &lt;strong&gt;생활과 성품의 죄를 지을 때에는 내 육체 속에 주로 뱀이 들어온다&lt;/strong&gt;. 악한 영으로서 귀신과 뱀은 예수님께서 구별하신 것이다(막 16:17-18).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영은 모두 타락한 천사들로서 모두 사람을 죄와 저주로 끌어가지만 나타나는 모습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귀신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쫓아내야 하고, 뱀들은 손과 발을 사용해 집어 올리거나 밟아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구별을 알지 못하면 모든 악한 영을 같은 방법으로만 다루다가 끝까지 이 영을 처리하지 못할 수 있어, 결국 정결에 이르지 못할 수도&amp;nbsp;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회개기도문에서 분류하고 있는 죄에는 첫째로&amp;nbsp;&lt;strong&gt;우상숭배의 죄&lt;/strong&gt;가 있다. 이러한 우상숭배의 죄는 총 네 부류로 정리된다. 첫째는 조상 제사의 죄다. 필자는 이 죄와 연결된 영이 몸에 역사할 때 중한 질병과 난치성 질환, 치매와 장애 같은 고통에 영향을 준다고 가르쳐 왔다. 둘째는 부처와 불교를 섬긴 죄이며, 이 영은 가난과 궁핍으로 끌어가는 경우가 많다. 셋째는 무당과 점쟁이를 의지한 죄다. 이와 관련된 신기는 불면과 우울, 강한 분노와 음란의 충동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다른 방향으로 사용될 때에는 노래와 춤과 연예의 재능처럼 드러나기도 한다. 넷째는 모든 만물에 신이 있다고 믿고 비는 미신&amp;middot;잡신의 죄이며, 하는 일마다 막히게 하는 영과 연결된다. 그래서 사람이 우상숭배의 죄를 지으면 그 사람 속에 귀신이 들어간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내용은 필자가 오랜 회개와 축사 사역에서 분별하면서 정리한 것들이다. 모든 질병과 장애, 가난이나 예술적 재능을 특정 우상숭배 하나의 결과라고 의학적&amp;middot;사회적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우울감, 자살 충동, 장기간의 불면, 환청, 현실 판단의 상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즉시 전문 의료진과 응급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회개와 축사는 필요한 진단과 치료를 중단시키는 대체물이 아니라 안전한 치료와 함께할 수 있는 영적 돌봄이다. 그리고 아픈 사람이나 장애인, 예술인을 죄의 표지로 낙인찍어서도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크게 둘째로 &lt;strong&gt;생활과 성품의 죄&lt;/strong&gt;가 있다. 이러한 생활 성품상의 죄는 다시 교만, 거짓, 음란, 혈기와 분노, 시기와 질투, 탐욕, 술과 담배의 중독 등으로 나타난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교만의 뱀은 머리와 심장과 간에 주로 자리잡으며, 음란의 뱀은 아랫배에 자리 잡으며, 음란의 뱀은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제사의 영이 질병을 일으킬 때에는 주로 붉은 뱀들을 사용하여 혈관과 신경을 감게 하고 몸의 순환을 막는다. 그래서 사람이 생활과 성품상의 죄를 지으면 뱀이 육체 속에 들어온다. 이것은 영적 체험의 영역이므로 의학적 영상이나 혈액검사의 소견과 같은 층위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귀신과 뱀은 처리 방식도 약간 다르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집어 올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6:17-18). 귀신은 사람이나 짐승 또는 물체의 모습으로 보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amp;ldquo;나오라&amp;rdquo;고 명령하여 쫓아낸다. 뱀은 손에 주어진 영적 칼로 찌르고 잘라 집어 올리거나 발로 밟아 처리한다. 필자는 이 말씀을 실제 축사 현장에 적용하면서 귀신을 향한 명령과 뱀을 다루는 손과 발의 사역을 구별해 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구별이 있다고 해서 두 죄를 따로 떼어 회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은 교만과 탐욕과 음란에 빠지기 쉽고, 생활 속 죄를 반복하는 사람은 어려움이 닥칠 때 우상을 의지하기 쉽다. 귀신과 뱀은 서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힘을 공급한다. 그러므로 &amp;ldquo;무슨 죄를 지었습니다&amp;rdquo;라는 자백과 &amp;ldquo;무슨 영을 받아들였습니다&amp;rdquo;라는 자백이 함께 가야 한다. 네 가지 우상숭배와 생활&amp;middot;성품의 모든 죄를 함께 회개할 때 몸과 혼과 영이 온전히 정결해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예수 믿은 뒤 지은 죄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최종 구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어느날 복음을 듣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는 영원한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의 여정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 뒤의 삶과 무관하게 자동으로 최종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성도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고 말했다(고후 5:10). 믿은 뒤 선을 행했는지 악을 행했는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았는지 자기 욕심을 위해 살았는지가 드러나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로마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 것이라고 말한다(롬 14:10-12).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의 필수 조건이지만, 믿음만 입술에 두고 죄를 사랑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최종적으로 &amp;ldquo;주여, 주여&amp;rdquo; 하는 사람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들어간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7:21). 야고보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약 2:17, 2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요한계시록에서는 최종적으로 성 안에 들어가는 사람과 성 밖에 있는 사람을 구별하여 가르쳐준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은 성 밖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계 22:15). 반대로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고 했다(계 22: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임종을 앞둔 성도 곁에 흰옷을 입은 천사들과 검은 세력들이 함께 와서 그 영혼을 두고 다투는 경우가 있다. 선한 삶과 회개의 열매가 있을 때에는 흰 옷입은 천사의 세력이 강해지고, 회개하지 않은 죄가 많을 때에는 검은 옷을 입은 악한 세력이 강해진다. 얼굴빛이 편안해졌다가 어두워지고,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침대나 벽을 붙잡으려다가 손가락 끝에 피가 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필자의 영적 관찰이며, 임종자의 몸짓 하나만으로 구원 여부나 의학적 상태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예수 믿은 자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는 이미 믿은 자이니 그 뒤에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쌓은 열매가 부족하더라도 죄를 자백하여 예수님의 피로 씻으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지키고 성 안에 들어갈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선한 행실과 충성의 열매가 더해지면 천국의 기업까지 준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며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빌 2:12; 딤후 4:7-8).&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조상죄까지 회개해야 하는 이유와 회개의 세 가지 경우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죄를 회개할 때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lt;strong&gt;첫째는 조상들이 죄를 지었고 자신은 같은 죄를 직접 짓지 않았지만, 조상죄의 결과와 영적 영향을 후손이 받고 있는 경우&lt;/strong&gt;다(렘 15:4). &lt;strong&gt;둘째는 조상들도 죄를 지었고 자신도 그 영향을 따라 같은 죄나 짓되 더 큰 죄를 지은 경우&lt;/strong&gt;다(렘 14:20; 16:11-12). &lt;strong&gt;셋째는 조상들은 그 죄를 짓지 않았지만 자신이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로 죄를 지은 경우&lt;/strong&gt;다(렘 31:29-30). 예레미야서는 이 세 경우를 모두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선 &lt;strong&gt;첫째로, 자기도 죄를 짓고 있고 조상들도 죄를 지었을 경우&lt;/strong&gt;다. 예레미야는 자기 죄만이 아니라 조상들의 죄도 함께 인정하였다. 그는 &amp;ldquo;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amp;rdquo;을 고백했고, 청년의 때부터 그날까지 &amp;ldquo;우리와 우리 조상들&amp;rdquo;이 여호와께 범죄했다고 말했다(렘 14:20; 3: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4:20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조상과 자신이 함께 죄를 지은 경우는 예레미야 16장에 분명히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하신 뒤, 당시 백성이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다고 책망하셨다(렘 16:11-12). 조상이 술과 음란과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들어온 영이 후손에게 내려와 같은 충동을 일으키고, 후손이 그 유혹을 따라 다시 죄를 지으면 조상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인다. 그렇다고 죄를 짓게 된 원인으로 조상 탓만 할 수는 없다. 충동이 왔어도 그것을 선택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로, 조상들이 죄를 지었으나 그 결과를 후손이 받는 경우&lt;/strong&gt;가 있다. 조상의 죄 때문에 후손이 고통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죄 때문에 남유다를 여러 민족 가운데 흩으시겠다고 하셨다(렘 15:4).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죄 때문에 다윗 시대에 삼 년 기근이 임했고, 그 죄값을 처리한 뒤에야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삼하 21:1-14). 다윗이 직접 저지른 일이 아니었어도 이전 왕이 남긴 죄의 결과가 다음 시대에 나타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로 조상은 죄를 짓지 않아았으나 자신의 자유의지로 자기가 죄를 지은 경우&lt;/strong&gt;도 있다. 각 사람은 최소한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예레미야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아들의 이가 신다고 말하지 않고, 신 포도를 먹는 사람마다 자기 이가 시며 각 사람이 자기 죄악으로 죽는다고 말했다(렘 31:29-30). 조상이 선하게 살았어도 내가 죄를 지으면 내가 그 결과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출애굽기 20:5의 말씀을 통하여,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값을 그의 후손 3~4때까지 물리겠다고 하신 말씀 속에 이미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 말씀은 조상죄의 현세적 영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영원한 책임과 자유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우리가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은 죽은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상의 영원한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 조상이 죄를 지을 때 들어온 영들이 혈통을 따라 후손에게 내려와 죄된 본성으로 역사하고 삶을 괴롭히므로, 그 영들을 내보내기 위해 조상들의 죄를 자기 가문의 죄로 인정하여 회개하는 것이다. 즉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은 속죄를 위함이 아니라 정결을 위함이다. 자기 가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은 구원과 직접 연결되지만, 조상들이 지은 죄에 대한 회개는 후손의 삶을 억누르는 영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이것은 정결의 문제다. 이 두 목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조상과 자신의 죄가 쌓이면 어떻게 형벌과 저주가 임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는 쌓이다가 분량이 차면 결국에 심판과 형벌을 맞이한다. 남유다에서는 므낫세 시대에 죄가 거의 가득 찼고, 요시야 시대의 개혁으로 잠시 심판이 미뤄졌지만 그 아들들과 백성이 다시 악을 행하여 마침내 분량을 채워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멸망 직전에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며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만 찾아도 그 성을 용서하겠다고 하셨으나 찾지 못하셨다(렘 5:1). 백성과 왕, 심지어 제사장과 선지자와 같은 종교지도자들까지 함께 다 타락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16장에서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현재 세대의 더 큰 악을 함께 지적하신 뒤, 그들을 알지 못하던 땅으로 쫓아낼 것이고 더 이상 은혜를 베풀지 않겠다고 선언하신다(렘 16:10-13).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는 선지자를 보내 돌이킬 기회를 주시지만, 죄가 가득 차 형벌의 날이 오면 정해진 결과를 담당하게 하신다. 남유다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과 포로 생활을 겪었고,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야 돌아올 수 있었다(렘 25:11-12; 29: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러한 민족적 심판과 형벌의 원리를 개인의 삶에도 적용해 왔다. 조상들의 죄와 자신의 죄로 인하여 들어온 뱀과 귀신이 한 사람의 혈관과 신경과 삶의 영역을 가득 장악하게 되면, 그에게 중한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이 형벌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죄가 95퍼센트까지 쌓여 있는 가운데, 자신이 마지막 5퍼센트를 채워 심각한 삶의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암이나 파킨슨병, 치매, 정신질환 같은 고통 앞에서 결과만 없애 달라고 하기보다 조상과 자신이 지은 죄를 깊이 살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목회적 권면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남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정신질환을 무조건 귀신의 역사로 확정하거나 환자와 가족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 경련, 의식 저하, 자살&amp;middot;자해 위험, 급성 정신증과 현실 판단의 상실은 즉시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약물은 담당 의사와 상의 없이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 돌봄은 생명을 지키는 치료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의 분량이 찼다는 말씀의 핵심은 정죄가 아니라 지금 회개해야 한다는 경고다. 아직 움직이고 말할 수 있을 때 눈물로 죄를 자백해야 한다. 병이 깊어지면 몸과 정신이 지쳐 기도할 힘조차 없어질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죄가 가득 차 심판이 가까웠어도 교회와 성도가 진실하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전쟁과 멸망을 뒤로 미루시거나 그것을 막아 주실 수 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므로 나라와 민족을 위한 회개를 결코 미루지 말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회개는 얼마나 해야 하며 하나님의 특사 조치는 언제 임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각자의 자백할 회개의 분량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인가? 그것은 조상과 자신이 지은 죄의 분량에 따라 결정된다. 조상 대대로 우상을 섬겼는데, 자신도 불교 단체를 이끌거나 무당과 점쟁이를 반복해서 찾아갔다면 처리해야 할 영이 매우 많다. 이런 사람이 2,000번 회개한 뒤 왜 아직 문제가 풀리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따질 수는 없다. 10,000번을 회개해야 할 만큼 죄가 쌓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를 채우는 기술이 아니라 죄가 하나님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깨닫고 평생 회개할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몸에는 귀신의 집이 큰 것 세 개와 작은 집 세 개가 있었다. 큰 집은 머리와 배와 등에 있었고, 그중 머리에 있던 놋집은 파괴하기 매우 어려운 집이었다. 그 집에는 다섯 개의 방이 있었다. 첫째 방에는 사명대사를 우두머리로 한 수많은 불교 대사들이 들어 있었고, 둘째 방에는 젊은 승려들, 셋째 방에는 여자 승려들, 넷째 방에는 여자 무당들, 다섯째 방에는 여장을 한 남자 무당들이 있었다. 오른쪽 허벅지 아래의 작은 집에는 황진이의 영과 노래하고 춤추게 하는 영들이 있었다. 이것은 필자가 회개와 축사를 받는 과정에서 확인한 개인적 영적 체험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 자신은 사실 좀 착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18세) 때에 예수를 믿기 전까지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생들이 맞을 매를 대신 맞았으며, 도둑질과 큰 악을 피하며 살았다. 직접 지은 우상숭배의 죄는 어머니를 따라 무덤에 말표 고무신을 거꾸로 놓고 세 번 절했던 일 등이 있지만, 그리 죄될 만한 것은 거의 짓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머리에 있는 놋집을 살펴보니, 그 안에는 영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실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죄가 너무너무 많았다. 모친께서는 새벽 네 시되면 일어나셔서 가장 먼저 우물물을 떠서 천지신명과 칠성신과 조왕신과 업신에게 자녀들이 잘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아버지는 술마시고 노름을 하고 혈기를 부리셨다. 필자는 그 모든 일을 보고 자랐기에 내 조상들의 죄를 나의 죄처럼 끌어안고 눈물로 회개하고 또 눈물로 회개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회개기도문으로 가지고 천 번을 회개하는 것을 채우기도 전에 필자에게 특사 조치를 베풀어주셨다. 약 일주일 동안 큰 집과 작은 집들을 차례로 파괴하여 그 안의 영들을 전부다 내보내 주셨다. 정상적인 분량대로라면 수천 번, 수만 번을 회개해야 할 일이었지만, 직접 짓지 않은 조상들의 죄까지 내 죄처럼 인정하고 통곡한 중심을 보시고 특별 사면을 베푸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귀신의 집이 파괴되어 사라진 뒤에는 성령의 불과 은사들이 더 온전히 장착되어 사역에 사용되기 시작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특사 조치는 특정 횟수에 자동으로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형식적으로 오천 번, 만 번을 읽어도 죄를 숨기고 결과만 없애 달라고 하면 분량은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이 짓지 않은 죄까지 가슴 아파하며 진실하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amp;ldquo;이제 되었다&amp;rdquo;고 하시는 날이 올 수 있다. 그때 귀신의 집이 무너지고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에서 벗어나는 기적이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사를 받지 못했다고 낙심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한꺼번에 집을 무너뜨리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씩 영을 내보내며 성품을 다듬게 하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lt;strong&gt;우리의 책임은 다른 사람의 횟수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숨김없이 자백하고 실제 생활에서 끊으며 끝까지 회개하는 것&lt;/strong&gt;이다. 회개를 채워 가다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오면 삶에 분명한 열매가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배우자와 부모&amp;middot;자녀의 대신 회개는 어떻게 가족을 살리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가장 좋은 회개는 죄를 지은 당사자가 직접 회개하는 것&lt;/strong&gt;이다. 자신이 우상숭배와 자범죄로 중한 질병과 신기의 고통에 이르렀다면 죽기 살기로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병이 깊어지면 회개하고 싶어도 힘이 없고 정신이 흐려져 기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한 가족으로 묶어 주신 배우자와 부모와 자녀가 대신 그 죄를 자기 죄처럼 끌어안고 회개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복음서에서 귀신 들려 고통받던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그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아버지는 &amp;ldquo;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amp;rdquo;라고 부르짖었고, 예수께서는 아이를 붙잡고 있던 더러운 영을 꾸짖어 내보내셨다(막 9:17-27). 당사자가 할 수 없을 때 부모의 믿음과 간구가 자녀를 주님께 데려가는 통로가 된 것이다. 가족의 대신 회개도 이처럼 사랑으로 서로의 짐을 지는 사역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남편이 죄를 지어 중한 병에 걸렸다면 아내에게는 직접 지은 죄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의 죄를 자기 죄처럼 여기고 눈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 진실함을 보신다. 어머니가 치매로 회개할 수 없을 때 자녀가 어머니의 우상숭배를 끌어안고 회개할 수 있고, 자녀가 정신질환과 신기로 고통받을 때 부모가 자녀를 위해 죽기 살기로 회개할 수 있다. 배우자와 부모&amp;middot;자녀라는 관계는 어려울 때 서로를 살리라고 주신 언약적 연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신 회개가 당사자의 자유의지와 영원한 책임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대신 예수님을 믿어 줄 수 없고, 죽은 조상의 구원을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피와 언약으로 연결된 가족이 그 죄를 자기 죄처럼 통회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회개의 분량을 줄이고 특사 조치를 베푸실 수 있다. 만 번을 회개해야 할 사람이 가족의 진실한 중보로 삼천 번에 집이 무너지는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신 회개도 형식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amp;ldquo;저 사람이 지은 죄인데 내가 왜 해야 하는가&amp;rdquo;라는 마음으로 입술만 움직이면 깊은 통회가 나오기 어렵다. 가족의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그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을 슬퍼해야 한다. 자신에게 남은 원망과 미움도 함께 회개하고, 환자를 돌보며 치료를 돕고, 안전을 지키는 사랑의 행함이 따라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회개는 형벌의 날을 줄여주는 은혜의 길&lt;/strong&gt;이다. &lt;strong&gt;구약의 남유다는 회개하지 않아 칠십 년의 포로 생활을 채워야 했지만,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자백하고 저주의 통로를 끊을 수 있다.&lt;/strong&gt; &lt;strong&gt;자신이 건강할 때 먼저 회개하고, 가족이 약해졌을 때에는 그를 대신하여 진실하게 회개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통회가 배우자와 부모와 자녀를 살리고 가정에 내려온 오랜 저주의 흐름을 끝낼 수 있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회개기도문이 구원과 저주로부터의 해방에 필요한 이유, 우상숭배의 죄와 생활&amp;middot;성품의 죄에 따른 귀신과 뱀의 역사, 믿은 뒤 지은 죄와 그리스도의 심판대, 조상죄를 포함한 회개의 세 가지 경우, 죄의 누적과 형벌, 회개의 분량과 특사 조치, 그리고 가족의 대신 회개가 생명을 살리는 원리를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회개기도문을 주문처럼 대해서는 안&lt;/strong&gt; 된다. 그것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지침서다. 회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속죄와 칭의를 얻은 뒤에도 믿은 후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자기 두루마기를 계속 빨아 믿음을 지키고 성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구원과 저주로부터의 해방을 함께 보아야&lt;/strong&gt; 한다. 자기 죄의 회개는 최종 구원과 직접 연결되며, 조상죄의 회개는 후손에게 내려온 영적 영향을 끊는 정결의 과정이다. 우상숭배의 죄와 생활&amp;middot;성품의 죄를 함께 자백하여 귀신과 뱀이 역사할 근거를 없애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회개의 세 가지 경우를 분별해야&lt;/strong&gt; 한다. 조상들의 죄만으로 후손이 고통받는 경우가 있고, 조상과 자신이 함께 죄를 지은 경우가 있으며, 자신이 선택한 죄로 형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조상 탓으로 자기 책임을 피해서도 안 되고, 개인의 책임만 강조하여 혈통을 따라 내려온 악한 영향력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회개의 분량을 숫자로만 계산하지 말아야 &lt;/strong&gt;한다. 죄가 오랜 세대에 걸쳐 쌓였다면 처리해야 할 영도 많다. 이천 번이나 삼천 번을 했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결과를 요구하기보다, 평생 회개할 중심으로 죄를 슬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반복이 아니라 죄를 자기 죄로 인정하는 진실한 통회를 보시고 특사 조치를 베푸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당사자가 회개할 힘이 없을 때 배우자와 부모와 자녀가 그의 죄를 자기 죄처럼 끌어안고 회개해야 한다. 대신 회개가 당사자의 믿음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의 분량을 줄이고 저주의 통로를 끊는 긍휼의 길이 될 수 있다. 기도와 함께 환자의 안전을 지키고 전문적인 치료를 돕는 사랑의 행함도 계속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살아 있을 때가 회개할 때다. 건강하고 말할 수 있을 때 자기 죄와 조상들의 죄를 부지런히 자백하고, 가족이 약해졌을 때에는 대신 짐을 져 줄 수 있어야 한다.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하나님께서 &amp;ldquo;이제 되었다&amp;rdquo;고 하실 때까지 낙심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정결과 성결(聖潔)의 길을 걸어야 한다.&lt;/strong&gt;&lt;/span&gt; 그리하여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모든 죄와 저주의 연결에서 벗어나 자신과 가족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8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자신과 조상의 죄를 회개&lt;/strong&gt;하는 행위가 인간의 삶에 닥친&amp;nbsp;&lt;strong&gt;저주를 끊고 구원을 완성&lt;/strong&gt;하는 데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원한 심판을 면제받았을지라도, 살아가며 짓는 자범죄와&amp;nbsp;&lt;strong&gt;내림죄&lt;/strong&gt;를 회개하지 않으면 삶의 질병, 가난, 환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역설합니다. 특히 인간의 고통을 유발하는 악한 영들이&amp;nbsp;&lt;strong&gt;조상으로부터 대물림&lt;/strong&gt;되거나 본인의 죄로 인해 유입되기에, 이를 척결하기 위한 도구로써 체계적인&amp;nbsp;&lt;strong&gt;회개 기도문&lt;/strong&gt;을 활용한 반복적인 기도를 권장합니다. 설교의 핵심은 타인의 죄라 할지라도 나의 죄처럼 통회할 때 하나님의&amp;nbsp;&lt;strong&gt;특별 사면&lt;/strong&gt;이 임하며, 이를 통해 영적인 눈이 열리고 모든&amp;nbsp;&lt;strong&gt;인생의 문제&lt;/strong&gt;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신앙적 원리를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 ChatGPT Image 2026년 8월 29일 오전 10_38_0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b0e25d11d3ef8e27859d43ecd591182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340d2e34bee4c21b2541eb29f960c7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9bb5887e3531e71eefced6bacf49d6b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3305ebebc2023ad146a50ab1cfa855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31f54b4e5b0c88e48d24847d4755e2c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2d7d2c8d2168b2a2c0adf70532b601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1f6951893ada98c59036da54733b39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4b1c6e1681f5001ca977187ea461040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10bbfd463cf8b0eabad985cce612886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0b35c2a9c810bc4e9850bb67a7d476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8666d2468444ce9de428222f88557d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038a89352981bc987e7028c79fef15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Spiritual_Repentance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c8eb05077eecba927ac4bbe0f816a45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 죄를_정결케_하는_회개_비밀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f1a7237d0edf1b16dbb0df5e7660001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d7579fea5dba8ae3e79111e3f135cb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0ae91edc7e969e16ade12fc48fd298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a9ae47ed5daa1a46b88bd881d65e3ca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981efce793992b5ad475b109ae239e7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4976cdbd35489ffd8211694a1a4e04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d19cab622f92c31d7f874dcbdfb54bb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9d7ac0d9fff01439b225c1d67aea22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d7c6798782be667298d44847f067e6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9f56b049910284f1bff54338a46a95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ab34d6bf0b0912d0ede1f34063565c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8)]The_Blueprint_for_Spiritual_Liber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56/265/6d3a75ab961bee93bc00160e909cc2d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렘16:10~13 )_2026년 08월 28일(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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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8T08:45:14+09:00</published>
		<updated>2026-08-28T17:18:1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렘16:10~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SaZ7U5Jdy4 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 (렘 16:10-1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성경은 어느 한 부분만 보아서는 안 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 붙들어서도 안 되고, 어느 신학...</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렘16:10~1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dSaZ7U5Jdy4&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dSaZ7U5Jdy4?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16:10-1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어느 한 부분만 보아서는 안 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 붙들어서도 안 되고, 어느 신학자나 종교개혁자의 말만 반복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불완전하므로 한 사람이 모든 진리를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구원을 받으려면 로마서나 갈라디아만 볼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과 야고보서와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까지 함께 보아야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救援, salvation)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알 수 있다. 성경 전체가 무엇을 말하는지 살피지 않고 편하고 쉬운 길만 붙들게 되면 마지막 결산의 날에 심히 당황하게 되거나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람은 어떻게 회개하고 어떻게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예레미야 16장 10절부터 13절에서 남유다 백성은 하나님께 묻는다. 도대체 여호와께서 왜 남유다에 이렇게 큰 재앙을 선포하셨으며 우리가 무슨 죄를 범했느냐 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두 가지를 함께 대답하신다. 먼저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우상에게 절했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셨다. 이어서 당시 백성은 자기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고, 각자 완악한 마음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심판의 원인은 조상들의 죄만도 아니고 현재 세대의 죄만도 아니었다. 조상들의 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여 마침내 형벌의 분량이 차버린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왜 회개(悔改, repentance)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할 때에도 두 가지 방면을 함께 보아야 한다. 조상들의 죄로 들어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면이 있고, 자신이 직접 죄를 지어 불러들인 방면이 있다. 조상죄만 탓하며 자기 책임을 피해서도 안 되고, 자기 죄만 보며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영적 영향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예레미야는 조상들이 범죄하고 사라졌지만 후손이 그 죄악의 결과를 담당한다고 말하였으며(애 5:7), 동시에 신 포도를 먹은 사람의 이가 신 것처럼 각 사람이 자기 죄악으로 죽는다고도 말했다(렘 31:29-30). 이 두 말씀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은 죽은 조상을 구원하거나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대신 담당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 죄를 통하여 후손에게 내려온 더러운 악한 영들의 영향을 끊고 자신을 정결(淨潔)하게 하기 위해서다. 반면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일은 자기 영혼의 구원과 직접 연결된다. 예수님을 믿은 뒤에도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고(계 3:5), 그리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계 21:27; 22:14-1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누구든지 믿을 때에 예수님의 피로 속죄(贖罪, atonement)를 받고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얻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은혜다(롬 5:1). 그러나 칭의는 구원의 전 과정을 끝내는 종착점이 아니라 구원 여정에 들어서는 출발점이다. 그 뒤에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지은 죄를 자백하며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삶이 뒤따라야 한다(계 22:14).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행함은 믿음을 온전하게 한다(약 2:22). 마지막에는 우리가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했는지만이 아니라 그 믿음이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도 주님 앞에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회개의 분량을 단순한 횟수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천 번을 회개하고도 많은 영들이 남아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그보다 적게 회개했는데도 귀신의 집이 무너지는 특사 조치를 받을 수도 있다. 차이는 &lt;strong&gt;조상들이 지은 죄와 자신이 직접 지은 죄의 분량, 그리고 그 죄를 얼마나 진실하게 통회했는가&lt;/strong&gt;에 달려있다. 하나님께서는 기계적인 반복보다 죄를 슬퍼하며 가슴을 찢고 회개하는 중심을 보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칭의가 구원 여정의 출발점인 이유, 믿음과 행함과 회개의 관계, 회개해야 할 죄의 세 범주, 조상죄 회개의 목적, 조상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인 결과, 칠십 년의 형벌과 회개 분량의 관계, 그리고 특사 조치가 진실한 통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칭의는 왜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구원 여정의 출발점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칭의&amp;#39;란 무엇인가? 칭의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은혜다. 죄인은 자기 선행으로 과거의 죄를 없앨 수 없고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그러므로 믿음 없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아니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죄인이며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을 회심(回心, conversion)이라고 부른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덮어 주시고 생명 주는 영을 집어넣어 그를 거듭나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죄가 예수님의 피로 덮였다는 말과 죄의 모든 흔적이 실제로 사라졌다는 말은 결코 같지 않다.&amp;nbsp; 즉 예수님을 믿어도 죄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처음 처음 믿을 때 자신의 지은 모든 죄를 하나씩 하나씩 다 기억하여 자백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아마도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받을 수 있도록 먼저 죄를 덮어버리고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다. 하지만 죄를 통하여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이 그 순간 자동으로 모두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칭의를 얻은 뒤에도 성질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혈기와 음란과 거짓의 유혹을 받으며, 오래된 저주의 영향 속에서 고통받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주 예수님을&amp;nbsp; 믿은 뒤에도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도 칭의를 결코 구원의 완성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앞으로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롬 5:9). 이미 얻은 칭의와 장차 받을 구원을 구별해놓은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성결(聖潔)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롬 5:1). 믿음으로 구원의 문에 들어섰다면, 이제는 그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계속 죄를 사랑하고 이웃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그 믿음이 온전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믿음이 최종적으로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믿었다는 이유가 그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원받은 자라고 구원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amp;#39;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amp;#39;의 비유이다.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은 주인으로부터 큰 빚을 탕감받았지만(여기서 탕감은 내버려두다는 뜻이다), 자기에게 작은 빚을 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인은 그가 받은 은혜를 거두어들이고 다시 그를 옥졸에게 넘기고 말았다(마 18:23-35). 용서받은 자는 용서받은 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는 큰 용서를 받았으면서 자기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그는 용서받은 자답게 사는 삶이 아니다. 그런 자는 훗날 그가 받은 용서가 취소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구원의 완성은 무엇인가? 자신이 죽는 마지막 날까지 믿음을 지켜내어,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있다.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으며, 주께서 자신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딤후 4:7-8, 18). 요한계시록의 표현으로 말하면 생명책(生命冊, Book of Life)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고, 자기 두루마기를 빨아 문들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야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칭의를 귀하게 붙들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회개와 순종을 생략하는 구원 보증서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칭의를 받은 순간부터 진짜 구원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믿음은 행함과 회개를 통해 어떻게 온전해지고 끝까지 보존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은 행함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믿음과 행함은 사실 따로 존재하는 관념이 아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amp;ldquo;주여, 주여&amp;rdquo;라고 말하는 사람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들어간다고 하셨다(마 7:21). 믿음으로 구원을 시작하였지만, 마지막에는 그 믿음이 순종의 열매를 맺고 있었는지를 주님께서 확인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행위로 구원을 사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행함은 믿음을 대신하는 값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이 밖으로 드러난 증거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그의 쓴 야고보서에서 이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말하였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이 어떻게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역시 이삭을 드리는 행함과 함께 일했고 그 행함으로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기생 라합도 정탐꾼을 영접하고 다른 길로 내보내는 행함으로 믿음을 드러냈다고 했다(약 2:14-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을 서로 싸우게 만들면 안 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구원의 첫 노정에 필요한 믿음과 그에 따르는 속죄와 칭의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율법을 지켜 자신의 행위로 의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전가받아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야고보서는 다르다. 야고보서는 구원의 노정에 끝부분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믿음을 강조한다. 믿었던 사람이 이제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자신에 맺은 열매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생의 노정에서 그가 맺은 열매가 죄밖에 없다면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논하고자 할 때에는 출발점의 말씀(속죄와 칭의)과 결승점의 말씀(열매)을 함께 보아야 한다. 하나를 붙들고 다른 하나를 성경에서 빼려고 하면 온전한 구원관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루터는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그는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사도적 저작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했다. 이 어찌 해괴망측한 독단인가!&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처음에 가졌던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어려움이 닥칠 때 입술로 주님을 부인하고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믿겠다고 하는 태도는 신실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한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결혼한 사람이 한 배우자만 바라보아야 하듯,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은 사람은 다른 신과 세상의 쾌락을 따라 행하는 영적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존중하시므로 언제나 억지로 당신에게 순종하게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무엇을 믿고 누구를 따라갈 것인지 우리는 날마다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혹시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넘어졌다면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믿음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믿은 뒤 지은 죄를 감추면서 &amp;ldquo;나는 이미 칭의를 얻었다&amp;rdquo;고 말하는 것은 믿음을 보존하는 길이 아니다.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을 때 믿음이 다시 살아 움직이고, 성령의 인도를 따를 힘이 생긴다. 믿음은 필수적인 시작이며, 회개와 순종은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온전하게 하는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사역 현장에서 관찰한 바로는, 임종을 앞둔 성도에게 천사와 악한 영들이 다가와 그 영혼을 데려가려고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의 영혼이 이미 구원을 받아서 생명책에 기록되었지만 그후에 지은 죄가 많아서 구원을 잃어버릴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에 저승사자(악령들)가 그를 데려가려고 온 것이다. 고로 이 때에는 정말 주변에서 기도해주면서 그로 하여금 회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각각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받게 된다고 말씀한다(고후 5:10). 그러므로 이때에 가족은 임종을 맞고 있는 자에게 복음을 다시 들려주고, 의식과 동의가 가능한 범위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실하게 고백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때 회개를 돕는 기도문은 주문이 아니라 잊고 있던 죄를 하나님 앞에 인정하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어주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회개해야 할 죄의 세 범주는 무엇이며 구원과 정결에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보여 주는 회개의 범주는 총 세 가지다. &lt;strong&gt;첫째는 조상들이 죄를 지었지만 자신은 같은 죄를 직접 짓지 않은 경우&lt;/strong&gt;다. 므낫세는 여호와의 성전에 우상의 제단을 쌓고, 일월성신을 섬기고,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찾아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죄 때문에 남유다를 여러 민족 가운데 흩겠다고 하셨다(대하 33:1-7; 렘 15:4). 후대 사람이 므낫세와 같은 죄를 직접 짓지 않았어도 그 후손이 그가 지은 죄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애 5: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5:4&amp;nbsp;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애 5: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경우 그의 후손이 자신의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목적은 죽은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상의 구원 여부는 그가 살아 있을 때, 그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더 이상 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 그의 후손이 회개한다고 해서 죽은 조상의 영원한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상죄 회개는 그 죄로 인해 후손에게 내려온 더러운 영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 더러운 영들로부터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구별을 놓치면 조상죄 회개를 구원의 조건처럼 오해하거나, 반대로 구원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정결의 필요까지 버리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자신의 조상들도 죄를 지었고 자신도 같은 죄를 지었거나 더 큰 죄를 지은 경우&lt;/strong&gt;다. 예레미야 16장에서 하나님은 조상들이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말씀하신 뒤, 당시 백성이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다고 말했다(렘 16:11-12). 그래서 예레미야는 &amp;ldquo;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amp;rdquo;을 함께 인정했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죄보다도 현재 살고 있는 이들의 죄악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한편 다니엘도 예루살렘이 수치를 당한 이유를 &amp;ldquo;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amp;rdquo;이라고 고백하고 있다(렘 14:20; 단 9:16). 그러므로 이때에 회개할 때에는 자기의 조상죄만 회개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조상들이 지은 죄들로 내려온 악한 영들의 영향으로 더 많은 죄를 저질렀음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형벌을 조상탓으로 여기지 말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조상들이 같은 죄를 짓지 않았어도 자신이 죄를 지은 경우&lt;/strong&gt;다. 예레미야는 또 한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신 것이 아니라, 신 포도를 먹는 사람마다 자기 이가 시며 각 사람이 자기 죄악으로 죽는다고 말했던 것이다(렘 31:29-30). 이는 에스겔 18장에도 매우 강조해서 나온다(겔 18:20). 이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분명히 한 말씀이다. 조상의 배경이 깨끗하더라도 내가 우상을 섬기고 거짓말하고 음란과 혈기에 빠지면 그 죄의 결과를 내가 받기 때문이다. 자기 죄에 대한 회개는 자기 구원과 직접 연결되므로 미룰 수 없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31:29-30&amp;nbsp;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8:20&amp;nbsp;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기도문은 이 세 범주를 모두 함께 다 다룬다. 조상 제사, 부처와 불교, 무당과 점쟁이, 미신과 잡신을 섬긴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동시에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혈기와 분노 같은 생활 및 성품상의 죄를 회개하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의 죄를 지으면 귀신들이 들어오고, 생활과 성품상으로 죄를 지으면 뱀이 들어온다는 것은 필자가 회개와 축사 현장에서 확인한 영적 작동 원리이다. 이처럼 악한 영들은 두 종류가 있다. 그러나 이 영들은 서로 얽혀 있으므로 우상숭배만 회개하고 생활상에 짓는 자범죄를 숨기거나, 자범죄만 말하고 조상 우상숭배의 죄를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조상죄 회개는 왜 조상의 구원이 아니라 후손의 정결을 위한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보통 그리스인들이라면 &amp;ldquo;왜 내가 조상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가&amp;rdquo;라는 반응이 나온다. 조상이 지은 죄는 조상의 책임이고 나는 내가 지은 죄만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다. 영원한 구원의 책임만 놓고 보면 각 사람이 자기 믿음과 자기 죄에 대하여 판단받는 것이 맞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성경은 조상의 죄가 후손의 현실과 영적 상태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출애굽기 20장 5절은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는 자의 죄악을 삼사 대까지 갚는다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와 예레미야애가도 조상의 죄가 후대의 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증언하고 있다(렘 15:4; 애 5: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조상죄의 영향은 그의 후손이 조상의 죄책을 그대로 물려받아 조상 대신 지옥에 간다는 뜻이 아니다.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이 후손에게 내려와서 유혹하고 억압하며 저주를 주며, 같은 죄를 반복하도록 만드는 영적 영향이다. 조상이 제사를 오래 지내고 무당과 점쟁이를 의지했다면 그와 관련된 영들이 후손의 육체와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그 영들은 그 가문이 음란에 약한지, 혈기와 거짓과 탐욕에 약한지, 교만에 약한지를 알고 더 교활하게 죄로 끌고 간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그 유혹을 따른 자기 책임도 사라지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lt;strong&gt;조상죄 회개는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결의 문제&lt;/strong&gt;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했다(요일 1:9). 필자는 이 정결을 죄와 연결된 더러운 영이 떠나는 실제적인 과정으로 본다. 조상이 제사한 죄를 후손이 자기 가문의 죄로 인정하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할 때, 그 죄를 근거로 붙어 있던 영이 떠날 길이 열린다. 이는 조상을 원망하거나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대에서 그 죄의 연결을 끝내기 위해 회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조상죄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처음 회개를 시작한 사람이 조상죄에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자기 죄부터 회개해도 된다. 굳이 조상죄까지 회개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이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상죄의 영향을 그대로 둔 채 살아간다면, 그 영들이 계속 내 속에서 죄로 유혹하고 가난과 신기와 삶의 막힘 같은 저주의 통로로 역사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 깨끗한 삶과 더 온전한 순종을 위해서라면 조상죄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질병과 장애를 다룰 때에는 진술의 층위를 구별해야 한다. 필자는 회개와 축사 사역에서 조상과 자신의 죄가 가난, 신기, 중한 질병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사례를 목회적으로 관찰해 왔다. 그러나 모든 질병이나 장애를 특정 죄의 직접 결과라고 의학적으로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아픈 사람과 장애인을 정죄해서도 안 된다. 몸과 정신의 증상은 전문 의료진의 진단과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며, 자살 충동이나 환청, 현실 판단의 어려움이 있으면 즉시 가족과 의료기관과 응급 도움을 함께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개와 기도는 필요한 치료를 중단시키는 명령이 아니라 영혼과 삶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목회적 길을 제시하기 위함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조상들의 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는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쌓일 수 있다. 므낫세 한 사람의 악한 통치가 남유다에 끼친 영향을 보자. 그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면서(남북왕조 왕들 가운데 가장 오래 통치한 왕임)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성신을 섬겼으며, 여호와의 성전 안에 우상의 제단을 쌓았다.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고 신접한 자를 의지했다. 오랜 통치 기간에 죄가 나라 전체에 깊이 스며들었다(대하 33: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 시대에 잠시 개혁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 뒤에 세워진 왕들과 백성은 다시 죄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남유다가 멸망한 원인을 므낫세의 죄라고도 말할 수 있고, 예레미야 시대에 살던 백성의 죄라고도 말할 수 있다. 둘 다 맞는 것이다. 조상들의 죄가 심판의 그릇을 채워 왔고, 현재 세대가 회개하지 않고 더 악을 행하여 마지막 분량을 채웠기 때문이다(렘 16:11-12). 예레미야는 청년의 때로부터 그날까지 &amp;ldquo;우리와 우리 조상들&amp;rdquo;이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렘 3:2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원리는 개인과 가정에도 적용된다. 조상들이 오랫동안 우상을 섬기고 사람을 억압하며 인색과 음란과 거짓의 죄를 지었다면 그 영향이 후손에게 내려올 수 있다. 그런데 후손도 똑같이 무당에게 묻고 제사를 붙들며 혈기와 탐욕을 따라 살면 내려온 영에 자신이 불러들인 영까지 더해진다. 그 결과 죄의 유혹은 강해지고, 가난과 관계의 파괴와 신기의 고통과 질병의 문제가 겹쳐 나타날 수 있다. 조상보다 자기가 더 악을 행했다면 조상만 탓해서는 결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회개할 때에는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와 더불어 자기자신의 성품상의 죄도 함께 회개해야 한다. 조상 제사의 죄는 회개하면서 자기 자신의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혈기와 분노를 붙들고 있다면 연결된 영들이 서로 힘을 공급한다.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간 죄를 회개하면서 탐욕과 두려움 때문에 다시 점을 보러 간다면 회개의 열매가 없다. 죄의 이름을 입으로 읽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죄를 미워하고 실제 생활에서 끊어야 한다. 믿음의 행함이 바로 여기에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내게 죄가 많이 쌓였다는 사실을 가지고 그것을 낙심할 이유로 볼 것이 아니라 더 진실하게 회개할 이유로 보아야 한다. 조상과 자신이 심은 것이 많다면 처리해야 할 분량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 어떤 사람은 수천 번 회개하고도 많은 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만 미워하셔서가 아니라, 여러 세대와 자기 삶에서 들어온 영의 양과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횟수와 비교하지 말고 자기 가문과 자기 삶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죄의 결과가 내 몸이나 내 정신의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모든 문제를 한 원인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필자의 목회적 관점에서는 치료를 받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조상과 자기의 죄를 살피고,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고, 우상과 악한 습관을 끊는 일이 영적 정결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죄를 감추지 않고 빛으로 가져올 때 저주의 연결이 약해지고 성령의 인도를 더 온전히 받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하나님께서 정하신 형벌의 70년은 회개 분량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남유다는 죄가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에 넘겨,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 칠십 년 동안 형벌을 받게 했다. 예레미야 25장은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폐허가 되고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예레미야 29장은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하나님께서 백성을 돌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필자는 &amp;ldquo;칠십 년이 차면&amp;rdquo;이라는 표현을 형벌의 정해진 분량이 채워진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즉 &lt;strong&gt;죄의 결과는 대충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담당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전에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얼마나 안타까우셨는지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그 성을 용서하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끝내 이스라엘 백성은 돌아오지 않았다(렘 5:1). 마침내 죄가 가득 차자 나라가 무너지고 성전이 불에 탔으며, 백성은 정해진 기간 동안 포로 생활을 해야 했다. 이처럼 살아 있을 때 은혜의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이 시작된 뒤에는 공의의 형벌을 고스란히 담당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 칠십 년의 원리는 회개의 분량을 이해하는 데 도움&lt;/strong&gt;을 준다. 조상과 자신이 수십 년, 수백 년, 여러 세대에 걸쳐 죄를 쌓았다면, 몇 백 번의 형식적인 고백만으로 모든 결과가 즉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고통은 평생 담당해야 할 형벌처럼 깊이 자리 잡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amp;ldquo;이 저주가 천 번 하면 끝납니까, 이천 번 하면 끝납니까&amp;rdquo;라고 먼저 물어볼 것이 아니라, 죄가 얼마나 하나님을 아프게 했는지를 깨닫고 평생 회개할 각오를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회개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자백할 때 형벌을 일으키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고, 정해진 고통의 기간을 긍휼로 줄여 주실 길을 열어 놓으셨다.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남유다가 회개하지 않아 칠십 년을 채워야 했다면, 오늘의 우리는 살아 있을 때 회개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 드리고 저주의 통로를 끊을 수 있다. 이것이 회개가 보화 중의 보화인 이유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분량은 하나님께 값을 지불하여 용서를 사는 공로가 아니다. 죄를 하나씩 인정하고 그 죄와 연결된 영을 내보내는 정결의 과정이다. 같은 죄를 천 번, 만 번 반복했다면 그만큼 깊은 습관과 많은 영적 통로가 생겼을 수 있다.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은 이 죄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자백하도록 돕는다. 숫자는 성실함을 점검하는 도구일 뿐, 하나님의 긍휼을 조종하는 공식이 아니다. 진실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방법을 맡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특사 조치는 왜 형식적인 횟수가 아니라 진실한 통회와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가끔씩 회개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특사 조치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회개에 있어서 &amp;#39;특사 조치&amp;#39;란 사람에게 정해진 회개의 분량을 모두 채우기 전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긍휼로 귀신의 집을 파괴하고 많은 영을 한꺼번에 내보내 주시는 은혜를 가리킨다. 필자는 수천 번을 채우기 전에 이러한 조치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필자가 특사조치를 받게 된 것을 두고 마지막 시대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정결하게 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사역하고 회개의 차이를 살피면서 그 안에 또 하나의 원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에게 있던 영의 대부분은 나 자신이 직접 악을 행하여 불러들인 영이라기보다 조상들의 우상숭배로 내려온 영이 대부분이었다. 필자는 예수를 믿기 전에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친이 술을 드시면 동생들이 맞을 매까지도 대신 맞으면서 살았고, 도둑질과 큰 악을 피하며 살았다. 스스로 무당을 찾아가거나 우상을 의지한 일도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 쪽에는 조상 제사의 영이 강했고, 어머니 쪽에는 무당과 불교와 미신의 영이 워낙 강했다. 그러니 필자의 머릿속에 있는 귀신의 집에는 불교 대사의 영들로 가득 차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머니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흰 보새기 그릇에 물을 떠 놓고 천지신명과 칠성신과 여러 신에게 자녀들이 잘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병원에 쉽게 갈 수 없던 시절이니 그때에는 필자가 아프면 쌀이나 녹두를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올리고 주문을 외우는 방식으로 주술도 받았다. 필자가 모친이 살아 계실 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친은 자식들이 잘 된다고 하기에 모르고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필자는 그 죄를 멀리서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내 죄인 것처럼 끌어안았다. &amp;ldquo;우리 어머니가 모르고 자식 잘되라고 그랬으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amp;rdquo;라고 눈물로 통회 자복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필자가 직접 짓지 않은 조상들의 죄까지 자기의 죄처럼 아파하며 회개하는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특사 조치를 베푸셨다. 내 속에 있는 귀신의 집을 모두 파괴한 뒤 그 안에 있는 모든 귀신들을 다 제거해주셨다. 물론 뱀들도 모조리 떠나가게 해 주셨다. 이것을 가리켜 특사 곧 특별 사면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러한 특사는 횟수를 적게 채우라는 것이 아니다. 사천 번이나 오천 번을 입으로 반복해서 회개한다고 할지라도 자기 죄를 숨기면서 마음으로 통회하지 않으면 영들은 잘 나가지 않는다. 반대로 조상죄의 큰 짐을 대신 지고 회개하면서 그 죄를 진실하게 슬퍼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분량을 다 채우기 전에 긍휼을 베푸신다. 이것이 바로 특사 조치인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조상들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죄를 실로 많이 지었다면 자신에게는 더 깊은 책임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조상들도 갖가지 우상숭배를 하였고, 자신도 불교 단체의 책임자로서 오래동안 활동했거나, 일마다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서 물어보고 했거나, 음란과 거짓과 혈기로 많은 영을 불러들였다면 자기 죄의 분량만큼 회개의 분량도 같이 채워야 한다. 조상죄만 탓하면서 자기 죄를 숨긴 채 회개하고 있다면 그에게서 특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회개하고 있지만 내게서 특사조치가 늦어진다고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아직 인정하지 않은 죄와 끊지 않은 행위가 없는지 살피고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진실한 통회자복은 죄의 결과만 없애 달라고 조르는 기도가 결코 아니다. 그 죄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을 깨닫고, 죄 자체를 미워하며, 다시 그 길로 가지 않겠다고 돌이키켜 회개하는 것이다. 횟수를 채우면서도 계속 우상과 악한 습관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서 회개의 열매는 약하다. 더욱 특사조치는 기대할 수가 없다. 반대로 날마다 가슴을 부여안고 하나씩 하나씩 자기와 자기 조상의 죄를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귀신의 집을 한꺼번에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래서 나를 정결케 해주실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내가 특사 조치를 받았다고 해서 회개를 끝내서도 아니 된다. 왜냐하면 특사는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허가 아니라 더 깨끗하게 살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죄를 지으면 다시 악한 영을 불러들일 수 있으므로 우리는 평생 회개해야 한다. 행여 특사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한꺼번에 집을 무너뜨리는 은혜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날마다 하나씩 정리하며 성품을 빚는 길을 걷게 하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진실하게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칭의가 구원 여정의 출발점인 이유와 믿음이 행함과 회개로 온전해지는 과정, 회개해야 할 세 범주, 조상죄 회개의 목적, 조상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일 때 나타나는 결과, 칠십 년의 형벌과 회개 분량의 관계, 그리고 특사 조치와 진실한 통회의 관계를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칭의를 구원의 완성으로 바꾸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그 믿음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며, 믿은 뒤의 삶에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행함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대신하지 않지만 살아 있는 믿음을 온전하게 한다. 넘어졌다면 즉시 회개하여 믿음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회개해야 할 죄의 세 범주를 구별해야 &lt;/strong&gt;한다. 조상들이 지은 죄로 내려온 영향이 있고, 조상과 자신이 함께 지은 죄가 있으며, 자신이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지은 죄가 있다.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은 죽은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인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다. 자기 죄의 회개는 자기 영혼의 구원과 직접 연결되므로 결코 미뤄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조상 탓만 하거나 자기 죄만 보아서는 안&lt;/strong&gt; 된다. 남유다가 멸망한 것은 므낫세를 비롯한 조상들의 죄가 쌓였기 때문이면서, 예레미야 시대 백성이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고통에도 여러 원인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조상에게서 내려온 영적 영향은 끊고, 내가 불러들인 영의 통로는 내 책임으로 닫아야 한다. 우상숭배의 죄와 생활 및 성품의 죄를 함께 자백하고 실제 행위도 돌이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회개의 횟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죄의 역사와 분량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정결의 속도도 다르다. 칠십 년이 차야 했던 바벨론 포로 생활처럼, 죄의 결과에는 담당해야 할 분량이 있다. 그러므로 몇 번이면 끝나는지 계산하기보다 평생 회개할 중심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는 자에게 형벌을 줄이고 저주의 연결을 끊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특사 조치를 숫자로 얻으려 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입술의 반복만이 아니라 죄를 슬퍼하는 진실한 마음이다. 필자가 조상들의 죄를 자기 죄처럼 끌어안고 눈물로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귀신의 집을 파괴하는 긍휼을 베푸셨다. 자기 죄를 감추지 말고, 조상들의 죄까지 가슴 아파하며,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몸과 정신의 고통을 겪는 사람을 정죄하지 말아야 &lt;/strong&gt;한다. 필자의 영적 해석과 목회 현장의 관찰을 모든 질병의 보편적인 의학 원인으로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기도하고 회개하면서도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하며, 위급한 정신건강 증상에는 즉시 가족과 의료기관의 도움도 요청해야 한다. 교회는 아픈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곳이 아니라 영혼과 몸이 함께 도움을 받도록 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살아 있는 지금이 은혜를 받을 때다. 심판이 시작된 뒤에야 회개하려 하지 말고 오늘 죄를 인정해야 하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시작한 구원을 끝까지 지키고, 날마다 자기 죄와 가문의 죄를 예수님의 피 앞에 자백하며, 성령께 순종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죄와 저주의 연결에서 벗어나 자기 두루마기를 깨끗이 빨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8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원의 여정에서&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lt;/strong&gt;가 갖는 필수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특히 본인과&amp;nbsp;&lt;strong&gt;조상들의 죄&lt;/strong&gt;를 정결케 하는 원리를 예레미야서를 통해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인&amp;nbsp;&lt;strong&gt;칭의&lt;/strong&gt;는 구원의 시작일 뿐이며, 천국에 안전하게 입성하기 위해서는 삶에서 지은 죄를 씻어내는&amp;nbsp;&lt;strong&gt;성결의 과정&lt;/strong&gt;이 뒤따라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 설교는 회개의 범위를 세 가지 층위인&amp;nbsp;&lt;strong&gt;조상의 죄, 조상과 나의 공통된 죄, 그리고 나 자신의 죄&lt;/strong&gt;로 구분하여, 가문을 통해 내려오는 영적 저주와 형벌을 끊어내기 위한&amp;nbsp;&lt;strong&gt;회개 기도문의 중요성&lt;/strong&gt;을 강조합니다. 결국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amp;nbsp;&lt;strong&gt;생명책의 이름&lt;/strong&gt;이 지워지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진실한 뉘우침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amp;nbsp;&lt;strong&gt;특별 사면&lt;/strong&gt;과 같은 정결함을 입는 것에 있음을 시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ChatGPT Image 2026년 8월 28일 오후 05_02_2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c032a92d317d0e4720011a3be915dc3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146e6e2c094284f8c583d24453ff82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14afcc37c729f7cce0b39477c1e583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d16a89cf32d83c1c5be67578875fa1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1f7b1f47b6ca1c5af833aa32eb48b27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ab7b5a0f397d970980a1a917d20edfd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43a255b9084d173854c68e970a95c2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b85c713407b741b01de4b55fa5f31b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75f308f4e799db0f06e8e3faaa9542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72d87a53a22cf72cc3738d8d75580f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5f686ef7606fe24751dc9ddaa6b07e1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6abb539082a418002b8e411b4296e0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12354425db7d9fd457f7124f0a43b0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812c533f820cfa5197066f4a1e3907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262eb8b3cf35fbc40870a909057da6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fad799e769b78c04846cb8cb9af1c06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구원의_완성_회개와_정결의_여정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f9186109cd6b45a5832c483a04e52e2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c2a64aae4a510224b8e68f3d345c70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ffa7701749ee89cdf978d2636f96d9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a39c5f99f824d074f8d665ae8f1336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a6f7451aac7daa10f82558e50bb6aa6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033c2e594e75f77515385e3cce7379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62b0ac4c00ab1b9aa97da18e79f479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804dcc4249cc1c0979b939c6c37e72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110cd35e6c0415faeb674e506fd806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57a8765f7415cadbb7157b476dfdc1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88bc2ba3c5f3f72a86b96eb6c5429d0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76)]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렘16:10~13)_2026-08-27(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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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7T20:23:46+09:00</published>
		<updated>2026-08-27T21:48:2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6)]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렘16:10~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KjQHVKliwY 기독론(176)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 (렘 16:10-1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죄를 정결하게 하려면 자기 죄만 회개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도 회개해야 하는가? 그리...</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기독론(176)]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렘16:10~13)&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BKjQHVKliwY&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BKjQHVKliw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16:10-1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를 정결하게 하려면 자기 죄만 회개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도 회개해야 하는가? 그리고 같은 회개기도문으로 같은 횟수를 회개했는데도 어떤 사람은 빠르게 결과가 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수천 번을 회개해도 여전히 많은 영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회개(悔改, repentance)의 분량과 조상죄와 자범죄, 사람 안에 들어오는 영의 종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amp;lsquo;특사 조치&amp;rsquo;의 비밀이 함께 들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회개의 중요성을 본격적으로 깨달게 된 것은 2013년부터다. 예수를 믿은 뒤에도 지은 죄들을 회개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고, 자기 두루마기를 빨지 않는 사람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며, 죄를 품고 사는 사람은 성 밖이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을 통해 깨달았다(계 3:5; 21:8; 22:14-15). 예수를 믿었다는 사실이 이후의 모든 삶과 무관하게 구원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안전장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ㅈ사ㅣㄴ이 믿은 뒤에 지은 죄들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처음 믿을 때 받은 은혜를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되겠지만, 그 은혜를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가증으로 바꾸어서도 안 된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도 이기는 자가 되어 흰옷을 입어야 하고, 성 안에 들어가려면 자기 두루마기를 계속 빨아야 한다. 믿음은 구원의 문을 여는 시작이며, 그 뒤에는 죄를 버리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생활이 따라야 한다(빌 2:12). 이 때문에 회개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를 믿은 성도에게도 날마다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2013년 당시에는 예수님의 피의 역할 가운데, 그 피가 죄를 덮어 주는 속죄(贖罪, atonement)의 방면을 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2020년에 이르러 죄를 자백할 때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는 정결(淨潔)의 방면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믿을 때에는 죄가 덮여 의롭다고 여김을 받지만, 이미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이 자동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 더러운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기고 삶의 실제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것을 말이다(요일 1:7-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 약 6년 동안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이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으로 반복하여 회개했고, 그 과정에서 회개의 횟수와 정결의 열매에 관한 데이터가 점차 쌓였다. 회개기도문으로 500회를 회개한 사람, 2,600회를 채운 사람, 3,000회를 넘긴 사람, 4,570회까지 회개한 사람도 나타났다. 그런데 횟수가 많다고 언제나 모든 저주가 더 빨리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조상들이 지은 죄의 분량과 자신이 직접 지은 죄의 분량이 사람마다 달랐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예레미야서는 이 문제의 답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남유다는 므낫세를 비롯한 조상들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았지만,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도 자기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다고 하기 때문이(렘 15:4; 16:11-12).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형벌을 받게 되는 데에는 자기의 조상의 죄와 자기 죄를 함께 보아야 하며, 어느 한쪽만 탓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뒤에도 죄성과 악한 영이 남는 이유, 회심의 회개와 자백의 회개의 차이, 사람 안에 들어오는 세 종류의 영, 조상죄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 회개 분량과 특사 조치의 원리, 그리고 조상과 자신이 함께 져야 할 회개의 책임이 무엇인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도 왜 죄성과 악한 영은 그대로 남아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잘못 알고, 예수를 믿게 되면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실제로 다 사라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얻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는 죄를 없는 것처럼 덮어 주시는 은혜일 뿐 죄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죄인이 예수님의 피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덮어버리고 의롭다고 여기신다. 그리고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과거에 지은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이 그 순간 모두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때 구원이 완성된 것도 아니다. 마태복음 18장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탕감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다시 죄악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이전의 빚이 다시 문제가 되어 감옥에 들어갈 수 있다(마 18:23-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사람의 성품이나 생활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방언을 말한다고 해서 자신의 성품이 자동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방언할 때 성령께서 혀를 붙들어 사용하실 수 있지만, 혀와 육체 안에 이미 자리 잡은 뱀들이 처리되지 않았다면 그가 행하는 정상적인 방언 가운데에도 이상한 말과 저주의 말이 섞여 나올 수 있다. 혀를 성령께서 쓰실 때도 있고 그 속에 남은 악한 영이 끼어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고로 방언이 성령 충만(聖靈充滿,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의 한 방면이기는 하지만, 성령 충만의 완성은 성령께서 전인격을 사로잡아 인도하시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축사(逐邪, exorcism)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악한 영들로서 뱀과 귀신은 다루는 방식도 약간 다르다. 뱀은 손에 장착된 칼로 집어 올리고 잘라 처리해야 하며, 귀신은 &amp;ldquo;나오라&amp;rdquo;는 명령으로 쫓아내야 한다(막 16:17-18). 몸에 뱀이 많은 사람은 축사 사역자의 손이 닿을 때 살을 칼로 자르는 것처럼 심한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은 필자가 축사 과정에서 관찰한 영적 체험에 해당한다. 몸의 통증과 질병은 필요한 의학적 검사와 치료도 함께 받아야 하며, 회개와 축사는 안전한 치료를 밀어내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은 거듭날 때 사람의 영 안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조상과 자신이 지은 죄로 들어온 뱀들과 귀신은 육체 안에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과 육체가 정결해졌다는 사실을 같게 보아서는 안 된다.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는 죄를 깨닫고 이길 능력을 주지만,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는 순종은 성도가 계속해야 할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도 바울은 말한다. 사람 안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과 육체 안에 남은 죄와 사망의 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역사한다는 것을 말이다(롬 8:1-2; 갈 5:16-17).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이끄시지만, 육체 안의 뱀들과 귀신은 이전에 익숙했던 죄를 다시 선택하게 한다. 성령께서 혀를 붙드셨다는 한 가지 체험만으로 육체 전체가 정결해졌다고 생각하면 이 싸움에서 넘어진다. 혀와 생각과 감정과 생활의 각 영역에 남은 죄를 찾아 회개하며, 성령께 그 영역을 계속 내어 드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모르면 예수를 30년 믿고도 성품이 거칠고, 가난과 질병과 신기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결코 설명하기 어렵다. 믿을 때 생명은 받았지만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정결의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고 방언을 말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기 죄와 조상들의 죄를 자백하며 실제로 깨끗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회심의 회개와 자백의 회개는 속죄와 정결에서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에는 서로 구별해야 할 두 방면이 있다. &lt;strong&gt;첫째는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하는 회심(回心, conversion)의 회개&lt;/strong&gt;다.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amp;ldquo;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amp;rdquo;라고 고백했듯이, 자신이 죄인이며 스스로 구원(救援, salvation)받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회개다(눅 5:8). 이때 예수님의 피가 과거의 죄를 덮고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여겨 생명을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러한 회심의 회개는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지만, 그가 지은 모든 죄를 하나씩 자백하여 제거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천국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예수님의 피로 덮어버려서, 그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죄를 인격화하면 그 죄를 통해 들어온 뱀과 귀신인데, 이들도 우리 몸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은 직후에도 혈기와 분노와 음란과 탐욕이 올라오고, 이전의 생활 습관과 저주가 계속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믿은 뒤 자기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자백(自白)의 회개&lt;/strong&gt;다. 사도 요한은 죄를 자백하면 죄 사함뿐 아니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된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피에는 죄를 덮는 속죄의 효능과 죄의 더러움을 씻는 정결의 효능이 함께 있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믿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죄를 자백할 때 죄는 용서되어지면서 동시에 그 죄를 통하여 들어온 더러운 영이 떠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그래서 정결은 막연히 &amp;ldquo;나는 죄인입니다&amp;rdquo;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조상 제사와 불교와 무당&amp;middot;점쟁이와 미신&amp;middot;잡신을 섬긴 죄,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혈기&amp;middot;분노와 술&amp;middot;담배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고로 우리 동탄명성교회에서 제공하고 있는 &amp;#39;회개기도문&amp;#39;은 크게 우상숭배의 죄와 생활 및 성품 속의 죄를 다루며, &amp;#39;평생 회개기도문&amp;#39;은 일생의 죄를 더 세밀히 찾아 자백하도록 도와주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고 우상숭배의 죄를 조상죄로, 그리고 교만과 거짓과 음란을 자범죄로만 기계적으로 나눌 수는 없다. 조상들도 생활 속에서 교만하고 거짓말하고 혈기를 부린 자가 있으며, 오늘의 나도 우상숭배의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삼사 대까지 물으신다고 특별히 경고하셨기 때문에 후손에게 미치는 영적 영향이 오래 간다(출 20:5). 또한 회개할 때에는 죄의 종류뿐 아니라 누가 그 죄를 지었으며 그때 어떤 영이 들어왔는지도 함께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amp;#39;속죄&amp;#39;는 믿음으로 죄를 덮어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출발이며, &amp;#39;정결&amp;#39;은 믿은 뒤 죄를 자백하여 더러운 영을 실제로 내보내는 과정이다. 회심의 회개로 생명을 받은 사람은 자백의 회개로 날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이것이 삶과 성품을 변화시키고 저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핵심 통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사람 안에 들어오는 세 종류의 영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 안에 들어오는 영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는 조상들로부터 &amp;#39;내려온 영&amp;#39;&lt;/strong&gt;이 있다. 출애굽기 20장 5절의 원리에 따라, 자기의 조상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지었을 때 그에게 들어간 악한 영들은 혈통을 따라 그의 후손에게 내려간다. 하나님께서 이를 허용하신 목적은 후손을 무조건 멸망시키려는 데 있지 않고, 징계를 통해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데 있다. 조상이 받을 영원한 죄책이 후손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죄로 들어온 영의 현세적&amp;middot;영적 영향은 후손에게 그대로 내려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위로부터 &amp;#39;내려온 영&amp;#39;은 단순한 과거의 기억이 아니다. 조상이 제사를 많이 지냈다면 제사의 영이, 무당을 섬겼다면 무당의 영이, 인색하고 남을 착취했다면 가난하게 하고 앞길을 막는 영이 후손 안에서 들어와 활동한다. 그것들이 육체에 역사하면 몸의 질병과 연약함으로, 혼에 역사하면 신기와 집착과 분노와 낙심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관계를 회개와 축사 현장에서 반복하여 관찰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통만 다루지 말고 그 뒤에 연결된 조상의 죄와 악한 영의 경로를 찾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자신이 죄를 지어 &amp;#39;불러들인 영&amp;#39;&lt;/strong&gt;이 있다. 우상을 섬기거나 무당에게 묻고, 거짓과 음란과 혈기와 탐욕을 반복하면 그 죄와 같은 속성을 가진 영들을 자기 안으로 불러들인다. 예를 들어,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영이 자기에게 많지 않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불교 신도회장 등으로 오랫동안 우상을 섬겼거나 사소한 일마다 점쟁이를 찾아다녔다면 불러들인 영의 분량이 매우 많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두게 되므로 자신이 직접 지은 죄는 그만큼 더 많이 회개해야 한다(갈 6:7-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자기 안의 영이 다른 사람의 같은 종류의 영을 끌어당겨 들어온 영&lt;/strong&gt;이다. 일명 &lt;strong&gt;&amp;#39;끌어당긴 영&amp;#39;&lt;/strong&gt;이다. 자기 안에 조상 무당의 영이나 강한 신기의 영이 남아 있으면, 축사나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 속에 있는 같은 종류의 영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있는 끌어당기는 영이 다른 동자신과 무당의 영을 끌어와 내 속에 저장하면, 사람의 사정을 신기하게 알아맞히고 성령의 은사가 큰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계시가 아니라 귀신이 주는 정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때문에 사역자가 먼저 충분히 회개하고 정결케 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자기 안에 귀신의 집과 같은 종류의 영이 남아 있으면 남을 돕다가 오히려 더 많은 영을 끌어들일 수 있다. 반대로 자기 안의 집이 파괴되고 끌어당기는 영이 사라지면, 상대방의 영이 정착할 자리를 찾지 못한다. 필자는 자신의 귀신의 집이 하나님의 특사 조치로 파괴된 뒤에 사역 중에 다른 영이 들어와 정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내려온 영&amp;#39;, &amp;#39;불러들인 영&amp;#39;, &amp;#39;끌어당긴 영&amp;#39;은 들어온 경로가 서로 다르지만 나가는 길은 한 가지다. 그 영이 들어오게 한 죄를 찾아내어,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낱낱이 자백하고, 떠날 근거를 없앤 뒤 축사하면 된다. 그때 나와 내 조상이 &amp;ldquo;무슨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amp;rdquo;라고 자백하고 &amp;ldquo;무슨 무슨 영을 받아들였습니다&amp;rdquo;라고 고백하면 되는 것이다. 이 두 방면이 항상 함께 해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회개 없이 명령만 반복하거나, 축사 없이 죄만 인정하는 것으로는 온전한 정결에 이르기가 매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조상들의 죄로 인한 영들은 어떻게 후손의 육체에 들어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람의 원죄는 과연 어떻게 생기는가? 그것은 DNA를 통하여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유전되어 생기는가? 아니다. 영적인 실제를 살펴보니, 부모 속에 들어있는 영들은 부부의 성생활을 통하여 자궁에 들어온다. 그러면 남편의 영과 아내의 영이 자궁에서 만난다. 남편 속에 들어있는 영은 남편 가문에서부터 물려받은 영이며, 아내 속에 들어있는 영은 아내 가문에서부터 물려받은 영들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자궁 속에서 두 가문의 영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임신이 되면, 자궁 속에 있는 영들이 그 태중의 아니 속에 들어가게 되어 두 가문의 영들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여자의 자궁 안에는 자기 친가에서 내려온 영과 남편의 가문에서 내려온 영이 함께 모여 있다. 그러므로 자궁 안에서 수정되어 새 생명이 생기는 순간 양쪽 가문의 영들이 아이의 육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느날 갑자기 시기하고 빼앗고 화를 내는 죄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자기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선을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하는 죄가 있다고 고백했다(롬 7:18-20). 그래서 필자는 이 죄의 본성을 연구해보았다. 그랬더니 이것은 단순히 유전자로 전달되는 추상적인 성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궁에서 육체 안으로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의 실제적인 역사였던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사람의 육체 속에는 이렇듯 뱀들과 귀신들로 가득차게 되는가? 그것은 하와와 아담의 타락으로 시작되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4절에서 뱀에게 평생 흙을 먹고 살라고 징계를 내리셨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흙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파르(עָפָר)다. 이 단어는 창세기 2장 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를 지으신 재료였다. 필자는 이 두 본문을 연결해 보았다. 그랬더니 뱀이 사람의 육체를 먹고, 육체 안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인에게서 나온 시기와 질투, 혈기와 분노, 살인의 감정은 부모가 가르친 행동이 아니라 태중에서부터 들어온 죄된 본성 곧 가인 속에 들어온 악한 영으로서 뱀들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경우이다(창 4:3-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은 죄인인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는데 죄없는 분으로 태어나실 수가 있었는가?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우리처럼 엄마의 자궁에서 10달 동안 지난 후에 태어나셨지만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셨다. 왜 그게 가능했던 것인가? 그 이유는 마리아 자신이 죄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잉태 순간에 마리아의 자궁 안에 있던 악한 영들이 예수님의 육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된 본성 없이 잉태되셨고 태중에서 자라셨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본래부터 죄가 없었다는 로마 가톨릭의 무염시태 교리는 잘못된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신약시대가 되면 악한 영들은 2개의 구조로 활동하고 있다. 하나는 뱀들의 활동이고 또 하나는 귀신의 활동이다. 사실 구약의 초기 시기에는 육체 안에 뱀들이 들어가서 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그때에는 아직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들인 귀신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구약에도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역사한 영과 사울 왕을 괴롭힌 악령과 같은 귀신들이 있었음을 본다(삼상 16:14; 28:7-2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글너데 예수님의 탄생 이전에 매우 중대한 일이 영계에서 발생했다. 그것은 사탄마귀를 따라서 악한 영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는 사탄의 왕국과 수많은 귀신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무당과 불교의 영과 미신과 조상 제사를 오랫동안 섬긴 이방 민족의 역사가 더해지면서, 사람의 몸에는 뱀과 귀신들로 가득차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주의해야 할 일은 이 원리를 우리가 알게 되었다고 해서 조상만을 탓하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 조상에게서 내려온 것은 영적 영향인 것이지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대신 지고 심판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고로 후손들은 자기에게 내려온 영향을 예수님의 피로 깨끗히 처리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신약의 성도들은 날마다 조상들의 죄를 자기 죄처럼 회개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직접 불러들인 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자기 죄를 숨김없이 자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회개의 분량과 정결의 속도가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같은 회개기도문으로 같은 횟수를 회개해도 결과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기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영의 분량과 자신이 불러들인 영의 분량이 서로 각각 다르기 때문&lt;/strong&gt;이다. 삼 대째 예수를 믿은 사람과 조상 대대로 우상을 섬기다가 처음 예수를 믿은 사람은 그 출발점이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삼 대째 믿는 집안이라고 할지라도 본인이 회개하지 않았다면 조상 영들이 결코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그렇게 해서 여러 세대 동안 제사를 끊고 우상을 섬기지 않았던 성도라도, 흩어진 영들이 먹이를 얻지 못해 바짝 마른 비활동성 상태가 되어 있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amp;#39;비활동성 상태&amp;#39;라는 말은 영이 떠났다는 뜻이 아니다. 예배를 드리고 우상 제사를 끊었으므로 힘을 공급받지 못해 활동이 우리 몸에서 약해진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삼 대째 믿는 사람이 처음 회개를 시작하면 적은 횟수에도 말라 있던 영들이 빠르게 떠날 수 있다. 반대로 조상 대대로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본인도 계속 같은 죄를 지었다면 영들이 힘을 얻어 활발하게 움직이므로 더 많은 회개와 축사의 과정이 필요하다. 예수를 몇 대째 믿었느냐보다 실제로 내가 진정 우상숭배을 끊고 살았는지, 그리고 그 죄를 자백하여 영을 내보내려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아내인 조경미 사모는 외할머니 때부터 약 삼 대째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가&amp;nbsp; 기본적인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약 120회를 회개했을 때였다. 그때부터 몸의 좋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력이 좋아져서 안경을 벗었으며, 건초염이 사라졌고, 매일 먹던 두통약을 먹지 않게 되었다. 반면에 필자는 500회를 넘길 때까지 아무런 변화 없이 졸음과 대치하며 싸워야 했다. 눈물을 흘리며 진실하게 회개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차이를 살피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영의 분량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회개해야 할 분량이 각각 정해지고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왜 필자는 몇백 번이 아니라 천 번에 걸친 회개를 해야&lt;/strong&gt; 했는가? 그것은 필자의 &lt;strong&gt;가문이 많은 영들을 내게 물려주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필자에게는 무당의 신기, 불교의 가난의 영, 조상 제사의 질병의 영과 착취와 인색함과 도박과 보증의 영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종이 70명이나 있던 집안이었기에 억압과 폭력과 착취와 수탈이 행해졌고, 삼대조 할머니는 무당이 되지는 않았지만 강한 신기를 지니고 살았다. 훗날 필자의 머릿속에 있는 귀신의 집을 보니, 첫째 칸에는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같은 불교의 대사 영들로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고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동네 사람 중에 반승려처럼 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 것이 상당히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amp;nbsp; 그분이 자기 안에 있는 영을 통하여 필자 안에 들어 있는 많은 불교 영을 알아보았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필자 자신은 선한 사람이었다. 필자가 18살에 비로소 예수를 믿었는데,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살았으며, 동생들이 맞을 매를 대신 맞을 만큼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무당을 찾아가거나 우상을 의지한 일도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를 따라 무덤에 가서 말표 고무신을 거꾸로 놓고 세 번 절한 일과,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제사 떡을 이웃에 돌린 일이 대표적인 우상숭배의 죄였다. 고로 내가 우상숭배의 죄를 지어 직접 불러들인 영은 비교적 적었지만 조상에게서 내려온 영은 엄청나게 많았던 자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필자의 머리와 눈에는 엄청나게 많은 영들이 들어 있었다. 왜냐하면 필자의 어머니께서 당시에는 가난해서 자식이 아파도 병원에 데려갈 수 없었기에, 필자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아플 적마다 쌀이나 곡식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올리면서 떼었도 붙였다 하면서, 주문을 외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의식에 직접 어떤 뜻을 두고 참여한 것이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행한 일을 그대로 보고 그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므로 자신이 의도적으로 지은 죄는 비록 적더라도 가문과 양육 환경을 통해 내려온 영의 분량은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필자는 기본적으로 회개의 분량이 많아야 했던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 우리 교회 성도들은 회개기도문으로 자백할 때에 회개를 최소 250회요, 500회 정도는 기본으로 한다. 외부에서 찾아온 성도들 중에는 우리보다 더 많이 회개하여 약 2,600회에 이른 자도 있었고, 3,000회를 넘기거나 4,570회까지 채운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1,000회만 하고도 영이 거의 사라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3,000회나 5,000회를 해도 많은 영이 남은 사람이 있었다. 조상죄가 많고 자기 죄도 많으면 내려온 영과 불러들인 영을 모두 처리해야 하므로 더 많은 회개가 필요하다. 특히 자기 죄를 부끄러워 숨기면 횟수만 쌓이고 그 죄와 연결된 영은 남아 있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횟수는 공로를 계산하는 기계적인 숫자가 아니다. 죄의 종류와 분량을 비추어 보는 자료이며,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다. 자기가 심은 죄가 많으면 그만큼 오래 회개해야 하고, 징계가 질병이나 자녀의 문제와 삶의 막힘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횟수와 비교하여 낙심하거나 안심하지 말고, 자기와 자기 가문의 실제 죄를 살피며 끝까지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귀신의 집을 없애는 &amp;lsquo;특사 조치&amp;rsquo;를 베푸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은 과연 누구에게 한꺼번에 귀신을 전부 떠나가게 하는 특사조치를 내리는가? 여기서 특사 조치란 회개의 일반적인 분량을 모두 채우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 귀신의 집을 파괴함으로 사람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싹 다 내보내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가리킨다. 필자는 약 회개기도문으로 약 1,000회 가까이 회개했을 때 이 조치를 받아 자기 안의 귀신의 집이 파괴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수천 번을 더 회개해야 할 만큼 내게는 너무나 조상의 영들이 많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집을 무너뜨려 더 이상 영들이 정착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종으로 쓰시려고 필자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푸시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회개 과정을 살핀 뒤 좀 더 보편적인 원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즉 필자 안의 영들 가운데 약 99퍼센트는 필자 자신이 직접 죄를 지어 불러들인 영이 아니라 조상들의 죄 때문에 내려온 영들이었다. 고로 필자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여러 조상들을 향해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도 자기 죄로 받아들이고 눈물로 통회 자복하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amp;ldquo;네가 직접 지은 죄도 아닌데, 조상들의 죄를 이처럼 자기 죄처럼 눈물로 회개하는구나&amp;rdquo;라고 보시고, 회개의 분량을 다 채우기도 전에 긍휼을 베푸어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특사 조치란 누구에게나 같은 시점에 자동으로 주어지는 공식 같은 것은 아니다. 조상죄가 많더라도 자신이 우상숭배와 자범죄를 심하게 지어 많은 영을 직접 불러들였다면 자기 죄에 대한 회개의 분량도 그만큼 많아진다. 또한 일마다 무당을 찾아가 물어보고 오랫동안 우상을 섬기며 생활 속 죄를 반복해 왔다면 그는 자기 죄를 숨긴 채 조상죄만 회개해서는 뱀들과 귀신이 싹 다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갈 6: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지만 &lt;strong&gt;조상의 죄 때문에 큰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 그 죄를 자기 죄처럼 진실하게 끌어안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긍휼&lt;/strong&gt;이 임하기도 한다. 특사 조치의 핵심은 횟수를 적게 채우는 데에 요령이 있어서 아니었다. 자기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조상들의 죄까지라도 가슴 아파하며 통회하는 사람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숫자만 채우고 빨리 끝내려는 사람보다 죄 자체를 슬퍼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긍휼을 입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귀신의 집을 파괴했다고 할지라도, 회개를 중단해서는 결코 안 된다. 새로운 죄를 지으면 다시 영을 불러들이데, 이전보다 더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사는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허가 아니라, 더 깨끗하게 살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특사 조치를 구하기 전에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분량만큼 부지런히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특사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집을 한꺼번에 파괴하는 은혜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날마다 회개하며 하나씩 영을 내보내는 길을 걷게 하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방법의 차이가 아니라 끝까지 정결해지기 위해 회개를 지속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즉시 처리해 주시든 오랜 훈련을 통과하게 하시든, 죄를 미워하고 예수님의 피를 붙들며 회개하는 사람은 마침내 저주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조상의 죄와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예레미야는 어떻게 함께 말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남유다가 조상들의 죄 때문에 심판받았다는 사실도 인정하면서, 당대 사람들이 이전의 조상들보다 더 범죄하여 그들 자신이 자기들의 죄로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말하였다. 고로 우리도 어느 하나의 죄만 붙들고 있으면 성경의 전체 뜻을 놓치고 말 것이다. 성경은 조상들의 죄가 자기의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하고 있고, 각 사람이 회개하면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남유의 14대 왕이었던 므낫세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55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성신을 섬겼으며, 성전 뜰에 우상의 제단을 쌓았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찾아 물었으며,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두었다(대하 33:1-7). 그의 오랜 통치 동안 남유다의 죄가 가득 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죄 때문에 유다 백성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흩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칼과 개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이라는 네 가지 심판도 선언하셨다(렘 15:3-4). 요시야가 잠시 우상을 제거하고 개혁했지만,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과 여호야긴과 시드기야 시대에 백성은 다시 범죄했다. 므낫세 때 조상의 죄가 크게 쌓였고 후대가 자기 죄를 더하여 결국 바벨론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애가는 조상들이 범죄하고 사라졌지만 후손이 그 죄악을 담당한다고 탄식한다. 이것은 조상들의 죄로 인한 역사적&amp;middot;영적 결과가 후손에게 미친다는 원리를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애 5: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레미야 31장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더는 사용하지 않을 날이 온다고 말한다. 각 사람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며, 신 포도를 먹은 사람의 이가 시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렘 31:29-30). 이와 마찬가지로 에스겔 선지자도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게 될 것이고,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언급하였다(겔 18:19-20). 이것은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영원한 심판으로 천국과 지옥을 가르치는 것의 책임은 각자의 죄와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본문은 두 원리가 한 자리에서 결합된다. &lt;strong&gt;하나님께서는 먼저 조상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lt;/strong&gt;고 말씀하신다. &lt;strong&gt;이어 당대 백성이 조상들보다 더욱 더 악을 행하고 완악한 마음을 따라 하나님께 더 순종하지 않았다&lt;/strong&gt;고 책망하신다(렘 16: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6:11-12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너희가 너희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행동하고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므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지금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을 두고서 모두 조상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물론 조상의 우상숭배로 내려온 영이 내게 큰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 자신도 같은 죄를 선택하고 더 악하게 살았다면 그 죄에 책임은 자신이 저야 한다. 반대로 조상의 죄가 아무리 많더라도 자신이 죄를 멀리하고 진실하게 회개하면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긍휼을 베푸어주실 것이다. 조상죄 회개는 죽은 조상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죄로 인해 내게 내려온 악한 영의 영향과 연결 고리를 처리하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회개의 바른 순서는 조상들의 죄를 자기 죄처럼 통회하되 자기 죄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amp;ldquo;조상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amp;rdquo;고 원망만 하지 말고, 내가 조상보다 더 악하게 행한 것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조상과 내가 함께 쌓은 죄를 예수님의 피 앞에 내놓고 자백할 때 더러운 영이 떠나고 가정의 저주가 끝나며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를 정결하게 하는 데 있어서 &lt;strong&gt;자기 죄와 자기 조상들의 죄를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았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죄된 본성과 악한 영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회심의 회개로 죄를 덮어 칭의를 받고 생명을 얻은 뒤에는, 자백의 회개로 죄 사함과 모든 불의에서의 깨끗함을 계속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 안에는 &lt;strong&gt;조상들로부터 &amp;#39;내려온 영&amp;#39;, 자신이 죄를 지어 &amp;#39;불러들인 영&amp;#39;, 자기 안의 영이 다른 사람에게서 &amp;#39;끌어당겨 들인 영&amp;#39;&lt;/strong&gt;이 있다. 조상 영은 부부의 성생활과 자궁을 통하여 양쪽 가문에서 후손의 육체로 들어오며, 자범죄를 반복하면 같은 속성의 영을 스스로 불러들인다. 이 영들은 들어온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축사할 때 떠날 근거를 잃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회개의 분량과 정결의 속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내려온 영과 불러들인 영의 종류와 분량이 다르기 때문&lt;/strong&gt;이다. 약 120회부터 변화를 경험한 사람도 있고, 500회가 지나도록 변화가 더딘 사람도 있으며, 4,570회까지 회개한 사람도 있다. 숫자 자체가 구원을 사는 공로는 아니지만, 자기와 가문에 쌓인 죄를 끝까지 처리하려면 필요한 분량만큼 진실하게 회개해야 한다. 조상의 죄를 자기 죄처럼 통회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귀신의 집을 파괴하는 특사 조치를 베푸실 수도 있지만, 이를 회개를 줄이는 공식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lt;strong&gt;므낫세와 조상들의 죄가 남유다의 심판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면서도, 당대 백성이 조상보다 더욱 악을 행했다&lt;/strong&gt;고 책망한다. 조상의 죄는 후손에게 영적&amp;middot;현실적 영향을 미치지만 각 사람은 자기 죄로 하나님 앞에 선다. 그러므로 &lt;strong&gt;조상 탓만 해서도 안 되고, 조상죄의 영향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자기 죄와 조상들의 죄를 함께 인정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어야 &lt;/strong&gt;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회개 횟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 안에 남은 죄와 영을 살펴야 한다.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을 따라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자기의 생활 및 성품 속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와 가문에 내려온 모든 저주의 연결을 끊고 성령께 쓰임받는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7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말씀요약]&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회개의 비밀&lt;/strong&gt;을 정보배 목사 자신의 사역 경험과 성경적 근거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하며, 우리가 겪는 고난과 영적 억눌림의 원인이&amp;nbsp;&lt;strong&gt;자기의 죄&lt;/strong&gt;뿐만 아니라&amp;nbsp;&lt;strong&gt;조상들의 죄&lt;/strong&gt;로부터 대물림된 악한 영들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인간의 내면에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영, 스스로 불러들인 영, 그리고 외부에서 끌어당긴 영 등&amp;nbsp;&lt;strong&gt;세 종류의 영적 실체&lt;/strong&gt;가 공존한다고 분석하며, 특히 자궁에서부터 유전되는 뱀과 귀신들이&amp;nbsp;&lt;strong&gt;죄된 본성의 실상&lt;/strong&gt;임을 역설합니다. 이 설교는 각기 다른&amp;nbsp;&lt;strong&gt;회개의 분량&lt;/strong&gt;과 효과의 차이를 언급하며, 조상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간절히 자백할 때 하나님의&amp;nbsp;&lt;strong&gt;특사 조치&lt;/strong&gt;로 정결함을 얻을 수 있다는 영적 원리를 제시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단순히 예수를 믿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amp;nbsp;&lt;strong&gt;자백의 회개&lt;/strong&gt;를 통해 내면의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어 삶의 저주를 끊어내고&amp;nbsp;&lt;strong&gt;천국 복음&lt;/strong&gt;에 합당한 정결한 삶을 살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ChatGPT Image 2026년 8월 27일 오후 09_31_0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dbd6c8ce4243dfbcfdf81f566bf17d8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216aab8b6cab213a958292307f4028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29aba83d5cd243ccae74bfa3caceae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5aa98afa3be61533020af8e4a6ee8e7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ac4714d64d0e8b0595d4666096d8a9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9764ac292ada30452fbaa3f51d6124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6235ebbb9321ce85082706629d6883f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21277e7043ef5394250edd8a3af0ab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d44dae3bbbbeba74fad813ac315e91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f182dbaaf6ab899fa1536fc8a372e9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8794d0410a962f44ff933526e78dd8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db99027aacbcf5759e5527b57755aa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2df8e79bc9dc2431cf2b82f97d7830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dd6c18da4d20e67122668df557f9f46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영적_정결의_비밀과_원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1b8ede0b5bc2c7d817b4550b81f6d39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7e99ea61ffa9f1dfc22bc64702e486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80b465fcd0215d01e8ab9526a7693d8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e01a2c7fdfa2f8c27a73a2e45364184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067b21a39c2f5b94e2439fa6c59884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e4681f2c540517e98e3f23bb508051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8d5e771b6e473aed2b235e5f4063bf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3bf320ba974cd0923fbfe6dd3f53d8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f95f9c8a7321d87f3685576c9840152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bdeccad7275931c688103f6a8fb2766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455206aed546f094c68f51b9bd601f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526a8f27a4478bcee4642e15aef831f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18)] 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레23:1~44)_2026-08-26(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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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6T23:35:29+09:00</published>
		<updated>2026-08-27T20:01:3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8-26(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18)] 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레23:1~4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u0vBbOTbYA [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질문 7가지 ] 1. 레위기에서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2. 하나님께서는 왜 절기마다 거룩한 모임을 명령하셨는가? 3. 일곱 절기의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며 안식의 본뜻은 무엇인가? 4. 초실...</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2026-08-26(수) 수요기도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레위기강해(18)] 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레23:1~4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Ru0vBbOTbY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u0vBbOTbY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질문 7가지 ]&lt;/strong&gt;&lt;br /&gt; &amp;nbsp; 1. 레위기에서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lt;br /&gt; &amp;nbsp; 2. 하나님께서는 왜 절기마다 거룩한 모임을 명령하셨는가?&lt;br /&gt; &amp;nbsp; 3. 일곱 절기의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며 안식의 본뜻은 무엇인가?&lt;br /&gt; &amp;nbsp; 4. 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어느 안식일 다음 날인가?&lt;br /&gt; &amp;nbsp; 5. 일곱 절기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예표하는가?&lt;br /&gt; &amp;nbsp; 6. 오순절의 누룩 든 두 떡은 두 교회와 남은 죄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amp;nbsp; 7.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왜 노동 금지 명령이 없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1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5) 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3:1-4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어떻게 더러움에서 씻음을 받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닮아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단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책이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짐승의 피를 중심으로 한 속죄(贖罪, atonement)의 법을, 11장부터 17장까지는 물로 씻는 일을 중심으로 한 정결(淨潔)의 법을, 18장부터 27장까지는 구별된 삶을 요구하는 성결(聖潔)의 법을 다룬다. 속죄가 죄를 덮고 용서받게 하는 일이라면, 정결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일이며, 성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거룩하게 살아가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성결법 안에도 개인적인 성결법과 단체적인 성결법이 있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는 일반 백성이 지켜야 할 개인적 성결을, 21장과 22장은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개인적인 성결을 다룬다. 이어지는 23장은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을, 25장은 안식년과 희년을 통한 공동체의 성결을 보여 준다. 거룩함은 혼자만의 경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온 회중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누릴 때 공동체 전체가 거룩해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23장을 보면, 절기들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주간의 절기인 안식일과 일곱 번의 연중 절기가 나온다. 봄 절기에는 유월절&amp;middot;무교절&amp;middot;초실절&amp;middot;오순절이 들어있고, 가을 절기에는 나팔절&amp;middot;속죄일&amp;middot;초막절이 들어있다. 이 절기들은 이스라엘의 농경 생활과 구원의 역사를 함께 담고 있지만, 그 궁극적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교절은 그분의 죄 없으심을, 초실절은 그분의 부활(復活, resurrection)을, 오순절은 생명 주는 성령의 강림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봄 절기가 주님의 초림(初臨, first coming)을 보여 주고 있다면, 나팔절부터 시작되는 가을 절기는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再臨, second coming)과 연결된다고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레위기 23장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가지 질문에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절기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둘째, 초실절의 날짜를 결정하는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어느 안식일 다음 날인가? 셋째, 오순절에 드린 누룩 든 두 떡은 왜 죄를 지닌 두 무리를 가리키는가? 넷째, 무엇보다 다른 절기에는 노동을 금하면서도 왜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그러한 명령이 없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절기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성결하게 하며, 일곱 절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예표하고, 그 안에 담긴 안식과 교회와 구원의 비밀이 무엇인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레위기에서 절기를 통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7장에 나타나 있는 세 개의 법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구원의 한 과정을 이루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속죄법&lt;/strong&gt;이 있다. 죄인은 누구나 먼저 피로 속죄받아야 한다. 그리고 &lt;strong&gt;둘째, 정결법&lt;/strong&gt;이 있다. 이는 물로 씻어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lt;strong&gt;셋째, 성결법&lt;/strong&gt;이 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레위기는 짐승의 피가 중심인 &amp;#39;속죄법&amp;#39;, 물로 씻는 &amp;#39;정결법&amp;#39;, 말씀을 지켜 행하는 &amp;#39;성결법&amp;#39;이 이 순서로 놓여 있다. 그러므로 혹시 내가 속죄를 통하여 죄 사함만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생활과 성품까지 거룩해지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깨끗하고 거룩해지려면 씻음과 순종의 성화 과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구약의 백성에게 없었던 큰 은혜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생명 주는 영이신 성령을 우리의 영 속에 넣어 주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는 하나님의 법을 밖에서만 듣게 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깨닫고 순종하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결은 자기 힘으로 율법 조항을 붙드는 생활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를 따라 구별되게 살아가는 생활이다. 그렇다고 성도의 순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깨우치실 때 자유의지로 그 말씀을 선택하고 뒤따라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성결법이 있는데, &lt;strong&gt;성결법에는 다시 개인의 성결법과 공동체의 성결법으로&lt;/strong&gt; 나뉜다. 개인의 성결법은 레위기 18장부터 22장까지 나오는데, 그중에서 18장에서 20장까지는 음행과 우상숭배를 버리고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일반 백성의 성결법이 나온다. 그리고 21장과 22장은 거룩한 직무를 맡은 제사장에게 더 엄격한 성별을 요구함을 본다. 그리고 23장에 이르면 시선이 이제는 온 회중에게로 넓어진다. 한 사람만 거룩하게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가 같은 날, 같은 사건, 같은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모여서 거룩해져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주어진 성결법이 단체적인 성결법이다. 이러한 단체적인 성결법은 레위기 23장과 25장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특별히 레위기 23장은 단체적인 성결법으로서 &amp;#39;안식일&amp;#39;과 &amp;#39;절기&amp;#39;를 다룬다. 이때 절기는 어떤 개인이 임의로 정하는 날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함께 지켜야 하는 날이다. 안식년과 희년도 어느 한 사람만 쉬고 빚을 면제해서는 그 법이 성립되지 않는다. 온 땅과 온 공동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양심만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시간과 노동과 경제와 공동체의 관계까지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레위기 23장은 성결법의 부록이 아니다. 개인의 성결을 공동체의 성결로 확장하는 핵심 장이다.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개인들이 저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정한 때에 한 백성으로 모여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함께 누리게 하셨다. 이 질서를 통해 개인의 믿음은 공동체 안에서 확인되고, 공동체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하나님께서는 왜 절기마다 거룩한 모임을 명령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에서 반복되는 핵심 표현은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amp;lsquo;성회&amp;rsquo;, 곧 거룩한 모임&lt;/strong&gt;이라는 단어인데, 무려 열한 번에 걸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절기들을 선포하시면서 그것들을 여호와의 &amp;#39;절기&amp;#39;(모에드=정한 때, 명절, 기한, 계절)요 &amp;#39;성회&amp;#39;(거룩한 소집)라고 말씀하셨다. 절기는 쉬는 날이기 전에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함께 모이는 날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람이 깨끗하게 거룩해지는 데에 있어서 개인의 경건은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서라도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죄를 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 경건만으로 신앙의 전부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와 들어맞지 않는다. 한때 자기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중시하는 경건주의가 힘을 얻기도 했지만, 주님께서는 한몸 된 백성이 함께 예배하고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신다. 이처럼 거룩함에는 개인적인 방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체적인 방면도 동시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단체적인 성결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 한 사람이 받은 깨달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약한 사람은 믿음 있는 사람에게 붙들리며, 다음 세대는 앞선 세대가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을 배우게 된다. 유월절을 가정과 민족이 함께 지켰듯이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적 체험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기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절기마다 성회가 선포되었다. 함께 모이는 행위 자체가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의 자리에 자신을 두는 순종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이어진다. 히브리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을 따르지 말고 서로 권하며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라고 권한다(히 10:24-25). 고로 오늘날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lt;strong&gt;주일예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단체적인 성결의 자리&lt;/strong&gt;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부득이한 형편이 아니라면 주일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 혹 주일을 지킬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다면 그는 다른 예배의 자리라도 찾아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기독교의 절기는 어떠한가? &lt;strong&gt;기독교의 절기&lt;/strong&gt;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공동체가 기억하게 하는 절기들이다. 그러한 절기에는 &lt;strong&gt;성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lt;/strong&gt;이 있다. 이것들 중에서 성탄절은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신 주님의 오심을, 사순절은 그분의 고난을, 부활절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을, 성령강림절은 보혜사 성령의 오심을 기념한다.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도 있기는 있지만 이것들은 창조의 절기를 기념하는 것들이다. 이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의 은총을 감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형식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알고 찬양하며 실제로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혼자서는 자기가 옳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서로 권면하면 믿음이 교정되고 굳세어진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거룩함뿐 아니라 한 몸의 거룩함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성회는 신앙의 부차적인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단체적으로 성결하게 하는 통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일곱 절기의 안식일은 어떻게 구성되며 안식의 본뜻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에는&lt;strong&gt; &amp;#39;주간의 안식일&amp;#39;과 &amp;#39;절기의 안식일&amp;#39;&lt;/strong&gt;이 동시에 함께 등장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amp;#39;주간의 안식일&amp;#39;&lt;/strong&gt;은 엿새 동안 일한 뒤 맞는 일곱째 날을 가리킨다. 그런데 &amp;#39;절기의 안식일&amp;#39;은 연중 절기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노동을 금하신 날을 가리킨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안식일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초실절의 날짜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시간표를 바르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일곱 절기들 가운데 &lt;strong&gt;노동을 쉬라는 명령&lt;/strong&gt;은 언제인가? 모두 &lt;strong&gt;일곱 번&lt;/strong&gt; 있다. 무교절의 첫날과 일곱째 날에 두 번, 오순절에 한 번, 나팔절에 한 번, 속죄일에 한 번, 초막절의 첫날과 여덟째 날에 두 번이 있다(레 23:7-8, 21, 24-25, 27-32, 35-36). 그런데 이스라엘의 절기는 모두 일곱 종류인데 무교절과 초막절에는 각각 두 번씩 절기의 안식일이 있어서 일곱 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절기들 중에 &lt;strong&gt;안식일이 없는 절기&lt;/strong&gt;는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유월절과 초실절&lt;/strong&gt;이다. 레위기 23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별도의 노동 금지 명령이 없다. 이를 잘 모르면 일곱 절기가 다 일곱 개의 절기의 안식일인 줄 착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곱 개의 절기들 가운데 무교절과 초막절은 하루만 지키는 절기가 아니라 일주일과 여드레를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교절과 초막절은 첫날도 아무 노동하지 않아야 하는 절기의 안식일이요, 마지막도 역시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절기의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일곱 절기들 모두를 다 안식일로 계산한다면 그날은 총 9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절기의 안식일은 9일이 아니라 7일이다. 그럼 어떤 절기가 절기의 안식일에서 빠져있는가? 그것은 바로, 유월절과 초실절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주간의 안식일이 되었든지 또한 절기의 안식일이 되었는지 상관없이 &lt;strong&gt;안식일의 근본적인 뜻&lt;/strong&gt;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데 있을까?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완성하시고 일곱째 날에 그 일을 그치셨다는 데서 안식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창 2:1-3).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목적한 일들을 다 이루셨으므로 그 일을 그치셨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일을 기뻐하며 누리도록 시간을 주셨다. 그것이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노동을 금지하는 것은 이 은혜를 온전히 누리게 하는 명령인 것이지 안식의 최종 목적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본질을 놓치면 안식일 규정이 사람을 살리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억누르는 짐으로 변할 수 있다. 어느날 예수께서 베데스다 못가의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시자 유대인들은 그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을 문제 삼았다(요 5:1-16). 그들의 기준으로는 계란 하나 정도의 무게를 드는 것까지 안식일을 어긴 것이라고 계산하려 했지만, 정작 한 병자가 오랜 속박에서 풀려 참된 안식을 얻은 일은 전혀 보지 못했다.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백성을 위해 일해도 죄가 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날에 그들이 백성에게 속죄와 안식의 은혜를 누리게 하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amp;#39;절기의 안식일&amp;#39;&lt;/strong&gt;이란 &lt;strong&gt;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일을 기뻐하는 날&lt;/strong&gt;이다. 무교절에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오순절에는 성령의 강림을,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에는 장차 주의 재림으로 완성하실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누려야 한다. 그날에 일을 쉬는 것만 남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이 사라진다면, 안식의 껍데기만 붙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도 같은 잘못에 빠질 수 있다. 주일에 직장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주일을 온전히 지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몸은 쉬면서 마음은 세상일에 빼앗길 수도 있고,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전혀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참된 안식은 창조주께서 생명과 일용할 양식을 주셨음을 감사하고, 구속주께서 죄와 죽음의 멍에를 끊으셨음을 찬양하는 데 있다. 노동의 중단은 그 은혜에 집중하기 위한 울타리다. 울타리만 지키고 그 안의 생명을 잃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어느 안식일 다음 날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실절의 날짜가 언제인지를 정하는 열쇠는 레위기 23장 11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이라는 표현에 서 시작된다. 여기에 나오는 &amp;#39;안식일&amp;#39;을 무교절 첫날인 &amp;#39;절기의 안식일&amp;#39;로 볼 것인가, 아니면 매주 돌아오는 &amp;#39;주간의 안식일&amp;#39;로 볼 것인가를 두고 유대교 안에서도 견해가 갈린다. 바리새파와 후대 랍비들은 무교절 첫날 다음 날인 첫째 달 16일로 보았다. 반면 사두개파 제사장들과 보에투스파는 주간의 안식일 다음 날로 해석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10-1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시간표&lt;/strong&gt;를 통해 분명해진다. 예수께서는 오늘날에 알려진 것처럼 성금요일에 돌아가셨다가 주일에 부활하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삼일삼야를 땅 속에 있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12:40).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월절인 첫째 달 14일 수요일 오후 3시경에 돌아가셨고, 해가 지기 전에 무덤에 장사되셨다. 날짜과 요일로 보면 수요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유월절은 이제 오후6시가 되면서 무교절의 첫날이자 절기 안식일이 된다. 금요일은 향품을 준비할 수 있는 평일이었고, 토요일은 주간의 안식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이 직접 말씀하신 대로 사흘 밤낮을 땅 속에서 채우신 뒤 토요일 오후 3시가 지난 때에 부활하셨다(마 12:40). 여인들이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 새벽에 무덤에 갔을 때에는 이미 무덤이 비어 있었다(마 28: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무교절 첫날 다음 날이 아니라, 주간의 안식일 다음 날을 가리킨&lt;/strong&gt;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초실절의 예표를 정확히 성취했다. 주간의 안식일이 지난 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므로 교회는 주간의 첫날에 모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초실절에 드려진 첫 곡식은 이삭 하나가 아니라 첫 이삭 한 단을 흔들어 바쳐야 했다. 이것은 예수님 한 분만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과 함께 일어난 성도들의 몸까지 한 묶음으로 부활하는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무덤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마 27:52-53).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에게 붙은 자들의 부활을 보증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날 초실절부터 일곱 안식일을 온전히 세고 그 이튿날까지 합하면 오십 일이 된다. 이날이 바로 &amp;#39;오순절&amp;#39;이다(레 23:15-16). 따라서 초실절의 안식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단순한 달력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연결을 푸는 시간표의 열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일곱 절기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어떻게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절기는 농사의 주기와 출애굽의 기억을 담고 있지만, 그 궁극적인 실체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하셨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5:39; 눅 24:44). 그러므로 절기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 예표(豫表, type)의 문을 열어 주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유대인들은 절기를 계속 지키면서도 그것을 결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지 않는다. 유월절에는 출애굽을 기억하고 초막절에는 광야 생활을 기념하지만, 유월절 양으로 죽으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그 절기의 실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형만 붙들고 있을 뿐 실체는 놓치고 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의 민속 명절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데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절기를 문자적인 의식으로 되풀이하는 데 머물지 말고, 각 절기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일을 발견하고 믿음으로 누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7절기를 이해하는데 무엇이 도움이 될까? 사복음서 가운데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요한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절기의 책이라 할 만큼 절기와 예수님의 사역을 긴밀하게 연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선언은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장막을 치신 장막절(초막절)을 보여 준다(요 1:14). 그리고 예수님은 유월절에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고, 또 다음 해 유월절 무렵에는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밝히셨다(요 2:13-22; 6:4, 35). 그리고 초막절에는 목마른 자가 자신에게 와서 마시라고 외치셨으며, 수전절에도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증언하셨다(요 7:2, 37-39; 10:22-30). 절기의 모형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 안에서 실체를 얻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일곱 절기는 무엇을 예표하는 절기들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음&lt;/strong&gt;을 예표한다. 이스라엘은 흠 없는 어린양을 첫째 달 14일 해 질 때에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죽음의 사자가 피를 보고 넘어갔고, 백성은 애굽의 속박에서 나왔다(출 12:1-14). 신약의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의 피로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救援, salvation)을 얻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lt;/strong&gt;을 예표한다. 누룩은 죄와 부패한 본성을 상징한다. 무교병은 누룩이 없는 순전함과 진실함을 나타낸다(고전 5:8). 죄 없으신 예수님은 무덤과 음부(하데스)에 내려가셨지만 음부의 권세가 그분을 붙잡을 수 없었다. 음부는 최후 심판 전까지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머무는 임시 처소로서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거나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으므로 그곳의 어떤 악한 영도 그분을 건드릴 수 없었고 사흘 동안 그곳을 둘러보신 뒤 나오셨다. 무교절은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에 매이지 않으셨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lt;/strong&gt;을 예표한다. 첫 이삭 한 단이 이후에 거둘 모든 곡식의 시작이듯, 예수님의 부활은 그에게 속한 모든 성도의 부활을 보증한다(고전 15:20-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넷째, 오순절은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 오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 사건&lt;/strong&gt;을 예표한다.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살려 주는 영이 되셨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 위에 임하셨다(고전 15:45; 행 2: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이스라엘의 공동체적 역사도 이와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풀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간 것은 모세에게 속하여 받은 집단적인 세례였고, 광야에서 먹은 만나와 반석에서 마신 물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신령한 양식과 음료를 보여 주었다. 그들을 따르던 신령한 반석은 곧 그리스도였다(고전 10:1-4). 이처럼 절기와 출애굽의 사건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실체를 드러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봄의 네 절기가 초림으로 이루신 일을 보여 준다면, 가을의 세 절기는 아마도 재림으로 완성하실 일을 보여 준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나을 것이다. 그래서 간단하지만 가을의 세 절기를 해석한다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나팔절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변화되는 사건&lt;/strong&gt;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전 15:50-53). 예수님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며, 하나님의 나팔 소리 가운데 강림하신다(마 24:30-31; 살전 4:16-17). 요한계시록의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계 11:15). 속죄일과 초막절이 보여 주는 재림 이후의 의미는 다음 말씀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참고로, 오순절(3월 5일경)과 나팔절(7월 1일) 사이에는 약 넉 달의 추수 기간이 놓인다. 보리 추수가 초실절에 시작되어 오순절에 마쳐지고, 밀 추수는 오순절부터 나팔절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고만 하지 말고 눈을 들어 이미 희어진 밭을 보라고 하셨다(요 4:35-36). 지금은 복음으로 영혼을 거두는 교회의 시대다. 어떤 사람은 사랑으로 씨를 뿌리고, 어떤 사람은 다 익은 영혼을 교회로 인도한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는 함께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같은 상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7개의 절기를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연결하여 체계적으로 해석한 시도는 종교개혁자들과 그 이전의 세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19세기 존 넬슨 다비(1800-1882)에게서 이러한 해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영국 성공회 신부 출신으로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의 기초를 놓았고, 그 영향은 미국의 스코필드 성경으로 이어졌다. 그 흐름의 끝자락인 1900년 무렵 미국에서는 방언 운동도 일어났다. 그러나 세대주의가 제시한 가을 절기의 해석까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절기를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되, 성경 전체가 보여 주는 구원의 시간표에 맞추어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오순절의 누룩 든 두 떡은 두 교회와 남은 죄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순절은 초실절부터 날짜를 계산하여 일곱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인 오십 일째 되는 날을 계수하여 지켰다. 이날에는 고운 가루로 만든 떡 두 개를 흔들어 첫 요제로 드렸는데, 특별히 누룩을 넣어 구우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소제에는 누룩이 금지되지만 오순절의 두 떡에는 누룩이 허용된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3:17 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기본적으로 성경에서 &amp;#39;누룩&amp;#39;은 죄와 부패한 본성을 상징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령이 강림하는 오순절에 왜 누룩이 들어간 떡을 드리라고 했을까? 이는 예수를 믿어 성령을 받아도 사람에게는 여전히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예수님의 피로 죄를 덮어 죄가 없는 자처럼 여겨 주시고, 그 상태에서 생명을 분배하여 거듭나게 하신다. 이것이 칭의(稱義, justification)와 중생(重生, regeneration)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성품과 생활까지 하루아침에 완전해졌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두 개의 떡은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들을 주셨기 때문이다(마 16:19). 베드로는 오순절에 첫째 열쇠를 사용하여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다(행 2:14-42). 이어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했으며, 이방인 교회의 문이 열렸다(행 10:34-48). 유다 집과 이스라엘 집,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두 무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교회를 이루게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두 떡 모두에 누룩이 들어 있었다. 유대인 교회에도 죄가 있었고 이방인 교회에도 죄가 있었다. 예수를 믿을 때 과거의 모든 죄가 자동으로 사라지고 몸 안에 들어온 악한 영까지 즉시 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는 예수님의 피로 덮였고 생명의 성령은 영 안에 들어왔지만, 육체에는 여전히 부패한 본성과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들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의 유혹을 받고 혈기와 분노 그리고 음란에 넘어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속죄와 생명주는 영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이때부터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amp;nbsp;&lt;strong&gt;자기 죄를 자백하는 회개(悔改, repentance)&lt;/strong&gt;다. 회개는 이미 받은 속죄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실제로 깨끗하게 하도록 그 죄를 빛 가운데 내놓는 일이다(요일 1:7-9). 왜냐하면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 죄 사함을 받고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회개기도문을 따라 자신과 조상의 우상숭배와 자범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도록 가르친다. 속죄만 붙들고 정결과 성결의 과정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순절의 누룩 든 두 떡은 놀라운 은혜와 엄중한 책임을 동시에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누룩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성령을 주시고 교회의 지체로 받아 주신다. 그러나 &lt;strong&gt;누룩을 그대로 품고 살아도 된다고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품과 행실을 깨끗하게 해야&lt;/strong&gt; 한다. 그렇게 하여 내가 정결해질수록 죄의 충동과 저주의 힘은 약해지고, 성령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도 온전히 사용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천국에서 받을 지위와 상도 우리가 거듭난 이후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사실만 붙들고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 산다면, 자신은 겨우 구원을 받더라도 준비된 신부와 충성된 종의 상을 얻기 어렵다. 그러므로 훗날 &amp;lsquo;그때 회개할 걸, 그때 말씀을 들을 걸&amp;rsquo; 하고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들을 때 회개하고, 지금 씻을 때 정결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왜 노동 금지 명령이 없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을 자세히 읽으면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성회와 제물에 관한 규정은 있으나 &amp;lsquo;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amp;rsquo;는 명령이 없다. 왜 그럴까? 무교절의 첫날과 마지막 날,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의 첫날과 여덟째 날에는 분명히 노동 금지 명령이 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핵심을 보여 주는 유월절과 초실절에는 왜 그 명령이 빠져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필자는 이 질문을 인공지능(AI)에게 던져 초대교부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온 해석을 찾아보게 했다. 그 답은 &lt;strong&gt;절기들의 짝에서 이유를 찾는 것&lt;/strong&gt;이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그 해의 첫째 달 14일부터 이어지는 한 묶음이므로, 유월절(1월 14일)에 이루어진 일을 그다음 날인 무교절 첫날(1월 15일) 쉬면서 기념한다는 것이다. 초실절(1월 18일)과 오순절(3월 5일경)도 첫 이삭을 거두기 시작한 날부터 오십 일을 세어 추수를 마치는 한 묶음이므로, 초실절에 시작된 일을 오순절에 쉬면서 기념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두 절기가 실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틀린 해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필자는 이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의 은혜는 그날 기념하는 것이 마땅하고, 부활하신 날의 기쁨도 그날 누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생일을 두 달 뒤에 축하하는 것보다 당일에 축하하는 것이 합당하듯,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각각 유월절과 초실절 당일에 기념해야 한다. 더욱이 이 두 사건은 나머지 모든 구원 사건들의 근간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 답의 실마리는 예수님께서 안식일 논쟁 가운데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고치신 뒤 자신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아버지와 자신이 일하신다고 말씀하셨다(요 5: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버지께서는 창조를 위하여 일하셨고, 아들은 구속을 위하여 일하셨다. 아버지께서 창조의 일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죄인이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안식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안식이 주어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이 말씀에 비추어 &lt;strong&gt;유월절과 초실절에 노동 금지 명령이 없는 이유&lt;/strong&gt;를 다음과 같이 추정한다. 유월절은 아들이 구속을 위하여 일하신 날이며, 초실절은 아버지의 창조 능력으로 새 창조를 시작하신 날이다. 고로 두 날에 노동 금지 명령을 두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일하셨다는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시려는 뜻일 수 있다. 그날에도 성회로 모여야 하지만, 그 모임의 초점은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 창조주와 구속주를 바라보는 데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내가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생각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정확한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여쭈어야 할 부분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누리는 모든 안식 앞에 하나님의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존재할 수 없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유월절과 초실절을 지킬 때에는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 한 분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만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3장의 일곱 절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단체적으로 성결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예표하는지를 살펴보았다.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은 구원의 서로 다른 방면이며, 개인적인 성결은 거룩한 모임을 통한 공동체적 성결로 이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주간의 안식일과 절기의 안식일을 주셔서 그분이 완성하신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고 누리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실절의 &amp;lsquo;안식일 이튿날&amp;rsquo;은 주간의 안식일 다음 날이며, 예수님은 그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다. 유월절의 어린양, 무교절의 무교병, 초실절의 첫 이삭 한 단,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초림으로 이루신 일을 보여 준다. 나팔절부터 시작되는 가을 절기는 마지막 나팔과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게 한다.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의 넉 달은 교회가 복음으로 영혼을 추수해야 할 시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순절에 드린 누룩 든 두 떡은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를 가리키며, 성령을 받은 교회 안에도 아직 죄된 본성이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피로 죄를 덮어 칭의를 받고 생명을 얻는 것은 시작이다. 그 뒤에는 죄를 자백하여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개인이 정결해지고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할 때 단체적인 성결이 이루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유월절&amp;#39;과 &amp;#39;초실절&amp;#39;에 노동 금지 명령이 없었던 까닭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창조의 일을 하셨고 아들께서 구속의 일을 하셨음을 기억하게 하려는 뜻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누리는 안식은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예배와 절기를 형식으로만 지킬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구속주께서 이루신 일을 알고 감사하며 그 은혜 안에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혼자만의 경건에 머물지 않고 거룩한 모임을 소중히 여기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날마다 회개하고 정결해져야 한다. 또한 희어진 밭을 바라보며 씨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복음의 추수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 창조주와 구속주를 찬양하고, 정결한 공동체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6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3장에 나타난&amp;nbsp;&lt;strong&gt;절기들을 통한 단체적인 성결&lt;/strong&gt;을 주제로, 구약의 절기가 어떻게&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인도&lt;/strong&gt;로 연결되는지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결이 개인의 경건을 넘어 공동체적 소집(성회)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의 봄 절기를&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죽음, 무죄함,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lt;/strong&gt;의 예표로 분석합니다. 본문은 안식일 규정과 초실절 날짜에 관한 신학적 논란을 다루면서도, 결국 절기의 핵심 목적은 하나님이 행하신&amp;nbsp;&lt;strong&gt;창조와 구속의 은총&lt;/strong&gt;을 기억하고 누리는 것임을 명시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구약의 문법적 준수를 넘어&amp;nbsp;&lt;strong&gt;회개와 성령의 역사&lt;/strong&gt;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적 성결의 삶으로 성도들을 인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ChatGPT Image 2026년 8월 27일 오후 07_40_3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f838589f3b26777c0f1b725183ccd15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4452c50e71b2c39c4a5c2c61ead188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edbee022b513ed64c97716b8c5a470e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06efdcc629baacced2015d9116592d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ab7248a412ecd0d2a9c4dcacffb58b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The_Salvatio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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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이스라엘_일곱_절기와_그리스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fd8761031f3ba670b175ef5f8befcb2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Divine_Blueprint_for_Holine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c8aa233b988d05ca824584d61aeae3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Divine_Blueprint_for_Holine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140/265/735e66dd704847cb8ff3ed1ef89b49b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18)] Divine_Blueprint_for_Holiness.pdf_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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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렘31:31~34)_2026-08-26(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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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6T08:31:31+09:00</published>
		<updated>2026-08-26T22:33:2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렘31:31~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Yt4IOTVfG4 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 (렘 31:31-3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예레미야 기독론의 핵심은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이다. 이사야와 다니엘도 메시아와 하나님 나라...</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렘31:31~3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nYt4IOTVfG4&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nYt4IOTVfG4?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31:31-3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기독론의 핵심은 &lt;strong&gt;새 언약(新約, new covenant)&lt;/strong&gt;이다. 이사야와 다니엘도 메시아와 하나님 나라를 풍성하게 예언했지만, 새 언약을 예레미야처럼 선명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법을 백성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며,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예언했다(렘 31:31-34). 여기에는 속죄(贖罪, atonement)와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가 함께 들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예레미야만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신약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께서 안에 들어오셨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짓는가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B.C.595년 새 언약의 약속을 주었지만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충분히 풀어 주지는 못했다. 그 답은 에스겔의 새 언약 예언과 함께 볼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에스겔은 새 영과 새 마음과 하나님의 영을 약속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먼저 맑은 물로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에서 정결(淨潔)하게 하겠다고 선포한다(겔 36:25-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한 사람이나 성경 중 어느 한 권만 붙들어서는 온전히 알기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특정한 방면에 들어 쓰셨다. 사도 바울은 서신들을 통해 믿음으로 얻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와 &amp;#39;생명의 성령의 법&amp;#39;(롬 8:1)을 힘 있게 전했고,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일&amp;middot;이&amp;middot;삼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해 생명과 정결과 마지막 계시를 보충했다. 바울을 읽되 요한도 읽고, 예레미야를 읽되 에스겔도 읽어야 한다. 성경 전체를 통전적으로 볼 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온전한 구원(救援, salvation)의 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사실 구원의 여정의 시작이요 출발점이다. 그러면 거듭남 곧 중생(重生, regeneration)을 겪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 안에 분배되는 일이며, 그 뒤에는 죄를 자백하여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과정이 있다. 마지막에는 부활체를 입는 영화(榮化, glorification)에 이르러야 한다. 칭의만 모든 과정인 것처럼 확대하면 믿은 뒤의 자범죄와 몸 안에 남아 있는 악한 영을 처리하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2013년부터 회개(悔改, repentance)가 보화 중의 보화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회개는 예수님의 속죄를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피의 정결하게 하는 효능을 실제로 적용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고 진리로 인도하시지만, 사람은 자유의지로 그 음성을 거절할 수 있다. 또한 성령이 영 안에 들어오셨어도 육체 속의 뱀과 귀신들이 자동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새 언약을 함께 살펴보면서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받은 성도가 왜 다시 죄를 짓고, 어떻게 자백과 정결을 통하여 성화와 영화로 나아가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왜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함께 보아야 새 언약이 온전히 드러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새 언약의 서로 다른 면을 보여 주는 짝이다. 예레미야는 법이 돌판 밖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속과 마음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죄악을 사하여 다시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했다(렘 31:31-34). 이것은 죄를 덮는 &amp;#39;속죄&amp;#39;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는 &amp;#39;내주&amp;#39;를 약속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그 내적 변화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amp;#39;새 마음&amp;#39;을 주고 &amp;#39;새 영&amp;#39;을 속에 두시며,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 이어서 &amp;ldquo;내 영&amp;rdquo;을 속에 두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약속 앞에 맑은 물로 더러운 것과 모든 우상숭배에서 깨끗하게 하는 &amp;#39;정결&amp;#39;의 단계가 놓여 있다(겔 36:22-2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6:25-27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36장이 말하고 있는 대상은 &amp;ldquo;이스라엘 족속&amp;rdquo;, 원문으로 보면 &amp;#39;이스라엘 집&amp;#39;이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세우겠다고 했지만, 에스겔은 포로 가운데서 불러 모을 이스라엘 집을 집중하여 말한다(렘 31:31; 겔 36:22-24). 유다 집이 혈통적인 언약 백성을 가리킨다면, 이스라엘 집은 하나님을 붙들고 끝까지 이기는 영적 후손까지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남유다의 남은 백성 가운데서 나온 열두 제자와 언약을 세우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기는 자들을 만들라고 명하셨다(마 28:18-2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두 예언을 포개어 보면 &amp;#39;&lt;strong&gt;새 언약&amp;#39;의 세 요소&lt;/strong&gt;가 나타난다. &lt;strong&gt;첫째는 죄를 사하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amp;#39;속죄&amp;#39;&lt;/strong&gt;다(렘 31:34). &lt;strong&gt;둘째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들어와 법을 가르치고 행하게 하는 &amp;#39;성령의 내주&amp;#39;&lt;/strong&gt;다(렘 31:33, 겔 36:26-27). &lt;strong&gt;셋째는 맑은 물로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를 씻는 &amp;#39;정결&amp;#39;&lt;/strong&gt;이다(겔 36:25). 고로 예레미야의 속죄와 내주만 말하고 에스겔의 정결을 생략하면, 예수 믿은 뒤에 왜 죄가 반복되는지 설명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신약에서도 같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길(롬&amp;nbsp; 3:28; 갈 2:16)과 성령을 따라 행하는 길을 가르쳤다(갈 5:16-17). 그러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피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죄를 자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방면을 더 분명히 밝혔다(요일 1:7-9). 요한복음은 내주하는 성령을 강조하고(요 14:16-17), 요한일서는 정결을(요일 1:9, 3:3)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빨아 성에 들어가는 마지막 결과를 강조한다(계 22: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주로 서신서만을 기록했지만 사도 요한은 복음서와 서신서와 계시록을 모두 남겼다. 요한은 다른 복음서가 기록하지 않은 내용을 보충하려는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요한복음을 썼다(요한복음은 92%가 타복음서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더욱이 요한복음은 주후 90년경, 요한계시록은 주후 95-96년경 기록된 마지막 시기의 계시다. 그러므로 먼저 주어진 바울의 계시를 존중하면서도, 더 뒤에 주어진 요한의 생명과 정결과 종말의 계시를 함께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사도의 강조만으로 닫히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amp;#39;요한복음&amp;#39;과 &amp;#39;요한일서&amp;#39;와 &amp;#39;요한계시록&amp;#39;을 반복하여 공부해야 한다. 그중에 &amp;#39;요한복음&amp;#39;은 하나님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 사람 안에 들어오시는 거듭남을 보여 주고(요 3:3-8), &amp;#39;요한일서&amp;#39;는 그 생명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지를 가르치며(요일 1:9; 3:2-3), &amp;#39;요한계시록&amp;#39;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과 천국에 들어갈 정결한 성도의 최종 모습을 보여 준다(계 1:17-18). 이 세 책을 함께 볼 때 예수님이 누구시며 성도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온전히 연결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종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교리만 반복해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 즉 이신칭의를 강조하고 있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 말할 것이 아니라, 구원의 탈락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시하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와 마태복음과 요한의 글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선지자는 먼저 보고 전파하는 파수꾼이다. 적이 오는 것을 보았으면 나팔을 불어야 하듯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자기 자신의 생각과 섞지 않고 전해야 한다(겔 3:17-19; 33:1-7). 성령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성경 전체를 살펴야 한다. 그럴 때 새 언약의 온전한 그림이 열리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새 언약의 속죄와 성령의 내주는 언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새 언약으로서 속죄와 성령의 내주는 언제 어떻게 성취가 되었을까? 먼저 옛 언약을 살펴보자. 옛 언약은 주전 1446년경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세우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모세에게 돌판에 새겨 주셨고, 모세는 언약서를 낭독한 뒤 소의 피를 백성에게 뿌렸다(출 24:3-8). 그러나 이때는 법이 사람의 외부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읽지 않고 외면하면서 마음대로 죄를 지었다. 또한 이 때 사용된 짐승의 피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피를 보여 주는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기에 반복해서 드려야 했다.&amp;nbsp;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 이스라엘 백성에 남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영적 간음과 육적 음행을 저질렀다(렘 31:3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주전 595년경 예레미야를 통해 법을 사람 안에 두고 죄를 사하시는 &amp;#39;새 언약&amp;#39;을 약속하셨다(렘 31:31). 그런데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언약이 온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참 목자이자 다윗의 왕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려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새 언약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 후, 약 600년 뒤인 주후 30년경,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예수께서 마가 다락방에서 열두 제자와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눅 22:20). 그런데 모세가 당시에는 짐승의 피로 세웠다면 이때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맺으셨다. 그때 예수께서는 &amp;ldquo;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amp;rdquo;이라고 말씀하신 뒤 십자가에서 실제로 자신의 피를 흘리셨다(눅 22:19-20). 그리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이기는 자들을 만들라고 명하셨다(마 28:18-2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신약시대에 아버지와 아들의 방식으로 동시에 존재하셨다. 아들의 인격은 아버지께 기도했고, 겟세마네에서 &amp;ldquo;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amp;rdquo;라면서 순종했다(마 26:39). 이것은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혹은 아들이 되기도 하는 양태론(樣態論, modalism)이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서로 다른 세 신으로 나누어서도 안 된다. 아들은 인간으로 낮아지신 자리에서 구별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아버지께 구하여 또 다른 보혜사(保惠師, Paraclete)를 그들에게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요 14:16-17). 그러면 진리의 영인 성령은 제자들과 함께 계실 뿐 아니라 그들 속에 계실 것이라고 했다. 예레미야가 &amp;ldquo;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겠다&amp;rdquo;고 한 약속과 에스겔이 &amp;ldquo;내 영을 너희 속에 두겠다&amp;rdquo;고 한 약속이 보혜사 성령의 오심으로 성취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여기에 나오는 &amp;ldquo;영원토록&amp;rdquo;이라는 번역도 원문 그대로 보면, &amp;quot;그 시대동안&amp;quot; 혹은 &amp;quot;그 세대 동안&amp;quot;이라고 번역하여,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약속으로 보아야 한다. 즉 한 번 성령을 받으면 성령이 그에게 영원무궁토록 거주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순절 이후 성도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이 땅의 성도의 삶이 마쳐질 때까지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주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4:16-17&amp;nbsp;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내주하는 성령은 성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내주하시는 성령은 성도 안에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여기서 내주하는 성령이란 &amp;#39;보혜사&amp;#39;이신 성령을 가리킨다. 헬라어로 보혜사라는 파라클레토스(&amp;pi;&amp;alpha;&amp;rho;ά&amp;kappa;&amp;lambda;&amp;eta;&amp;tau;&amp;omicron;&amp;sigmaf;)라는 단어로서, 곁에 와서 돕는 분이라는 뜻을 지니며, 돕는 자와 상담자와 위로자, 변호사의 역할을 행하신다. ㄱ고로 예수께서 보내실 성령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성도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5:26; 16:13-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내주하시는 성령은 성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일까? 그것은 주로 4가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성령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lt;/strong&gt; 하신다고 했다(요 14:26). 사람에게 배운 지식은 성경 전체의 틀을 잡는 데 필요한 지식이기는 하지만, 진리를 실제로 열어 보이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필자도 역시 새벽 설교 시간에 원고만 의지하지 않고 성령께 입을 내어 드리는 훈련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배운 내용을 반복하는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하게 되기 때문이다(요 14:26; 요일 2:2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성령은 예수님을 증언&lt;/strong&gt;한다(요 15:26). 예수께서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하셨듯이, 성령께서도 스스로 말하지 않고 들은 것을 말하며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성령의 역사는 성령 자신을 높이는 데 있지 않고, 예수께서 누구시며 무엇을 이루셨는지 알게 한다. 또한 장래 일을 알리시며 깨끗해진 사람에게 환상과 분별을 주신다(요 16:13-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lt;/strong&gt;하신다(요 16:7-11). 죄에 대하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을 드러내는 일이고, 의에 대하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가 되심을 깨닫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는 이 세상 통치자가 이미 심판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의로 천국에 갈 수 없고,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와 생명을 받아야 가능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죄에 대한 책망은 예수님이 죄 사함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도록 인도한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거절하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에 대한 책망은 사람이 자기 선행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이신 예수님의 의를 옷 입어야 함을 가르친다(렘 23:6; 마 3:15). 그리고 심판에 대한 책망은 사탄 마귀가 최종 승자가 아니라 이미 판결받은 세상 통치자임을 알게 한다. 이 세 가지를 분명히 알 때 죄 앞에서는 회개하고, 의를 위해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영적 싸움에서는 담대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거짓말의 아비를 따르지 않고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더 분명히 역사하신다. 마음속에 기존 교리를 지키려는 욕심이 진리보다 크면,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도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거역한다. 그러나 &amp;ldquo;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면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내용도 그대로 가르치겠다&amp;rdquo;는 자세로 들을 때에, 성령께서 성경의 부분들을 연결하여 전체 뜻을 깨닫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성령은 안에서 악한 자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lt;/strong&gt;하게 하신다(요일 4:4). 사람은 흙으로 지어진 약한 존재지만 안에 계신 분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다. 필자는 나보다 영적 계급이 높은 악한 영을 대할 때도 전능자가 내 안에 계신다는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축사해왔다. 믿음의 근거는 내 능력이 아니라 안에 계신 성령과 이미 심판받은 세상 통치자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성령이 안에 계신다고 모든 가르침이 자동으로 알아지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음성을 사모하고, 그분이 말씀하실 때 순종할 때에 가능하다. 진리임을 속으로 알면서도 기존 교리와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 성령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내주 자체와 내주하시는 분의 지도를 받아 사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구약의 외적 성령 역사와 신약의 내적 성령 역사는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 시대에 역사하신 성령과 신약 시대에 역사하신 성령의 방식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먼저 구약 시대에 역사하셨던 성령도 강력하게 일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주로 특정한 사람에게 임하여, 특정한 사명을 위하여 주어졌는데, 전부 다 사람 밖에서 임재하시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자 삼백 명으로 미디안의 큰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고, 삼손에게 임하자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칠 수 있었다(삿 7:7, 19-22; 15:14-16).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재주로 성막 기구를 만들었고, 사울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그는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했다(출 31:1-6; 삼상 10:9-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amp;nbsp;&lt;strong&gt;외적으로 임하시어, 특정한 사람에게 어떤&lt;/strong&gt;&amp;nbsp;&lt;strong&gt;능력과 기적, 예언과 치유, 판단과 기술&lt;/strong&gt;을 얻게 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외적인 역사는 신약에도 계속되었다. 신약의 책들 중에서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구약시대처럼 사람에게 어떤 능력을 주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게 하시는 방면을 풍성하게 보여 준다(눅 4:18-19; 행 1:8; 10:38).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이보다 더 많은 은사와 능력을 주어졌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은사와 능력이 주어진 것은 귀한 일이지만,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내면이 깨끗하다는 증거는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몇 사람에게 있었던 구약의 외적 임재 방식은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범죄할 때 성령이 떠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울이 하나님을 거역하자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건이다(삼상 16:14-15). 그래서 다윗도 이것을 지켜보았기에 자신이 범죄한 뒤에는 &amp;ldquo;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amp;rdquo;라고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었다(시 51:11). 그런데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임했던 사울이 끝내 회개하지 않고 또다시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다른 영을 의지하는 바람에 그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삼상 28:3-25; 31: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신약 시대의 성령이 일하시는 방식은 많이 달라졌다. 구약 시대처럼 성령이 사람 위에 임재하여 은사와 능력을 주는 것 외에도 내주의 방식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즉 신약 시대에 성령께서는 성도의 영 안에 들어가시어 사심으로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해 주고 지속적으로 함께하실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보혜사 성령이 &amp;ldquo;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과 연합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죄를 깨닫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이끄시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요 14:16-17; 고전 6:17; 롬 8:9-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성령의 외적 역사와 내적 역사는 서로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주하는 성령을 받은 성도에게 전도와 치유와 축사를 위한 능력이 위로부터 따로 입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밖으로 큰 능력이 나타나는 것과 안의 성품이 변화되어 정결함을 입는 것은 결코 같은 일이 아니다. 구약의 선지자처럼 예언하고 기적을 행하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마음과 육체에 더러운 것이 남아 있는 성도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로 자기 영적 상태를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자기 안에 계신 성령의 책망을 따라 계속 깨끗해져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가 알 것은 자신이 신약 시대에 태어나 성령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의 구원 혹은 자신의 깨끗함이 끝까지 자동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아다. 신약에서는 범죄했다고 해서 구약의 사울처럼 곧바로 떠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담대하게 죄를 지을 위험성도 있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끝내 회개하지 않아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며, 그때는 성령께서 그에게서 떠나가신다. 그러므로 &amp;ldquo;성령을 받았다&amp;rdquo;는 과거의 체험을 죄의 면허로 삼지 말고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계 3:5; 22:14-15).&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받은 성도가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받은 성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 이유는, 내가 비록 속죄를 받고 성령의 내주가 함께 하고 있어도 나에게는 여전히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가 활동하기 때문&lt;/strong&gt;이다. 성령이 사람 속에 들어가시더라도 그 사람을 인격 없는 기계로 만들지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나면 그때부터는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함께 공존하게 된다. 그때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대적할 수도 있는데, 그때 나는 어느 편을 따를 것인지를 내가 선택해야 한다. 만약 이때 내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는 않겠지만, 육체를 따라 살면 우리가 비록 속죄를 받고 성령을 모시고 있다고 할지라도 다시 죄를 범하고 마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이유는, 내가 비록 속죄 받고 성령께서 내 안에 거주하신다고 할지라도 내 육체 안에 이미 들어온 채 있는 악한 영들은 단 한 놈도 스스로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amp;nbsp; &lt;/strong&gt;그렇다. 사람이 거듭나면 자기 안에 성령과 악한 영이 공존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과 악한 영들의 거처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거듭날 때 성령은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시지만, 악한 영들은 이미 육체 속에 들어와서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전의 내가 지은 죄와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를 통하여 내 육체 안에 들어온 뱀과 귀신들은 스스로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4절을 보라.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제 뱀은 흙(&amp;#39;아파르&amp;#39;)를 먹고 살라고 하였다. 그런데 창세기 2장 7절에서 사람의 육체가 흙(&amp;#39;아파르&amp;#39;)으로 지어진 것을 연결해서 보면, 악한 영은 육체 속에 들어와서 살 수 있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은 사람의 육체 속에 있으면서 죄의 욕망을 일으킨다. 내가 영 안에 있을 때에는 성령이 나를 선으로 이끌지만, 내가 육체 안에 있을 때에는 악한 영이 나를 죄로 끌어당기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이유는, 속죄와 칭의는 내가 처음 믿을 때에 받는 것이지만 정결과 성결은 일평생을 두고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lt;/strong&gt;이다. 내가 처음에 예수를 믿겠다고 결정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었던 모든 과거의 죄를 아들 예수님의 피로 덮어버린다. 그래서 죄는 있지만 죄 없는 자처럼 여겨 주신다. 이것을 칭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생명주는 영신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생명을 분배해 넣어 주신다. 만일 이때 우리가 자신이 지은 모든 과거의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회개해야만만 생명을 분배해 주신다면 우리 인간은 아무도 거듭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주어지는 칭의는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믿은 뒤에는 내가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자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에라야 우리가 깨끗하게 되기 때문이다(요일 1: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성도는 속죄와 정결을 포함한 성결을 서로 구분하지 않으면 잘못될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죄를 완벽하게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구원받을 시간을 놓쳐버릴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믿을 때 모든 문제가 끝났으므로 이후의 자백과 정결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다. 그러면 아니 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피로 죄를 덮고 생명을 주신 뒤, 안에 계신 성령의 책망을 따라 하나씩 죄를 자백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가 깨끗해지는 것이다. 이때에 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와 이에 따른 칭의는 구원의 시작을 가리키며,&amp;nbsp; 정결과 성결은 나를 깨끗하게 하여 주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이유는, 죄 된 본성을 죽음에 넘기고 성령을 따라 사는 훈련을 등한히 여기기 때문&lt;/strong&gt;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이제는 나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사신다고 고백했다(갈 2:20). 그리고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따라 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을 해방시킨다고 했다(롬 8:1-2).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교리로만 알고 성령께 순종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자기의 몸 안에 들어있는 악한 영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로마서 7장의 바울의 탄식처럼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고 말 것이다(롬 7:15-2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사실 서른 살 무렵 우리나라의 영성가 이상관 목사로부터 &amp;lsquo;생명의 성령의 법&amp;rsquo; 세미나를 듣고 이것이 죄를 이기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붙들었다. 십 년 동안 유행가를 한 번 부르지 않을 만큼 필자는 나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며 살았다. 그래서 한때는 교회도 부흥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난하게 하는 영과 사람을 밀어내는 영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가정은 가난하게 살았고, 교회는 부흥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amp;quot;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영역은 달라지지 않을까?&amp;quot; 나는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 답은 성령을 따라 사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거기에 더하여, 자백함으로 자신의 과거의 죄와 그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칭의만으로 해결되지 않은 죄와 악한 영은 어떻게 정결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속죄와 성령의 내주만으로 해결되지 않은 죄와 악한 영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내가 지은 죄들과 조상들이 지은 죄들을 구체적으로 자백함으로 정결케 할 수 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우리들 마음 속에 두겠다는 약속에 앞서, 맑은 물로써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에서 정결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겔 36:25-27). 즉 사람이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명확히 알려준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사도 요한도 주님을 향하여 자신도 주님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자마다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요일 3: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3:2-3&amp;nbsp;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백에는 두 결과가 뒤따른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용서)하시고 행위책에 기록된 죄마저 지우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둘째, 그 죄를 통하여 육체에 들어온 악한 영들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 죄 사함과 모든 불의에서의 깨끗함은 구별되는 것으로서, 하나의 자백 안에서 함께 일어나는 일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책을 덮어줄 뿐 아니라 우리의 더러워진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히 9: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죄를 자백할 때에는 막연히 &amp;ldquo;죄인입니다&amp;rdquo;라고만 말하지 말고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사건과 행동을 구체적으로 시인해야 한다. 어떤 우상을 섬겼는지, 누구를 미워하고 속였는지, 어떤 음행과 탐욕을 품었는지를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에 &amp;ldquo;이 죄를 통하여 이러이러한 영을 받아들였습니다&amp;rdquo;라고 자백함으로, 죄와 악한 영의 통로를 함께 끊어야 한다. 구체적인 자백은 죄를 미화하거나 책임을 피하지 못하게 하며, 악한 영이 붙들고 있던 근거를 예수님의 피 아래 내려놓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과정은 한 번에 모든 기억을 끌어내어 끝내는 일은 아니다. 성령께서 빛을 비추실 때마다 새롭게 깨닫고 자백해야 한다. 처음에는 큰 우상숭배와 음행을 회개하고, 그다음에는 말과 생각과 성품 속에 숨어 있는 교만과 분노와 미움까지 다루게 된다. 회개의 횟수를 자랑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꾸준히 자백한 만큼 정결의 실제 열매가 쌓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개인의 자범죄뿐 아니라 조상들의 우상숭배로 내려온 영적 영향도 다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후손이 대신 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상숭배를 발판으로 들어온 악한 영의 영향은 삼사 대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출 20:5-6). 회개하지 않은 세대가 거듭되면 아주 오래된 영이 후손의 육체에까지 내려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조상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상과 자신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자백하여 후손에게 작용하는 악한 영을 제거하려면 조상들의 죄까지도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 자신도 과거에 회개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살았다는 일반적인 말로 회개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따라 무덤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놓고 세 번 절했던 것처럼 구체적인 우상숭배의 사건은 자백하지 않았다. 그는 용서받았으니 제거된 채 있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 죄를 통하여 이미 들어온 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 속에 들어와있는 더러운 영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그 죄로 악한 영을 받아들였음을 시인해야 한다. 그럴 때에 정결이 내게서 실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사람이 구원을 받았어도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했다(고후 7:1).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더러워진 양심만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자백할 때 육체 안의 더러운 영도 떠나게 하기 때문이다. 정결은 행위로 구원을 사는 일이 결코 아니다. 이미 받은 속죄의 피를 믿고 그 피의 또 다른 효능인 깨끗함을 적용받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는 일을 주문을 읽는 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예수께서도 주기도문으로 자신의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셨듯이, 무엇을 어떻게 회개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은 구체적인 죄를 자백하도록 돕는 길잡이인 것이다. 고로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회개할 때에는 그 문장을 읽는 데서 끝나지 말고 자기 죄를 인정하며 끊을 때에 비로소 악한 영이 떠나가고 성령의 인도를 더 온전히 받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칭의에서 성화와 영화로 나아가려면 왜 평생 자백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속죄나 칭의는 믿을 때 한 번 받는 구원의 시작이지만, 정결과 성화는 평생 반복해야 할 과정이다. 죄를 하나 자백할 때 그 죄가 씻기고 관련된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 죄의 종류와 뿌리가 아주 많기 때문에 한두 번의 회개기도로 모든 과정이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의 분량을 채우며 날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요한계시록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자기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가 주어질 것이라고 하셨다(계 22:14). 씻음이란 한 번 옷을 받은 사실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질 때마다 어린양의 피로 빠는 지속적인 행위인 것이다. 고로 속죄를 믿는 사람일수록 죄의 자백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도가 속죄와 칭의를 받았아면 그때부터는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amp;nbsp; 한다. 그래야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되기 때문이다(딤후 2:20-21). 아무리 많은 은사와 능력을 행했어도 회개하지 않아 더러운 상태라면 그 사람의 수고는 나무와 풀과 짚처럼 불타 없어질 수 있다. 반대로 정결한 상태에서 순종한 일은 금과 은과 보석처럼 남아 하늘의 상급이 될 것이다(고전 3:12-15). 고로 성도가 하루를 산다고 해도 주님 앞에서 계산될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천국을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은사의 창고에는 성도들이 구하지 않아 남은 은사가 아주 많았고, 그중 가장 줄어들지 않은 것이 축사의 은사였다. 어떤 사람은 예언을 사모하지만 회개 없이 예언만 좇으면 거짓 영이 섞이기 쉽다. 미국의 신사도와 빈야드 계열에서 예언을 앞세우다가 미혹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은사의 크기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깨끗한 그릇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조상에게서 내려온 성향도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나는 조상 제사를 통하여 들어온 논리적으로 따지는 영과 가르치는 영이 있었지만, 회개로 나쁜 영향은 제거하고 논리성과 가르치는 재능을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새벽 네 시부터 큰 소리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습관도 새벽마다 정성을 들이던 어머니에게서 이어진 면이 있다. 악한 영은 내보내되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성품과 재능은 선하게 드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회개는 보화 중의 보화다. 자기 소유를 팔아서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 천국의 보화처럼, 죄를 자백하여 정결해지는 길은 영원한 미래를 준비해 준다. 평생 회개하면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죄의 충동이 약해지고, 은사와 능력과 축사의 무기도 깨끗하게 사용되며, 행한 일이 하늘에서 금과 은과 보석으로 남고 빛나는 충성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2013년부터 자백하는 회개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발견한 뒤 회개기도문을 통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왔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기도를 배웠고 예수님도 주기도문이라는 모범을 주셨듯이, 기도문은 기도를 대신하는 주문이 아니라 회개 기도의 길을 익히는 샘플이다(눅 11:1-4). 이를 주술이라고 매도하면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신 뜻까지 놓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문구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을 자기 죄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돌이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정결하지 않은 채 은사만 구하면 위험하다. 예언과 환상이 나타나도 그 근원이 성령인지 거짓 영인지 분별하지 못할 수 있다. 성령의 은사는 회개를 대신하지 않고, 오히려 깨끗한 그릇 안에서 바르게 쓰일 때 주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은사를 얼마나 받았는가보다 오늘 내 양심과 육체가 예수님의 피로 얼마나 씻기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칭의에서 멈추지 않고 성화로 나아간 사람은 마지막에 영화의 몸을 입고 정결한 신부로 주님 앞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으며,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머물러야 한다. 회개와 천국 복음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행위 복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은 생명을 끝까지 지키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완전한 복음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 성도가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고도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와 그 해결의 길을 살펴보았다. 예레미야는 죄를 사하고 법을 마음에 기록하는 새 언약을 약속했고, 에스겔은 새 영과 하나님의 영을 속에 두는 약속 앞에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에서 정결하게 되는 과정을 놓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언약은 주전 595년경 예언되었고 약 600년 뒤인 주후 30년경 예수께서 마가 다락방에서 자기 피로 체결하셨다. 성령께서는 보혜사로 성도 안에 들어와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진리로 인도하며,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신다. 구약의 외적 역사와 달리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영 안에 들어와 생명을 주고 지속적으로 이끄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자유의지가 육체의 소욕을 선택할 수 있고, 육체 안에 남아 있는 뱀과 귀신들이 죄로 유혹하므로 성도는 다시 죄를 짓는다. 속죄는 죄를 덮어 생명을 받을 길을 열지만 몸 안의 악한 영을 자동으로 내보내지는 않는다. 덮인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 죄 사함과 모든 불의에서의 깨끗함이 일어나고,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칭의는 한 번 받는 시작이지만 정결과 성화는 평생 계속해야 한다. 바울의 칭의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붙들면서 요한의 정결과 두루마기를 빠는 신앙까지 나아가야 한다. 은사와 능력보다 깨끗한 그릇이 먼저이며, 회개의 횟수 자체보다 죄를 실제로 끊고 성령께 순종하는 열매가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자백하는 회개를 행위 구원이라고 오해하지 말고 예수님의 피가 지닌 깨끗하게 하는 효능으로 받아야 한다.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성령의 음성을 따라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칭의에서 성화와 영화로 나아가 정결한 신부로 주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6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신약 성도가 죄 사함과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고도 왜 반복해서 죄를 짓는지에 대한 해답을 예레미야와 에스겔의&amp;nbsp;&lt;strong&gt;새 언약&lt;/strong&gt;을 통해&amp;nbsp;&lt;strong&gt;통전적으로 고찰&lt;/strong&gt;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레미야의 속죄 약속뿐만 아니라 에스겔이 강조한&amp;nbsp;&lt;strong&gt;정결의 과정&lt;/strong&gt;이 병행되어야 함을 역설하며, 단순한 믿음의 단계인&amp;nbsp;&lt;strong&gt;칭의를 넘어 성화의 단계&lt;/strong&gt;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내주하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백과 회개를 통해 우리 육체 속에 잔존하는&amp;nbsp;&lt;strong&gt;악한 영들을 내보내는 실천&lt;/strong&gt;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텍스트는 사도 요한의 신학적 전통을 따라&amp;nbsp;&lt;strong&gt;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정결함&lt;/strong&gt;을 유지함으로써 천국 입성을 준비하는&amp;nbsp;&lt;strong&gt;완전한 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의 성취를 그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ChatGPT Image 2026년 8월 26일 오후 10_11_2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973d9d5f5c3c3f7e8255d081ff2785a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9049394337b300bdd2dd81ef2ff66c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4aad2d83fd3b95c3413b8b16978320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ed59a1080d241daa75448b283fa337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52a8accff6930355aa46948536155d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8893fae060a175a13ad17185528bcd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727e9b2537e3adcebf9426fd873106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ff577d6298f3336ff1944ed5b38c50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8e06c7a3df34b8aaa5cfcb95090e51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c57bc508b1d72c9a38b9dc2e9a44f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292879f4acdd0ed192ea4d09d22a5e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9a49f64aa8f34710e45eecd193a35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de971caef2d5220fa0467e9b8aa7e63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534d71df36bbe3020e4a7c8fdf2c3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9ead925e69857e42bf5da4a44ce90f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0a460f73ef748033c685602326886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17115be1b897d8037a0f5de1a48621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f2473447adab23889d27c8c9681e70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9d017e6577e8fa661187bf607c761c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73261c54931fdd3ff002b72edc708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d7814eb683731b42473e7517a1478f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0993553c9bb4a4f2ce06bcc49b6d72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2d4b1186ee9423b644bfb779c7da58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70ed0628ec86e84752455a00ba1736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e9a2c66695d8e377ee543c9b2b8fd0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3cac2475d872e817cddc98fd483773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2a1a7ddfe88dac4199aeaaebd16c24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f33e64959c598210f627c64bfa2d060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새_언약의_완성과_구원_여정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32d156debcfd82553331a5bbf9f0176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urificatio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33cc136e28dfbe46c0075a6c8b1cfe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urificatio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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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렘31:31~34)_2026-08-25(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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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5T09:06:08+09:00</published>
		<updated>2026-08-25T20:51:3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렘31:31~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snBzpUMMXQ 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 (렘 31:31-3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인류가 죄악으로 가득 차자 노아 홍수로 심판하셨다. 그러나 홍수 뒤의 인류도 하...</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렘31:31~3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VsnBzpUMMXQ&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VsnBzpUMMXQ?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31:31-3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인류가 죄악으로 가득 차자 노아 홍수로 심판하셨다. 그러나 홍수 뒤의 인류도 하나님만 섬기지 않았다. 노아의 후손 가운데 니므롯이 일어났고,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우상숭배의 흐름에 합류했다. 나는 성경이 인용하는 야살의 책의 전승도 참고하면서 이 역사를 살핀다. 하나님께서는 혈통이나 한 지도자만 믿고 인류를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따라오는 한 사람을 통해 새로운 구원(救援, salvation)의 경륜을 시작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사람이 &amp;#39;아브라함&amp;#39;다. 하나님께서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자,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순종하여 나아갔다(창 12:1-4; 히 11:8). 그에게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기 생명을 보전하려고 아내를 누이라고 했고, 사라의 말을 따라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13년 동안 나타나지 않으신 시간을 지나 99세에 다시 찾아오셨을 때, 그는 &amp;ldquo;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amp;rdquo;는 말씀을 받고 할례에 순종했다(창 16:16; 17:1-27). 이후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에서도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산까지 가며 순종했다(창 22:1-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할례는 남자가 사흘 동안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울 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순종이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포함하여 집안의 모든 남자에게 그날 할례를 행했다. 그 뒤 백 세에 아들을 얻었고 사라는 구십 세에 이삭을 낳았다(창 17:23-27; 21:1-5). 이삭을 바칠 때의 나이에 관하여 요세푸스는 약 25세로, 야살의 책은 약 37세로 전한다고 알려져 있다. 어느 기록을 따르든 이삭은 아버지에게 붙들려 간 어린아이가 아니라 함께 순종한 장성한 아들이었다. 아브라함은 오랜 훈련을 통하여 자기 계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빚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3:14-17; 22:17). 그러나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 눈에 보이는 약속의 자손은 이삭 한 명뿐이었고, 소유한 땅도 사라를 장사할 막벨라 굴과 밭뿐이었다.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창 15:13-16; 23:16-20). 약속은 이삭과 야곱과 열두 아들에게 이어졌고, 야곱의 가족은 기근을 피해 애굽에 들어갔다가 약 400년 뒤에 출애굽하여 비로소 가나안으로 향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러 갈 때 주변의 아모리 족속들은 아브라함의 원수가 아니었다. 동맹이 되어 함께했다(창 14:13-24).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어도, 아직 죄악이 관영하지 않은 사람들을 때가 되기 전에 쫓아내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욕심대로 성급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심판의 분량이 차고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긴 기다림은 훗날 이스라엘이 그 땅을 받는 일도 은혜와 공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문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을 지내면서 어느새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과 형상숭배에 물들었다는 데 있었다. 시내산 아래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불렀다(출 32:1-6). 가나안에 들어간 뒤에는 다 쫓아내지 못했던 일곱 족속의 풍속을 좇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영적 간음과 육적 음행에 빠졌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짓지 않고 영원한 기업을 누리도록 율법과 제사 제도를 알려 주셨지만, 백성은 마침내 언약을 깨뜨렸고 마침내 B.C.586년 바벨론의 심판을 맞이하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백성을 포기하셨는가? 아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아홉 해 전인 주전 595년경, 하나님께서는 &lt;strong&gt;예레미야를 통해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약속&lt;/strong&gt;하셨다. 돌판 밖에 기록된 법을 마음 안에 두고, 짐승의 피가 아니라 &lt;strong&gt;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贖罪, atonement)&lt;/strong&gt;를 이루며, 사람 속에 생명주는 영이신&amp;nbsp;&lt;strong&gt;성령께서 거하시게 하는 처방&lt;/strong&gt;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하나님께서 왜 새 언약을 내놓으셨으며, 그 언약의 대상과 내용은 무엇이고,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가 어떻게 역사하며, 새 언약 안에 있는 성도가 왜 여전히 죄를 짓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배역한 이스라엘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내놓으신 까닭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내놓으신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자기 백성이 옛 언약(舊約, old covenant)을 깨뜨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갔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셨으나, 그들은 우상들을 다른 남편처럼 섬겼다(렘 31:32). 예레미야 시대에는 유다의 성읍 수만큼 우상이 많고 예루살렘 거리 수만큼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이 많다고 책망받았다(렘 2:13; 11:13).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과 말씀을 주셨는데도 육체의 욕망과 주변 민족의 미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 역사의 실패를 보시며 죄를 막을 계명을 하나씩 분명히 하셨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은 살인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보여 주었고, 노아의 수치를 드러낸 함의 집안에 임한 일은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이유를 보여 주었다(창 4:8-12; 9:20-27). 이처럼 십계명은 인간이 되풀이한 죄를 막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도록 주신 생명의 울타리였다(출 20:1-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시내산 언약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데 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말씀에 순종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누리게 하려 하셨다(출 19:3-6; 신 28:1-14). 율법을 어겼을 때에는 회개(悔改, repentance)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제사제도를 주셨다. 율법과 제사는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마련하신 은혜의 질서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못했고, 그들과 섞이면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 영적 간음은 결국 생활의 음행과 불의로 이어졌다. 마침내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타락했고, 백성은 성전이 있다는 사실만 믿은 채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죄가 계속 쌓이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성전이 무너지게 하시고 다윗 왕조가 끊어지게 하셨으며, 많은 사람을 칼과 기근으로 죽게 하고 약 5만 명을 포로로 끌려가게 허락하셨다(렘 7:1-15; 25:8-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단지 나무와 돌 앞에 절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남신과 여신의 성적 결합이 비와 풍요를 가져온다고 믿어 음행을 종교 의식으로 끌어들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와 소산을 기다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쾌락과 풍요의 신을 좇았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영적 간음이며 동시에 육적 음행으로 번졌다. 오늘도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돈과 쾌락과 다른 영을 함께 의지하면 이름만 달라졌을 뿐 같은 다신론의 길을 걷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하나님께서 판단하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악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거룩한 법이 사람 밖에만 있고 사람 안의 욕망이 바뀌지 않으면, 백성은 법을 알면서도 거역한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반복되는 짐승의 제사만으로는 죄의 문제를 영원히 끝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법을 마음에 기록하고 영원한 피로 죄를 처리하며 성령을 안에 보내시는 새 길을 예고하셨다. 새 언약은 실패한 백성을 버리신 표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백성을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처방전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예레미야의 회복 예언에서 새 언약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서에서 새 언약은 &lt;strong&gt;심판 뒤의 회복을 약속하는 &amp;lsquo;위로의 책&amp;rsquo;의 중심&lt;/strong&gt;에 있다. 예레미야서를 구분해보면 이렇다. 먼저 예레미야서는 제1장의 소명으로 시작한다. 제2장부터 제25장까지는 유다를 향한 열두 예언 묶음이고, 제26장부터 제45장까지는 바벨론 침공 전후에 주어진 사건과 예언이며, 제46장부터 제51장까지는 주변 열 나라를 향한 심판 예언이다. 제52장은 예루살렘 멸망과 여호야긴의 회복을 기록한 부록이다. 그 가운데 제30장부터 제33장까지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집중적으로 선포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회복 예언의 배치는 선지서마다 다르다. 이사야서는 제40장부터 제66장까지가 회복을 집중적으로 말하고, 에스겔서는 제33장부터 제48장까지가 회복을 다루되 제40장부터 제48장까지의 새 성전과 땅이 특히 중심이다. 그러나 예레미야서는 마지막이 열방 심판 예언으로 끝나고, 회복의 노른자위는 책 가운데에 있으니 그것은 제30장부터 제33장까지다. 바로 이 예언서의 한가운데에서 새 언약이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복의 첫 내용은 포로가 조상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와 다시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내용이다(렘 30:1-3). 그러나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겠다는 약속은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었고 이어져왔다. 예수님도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5). 가나안 땅의 회복은 단지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치적 사건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마침내 영원한 기업을 얻는 구원의 그림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서 예레미야는 야곱의 환난 뒤에 하나님께서 멍에를 꺾으시고 백성이 여호와와 하나님께서 세우실 왕 다윗을 섬길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30:7-9). 여기의 다윗은 이미 죽은 옛 왕이 다시 통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바벨론 포로 귀환이 먼저 이루어졌지만, 완전한 회복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의 통치 안에서 비로소 이루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제31장에서는 흩으신 하나님께서 목자가 양 떼를 모으듯 이스라엘을 모으신다고 말씀하신다(렘 31:10). 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도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다. 이후 예루살렘은 계속 타락하였고 주후 70년에 이르러서 완전히 무너졌고, 유대인은 약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흩어져 살았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독립했지만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이가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육적인 회복만으로는 새 언약의 완전한 목적에 이를 수 없음을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스라엘의 회복 예언의 핵심은 예레미야 31장 31절부터 34절까지 기록된 &amp;#39;새 언약&amp;#39;에 대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백성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사람의 내면을 당신의 법을 새겨넣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법을 사람의 속에 두고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며,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회복하고,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 하며, 죄악을 사하고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땅의 회복보다 더 깊은 회복은 죄와 하나님을 떠나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한민족이 받은 은혜도 회개와 말씀의 회복 속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명절이나 제삿날에야 쌀밥과 새 양말을 기대할 만큼 어려웠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그 영적 전환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1907년 평양 대부흥의 회개 운동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 회개가 훗날 어떤 열매를 맺을지 다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백성을 통해 나라를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받은 복을 우리만 누리지 말고, 마지막 시대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세계에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한 새 언약은 곧바로 체결되지 않았다. 즉 바벨론에서 돌아온 스룹바벨 시대에 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이어졌다. 얼마동안 기다려야 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의 신분으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위로는 단순한 귀환 예언이 아니다. 심판을 통과한 백성에게 메시아와 새 언약을 주어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구원 경륜의 핵심 약속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시내산의 옛 언약은 어떻게 세워졌으며 그 약점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옛 언약&amp;#39;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옛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손을 잡고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세우신 언약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두 돌판에 새겨 주셨고, 모세는 언약서를 백성에게 읽어 주었다. 백성이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대답하자, 모세는 제물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amp;ldquo;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amp;rdquo;라고 선포했다(출 24:3-8). 말씀과 피로 언약이 체결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언약에는 &amp;#39;복&amp;#39;과 &amp;#39;책임&amp;#39;이 함께 있었다.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약속의 땅에서 복을 누린다. 죄를 지었을 때에는 소와 양과 염소 같은 제물을 드려 속죄를 받아야했다. 제사 제도는 죄의 삯이 사망임을 보여 주고, 죄인 대신 피 흘릴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쳤다(레 17: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옛 언약에는 약점이 있었다. 즉 인간의 죄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첫째, 법이 돌판과 율법책이라는 외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이 말씀을 가까이 두고 배우면 생명의 길을 알 수 있었지만, 보지 않거나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고 외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은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 읽어야 했고 제사장들은 백성을 가르쳐야 했으나, 왕과 제사장부터 말씀을 버리고 따르지 않았다(신 17:18-20; 말 2:7-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죄를 처리하는 피가 짐승의 피였다. 고로 그 피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희생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이었기에, 죄를 지었으면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해마다 대속죄일 제사가 되풀이된 사실 자체가 죄의 문제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모형으로 주어진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영원히 없애지는 못한 것이다(히 10: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하나님의 법을 읽고 가르치는 일의 중요성은 교회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열매 가운데 하나는 라틴어 성경을 성직자만 붙들고 있던 시대를 넘어, 1,534년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백성이 직접 읽게 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개혁의 정신을 말하면서도 성경보다 교파들이 만들어낸 교리만 앞세운다면 개혁의 핵심을 잃어버린다. 돌판과 책에 기록된 말씀이 사람의 마음까지 들어오려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옛 언약의 약점은 하나님의 법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법이 밖에 있고 죄의 욕망이 안에 있는 인간이었다. 죄를 지적하는 계명은 있었지만 그 계명을 기쁨으로 지킬 새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죄를 덮는 짐승의 피는 있었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원히 효력을 나타낼 하나님의 피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돌판을 마음판으로 바꾸고, 짐승의 피를 예수님의 피로 바꾸며, 사람 안에 성령을 보내시는 새 언약을 준비하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예레미야 31장에 약속된 새 언약의 대상과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새 언약의 대상은 누구인가? 주님은 그들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amp;ldquo;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amp;rdquo;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출애굽 때 세운 언약과 같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셨는데도 조상들이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렘 31:31-3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amp;#39;유다 집&amp;#39;은 혈통적으로 언약 안에서 태어난 유대 백성을 가리키고, &amp;#39;이스라엘 집&amp;#39;은 이방인과 혼혈족이 되어버린 북이스라엘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이름처럼 믿음으로 이기는 영적 후손으로서 이방인까지 품는 표현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혈통적으로 유다와 베냐민에 속한 유대인들이었지만, 그들을 통해 천국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해졌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가는 일을 어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집으로 그를 인도하셔서 천국 열쇠를 사용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다(행 10:9-48; 9:15; 갈 2:7-8). 그리하여 새 언약은 유대인에게서 시작되어 이기는 모든 민족에게 열리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새 언약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네 가지다. &lt;strong&gt;첫째, 하나님께서 법을 사람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lt;/strong&gt;하신다는 것이다. &lt;strong&gt;둘째,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lt;/strong&gt;이 되신다는 것이다. &lt;strong&gt;셋째,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lt;/strong&gt; 된다는 것이다. &lt;strong&gt;넷째, 하나님께서 악행을 사하고 죄를 다시 기억하지&lt;/strong&gt; 않으신다는 것이다(렘 31:33-34). 즉 법의 내면화, 언약 관계, 하나님을 아는 지식, 완전한 죄 사함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하나님의 법이 사람의 마음에 기록되는 것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것은 성령의 내주로 이루어진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 되고,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신다(고전 6:17; 요 14:26; 16:8). 밖에서 명령만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안에 계신 성령께서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가르치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유의지를 없애고 기계처럼 순종하게 하시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사람이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기를 기다리신다(계 3:20).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그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과 떨어지지 않을 생명의 관계를 맺으신다(요 1:12-13). 그러므로 새 언약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안에 계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예수께서는 언제 누구와 무엇으로 새 언약을 체결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드디어 예레미야의 예언이 있은 후 625년이 지났을 때,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신다. 떡을 떼어 자기 몸이라고 하시고, 잔을 주시며 자기 피로 세우는 &amp;#39;새 언약&amp;#39;이라고 선포하셨다(눅 22:20). 시내산에서는 모세가 짐승의 피를 뿌려 옛 언약을 체결했지만, 새 언약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의 몸과 피로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22:19-20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옛 언약은 여호와께서 세우셨고 새 언약은 예수께서 세우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한 분 하나님이 체결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의 여호와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여 아들의 신분으로 새 언약을 체결하신 것이다. 고로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amp;ldquo;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amp;rdquo;라고 고백했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고 증언했다(요 20:28; 행 20: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 역시 한 분 하나님을 분명히 배우기 전에는 예수님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섭섭해하지 않으실까, 성령님을 초청하면 또 다른 분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여 주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성경이 풀리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amp;ldquo;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요 14:14). 고로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신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한 분 하나님을 셋으로 나누는 다신론으로 믿어서도 안 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나타나심과 사역을 뒤섞는 양태론으로 가서도 안 된다. 구약에도 주 하나님이 계시고 신약에도 주 하나님이 계신다. 이사야는 우리에게 나신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예언했다(사 9:6).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다(계 1:8, 17-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예수께서는 누구와 새 언약을 체결하신 것인가? 예수께서는 마가 다락방에 있던 제자들도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들은 혈통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다(마 28:18-20). 그리하여 12사도의 하나였던 베드로는 할례받은 이들에게 주로 복음을 전했고, 이어서 바톤을 이어받은 바울은 이방인 복음 전파를 기쁨으로 감당하면서 새 언약을 땅끝까지 전해주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복음의 은혜를 주신 목적도 우리만 복을 누리게 하려는 데 있지 않다. 이 회개와 천국 복음도 역시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더 좋은 약속으로 세워진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仲保者, mediator)이시다(히 8:6). 그분은 제삼자의 피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간 분이 아니라 자기 피를 가지고 이 땅에 법궤와 하늘의 성전으로 가셨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새 언약을 친히 보증하셨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확실함은 인간의 결심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흘리신 피와 지금도 살아 계신 중보자에게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내주는 새 언약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새 언약의 두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영원한 속죄요 또 하나는 영원한 성령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는 짐승의 피처럼 반복해서 드릴 모형이 아니라 죄를 실제로 처리하는 참된 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기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 성령께서는 믿는 이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법을 알게 하고 지키도록 이끄신다(히 9:11-14; 10:10-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놀라운 사실은 지금부터 듣는 말씀에 있다. 그때 흘리신 &lt;strong&gt;예수님의 피에 두 가지 효능&lt;/strong&gt;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죄를 사하여 의롭다고 칭해 주는 &lt;strong&gt;칭의(稱義, justification)의 효능&lt;/strong&gt;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사람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을 힘 있게 증언했다(롬 3:23-26; 갈 2:16). 예수님의 피가 비로소 죄를 덮어버림으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는 죄와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는 &lt;strong&gt;정결(淨潔)의 효능&lt;/strong&gt;이다. 사도 바울 이후 약 30년을 더 살며 계시를 받았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죄를 자백하면 죄 사함과 함께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는 속죄만이 아니라 이 정결의 방면을 반드시 회복하고 전해주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7-9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속죄(죄 사함)와 정결(깨끗함)은 사실 구별되지만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예수를 믿을 때 피로 자신의 죄가 용서함 받는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믿은 뒤에 지은 죄를 방치하기 쉽다. 그러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나의 죄가 지워지고,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을 떠나보낼 근거가 생긴다. 예수님의 피는 죄책만 덮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의 안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은 예수님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으며 성령께서 이를 증언하신다고 했다(요일 5:6-8). 예수님은 승천하셨지만 우리에게 피의 효능과 씻음의 은혜를 남겨 두셨고, 성령께서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신다. 피로 죄를 사하고 깨끗하게 하며,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게 하는 것이 새 언약의 작동 원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께서는 사람의 영과 연합하여 안에서 말씀하신다. 무엇이 죄인지, 지금 따라가는 가르침이 생명의 말씀인지, 과거의 신앙 습관이 하나님의 뜻과 맞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교단의 교리나 사람의 말이 성경과 성령의 가르침보다 앞설 수 없다. 종교개혁이 성경을 모든 사람의 손에 돌려준 것은 귀한 일이지만, 후대가 개혁자의 일부 강조만 붙들고 성경 전체를 놓친다면 다시 돌판 밖의 종교로 돌아가는 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새 언약을 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피와 성령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lt;strong&gt;피를 말하면서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정결에 이르지 못하고, 성령을 말하면서 예수님의 피를 떠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lt;/strong&gt;. 죄를 자백하여 깨끗함을 받고,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amp;ldquo;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amp;rdquo;는 관계가 실제 삶에서 열매 맺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새 언약 안에 들어온 성도도 왜 여전히 죄를 짓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새 언약 안에 들어온 성도가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비록 성령을 받았어도 자유의지가 사라지지 않고 있고, 육체의 욕망 역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법을 마음에 기록하고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지만,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거절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다시 죄를 짓게 된다. 새 언약은 죄를 지을 수 없도록 사람을 강제로 묶는 제도가 아니라, 죄를 이길 생명과 능력을 안에 주고 그 인도를 선택하여 따르게 하는 언약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믿는 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분명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르쳐주신다. 고로 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amp;ldquo;내가 지금까지 진리의 말씀이 아닌 것을 믿고 살았구나. 내가 헛다리를 짚은 채 수 십 년을 보냈구나&amp;rdquo; 하고 깨닫게 하신다. 그런데도 사람은 더 편하게 살고 싶고 더 쉽게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서, 성령의 책망보다 익숙한 교리와 과거의 신앙 방식을 따라가려 한다. 진리가 틀린 말씀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특히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 두려운 책임을 져야 한다.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교리만 반복하거나, 영적 간음과 육적 음행을 가볍게 여긴 채 목회자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는 새 언약의 약속은 교만하게 배우기를 멈추라는 허가가 아닌 것이다.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씀 앞에 누구나 겸손히 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평신도는 계속 배우려고 마음이 있다. 그러나 한 번 목회자가 된 사람은 자신이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여 배우기를 멈추기 쉽다. 그러나 성경을 알지 못하고 가르친 잘못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많은 영혼을 그릇된 길로 이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가르치는 자를 더 엄히 심판하신다(약 3:1). 목회자는 사람에게 배운 교리를 지키는 데 만족하지 말고, 성경을 다시 펴고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예수님의 피가 영원한 효력을 지녔다고 해서 회개가 필요 없어졌다고 가르쳐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영원한 피가 준비되었기에 언제든 자기가 지은 죄를 자백하고 씻음받아야 한다. 믿은 뒤의 지은 죄는 가만 두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에 죄 사함도 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며, 죄의 충동을 일으키던 악한 영도 떠나보낼 근거를 획득한다. 이렇게 깨끗해질수록 성령의 인도를 더 분명히 따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실패했던 이유를 오늘의 교회가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언약 백성이라는 이름과 성전과 제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보다 다른 신과 우상과 쾌락을 더 사랑했다. 오늘도 예수를 믿는다는 이름과 교회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돈과 명예와 음행과 자기 교리를 더 사랑하면 같은 배역의 길을 가는 것이다. 새 언약의 표지는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마음에 기록된 법을 따라 사는 순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이기지 못하고 죄를 고집하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성령께서 떠나며 성 밖에 남을 수 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고, 요한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와 성 밖에 있는 자를 구별한다(계 3:5; 22:14-15). 새 언약을 한 번 받았다는 과거의 체험만으로 안심하지 말고, 날마다 피로 씻고 성령을 따라 끝까지 이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을 따라 행하고, 죄를 깨달을 때 즉시 자백하며, 예수님의 피로 정결함을 받아야 한다. 속죄의 은혜를 죄의 면허로 바꾸지 말고, 성령의 내주를 감정적인 체험으로만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과 성령을 따라 육체의 소욕을 거절하고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될 때, 새 언약이 목표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준비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배역한 이스라엘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새 언약의 비밀을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백성은 애굽과 가나안의 우상숭배에 물들어 언약을 깨뜨렸고, 마침내 바벨론의 심판을 받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옛 언약의 법은 돌판 밖에 기록되었고, 제사에는 반복해서 드려야 하는 짐승의 피가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약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법을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고 예수님의 영원한 피로 죄를 처리하며 성령을 사람 안에 보내시는 새 언약을 약속하셨다. 예레미야 30장부터 33장까지의 위로와 회복은 이 약속에서 절정에 이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 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마가 다락방에서 자기 피로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사하여 의롭다 하실 뿐 아니라, 죄를 자백하는 사람을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마음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법을 생각나게 하고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새 언약의 은혜를 받았어도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소욕과 익숙한 교리를 따르면 다시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은 뒤의 죄도 계속 자백하여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고,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새 언약을 죄를 덮어 주는 장치로만 여기지 말고 하나님만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생명의 언약으로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배역한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내놓으신 처방은 더 강한 외적 통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내주였다. 우리는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말씀을 배우며 성령을 따라 죄와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고 예수님의 피로 날마다 정결함을 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5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타락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키기 위해 제시하신&amp;nbsp;&lt;strong&gt;새 언약의 비밀&lt;/strong&gt;과 그 성취 과정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구속사를 훑으며, 돌판에 새겨진 율법이라는&amp;nbsp;&lt;strong&gt;옛 언약&lt;/strong&gt;이 인간의 육체적 정욕과 한계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법을 인간의&amp;nbsp;&lt;strong&gt;마음속에 직접 기록&lt;/strong&gt;하고 성령을 내주하게 함으로써, 단순히 죄를 덮는 수준을 넘어&amp;nbsp;&lt;strong&gt;본질적인 정결과 순종&lt;/strong&gt;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셨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칭의론을 넘어 사도 요한이 강조한&amp;nbsp;&lt;strong&gt;예수 피의 두 가지 효능&lt;/strong&gt;, 즉 속죄와 자백을 통한 정결함을 강조하며 마지막 시대 성도들이 가야 할&amp;nbsp;&lt;strong&gt;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핵심 목적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ChatGPT Image 2026년 8월 25일 오후 08_47_5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330d1a5f0de43b606a9cb626248d816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51c2af9050563ec696f127d69c3900a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e6fca4cff0886eb1f1c7bc24831041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cc9b34de650c736ccd209dc22a1262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a27b6a2a0dab770a2c3e8c4337e0f3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67ced1e2e55b0d986be0eb77ac2d327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b89141937ee71ee7ec19c59d9d2f35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e5d535563afbd05be928f6f85f4d30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6cd00883ed85bd9a08da6d8298ed65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5616aa01827965c62dc7d35b1ecee8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628692797971bbf5898b13ec4ee59bf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dba3a63c1cd606eb86e4ac53a44752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7a45527d763a89845c33805c91ec8d3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425093c83eb5d9f26ddab5aafb48e6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79ba64935d40fcae3f50a3b06d4521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ec96d6fbdca02c79fdeb5032a3c459d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새_언약과_영적_회복_원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4dbe870cbb9a2ee007aca25779092cd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25614a938b5d2144508d53ec9ec0b7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0f096b1ce5581ff9e6a749e75a1db9f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229fa99a581023f1dccdce4d8d1de0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7b0270284fb806215ba4dbf8d0a5f3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84cd5592577b20c754b542b5e5f8e73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d0ca42d0c82cfeaedde83e4199ace9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ac5f07a0be7c1ca8060c77e13f8f7f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0920f9639cd694cf8290d686c709fb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b2e8dc883e4ce8a0beb0a7033700c67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d73e7655fa08ab666106490ab7dda8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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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73)]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렘23:1~8)_2026-08-24(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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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4T20:48:30+09:00</published>
		<updated>2026-08-25T09:10:3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3)]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렘23: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8xcYOHRXMA 기독론(173)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 (렘 23:1-8)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구약의 중요한 직분에는 &#039;왕&#039;과 &#039;선지자&#039;와 &#039;제사장&#039;이 있다. 이 직분을 맡은 사람은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사무...</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3)]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렘23:1~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E8xcYOHRXM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E8xcYOHRXM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23:1-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중요한 직분에는 &amp;#39;왕&amp;#39;과 &amp;#39;선지자&amp;#39;와 &amp;#39;제사장&amp;#39;이 있다. 이 직분을 맡은 사람은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사무엘은 세 직분의 기능을 함께 보여 준 초기 인물이었다. 그중에서도 &amp;#39;다윗&amp;#39;은 왕직을 대표한 인물이었고, &amp;#39;아론&amp;#39;은 제사장을 대표하는 자였으며, &amp;#39;이사야&amp;#39;는 선지자로서 메시아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과 영광을 풍성하게 예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온전하게 성취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분에게 &amp;#39;그리스도&amp;#39;라는 직책을 붙이는 이유는 예수께서 &amp;#39;기름부음받은 자&amp;#39;로서 완벽한 삶을 살으셨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선지자로서 대표적인 인물을 고르라고 하면 구약인물을 연구하신 분들은 단연코 &amp;#39;이사야&amp;#39;를 거론할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 그만큼 메시야를 풍성하게 예언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보다 약 백 년 뒤쯤에 활동했던 &amp;#39;예레미야&amp;#39;와 &amp;#39;에스겔&amp;#39;과 &amp;#39;다니엘&amp;#39;도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한 선지자였다. 참고로 이 셋은 같은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이다. 그중에서 &amp;#39;에스겔&amp;#39;은 환상 가운데 장차 이루어질 성전과 생명수의 강과 회복된 땅을 보았다. 그 환상에서 새 성전이 나오는데, 그것을 오늘날 천년왕국 시대에 지어질 성전이라고 해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예언은 100% 성취되지만 인간이나 민족에 대한 예언은 그들의 순종에 따라 일부는 성취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성취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향한 예언은 저 천국에서 완전하게 성취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100% 순종할 사람은 예수님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강가의 나무들을 보았는데, 신약시대 사도 요한은 생명수의 강과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를 보았다(겔 47:1-12; 계 22:1-2). 이는 인간을 향한 완전한 성취는 천국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서, 베냐민 지파의 땅인 아나돗에 거주하고 있던 제사장이었다. 그는 요시야 왕 제13년인 주전 627년경 부름받아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약 41년 동안 예언했다(렘 1:1-3). 그는 제사장이면서 선지자로 부름받았기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타락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고, 그들이 권력과 탐욕을 따라 거짓을 예언하는 모습을 날카롭게 책망할 수 있었다. 또한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현장을 지켜보며 백성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다. 그러므로 그는 눈물의 선지자이자 회개의 선지자라고 불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서는 제1장의 그의 소명으로 시작된다. 제2장부터 제25장까지에는 유다를 향한 열두 가지 예언 묶음이 있고, 제26장부터 제33장까지에는 바벨론의 제3차 침공 전후 사건과 예언이, 제34장부터 제45장까지에는 함락 직후의 사건과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제30장부터 제33장까지는 심판 뒤의 회복을 말하므로 &amp;lsquo;위로의 책&amp;rsquo;이라 불린다. 그리고 제46장부터 제51장까지에는 애굽을 비롯한 열 나라를 향한 심판이 나오며, 제52장은 여호야긴의 회복을 전하는 부록 부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어떤 선지자로 부르셨을까? 예레미야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남유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워 나라들을 뽑고 파괴하며 다시 건설하고 심게 하는 사명을 맡기셨다(렘 1:4-1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 책은 대부분 심판과 심판의 중요성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심판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유다가 멸망하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시고, 그를 통하여 유다와 이스라엘을 구원하며 새 출애굽과 새 언약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렘 23:5-8; 31:31-34; 33:14-18). 예레미야 23장과 33장에 흩어진 내용을 함께 살펴보면, 장차 오실 메시아의 신분과 직분과 사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예레미야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일곱 가지가 무엇이며, 그 약속을 누리기 위해 오늘 우리가 어떻게 회개하고 순종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레미야가 장차 도래할 메시야에 대해 예언한 7가지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모습을 살펴보면, 대략 일곱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는 다윗에게서 나오는 의로운 가지로 오신다. 둘째, 그는 왕으로 오신다. 셋째, 그는 지혜롭게 다스리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의로운 통치자다. 넷째,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구원자다. 다섯째, 그의 이름은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다. 여섯째, 그는 자기 백성을 애굽과 바벨론보다 더 근본적인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는 새 출애굽의 인도자다. 일곱째, 그는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약속하는 새 언약의 중보자요 체결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일곱 가지 그리스도에 관한 중심 본문은 일곱째 정의를 제외하면 모두 예레미야 23장과 33장에 나오는 것들이다. 특히 23장과 33장의 말씀은 대부분 겹친다(렘 23: 5-6, 33:15-18). 그중에서 예레미야 23장은 여호와께서 악한 목자들을 책망한 뒤, 하나님께서 친히 남은 양 떼를 모으시고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면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릴 것이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라고 불릴 것이라고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3:5-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구원의 규모를 새 출애굽으로 확장한다. 훗날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단지 애굽에서 나온 사건만을 말하지 않고, 북방 땅과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돌아온 일을 두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고백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렘 23:7-8). 역사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회복을 가리키지만, 그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사탄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영적 출애굽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3:7-8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다만 예레미야 23장과 33장의 차이는 장차 도래할 메시야가 왕직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직을 함께 수행하실 것을 밝힌다. 다시 말해 예레미야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레위 사람 제사장도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릴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렘 33:14-18). 그러나 역사 속에 다윗 왕조와 레위 제사장직은 중단되었지만, 예수님 안에서 그 약속의 실상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원한 왕이시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시 110:4; 히 7:20-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예언은 &amp;#39;새 언약&amp;#39;의 중보자이차 체결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시대처럼 구약시대에는 돌판에 기록된 율법만 주셨느데, 장차 그날이 오면 이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백성의 속에 두며 마음에 기록하고 그들의 죄악을 사하겠다고 약속하셨다(렘 31:31-34). 이 새 언약에는 죄를 처리하는 속죄와 하나님의 법을 마음속에서 따르게 하는 성령의 내주가 함께 들어 있다. 다만 이 내용은 예레미야 기독론에서 따로 살펴야 할 만큼 중요하므로, 여기에서는 메시아가 새 언약의 중보자요 체결자로 오신다는 사실만 먼저 말씀드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지금까지 언급한 일곱 예언은 사실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담당하고,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며, 자신의 의로 유다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새 출애굽과 새 언약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약속이 한 사람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메시아가 다윗의 의로운 가지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레미야가 예언한 첫 번째 메시야는&amp;nbsp; &amp;lsquo;다윗의 의로운 가지&amp;rsquo;로 오신다는 것이다(렘 23:5, 33:15). 이 말은 메시야가 장차 다윗의 혈통을 따라 사람으로 오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 시대에 다윗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삼하 7:12-16). 그러나 다윗의 후손으로 이어진 유다 왕조는 죄로 인하여 타락했고, 예레미야 시대에는 시드기야 왕을 끝으로 무너지게 된다. 인간 왕조로만 바라본다면 그 약속은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다시 일으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amp;lsquo;가지&amp;rsquo;라는 표현은 잘려 나간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유다 왕조가 바벨론에 의해 잘려 나가고 다윗의 보좌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뿌리에서 새 왕을 일으키신 것이다. 이사야도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11:1-5). 예레미야의 &amp;lsquo;다윗의 의로운 가지&amp;rsquo;는 이 약속을 이어 받아 멸망 뒤에도 다윗 언약이 끝나지 않았음을 선포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로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족보는 그분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고 시작한다(마 1:1-16). 이는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원자라고 주장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메시아라는 뜻이다. 메시아를 분별하려면 감동적인 말이나 놀라운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이 그에게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구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거짓 영의 미혹을 분별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예레미야는 단지 &amp;lsquo;다윗의 가지&amp;rsquo;라고 하지 않고 &amp;lsquo;의로운 가지&amp;rsquo;라고 했다. 다윗의 후손이라고 해서 모두 의로운 왕은 아니었다. 여호야김과 여호야긴과 시드기야를 비롯한 마지막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나라를 멸망으로 끌고 갔다. 장차 오실 메시아는 그들과 달리 죄가 없고,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며, 백성을 의롭게 하는 왕이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뽑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에 말씀을 두시고 또한 그를 여러 나라와 왕국 위에 세우신 목적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한편 건설하고 심게 하려는 것이었다(렘 1:9-10). 그러므로 죄악으로 굳어진 왕조는 뽑힐 것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폐기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옛 왕조의 실패를 뛰어넘어 완전한 왕을 새로 심으실 것인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의 의로운 가지라는 이름에는 심판 뒤의 회복과 인간 왕의 실패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함께 담겨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사실은 그의 참된 인성이 무엇인지도 보여 준다. 그는 실제 역사 속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인간의 연약함과 고난을 담당하셨다. 동시에 다윗이 &amp;lsquo;내 주&amp;rsquo;라고 불렀던 분이므로 단지 다윗보다 뒤에 태어난 인간 왕에 머물지 않는다(시 110:1; 마 22:41-46).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본래는 다윗의 주이신 분,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메시아는 어떻게 왕이자 의로운 통치자가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lt;strong&gt;둘째로, 다윗의 가지가 &amp;lsquo;왕이 되어&amp;rsquo; 지혜롭게 다스린다&lt;/strong&gt;고 예언했다(렘 23:5, 30:9, 34장). 그러므로 예수님은 탄생부터 왕으로 증언되셨다. 동방 박사들은 &amp;ldquo;&lt;strong&gt;유대인의 왕&lt;/strong&gt;으로 나신 이&amp;rdquo;를 찾았고(마 2: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그 머리 위에는 &amp;ldquo;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amp;rdquo;는 죄패가 붙었다(마27:37). 사람들이 조롱의 뜻으로 붙인 칭호까지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왕권을 증언하는 표지가 되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도 자신의 나라와 왕권을 부인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의 나라는 세상의 정치 체제와 같은 방식으로 세워지지 않는다(요 18:33-37). 그는 &lt;strong&gt;영계의 왕&lt;/strong&gt;이시며 &lt;strong&gt;자연 만물의 왕&lt;/strong&gt;이시다. 그러므로 귀신들을 꾸짖어 내쫓으셨고,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으며, 물 위를 걸으시고 물고기의 입에서 성전세를 얻게 하셨다(막 1:23-27; 4:39-41; 마 14:25; 17:27). 이러한 사건은 피조 세계가 그분의 명령 아래 있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수님의 왕권은 힘만 나타내는 권세가 아니다. &lt;strong&gt;셋째로, 그는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의로운 통치자&lt;/strong&gt;다(렘 23:5). 예레미야 시대의 왕들과 관리들은 권력을 자기 욕심에 사용했고,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탐욕과 거짓에 빠졌다. 그들은 &amp;ldquo;평안하다&amp;rdquo;고 외치면서 임박한 심판을 감추었다. 그러나 메시아는 악을 선하다고 부르지 않으며, 뇌물이나 사람의 지위에 따라 판결을 굽게 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정의와 공의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왕은 악을 심판하는 정의를 실행하면서도 회개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의로운 길을 마련해야 한다. 예수님은 죄를 눈감아 주는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셨다. 죄의 삯인 사망을 친히 담당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믿고 회개하는 이에게 자신의 의를 입혀 주셨다(롬 3:23-26).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나타난 왕의 통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33장은 다윗에게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렘 33:17). 역사상 다윗 왕조는 중단되었으나 예수님의 왕권은 끝나지 않는다. 그분은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마지막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나타나실 것이다(행 2:30-36; 계 19:16). 세상의 왕들은 일정 기간만 다스리지만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죄를 용서해 주는 구주로만 알고 통치자로는 모시지 않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 왕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뜻이다. &amp;ldquo;주여, 주여&amp;rdquo;라고 부르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마 7:21). 의로운 왕을 기다리는 사람은 오늘 자기 생각과 생활도 그 왕의 말씀 아래 복종시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메시아는 왜 유다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예언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lt;strong&gt;넷째로, 메시야는 유자와 이스라라엘의 구원자로 오실 것&lt;/strong&gt;이라고 했다(렘 23:6). 메시아의 날이 도래하면, 유다는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라고 했다(렘 23:6). 예레미야 33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하신 선한 말씀을 성취할 날이올 것을 언급하면서 유다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안전을 약속하고 있다(렘 33:14-16). 그런데 예레미야가 활동할 당시 북이스라엘은 이미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한 뒤였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을 함께 부르신 데에는 회복의 범위가 남유다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먼저, 유다는 예레미야 당시에 혈통적으로 남아 있던 언약 백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훗날 예수님은 유다 지파와 다윗의 가문을 통해 오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한사코 당신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셨다(마 10:5-6; 롬 1:3).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 남은 유대인들에게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구원은 혈통적인 유대인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품으려고 했던 유대인들이 그분을 거부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시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복음은 혈통적으로 유다민족에게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방인 민족에게까지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마 28:18-20; 행 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예레미야가 서로 구별하여 사용했던 &amp;lsquo;유다&amp;rsquo;와 &amp;lsquo;이스라엘&amp;rsquo;은 혈통적인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과 영적으로 이기는 자의 무리인 교회로 봐야 한다. 특히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명을 해석할 때에 단지 혈통적인 이스라엘의 12지파만으로 단정지어서는 아니 된다. 만약 그렇게 말했다면 144,000명은 야곱의 후손이라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성경은 144,000명이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amp;#39;이스라엘&amp;#39;이라는 뜻이 &amp;#39;이기는 자&amp;#39;를 가리키는 용어인 만큼 하나님께 충성하여 이긴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함을 알려준다(계 7:1-8; 14:1-5).&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완전히 지워 버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각각 부르시면서 흩어진 자기 백성을 모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이스라엘은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장차 &amp;#39;이기는 자들&amp;#39;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는 남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회복이 있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메시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구원받는 영적 회복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장차 모든 구속받은 백성은 혈통적인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하여 이기는 자들이 어린양의 피로 씻은 한 무리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계 7:9-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메시아가 구원자라는 말은 단지 외적인 환경을 평안하게 만드는 분이라는 뜻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은 바벨론의 칼과 포로 생활에서 구원받아야 했지만,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마 1:21). 죄를 그대로 품은 채 정치적 안전만 얻는 것은 메시아 구원의 완성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약속과 메시아 자신에 관한 예언도 구별해야 한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이루신 예언은 하나님께서 친히 성취하셨다. 그러나 사람이 받을 복과 직분에 관한 약속은 그 사람의 믿음과 순종에 따라 성취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의 약속도 그들이 불순종했기에 이 땅에서 온전히 누리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지만 사람의 불순종까지 복으로 인정하지는 않으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12제자들 모두에게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릴 약속을 주셨다(눅 22:28-30). 그러나 필자가 천국을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열두 제자 가운데 실제로 이십사 보좌에 앉은 이는 베드로뿐이다.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약속을 들은 것과 그 약속에 합당하게 끝까지 사는 것은 같지 않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라는 이름은 무엇을 뜻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lt;strong&gt;다섯째로, 메시아의 이름이 장차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lt;/strong&gt;라고 불릴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23:6). 이는 여호와께서 친히 자기 백성의 공의가 되어 주신다는 뜻이다. 사람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고 자기 행위로 죄값을 없앨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을 담당하고 우리에게 의로운 길을 열어 주셔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요한은 오히려 자신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amp;ldquo;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마 3:13-15). 필자는 이 세례를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이 안수하여 세상 죄를 예수님께 넘기는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다음 날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했다(요 1: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이때 인류의 대표자였언 세례 요한으로부터 넘겨받은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고, 죄 없으신 아들에게 죄의 형벌을 담당하게 하심으로 공의를 이루셨다. 동시에 그 대속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죄 사함의 길을 여셨다. 그러므로 &amp;lsquo;우리의 공의&amp;rsquo;는 우리가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신 속죄를 의지한다는 고백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33장에서는 메시아만이 아니라 그분의 성읍도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라는 이름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메시아의 의가 그가 다스리는 백성과 성읍의 정체성이 된다는 뜻이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인간의 공로나 교단의 이름을 앞세워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어린양의 피로 씻고 예수님의 의를 입은 사람이 들어간다(계 7:13-14; 21: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칭의의 복음을 들을 때, 이제는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으니 죄를 계속 지어도 괜찮다는 허가로 들어서는 안 된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는 길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요일 1:7-9). 종교개혁 시대에는 행위 공로에 맞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진리가 강력하게 선포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대의 교리만 붙들고 예수님이 명하신 회개와 순종과 거룩함을 밀어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인간 가운데 가장 뛰어나게 쓰임받은 종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필자는 사도 바울이 말했던 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발언과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딸을 결혼시키지 말라는 권면 및 우상 제물에 관한 바울의 일부 권면에도 당시 상황과 인간적 한계가 들어있다고 본다(고전 7:25-40; 8:1-13; 14:34-35). 사실 바울은 어떤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 한 쪽 측면만을 증언했지만, 예수님은 전체 구원 경륜의 주인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이나 종교개혁자의 말을 예수님의 말씀보다 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자기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불법을 행하는 사람을 결국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는 믿는 자가 되었어도 날마다 죄를 씻어야만 생명나무와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마 7:21-23; 계 22:14-15). 그러므로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속죄를 붙드는 동시에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깨끗함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어야 한다. 공의의 이름은 값싼 위로가 아니라 죄를 끊고 거룩한 성에 들어가게 하는 구원의 능력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메시아는 어떻게 새 출애굽의 인도자이자 영원한 제사장이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여섯 번째로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새 출애굽의 인도자&lt;/strong&gt;라고 예언하였다(렘 23:7-8). 사실 성경에는 육적인 출애굽의 큰 모형이 두 번 나타난다. 첫째는 모세를 통하여 애굽의 종살이에서 나온 출애굽이고, 둘째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새 출애굽이다. 예레미야는 훗날 백성이 더 이상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사건만을 고백하지 않고, 북방 땅과 흩어진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고백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23:7-8). 당시 백성에게 이러한 말씀은 바벨론 귀환의 약속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애굽 왕 바로와 바벨론 왕이 붙들고 있던 종살이는 더 깊은 영적 실상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여 죄의 종이 되었고 사탄 마귀의 권세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강한 자를 결박하고 그 세간을 빼앗듯이 마귀의 일을 멸하며 사람을 자유롭게 하려고 오셨다(마 12:28-29; 요일 3:8). 그러므로 새 출애굽의 최종 목적은 이 땅의 한 나라로 돌아오는 데 있지 않고, 죄와 사망과 악한 영의 권세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에는 피가 필요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의 심판을 피했다(출 12:5-13). 새 출애굽에서도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자기 피를 흘려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요 1:29; 계 1:5-6). 피가 죄를 처리하므로 마귀가 사람을 붙들던 법적 근거가 제거되고, 믿고 회개하는 사람은 어둠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다(골 1:13-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사역을 위해 메시아는 왕일 뿐 아니라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왕은 원수를 정복하고 백성을 다스리지만,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속죄를 담당한다. 예레미야 33장은 다윗의 왕위에 앉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릴 레위 제사장이 끊어지지 않을 것을 함께 말한다(렘 33:17-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33:17-1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내 앞에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역사 속 레위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직분을 영원히 계속할 수 없었고, 그들이 드린 제사도 반복되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오셨으면서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시 110:4; 히 7:11-28). 그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단번에 속죄를 이루셨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히 9:11-14; 10:10-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은 새 출애굽을 시작만 해 놓고 떠나는 지도자가 아니다. 왕으로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피로 죄를 씻으며, 끝까지 중보하여 백성을 목적지에 이르게 하신다. 이 구원의 완성은 새 언약과 연결된다. 죄를 사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기록하여 성령을 따라 걷게 하시는 것이다(렘 31:31-34). 새 언약의 두 측면인 속죄와 성령의 내주(內住)는 다음 말씀에서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메시아의 약속을 누리려면 왜 회개와 순종이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회개의 선지자다. 그는 패역한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외쳤다.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팠다(렘 2:13). 언약 백성이라는 신분과 성전과 다윗 왕조가 있다는 사실만 믿고 우상숭배와 불의를 계속했기에 결국 땅에서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약속을 받은 것과 약속을 실제로 누리는 것은 같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에서 회개와 관련하여 주목할 인물이 있다면 그는 바로 &amp;#39;욥&amp;#39;과 &amp;#39;다윗&amp;#39;과 &amp;#39;예레미야&amp;#39;가 있다. 그 중에 &amp;#39;욥&amp;#39;은 하나님을 직접 뵌 뒤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했고, &amp;#39;다윗&amp;#39;은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통회했으며, &amp;#39;예레미야&amp;#39;는 한 민족을 향하여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외쳤다(욥 42:5-6; 시 51:1-17; 렘 3:12-14).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구약의 세례 요한과 같은 회개의 선지자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길은 회개로 준비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도 속죄와 칭의만 말하고 정결과 성결을 외면하면 구원을 온전히 준비할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야 하지만, 믿은 뒤에도 죄를 자백하여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요일 1:7-9). 생각과 감정과 생활 속의 죄를 그대로 둔 채 구원받았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과 불법을 행하는 사람을 분명히 구별하셨다(마 7:21-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를 반복하면 악한 영이 들어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붙들고 회개를 방해한다. 처음에는 회개의 말씀이 옳다고 느끼다가도 속에 있는 영들이 쫓겨날 것을 알고 사건과 두려움을 일으키면 중간에 멈추기 쉽다. 그러므로 영적 싸움은 가볍게 시작할 일이 아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회개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대적해야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엡 6:10-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적 현상이 나타난다고 모두 성령의 역사는 아니다. 필자는 일부 신사도 계열에서 나타나는 기괴한 웃음과 통제되지 않는 몸짓을 악한 영의 역사라고 여기고 있다. 자기 안의 영을 점검하고 회개로 깨끗하게 하지 않은 채 예언과 능력만 좇으면 마지막에 미혹될 수 있다. 은사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회개와 정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우리 교회가 귀신만 쫓아내는 교회인 것은 아니다. 축사는 전체 사역 가운데 한 부분이다. 중심은 회개와 천국 복음이며, 죄를 자백하고 깨끗하게 되어 마침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악한 영을 내보내는 목적도 사람이 죄의 충동에서 벗어나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데 있다. 회개와 축사 체험 자체를 자랑해서는 안 되며, 변화된 생각과 성품과 순종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처음에는 필자는 장차 천국에서 세례 요한 마을에 들어갈 사람으로 보여졌다. 그리고 필자는 그것을 회개를 외쳐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2024년경 천국의 집이 세례 요한 마을에서 엘리야 마을로 옮겨지는 장면을 보았고,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울 때 사용했다는 칼을 받는 체험을 했다. 이 체험을 통하여 회개를 선포하는 사명에 더하여 악한 영들과 싸우는 영적 전사의 사명을 맡았음을 깨달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의 활동영역이 커진 것도 처음부터 알았던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회개하여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일에 집중했지만, 한 영혼을 돕는 과정에서 악한 영을 내보내는 사역까지 열렸다. 필자는 어떤 필요한 사람이 떠났을 때 안타까워했으나,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위험을 막기 위해 그를 뽑으셨다는 깨달음을 받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심기도 하고 뽑기도 하시며, 순종하는 정도에 따라 처음보다 더 큰 사명을 맡기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과거에 받은 약속만 붙들고 현재의 순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오늘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도 마귀를 멸하실 수 있지만 우리를 영적 싸움에 동참시키신다. 흙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길 때, 교만하여 타락한 사탄은 수치를 당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할 기회를 주시고 그 수고에 따라 하늘의 상을 주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며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기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많은 사람이 유튜브를 통해 회개와 천국 복음을 듣고, 직접 만난 적이 없어도 회개기도문으로 500번씩 회개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 안에 아직 회개하는 무리를 남겨 두셨다는 소망의 표지다. 횟수만 채우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같은 죄를 끊기 위해 꾸준히 기도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귀가 가벼워서 새로운 말만 따라다니지 말고, 옳다고 깨달은 진리 안에 뿌리를 내리며 끝까지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가 타락하더라도 진실로 회개하는 한 무리가 있다면 소망이 있다. 그러나 교회까지 회개를 버리고 죄를 괜찮다고 말하면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은 죄를 방치하게 하는 면허가 아니라 회개하고 순종하도록 부르시는 은혜다. 우리는 메시아가 이루신 속죄를 믿고, 성령께서 마음에 새기시는 법을 따라, 생각까지 예수님의 피로 씻으며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쏟아낸 일곱 가지 예언과 그 약속을 누리는 길을 살펴보았다. 예레미야는 멸망 직전의 예루살렘에서 약 41년 동안 회개를 외쳤지만, 심판의 한복판에서도 다윗의 의로운 가지가 오실 소망을 놓치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가 예언한 메시아는 다윗의 의로운 가지이며 왕이자 의로운 통치자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자기 백성을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이끌어 내는 새 출애굽의 인도자다. 또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속죄를 이루고, 죄 사함과 성령의 내주를 약속하는 새 언약을 체결하신다. 이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왕조와 레위 제사장직은 역사 속에서 중단되었지만 예수님의 왕권과 제사장직은 영원하다. 그는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며 자기 피로 죄를 씻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만 부르고 왕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지만 사람이 받을 복과 직분에는 믿음과 순종이 요구된다. 이스라엘은 언약과 성전과 다윗 왕조를 자랑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아 땅에서 뽑혔다. 우리도 칭의만 붙들고 정결과 성결을 버려서는 안 되며, 죄를 자백하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 회개의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죄를 끊고 생각과 성품과 생활이 실제로 변화되는 열매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메시아 예언은 절망 속에서 주어진 소망이다. 이사야와 에스겔과 다니엘의 예언이 서로 다른 측면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듯이, 예레미야는 의로운 왕과 새 출애굽과 새 언약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여 준다. 우리는 사람의 교리나 명성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높은 기준으로 삼고, 회개와 순종으로 그분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의 의로운 가지이자 여호와 우리의 공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들고 새 출애굽의 구원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년 24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계시된&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사역&lt;/strong&gt;을 신학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레미야를 왕과 제사장, 선지자의 타락상을 고발하며 회개를 외친&amp;nbsp;&lt;strong&gt;눈물의 선지자&lt;/strong&gt;로 규정하고, 그가 예언한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인&amp;nbsp;&lt;strong&gt;의로운 가지이자 통치자&lt;/strong&gt;로 오실 것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사하고 성령의 내주를 가능케 하는&amp;nbsp;&lt;strong&gt;새 언약의 체결자&lt;/strong&gt;라는 점을 부각하며, 이를 통해 성도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가&amp;nbsp;&lt;strong&gt;거룩한 회개와 천국 입성&lt;/strong&gt;에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구약의 예언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 설명함으로써, 현대 신앙인들에게&amp;nbsp;&lt;strong&gt;영적 분별력과 철저한 회개&lt;/strong&gt;의 삶을 촉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ChatGPT Image 2026년 8월 25일 오전 12_40_1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7966027d72e696399592c8b5ccc6cb1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dfe7b26db7ff38d79849d62b509b9f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2fa0d2616a45b1ec0f73c78d35a4285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2398735ff58adf61b07fd6f3e68c500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c841c2c0c766671cf2037d3b14fba3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0dc2203557cb8cd6fcd6306c03332d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ceb324ade091ab2b218a339a711123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bb431bac07e15fe1ae9c3c89801fa51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e20cc0bbff5cc19e52e9ef4841dc4fa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19defa82bfe6f71ac3e67da98d45fb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7e8b0bc55aac0bfd1f64ead6aced576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3cc67d526d147800f0fe25c9f92e1e3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35be44500d15e1f97da39626b84abe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232b28e091e277af599081eeda3a7fb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2762d673ec8a8dd56d289632c54144b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예레미야가_예언한_메시아의_약속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ee95d3f358d9f7b2637970049f56a3e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52d29a9e7e269a08df1a9c23c29b4a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67d61b8aeda9911ee5492f907c62799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f2e0faeedb1ab3556f654e9df2d628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1ce5e3c5e07c329b779ce0fb02c1256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bb4fe4e483962a04129deffc9eee1b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9869cda12751f658e5e0bd09ad0bc7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5967fb1d5aab44ed6654fd3b06107f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c83f7a0901bf9dc89150ded42ae790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57dd8da1ba285deaa3a2ceaa760f93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c4474389de8ab9d10f1044fcdf21322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1e4d1d3c051d6c7ae09002c6b6b2860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57f8f1ce40aaf2c456f36529bc91832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9d18a3fc4f8aad1a22d905e0204736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4ad7dbb61848c1f6a76231ff7c01ac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c9484a094b3c521fb36c67c73b576d3e.webp&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72)] 예표론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는 메시야와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예레미야 20:9)_2026-08-23(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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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4T01:34:56+09:00</published>
		<updated>2026-08-24T20:51:5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8-23(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기독론(172)] 예표론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는 메시야와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예레미야 20: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q3dTYiU_-MI 기독론(172) 예표론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는 메시야와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 (렘 20:9)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예레미야는 한마디로 눈물의 선지자이자 회개의 선지자다. 그는 주전 627년경 요시야 왕 제13...</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8-23(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2)] 예표론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는 메시야와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예레미야 20: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q3dTYiU_-MI&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q3dTYiU_-MI?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예표론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는 메시야와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20: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한마디로 눈물의 선지자이자 회개의 선지자다. 그는 주전 627년경 요시야 왕 제13년에 사역을 시작하여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약 41년 동안 회개를 외쳤다(렘 1:1-3). 나라와 성전이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백성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했으므로, 구약에서 회개의 선지자를 꼽는다면 예레미야를 빼놓을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선지자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했다. 하나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를 말로 예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삶으로 메시아의 길을 미리 살아 내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다윗의 의로운 가지와 새 언약의 중보자와 새 출애굽의 인도자가 오실 것을 예언했다. 이것은 다음에 살펴볼 예언론적 측면이다. 이번에는 그가 고난받는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미리 보여 주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예표적 삶은 여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멸망하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둘째, 제사장과 선지자와 정치 지도자와 고향 사람들에게 거절당했다. 셋째,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처럼 해를 당하면서도 보복하지 않았다. 넷째, 타락한 성전을 도둑의 소굴이라고 책망하며 거룩함을 회복하려 했다. 다섯째, 결혼하지 않은 채 사명의 짐을 홀로 담당했다. 여섯째, 오랜 세월 박해와 고난을 받으면서도 말씀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길은 오늘 주의 종과 성도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회개를 외치고 진리를 전하며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길에는 외로움과 반대와 오해가 따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라면 사람의 인정이 없더라도 준비하고 견뎌야 한다. 또한 주의 종 혼자서는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으므로 성도들의 기도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예레미야의 삶이 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지와 그의 눈물&amp;middot;거절&amp;middot;온유&amp;middot;성전 책망&amp;middot;고독&amp;middot;고난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레미야의 삶은 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예표&amp;#39;란 훗날 나타날 더 완전한 실체를 앞서 보여 주는 인물이나 사건을 가리킨다. 예레미야가 곧 그리스도라는 뜻이 아니라, 그의 사명과 고난 가운데 장차 오실 예수님의 삶을 미리 보여 주는 모습이 있다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회개를 외쳤고 자기 백성에게 거절당했으며 홀로 고난을 감당했다. 예수님께서도 &amp;ldquo;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amp;rdquo;라고 선포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배척당한 뒤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다(마 4:17; 요 1: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약 41년 동안 회개를 외쳤다. 예레미야가 회개를 외친 것처럼 필자도 회개를 외치는 사람에 속한다. 필자가 본격적으로 회개를 외친 기간은 짧게 보면 6년이요, 길게 보면 약 13년 정도 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걸어간 길과 비교하면 아주 짧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고 악한 영과 싸우는 자로서 필자를 부르셨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처음에 필자는 세례 요한 마을에 들어갈 사람으로 보여졌다. 세례 요한처럼 회개를 외쳐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4년경 천국의 집이 세례 요한 마을에서 엘리야 마을로 옮겨지는 장면을 보았고,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울 때 사용했다는 칼을 받는 체험을 했다. 그때부터 회개를 넘어 악한 영과 싸우는 영적 전사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가 비교적 초기에 썼던 『회개와 천국복음』(2017년 발행)이라는 책은 회개를 통해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데 중심을 두었다. 이 책에서는 저주에서 해방되고 악한 영을 내보내는 구체적인 영적 전쟁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 한 영혼을 돕는 과정에서 귀신과 뱀과 귀신의 집에 관한 영적 세계가 열리면서 사역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래서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일 뿐 아니라 더욱이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의 법적 근거를 없애고 실제로 내보내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필자가 받은 3개월의 기초 훈련 뒤에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장교의 첫 계급에 해당하는 소위 계급을 달아 주셨다. 지금 별 네 개에 해당하는 단계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인가? 회개 없이 영적 전쟁부터 시작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 없이 시작하는 전쟁터에서 오래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자기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정결해져야 전사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별히 악한 영을 내보내기 위해 회개를 할 때에 과연 얼마만큼 회개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보니 그들에게는 그들이 쌓은 죄악에 따라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정해졌다. 이는 죄의 분량에 따라 형벌의 시간과 양도 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도 예레미야의 이러한 예언을 확인한 뒤 민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자기 죄처럼 고백하며 회개했다(렘 25:11-12; 단 9:1-19).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가문과 민족의 죄를 공의롭게 다루신다. 그러나 진실한 회개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때에는 정해진 분량을 다 채우기 전에 특별한 긍휼을 베푸시는 경우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필자는 회개의 횟수를 충분히 채워 자기 안의 모든 영을 내보낸 경우가 아니라, 진실한 회개를 보신 하나님께서 귀신의 집을 파괴해 주신 특별한 긍휼을 입은 경우다. 이것은 형벌을 면제받은 특사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회개의 분량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각 사람은 자기와 조상에게서 내려온 죄들을 진실하게 자백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만큼 꾸준히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죄의 분량이 가득히 차서 심판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조차 받지 않으시는 때가 온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도 역시 그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거나 부르짖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가 심판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7: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욱이 개인의 죄에 따른 영적 영향은 주로 혈통과 가문을 따라 내려오지만, 민족적 심판이 임하면 의인도 공동체의 고난을 함께 겪아야 한다. 고로 에스겔과 다니엘도 포로가 되었고 예레미야도 예루살렘의 고통을 피하지 못했다. 다만 필자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인을 받은 종들을 해하지 말라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에는 특별한 보호의 약속이 있다고 본다(계 7:1-3; 9:4).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회개할 수 있을 때 자신과 가정과 민족을 위해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민족은 운명 공동체다. 가문의 죄에 따른 형벌은 혈통을 중심으로 나타나지만 전쟁과 기근과 국가적 심판은 같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함께 닥친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개인의 저주만 해결하는 사역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죄악이 가득 차기 전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 나라를 살리는 중보 사역이다. 하나님께서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한 무리를 보시고 이 민족을 마지막 시대의 복음 전파자로 사용하시기를 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예레미야는 멸망할 백성을 위해 어떻게 눈물을 흘렸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모형론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모습은 약 6가지 정도 된다.&amp;nbsp; &lt;strong&gt;그중에 첫째 모습은 멸망할 백성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는 것&lt;/strong&gt;이다(렘 9:1). 그는 자기 백성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며 머리가 물이 되고 눈이 눈물의 근원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한두 번 감정에 북받쳐 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돌아보실 때까지 주야로 울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9:1 어찌하면 나의 머리는 물이 되고 나의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욱이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더 큰 아픔은 41년 동안 말씀을 전했는데도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며 함께 회개하는 한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다(렘 5:1).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그런 사람 하나만 찾아도 성읍을 용서하겠다고 하셨지만, 백성은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다(렘 5:1).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멸망을 내다보며 울어야 했으니 그의 외로움은 더욱 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애가는 그의 눈물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밤에 슬피 울어 눈물이 뺨에 흐른다고 했고, 백성의 파멸 때문에 눈이 눈물에 상하고 창자가 끊어지며 간이 땅에 쏟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서 기절하고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애 1:2; 2:11). 또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실 때까지 자기에게서 눈물이 시내처럼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고 고백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애 3:48-50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물처럼 흐르도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다(눅 19:41-44).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백성을 모으려 하셨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았고, 마침내 집이 황폐해질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자기 백성의 멸망을 슬퍼하신 예수님의 눈물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이렇듯 멸망으로 치닫는 자기 백성을 살리고자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다(렘 7:25-26).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님은 &amp;ldquo;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amp;rdquo;라고 말씀하신다(마 23:34). 필자는 두 말씀을 연결하여 구약에 선지자들을 보내신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시며,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의 구원 경륜을 이루셨다고 믿는다. 예레미야의 눈물과 예수님의 눈물은 한 분 하나님의 긍휼을 그대로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삶도 눈물과 함께 시작되었다. 어릴 때에는 무당 계열의 영이 역사하며 외로움이 많았다. 그래서 혼자 시골 수로에 가서 울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에는 약 2년 동안 예배당에 가서 예배하기만 드리면 폭포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다시 4년 뒤에 군 복무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역시 교회만 가면 눈물이 쏟아졌다. 이것은 내 자신의 죄에 대한 통회자복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이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눈물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주의 종의 자격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혼이 멸망하는데도 아무런 아픔이 없고, 성도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품지 못한다면 목자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 말씀을 전하는 지식과 함께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이 있어야 한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감상적인 슬픔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기 위해 41년 동안 회개를 외치게 한 사명의 동력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종에게 눈물이 필요한 까닭은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고난이 올 때 사명을 포기하기 쉽기 때문이다.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씀을 거절하고 멸망으로 가는 사람을 볼 때 가슴 아파하며 울 수 있어야 한다. 오늘 필자는 이렇게 선지자의 외침이 외면받을 수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말씀을 듣고 함께 따라오는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너무나 감사한다. 특히 2024년 5월경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통해 회개와 천국 복음이 널리 알려지가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기도문을 찾게 되었고, 오랫동안 준비한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여시는 것을 직접 보면서 감격하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예레미야는 누구에게 거절과 박해를 받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lt;strong&gt;둘째 모습은 자기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거절당했다는 것&lt;/strong&gt;이다. 그는 적어도 네 부류 종류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박해를 받았다. &lt;strong&gt;첫째는 성전의 총감독이었던 제사장 바스훌에게서&lt;/strong&gt;다. 바스훌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예레미야를 때리고 성전 베냐민 문 위층에 있는 나무 고랑에 채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0: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도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었지만, 선배 제사장은 그가 전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렘 1:1-2). 언약 백성과 성전과 다윗 왕조가 있으므로 예루살렘은 절대 망할 수 없다는 기존의 생각을 예레미야가 깨뜨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일이 오히려 맞고 결박당할 죄처럼 취급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거짓 선지자 하나냐&lt;/strong&gt;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멍에를 받아들여야 산다는 뜻으로 목에 나무 멍에를 메었다. 그러나 하나냐는 모든 포로가 2년 안에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며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무 멍에를 꺾은 대신 쇠 멍에를 메우겠다고 말씀하셨다(렘 28:10-14). 듣기 좋은 거짓 예언이 참된 경고를 배척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정치 지도자들과 시드기야 왕이&lt;/strong&gt;다. 예레미야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세우신 바벨론에 항복해야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도자들은 이를 매국적인 말로 규정하고 그를 죽이려 했다. 결국 지도자들은 왕의 허락을 받아 예레미야를 물 없는 구덩이에 던졌고, 그는 진창 속에 빠졌다(렘 38:4-6). 만약 그때 왕궁 내시인 구스인이었던 에벳멜렉이 그를 건져내어 시위대 뜰에 있지 않게 했다면 계속 예레미야는 진창 속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는 자신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lt;/strong&gt;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보호하기는커녕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며 죽이겠다고 위협까지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1:21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예수님도 역시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배척당했고, 빌라도와 헤롯 같은 정치 지도자에게 넘겨졌으며, 고향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셨다&lt;/strong&gt;(막 6:1-6; 15:1-15).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요 1:11). 예레미야가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과 고향 사람에게 거절당한 모습은 예수님의 배척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회개와 귀신론과 기존 신학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전하면서 선배들로부터 만류를 받았다. 방송하지 말고 자기 교회 안에서만 가르치라는 권고도 들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출신 지역이나 부모의 신분 같은 바꿀 수 없는 조건을 이유로 말씀을 못 듣게 하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언제든지 생명의 말씀과 천국의 비밀은 듣기 원하는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예레미야는 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잠잠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lt;strong&gt;셋째 모습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처럼 잠잠했다는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음모를 알려 주시기 전까지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나무와 그 열매와 함께 멸하고 이름까지 지워 버리려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 뒤에도 그들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1:19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모습은 고난받는 메시아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과 이어진다. 왜냐하면 메시아로 오신 예수께서 곤욕을 당하고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않아았으며,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행동하셨기 때문이다(사 53: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거짓 고발과 조롱과 십자가형을 받으면서도 개인적인 보복을 구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눅 23:34).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으면서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행 7:60).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해치려했던 이들을 보복하지 말고 그들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가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잠잠함은 진리를 말하지 않는 비겁함이 아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모욕과 억울함을 갚기 위해 고소와 보복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공적인 진리는 담대하게 증언하되 사적인 상처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어린양의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를 두고, 행위구원론자라고 비판하는 글을 쓰고 사역을 공격한 이가 있었다. 그들 중에는 나중에 나를 찾아와서 자신의 사역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필자는 그 비판 글을 돈으로 내리게 하거나 법적 보복을 선택하지 않았다. 연락을 이어 가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을 응징하는 데 사명의 힘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억울함을 품고도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을 반드시 굴복시켜야 마음이 풀린다면 아직 십자가의 온유를 더 배워야 한다. 용서는 죄를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최종 심판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순한 어린양처럼 고난을 감당한 삶은 원수까지 용서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예레미야는 타락한 성전을 어떻게 책망하고 깨끗하게 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lt;strong&gt;넷째 모습은 타락한 성전을 정결하게 하려 했다는 것&lt;/strong&gt;이다. 당시 백성은 성전이 있으니 안전하다고 말하면서도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거짓 맹세와 우상숭배를 계속했다(렘 7:4-10). 성전 안팎에서는 태양과 여러 우상을 섬기는 일이 벌어졌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7: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성전 기물을 직접 뒤엎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전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를 촉구함으로 성전을 정결하게 하려 했다. 성전이라는 건물이 죄를 가려 주는 부적이 될 수 없으며, 예배하는 백성의 삶이 거룩해야 하나님께서 그곳을 받으신다고 선포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마 21:13). 그리고 이사야 5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11절을 함께 인용하셨다.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데 종교 지도자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1: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말씀으로 책망했던 성전의 타락을 예수님은 행동으로 심판하셨다. 두 사람 모두 성전의 외형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와 거룩한 삶을 요구했다. 이 점에서 예레미야의 성전 책망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교회도 사람을 돈 버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 다단계 사업이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성도 관계를 이용하면 공동체가 무너진다. 성도는 서로에게서 이익을 얻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섬기고 구제하며 천국을 준비하도록 돕는 지체들이다. 교회는 기도와 말씀과 회개와 사랑이 흐르는 집이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종도 헌금과 직분을 자기 권력과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성도 역시 교회를 세상 사업의 시장으로 바꾸지 않아야 한다. 예레미야와 예수님이 성전의 타락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듯이, 우리는 교회를 거룩하게 보존하고 하나님만 높이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레미야는 왜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사명의 짐을 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lt;strong&gt;다섯째 모습은 사명의 짐을 홀로 담당했다는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유다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거나 자녀를 두지 말라고 하셨다. 곧 닥칠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부모와 자녀가 죽고 장사조차 지내지 못한 채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렘 16: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6:2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독신은 결혼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가올 심판의 참혹함을 그의 삶으로 보여 주고, 가족에게 임할 고통까지 더하지 않기 위한 특별한 명령이었다. 그는 아내와 자녀의 위로 없이 백성의 죄와 하나님의 말씀을 홀로 품어야 했다. 지도자는 때때로 아무도 대신 내려줄 수 없는 결정을 하나님 앞에서 홀로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결혼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이 곁에 있었지만 십자가의 짐은 홀로 지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마 8:20). 아무도 예수님의 마음과 사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도 복음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 독신으로 살았다(고전 7:7-8, 32-35). 그러나 모든 주의 종이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예레미야와 예수님과 바울에게는 각자의 사명에 맞는 길이 주어졌다. 중요한 것은 결혼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감당하는 충성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배우자가 곁에서 생활의 많은 부분을 감당해 주는 은혜에 감사한다. 설교와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옷과 식사와 가정을 돌보아 주기 때문에, 감사할 뿐이다. 이것은 예레미야처럼 홀로 살아야 했던 사람이 얼마나 외로웠을지를 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 가족의 도움을 받는 주의 종은 그 섬김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배우자와 동역자가 있어도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서 홀로 결정해야 할 순간은 남아 있다. 모두가 반대해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면 그 길을 선택해야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사람의 인기와 다수의 의견에 끌려가게 된다. 예레미야의 고독은 홀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길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예레미야의 고난은 오늘 주의 종과 성도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그리스도를 예표한 &lt;strong&gt;여섯째 모습은 오랜 고난을 받으면서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lt;/strong&gt;이다. 그는 맞고 결박당했으며 감옥과 진창 구덩이에 던져졌고, 죽음의 위협과 조롱을 반복해서 받았다. 한때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서 불붙는 것 같고 골수에 사무쳐 견딜 수 없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된 소명은 박수가 없을 때 드러난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을 때만 전하는 말씀이라면 고난이 오면 멈추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말씀은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불이 된다. 예레미야가 41년 동안 회개를 외칠 수 있었던 힘은 성격의 강함이 아니라 그 안에서 타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든 사명에는 홀로 준비하는 기간이 있다. 필자도 2013년부터 회개와 천국 복음을 준비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2024년 5월경부터였다. 오랜 기간 말씀을 연구하고 회개하며 방송을 계속한 뒤에야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말씀이 전달되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한순간을 위해 외로운 준비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에서 예레미야는 이 땅의 주의 종들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것은 성경 본문이 직접 말하는 교리가 아니라 필자가 받은 영적 체험의 내용이다. 그 체험은 주의 종의 눈물과 고난과 충성을 하나님께서 하나도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들의 작은 섬김도 헛되지 않다. 필자는 예배와 전도와 찬양과 기도와 식당 봉사 같은 수고가 천국에서 꽃과 물고기와 새와 보석과 같은 상급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아 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을 줄 근거를 마련하시려고 시간과 기회를 주신다. 그러므로 듣기만 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각자의 은사와 물질과 수고로 복음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적 전쟁에서는 지휘관의 판단과 군사들의 순종이 함께 중요하다. 지휘관이 어떤 작전을 세우느냐에 따라 부하들의 생명과 승패가 달라지듯이, 주의 종은 성령의 음성을 정확히 듣고 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성도들은 맹목적으로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옳은지 분별하면서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협력해야 한다. 회개로 정결해진 성도들이 함께 설 때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강한 영적 군대로 준비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종도 혼자서는 마지막 사명을 완성할 수 없다. 성도들이 기도할 때 주의 종은 더 정결하게 다듬어지고 말씀과 영적 싸움에 집중할 힘을 얻는다. 필자가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고 영적 전사들을 세우는 길을 갈 수 있었던 데에는 성도들의 중보가 있었다. 지도자는 성도를 섬기고 성도는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 사람이면 패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고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 4:12). 예레미야 시대에는 그와 함께 회개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마지막 시대에는 말씀을 알아듣고 함께 회개하며 싸우는 한 무리가 세워져야 한다. 동탄명성교회가 그 무리 가운데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과 열방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종의 길은 편안함을 보장받는 길이 아니다. 눈물과 거절과 억울함과 외로움과 고난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말씀의 불을 품고, 예수님처럼 원수를 용서하며, 성전을 거룩하게 하고, 성도들과 협력한다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삶으로 미리 보여 준 그리스도의 여섯 가지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는 멸망할 백성을 위해 울었고, 제사장과 거짓 선지자와 정치 지도자와 고향 사람들에게 거절당했으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보복하지 않았다. 또한 타락한 성전을 책망하고, 결혼하지 않은 채 사명의 짐을 홀로 지며, 약 41년 동안 고난 속에서도 말씀을 전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눈물은 예루살렘을 보며 우신 예수님의 긍휼을 보여 준다. 여러 지도자와 자기 고향에게 거절당한 모습은 자기 백성에게 배척당하신 예수님을 보여 주며, 어린양처럼 잠잠했던 태도는 십자가에서 원수까지 용서하신 예수님을 보여 준다. 성전을 도둑의 소굴이라고 책망한 말씀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예수님의 행동으로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독신과 고독은 십자가의 짐을 홀로 지신 예수님의 길을 바라보게 한다. 그의 오랜 고난과 마음속 말씀의 불은 참된 주의 종이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친다. 개인적인 영적 체험과 계급과 천국의 상급에 관한 내용은 성경의 직접 진술과 구별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회개와 충성과 섬김을 기억하신다는 목회적 교훈을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주의 종과 성도에게도 눈물과 담대함과 온유와 거룩함과 인내가 필요하다. 진리를 전할 때에는 물러서지 않아야 하지만 개인적인 상처 때문에 보복해서는 안 된다. 교회를 사적인 이익의 수단으로 만들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고독과 준비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무엇보다 영적 전쟁에 앞서 자기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정결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시대의 사명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 주의 종은 성도를 생명 다해 섬기고, 성도는 기도와 봉사와 물질과 은사로 함께해야 한다. 각자의 작은 충성은 하나님 나라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대한민국과 열방을 살리는 회개와 천국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불로 품고 예수님처럼 고난 가운데서도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서로 협력하여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리하여 눈물과 회개와 충성으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열방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4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의&amp;nbsp;&lt;strong&gt;예레미야 선지자&lt;/strong&gt;가 고난 가득한 삶을 통해 어떻게 장차 오실&amp;nbsp;&lt;strong&gt;메시야의 삶을 예표&lt;/strong&gt;했는지 고찰하는 설교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레미야를 &amp;#39;눈물과 회개의 선지자&amp;#39;로 정의하며, 그가 멸망해가는 민족을 보며 흘린&amp;nbsp;&lt;strong&gt;눈물&lt;/strong&gt;, 동족으로부터 당한&amp;nbsp;&lt;strong&gt;거절과 핍박&lt;/strong&gt;, 그리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같은&amp;nbsp;&lt;strong&gt;인내&lt;/strong&gt;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평행을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성전을 정화하려 했던 외침이나 고독한 사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행적을 통해&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모형&lt;/strong&gt;으로서의 선지자적 면모를 입체적으로 분석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는 오늘날의 사역자들 또한 이러한&amp;nbsp;&lt;strong&gt;회개의 사명&lt;/strong&gt;을 이어받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민족을 살리는&amp;nbsp;&lt;strong&gt;영적 전사&lt;/strong&gt;의 길을 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ChatGPT Image 2026년 8월 24일 오후 03_50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fd4a1f22c78fb05c5cd81712f37c3bf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542f9ba1ee5670ead7577b98d47fe5c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04f2520f6d671ab49582b0caca5efa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4cc0db122986b23e03dcf9d604af55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b69cd1c23f678ffc34df40d26d51ca8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fda48e77a177b2c734e58f60beebb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09ad2b0ad1037f939ccb9e889009ca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c38d1ecb54999c30434e35b629d2f3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2692d4aec3e05617eed66fcf438403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46007a133e222cc5b11a8cdf1a9201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a88954311a2de7467f4ec22c3c314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171fe3aa3e257fef7e24f263564f81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Jeremiah_Living_the_Cros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64d54c627584ce7712190ec2fae19e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의메시야적인삶] 메시야를_예표하는_선지자_예레미야의_삶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a8c392266ce0ef695eb23fb5652629a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793b5e708ca2cc6fb92811fc1ae33c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dc625a2ce0f9eaf95de310acc151f68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63a3b73a553bead5fbafb6672f3f99a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2424dd7a5d050ca30f2284be7f5839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6667145050ca4babb693b9e6aa1ab9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f087da5aedcb2271d45309811acb47e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be2d133bd3ea242387682ec523961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c2bf325830436926c951f26e57a5a6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a9590e7a1686dbf85396e8ade0123b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feb832fde20e87aa59c955f90da133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923acad44a0b8a6b64c5b2c5774909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713441eec303dd087872dac293ce6d2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3a1a9736e8da2b6ec79faf752f87bd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2)] The_Messianic_Mirror.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18/921/264/ce1f7106b6e7f33a94f47dbe7899e11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렘2:4~8)_2026-08-23(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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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3T20:39:02+09:00</published>
		<updated>2026-08-23T21:07:14+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8-23(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 (예레미야 2:4~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2eFz6NXr-u8 주일낮예배 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 (렘 2:4-8)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우리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기독론을 공부하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인격과 삶을 예언했을 뿐 아니라, 때로...</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2026-08-23(일) 주일낮1부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 (예레미야 2:4~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2eFz6NXr-u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2eFz6NXr-u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주일낮예배&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왜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2:4-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기독론을 공부하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인격과 삶을 예언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자기 삶으로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었다. 이러한 예언이 있었기에 우리는 약 이천 년 전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누가 참그리스도인지, 어떤 역사가 성령에게서 오고 어떤 역사가 악한 영에게서 오는지 분별하기 어렵다. 말씀으로 영혼을 채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선지자(사역시간: B.C.593~571년)는 바벨론 포로지에서 하나님의 보좌와 새 성전과 생명수 강과 새 땅을 보았던 환상의 선지자였다. 그는 절망에 빠진 포로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하실 날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예레미야(사역기간: B.C.627~561)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은 채 자기 민족이 죄로 무너지는 전 과정을 보았다. 성이 포위되고 백성이 굶주리며 마침내 성전과 성읍이 불타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에는 눈물과 탄식과 비통함이 배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예레미야 시대에 멸망하게 두셨는가? 하나님께서 계시겠다고 한 성전과 다윗의 후손이 있었는데도 왜 예루살렘을 버리셨는가? 예레미야서 1장부터 30장까지의 말씀을 종합하면 세 가지 이유가 드러난다. 첫째, 백성과 정치&amp;middot;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타락했다. 둘째,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 셋째, 오랫동안 쌓인 죄악의 분량이 가득 차 더는 심판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옛 이스라엘의 역사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대한민국과 교회도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타락하고, 회개를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며, 죄를 계속 쌓는다면 같은 원리 아래 놓일 수 있다. 반대로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간다면 심판을 피하고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와 이스라엘 멸망의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고, 멸망 앞에서 그가 전한 세 가지 길과 오늘 대한민국과 우리가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레미야는 어느 시대에 어떤 사명을 감당한 선지자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를 이해하려면 동시대를 전후하여 활동한 네 선지자의 자리를 먼저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로, 이사야는 예레미야보다 약 백 년 앞선 주전 740년경부터 680년경까지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다. 당시의 세계 제국은 앗수르였다. 왕족 출신이었던 이사야는 예루살렘 왕궁을 중심으로 왕들과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며 장차 올 심판과 메시아의 소망을 선포했다(사 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로,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제십삼년인 주전 627년경에 부름을 받았다. 그는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과 여호야긴과 시드기야 시대를 지나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약 사십 년 동안 말씀을 전했다(렘 1:1-3). 예레미야서 52장의 부록은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이 주전 561년경 바벨론에서 석방되는 사건까지 전한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중심 사역은 멸망 직전의 예루살렘에서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일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셋째로, 다니엘은 주전 605년 제1차 바벨론 포로 때 끌려갔다. 그는 바벨론 왕궁에서 훈련받은 뒤 제국의 통치 현장에 서서 바벨론과 메대&amp;middot;바사와 그 뒤에 일어날 나라들에 관한 계시를 받았다(단 1:1-6). 그러므로 다니엘을 계시의 선지자라고 부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넷째로, 에스겔은 주전 597년 제2차 포로 때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주전 593년경 그발 강가에서 선지자로 부름받았다(겔 1:1-3). 그는 약 이십이 년 동안(B.C.593~571) 하나님의 보좌와 성전의 타락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환상으로 보았으므로 환상의 선지자라고 부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다니엘, 세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 있던 장소와 사명이 달랐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멸망의 현장을 보았고,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 공동체에서 환상을 보았으며, 다니엘은 제국의 왕궁에서 열방의 장래를 계시받았다. 그중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이 굶주림과 칼과 전염병으로 쓰러지고 성전까지 불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눈물의 선지자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예레미야애가는 그 아픔을 고스란히 전한다. 한때 사람들로 가득했던 예루살렘은 과부처럼 되었고, 절기를 지키러 오던 길은 적막해졌으며,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어린 자녀들은 원수에게 끌려갔다(애 1:1-6). 예레미야는 딸 시온의 파멸 때문에 눈물이 상하고 창자가 끊어지며 간이 땅에 쏟아지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애 2:11). 또 그의 눈에서는 백성의 파멸 때문에 눈물이 시내처럼 흘러 쉬지 않았다고 했다(애 3:48-49). 선지자의 눈물은 민족의 죄와 하나님의 아픔을 함께 품은 눈물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레미야는 폐허 속에서도 소망을 놓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너진 아침에도 이슬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어둠 뒤에 새날이 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끝나지 않았음을 노래했다. 진멸되어 마땅한 백성을 완전히 끊지 않고 남은 자를 두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붙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애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사랑한다. 필자와 조상들이 지은 죄를 생각하면 심판받아 마땅히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필자의 진실한 회개를 받으시고 악한 영들을 떠나게 하시며 다시 사명의 길에 세워 주셨다. 우리가 지금 어둠 가운데 있을지라도 주님을 붙들고 진실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남은 뿌리에서 새 일을 시작하신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눈물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온 백성과 정치&amp;middot;종교 지도자의 타락은 왜 멸망을 불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시대에 멸망이 임한 &lt;strong&gt;첫째 이유는 사회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온 백성과 모든 지도층이 함께 타락했기 때문&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로, 백성들&lt;/strong&gt;은 높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섬기고 영적인 음행을 저질렀다(렘 2:20).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손으로 만든 신들에게 향을 피우며 절했다. 유다의 신들은 성읍의 수만큼 많아졌고, 수치스러운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은 예루살렘 거리의 수만큼 많아졌다(렘 2:28; 11:13). 하나님께 제사드리면서 동시에 우상을 찾는 혼합 신앙이 온 땅을 덮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성읍을 용서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러한 한 사람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사회 전체가 거짓과 탐욕과 폭력에 물들었다. 십계명을 무시하고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며, 진리를 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로, 더 두려운 일은 백성을 깨워야 할 &lt;strong&gt;지도자들도 함께 무너졌다&lt;/strong&gt;는 사실이다. 예레미야 2장 8절은 네 부류의 지도자를 지적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지 않았고,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며, 정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반역했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무익한 것을 따랐다. 직분은 남아 있었지만 그 직분을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진 상태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사장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하고, 율법을 다루는 레위인은 말씀의 뜻을 바르게 가르쳐야 하며, 왕과 관리들은 정의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만 전해야 했다. 그러나 제사장과 선지자는 탐욕을 따르고, 관리들은 권력을 사유화하며, 백성은 그 거짓을 좋게 여겼다. 부패한 지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패를 환영한 백성의 문제이기도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다고 말해도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심판하신다. 약속의 자손이라는 신분도, 약속의 땅에 산다는 역사도, 다윗의 후손이 왕으로 있다는 제도도 죄를 계속 지을 권리를 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다고 해도 정의와 진리가 사라지면 하나님께서 그 건물을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외형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을 찾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도자의 타락은 한 사람의 사생활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가 불의를 법으로 만들면 백성이 그 길을 따라가고, 제사장이 말씀을 굽게 해석하면 성도들은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며, 선지자가 받지도 않은 환상으로 평안을 선포하면 멸망이 눈앞에 와도 준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 높은 직분을 맡을수록 더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백성 역시 지도자가 자기 욕망을 만족시켜 준다고 해서 그 불의를 좋게 여겨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도 정치 지도자가 부패하고 종교 지도자가 진리를 감추며 백성이 그것을 좋게 여긴다면 소망이 끊어진다. 나라를 살리는 길은 자기편의 잘못을 덮고 상대편만 정죄하는 데 있지 않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정의와 진리를 회복하고, 교회가 먼저 탐욕과 거짓과 우상숭배를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언약과 성전과 다윗 왕조에 대한 거짓 확신은 왜 무너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나라가 결코 망하지 않을 이유를 여럿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받은 할례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계시겠다고 하신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고, 다윗의 후손이 왕좌에 앉아 있으니 하나님께서 이 성을 버리실 수 없다고 확신했다.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들도 곧 돌아올 것이며 모든 일이 평안하게 끝날 것이라고 거짓 선지자들이 예언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amp;#39;언약&amp;#39;은 하나님을 버려도 안전하다는 보증서가 아니다. &amp;#39;성전&amp;#39;은 죄를 감추는 부적이 아니며, &amp;#39;다윗 왕조&amp;#39;도 왕과 백성이 하나님께 반역할 수 있는 면허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문에 선 예레미야를 통해 &amp;ldquo;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amp;rdquo;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셨다.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고 이웃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우상에게 가지 않아야 그 땅에 살게 하신다는 말씀이었다(렘 7:3-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 선지자들은 상처가 깊고 죽음이 가까이 왔는데도 &amp;ldquo;평강하다, 평강하다&amp;rdquo;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평강이 없었다(렘 6:13-14). 그들은 백성이 듣기 좋아하는 말로 회개를 막았다. 멸망이 다가오는데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거짓말이다. 참선지자는 백성이 싫어하더라도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amp;ldquo;예수님을 믿었으니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amp;rdquo;, &amp;ldquo;교회에 다니니 회개하지 않아도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다&amp;rdquo;라고 말한다면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평안과 다르지 않다. 믿음은 구원의 출발이지만, 참된 믿음은 죄를 깨닫고 돌이키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신앙의 외형을 붙들면서 우상숭배와 탐욕과 음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성전 안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시대의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린 백성이 그 건물만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가 성전을 불태우도록 허용하셨다(왕하 25:8-10).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웅장한 건물도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반대로 작고 연약한 공동체라도 진실로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경력과 직분과 교단과 건물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내 안에 회개의 열매가 있는지, 말씀을 들을 때 죄를 끊고 있는지, 지도자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지 않고 진리를 따르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거짓 확신을 버리고 진실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멸망을 피하는 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의 경고를 거절하면 왜 소망이 끊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멸망한 &lt;strong&gt;둘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부터 예레미야 시대까지 종들을 끊임없이 보내어 악한 길과 행위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백성은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목을 굳게 했다. 조상들의 죄를 보고도 더 악하게 행했다(렘 7:25-26; 25:4-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5: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첫 메시지는 분명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죄악의 분량이 차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정하신 뒤에는 메시지의 내용이 달라졌다. 이제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고 했다. 항복하면 자기들의 생명은 보전하고 성읍의 완전한 파멸도 줄일 수 있으니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라고 했다(렘 21:8-10; 38: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들은 이 말을 매국적인 발언으로 여겼다. 지도자들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가두며 진흙 구덩이에 던졌다(렘 37:15-16; 38:4-6).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사랑해서 항복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결정되었으므로 살아남아 훗날의 회복을 준비하라는 말씀이었다. 선지자의 경고를 거절한 결과, 백성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겪었고 성과 성전은 불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도 자기 땅에 오셔서 회개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으나 종교 지도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 말씀을 거절했다. 예수님은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예루살렘 자녀들을 모으려 했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았다고 탄식하셨다(마 23:37-38).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거절하면 결국 듣지 못하는 때가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분노만 자극하거나 정치적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죄인지 말씀으로 밝히고, 먼저 교회와 성도가 회개하며, 지도자와 백성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해야 한다. 회개 없는 집회와 구호만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 수 없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을 듣고 삶을 돌이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선지자의 말은 언제나 듣기 좋은 말만은 아니다. 때로는 자랑하던 것을 내려놓게 하고, 잘못 선택한 길을 인정하게 하며, 이미 시작된 징계를 겸손히 받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생명의 길이다. 말씀을 거절하면 선지자만 잃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 두신 마지막 살길도 잃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죄가 차고 찰 때 땅이 주민을 토해낸다는 것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멸망한 &lt;strong&gt;셋째 이유는 오랫동안 연기된 죄악의 분량이 예레미야 시대에 가득 찼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지만 죄를 없었던 일처럼 여기시지는 않는다. 죄가 반복되고 회개가 없으면 개인과 가정과 민족 안에 그 결과가 쌓인다. 마침내 정해진 분량이 차면 더는 심판을 미룰 수 없는 때가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18장은 가나안 족속의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을 경고한다. 그들은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고, 근친상간과 동성 간의 음행과 수간 같은 가증한 일을 행했다(레 18:6-23). 그 죄 때문에 사람만 더러워진 것이 아니라 땅도 더러워졌고, 하나님께서는 그 땅이 주민을 토해내게 하셨다. 이스라엘도 같은 죄를 따르면 똑같이 토해낼 것이라고 경고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8: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찼을 때 그 땅을 차지했다(창 15:16). 그러나 자신들도 우상숭배와 음행을 반복하면서 땅을 더럽혔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는 사실이 죄에 대한 심판을 막아 주지 못했다. 예레미야 시대가 되자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낼 때가 되었고,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바벨론을 섬기며 칠십 년 동안 황폐하게 될 것을 정하셨다(렘 25:11-12). 이 칠십 년은 우연한 정치적 패배의 기간이 아니라, 땅이 안식을 누리고 백성이 죄의 결과를 담당하는 징계의 시간이었다. 심판이 확정되기 전에는 회개하여 돌이킬 기회가 있었지만, 분량이 찬 뒤에는 정해진 징계를 겪어야 했다. 그러므로 회개는 언제나 지금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원리를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해 보았다. 이스라엘이 칠십 년의 포로 생활을 겪은 것처럼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 삼십오 년을 겪었다. 이것을 성경의 직접적인 예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우상숭배와 죄를 어떻게 다루실지를 두렵고 떨림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본다. 남은 삼십오 년의 징계를 더 겪을 것인지, 아니면 회개로 긍휼을 입을 것인지는 오늘 우리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개인의 고난을 볼 때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모든 장애와 질병을 어떤 한 죄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필자는 축사와 회개의 현장에서 조상과 본인이 쌓은 죄가 악한 영이 역사할 근거가 되어 몸과 삶에 고통을 줄 수 있음을 보아 왔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자신과 가문의 죄를 살피고 진실로 회개하며, 필요한 돌봄과 치료를 함께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 역시 조상들의 죄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로 회개했다. 이천 번이나 삼천 번을 채운 뒤가 아니라 천 번에 가까운 회개를 드리던 중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악한 영들을 떠나게 하시고 귀신의 집까지 파괴해 주셨다. 횟수가 공로가 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죄까지 자기 죄처럼 아파하며 진실로 돌이킨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이다. 심판의 원리는 엄중하지만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회개하는 자에게 열려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레미야가 멸망 앞의 백성에게 전한 세 가지 길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멸망 앞의 &lt;strong&gt;백성에게 전한 길은 세 가지&lt;/strong&gt;로 정리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첫째,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lt;/strong&gt;이다.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팠다. 바알과 아세라와 여러 우상에게 생명과 안전을 구했지만 그 신들은 위기의 날에 구원하지 못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돌아간다는 것은 입술로만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상을 버리고 악한 길과 행위를 고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자식들에게 돌아오면 배역함을 고치겠다고 하셨고, 가증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셨다(렘 3:22; 4:1). 회개했는데도 계속 같은 죄를 붙들고 있다면 아직 그 죄에서 온전히 돌이킨 것이 아니다. 진실한 회개는 죄짓고 싶은 충동이 약해지고 성품과 행동이 달라지는 열매로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심판이 이미 확정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받아들이는 길&lt;/strong&gt;이다. 엎질러진 물처럼 되돌릴 수 없는 단계가 오면, 징계를 부정하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여 생명을 보전하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징계를 겸손히 받으면서 남은 자가 되어 다음 회복을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께 반역하지 않고 자기 죄를 인정하는 것이 살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징계의 기간을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미래와 희망을 붙드는 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끝없는 재앙이 아니라 마침내 평안과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9:10-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회복의 날에 다윗과 같은 왕을 세워 백성을 다스리게 하시고, 돌판 바깥에만 있던 율법을 마음에 기록하겠다고 하셨다(렘 30:9; 31:31-34). 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게 한다. 사람의 힘으로 지키지 못했던 말씀을 성령께서 마음에 새겨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게 하시는 날이 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회개, 징계의 수용, 회복의 소망&lt;/strong&gt;은 서로 떨어진 말씀이 아니다. 회개할 때에는 전심으로 돌아와야 하고, 이미 시작된 징계는 겸손히 받아야 하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지만 징계 자체를 마지막 목적으로 삼지도 않으신다. 남은 자를 정결하게 하여 새 시대와 새 언약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대한민국과 우리는 멸망을 막기 위해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대한민국은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 지난 주 화요일(2026.08.18)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북한이 핵무기 57개를 보유했다고 언급했고, 국내에서는 80개에서 120개까지 추정해 왔다고 한다. 수많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바로 곁에 있는데도 우리는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한때 가득 찼던 교회가 비고 기독교 신앙이 급격히 약해졌다. 우리도 예외라고 자신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라가 멸망하는 징조는 외부의 무기만이 아니다. 지도자가 부패하고, 종교 지도자가 거짓 평안을 말하며, 백성이 불의를 좋게 여기고, 회개를 외치는 말씀을 막을 때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자기편이면 잘못을 덮고 상대편이면 무조건 정죄하는 태도도 회개해야 한다.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는 백성을 이용해 자기 배만 불릴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무속과 불교와 조상 제사의 영향을 받아 왔다. 필자는 약 오천 년의 무속적 전통과 천 년의 불교적 영향과 오백 년의 조상 제사 문화 속에서 수많은 우상숭배가 쌓였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885년 선교사들을 이 땅에 보내 복음과 성경을 전하게 하셨고, 한글 성경을 통해 백성이 말씀을 읽게 하셨다. 이 은혜는 우리만 잘 살라는 뜻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먼저 자신과 가정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해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우상과 물질과 권력, 거짓과 음행과 탐욕을 자백하고 끊어야 한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자백하는 자를 깨끗하게 하며,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이 떠날 근거를 마련한다(요일 1:7-9). 필자는 진실한 회개와 축사를 통해 개인과 가정에 내려온 저주와 악한 영의 역사가 약해지고 끊어지는 것을 보아 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민족의 죄도 내 일이 아니라고 뒤로 미루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다니엘은 포로지에서 조상과 백성의 죄를 자기 죄처럼 고백했다(단 9:4-19). 우리도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와 백성이 지은 우상숭배와 불의와 음란의 죄를 품고 애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을 찾으셨다. 오늘도 한 사람의 진실한 회개와 한 공동체의 눈물을 귀하게 보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나라를 향한 두려움을 부추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는 가장 실제적인 길이다. 죄의 분량이 차기 전에 돌이키면 심판을 피할 수 있고, 이미 시작된 징계도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단축될 수 있다. 필자는 자신의 회개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받아야 할 형벌을 긍휼로 덜어 주시고 사명의 길을 다시 열어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같은 은혜를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입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한 번 눈물을 흘렸다는 기억으로 끝나지 않는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을 비추고, 드러난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며, 그 죄를 다시 짓지 않도록 행동을 고쳐야 한다.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의 역사를 끊기 위해 꾸준히 회개하고 축사를 받으며, 성령의 다스림을 따라 성품과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 그 열매가 나타날 때 우리의 회개는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살리는 실제적인 힘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는 세상의 흐름을 무조건 따라가서도 안 되고 사람을 미워해서도 안 된다.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을 죄라고 분명히 말하면서도 죄인을 살리기 위해 눈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회개를 외치는 교회와 성도가 남아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마지막까지 사용하실 소망이 있다. 대한민국이 회개와 천국 복음을 열방에 전하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민족으로 쓰임받도록 우리는 맡은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동탄명성교회가 이 시대의 한 무리로서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통곡과 한 공동체의 진실한 회개가 가정의 저주를 끊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심판을 막는 데 쓰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amp;ldquo;너희 때문에 이 성을 살려 주겠다&amp;rdquo;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말씀을 듣고 죄를 끊으며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때 개인의 문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살리는 사명에도 참여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와 이스라엘이 멸망한 세 가지 이유, 그리고 멸망 앞에서 그가 전한 세 가지 길을 살펴보았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은 채 백성의 굶주림과 성전의 파괴를 보며 눈물로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폐허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소망을 놓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은 백성과 정치&amp;middot;종교 지도자가 함께 타락했고,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씀을 거절했으며, 오랫동안 쌓인 죄악의 분량이 가득 찼기 때문에 멸망했다. 할례받은 언약 백성이라는 신분과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 왕조도 회개하지 않는 백성을 지켜 주지 못했다. 외형적인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대신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했고, 심판이 확정된 뒤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히 받아들이라고 했으며, 징계 가운데서도 칠십 년 뒤의 회복과 새 언약의 소망을 붙들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엄중히 심판하시지만 회개하는 자를 완전히 끊지 않으시며 남은 자를 통해 새 일을 시작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대한민국과 교회도 같은 말씀 앞에 서 있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불의를 사랑하고, 종교 지도자가 거짓 평안을 말하며, 회개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다른 사람만 정죄하지 말고 자신과 가정과 민족의 죄를 먼저 품고 회개해야 한다. 우상숭배와 거짓과 탐욕과 음행을 끊고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절망의 말이 아니라 살길을 여는 복음이다.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며, 악한 영의 역사는 약해지고,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새 사명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징계가 시작되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이며 미래와 희망을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통곡과 눈물이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고, 이 민족이 마지막까지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나라로 쓰임받도록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레미야처럼 시대의 죄를 품고 울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자신과 가정과 민족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3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교핵심]&lt;/p&gt; &lt;p&gt;이 설교는 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의 설교를 바탕으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이스라엘&amp;nbsp;&lt;strong&gt;멸망의 근본적인 원인&lt;/strong&gt;을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정치 지도자와 종교인이 모두 타락하여 소망이 끊긴&amp;nbsp;&lt;strong&gt;영적 부패&lt;/strong&gt;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한&amp;nbsp;&lt;strong&gt;거역의 죄&lt;/strong&gt;, 그리고 땅조차 주민을 토해낼 정도로 가득 찬&amp;nbsp;&lt;strong&gt;죄악의 임계점&lt;/strong&gt;을 멸망의 세 가지 이유로 제시합니다. 특히 예레미야의 눈물 섞인 애통함과 그 속에서도 발견되는&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인자하심&lt;/strong&gt;을 강조하며, 비극적인 심판의 현장 속에서도 회복의 소망이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거울삼아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를 진단하고, 오직 진실한&amp;nbsp;&lt;strong&gt;회개와 영적 돌이킴&lt;/strong&gt;만이 민족과 영혼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강력히 촉구하는&amp;nbsp;&lt;strong&gt;영적 경성&lt;/strong&gt;의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ChatGPT Image 2026년 8월 23일 오후 08_50_3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6a08864288aa6cf41b24f46239f5fe9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2c10f1e3350c5af40f77b4917f1d59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314cabda3e9be04a6c6d1abd0e4eb3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91965e2fc7b37fdc727ecc4e080ad4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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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85c977eb86368e5a96987efd99cee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a4d82e17ddd1e36147d9de234fa5c6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8cdfa7ae6a5a652b8674c650bef2639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c790128d88eadf9bc9ce4e4031e19a9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36e5800f7db832110c411eab7fcdb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28c34ffa0d73d20818b244e02e9ffb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10e4d05f4cc38b9b94bec66dc6874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eb58fdf00af9e35730e671a946a18d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accef45f9b53dde8622f3469f65cac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The_Jeremiah_Restoration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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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1bccbecd2fff2cffd212db8402069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19398213636dddbd2418bf90357ed2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45802e703c126d5500d58d510539fc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22af6fd1634a290510d0c200024938d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9322cba1a70bc29c481bb00fc69de6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9795529d1d09665bd550046e47820c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b7aa1d07a3deae557e1473a00f8d59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4f2c2f24c243fc7ad5dfecbd071fd3a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d9cd96f0db6834e058786d0485fb2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0b7d517b0bb1b838d83bb9319366ce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d6426c3c3eccdfa0759eb3ee1d9b56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예레미야서론] Jeremiah_and_the_Golden_Cit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48f3f242e42ed3c082c24eca95616f3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7901cb56a10c2647ea75c600bdc3bc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fc27a7d09976bf2ea759da72dec8ca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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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2f1a2e7446a2c5abb2109ab57668c6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d60c5736323c2db2710a5c2747324b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efc6e2ea3c9790dea2578873479e847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Major_Prophets_Timelin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860/264/dfb87e2f9cd21157e0124758443e620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구약_4대_선지자_사역_로드맵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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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요기도회]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의 차이 및 무당 점쟁이의 죄를 회개하는 방법(막5:1~15)_2026-08-21(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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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2T00:09:10+09:00</published>
		<updated>2026-08-22T12:21:1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8-21(금) 금요기도회 제1부 제목: [금요기도회]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의 차이 및 무당 점쟁이의 죄를 회개하는 방법(막5: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4eFjzZvZUJY 금요기도회 제1부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의 차이 및 무당 점쟁이의 죄를 회개하는 방법 (막 5:1-15)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은 겉으로 비슷한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것을 보...</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2026-08-21(금) 금요기도회 제1부&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금요기도회]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의 차이 및 무당 점쟁이의 죄를 회개하는 방법(막5:1~15)&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trong&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trong&gt;https://youtu.be/4eFjzZvZUJY&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4eFjzZvZUJ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금요기도회 제1부&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의 차이&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및 무당 점쟁이의 죄를 회개하는 방법&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막 5:1-1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은 겉으로 비슷한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듣는다고 말하거나 회설수설하고, 심한 불안과 공포를 호소하기도 하며, 다른 사람을 피하거나 평소와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정신적 고통을 귀신들림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되고, 성경이 증언하는 귀신의 역사를 전부 정신질환으로만 설명해서도 안 된다. 두 영역은 구별해야 하지만 한 사람 안에서 함께 다루어야 할 때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더러운 귀신이 사람의 몸과 인격에 영향을 미친 사건을 분명히 기록한다. 거라사 지방의 사람은 무덤 사이에 살면서 쇠사슬을 끊을 만큼 큰 힘을 나타냈고, 예수님을 알아보고 두려워했으며, 정체를 알고 질문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자기 안에는 많은 귀신들이 있다고 말했다(막 5:1-13). 귀신이 떠난 뒤에는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해져 앉아 있었다(막 5:15). 간질과 비슷한 증상으로 쓰러지고 거품을 흘리던 아이에게서 귀신이 떠난 사건도 나온다(막 9:17-27). 이것은 성경의 직접 진술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면 &amp;#39;정신질환&amp;#39;은 의료적 평가와 치료가 필요한 건강 문제다. 환각, 망상, 혼란된 언어, 불안과 우울은 여러 원인에서 나타날 수 있다. 증상만 보고 영적 원인을 확정할 수 없으며, 목회적 분별이 의사의 진단을 대신할 수도 없다. 자해와 타해 위험이 있으면 즉시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목회와 축사 사역의 경험을 토대로 &lt;strong&gt;&amp;#39;귀신들림&amp;#39;과 &amp;#39;정신질환&amp;#39;을 구별하는 열한 가지 기준&lt;/strong&gt;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가 영적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고백하는 목회적 분별 기준이지 의학적 진단표가 아니다. 괴력, 예수님에 대한 강한 거부, 알지 못한 사실을 알아맞히는 현상, 다른 목소리, 잠복과 발현, 축사 뒤의 변화 등을 함께 살펴보되 어느 한 가지 증상만으로 사람을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함께 살펴볼 &amp;#39;무당과 점쟁이의 죄&amp;#39;는 우상에게 예를 갖추는 정도를 넘어 악한 영을 자기 안에 받아들여 그 힘을 사용하려는 적극적인 우상숭배로 설명된다. 성경은 신접한 자와 박수무당을 따르지 말고 점술과 주술을 멀리하라고 명한다(레 19:31; 신 18:10-12). 필자는 이러한 죄가 신기, 정신적 고통, 성품의 왜곡, 가정의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가르치며, 본인과 가족이 회개하고 축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아픈 사람을 정죄하거나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회개와 축사를 의학적 치료의 대체물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약물은 임의로 줄이거나 끊지 말고 담당 의사와 상의해야 하며, 기도와 목회적 돌봄은 치료와 안전 계획을 존중하며 병행해야 한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혼자 견디게 하지 말고 즉시 112나 119,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1577-0199와 전문기관에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lt;strong&gt;이 시간에는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무당과 점쟁이의 죄가 무엇이며, 회개와 축사와 의학적 치료를 어떤 질서로 진행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은 어떻게 다르며 어디에서 맞닿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귀신들림&amp;#39;은 &lt;strong&gt;필자의 신학적 설명에 따르면 사람의 육체 안에 들어온 귀신이 그 사람의 혼의 기능인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장악해 가는 상태&lt;/strong&gt;를 가리킨다. 귀신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지닌 인격적 영이므로 사람의 생각에 자기 생각을 섞고, 감정을 자극하며, 마침내 의지를 빼앗으려 한다. 처음부터 정체를 드러내면 거부당할 수 있으므로 오랫동안 숨어 있다가 조금씩 영향력을 넓힌다고 설명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amp;#39;정신질환&amp;#39;은 사고, 감정, 지각, 행동과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나타나는 건강 문제다. 필자는 뇌의 일부가 상하거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로 설명하지만, 모든 정신질환을 단순한 뇌 손상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다. 정확한 원인과 진단은 의료진의 평가가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영역이 맞닿는 지점은 증상이다. &amp;quot;환청과 환시, 두려움, 갑작스러운 행동 변화, 말의 혼란, 수면 장애, 경련과 같은 현상&amp;quot;이 양쪽 설명에서 모두 언급될 수 있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고 원인을 결정하면 오류가 생긴다. 정신적 고통이 있는 사람에게 &amp;ldquo;귀신 들렸다&amp;rdquo;고 말하며 눈총을 주면 상처와 낙인을 더할 수 있다. 반대로 신앙 공동체가 성경의 영적 세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도 필자가 경계하는 태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의 거라사 광인은 더러운 귀신의 영향이 고스란히 명시된 경우다. 그는 무덤 사이에 거주했고 쇠고랑과 쇠사슬을 끊었으며, 밤낮 소리를 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해쳤다.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고, 귀신은 자기 이름을 군대라고 밝혔다(막 5:2-9). 이 본문은 그 특정 사건의 원인을 귀신이라고 분명히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5:3-4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오늘 만나는 모든 유사 증상을 거라사 사건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성경의 진술과 오늘의 진단 사이에는 신중한 분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먼저는 안전을 확보하고, 신체 검사와 정신건강 평가를 받으며, 복용 중인 약과 수면 상태와 외상 경험을 확인해야 한다. 그와 함께 본인이 원한다면 성경에 근거한 기도와 회개와 목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한쪽을 선택하기 위하여 다른 한쪽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 전체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lt;strong&gt;귀신이 뇌나 신경을 누르거나 육체를 약하게 하여 정신적&amp;middot;신체적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해석&lt;/strong&gt;한다. 이것은 축사 현장에서 형성된 영적 해석의 하나다. 따라서 의학적 질환을 악한 영의 역사라고 단정하여 치료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의료적 치료를 받는 성도를 믿음이 없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예수님도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는 일상적 사실을 비유에 사용하셨다(막 2: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영적 문제는 회개와 축사로, 질환은 전문 치료와 재활로 다루며 필요하면 양쪽 돌봄을 안전하게 병행해야 한다. 분별의 목적은 고통받는 사람이 정죄 없이 적절한 도움을 받게 하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귀신들림을 분별하는 열한 가지 기준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제시하는 &lt;strong&gt;열한 가지 기준&lt;/strong&gt;은 &lt;strong&gt;마가복음 5장과 9장의 사건 및 축사 현장의 관찰을 연결한 것&lt;/strong&gt;이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이 기준은 의학적 진단 기준이 아니며, 어느 한 항목이 보인다고 귀신들림을 확정해서는 안 된다. 정신과적&amp;middot;신경학적 증상은 전문 평가를 먼저 받아야 하며, 목회적 분별은 사람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자신의 가진 평소의 능력을 넘어서는 괴력이 나타나는지&lt;/strong&gt;를 살핀다. 거라사 광인은 고랑과 쇠사슬을 끊었고 아무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다(막 5:3-4). 많은 귀신들이 한 사람 안에서 힘을 발휘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흥분, 약물, 신경학적 상태에서도 약간은 비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은 대부분 나약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예수님과 예수님의 이름 및 영적 권위를 가진 사역자에게 특별한 두려움과 거부를 보이는지 &lt;/strong&gt;살핀다(막 5:7). 군대 귀신은 멀리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달려와 절하며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막 5:6-7). 축사를 앞두고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거나 손발을 떨리거나 사역자를 피하려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이 그 예라보 본다. 다만 종교적 외상이나 사람에 대한 불신도 거부 반응을 만들 수 있으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5:6-7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배우거나 들은 적 없는 다른 사람의 형편과 영적 상태를 알아맞히는 현상이 반복되는지&lt;/strong&gt; 살핀다(막 5:8-9). 무당들은 동자신을 통하여 병의 원인이나 집안 내력을 맞힌다. 이는 동자신 귀신이 무당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동자신은 점치러 오는 사람 속에 있는 영에게 가서 먼저 물어보아 이 정보를 무당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초자연적인 앎의 능력이 없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평소와 전혀 다른 목소리와 말투가 나오는지&lt;/strong&gt;를 살핀다(막 5:9). 어른에게서 어린아이의 소리가 나거나 남자에게서 여자의 말투가 나오는 등 다른 인격이 말하는 듯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 자식이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거나, 내 자식이 혼자 방에서 누군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다거나 그 지시를 몰래 따르고 있다면 그것은 귀신들림 현상이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자신의 목소리만 소리낼 뿐 딴 사람으로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는지&lt;/strong&gt;를 살핀다. 귀신은 처음에는 자기 정체를 숨긴다. 그러므로 귀신들린 자는 자신은 절대 귀신 들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신질환자는 자신에게 아마도 귀신이 들어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상한 말을 한다는 것을 자신이 알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갑자기 쓰러져 몸이 굳고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가는 현상이나 반복적인 자해 충동이 나타나는지&lt;/strong&gt;를 살핀다. 마가복음 9장의 아이는 귀신에게 사로잡힐 때 넘어지고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고 파리해졌다(막 9:17-18). 성경은 귀신이 그 아이를 죽이려고 자주 물과 불에 던졌다고 말한다. 자살충동을 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정신질환만 걸린 사람은 결코 자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니 자신이 죽을까봐 자살자체를 두려워한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9: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일곱째, 귀신이 잡아쓰지 않을 때에는 또렷하고 합리적으로 말을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특정 순간이 되었을 때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lt;/strong&gt;를 살핀다. 귀신들린 자라도 귀신이 전면에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정상적으로 대화를 한다. 그러나 귀신이 그를 장악하면 말과 눈빛이 달라진다. 귀신이 완전히 사로잡으면 눈이 뒤집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질환자는 말에 조리가 없고 횡설수설하기 일쑤다. 눈은 흐리멍텅하게 보인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덟째, 축사 직후 증상이 즉각 사라지는지&lt;/strong&gt;를 살핀다(막 9:27). 성경에 보면, 말 못 하게 하는 귀신이 떠나자 즉시 말 못 하던 사람이 말을 하였으며, 거라사 광인은 정신이 온전해졌다(마 9:32-33; 막 5:15). 귀신이 직접 막고 있는 어떤 것들은 그 영이 떠나갈 때 곧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질환자 곧 뇌와 마음 등 정신영역의 기능이 손상된 자는 회복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 치유기간이 길다. 그러므로 상체가 치유받을 때까지 증상이 계속 나타나는 것이다. 잠시 안정된 것을 가지고 완치로 오해해 치료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아홉째, 오랜 잠복기와 일정한 발현 주기가 있는지&lt;/strong&gt;를 살핀다. 악한 영은 자신이 없다고 감추기 위해 5년, 10년, 15년 동안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숨어 지내지만, 어느날 청소년기나 인생의 특정 시점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정체를 강하게 드러낸다. 무당의 딸이나 손녀는 귀신으로부터 자기자신에게 신기가 있어서 무당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바든데, 대부분 일생에 세 번이나 네 번 강하게 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뇌나 마음이 망가진 다음부터 즉시 그 증상이 나타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열째, 자신과 접촉하는 주변 사람에게 유사한 영적 증상이 나타나는지&lt;/strong&gt;를 살핀다. 귀신들린 자 속에 들어있는 영은 접촉하는 가까운 사람 속에도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신질환 자체는 접촉으로 결코 전염되지 않는다. 귀신들은 그 사람의 가족들 즉 부모나 자식에게 그대로 들어가서 유사한 행동과 말을 하게 한다. 그러나 자식이 조현증이 있는 엄마는 그 딸과 거의 비슷한 영들을 소유하고 있다. 다만 딸이 아직 정신 상태가 약해서 귀신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자기만 증상이 나타날 뿐 가족에도 전혀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열한째, 축사 사역자를 만날 때 극심한 두려움이나 조롱과 도전이 나타나는지&lt;/strong&gt;를 살핀다. 필자는 사역 전부터 몸을 떨고 있거나 사역자를 깎아내리고 시험하려는 반응 등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떠나지 않으려는 악한 영이 느끼는 두려움이자 저항으로 본다. 그러나 과거의 강압적 축사 경험 때문에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자신의 동의 없이 붙잡거나 소리치거나 신체 접촉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부모의 회개기도가 정말 절실한다. 귀신이 자녀의 정신과 마음을 붙잡아서 축사를 받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질환자는 축사사역자를 만나도 이러한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지금까지 살펴본 이 열한 가지 특징들은 귀신들림의 판정표가 아니라 목회적 관찰에서 나온 예이니만큼 함부로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먼저 자해&amp;middot;타해 위험과 급성 정신증과 경련 여부를 확인하고, 위험하면 즉시 정신치료기관이나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의학적 치료와 회개&amp;middot;축사는 어떻게 구분하고 병행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의학적 치료와 회개&amp;middot;축사는 서로 경쟁하는 수단은 결코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증상의 양상과 기간, 신체 질환, 약물과 물질 사용, 수면, 외상, 가족력과 일상 기능을 평가해 준다. 필요한 경우 약물치료, 심리치료, 가족교육, 재활과 위기 개입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 조현병과 정신증에도 효과적인 치료가 있으며, 초기에 적절한 도움을 받을수록 일상 회복에 유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회개와 축사는 분명히 죄와 우상숭배를 끊고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살려는 영적 돌봄의 하나이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죄 사함과 깨끗함을 받을 근거가 내게 생기고,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요일 1:9). 축사는 회개 없이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만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가 아니라, 죄의 법적 근거를 처리한 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에게 떠나가라고 명함으로 실현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먼저 증상부터 잘 살피고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관리하게 해주어야 한다. 경련, 의식 저하, 극심한 흥분,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하는 상태, 현실 판단의 상실, 자살이나 타해 계획이 있으면 기도회만으로 버티게 해서는 안 된다. 즉시 응급 평가를 받고, 보호자가 곁에 머물며 위험한 물건을 치우고, 전문기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자살 위험은 영적 상태를 판별하는 표지가 아니라 생명을 지켜야 할 응급 신호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약물치료를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정신과 몸을 통제하기가 어려우면, 약물의 도움으로 불안과 충동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일상생활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물에 의해 증상을 줄였다고 해서 회개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회개와 기도로 증상이 완화되었다고 해서 약을 갑자기 끊어서도 아니 된다. 감량과 중단은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하여 안전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목회자는 의료진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고, 의료진도 성도의 신앙을 조롱하지 않는 협력이 바람직하다. 교회는 예배와 기도, 죄의 자백, 가족의 지지, 규칙적인 생활을 돕고, 병원은 진단과 약물과 심리사회적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증상이 좋아져도 재발 가능성을 살피며 정기 진료와 공동체 돌봄을 이어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엇보다 아픈 사람을 탓하지 않아야 한다. &amp;ldquo;믿음이 없어서 약을 먹는다&amp;rdquo;거나 &amp;ldquo;귀신 들렸으니 가까이하지 말라&amp;rdquo;고 말하면 회복을 방해한다. 예수님은 고통받는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하셨다. 교회도 환자와 가족이 숨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귀신의 잠복과 장악 및 축사 이후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귀신이 처음 들어올 때는 &lt;strong&gt;대부분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오랫동안 잠복한다.&lt;/strong&gt;&amp;nbsp;이는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면 회개와 축사를 받을 수 있으므로, 없는 것처럼 숨어 지내면서 우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조금씩 점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고 귀신의 뜻을 따르게 하며, 특정 시기에 강하게 발현하여 그를 무당을 만들기도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라사 광인의 경우를 보라. 그 속에 있는 영이 말한 &amp;ldquo;군대&amp;rdquo;는 많은 귀신이 한 사람 안에 들어간 상태임을 알려준다. 그때 에수께서 그들이 떠날 것 명령하자, 귀신들은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리고 허락하자 약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로 내달아 몰사하고 말았다(막 5:9-13). 이 장면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람 속에 들어온 귀신들이 세계에게도 우두머리와 지휘 체계가 있으며, 그중에는 대부분 가장 높은 영이 대표로서 말을 한다. 그러므로 축사를 통해 최고의 우두머리가 나가면 다음의 위치에 있는 영이 올라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까지는 반복적으로 회개와 축사가 해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회개하고 축사사역을 받을 때의 경우을 보면 이렇다. 내 머리 속에 사명대사의 형상을 한 영들이 반복해서 드러났으며 축사를 받았다. 그리고 회개를 하면서 축사사역이 계속되자, 어느날 사역자는 갑옷을 입은 특수 천사들을 내려오게 하여, 놋처럼 단단한 귀신의 집을 특수기계로 부수게 했다. 그리고 부서진 잔해를 청소하는 천사들이 내려와 대거 수거하게 하고 덤프트럭에 실어 음부로 가게 했다. 그리고는 귀신 집이 있던 자리를 물이 나오는 호스로 깨끗히 청소하였다. 그러자 꽃밭과 맑은 물이 생겨났으며, 마지막에는 성령님의 보좌가 내려와서 자리를 잡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 여기저기에 한국풍, 아시아풍, 유럽풍의 집들이 지어졌다. 이것은 무슨 의미읹니 물었을 때 사역자는 장차 목사님이 선교할 지역과 미래를 미리 보여 주신 것으로 말씀해주었다. 그렇다. 귀신의 집이 무너지고 성령께서 육체까지 다스리실 공간이 회복된 다음에 어떤 사람에게는 그가 해야 할 사명이나 미래의 모습이 환상으로 펼쳐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쉬며 누리고 사는 장면이, 어떤 사람에게는 선교와 사역의 장면이 나타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우리 교회의 부교역자들에게는 특별한 은사가 있다. 축사를 하고 나니, 머리나 몸의 각 영역에 꽃이 피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나팔꽃, 국화꽃, 개나리꽃, 함박꽃, 장미꽃 등이 핀 것이다.나중에 확인해 보니 우리 몸의 어떤 영역에 있는 모든 영들이 다 나가게 되면 그 자리에게 꽃이 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사람의 신체의 어느 영역에 더 이상 영이 없으면 꽃이 피는 것이 보여지는 것이다. 이것은 귀신의 집이 파괴되어도 나타났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축사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사역자에게는 어떤 증상이 있는가&lt;/strong&gt;? 그것은 사역자에게서 &lt;strong&gt;성령의 불이 나와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영들이 접촉을 통해서 달라붙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게서 불이 나오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영안이 열린 자가 보면 손 모양을 중심으로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나 불꽃의 크기가 크느냐에 따라 사역자의 영권이 다른 것이다. 그런제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강한 축사사역자일수록 손가락의 맨 마지막 마디가 붉어지면서 강하게 열이 났다는 것이다. 또한 기도받는 사람 역시 뜨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lt;strong&gt;빠른 축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사를 주시기도&lt;/strong&gt; 한다. 이때에는 &lt;strong&gt;보통 쇠 지팡이(철장)나 양날의 불같은 칼이나 뾰족한 칼 모양의 영적 무기가 장착&lt;/strong&gt;된다. 그러면 보다 더 쉽고 빠르게 귀신과 뱀들을 내 보낼 수 있다. 그러나 회개와 정결도 없고, 손에 불이 나오지 않는데도 귀신들린 자나 환자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면 상대에게 있는 악한 영이 나와서 사역을 공격함으로 사역자가 이러한 영들 때문에 사역을 몇 년을 지속하지 못한 채 멈춘다가거 심장과 머리를 공격받아 평생 불구자처럼 살아가거나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죽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역자가 되려면 먼저 자신이 회개기도를 충분히 하여 악한 영들을 제거하고 나중에는 귀신의 집까지 파괴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전투방기도를 통하여 영권을 계속해서 올려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체험을 의학적 회복의 지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즉각적인 변화가 있더라도 치료를 중단하지 말고, 환청과 수면과 일상 기능 및 성품의 변화가 지속되는지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무당과 점쟁이의 죄는 왜 중대한 우상숭배에 해당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주로 4가지로 분류되는 우상숭배의 죄들 가운데, 무당과 점쟁이의 죄가 매우 나쁜 까닭은 다른 죄들은 악한 영들에게 빌거나 절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무당 점쟁이의 죄는 악한 영을 직접 자기 안에 받아들여 그 힘으로 점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렇다. 제사가 자기 조상을 높여 대접하는 우상숭배의 경우라면, 신내림을 받아 무당과 점쟁이가 되는 것은 악한 영을 자기의 몸 안에 모셔와 그 영과 하나가 되어 사는, 더 적극적인 범죄인 것이다. 그것이 자원해서 했든 압박에 못 이겨 받았든 상관없이, 신을 받아들이는 의지적 동의가 들어간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무당과 점쟁이의 죄에 대해서 강력하게 경고한다. &lt;strong&gt;첫째는 신접한 자와 박수무당에게로 향하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따르지 말라&lt;/strong&gt;고 한다(레 19:31, 20:6). 특히 레위기 20장 6절은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시며 백성 중에서 끊으시겠다고 경고한다. 여기서 음란은 단순한 성적 행위만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영을 따르는 영적 배신도 포함한다. 필자는 신접 과정에서 성적 타락과 귀접이 뒤따를 수 있고, 이것이 부부 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0:6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amp;nbsp;&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이들의 말을 믿지 말라&lt;/strong&gt;고 한다(레 19:31). 왜냐하면 이들은 속이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요 미혹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귀신의 힘을 빌려 사람들을 호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인 주제와 조금 능력을 가졌다고 하나님을 흉내내는 귀신들을 따라가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19:31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nbsp; &lt;strong&gt;셋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 점쟁이, 길흉을 말하는 자, 요술하는 자, 무당, 진언자, 신접자와 초혼자를 용납하지 말라&lt;/strong&gt;고 명한다(레 19:31; 신 18:10-12). 이들이 내 주변에 있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점술은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는 대신 다른 영에게 지식과 힘을 구하는 매우 큰 죄이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0:6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넷째, 이들은 살려두지 말라 반드시 죽이라&lt;/strong&gt;고 한다. 출애굽기 22장 18절과 레위기 20장 27절에는 무당과 신접한 자를 죽이라는 고대 이스라엘의 형벌 규정도 나온다. 이것은 옛 언약 아래 이스라엘 공동체에 주어진 사법적 명령이지, 오늘날 개인이나 교회가 무당에게 폭력을 행사하라는 허가서는 아니다. 신약의 성도는 사람을 해치는 대신 회개와 복음을 전하고, 불법 행위는 법질서 안에서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이기 때문이다(엡 6: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 &lt;p&gt;출 22:18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lt;/p&gt; &lt;p&gt;레 20:27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lt;/p&gt; &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동시에 악한 영들이 &amp;ldquo;네가 신을 받지 않으면 네 딸에게 들어가겠다&amp;rdquo;는 협박도 거절해야 한다. 인간에게 누구나 자유의지가 있다. 그러므로 신내림을 받는 문제는 우리의 허락도 없이 감쪽같이 하는 일이 아니므로, 귀신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거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귀신이 강력하게 역사하여 나 자신과 자녀가 신내림을 받기를 강요한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거부하면 그들은 결코 그들 뜻대로 우리를 무당이나 점쟁이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들이 주는 두려움이라 할지라도 신내림에 동의하지 말고 주님의 이름으로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위협과 환청이 계속되면 혼자 맞서지 말고 가족과 목회자에 알리고 때로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무당을 찾아가 답을 얻으려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점이 맞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귀신으로부터오는 잘못된 정보이며, 미래와 안전을 결코 귀신에게 맡겨서도 아니 된다. 사도행전의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바울 일행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외쳤지만, 바울은 그 영을 용납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버렸다(행 16:16-18). 내용 일부가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영을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무당의 죄는 신기와 정신적 고통 및 가정 문제로 어떻게 이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무당의 죄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 죄는 개인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혈통과 가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모든 후손이 져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조상의 구원을 바꾸는 일도 아니다. 다만 우상숭배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의 영향이 후손에게 내려와 신기, 우울, 불면, 성품 문제, 질병과 가정의 막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내게 무당의 영이 오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가? &lt;strong&gt;가장 약한 단계에서는 이유 없는 외로움과 쓸쓸함&lt;/strong&gt;이 나타나고, &lt;strong&gt;더 강해지면 우울증과 불면증이 찾아온&lt;/strong&gt;다. 특히 머리와 어깨에 무당 계열의 영이 붙으면 정신과 수면을 집중적으로 방해한다. 그리고 더 심해지면 조현병과 정신증, 경련, 자살 충동으로 이어진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무당의 영이 내게 들어있으면, 성품에서는 무조건적인 혈기와 분노, 거짓말, 시기와 질투, 음란, 교만과 조급함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때 나타나는 혈기와 분노는 논리를 내세워 상대를 누르는 제사 계열의 영과는 달리, 아무런 이유 없이 내는 혈기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욱이 신기가 강해지면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특별한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무당의 옷을 입고 싶거나 굿과 점집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때가 되면 방울소리나 피리 소리 같은 것이 내 귀에 들리기 시작하고, 점치는 능력이 나타나며, 다른 사람의 형편을 알아맞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것을 신비한 능력이나 성령의 은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악한 영이 나를 속이기 시작했구나 하고 인지를 해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무당의 영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대부분 부부 갈등이 있으며 이혼이 나타나는 것을 본다. 자신이 신내림을 하지 않았어도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무당 계열의 귀접의 영은 성적으로 쾌감을 주게 함으로 배우자 사이를 갈라노혹, 질투와 음란을 부추겨 결국 결혼 관계를 깨뜨려 버린다. 그러므로 무당 집안에서는 대부분 우울과 자살, 음행과 이혼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 파탄의 원인은 폭력, 중독, 경제 문제, 의사소통의 실패 등 다양하므로 영적 설명 하나로 피해자를 정죄하거나 위험한 관계에 머물게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내게 무당의 영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몸에는 어떤 증상이 나타나느가? 그때에는 머리와 어깨가 압박을 받는다. 앞쪽 허리에 통증이 발생한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중에 점치는 영은 가슴 부위에 많이 자리잡고, 신내림 과정에서 허리를 끈으로 묶는 행위가 있었다면 후손에게 허리 통증이 나타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악한 영은 장차 하나님의 사역에 쓰일 사람을 미리 알아보고 그를 강하게 공격할 수 있다고 본다. 혹 자신에게 사명대사나 장군의 형상을 한 영들이 많이 들어 있다면, 그 사람이 장차 회개하여 그 영이 떠나보낸 뒤에는 오히려 강한 영적 분별과 사역의 은사자가과 탈바꿈할 수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귀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끊고 쫓아내고 자기자신을 온전히 성령께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죄와 악한 영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시고 새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무당의 죄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개와 축사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내가 무당 점쟁이의 죄에서 벗어나고 회개와 축사를 받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신내림과 점술과 굿과 부적과 초혼을 우상숭배의 죄로 인정하고 끊어야&lt;/strong&gt; 한다. 자신이 직접 참여한 일뿐 아니라 조상들이 무당과 점쟁이로 행한 죄를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아뢰며, 그 죄를 본받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이것은 조상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후손에게 내려온 현세적&amp;middot;영적 영향을 끊기 위한 회개다. 본인이 지은 자범죄와 조상의 우상숭배를 구분하여 자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악한 영의 협박을 거절해야&lt;/strong&gt; 한다. &amp;ldquo;네가 받지 않으면 자녀가 받는다&amp;rdquo;는 거짓된 말을 잘못 알고 신을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 본인도 자녀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내림만큼은 거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다만 환청이 명령하고 자해를 재촉하거나 현실 판단이 흐려진 상태라면 혼자 대항하지 말고 즉시 보호자와 사역자에게 알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진실로 회개하면서도 회개의 분량을 꾸준히 채워나가야 &lt;/strong&gt;한다. 필자는 평생 회개기도문을 사용하여 한두 번으로 끝내지 말고 250번, 500번, 750번, 1,000번으로 계속 회개해야 한다. 반복 횟수 자체가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쌓인 죄를 구체적으로 깨닫고 진심으로 자백하며, 우상숭배의 습관과 성품을 실제로 끊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이다. 회개의 열매는 겸손과 진실, 절제와 사랑의 삶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꼭 회개한 뒤 축사를 받아 악한 영을 떠나보내는 회개를 해야&amp;nbsp;&lt;/strong&gt;한다. 필자에게 사역 순서는 죄를 자백하여 악한 영이 머물 법적 근거를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떠나가라고 명하는 것이다. 회개기도문으로 일정 분량을 채워 회개하는 분량만큼 축사를 병행하여 속에 자리한 영들을 계속 내보내야 한다. 이때 강제로 들어온 영은 쉽게 떠나게 할 수 있지만, 조상의 죄와 자신의 참여로 합법적 근거를 가진 영은 충분한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가족을 돕기 전에 자신부터 회개하고 정결해져야&lt;/strong&gt; 한다. 자녀가 조현병이나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면, 비교적 깨달을 수 있고 말씀을 듣고 회개를 실천할 수 있는 부모가 먼저 죽기 살기로 회개해야 한다. 부모의 회개가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고 가정의 영적 환경을 바꾸는 출발점이기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녀의 질환을 부모의 죄 탓으로 단정하거나 치료 책임을 부모의 회개에만 지우게 해서는 안 된다. 환자 본인의 진료와 권리와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약물과 전문 치료를 병행해야&lt;/strong&gt; 한다. 통제가 어렵고 불안과 공포가 심하여 사람을 만나거나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면 약물로 증상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상태가 좋아져도 임의로 끊지 말고 담당 의사와 상의하여 천천히 조정해야 한다. 회개와 축사는 치료를 방해하는 수단이 아니라 환자가 안전하게 치료를 받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돕는 영적 돌봄이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일곱째, 사역자 자신도 준비되어야&lt;/strong&gt; 한다. 누구든지 자신이 사역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먼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전투방기도를 해서 성령의 불과 영적 무기를 갖추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신체 접촉을 하거나 강제로 축사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사역자도 지치고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역을 할 때에는 반드시 축사받을 자 본인의 동의를 얻여어야 하고, 여러 사람이 안전을 살피며, 폭력과 모욕과 약물 중단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마지막으로 회복의 열매를 오래 살펴야&lt;/strong&gt; 한다. 뜨거움이나 환상을 본 것만으로 완전한 회복을 선언하지 말고, 증상과 수면과 가족 관계와 일상 기능 및 성품의 선한 열매가 지속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영적 돌봄과 의료적 돌봄이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의 차이, 필자가 제시한 열한 가지 목회적 분별 기준, 무당과 점쟁이의 죄 및 회개와 축사의 순서를 살펴보았다. 성경은 거라사 광인과 귀신 들린 아이를 통하여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예수님의 명령 앞에 떠난 사건을 분명히 보여 준다. 동시에 오늘의 모든 정신적&amp;middot;신경학적 증상을 그 사건과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존중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열한 가지 기준에는 괴력, 예수님에 대한 거부, 알지 못한 사실을 맞히는 현상, 다른 목소리, 문제의 부인, 경련과 자해 충동, 간헐적인 인격 변화, 축사 직후의 변화, 잠복과 발현, 접촉을 통한 영적 영향, 축사 사역자에 대한 두려움과 도전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필자의 사역 경험에서 나온 영적 관찰이며 사람을 낙인찍는 진단표가 아니다. 위험한 증상은 먼저 의료적으로 평가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당과 점쟁이의 죄는 다른 영에게 지식과 힘을 구하고 그 영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우상숭배다. 성경은 신접한 자와 박수무당을 따르지 말고 점술과 주술을 멀리하라고 명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형벌 규정을 오늘날 개인의 폭력으로 옮겨서는 안 되며, 사람을 미워하는 대신 악한 영과 죄를 끊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무당 계열의 영이 신기, 외로움, 우울, 불면, 성품의 왜곡, 부부 갈등과 몸의 통증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많이 보아왔다. 이 주장은 필자의 귀신론적 해석과 영적 체험의 층위에서 기록해야 하며, 조현병과 우울증과 뇌전증의 의학적 원인을 모두&amp;nbsp; 무당 조상 하나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아픈 사람과 가족을 비난하지 말고 치료와 회복을 함께 도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길은 신내림과 점술을 죄로 인정하고, 악한 영의 협박을 거부하며, 평생 회개기도문으로 꾸준히 자백하는 데서 시작한다. 필자는 250번, 500번, 750번, 1,000번으로 회개의 분량을 채우고 그때마다 축사를 받아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한다. 이때 횟수만 채우는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를 끊고 성품과 생활이 변화되는 열매가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의학적 치료와 영적 돌봄은 생명을 살리는 목적 아래 협력해야 한다. 약은 담당 의사와 상의 없이 중단하지 말고, 자살이나 타해 위험과 경련과 급성 정신증이 있으면 즉시 응급 도움을 받아야 한다. 교회는 환자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고 기도와 말씀과 가족의 지지로 곁을 지켜야 하며, 사역자는 동의와 안전과 절제를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나 정죄가 아니라 분별과 사랑이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 싸움을 믿으면서도 의학적 도움을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죄는 철저히 회개하면서도 고통받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진리 안에서 영과 혼과 몸의 온전한 회복을 위하여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1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amp;nbsp;&lt;strong&gt;귀신 들림과 정신 질환의 명확한 차이&lt;/strong&gt;를 규명하고, 특히 무당 및 점쟁이와 관련된 가계의 죄를 해결하는&amp;nbsp;&lt;strong&gt;회개의 방법론&lt;/strong&gt;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귀신 들림이 초자연적인 괴력이나 타인의 영적 상태를 맞히는 등의 인격적 점유 현상을 보이는 반면, 정신 질환은 뇌의 기능적 손상으로 인한 사고의 부조화라는 점을 강조하며&amp;nbsp;&lt;strong&gt;의학적 치료와 영적 축사의 병행&lt;/strong&gt;을 권장합니다. 특히 무당의 죄는 자발적으로 악한 영을 받아들인 중죄로서 후손에게&amp;nbsp;&lt;strong&gt;조현병이나 공황 장애&lt;/strong&gt;&amp;nbsp;같은 고통을 대물림하므로, 부모가 자식을 대신해 목숨을 걸고&amp;nbsp;&lt;strong&gt;회개 기도문&lt;/strong&gt;을 송독하며 영적 세력을 끊어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텍스트는 보이지 않는 영적 배경이 육체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철저한&amp;nbsp;&lt;strong&gt;자기 성찰과 축사 사역&lt;/strong&gt;을 통해 대물림되는 저주에서 벗어나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삶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ChatGPT Image 2026년 8월 22일 오후 12_14_4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b68e02220212edd09843cddc9eaa400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True_Recover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1eb9be7adbd1073bace9ca9ccaddffe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True_Recover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94d0a11a3614dfe249cc1375dd9dfcf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True_Recover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76badb09fa5534ed777c66c4756d81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True_Recover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59b665edadd203617bdafd95b8d76b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True_Recover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ebb44a98c046ec8364278f7c6560ba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True_Recover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0b5bb96e87a5a44a9ccc8473c204d08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True_Recover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e3997725541de3b9c236716263d0322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True_Recovery.pdf_8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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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귀신들림과_정신질환_영적_분별_가이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bca655cdd95a9a097d03fe69ab4087a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Integrated_Healing.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79de9ea5cbc797b230d28883a301a3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Integrated_Healing.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120da1f729b7c28abedb0605793e7c8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Integrated_Healing.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44053d8a5de37c425513bf2c94ea00b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Integrated_Healing.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093b5ca6565db0161a5feabddb4cdfe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Integrated_Healing.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565cc55dae49d7b4530a02db7de1e4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Integrated_Healing.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d1770cb8e6c281a863dfcddef8c401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Integrated_Healing.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ee0e18b91e52305c1921f583bca647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Integrated_Healing.pdf_8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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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Integrated_Healing.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4c13cf3bd984c5aa2100723e2bf3dd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8.210] Spiritual_Discernment_and_Integrated_Healing.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769/264/c715a4bbbf71adbcae7b215c410fa9c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