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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subtitle>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동탄명성교회입니다.</sub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lang="ko" href="https://dongtanm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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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ghts>Copyright ⓒ 2017 동탄명성교회. All right reserved.</rights>	<entry>
		<title>[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02)] 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01)(엡2:11~22)_2026-09-13(주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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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9T16:38:55+09:00</published>
		<updated>2026-09-19T16:38:55+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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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6-09-13(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02)] 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01)(엡2:11~2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wQdyApIJAAo [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세대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대체신학에 왜 반발했는가? 2. 세대주의 성경해석법의 네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3. 문자적 해석은 이스라엘·예루살렘·성전을 어떻게 오해하게 하는가?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9-13(일) 주일오후찬양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02)] 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01)(엡2:11~2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wQdyApIJAA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wQdyApIJAA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세대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대체신학에 왜 반발했는가?&lt;br /&gt; 2. 세대주의 성경해석법의 네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lt;br /&gt; 3. 문자적 해석은 이스라엘&amp;middot;예루살렘&amp;middot;성전을 어떻게 오해하게 하는가?&lt;br /&gt; 4.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하면 구원론과 종말론이 어떻게 달라지는가?&lt;br /&gt; 5. 율법과 은혜, 믿음과 행위는 구원 안에서 어떤 관계인가?&lt;br /&gt; 6. 아브라함의 약속과 참이스라엘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lt;br /&gt; 7. 세대주의의 공헌과 오류를 분별하며 유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정보배 목사의 강의는 인류 역사를 일곱 시대로 구분하여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설명하는&amp;nbsp;&lt;strong&gt;세대주의 성경 해석법&lt;/strong&gt;의 정의와 그에 따른 신학적 쟁점을 다룹니다. 본 텍스트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철저히 분리하며 성경을&amp;nbsp;&lt;strong&gt;문자적으로 해석&lt;/strong&gt;하는 세대주의가 유대인의 특수성을 강조함으로써 기존의&amp;nbsp;&lt;strong&gt;대체 신학&lt;/strong&gt;과 대립하는 지점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저자는 세대주의가 유대인의 회복과&amp;nbsp;&lt;strong&gt;환난 전 휴거&lt;/strong&gt;를 주장하며 성경 대중화에 기여했으나, 구원의 방식이나 종말론에서 나타나는&amp;nbsp;&lt;strong&gt;신학적 오류&lt;/strong&gt;와 극단성을 경계해야 함을 지적합니다. 결국 이 강의는 성경의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이해하고, 이방인인 우리 또한&amp;nbsp;&lt;strong&gt;약속의 자녀&lt;/strong&gt;로서 회개를 통해 천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사명을 일깨우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0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과연 무엇이 문제인가?(0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엡 2:11-2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인류 역사를 일곱 시대로 나누고,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스리시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석하는 신학 사조다. 영국 성공회 사제였으나 기존 교회를 떠나 형제교회의 지도자가 된 존 넬슨 다비가 19세기에 그 체계를 세웠다. 그는 무죄, 양심, 인간 정부, 약속, 율법, 은혜 또는 복음, 천년왕국이라는 일곱 시대를 구분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는 성경의 모든 시대를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각각의 특징을 살핀다는 장점이 있다.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통하여 복잡한 성경의 틀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했고, 세대주의를 받아들인 선교사들이 한국에 복음을 전한 공헌도 크다. 우리는 그 공헌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철저히 분리하고, 구약의 약속이 육적인 이스라엘에게 문자 그대로 성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리가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에 적용되면 교회 전체의 환난 전 휴거, 유대인을 위한 별도의 구원 계획, 지상 천년왕국의 성전과 제사 회복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된 약속을 다시 육적인 이스라엘의 미래로 미루는 문제가 생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대편에는 대체신학(代替神學, replacement theology)의 극단이 있다.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절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버리고 교회가 모든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고 보는 견해다. 이 생각이 유대인을 멸시하고 핍박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하나님의 뜻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세대주의의 오류를 지적한다고 유대인을 저주받아 사라져야 할 민족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베소서 제2장은 이 문제를 푸는 중심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 유대인과 교회가 영원히 서로 다른 두 백성으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며, 교회가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폐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둘이 한 새 사람과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양극단을 떠나 성경 전체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육적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예표와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고 교회로 확장되었는지, 마지막 때 유대인에게 어떤 구원의 기회가 남아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세대주의가 대체신학에 반발하여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성경해석의 특징과 오류를 분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세대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대체신학에 왜 반발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존 넬슨 다비는 1800년에 태어나 1882년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신학자다. 성공회 사제였던 그는 기존 교회의 교권주의를 부정하고, 성도들이 형제와 자매로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형제교회에 들어가 지도자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인간을 경영하시는 방식이 다르다는 체계를 세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출발점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유대인은 율법을 지켜 구원받고 이방인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처럼 보았으며,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과 교회에게 주신 약속을 서로 다른 선로에 놓았다. 교회가 탄생했다고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폐기하신 것은 아니므로, 이스라엘을 위한 계획은 교회와 별도로 끝까지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판단은 당시 교회 안에 강했던 대체신학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대체신학은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아들까지 십자가에 못 박았으므로 하나님 나라의 특권을 빼앗겼다고 보았다. 예수께서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열매 맺는 다른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그 근거가 되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며, 포도원은 이스라엘이고, 농부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받으려고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나 그들은 때리고 죽였다. 마지막에는 아들까지 보내셨지만 농부들은 상속자를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려 했다. 이스라엘이 맡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자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이방인들에게 기회가 넘어간 것은 분명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거절한 뒤에도 하나님께서는 약 사십 년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자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무너뜨렸다. 이때 약 110만 명이 죽고 10만 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전해지며, 성전과 도성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흩어졌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완전히 버리신 것처럼 보였다. 다비는 바로 이 지점에서 로마서 제11장을 붙들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 말씀을 유대 민족 전체를 없애도 된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고 묻고 &amp;ldquo;그럴 수 없느니라&amp;rdquo;고 답한다.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칠천 명을 남겨 두셨듯이, 이스라엘 가운데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들이 있다(롬 11: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대체신학이 말한 모든 내용이 틀린 것도 아니며, 다비의 문제 제기가 모두 틀린 것도 아니다. 촛대와 사명이 육적인 이스라엘에서 교회로 옮겨진 것은 사실이지만, 유대인이 구원받을 기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문제는 대체신학이 유대인을 증오의 대상으로 몰아간 것과, 세대주의가 그 반작용으로 유대인의 특권과 별도의 미래를 지나치게 확대한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죽이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면 그가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까지 빼앗게 된다. 유대인 약 600만 명이 학살당한 비극은 반유대 감정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죄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따르지만, 그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다. 이 균형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세대주의 성경해석법의 네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 성경해석법에는 네 가지 핵심 특징이 있다. 첫째는 문자적 성경해석이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혈통적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실제 예루살렘을, 다윗의 보좌는 지상에 세워질 실제 왕조를, 가나안 땅은 현재의 영토를, 성전은 예루살렘에 다시 세워질 물질적 건물을 뜻한다고 본다. 영적인 성취보다 문자적인 미래 성취를 앞세우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철저한 분리다. 하나님께서 육적인 이스라엘과 영적인 교회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영하시며,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은 교회에서 성취될 수 없다고 본다. 교회가 아무리 충성해도 이스라엘이 될 수 없고,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 경륜은 마지막 때 다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는 교회 전체의 환난 전 휴거(患難前携擧, pretribulation rapture)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교회가 먼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자리를 비켜 주고, 그 뒤 지상에서 유대인을 중심으로 구원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고 본다. 그들은 칠 년 환난 전에 모든 교회가 휴거되어 공중에서 혼인 잔치에 참여하고, 남은 유대인이 환난을 통과하며 회개한다고 설명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는 율법과 은혜의 분리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켜 구원받고 신약의 교회는 은혜로 믿어 구원받는 것처럼 시대별 구원 원리를 구별한다. 수정된 세대주의는 모든 시대의 구원이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완했지만, 종말론에서는 여전히 이스라엘과 교회의 두 길을 강하게 유지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네 특징은 서로 연결된다. 문자적 해석이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하고, 그 분리가 교회를 먼저 휴거시킨 뒤 유대인을 역사의 중심에 다시 세우는 종말론을 만든다. 그리고 율법 시대와 은혜 시대를 과도하게 갈라놓으면서 동일한 믿음과 구원의 원리를 시대마다 다르게 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는 성경의 문자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출발하지만, 문자 그대로 성취된 사건이 그리스도 안에서 더 크고 영적인 실체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놓친다. 다니엘의 칠십 이레처럼 숫자와 사건은 실제 역사 속에서 성취되지만, 그 목적은 죄를 끝내고 영원한 의를 드러내시는 그리스도에게 이른다. 문자적 성취와 영적 성취는 서로 적이 아니다. 문자는 그리스도라는 실체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시대를 구별한다고 구원의 길까지 여러 개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며, 구원은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다(창 15:6; 롬 3:20; 갈 3:6-9). 하나님은 시대마다 다른 구원자를 주신 것이 아니라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셨고, 때가 차매 그 약속을 예수님 안에서 성취하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문자적 해석은 이스라엘&amp;middot;예루살렘&amp;middot;성전을 어떻게 오해하게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의 문자적 해석은 다섯 대상을 미래의 육적인 이스라엘에게 돌린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다윗의 보좌, 가나안 땅, 에스겔 성전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그분께 속한 백성에게 확장되었다고 해석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먼저 이스라엘은 단지 혈통적 이스라엘만을 뜻하지 않는다. 육신으로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나고 할례를 받았다고 모두 참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씨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 속한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을 따라 유업을 이을 자다(갈 3:16, 2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예루살렘의 약속은 중동의 한 도시에만 묶이지 않는다.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 즐거움이 되는 예루살렘을 예언했다(사 65:17-19). 요한계시록은 그 성취를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으로 보여 준다(계 21:1-4). 그곳에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들어간다. 지상의 예루살렘이 세계의 영원한 수도가 되는 것이 최종 성취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다윗의 보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되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뒤 이스라엘에는 다윗 왕조가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백성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왕을 기다렸고, 예수님을 향하여 &amp;ldquo;다윗의 자손이여&amp;rdquo;라고 외쳤다. 예수님은 죽고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에 앉으셨고, 이기는 자들에게 자신의 왕권을 나누어 주신다. 아직 오지 않은 다른 유다 지파 왕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사 9:6-7; 눅 1:32-33; 계 3: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 가나안 땅은 천국 기업의 예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신 땅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유업으로 확장되었다. 오늘날 한 민족이 옛 영토를 되찾는다고 주변 민족을 죽이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도, 이스라엘 사람도 모두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다. 구약의 정복 명령을 오늘날 국제 분쟁에 그대로 적용하면 신약의 원수 사랑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거스르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섯째, 에스겔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며 성령께서 그들 안에 거하신다고 가르쳤다(요 2:19-21; 고전 3:16). 에스겔의 웅장한 성전을 미래 천년왕국에 물질적으로 다시 세우고 동물 제사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예수님께서 단번에 드린 십자가 제사의 완전성을 약화시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피 흘려 모든 제사를 완성하셨는데 다시 짐승의 피를 흘리는 성전을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림자는 실체가 오기 전까지 필요하지만 실체가 오면 역할을 마친다. 구약의 성전, 제사, 왕권, 땅과 도성은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었고, 그분 안에서 교회와 천국의 실체로 열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구약의 문자적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실제 민족이었고, 가나안은 실제 땅이었으며, 성전은 실제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실체는 장차 올 더 큰 실체를 가리키는 예표였다. 세대주의의 문제는 문자를 인정한 데 있지 않고, 문자가 가리키던 그리스도의 성취를 충분히 보지 못한 채 그림자를 다시 미래의 중심으로 돌린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하면 구원론과 종말론이 어떻게 달라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과 교회를 철저히 분리하면 하나님께 두 백성과 두 구원 경륜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유대인은 율법과 지상 왕국의 약속을 따라가고, 교회는 은혜와 천상의 약속을 따라간다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에베소서 제2장은 그리스도께서 두 무리를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고 선언한다(엡 2:15-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방인은 전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으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엡 2:11-13). 가까워졌다는 것은 이방인을 별도의 두 번째 백성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 한 몸,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한 가족이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백성론은 종말론에서 더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세대주의는 교회가 칠 년 환난 전에 모두 휴거되고, 지상은 다시 유대인의 구원 무대가 된다고 본다. 교회가 자리를 비워 주어야 이스라엘의 시계가 다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뒤 유대인은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를 드리며 환난을 통과하고, 천년왕국에서 열방을 다스리는 중심 민족이 된다고 설명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칠 년 환난이라는 체계는 성경의 한 이레를 먼 미래로 떼어 놓은 데서 생겼다. 마지막 때 교회 전체가 무조건 환난 전에 올라간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주님께서 공중으로 불러 올리시는 이들은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준비가 된 이기는 전사들이다. 교회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쭉정이까지 모두 휴거되는 것은 아니다. 회개하고 정결하게 준비된 자가 주님의 부르심에 참여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에게 아무 역할도 남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마지막 때 회개를 외칠 두 증인이 이스라엘 사람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교회에서도 회개의 선지자들이 나오겠지만, 유대인 가운데서 자기 민족에게 예수님을 증언하고 회개를 촉구할 종이 나올 수 있다. 이는 유대 민족 전체가 다시 세계 구원사의 주도권을 독점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서도 남은 자들이 복음을 받아 사명을 감당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육적인 이스라엘에게는 메시아가 태어나도록 혈통과 말씀을 보존해야 할 특별한 사명이 있었다.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과 예배와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고,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셨다(롬 9:4-5).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 일차적 사명은 완수되었다. 그 뒤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한 몸에 들어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교회가 이스라엘을 완전히 없애 버린 것도 아니며, 육적인 이스라엘이 교회 위에 다시 올라서는 것도 아니다. 촛대와 복음 전파의 사명은 열매 맺는 백성에게 옮겨졌다. 유대인도 이제 다른 모든 민족처럼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야 하며, 믿을 때 그리스도의 한 몸과 하나님의 한 가족에 들어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율법과 은혜, 믿음과 행위는 구원 안에서 어떤 관계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율법(律法, law)과 은혜(恩惠, grace)를 서로 다른 구원의 길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그는 일흔다섯 살에 부름받았고, 여든여섯 살에 이스마엘을 낳았으며, 아흔아홉 살에 할례의 표를 받았다. 믿음의 의가 할례보다 먼저였다(창 12:4; 15:6; 16:16; 17:1-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율법은 죄인을 구원하는 또 하나의 사다리가 아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으며, 약속하신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할 필요를 알게 된다(롬 3:20; 갈 3:23-24). 구약의 성도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신약의 성도도 완성된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시대는 달라도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 은혜를 받는 통로는 믿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행위는 필요 없는가? 그렇지 않다. 바울은 구원의 출발점에서 믿음을 강조했고, 야고보는 그 믿음이 끝에서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물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뒤, 독자 이삭을 바치는 순종으로 믿음이 살아 있음을 드러냈다(창 22:1-18; 약 2:21-24). 행위가 믿음을 대신하지 않지만, 살아 있는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의 행위가 따라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복음의 처음에는 &amp;ldquo;아무리 죄가 많아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amp;rdquo;고 선포해야 한다. 담배를 끊고 모든 습관을 고친 뒤에 교회에 들어오라고 하면 아무도 은혜의 문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먼저 믿음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십 년, 삼십 년 신앙생활을 하고도 성품과 삶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를 500번, 1천 번, 심지어 3천 번이나 1만 번 했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혈기와 분노로 가족을 괴롭힌다면, 횟수만 반복한 주술적 회개가 된 것이다. 참된 회개는 속에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고 성품과 삶의 열매를 바꾼다. 처음에는 바울처럼 믿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어야 하지만, 마지막에는 야고보처럼 그 믿음이 실제 순종을 낳았는지 확인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진리다. 사도들의 말씀 가운데에는 당시 문화와 목회 상황을 입고 주어진 상대적인 가르침도 있다.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 종의 신분과 결혼 문제, 우상 제물에 관한 권면은 당시 상황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러나 바울이 가르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출발점은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다만 그것을 구원의 마지막 열매까지 불필요하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 번 믿었으니 영원히 안전하다고 하면서 회개와 순종을 버리는 것은 바울의 복음을 오해한 것이다. 원감람나무 가지도 믿지 않으므로 꺾였는데, 돌감람나무 가지가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아끼지 않으신다(롬 11:17-22). 믿음으로 접붙임을 받은 사람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며, 회개와 성결(聖潔, holiness)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아브라함의 약속과 참이스라엘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중심은 그리스도다. 하나님께서 &amp;ldquo;네 자손&amp;rdquo;이라고 말씀하실 때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셨다. 예수님이 약속의 씨로 오셨고, 그분께 속한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과 약속의 상속자가 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혈통과 할례만으로는 아브라함의 참자손이 될 수 없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육체의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낳은 일을 끊어 내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겠다는 표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표 자체를 붙들고 할례만 받으면 언약 백성이며 가나안 땅을 영원히 소유한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과 육신의 할례가 참기준이 아니며, 마음의 할례를 받은 이면적 유대인이 참유대인이라고 가르친다(롬 2:28-2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모두 이스라엘은 아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적 씨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김을 받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9:6-8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방인은 본래 돌감람나무 가지와 같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원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그 뿌리의 진액을 함께 누리게 되었다(롬 11:17). 그렇다고 이방 교회가 스스로 뿌리가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과 언약과 율법과 메시아의 약속을 배웠으므로 감사해야 한다. 구약성경을 유대인의 경전이라고 버리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온전히 알 수 없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나안 땅의 약속도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의 유업으로 완성된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혈통과 국적에 상관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하늘의 기업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상의 팔레스타인 땅을 영원한 최종 기업으로 붙드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바라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약속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성취되고 확장되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맡았던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자,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사명을 교회에 맡기셨다(마 28:19-20). 베드로가 이방인 선교를 주저하자 주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 복음이 열방에 전해지게 하셨다. 오늘 우리도 그 복음의 열매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참이스라엘은 혈통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의 할례를 받아 약속에 참여한 사람이다. 교회는 이스라엘을 증오하며 그 자리를 빼앗았다고 자랑해서도 안 되고, 육적인 이스라엘 아래로 다시 들어가 그들의 미래만을 위해 존재해서도 안 된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이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세대주의의 공헌과 오류를 분별하며 유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에는 분명한 공헌이 있다. 성경을 시대별로 정리하여 평신도도 큰 흐름을 이해하게 했고,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통하여 성경 공부를 대중화했다. 성경의 예언과 재림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으며, 세대주의를 받아들인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 우리가 복음을 듣게 된 역사에는 그들의 수고가 들어 있으므로 감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공헌이 있다고 오류까지 끌어안아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영원히 분리하고, 구약의 모든 약속을 육적인 이스라엘의 미래로 돌리며, 칠 년 환난 전에 교회 전체가 휴거된다고 가르치는 종말론은 바로잡아야 한다. 에스겔 성전과 동물 제사의 회복, 지상의 예루살렘과 유대 민족이 천년왕국에서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주장도 그리스도 안의 성취를 놓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현대의 기독교 시온주의(Christian Zionism)와 결합하여 이스라엘의 영토와 전쟁을 무조건 지지하는 정치적 태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국의 강한 세대주의 지지층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으며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의 생명만 귀하고 팔레스타인 사람의 생명은 가볍다고 볼 수 없다. 두 민족 모두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흐름에서는 나팔절 같은 유대 절기에 맞추어 이스라엘의 국가적 부흥과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장시간 기도하기도 한다. 유대인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것은 귀하지만, 지상의 국가와 영토가 다시 하나님의 구원 경륜 전체를 이끌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예루살렘의 참평화는 군사력과 영토 확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할 때 이루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유대인은 저주받아 없어져야 할 민족이 아니다. 그들을 죽이거나 미워하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빼앗는다. 우리가 오천 년 동안 무속과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고 하나님께서 한국 민족을 없애 버리셔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유대인의 죄는 죄대로 보되,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동시에 유대 민족이 다시 전 세계 구원사의 유일한 중심이 된다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는 메시아를 낳을 특별한 사명이 있었으나, 예수님이 오신 뒤에는 누구든지 그분을 믿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특별한 긍휼이 있을 수 있고 마지막 때 남은 자들이 돌아올 수 있지만,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도 교만해서는 안 된다. 원감람나무 가지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은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 가지도 믿음과 회개의 열매가 없으면 꺾으실 수 있다. 촛대가 이스라엘에서 교회로 옮겨졌다고 해서 교회가 자동으로 끝까지 안전한 것은 아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안심하며 죄를 품고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잃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시대에 중요한 것은 어느 민족이 더 우월한가가 아니다. 누가 회개하고 천국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가족을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회개와 천국복음의 촛대를 맡기셨다면, 우리는 민족적 자랑이 아니라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세로 감당해야 한다. 육체 안의 귀신을 내보내고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늘의 기업을 차지하게 하는 희년의 복음을 널리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유대인에게는 감사와 긍휼을, 세대주의에는 공헌에 대한 인정과 오류에 대한 분별을, 교회에는 회개와 충성을 적용해야 한다. 극단적인 대체신학처럼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말고, 극단적인 세대주의처럼 육적인 이스라엘을 그리스도와 교회 위에 올려놓지도 말아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과 한 가족이 되는 복음의 질서를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세대주의의 시작과 네 가지 성경해석 특징, 그리고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세대주의는 대체신학의 반유대적 극단과 교권주의에 반발하여 등장했고, 성경 공부의 대중화와 선교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문자적 해석과 두 백성론을 지나치게 밀고 나가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된 약속을 다시 육적인 이스라엘의 미래로 돌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체신학의 극단도 옳지 않다.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절했다고 유대인을 증오하고 제거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남은 자를 두셨고, 마지막 때에도 그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회개를 외칠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유대인은 다른 모든 민족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소중한 영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유대인의 구원이 교회와 별도의 길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새 사람으로 만드셨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다윗의 보좌, 가나안 땅, 성전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그분께 속한 교회와 하늘의 기업으로 확장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원은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께 인도하며, 살아 있는 믿음은 회개와 순종의 열매를 낳는다. 믿음으로 시작했다는 이유로 마지막 열매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회개를 수없이 반복하고도 성품과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진실로 죄를 버리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비난하는 데 머물지 말고 자신에게 맡겨진 촛대와 사명을 돌아보아야 한다. 원감람나무도 믿지 않음으로 꺾였으니 접붙임을 받은 우리는 더욱 겸손히 믿음에 서야 한다. 회개와 천국복음을 붙들고 모든 민족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만들며, 주님이 맡기신 희년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세대주의의 공헌은 감사히 받고 그 오류는 성경적으로 분별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사랑으로 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천국의 기업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3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금요기도회] 회개와 구원, 속죄와 정결의 상관관계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견해는?(요일1:7~9)_2026-09-18(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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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9T00:39:59+09:00</published>
		<updated>2026-09-19T14:59:58+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9-18(금) 금요기도회 제1부 제목: 회개와 구원, 속죄와 정결의 상관관계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견해는?(요일1:7~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dMGrSEvpjY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질문 7가지] 1. 반복적인 회개는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인가? 2.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늘과 육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3. 최초의 구원은 속죄·죄 용서·칭의·중생을 거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4. 속죄와 정결...</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9-18(금) 금요기도회 제1부&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회개와 구원, 속죄와 정결의 상관관계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견해는?(요일1:7~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PdMGrSEvpjY&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dMGrSEvpj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질문 7가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반복적인 회개는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인가?&lt;br /&gt; 2.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늘과 육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lt;br /&gt; 3. 최초의 구원은 속죄&amp;middot;죄 용서&amp;middot;칭의&amp;middot;중생을 거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lt;br /&gt; 4. 속죄와 정결은 어떻게 다르며 예수님의 피는 각각 어떻게 역사하는가?&lt;br /&gt; 5. 회심의 회개와 자백하는 회개는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lt;br /&gt; 6. 왜 많은 죄를 500번&amp;middot;1천 번 반복하여 회개해야 하는가?&lt;br /&gt; 7. 조상죄를 회개하는 이유와 그 결과는 무엇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회개와 구원, 그리고 영적 정결&lt;/strong&gt;&amp;nbsp;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다루며, 왜 성도가 끊임없이&amp;nbsp;&lt;strong&gt;자백하는 회개&lt;/strong&gt;를 지속해야 하는지 그 필연성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amp;nbsp;&lt;strong&gt;속죄&lt;/strong&gt;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덮어주는 법정적 선언이라면, 입술의 고백을 통한 회개는 내면의&amp;nbsp;&lt;strong&gt;악한 영들을 몰아내어 삶의 저주를 끊어내는 정결&lt;/strong&gt;&amp;nbsp;과정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조상으로부터 대물림된 죄의 영향력과 내 속의&amp;nbsp;&lt;strong&gt;귀신들을 제거&lt;/strong&gt;해야만 질병과 가난 같은 실제적인 삶의 문제가 해결되며, 이것이 곧&amp;nbsp;&lt;strong&gt;천국의 상급&lt;/strong&gt;을 예비하는 성숙한 신앙의 길임을 일깨우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금요기도회 제1부&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회개와 구원, 속죄와 정결의 상관관계에 대한&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올바른 성경적 견해는?&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7-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기도를 시작한 이들이 자주 묻는 질문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회개를 할 때 &amp;#39;회개기도문&amp;#39;(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 발행)을 가지고 500번, 1천 번, 2천 번씩 반복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사도가 아닌가?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를 계속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죄를 믿지 못하는 태도가 아닌가? 회개는 가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인데, 지은 죄들을 꼭 입술로 죄를 자백해야만 하는가? 더 나아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조상들의 죄까지 왜 내가 회개해야 하는가? 등등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질문에 올바로 답하려면 구원(救援, salvation), 속죄(贖罪, atonement), 죄 용서(罪容恕, forgiveness), 칭의(稱義, justification), 중생(重生, regeneration), 정결(淨潔, cleansing)의 관계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용어들을 하나로 뭉뚱그리면, 구원받기 위해 하는 회개와 구원받은 뒤 자신을 깨끗하게(정결케) 하는 회개를 혼동하게 된다. 그 결과 정결을 위한 회개를 보고 행위 구원이라고 판단하거나, 믿음으로 속죄받았으니 더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죄가 가져오는 두 가지 결과를 함께 보아야 한다. 죄를 지으면 그 행위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될 뿐 아니라, 그 죄를 발판으로 악한 영이 사람의 몸 안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처리되는 죄의 기록과 사람의 육체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의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예수님의 피로 내 죄가 덮여짐으로 내가 결국 구원받았다고 해서, 이미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자동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은혜를 분명하게 선포한다(행 16:31). 동시에 구원받은 성도가 자기 죄를 자백하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해져야 한다고 가르친다(요일 1:9).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최초의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며(엡 2:8-9), 자백하는 회개는 그 구원을 끝까지 지키고 성품과 삶을 정결하게 하며 하늘의 상급을 준비하게 한다(요일 1:9, 딤후 2:20-21, 요일 3:2-3, 고후 7: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6:31&amp;nbsp;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amp;nbsp;&lt;br /&gt; 요일 1:9&amp;nbsp;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amp;nbsp;&lt;br /&gt; &lt;br /&gt; 엡 2:8-9&amp;nbsp;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amp;nbsp;&lt;br /&gt; &lt;br /&gt; 딤후 2:20-21&amp;nbsp;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amp;nbsp;&lt;br /&gt; &lt;br /&gt; 요일 3:2-3&amp;nbsp;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amp;nbsp;&lt;br /&gt; &lt;br /&gt; 고후 7:1&amp;nbsp;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이 말씀을 이해할 때에는 &amp;lsquo;사하심(용서하심)&amp;rsquo;과 &amp;lsquo;깨끗하게 하심(정결케하심)&amp;rsquo;이라는 두 결과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죄를 용서받는 것만 말하고 정결을 빼도 안 되며, 정결을 강조한다고 은혜로 받는 구원을 행위로 바꾸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회개와 구원, 속죄와 정결을 성경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고, 반복 회개와 조상죄 회개가 이 땅의 삶과 천국의 상급을 어떻게 준비하게 하는지&lt;/strong&gt;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반복적인 회개는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회개기도문으로 가지고 반복적으로 회개하고 있으면 그것이 행위 구원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성경은 회개를 할 때에는 반복적으로 회개하라고 명령한다. 먼저 예수께서는 &amp;#39;[계속해서] 회개하고 있어라.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amp;quot;라고 말씀하셨다(마 4:17).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 1:9에서 &amp;quot;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계속해서] 자백하고(시인하고) 있으면, 그분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죄들을 용서해 주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로부터 깨끗하게(정결하게) 하신다.&amp;quot; 라고 말했다. 앞에서 예수님의 명령은 &amp;#39;현재 명령형&amp;#39;으로 과거 명령형에 비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며, 뒤의 사도 요한의 권면은 &amp;#39;현재 가정법&amp;#39;으로서 과거 가정법에 비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면 그렇게 된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우리 말 한글 성경에서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른다. 성경은 계속해서 회개하고 있어서 천국에도 들어가고, 계속해서 회개하고 있어야 죄 용서도 받고 정결함도 입는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계속적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amp;nbsp;&lt;br /&gt; 요일 1:9&amp;nbsp;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amp;#39;반복적인 회개&amp;#39;는 행위 구원(行爲救援, salvation by works)을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회개 기도에 그 많은 시간을 들이고 친구를 만날 시간이나 취미 생활까지 줄이면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회개한다고 해서, 그 정성과 횟수가 예수님의 피를 대신하는 공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헌금이나 봉사나 고행으로 죄 값을 갚아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과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다(엡 2:8-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원의 출발점은 내가 무엇을 많이 하는 데 달려 있지 않다. 나는 죄인으로서,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신 것을 믿을 때에 발생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이 이루신 일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도 하나님이 마련하셨고, 예수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받는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구원받은 뒤에 힘써 회개해야 하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회개는 내가 구원의 값을 지불하는 행위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의 흔적과 악한 영의 영향력을 처리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고 해서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의 습관이 당장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제까지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오늘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 욕구가 자동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동안 내가 혈기와 음란과 거짓말과 교만의 죄들을 지었을 때 타고 들어온 악한 영들도 결코 자동으로 나가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예수님을 믿은 후 혈기가 올라오려고 할 때마다 오랫동안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붙들고 몸부림쳤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고백했다. 죽은 자가 어찌 성질을 낼 수 있느냐면서 나에게 혈기부리는 나는 이미 죽었다고 고백했다. 때로는 올라오는 성질을 내지 않으려고 침을 삼키고 물을 마시며 감정을 눌렀고, 실제로 가정에서도 싸움을 피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나중에 영적 세계가 열리고 보니, 억지로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고 해서 내 속의 혈기와 분노의 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감정을 억제하는 것과 그 영이 예수님의 피로 떠나가는 것은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또 혈기는 올라오고 또 올라왔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2:20&amp;nbsp;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로 &lt;strong&gt;반복적인 회개는 내게 남아 있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특히 내 속에 있는 영들을 내보내어 나를 정결하게 하기 위함&lt;/strong&gt;이다. 왜냐하면 죄를 자백할 때 예수님의 피가 하늘에 행위책에 기록되어 있는 나의 죄의 기록을 지워주며, 같은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의 권리를 무효로 만들어 내 몸에서 떠나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복해서 회개하는 것은 회개 횟수를 공로로 삼아 하나님께 구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실제 삶에 적용하여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를 많이 한 뒤 성품이 달라지고 저주가 떠나며 삶이 열리는 것은 내가 회개 행위로 구원을 샀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흘리신 보혈이 회개하는 사람에게 실제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회개는 공로가 아니라 은혜를 받아들이는 통로다. 믿음과 회개를 서로 대립시키지 말아야 한다. 참된 믿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넘어질 때마다 예수님의 피 앞으로 나아가 자백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늘과 육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이 죄를 지으면 먼저 그 행위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다(계 20:12). 말로 지은 죄와 행동으로 지은 죄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품은 생각까지도 기록되어 심판 날에 내 앞에 벌거벗겨진 것처럼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날에 막연한 인상이나 사람들의 평가로 나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행위책에 기록된 내용에 따라 공의롭게 나를 판단하시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나의 삶 특히 내가 지은 죄들은 과연 어떻게 남아서 나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는지를 살펴보자. 내가 죄를 짓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 내 죄들이 빼곡히 기록된다(계 20:12)&lt;/strong&gt;.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그 일생이 하늘에 기록된다. 내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며, 하나님께서 모태의 아기에게 하늘로부터 그 아기의 영을 보내시는 임신 약 2개월 무렵부터 기록을 맡은 천사가 달라 붙는다. 그 천사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고하고, 성령께서는 그 마음까지 파악하는데, 그것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다. 이 기록은 단순한 문자 목록이 아니라 그때의 상황과 동기까지 드러내는 완전한 기록으로서, 영상으로도 글로도 기록이 된다. 그러므로 누구도 마지막 심판대에서 자기가 범죄했던 사실을 부인하거나 핑계댈 수 없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내가 죄를 짓게 되면 동시에 내 몸(육체)에 악한 영이 침투한다(창 3:14, 마 12:43-45)&lt;/strong&gt;. 사도 요한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고 하였다(요일 3:8). 또한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더러운 귀신은 사람의 몸을 자기 집이라고 부르며 들락날락한다(마 12:43-45). 그런데 사실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뱀에게 흙을 먹고 살라고 했는데, 이때 흙은 &amp;#39;아파르&amp;#39;라는 단어로서 땅의 티끌을 가리키는데, 이것으로 사람의 육체가 지어졌다(창 2:7). 그러므로 흙으로 지어진 사람의 몸 안에 뱀이 죄를 통하여 들어오는 것이다(창 3:14). 이때 우리가 미워하면 미움의 영이, 음란하면 음란의 영이, 교만하면 교만의 영이, 우상숭배를 하면 우상숭배의 영이 들어오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3:14&amp;nbsp;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아파르)을 먹을지니라&lt;br /&gt; &lt;br /&gt; 마 12:43-45&amp;nbsp;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amp;nbsp;&lt;br /&gt; &lt;br /&gt; 요일 3:8&amp;nbsp;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amp;nbsp;&lt;br /&gt; &lt;br /&gt; 창 2:7&amp;nbsp;여호와 하나님이 땅(아다마)의 흙(아파르)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은 자신이 죄를 지으면 하늘에만 죄가 기록되는 줄 안다. 그때에 자신의 육체 안에 악한 영이 들어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내가 예수님을 믿어 분명히 죄를 용서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질병이 낫지 않으며, 여전히 신기가 떠나지 않고, 여전히 하는 일이 계속 막히게 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전에는 이와 같은 원리를 몰랐기에 이를 설명하지 못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만 계속해서 암송할 뿐 실제의 삶에서는 저주가 떠나지 않은 채 계속되어 온 것이다. 사실은 예수께서 분명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죄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저주도 해방하셨다. 그런데 속죄는 우리가 믿을 때에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되어 죄를 덮어버려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악한 영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서 일으킨 저주들은 우리가 자백하는 회개를 할 때에야 우리 몸속에 예수님의 피가 들어와서 그것을 몰아낸다. 그러므로 자백하는 회개를 하지 않는 한 내게서 저주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저주가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더 연단하시고 훈련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저주에서 해방되었으니 내가 그것을 선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면서 날마다 저주더러 떠나가라고 연신 외치며 살아간다. 그러면 언젠가는 자신의 저주의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3:13&amp;nbsp;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trong&gt;죄를 통하여 들어온 영들은 사람 안에서 계속해서 질병, 가난, 신기, 막힘이라는 네 가지 저주를 일으킨다&lt;/strong&gt;. 이와 같은 사실은 신명기 28장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lt;strong&gt;그 영들은 가만히 머물지 않고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다시 짓도록 생각과 감정을 자극한다&lt;/strong&gt;. 음란의 영은 음란한 생각을 되풀이하게 하고, 거짓의 영은 입을 열 때마다 거짓말이 툭툭 튀어나오게 하며, 혈기와 분노의 영은 작은 자극에도 화를 폭발하게 한다. 이렇게 죄가 악한 영을 불러들이고, 들어온 영이 더 많은 죄로 유혹하는 악순환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 문제를 모르면 예수님을 믿고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성령을 받았는데 왜 육체의 소욕과 계속 싸우는지,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데 왜 원하지 않는 악을 되풀이하는지 답답해한다&lt;/strong&gt;(롬 7:18-24; 갈 5:16-21).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이끄시지만, 육체 안에 자리 잡은 악한 영들은 이전의 욕망과 습관을 붙들고 저항한다. 그러므로 하늘의 죄 기록과 육체 안의 악한 영을 함께 처리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 22px 0px 26px; padding: 18px 22px; background: rgb(244, 239, 228); border-left: 4px solid rgb(142, 68, 173); border-radius: 6px; font-size: 16.5px; line-height: 1.85; color: rgb(142, 68, 173); font-family: &amp;quot;Noto Sans KR&amp;quot;,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 font-weight: bold; word-break: keep-all;&quot;&gt;롬 7:18-24&amp;nbsp;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amp;nbsp;&lt;br /&gt; &lt;br /&gt; 갈 5:16-21&amp;nbsp;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죄의 결과는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필자가 죄의 결과를 이렇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보는 것은 사람을 두려움에 묶어두기 위함이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올바른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죄는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고 지워져야 하며, 육체 안의 악한 영은 그 죄를 자백함으로 권리를 잃고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가 법정적인 용서와 실제적인 정결을 함께 가져오는 이유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최초의 구원은 속죄&amp;middot;죄 용서&amp;middot;칭의&amp;middot;중생을 거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내가 죄와 저주와 사망과 마귀로부터 벗어나 구원받으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구원의 시작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amp;#39;고백&amp;#39;하는 데서 시작된다&lt;/strong&gt;(눅 5:8).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 구원자는 필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의 죄와 무능을 본 사람은 베드로처럼 주님 앞에 엎드려 고백할 수밖에 없다. &amp;quot;주여, 나는 죄인입니다&amp;quot;라고 말이다. 그러면 그에게는 구원자가 필요케 된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구원받기 위해 최초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를 것을 가리켜 &amp;#39;회심(回心, conversion)으로서의 회개(悔改, repentance)&amp;#39;라고 정의한다. 세상과 우상을 섬기던 내가 방향을 돌려 하나님께 나아가며, 예수님만이 나를 죄에서 건지실 구원자임을 믿는 것이다. 이때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죄인인 나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믿음의 돌이킴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이제 주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음으로 자신의 죄를 &amp;#39;속죄&amp;#39;받고 &amp;#39;죄의 용서&amp;#39;를 받는 것&lt;/strong&gt;이다. 죄인이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기 전에 먼저 자신이 죄 없는 자로 여김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구약의 속죄제사에서는 흠 없는 희생 제물의 피를 뿌려 백성의 죄를 속죄했고, 그 결과 사함(용서)을 받았다(레 4:20).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흘리실 피가 죄를 덮어 하나님 앞에서 죄 없는 자로 여김을 받게 할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4:20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 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피로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 기록되 내 죄가 덮이면(이것을 &amp;#39;속죄&amp;#39;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죄를 없는 것으로 간주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amp;#39;죄 사함&amp;#39; 곧 &amp;#39;죄의 용서&amp;#39;인 것이다. 죄인인 내가 스스로 모든 죄의 빚을 갚아서 죄를 용서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값을 대신 치르시고 그 빚을 더는 묻지 않으심으로 죄 용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의로운 행위를 완전하게 이루지 못한 사람도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는 선언을 받는다. 이것을 가리켜 &amp;#39;칭의&amp;#39;라고 한다(롬 3:23-24, 28). 그러니까 내가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일차적으로 &amp;#39;속죄&amp;#39;가 일어나고, &amp;#39;죄 용서&amp;#39;가 일어나며, &amp;#39;칭의&amp;#39;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전단계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3:23-24&amp;nbsp;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amp;nbsp;&lt;br /&gt; &lt;br /&gt; 롬 3:28&amp;nbsp;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이제 아버지의 생명을 생명주는 영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분배받는 것&lt;/strong&gt;이다(고전 15:45). 이것을 &amp;#39;생명의 분배&amp;#39;라고 하는데, 이것을 통하여 사람이 거듭 태어나게 되고, 그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이것은 회심의 회개를 한 사람이 예수님을 자기 안에 영접함으로(모셔 들임으로) 일어난다(요 1:12). 그러면 그가 구원받은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45&amp;nbsp;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amp;nbsp;&lt;br /&gt; 요 1:12&amp;nbsp;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amp;nbsp;사람이 과거에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는 것만으로는 구원의 모든 과정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amp;#39;속죄&amp;#39;와 &amp;#39;죄사함&amp;#39;과 &amp;#39;칭의&amp;#39;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죄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이것만으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왜 그러한가? 이는 사자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사자의 생명이 있어야 하고, 독수리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독수리의 생명이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독생자 안에 두셨으며,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아버지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요 5:26; 11:25; 1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45&amp;nbsp;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amp;nbsp;&lt;br /&gt; &lt;br /&gt; 요 1:12&amp;nbsp;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amp;nbsp;&lt;br /&gt; &lt;br /&gt; 요 5:26&amp;nbsp;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amp;nbsp;&lt;br /&gt; &lt;br /&gt; 요 11:25&amp;nbsp;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amp;nbsp;&lt;br /&gt; &lt;br /&gt; 요 14:6&amp;nbsp;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죽고 부활하신 뒤 생명을 주는 영이 되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고전 15:45). 즉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성령을 통하여 그 생명을 분배받을 때 거듭나는 것이다. 이것을 &amp;#39;중생&amp;#39;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중생은 생명의 분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식이 태어날 때에 부모의 생명이 아들에게 전달되듯이, 하나님의 자식으로 태어날 때에도 역시 아버지의 생명이 그 사람에게 분배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때 그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속죄와 죄 용서와 칭의가 죄인을 하나님 앞에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면, 생명의 분배(生命分配)는 그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녀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본 바로는 사람이 구원받을 때에 모태에서부터 일생을 기록하는 천사 외에, 구원받은 성도를 돕고 지키는 수호천사가 하나 더 파송된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죽는 날까지 항상 두 천사가 함께 대동한다. 이것이야말로 구원이라는 것이 단지 죄를 덮는 법정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천국에 있는 생명책에 이름을 내 이름이 기록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수호천사까지 파송하심으로, 그 사람을 천상의 도움 아래 두시는 실제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최초의 구원은 속죄, 죄 용서, 칭의 그리고 생명 분배와 중생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주도권은 모두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만들지 않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스스로 생산하지도 않았다. 다만 복음을 듣고 죄인임을 인정하며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선물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는 구원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속죄와 정결은 어떻게 다르며 예수님의 피는 각각 어떻게 역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거듭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반복적으로 회개해야 하는가? 왜 반복적으로 회개하는 것을 일반 성도들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그가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을 구별하지 못해서 생겨난 오해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속죄&amp;#39;란 죄를 덮어 하나님께서 나의 죄가 있기는 있으나 없는 것으로 간주해 주시는 것이고, &amp;#39;정결&amp;#39;이란 하늘에 행위책에 기록된 죄의 기록들과 그 죄로 들어온 더러운 영을 실제로 씻어 내는 것을 가리킨다. 속죄가 하늘 법정에서 죄인을 받아 주시는 근거라면, 정결은 그 은혜가 사람의 행위와 육체와 성품과 삶에 실제로 적용되는 과정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amp;#39;속죄&amp;#39;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lt;/strong&gt; 살펴보자. 속죄를 히브리어로 &amp;#39;카파르(כָּפַר, kāpar)&amp;#39;라고 한다. 이는 &amp;#39;덮다, 가리다, 칠하다&amp;#39;라는 뜻에서 &amp;#39;진정시키다, 달대다&amp;#39; 그리고 &amp;#39;화해하다. 속죄하다&amp;#39;는 의미로 발전되어 사용되는 단어다. 성경에서 그 뜻을 이해하게 하는 첫 장면은 노아의 방주에서다. 하나님께서는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역청을 안팎에 칠하라고 하셨다. 이때 &amp;#39;역청을 칠하다&amp;#39;는 단어가 최초로 사용된 &amp;#39;카파르&amp;#39;이다. 판자 사이를 역청으로 덮어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듯, 희생 제물의 피가 죄를 덮어 심판이 죄인에게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이 속죄인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와 연결되는 명사형 &amp;#39;코페르&amp;#39;는 &amp;#39;속전, 몸값&amp;#39;과 &amp;#39;속량, 구속&amp;#39;의 의미를 지니며, 아가서의 고벨화 송이와도 이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아 1:14). 왜냐하면 &amp;#39;고벨화 송이&amp;#39;를 히브리어로 보면, &amp;#39;코페르 송이&amp;#39;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붉고 흰 빛을 함께 지닌 고벨화는 예수님의 피가 죄를 덮고 깨끗하게 하는 일을 떠올리게 해준다. 고로 속죄의 핵심은 죄인이 자기 공로로 심판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덮는 데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아 1:14&amp;nbsp;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이와 더불어 &amp;#39;죄사함&amp;#39; 혹은 &amp;#39;죄 용서&amp;#39;라는 단어에 대해 구체적으로&lt;/strong&gt; 살펴보자. 신약에서 &amp;#39;용서하다&amp;#39;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amp;#39;아피에미(ἀ&amp;phi;ί&amp;eta;&amp;mu;&amp;iota;, aphiēmi)&amp;#39;이다. 그런데 이 단어의 원뜻은 &amp;#39;내버려 두다&amp;#39;이다. 그리고 이 단어가&amp;nbsp; &amp;#39;떠나가라, 놓아보내다&amp;#39; 그리고 &amp;#39;용서하다, &amp;#39;탕감해주다&amp;#39;는 뜻으로 발전해 갔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최초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의 형제가 그물(마 4:20) 혹은 배와 아버지(마 4:22)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표현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20&amp;nbsp;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amp;nbsp;&lt;br /&gt; &lt;br /&gt; 마 4:22&amp;nbsp;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때 사용되는 죄의 용서는 죄가 아예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죄가 있지만 예수님의 피가 그 죄를 덮어버렸으니, 더는 죄값을 묻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갚을 능력이 없는데도 주인의 긍휼(불쌍히 여김)로 빚을 탕감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마 18:23-35). 그런데 정작 일만 달란트나 탕감받은 그 종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고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이 사실을 지켜본 동료들이 주인에게 고해 바쳤고, 그러자 주인은 그 종을 다시 불러 악한 종이라 책망하고 형벌을 주는 자들에게 넘겨버렸다. 이는 용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죄악 가운데 돌아가면 이미 탕감받은 빚도 다시 물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사람이 속죄와 더불어 죄 용서를 받아 칭의를 받은 것은 완전한 속죄나 완전한 죄 용서나 완전한 칭의가 아니라 유보적인 속죄와 유보적인 죄 용서이며 유보적인 칭의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용서받은 자라 할지라도 그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다시 심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속죄와 죄 용서와 칭의 이후에 정작 필요한 성결의 삶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lt;/strong&gt; 살펴보자.&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죄를 덮어버리는 것과 죄 자체를 씻어서 없애버리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러운 것을 덮어 두면 잠시 보이지는 않겠지만, 계속 치우지 않고 남겨 두면 그것 때문에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긴다.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가 피로 덮여짐으로 내가 구원받았어도, 그 죄의 습관과 그때 들어온 악한 영이 남아 있다면, 내 삶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즉 내가 비록 예수님을 믿기는 믿었지만, 내 성질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중독과 음란과 거짓의 습관은 계속되며,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구원받은 뒤에는 정결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을 정확히 말해주는 것이 구약성경 레위기에 들어있다. 레위기는 제1장부터 제10장까지가 제사와 속죄의 원리를 보여 준다. 그리고&amp;nbsp; 제11장부터 제17장까지는 부정한 것을 씻어 정결하게 하는 길을 가르쳐주고, 제18장부터 제20장까지는 거룩한 삶(성화)에 대해 알려준다. 속죄받은 백성은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의 첫 출발일 뿐이다. 성도는 이제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물과 피로 날마다 자신의 더러움을 씻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결이요 성결의 과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정결의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요일 3:2-3, 고후 7: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3:2-3&amp;nbsp;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amp;nbsp;&lt;br /&gt; &lt;br /&gt; 고후 7:1&amp;nbsp;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그리스도인이 속죄를 받은 것은 이제 구원의 여정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구원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것은 성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주님을 볼 때에 부끄럽지 않게 된다. 그래야 최소한 더 이상 저주받은 삶을 살지 않게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놀랍겝도 요한일서 1장 9절은 이 두 사역을 한 문장 안에 보여 준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고(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죄를 사하심은 하늘의 기록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키며, 깨끗하게 하심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 안에 적용되어 악한 영을 내보내는 역사를 가리킨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덮어 구원받게 할 뿐 아니라, 자백하는 자를 씻어 성품과 삶까지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성령과 물과 피를 남겨두신 것이다. 성령을 통해 나의 죄의 책망하시고, 나의 자백을 통하여 예수님의 물과 피로 나를 정결케 하시려고 말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5:5-8&amp;nbsp;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회심의 회개와 자백하는 회개는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한다. 회개란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니만큼,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깨닫고 죄에서 돌이키면 회개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의 시작과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회개에는 돌이키는 시작과 자백하는 과정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처음 믿을 때에 있는 &amp;#39;회심으로서의 회개&amp;#39;는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의 시작이다. 이때 돌이키는 회개와 믿음으로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분의 피가 이전의 자신의 죄를 덮고, 생명을 주는 영이 들어와 그가 거듭나게 된다. 이것은 구원 안으로 들어가는 문에 해당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그 후에는 반드시 자백(自白, confession)하는 회개가 뒤따라야 한다. 방향을 돌렸다고 해서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한 것이 아니며, 육체 안에 들어온 영들이 모두 나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성령께서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실 때마다 나의 입술로 그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를 적용해야 한다. 그러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나의 죄가 완전히 씻겨서 사라진다. 백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으로 인하여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이 더 이상 내게 머무를 수 있는 권한이 삭제된다. 그리고 죄를 회개하면서 내 속에 들어오는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그 영들은 떠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방향 전환은 회개의 시작인 것이고, 죄를 하나씩 자백하며 씻는 것은 회개의 실제적인 과정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를 좀 더 살펴보자. &lt;strong&gt;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가?&lt;/strong&gt; 처음 우리가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더불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었던 모든 죄는 예수님의 피로 덮인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지은 모든 죄를 다 낱낱이 기억하여 자백한 뒤에야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죄를 어떻게 다 기억하여 자백할 것인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구원을 받을 때에는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 무조건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를 다 덮어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amp;#39;속죄&amp;#39;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즉시 생명을 주는 영인 성령을 보내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 이후 말씀과 성령의 빛 가운데 드러나는 죄를 자백할 때에 하늘에 기록되어 있는 죄의 기록도 지워지고 그 죄로 들어온 악한 영도 떠나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예수님을 믿은 뒤에 지은 죄는 어떻게 처리해야&lt;/strong&gt; 하는가? 그것은 자백으로 용서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죄는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주어지는 속죄로 죄의 용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백함으로 용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요일 1:9). 즉,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지은 죄가 자동적으로 용서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amp;nbsp;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셨지만, 사람이 끝까지 자신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 지은 죄를 붙들고 회개하지 않고 있으면 결국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계 3:5).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육체의 일을 계속 행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성경은 경고한다(갈 5:19-21). 이는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의 죄를 끝까지 회개하지 않게 되면, 그가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서 거룩한 성 밖으로 던져지거나,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계 21:8; 22:15).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해야 한다(계 22: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5&amp;nbsp;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amp;nbsp;&lt;br /&gt; &lt;br /&gt; 계 21:8&amp;nbsp;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amp;nbsp;&lt;br /&gt; &lt;br /&gt; 계 22:14&amp;nbsp;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냐하면 구원받은 성도라도 그가 죽게 되는 날에, 반드시 &amp;#39;그리스도의 심판대&amp;#39;(고후 5:10) 혹은 &amp;#39;하나님의 심판대&amp;#39;(롬 14:10) 앞에 서기 때문이다. 이 심판은 본래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상을 받든지 형벌을 받든지 하게 하는 심판인데, 그가 만약 예수님을 믿고도 회개하지 않은 채 죄만을 짓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한 열매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그는 그날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면서 성밖이나 혹은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lt;br /&gt; &lt;br /&gt; 벧전 4:17&amp;nbsp;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amp;nbsp;&lt;br /&gt; &lt;br /&gt; 롬 14:10-12&amp;nbsp;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예수 믿기 전의 모든 죄는 속죄의 피로 덮여 최초 구원의 근거로부터는 처리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은 뒤에 그 죄를 자백하면 행위책에서 해당 기록이 지워지고, 육체 안에 있던 영도 떠나간다. 그리고 예수를 믿은 뒤의 죄 역시 자백할 때 죄의 용서가 일어나며, 정결도 함께 일어난다. 그러므로 &lt;strong&gt;자백하는 회개에는 구원을 지키는 측면과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측면이 함께 있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지금도 회개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죄를 더 이상 지을 수 없다. 어떻게 해서 행위책에 죄를 지웠으며, 어떻게 해서 자기 몸 속에 들어온 영들을 내보내었는데, 죄를 지어 다시 하늘의 행위책에 죄를 다시 쓰며, 내 몸 속에 악한 영들을 들어오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날마다 자신을 씻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고,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상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회심의 회개로 구원의 문에 들어가고, 자백하는 회개로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왜 많은 죄를 500번&amp;middot;1천 번 반복하여 회개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우리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한 번만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죄를 한 번만 지은 것이 아니라 수도 없이 반복해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에 기록된 그 죄들을 지워 없애려면 자신이 지은 죄들을 반복해서 회개할 수밖에 없고, 또한 내 속에 죄를 지을 때마다 들어온 영들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죄를 회개할 수밖에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내가 회개기도문으로 자신의 죄를 500번이나 1천 번 회개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이미 용서받은 단 한 번의 죄를 하나님이 못 들으신 것처럼 생각한 채 그 죄를 되풀이해서 회개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느날 아들이 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한 번 훔치고 용서받은 뒤, 같은 한 사건을 날마다 처음 일어난 일처럼 다시 고백한다면 그건 아버지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삶은 한 번의 거짓말, 한 번의 혈기, 한 번의 음란만 행하지 않았다. 같은 종류의 죄를 수도 없이 반복했고, 그때마다 악한 영이 들어온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반복적인 회개는 같은 죄명을 가진 수많은 사건과 그 결과를 하나씩 하나씩 처리하는 과정&lt;/strong&gt;이다. 거짓말을 여러 차례 했다면 거짓말의 죄를 충분히 자백해야 하며, 혈기와 분노를 평생 반복했다면 그만큼 많이 그리고 깊이 회개해야 한다. 우상에게 절하고 제사 음식을 먹고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간 일이 집안에 오랫동안 반복되었다면, 그 죄와 관련하여 내려온 영들도 적지 않다. 죄가 많고 들어온 영이 많으니 회개도 충분히 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형식적으로 입술만 움직이는 것과 진실로 죄를 슬퍼하며 자백하는 것은 다르다. 횟수 자체가 귀신을 내보내는 주문은 결코 아니다. 마음은 죄를 붙들고 있으면서 숫자만 채운다고 정결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죄를 미워하며, 예수님의 피 외에는 자신을 깨끗하게 할 길이 없음을 믿고 진실되게 자백해야 한다. &lt;strong&gt;반복은 진실한 회개를 지속하도록 돕는 훈련이지 공로를 쌓는 계산법이 아닌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동시에 처음에 회개할 때에 진실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회개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 말씀을 따라 입술로 자백하기 시작하면 성령께서 감추어진 죄를 더 깨닫게 하시고, 죄의 심각성을 마음에 새겨 주시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정해진 회개기도문을 따라 내가 회개하는 것처럼 보여도, 계속 기도하다 보면 과거의 장면과 죄의 뿌리가 드러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회개로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자백할 때에는 죄에 대한 낱낱의 구체성도 매우 중요하다. &amp;ldquo;제가 모르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amp;rdquo;라는 말만으로는 어떤 죄를 회개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교만의 죄인지, 음란의 죄인지, 제사와 우상숭배의 죄인지 구체적으로 인정해야 그 죄를 타고 들어온 영도 자기를 권리를 잃게 된다. &lt;strong&gt;회개기도문과 말씀 훈련은 미처 알지 못했던 죄의 종류를 배우고 구체적으로 고백하도록 돕기 위한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실로 회개를 계속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 &amp;ldquo;됐다&amp;rdquo;고 하시며 특별히 한꺼번에 죄들을 처리해 주실 수도 있다. 그것을 필자는 &amp;#39;특사(특별사면)&amp;#39;라고 정의한다. 필자는 진실되이 오랫동안 회개하면서 특별 사면과 같은 은혜를 받았다. 그날 필자 안에 있는 악한 영의 집들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영들이 빠져나가는 체험을 했다. 그 뒤로 영적 세계를 분별하고 말씀을 전하며 회개를 가르치는 사역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체험을 하나님께 강하게 요구하거나 회개 횟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회개를 시작하기 바란다. 회개를 계속하면 달라지는 것이 생길 것이다. 가장 먼저는 자신의 성품이 달라졌다는 것을 나도 알고 내 가족도 안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도 알게 된다. 어떤 이는 6개월 동안 회개한 뒤에 보니, 자녀에게 화를 내고 싶어도 예전처럼 분노가 솟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했다. 혈기와 분노의 영이 떠나니 억지로 참는 수준을 넘어 마음 자체가 부드러워진 것이다. 이어서 죄의 유혹이 약해지고,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가 풀리면서, 가정 관계와 사명의 길도 회복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500번, 1천 번, 2천 번이라는 숫자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강요되는 율법도 아니다. 많은 죄와 영적 찌꺼기를 충분히 처리하도록 돕는 유익한 훈련의 분량&lt;/strong&gt;이다. &lt;strong&gt;회개 횟수로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씻고 성품과 삶을 바꾸고 있는지를 열매로 살펴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조상죄를 회개하는 이유와 그 결과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왜 조상죄를 회개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말씀드리는 것은 조상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의 구원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왜 조상죄를 회개하는가? 그것은 이미 죽은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의 구원 상태를 그 후손의 회개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이 내가 최초로 구원을 받기 위하여 행해야 할 필수 조건도 전혀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죄를 덮음받으며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구원받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lt;strong&gt;조상죄를 회개하는 까닭은 조상들이 지은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혈통을 따라 후손에게 내려와 실제로 역사하여 내게 저주를 주고, 또한 죄를 짓도록 계속해서 유혹하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변하지 않을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을 통하여, 누구든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 절하며 섬기는 자는 그 죄를 자손 삼사 대까지 물으시겠다고 하셨다(출 20:4-5). 이는 삼사 대가 지나면 무조건 끝난다는 뜻이 아니라, 한집에 함께 사는 여러 후손들을 통하여 같은 죄와 영적 영향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가리킨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것은 필자의 경험이며 또 여러 임상사례를 통해 알아낸 정보이다. 필자가 사람들 안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살펴보니, 적게는 약 70퍼센트에서 많게는 90퍼센트가 조상들의 죄와 관련하여 내려온 것들이었다. 85퍼센트 이상인 경우도 아주 많았다. 필자 자신은 사실 큰 죄를 거의 짓지 않았고 비교적 선하게 살았다. 하지만 내 안에서 발견된 영들 가운데 내가 직접 지은 죄로 들어온 것은 5~1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우상숭배 즉 조상 제사와 부처 불교 그리고 무당과 점쟁이와 미신잡신 등의 죄를 통하여 내게 내려온 조상들의 영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후손들은 조상의 혈통 안에서 부모의 생명을 이어받는다. 고로 부모와 조상들이 죄를 지을 때 그의 후손인 나도 그 허리 안에 있었으므로, 같이 죄를 지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해서 &lt;strong&gt;내게 내려온 영들은 조상들의 피를 물려받은 후손인 내가 대신 조상의 죄를 자백함으로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영들을 제거할 수 있는 것&lt;/strong&gt;이다. 이것은 조상에게 구원을 소급하여 적용하는 일이 아니라, 그 죄를 구실로 내 몸과 가정에 내려온 영들의 권리를 끊어내는 일이다. 이는 &lt;strong&gt;후손이 자기 혈통 안에 들어온 죄의 영향력을 회개로 처리하는 것&lt;/strong&gt;을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조상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사실 예수님을 믿어 얻은 최초의 구원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내려온 영들이 남아 있으면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가 내게 계속 나타나고, 같은 죄를 반복하도록 유혹을 받게 된다. 열심히 일하고 선하게 살며 전도하고 기도해도 일이 계속 막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서는 교회 앞을 가로막는 큰 영, 무당과 조상의 형상을 한 영, 말씀을 들을 때 졸게 만드는 영들이 실제로 사역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조상 죄도 회개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동탄 신도시의 아파트 계단을 모두 돌아 다니며 전도지를 붙이고 사람들을 찾아가며 최선을 다해 전도했지만, 사역의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그때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회개를 통하여 내가 지은 죄들과 내 가문에서 내려온 영들을 처리하고 나서야, 눈에 보이지 않던 방해세력이 떠나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성품이 달라지고 말씀의 권세가 나타났다.&amp;nbsp; 어느날에는 성령의 은사와 영적 무기가 더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한 번도 직접 만나지 않은 이들까지 자원하여 헌금을 해 줌으로써, 55억 원 규모의 성전 건축을 하고 있다. 일상의 작은 필요까지 공급받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저주가 풀려가고 있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trong&gt;조상죄 회개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질병과 가난과 가정의 어려움을 보고 무조건 특정 조상의 죄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lt;/strong&gt;.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말씀과 기도 가운데 깨닫게 하시는 우상숭배, 제사, 무속, 음란, 폭력, 탐욕과 같은 죄를 내 혈통의 죄로 인정하고 겸손히 자백하는 것이다. 질병이 있을 때에는 회개와 기도를 하면서 필요한 검사와 치료도 받아야 하며, 전문 치료를 임의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조상죄 회개의 열매는 후손 자신에게 나타난다. 악한 영의 권리가 끊어지면서 죄의 충동이 약해지고 성품이 부드러워지며, 오랫동안 반복되던 저주의 고리가 끊어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내려간 죄의 영을 대신 회개하면 자녀를 붙들던 영향력도 약해질 수 있다&lt;/strong&gt;. 이처럼 조상죄의 회개는 죽은 조상의 운명을 바꾸는 행위가 아니라, 살아 있는 후손과 그 가정이 예수님의 피로 정결해져 자유를 누리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회개와 구원, 속죄와 정결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사람은 죄를 지을 때 하늘의 행위책에 죄가 기록되고, 동시에 그 죄와 같은 속성을 가진 악한 영이 육체 안에 들어온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에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회심의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다. 그러면 그분의 피가 죄를 덮어 속죄하고,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여 의롭다고 칭하시며, 생명 주는 영이 들어와 거듭나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최초의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이며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다. 500번이나 1천 번의 회개가 예수님의 피를 대신하지 못하고, 어떤 행위도 하나님의 생명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복 회개를 구원값을 치르는 행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lt;strong&gt; &amp;#39;속죄&amp;#39;가 죄를 덮어 없는 것으로 여겨 주는 것이라면, &amp;#39;정결&amp;#39;은 덮여 있던 죄의 기록과 육체 안의 더러운 영을 실제로 씻어 내는 것&lt;/strong&gt;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백하는 회개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해 주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lt;strong&gt;예수 믿기 전의 죄는 자백함으로 그 흔적과 저주에서 자유롭게 되고, 예수 믿은 뒤의 죄는 반드시 자백하여 용서받고 구원을 지켜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반복해서 회개하는 것은 한 사건을 하나님께 계속 상기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평생 같은 종류의 죄를 많이 지었고 그때마다 악한 영이 들어왔으므로, 그 죄들을 충분히 자백하여 하나씩 처리하는 것&lt;/strong&gt;이다. &lt;strong&gt;조상죄를 회개하는 것도 조상을 구원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혈통을 따라 내려온 영의 권리를 끊기 위함&lt;/strong&gt;이다. 반복 회개와 조상죄 회개는 최초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성도를 정결하게 하고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며 죄의 유혹을 이기도록 돕는 매우 유익한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된 회개는 반드시 열매를 낳는다. 혈기와 분노가 줄고 성품이 부드러워지며, 죄를 향하던 욕망이 약해지고 성령의 뜻에 순종할 힘이 생긴다.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으로 나타나던 저주가 떠나고, 가정과 사명의 길이 회복되며, 같은 섬김을 하더라도 하늘에 쌓이는 상급의 빛과 크기가 달라진다. 회개는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형벌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우리 삶 구석구석에 흐르게 하는 은혜의 통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듣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죄를 숨기거나 구원받았다는 말 뒤에 감추지 말고, 넘어질 때마다 즉시 보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회심의 회개로 구원의 문에 들어가고 자백하는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이 땅에서는 저주에서 벗어나고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부끄러움 없이 상을 받도록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8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ChatGPT Image 2026년 9월 19일 오전 11_40_2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3af0e6922013c15161cee022a06cdd1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beb13e6353a30e2e3fa40f59a1a7f4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d8e0ee6bcda9825f3b9c2c1b08b6cf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d355cc95e823d87a8542b8cb8789083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70c05f67abf1f88c879ee0151797bd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f19ed87e17310b87713db93e239b339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323522d5db14681e0f477131500d84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ef465149844f4a1805cd19fdbf3070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20930137622ef0db9e4738f1d8324d3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a952ff215ca621c76486a5b9d28a25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fcbd22aa8c9d63156a6c2c31b82397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9d29e5729b7a2781d0053f09297e69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1a081cea47eef821fcc76d6c6f3e98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The_Divine_Blueprint_for_Spiritual_Purit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dde438f316aefcfc588d9e012d9e4fe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회개와_구원_그리고_정결의_상관관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06a9d960d445c160ede1f68edae0a7d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회개와_구원의_비밀_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5c441ff4c913e4902b6d20ee68f1bb0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549142f98a95e8cd7c4d340072f4386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06a4b52d0ccf5b8a13fd2ae5ab1d2a5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345a43dd0d86191bfe966d27b4a6d39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657fa3d8e051fc75a50ace1a1910a7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bef9c6899c24c2071bab32a18c4993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edc2ad4f6049e55e5018f786d4dbd57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82f9b1ab7adcc61cc9f4f50cf18a57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d360d7ddad8b8a73a4c5981ba34fb9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97f33db76ee5f7d9f66391291fbb0f3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0277dcf8ee102f79a15d16468bc965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c7f140dc4177ebcd5d7c860fe4485dd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026.09.18)] Sacred_Architecture_of_Redemp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650/266/10222bff28ec475afd92789d4e7a9f1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5)]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2)(단10:1~19)_2026-09-18(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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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8T09:31:34+09:00</published>
		<updated>2026-09-18T13:32:24+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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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5)]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2)(단10: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lsLW3X5H1sA [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다니엘이 환상에서 본 존재와 실제로 대화한 존재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2. 단 10:10-15의 보냄받은 이는 왜 가브리엘 천사인가? 3. ‘인자의 모양 같은 이’...</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195)]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2)(단10:1~1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lsLW3X5H1s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sLW3X5H1s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p&gt; &lt;p&gt;1. 다니엘이 환상에서 본 존재와 실제로 대화한 존재는 어떻게 구별되는가?&lt;br /&gt; 2. 단 10:10-15의 보냄받은 이는 왜 가브리엘 천사인가?&lt;br /&gt; 3. &amp;lsquo;인자의 모양 같은 이&amp;rsquo;는 세마포 옷 입은 이와 어떤 관계인가?&lt;br /&gt; 4. &amp;lsquo;세마포 옷들&amp;rsquo;과 우바스 금띠는 그의 정체를 어떻게 밝혀 주는가?&lt;br /&gt; 5. 단 12장의 맹세는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임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6. 계 10장의 힘센 천사는 왜 그리스도의 모습과 권세를 지녔는가?&lt;br /&gt; 7.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는 어떤 자세로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니엘서에 등장하는&amp;nbsp;&lt;strong&gt;세마포 옷을 입은 이&lt;/strong&gt;의 정체를 분석하며, 그가&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대리자&lt;/strong&gt;라는 사실을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환상 속 인물이 신적 위엄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맹세하거나 천사 가브리엘과 유사한 호칭을 사용하는 점을 들어, 본질은&amp;nbsp;&lt;strong&gt;천사적 존재&lt;/strong&gt;이나 권위를 위임받은&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에이전트&lt;/strong&gt;라고 정의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힘센 천사와 비교하며, 주님께서 사역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형상과 옷을 입혀 보낸&amp;nbsp;&lt;strong&gt;신실한 전달자&lt;/strong&gt;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역자라면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고 오직&amp;nbsp;&lt;strong&gt;그리스도만을 높이는 겸손한 태도&lt;/strong&gt;를 유지해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목적으로 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10:1-1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론(基督論, Christology)은 구약성경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 신약의 성취와 연결하는 공부다. 다니엘서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네 가지 중요한 예표(豫表, type)가 나온다. 제2장의 손대지 아니한 돌, 제7장의 인자 같은 이, 제9장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고 제10장과 제12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앞의 세 예표는 모두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 준 환상(幻像, vision)이다. &amp;#39;손대지 아니한 돌&amp;#39;은 미래에 세상 나라를 심판할 그리스도를 보여 주며, &amp;#39;인자 같은 이&amp;#39;는 고난과 죽음을 통과하고 하늘의 권세를 받으실 분을 보여 준다. &amp;#39;기름부음을 받은 자&amp;#39;는 초림하실 시기와 십자가에서 끊어지실 일까지 예언한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므로 미래의 일을 현재로 당겨 다니엘에게 보여 주실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amp;#39;세마포 옷 입은 이&amp;#39;는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다니엘은 그 모습을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음성을 듣고, 사람의 모양을 취한 존재에게 입술과 몸을 만짐받으며 대화한다. 다니엘서 제12장에서는 강 양쪽의 두 사람(천사)가 강물 위에 있는 &amp;#39;세마포 옷 입은 이&amp;#39;에게 질문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단순히 미래의 그리스도를 본 것인지, 당시 실제로 나타난 천사와 대화한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전편에서는 세마포 옷 입은 이가 요한계시록 제1장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매우 닮았으나, 제12장에서는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다는 긴장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다니엘서의 문맥과 히브리어 표현, 요한계시록 제10장의 힘센 천사를 함께 대조하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lt;strong&gt;본래 천사이지만 장차 영광을 받으실 그리스도를 대리하도록 그분의 모습을 입고 나타난 존재&lt;/strong&gt;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단순히 천사의 이름을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과 권세와 직분을 누구에게 맡기시는지, 맡은 자가 왜 끝까지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주님의 옷을 입고 주님의 일을 수행한다고 해서 대리자가 주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니엘서 제10장과 제12장의 &amp;#39;&lt;strong&gt;세마포 옷 입은 이&amp;#39;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대리 천사로 나타났으며, 그 사실이 오늘날 직분을 맡은 우리에게 어떤 자세를 요구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다니엘이 환상에서 본 존재와 실제로 대화한 존재는 어떻게 구별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0장 5-6절은 먼저 다니엘이 눈을 들어 본 광경을 기록한다.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다. 몸은 황옥 같고 얼굴은 번갯빛 같으며, 눈은 횃불 같고 팔과 발은 빛난 놋 같았다. 말소리는 많은 무리의 소리와 같았다. 이 모습은 부활하여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거의 같다(계 1:10-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0:5-6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장면만 놓고 보면 하나님께서 미래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미리 보여 주셨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니엘은 그 음성을 듣자 온몸의 힘이 빠지고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했으며, 호흡조차 남지 않았다(단 10:8-9). 요한계시록 제1장에서 사도 요한이 인자 같은 이를 보고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된 장면과 매우 닮았다(계 1: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환상에서는 미래의 모습뿐 아니라 미래에 들려질 음성도 현재처럼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제10장 5-9절에서 그 모습을 보고 음성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존재가 당시 육체를 입고 실제로 나타난 예수님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장차 영광받으실 그리스도의 형상과 음성을 미리 당겨 보여 주신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입술과 몸을 만지고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제16절 이후의 장면은 그 현장에 보냄받은 존재의 활동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제10장 16절과 18절에서는 단순히 미래를 보는 환상을 넘어 실제 그 존재와 접촉하고 대화를 한다. &amp;#39;사람의 아들들의 모양 같은 이&amp;#39;가 다니엘의 입술을 만지고(단 10:16), &amp;#39;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39;가 다시 그를 만져 힘을 준다(단 10:18). 다니엘은 그를 향하여 &amp;ldquo;내 주여&amp;rdquo;라고 부르며, 자신이 환상 때문에 근심하고 기력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다니엘의 말을 듣고 &amp;ldquo;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amp;rdquo;고 대답한다(단 10:16-1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환상으로 미리 본 그리스도의 모습과 다니엘 곁에서 대화한 존재를 구별할 실마리가 생긴다. 미래의 그리스도는 환상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당시 다니엘에게 손을 대고 환상을 설명하는 존재는 그 현장에 있는 존재여야 한다. 그러니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천사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게도 하시고, 그에게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외형과 권위를 입혀 대리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사(天使, angel)를 뜻하는 헬라어 앙겔로스(ἄ&amp;gamma;&amp;gamma;&amp;epsilon;&amp;lambda;&amp;omicron;&amp;sigmaf;, angelos)는 본래 소식을 전달하는 사자를 가리킨다. 천사는 날개가 보이게 나타날 수도 있고 사람처럼 날개 없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때에도 천사들이 흰옷을 입은 청년 또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막 16:5; 눅 24:4; 행 1:10). 그러므로 사람의 외모를 취했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가 인간이거나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단정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사는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을 전달하고 그 뜻을 해석할 수 있지만,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죽을 수는 없다. 육체가 없는 천사에게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맡기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사는 복음의 소식을 전달하는 종이며, 예수님은 몸을 내어 주어 그 복음 자체를 이루신 구원자다. 전달자의 역할과 구속자의 신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핵심은 외형과 본체, 대리자와 본래 주인을 구별하는 것이다.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 주지만, 그가 하는 행동과 관계를 보면 보냄받은 존재의 특징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두 측면을 모두 보존할 때 제10장과 제12장의 난제가 풀린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단 10:10-15의 보냄받은 이는 왜 가브리엘 천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0장 10절부터는 어떤 존재의 한 손이 다니엘을 어루만져 무릎과 손바닥으로 땅을 짚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존재는 누구인가? 그는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인가? 어니면 또 다른 어떤 존재인가? 그때 그는 다니엘에게 &amp;ldquo;큰 은총을 받은 사람&amp;rdquo;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밝힌다. 다니엘이 기도하며 스스로 겸비하기로 결심한 첫날부터 그의 말이 들렸고, 그의 기도 때문에 자신이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단 10:10-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0:11 그가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이 보냄받은 이는 소식 전달 천사장인 가브리엘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다니엘서에서 그는 2가지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하나는 환상을 해석하는 이로 등장하고 있으며, 기도 응답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된 천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 다니엘 제8장을 보면, 가브리엘은 에서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을 해석하라는 명령을 받고 다니엘에게 그 뜻을 알려 주기 위해 등장한다(단 8:16-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 그는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파송받은 천사로 등장한다. 이러한 예는 누가복음 제1장에서도 발견되는데, 그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고 자신을 밝히며, 사가랴와 마리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눅 1:19, 26-27).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환상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소식을 전달하는 일이 고유한 임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그가 가브리엘 천사장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그가 바사 왕국의 군주에 의해 이십일 일 동안 가로막혔고, 가장 높은(첫째가는) 군주 가운데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자기를 도와주어서 다니엘게 오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단 10:13). 만일 이 존재가 전능하신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악한 영에게 이십일 일 동안 막혀 미가엘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가브리엘이라면 한 나라를 지배하는 강한 악한 영에게 막힐 수 있고, 하나님의 군대를 담당하는 미가엘의 도움으로 그 길을 뚫을 수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군주로 번역된 히브리어 사르(שַׂר, śar)는 통치자 또는 지휘자를 뜻한다. 바사 왕국의 군주는 바사 제국의 배후에서 활동하는 악한 영의 지휘자이며, 미가엘은 하나님의 편에서 군대를 맡은 높은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천상 세계에는 맡은 분야와 계급에 따른 질서가 있다. 가브리엘은 소식 전달을, 미가엘은 하나님의 군대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천사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파악한 천상 질서에는 최소한 일곱 분야의 천사와 그 분야를 맡은 대표 통치자들이 있다. 소식 전달과 군대뿐 아니라 예배와 치유를 비롯한 여러 사역에 담당 천사가 있다. 모든 이름과 구조가 성경에 낱낱이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가브리엘과 미가엘의 서로 다른 직무는 천상 세계가 무질서하게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 아래 맡은 일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욱이 이러한 장면은 기도 응답이 영적 전쟁을 통과하여 전달된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다니엘의 기도는 첫날부터 하나님께 들려졌지만 응답을 가지고 오는 천사가 세 이레(이십일 일) 동안 방해를 받았다. 영적 세계를 살펴보면 힘이 약한 천사가 더 강한 천사에게 기도를 전달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기도가 올라가고 응답이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전달 과정에 싸움이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성도들의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계 5:8; 8:3-4). 필자가 환상 가운데 살펴본 바에 따르면, 기도를 맡은 천사들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강한 영을 만나면 더 높은 천사에게 그것을 넘기고, 마침내 해당 분야를 맡은 천상 존재에게 전달한다. 그런데 다니엘의 경우에는 소식 전달의 최고 책임자인 가브리엘조차 바사의 군주에게 막혀서 내려오지 못함으로 하늘의 군대를 맡은 미가엘이 와서 길을 열어 주었다. 이 사건은 응답이 늦어져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할 이유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나라와 지역을 붙들고 있는 악한 영은 개인을 공격하는 영보다 강하다. 그러므로 자기 안의 악한 영을 충분히 처리하지 않은 채 나라와 민족의 영을 함부로 상대하면 오히려 눌릴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와 천국복음연구소에서 발행한 &amp;quot;나라와 민족을 위한 회개기도문&amp;quot;을 처음부터 사용하면 안 된다. 먼저 &amp;quot;회개기도문&amp;quot;으로 천 번 정도 기도한 다음에,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영적 전쟁은 객기나 호기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과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마지막 날에 그의 백성이 당할 일을 깨닫게 하려고 왔다고 말하면서, 제11장에서 이어질 나라들의 역사와 마지막 환난을 설명해준다(단 10:14; 11:2 이하). 따라서 제10장 10-15절의 손은 환상을 전달하고 해석하도록 보냄받은 가브리엘의 손이라고 판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브리엘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세마포 옷을 입은 이를 무조건 하나로 합치면 안 된다. 그러면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미가엘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amp;lsquo;인자의 모양 같은 이&amp;rsquo;는 세마포 옷 입은 이와 어떤 관계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0장 16절에 보면 &amp;ldquo;인자 같은 이&amp;rdquo;가 또 나온다. 한글로만 본다면 다니엘서 제7장 13절에 나오는 &amp;ldquo;인자(사람의 아들) 같은 이&amp;rdquo;와 같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 표현은 다르다. 제7장에서는 &amp;#39;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amp;#39;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간다. 그러나 제10장 16절에 등장하는 존재는 &amp;#39;사람의 아들 같은 이&amp;#39;가 아니다. &amp;#39;사람의 아들들의 모양 같은 이&amp;#39;이다. 그리고 제18절에는 &amp;#39;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39;라고 나온다. 여기서 강조점은 그 존재의 본체보다 그가 취하고 있는 외모와 형상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바로 이 존재는 다니엘의 입술을 만져 말문을 열게 했다. 그리고 다시 그를 만져 힘을 준다. 다니엘이 처음 세마포 옷 입은 이를 보았을 때 힘을 잃었던 사실과 연결해 보면, &amp;#39;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39;는 &amp;#39;세마포 옷 입은 이&amp;#39;가 다니엘과 접촉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영광스러운 외형을 보았고, 뒤에는 그 존재가 사람의 모양으로 가까이 와서 대화를 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다니엘은 그를 향하여 &amp;ldquo;내 주여&amp;rdquo;라고 불렀다. 여기에 사용된 표현은 &amp;#39;아도니(אֲדֹנִי, ʾădōn&amp;icirc;)&amp;#39;, 곧 &amp;ldquo;나의 주&amp;rdquo;라는 존칭이다. 인간은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천사를 만났을 때 존칭으로 &amp;#39;내 주&amp;#39;라고 부를 수 있다. 사도 요한도 천상 존재를 향하여 &amp;#39;내 주&amp;#39;라고 말한 적이 있다(계 7:13-14). 아직 흙으로 지어진 연약한 인간에게 천사는 지혜와 능력이 훨씬 뛰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천사끼리는 어느 누구도 서로를 가리켜 &amp;#39;나의 주&amp;#39;라고 부르지 않는다.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각자 하나님께 받은 직무를 수행하는 동료 통치자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주인이 될 수 없다. 축사 현장에서 보면 타락한 영들은 사탄을 자기 주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교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amp;ldquo;내 주여&amp;rdquo;라고 부른 사실만으로 &lt;strong&gt;그 존재&lt;/strong&gt;를 곧 하나님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 &lt;strong&gt;평범한 천사를 넘어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리하는 특별한 존재임&lt;/strong&gt;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 하나의 긴장은 이 존재가 가브리엘처럼 다니엘을 &amp;ldquo;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amp;rdquo;라고 부른다는 데 있다(단 10:19). &lt;strong&gt;말하는 방식은 영락없이 천사와 같고, 외형과 권위는 그리스도와 같은 것이다&lt;/strong&gt;. 바로 이 두 특징이 해답으로 인도한다. 고로 &lt;strong&gt;그는 본체로서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습을 입고 그분을 대신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천사인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구약 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께서 홀로 일하셨으며, 아직 아들이 사람들 앞에 별도의 위격으로 나타나 활동하시는 때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시편 제110편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장차 아들이 아버지 우편에 앉으실 일을 미래의 환상으로 미리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과 접촉하여 현장에서 환상을 해석하는 존재를 곧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이전의 예수님이라고 본다면, 구약시대에 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활동하셨을 뿐 두 위격이 같이 나타나 활동한 적이 없다는 사실과 충돌하게 된다. 그러므로 &lt;strong&gt;다니엘서에 나오는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세워 미래의 모습을 현재에 보여 주신 것으로 풀어야&lt;/strong&gt;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amp;lsquo;세마포 옷들&amp;rsquo;과 우바스 금띠는 그의 정체를 어떻게 밝혀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0장 5-6절에 나오는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를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의외로 본문에 들어 있다. 우리말에서는 단수로 번역되어 있는데, 히브리어로 보면, &amp;ldquo;세마포 옷&amp;rdquo;이 단수가 아니라 &amp;#39;세마포 옷들&amp;#39;이라고 되어 있다. 히브리어 본문은 세마포를 복수형, 곧 &amp;#39;바딤&amp;#39;으로 쓰여 있다. 고로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는 &amp;ldquo;세마포 옷들을 입은 이&amp;rdquo;로 읽어야 한다.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한 벌의 옷을 입은 천사로 나타났지만, 이 존재는 자신의 흰옷 위에 또 다른 옷을 덧입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가 덧입은 옷은 어떤 옷이었는가? 놀라지 말라. 그가 덧입은 옷은 장차 승리하고 영광을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었다. 또한 그의 허리에 두른 우바스 순금 띠는 왕의 위엄과 이긴 자의 신분을 그대로 보여준다. 천사는 스스로 죄와 시험을 이겨 왕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결코 자신의 힘으로 금띠를 두를 수 없다. 얼굴이 번갯빛 같으며 눈이 횃불 같고 팔과 발이 빛난 놋 같다는 것도 감찰과 심판(審判, judgment)의 권세를 지닌 그리스도의 형상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요한계시록 제1장의 예수님과 다니엘 10장에 나오는 천사의 모습은 거의 일치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장에서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있었고, 가슴에 금띠를 띠셨으며, 눈은 불꽃 같고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기 때문이다(계 1:13-16). 이것은 &lt;strong&gt;세마포 옷을 입은 천사가 자기의 영광을 드러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입혀 장차 오실 분을 미리 보여 주셨다&lt;/strong&gt;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다니엘서 제12장 6절도 강물 위쪽에 있는 이를 &amp;ldquo;세마포 옷들을 입은 자&amp;rdquo;로 기록하고 있다. 제10장과 동일하게 겉옷에 대해 복수형으로 다시 나온다. 그러므로 다니엘 10장과 12장의 세마포 옷 입은 이는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천사로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천사적 신분 위에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옷을 덧입고 환상의 주권자를 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렇듯 천사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 등장하는 것은 성경 곳곳에 있다. 창세기 제22장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하나님으로서 일인칭으로 말씀을 전한다. 출애굽기 제3장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도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하며 하나님으로서 그에게 말한다. 천사가 하나님처럼 말했다고 해서 그 천사 자체가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내신 분의 이름과 권세를 입고 말하는 대리자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마포 옷을 입은 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본래 높은 계급의 천사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옷과 외형과 권위를 입히셨기 때문에 다니엘 앞에서 주님을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리자(代理者, agent)는 주인의 일을 정확히 수행하지만 주인과 동일한 본체는 아니다. 이 구별을 붙들면 그가 그리스도처럼 보이면서도 하나님께 맹세하는 이유가 동시에 설명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단 12장의 맹세는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임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2장에는 강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두 존재가 서 있다. 제10장부터 이어지는 문맥을 보면 이들은 가브리엘과 미가엘로 추정된다. 그중 하나가 강물 위쪽에 떠 있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에게 놀라운 일의 끝이 언제인지 묻는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그이는 좌우 손을 하늘로 들어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며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2: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니 하나님 자신(아들)이 또 다른 하나님(아버지)을 가리켜 맹세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천사가 창조주를 가리켜 맹세한 것이다. 구약 시대에 성부와 성자가 두 분으로 동시에 나타나 서로 대화하고 맹세하는 장면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아직 아들은 성육신하지 않아서 밖으로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천사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가리켜 말씀의 확실성을 보증한 장면이라고 하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그가 평범한 소식을 전하는 천사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강 양쪽의 두 천사와 같거나 그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질문을 받고 종말의 기간을 선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때 그는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천사일 뿐이다. 그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amp;ldquo;한 때와 두 때와 반 때&amp;rdquo; 곧 마흔두 달, 1,260일 동안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는 마지막 환난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달한다(단 7:25; 계 12:6, 14; 13:5). 고로 그는 마지막 전쟁과 성도의 고난에 관한 하나님의 시간표를 위임받은 높은 통치자급 천사인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는 누구인가? 제10장의 우바스 금띠와 놋 같은 팔과 발은 그가 그리스도의 왕권과 심판권을 가진 자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제12장의 맹세는 그 존재가 본래 신분이 천사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만 붙들면 해석의 오류가 생긴다. &lt;strong&gt;외형만 보면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하기 쉽고, 맹세만 보면 그리스도와 무관한 보통 천사라고 하기 쉽다. 그러나 두 장을 함께 보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천사&lt;/strong&gt;라는 결론이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하나님은 장차 영광을 받으실 예수님의 모습을 천사에게 입혀 다니엘에게 미리 보여 주셨다&lt;/strong&gt;. 그러므로 &lt;strong&gt;그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 자신은 아니다&lt;/strong&gt;. 미래의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여 주는 상징성과 당시 현장에서 다니엘과 대화하는 천사적 실재가 한 존재 안에 결합되어 있다. 이것이 힛데겔 강가 환상의 독특한 방식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계 10장의 힘센 천사는 왜 그리스도의 모습과 권세를 지녔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에 대한 해답은 요한계시록 제10장으로 조명해 보면 더욱더 분명해진다. 그때 사도 요한은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본다. 그의 머리 위에는 하나님의 보좌를 연상시키는 무지개가 있고, 얼굴은 해 같으며, 발은 불기둥 같다. 오른발로 바다를 밟고 왼발로 땅을 밟았으니 온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 자로 등장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0: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외형만 보면 영락없이 예수 그리스도다. 구름을 입고 오시며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불기둥 같은 발로 심판하실 분은 예수님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복음서원 계열의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을 보면, 그 힘센 천사를 예수님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자체 본문은 그를 거듭 &amp;ldquo;천사&amp;rdquo;라고 말하며(계 10:1, 5, 9), 그도 다니엘서 제12장의 존재처럼 오른손을 하늘로 들고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고 있다(계 10:5-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이 천사가 그리스도의 모습과 권세를 지니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그것은 그가 자기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두루마리가 그 답을 준다. 이 두루마리는 이미 요한계시록 제5장에 나왔던 바로 그 두루마리다. 그때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는 안팎으로 기록되고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가 있었다. 그것을 아무도 펼 수 없어 사도 요한이 울었으나, 유다 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이신 어린양이 이기셨으므로 그 두루마리를 받아서 인을 떼기 시작하셨다(계 5: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인을 하나씩 떼자, 계시(啓示, revelation)가 열려 보여졌다. 그 결과, 제10장에 이르렀을 때 두루마리는 이미 거의 펼쳐졌고 남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의 일곱째 인이 떼어지면서 일곱 개의 나팔이 불어졌는데, 그때에는 이미 여섯째 나팔까지 불려지고 마지막 일곱째 나팔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일곱째 나팔이 불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세상 나라(왕국)가 우리의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가 나라(왕국)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게 될 것이다(계 11:15). 다시 말해, 이제까지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다 성취되는 것이다(계 10: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제 예수께서는 공중으로 가셔서 알곡을 추수하는 일을 수행하셔야 할 때였다(계 14:14-1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직 조금 남아 있는 계시를 신뢰받는 천사에게 맡기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곱째 나팔이자 일곱 대접 재앙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어떤 고위급 천사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하여 이 일이 여전히 예수님의 주권 아래 진행됨을 보여 주고 계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에는 사건의 전개 순서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일곱 인 가운데 마지막 일곱째 인은 다시 일곱 나팔로 펼쳐지고, 제10장은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들어간 삽입 계시인 것이다. 어린양이 큰 두루마리의 인을 거의 다 떼셨으므로 남은 것은 펼쳐진 작은 두루마리일 뿐이다. 고로 예수님이 펼쳐 보이기 시작하신 계시를 천사가 이어서 전하지만 주권이 천사에게 넘어간 것은 아니다. 남은 말씀까지 예수님의 이름과 형상으로 집행하도록 위임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그 &amp;#39;힘센 천사&amp;#39;는 작은 두루마리를 요한에게 주어 먹게 한다. 그러자 요한의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으나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 거기에 재앙과 애곡의 예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요한은 조금 남아 있지만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전해야 할 예언을 또 보고 전달한다(계 10:8-11).&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요한계시록 제11장 15절을 보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그분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실 것이다. 그러나 계시를 전달받은 힘센 천사는 종말의 주인이 아니라 종말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집행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고로 &lt;strong&gt;다니엘서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와 요한계시록의 힘센 천사는 같은 대리 원리를 보여 주는 사례&lt;/strong&gt;인 것이다. &lt;strong&gt;주님의 가장 신뢰받는 천사가 그리스도의 옷과 형상을 입고 그분의 남은 말씀을 전달하고 있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는 어떤 자세로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lt;strong&gt;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의 말씀을 맡길 신실한 사람을 찾으신다&lt;/strong&gt;. 천사가 하나님의 소식을 전달하는 앙겔로스인 것처럼, 주의 종도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자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고 해서 그 말씀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과 권세와 지혜가 나타나도 그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옷(권세와 능력 등)을 덧입혀 주셨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다니엘 12장에서 세마포 옷을 입은 그 천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었지만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하늘로 들어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했다. 요한계시록 제10장에 나오는 힘센 천사도 온 땅을 밟는 권세와 해 같은 얼굴을 지녔지만 자신을 예배하라고 하지 않았다. &lt;strong&gt;대리자는 언제나 자기를 보내신 분을 높이고, 맡겨진 말씀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잊으면 이단의 길로 들어간다. 많은 것을 깨달았거나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높이고, 주님이 맡기신 말씀을 자기 신분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하면 사탄의 교만을 따르게 된다. 신천지의 이만희와 같은 이단 지도자들이 말씀을 자기중심적으로 짜 맞추어 자신을 구원의 중심에 놓는 것이 그 예다. 말의 능력이 사람을 모을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를 높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 시대에 말씀을 전하는 자는 주님이 입혀 주신 옷을 벗기시면 본래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옷을 자기 옷으로 착각하고, 맡겨 주신 능력을 자기 능력으로 여기며, 직분(職分, office)을 자기 소유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자리를 내려놓으라고 하시면 언제든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을 맡겨도 끝까지 타락하지 않고 전할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깊은 말씀과 더 큰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이 자세를 보여 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본래 양의 뒤를 따르던 천한 목자였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감당하기 과분한, 왕의 직분을 맡기셨음을 잊지 않았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에도 그는 왕좌를 자기 생명처럼 붙들지 않고 그것을 내주고 기꺼이 예루살렘을 떠난다. 그리고 그의 통치 말년에 인구 조사의 죄로 백성에게 전염병이 임했을 때에는 백성이 무슨 죄를 범했느냐고 하면서, 자신과 자기 아버지의 집을 치시라고 요청한다(삼하 24:17). 자기 지위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을 더 귀하게 여긴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와 자손으로 불리시기를 기뻐하신다(계 5:5; 22:16). 그렇다. 다윗은 하늘에서 왕 노릇 할 이기는 자의 전형적인 예표다. 참된 왕은 백성을 이용하여 자기를 높이지 않고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놓는다. 주의 종도 주님의 양 떼를 살리기 위해 직분을 사용해야 하며, 자기 이름과 조직을 세우기 위해 성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이 예수님을 모세의 사자나 다른 위대한 인물의 이름보다 특별히 다윗의 뿌리와 자손으로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다윗은 왕권을 받았지만 왕좌보다 하나님의 뜻을 귀하게 여겼고, 자기 집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먼저 생각했다. 이기는 자에게 맡겨질 하늘의 왕권도 자기 영광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양 떼를 섬기는 자리다. 그러므로 다윗의 마음을 잃은 채 왕의 권세만 탐한다면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6-8). 하늘의 참주인이 자신을 낮추셨다면, 그분의 일을 잠시 위임받은 우리는 더욱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말씀을 많이 깨닫고 능력이 크게 나타날수록 그것을 맡겨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여야 한다. 나를 위해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신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이 맡겨 주신 일에 목숨을 다해 충성해야 한다. 나는 대리자일 뿐이라는 고백을 잃지 않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쓰임받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두 시간에 걸쳐,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타난 세마포 옷을 입은 이의 정체와 그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다니엘서 제10장 10-15절에 나오는 &amp;#39;보냄받은 이&amp;#39;는 미가엘의 도움을 받아 바사 왕국의 군주를 통과한 가브리엘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양을 취하여 다니엘을 만진 존재와 세마포 옷 입은 이는 문맥에 따라 구별하면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가 누군지에 대한 해답의 핵심은 세마포 옷이 원문에서 복수형으로 나타난다는 데 있었다. 그는 본래 높은 계급의 고위급 천사였지만, 하나님께서 말세에 나타날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기 위해 그의 옷 위에 장차 영광을 받으실 그리스도의 옷을 덧입혀 주었다. 그러므로 우바스 순금 띠와 번갯빛 얼굴, 횃불 같은 눈과 놋 같은 팔과 발은 승리한 왕이요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했다는 사실은 그의 본래 신분이 천사였음을 밝혀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제10장의 힘센 천사도 같은 원리를 보여 준다. 그는 구름과 무지개와 해 같은 얼굴과 불기둥 같은 발을 지녀 예수님처럼 보이지만, 창조주를 가리켜 맹세하고 어린 양이 열어 놓으신 작은 두루마리를 전달한다. 예수님께서 남은 계시의 전달을 맡기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형상과 권세를 입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 환상의 모습은 오늘도 말씀 맡은 자의 겸손과 충성(忠誠, faithfulness)으로 이끌어간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옷을 입혀 주시고 말씀과 능력과 직분을 맡기셨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그 자리를 내려놓을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양 떼를 귀하게 여기며, 모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맡겨 주신 옷과 직분을 자기 영광으로 삼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 높이며 끝까지 충성하는 복된 주의 종과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8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 ChatGPT Image 2026년 9월 18일 오후 01_07_4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21af0f148820e9777ece35ab67ee78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ce4b7cc6aa960a37ab9609f104b9f0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0c1d795fb0bbc7ad08ecbe4fbddf86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8620c032471dc5bef3086186be629a1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6f36d166cb5056251699f83fea7c1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6535d271d308504888550804ffce3e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315ac54e15de9f8e3ca49d7da0d1ca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530cb112c6a7b156e8cf06d6400f44d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7a0e8844cdb3ba8611b3b0e96645f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0b542e44398ce608a78469a1a22dc4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7f761d7509a8a2a5ac5d7643823a04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6cb4f0fbe4b9158bd4ad446e4c380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987ac5f4133a1a613c319e59d468a6a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3f37cd87addeeda68b6137b3aac48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30204ba176af51fcc6a5d2c4bdc87d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81bc5c6822b4a612ba38df9b7f26f76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그리스도의_형상을_입은_대리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6e57999ae6161105b611a50395068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다니엘서_세마포_입은_대리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447da1dc7ac99731b9c4143da05b608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4dabaaf525aa961969655e09f6246c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4586022dc2520e24ea396c165134a5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805a78d3b61cfc794b451a2135be5e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e982273db805c075fc516e9c3c5581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c8d55a6c056ec92d20d5915d7326d05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0c70477dd8ac176753f1524e15d04bb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ed897405f3d703a4a658c7d13deff7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ebc9b2fa2fa63be97a5d35fe7ffd3c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bc823d6435c8e40743ece52fe942cf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694071d552d9565c5f9971a0ba2e06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444d4060822516fe55c7cd2ea729cb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da3fd3c47150a9b7a859e566515ef6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c2a9c8e9752e278b42309f6709f734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3bcfbbd71a099bca9f2e540095aa1d0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1)(단10:1~19)_2026-09-17(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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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7T09:27:10+09:00</published>
		<updated>2026-09-17T15:09:5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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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1)(단10: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FjMmK2XCGg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는 어떤 존재들이 등장하는가? 2. ‘인자 같은 이’의 번역은 해석에 어떤 혼란을 일으켰는가? 3. 세마포 옷과 우바스 금띠는 어떤 신분을...</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9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1)(단10:1~1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pFjMmK2XCGg&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FjMmK2XCGg?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는 어떤 존재들이 등장하는가?&lt;br /&gt; 2.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의 번역은 해석에 어떤 혼란을 일으켰는가?&lt;br /&gt; 3. 세마포 옷과 우바스 금띠는 어떤 신분을 나타내는가?&lt;br /&gt; 4. 그의 모습은 요한계시록 1장의 그리스도와 어떻게 닮았는가?&lt;br /&gt; 5. 흰옷과 많은 물소리만으로 그의 정체를 확정할 수 있는가?&lt;br /&gt; 6. 다니엘서 10장과 12장의 세마포 옷 입은 이는 같은 존재인가?&lt;br /&gt; 7. 한 분 하나님이라는 진리는 왜 이 환상을 푸는 열쇠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니엘서 10장에 등장하는&amp;nbsp;&lt;strong&gt;세마포 옷을 입은 이&lt;/strong&gt;의 정체를 신학적으로 고찰하며, 그를&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예표&lt;/strong&gt;로 해석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이 존재가 요한계시록의 예수 그리스도와 흡사한 외양을 지녔음을 강조하면서도,&amp;nbsp;&lt;strong&gt;하나님은 한 분&lt;/strong&gt;이라는 유일신 신앙의 틀 안에서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천사나 구약의 다른 현현들과의 차별점을 논하며,&amp;nbsp;&lt;strong&gt;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해석&lt;/strong&gt;을 통해 세대주의적 오해를 극복하고 진정한 삼위일체론에 도달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통일성&lt;/strong&gt;을 열쇠 삼아,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는&amp;nbsp;&lt;strong&gt;승리하신 왕 예수&lt;/strong&gt;를 발견하도록 돕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10:1-1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론(基督論, Christology)은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발견하는 공부다. 다니엘서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네 가지 모습으로 예표(豫表, type)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 제7장에서는 인자 같은 이, 제9장에서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제10장과 제12장에서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그것이다. 앞의 세 모습은 이미 살펴보았고 이제 마지막으로 네 번째 모습을 살펴볼 차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문제는 구약 시대에 그리스도가 존재하셨지만 아직 사람들에게 독립된 위격으로 나타나 활동하지 않으셨다는 데 있다. 그런데 많은 신학자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천사, 여호와의 천사, 창세기 1장의 복수 표현, 풀무불 속의 넷째 존재까지를 &amp;#39;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이전의 그리스도&amp;#39;라고 해석해 왔다. 이러한 해석 때문에 한 분 하나님과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를 이해하는 데 혼란이 생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다니엘서 10장 5-6절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누구인가? 우선 그분은 매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왜냐하면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고, 몸은 황옥 같았으며, 얼굴은 번갯빛 같고, 눈은 횃불 같으며, 팔과 발은 빛난 놋 같고,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다. 이 모습은 요한계시록 1장에서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다(단 10:5-6; 계 1:13-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지만 같은 힛데겔 강가의 환상(幻像, vision)의 끝부분인 다니엘서 12장에도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또 한 번 나온다. 그는 강물 위에 서서 두 손을 하늘로 들고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한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께 맹세하는 높은 천사인가, 아니면 아직 성육신하지 않은 아들이 아버지께 맹세하는 것인가, 아니면 제10장과 제12장에 서로 다른 존재가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인가. 이 질문을 해결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예표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환상을 풀기 위해서는 외형 한두 가지를 보고 성급히 정체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 &amp;#39;흰옷&amp;#39;(흰 겉옷)은 예수님도 입으시고(마 17:2) 천사도 입으며(막 14:5, 눅 24:4, 행 1:10), &amp;#39;많은 물소리&amp;#39;는 하나님(겔 43:2)과 그리스도(계 1:15)와 천사 무리(계 19:6)와 네 생물의 날개짓 소리(겔 1:24)에게도 사용된다. 그러므로 흰 옷을 입은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10장과 제12장을 하나의 큰 환상으로 읽되, 각 존재가 서 있는 위치와 하는 말과 행동, 누구에게 질문하고 누구를 가리켜 맹세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우선 무엇보다 구약 시대에&lt;strong&gt;&amp;nbsp;하나님은 한 분으로 나타나 일하셨다는 사실을 첫 번째 해석 열쇠&lt;/strong&gt;로 붙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등장하는 존재들을 구별하고, &amp;lsquo;인자 같은 이(단 10:16)&amp;rsquo;의 번역이 낳은 혼란과 세마포 옷&amp;middot;금띠&amp;middot;많은 물소리의 의미를 살피며, 다니엘서 10장과 12장의 긴장을 한 분 하나님이라는 진리로 어떻게 풀어 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는 어떤 존재들이 등장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0장부터 제12장까지는 서로 분리된 여러 환상이 아니라 힛데겔 강가에서 본 하나의 큰 환상이다. 다니엘은 장차 일어날 큰 전쟁에 관한 말씀을 받았고 그 뜻을 깨달았다(단 10:1). 이 환상은 바사와 헬라의 충돌만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백성을 둘러싸고 벌어질 영적 전쟁과 종말의 사건까지 내다본다. 제10장은 환상의 서론에 해당하고, 제11장은 전쟁의 전개, 그리고 제12장은 마지막 때와 끝을 다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 번째로 눈에 띄는 존재는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우바스 순금 띠를&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box-sizing:border-box;margin:0;padding:0;text-align:left&quot;&gt;&lt;strong&gt;띤&lt;/strong&gt;다&lt;/span&gt;(단 10:5-9). 다니엘은 그를 보자 힘이 빠지고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했으며 아무 힘도 남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평범한 인간이나 일반 천사의 모습으로만 보기 어려울 만큼 장엄하다. 그래서 많은 해석자들은 그를 &amp;#39;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amp;#39;라고 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 &lt;strong&gt;두 번째로 환상을 설명하는 천사&lt;/strong&gt;가 등장한다(단 10:10-15). 그는 다니엘이 기도한 첫날부터 그 말이 응답되었지만 바사 왕국의 군주가 세 이레 동안(21일간) 막았고,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도우러 왔다고 말한다(단 10:12-13). 그리고 이어 바사와 헬라의 군주, 남방 왕과 북방 왕의 전쟁, 마지막 환난과 부활을 설명한다. 제8장에서 가브리엘이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을 해석해 주었듯이, 제10장 이후의 긴 설명자도 가브리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본문이 모든 대목에서 이름을 반복해 밝히지는 않으므로 이는 문맥에 따른 추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로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들&lt;/strong&gt;이 다니엘에게 힘을 준다(단 10:16-19). 제10장 16절에는 &amp;#39;사람의 아들들의 모양 같은 이&amp;#39;가 다니엘의 입술을 만지고, 제18절에는 &amp;#39;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39;가 다시 그를 만져 힘을 준다. 우리말 번역만 보면 제7장의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와 같은 표현처럼 보이지만 원문의 구조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면 이들을 세마포 옷을 입은 이와 같은 존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설명자와 보조 천사들로 볼 것인지에 따라 등장인물의 수가 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네 번째로 미가엘이 이름을 가지고 등장&lt;/strong&gt;한다(단 10:13, 21; 12:1).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돕는 큰 군주이며, 마지막 환난의 때에도 백성을 위하여 일어나는 천사장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다섯 번째로 제12장 5절에는 강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에 각각 서 있는 두 사람&lt;/strong&gt;이 나온다(단 12:5-6). 천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 두 사람도 높은 천사들로 보아야 한다. 문맥상 가브리엘과 미가엘일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확정이 아니라 추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마지막으로 강물 위쪽에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가 나타난다(단 12:6-7)&lt;/strong&gt;. 두 사람 중 하나가 그에게 놀라운 일의 끝이 언제인지를 묻고, 그는 두 손을 들어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말한다(단 12:6-7). 이 존재는 질문하는 두 천사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만 자신보다 높은 영원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한다. 바로 이 장면이 제10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와 동일한 존재인지를 어렵게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환상 속 존재들을 한 사람으로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 세마포 옷을 입은 이, 환상을 해설하는 천사, 다니엘을 만져 주는 사람 모양의 존재, 미가엘, 강 양쪽의 두 사람,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각각 구별해야 한다. 누가 보여 주고 누가 설명하며 누가 질문하고 누가 맹세하는지를 살필 때 정체에 가까이 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의 번역은 해석에 어떤 혼란을 일으켰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7장의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와 제10장의 &amp;#39;사람 모양 존재들&amp;#39;을 같은 표현으로 생각하면 환상 전체가 뒤섞인다. 제7장 13절의 표현은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는 &amp;lsquo;사람의 아들 같은 이&amp;rsquo;를 가리킨다. 그는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아 모든 백성과 나라와 언어가 그를 섬기게 하며, 그의 권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단 7:13-14). 이는 장차 죽고 부활하여 영광을 얻으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확실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제10장 16절의 표현은 제7장과 같지 않다. 원문의 뜻을 살리면 &lt;strong&gt;&amp;lsquo;사람의 아들들의 모양 같은 이&lt;/strong&gt;&amp;rsquo; 또는 &amp;lsquo;사람의 아들들의 형상을 가진 이&amp;rsquo;에 가깝다. 어떤 한 분을 고유하게 가리키는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라기보다 &lt;strong&gt;사람의 모습을 취한 존재&lt;/strong&gt;를 말하는 것이다. 천사는 영적 존재지만 사람 앞에 나타날 때 청년이나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10장 18절도 똑같은 문장이 아니다. 여기에는&lt;strong&gt; &amp;lsquo;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rsquo;&lt;/strong&gt;가 다시 다니엘을 만졌다고 되어 있다. 16절의 존재와 18절의 존재가 같은지, 서로 다른 천사인지, 앞에서 말한 설명자와 같은지는 문맥을 더 살펴야 한다. 그런데 번역에서 모두 비슷하게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 또는 &amp;lsquo;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rsquo;로 처리하면, 독자는 자동으로 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나 모두 그리스도라고 단정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번역의 작은 차이는 등장인물의 수를 바꾼다. 어떤 해석자는 세마포 옷 입은 이(단 10:5-6)와 입술을 만진 이(단 10:16)와 몸을 만진 이(단 10:10)를 모두 같은 존재로 본다. 다른 해석자는 세마포 옷 입은 이, 가브리엘, 두 보조 천사처럼 각각 다른 존재로 나눈다. 또 어떤 이는 제10장의 세마포 옷 입은 이는 그리스도이고 나머지는 천사라고 본다. 본문의 원어 표현을 구별하지 않으면 어느 견해를 선택해도 확신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3장의 풀무불 사건에서도 같은 주의가 필요하다. 느부갓네살은 불 가운데 다니는 넷째의 모양이 &amp;lsquo;신들의 아들&amp;rsquo;과 같다고 말했다(단 3:25). 이 표현만 보고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같은 장 28절에서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께서 &amp;lsquo;그의 천사를 보내사&amp;rsquo; 세 사람을 구원하셨다고 직접 해석한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신들의 아들과 같은 모습이 곧 그리스도라는 뜻은 아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3: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비슷한 우리말만 보지 말고 원문의 표현과 같은 문단 안의 해설을 함께 보아야 한다. &lt;strong&gt;&amp;lsquo;사람 같다&amp;rsquo;, &amp;lsquo;사람의 아들 같다&amp;rsquo;, &amp;lsquo;인자 같다&amp;rsquo;는 말이 모두 같은 신분을 뜻하지 않는다&lt;/strong&gt;. &lt;strong&gt;천사가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습이 환상으로 미리 보일 수도 있다&lt;/strong&gt;. 표현 하나를 붙들고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세마포 옷과 우바스 금띠는 어떤 신분을 나타내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이 넷째 환상 가운데 본 존재는 세마포 옷을 입고 있었다(단 10:5-6; 12:6-7). 세마포는 희고 깨끗한 옷으로 거룩함과 영광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본래의 영광을 잠시 드러내셨는데,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마 17:1-2). 필자가 만난 예수님도 흰 통옷을 입고 계셨다. 그러므로 흰 세마포는 예수님의 거룩한 영광과 잘 어울린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흰 겉옷만으로 그를 예수님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 안에는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앉아 있었고, 누가복음은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막 16:5-6; 눅 24:4).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도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 곁에 서서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을 말했다(행 1:10-11). 그런데 이들 모두는 천사들이다. 천사도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여 흰 옷이나 빛나는 옷을 입고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세마포 옷보다 더 주목할 만한 표지는 바로 &amp;#39;우바스의 순금 띠&amp;#39;다. 다니엘서 제10장의 존재는 허리에 순금 띠를 띠고 있고, 요한계시록 제1장의 인자 같은 이도 역시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다. 금띠는 단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왕의 권위와 승리한 자의 영광을 나타낸다. 금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싸움에서 이기고 통치권을 받은 왕의 복장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에서 천사가 흰옷을 입은 장면은 여러 번 나오지만, 천사가 왕의 승리를 상징하는 금띠를 띠었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피조물이며 자기 사명을 완수하기 때문에 왕이 되거나 면류관을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반면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고,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기셨기 때문에,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셨고, 보좌에 앉으셨다(빌 2:6-11; 계 19: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몸이 황옥 같고 얼굴이 번갯빛 같으며 눈이 횃불 같다는 묘사는 그분의 영광과 감찰의 권세를 보여 준다. 불꽃 같은 눈은 사람의 외모만 보지 않고 마음과 행위를 꿰뚫어 심판(審判, judgment)하는 눈이다. 또한 팔과 발이 빛난 놋 같다는 것은 손으로 붙들고 발로 밟아 악을 심판하는 권세를 나타낸다. 이 모든 표지는 부활하여 전능한 통치자와 심판주가 되신 예수님과 매우 가까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한 가지 표지로 정답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자신의 말씀을 대신 말하게 하고 심판을 집행하게도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의해 소돔과 고모라에 파송된 두 천사가 그 성들을 심판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과 출애굽기 3장을 보면, 여호와의 천사가 하나님의 일인칭 말씀을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전달하기도 한다(창 22:15, 출 3:2). 위임받은 천사가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내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으므로 옷과 빛만이 아니라 그가 누구에게 말하고 누구를 가리켜 맹세하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그의 모습은 요한계시록 1장의 그리스도와 어떻게 닮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다니엘서 제10장에 나타난 우바스 정금 띠로 띠었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누구인가? 우리는 이 모습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하나의 본문은 또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요한계시록 제1장에 나오는 이시다. 사도 요한은 일곱 금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 머리와 털은 흰 양털과 눈같이 희고, 눈은 불꽃 같으며,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다.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았다(계 1:12-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0:5-6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본문의 평행은 매우 분명하다. 세마포 또는 발에 끌리는 옷, 허리나 가슴의 금띠, 번갯빛과 해 같은 얼굴, 횃불과 불꽃 같은 눈, 빛난 놋과 단련한 주석 같은 팔과 발, 무리의 소리와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이 서로 대응한다. 다니엘도 그랬고 요한도 그랬듯이, 그들은 그 존재 앞에서 힘을 잃고 죽은 자처럼 엎드렸으며, 그때 그 존재는 손을 대어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했다(단 10:8-12; 계 1: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요한계시록 제1장에서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셨던 &amp;#39;인자 같은 이&amp;#39;가 누구인지 본문이 분명히 밝힌다. 그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살아 있는 자다. 그리고 전에 죽었으나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이라고 말씀한다(계 1:17-18). 그런데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이는 부활하고 승리하여 영광을 얻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분이 예수님이신 것은 분명하다.(계 2: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천상에 계신 예수님은 사복음서에서 고난받으시던 예수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예수께서 육신으로 사명을 수행하실 때에는 아직 금띠와 왕관을 얻은 승리자의 모습이 전면에 보이지 않았다. 겟세마네에서 자기 뜻을 꺾고 아버지께 순종했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명을 완수하신 뒤에야 예수께서는 높임을 받으셨다. 금띠는 그 승리와 왕권을 나타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때문에 다니엘서 제10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직 성육신하지 않은 시점인데도 다니엘은 훗날 죽고 부활하여 영광을 얻으실 그리스도의 천상 모습을 미리 본 것처럼 보인다. 다니엘서 제7장에서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 영원한 나라를 받는 미래의 장면을 보았듯이, 제10장에서도 미래에 완성될 영광을 환상으로 앞당겨 보았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amp;lsquo;미래의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았다&amp;rsquo;는 것과 &amp;lsquo;성육신 이전의 아들이 실제로 다니엘 앞에 나타나 활동했다&amp;rsquo;는 말은 확실히 다르다. 다윗이 시편에서 장차 높임받을 주를 미리 보았고, 다니엘이 미래의 인자를 보았다고 해서 구약 시대에 아들이 아버지와 별개의 모습으로 계속 활동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차이를 구별해야 한 분 하나님과 성육신의 비밀을 지키며 설명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흰옷과 많은 물소리만으로 그의 정체를 확정할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흰 옷을 입은 이의 음성으로 들린 &amp;#39;많은 물소리&amp;#39;는 어떠한가? 이것은 위엄과 압도적인 권세를 나타내지만,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고유한 표현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 에스겔은 동쪽에서 오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분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고 했다(겔 43:2). 이 경우 많은 물소리는 &lt;strong&gt;하나님의 음성&lt;/strong&gt;이다. 온 땅이 그 영광으로 빛났으므로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43: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둘째, 에스겔 제1장에서는 &lt;strong&gt;네 생물이 움직일 때 그 날개 소리&lt;/strong&gt;가 많은 물소리와 전능자의 음성과 군대의 소리 같다고 했다(겔 1:24).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받드는 천상 존재들이다. 그들의 수많은 날개가 함께 움직이면 하나님의 음성처럼 장엄한 소리가 난다. 여기에서는 &lt;strong&gt;천상 생물들의 소리&lt;/strong&gt;가 많은 물소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도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제1장에서는 부활하신 &lt;strong&gt;예수님의 음성&lt;/strong&gt;이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했다(계 1:15). 제19장에서는 &lt;strong&gt;허다한 무리&lt;/strong&gt;가 많은 물소리와 큰 우레소리 같은 소리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고 있다(계 19:6). &lt;strong&gt;그러므로 많은 물소리만으로 하나님인지 그리스도인지 천사 무리인지 결정할 수 없다. 말하는 주체와 문맥을 함께 보아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이러한 판단은 &lt;strong&gt;흰옷(흰 겉옷)의&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box-sizing:border-box;margin:0;padding:0;text-align:left&quot;&gt;&lt;strong&gt;경우&lt;/strong&gt;에도&lt;/span&gt;&amp;nbsp;마찬가지다. 예수님의 변화된 옷은 빛과 같이 희었지만(마 17:2), 부활의 무덤과 승천의 현장에 나타난 천사들도 흰옷을 입었다(막 14:5, 눅 24:4, 행 1:10). 얼굴의 빛과 놋 같은 발도 하나님께 권세를 위임받은 천사에게 부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천사는 자기 권세로 심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심판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lt;strong&gt;천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인칭으로 &lt;/strong&gt;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막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했다(창 22:11-18). 그 천사가 하나님처럼 말한다고 해서 천사 자신이 여호와이거나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인 것은 아니다. 보냄받은 자가 보내신 분의 권위로 말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천사와 귀신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이므로 전지(全知, omniscience)하지 않다. 그들은 사람의 행동과 눈빛과 반복되는 선택을 오래 관찰하여 우리 인간의 마음을 추측할 뿐, 마음 자체를 꿰뚫어 볼 수는 없다. 특히 악한 영은 한 집안에서 음란과 혈기와 교만 같은 약점이 어떻게 되풀이되는지를 지켜본 뒤 그 지점을 공격한다. 높은 계급의 귀신일수록 인간을 오래 관찰했기에 더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전지성이 아니라 축적된 관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은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서(시 7:9; 잠 21:2, 렘 11:20, 살전 2:4), 불꽃 같은 눈을 지니신 그리스도(계 2:23)와 생명 주는 영으로 오신 성령이시다(행 5:3, 9). 그러므로 귀신이 내 마음을 다 안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내 안에 계신 전능자를 믿고,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악한 영의 통로를 닫으면서 담대히 맞서면 된다. 세마포 옷을 입은 이의 불꽃 같은 눈도 이러한 하나님의 감찰과 심판의 권세를 생각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lt;strong&gt;세마포 옷, 번갯빛 얼굴, 불꽃 같은 눈, 놋 같은 팔과 발, 많은 물소리는 흰옷을 입은 이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지만 각각만으로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다&lt;/strong&gt;. 그런데 제10장에서 가장 강한 그리스도적 표지는 승리한 왕의 우바스 금띠이며, 제12장에서 가장 강한 천사적 표지는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는 행동이다. 두 단서를 함께 놓아야 환상의 긴장과 더불어 실체가 보인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다니엘서 10장과 12장의 세마포 옷 입은 이는 같은 존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10장과 제12장은 다니엘이 보았던 넷째 환상으로서, 같은 힛데겔 강가 환상의 앞과 뒤다. 두 곳 모두 &amp;lsquo;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rsquo;가 나온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표현은 그들이 같은 존재라고 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제10-11장에서는 흰옷을 입은 이가 환상을 보여 주고 있고, 가브리엘이 그 내용을 해설하고 있으며, 제12장에서 다시 그가 나타나 환상의 끝을 확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읽으면 &lt;strong&gt;&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는 환상의 주권자&lt;/strong&gt;이고&lt;strong&gt; &amp;#39;가브리엘과 미가엘&amp;#39;은 그를 섬기는 천사들&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제12장의 행동은 제10장의 외형과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강 양쪽에 서 있는 두 사람 중 하나가 강물 위쪽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에게 놀라운 일의 끝이 언제인지 묻는다. 그는 좌우 손을 하늘로 들고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지나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진 뒤 모든 일이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단 12:5-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2: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언제나 맹세하는 이는 맹세의 대상보다 아래에 있다. 고로 가브리엘이나 미가엘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면, 강물 위쪽에 있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그들보다 높은 계급의 천사일 수 있다. 그러나 이 흰옷 입은 이가 하늘의 영원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한다면 그 자신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 장면만 보면 &lt;strong&gt;제12장의 세마포를 입은 이는 높은 계급의 천사&lt;/strong&gt;로 보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제10장과 제12장의 존재를 서로 다르게 볼 수도&lt;/strong&gt; 있다. &lt;strong&gt;제10장에서는 미래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여&lt;/strong&gt; 주고, &lt;strong&gt;제12장에서는 비슷한 세마포 옷을 입은 고위 천사가 종말의 기간을 맹세했다&lt;/strong&gt;고 해석할 수 있다. 세마포 옷은 그리스도만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같은 복장만으로 동일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대로 &lt;strong&gt;같은 존재로 본다면 &amp;lsquo;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했다&amp;rsquo;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남는다.&lt;/strong&gt;&amp;nbsp;구약 시대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두 분처럼 동시에 나타나 서로 대화했다고 보면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구약의 한 분 하나님이라는 계시와 충돌한다. 아직 성육신하지 않은 아들이 다니엘 앞에 별도로 나타나 아버지를 향하여 맹세했다는 해석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 본문에 나오는 &amp;#39;한 때와 두 때와 반 때&amp;#39;는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가 말하는 7년 대환난을 직접 말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다니엘 12장에 나오는 세마포 옷 입은 이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대해서만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단 12:7). 그런데 &amp;#39;한 때와 두 때와 반 때&amp;#39;는 &amp;#39;때&amp;#39;를 일 년으로 계산한다면, 3년 반을 가리킨다.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마흔두 달과 1,260일도 같은 3년 반을 가리킨다고 하겠다(계 11:2-3; 12:6, 14; 13:5).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는 아예 7년이라는 말이 안 나온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다니엘서 제9장의 마지막 한 이레를 약 2천 년 뒤로 옮겨서 7년 대환란이라는 시간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작위적인 해석이며 만들어진 말이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환상의 정체와 기간을 모두 본문 자체에서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이번 첫 시간에는 제10장과 제12장의 세마포 옷 입은 이를 두고, 반드시 같은 존재라고, 혹은 반드시 다른 존재라고도 성급히 확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10장의 그리스도적 영광과 제12장의 천사적 행동을 모두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amp;#39;한 분 하나님&amp;#39;이라는 첫 열쇠 외에 다른 해석 열쇠를 적용하므로, 이 두 장면이 어떻게 하나로 풀리는지를 더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한 분 하나님이라는 진리는 왜 이 환상을 푸는 열쇠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계시는 항상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lt;strong&gt;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심을 항상 그리고 분명히 선포&lt;/strong&gt;한다. 여호와 이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며,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다(사 43:10-11). 이는 구약 시대에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lt;strong&gt;독생하신 하나님은 아버지 품속에 계셨지만 아직 육신을 입고 사람들에게 나타나 사역하지 않으셨다&lt;/strong&gt;(요 1:18). 구&lt;strong&gt;약의 무대에서 자신을 계시(啓示, revelation)하고 일하신 분은 한 분 여호와 하나님&lt;/strong&gt;이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칙을 놓치면 구약의 천사들을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게 된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 모세에게 나타난 천사, 여호와의 사자, 풀무불 속의 넷째 존재를 별개의 아들로 해석하고, 창세기 1장 26절의 &amp;ldquo;우리&amp;rdquo;를 곧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대화로 확정한다. 그 결과 유대인은 기독교가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 세 신을 믿는다고 오해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별히 다니엘서 제3장은 이 원칙을 보여 주는 분명한 사례다. 느부갓네살은 넷째의 모양이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했지만 곧 하나님이 그의 천사를 보내셨다고 설명했다. &lt;strong&gt;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천사는 사람이나 신적 존재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그는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이 아니었다. 또한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권세를 전달했다고 해서 그 사자 자체가 아들 하나님이 되는 것도 아니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별히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사탄에 의한 예수님의 시험받으심도 이 비밀을 뒷받침한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사탄은 &amp;ldquo;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amp;rdquo;이라고 물었다(마 4:3, 6). 구약 시대에 아들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나타나 활동했다면 사탄이 그 존재를 모르고 확인하려 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救援, salvation)을 위하여 친히 아들로 오신 일은 감추어졌던 비밀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lt;strong&gt;오늘날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로 오셨고,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생명을 주는 영으로 성도 안에 오셨다. 지금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lt;/strong&gt;다만 이 완성된 신약의 계시를 구약의 모든 천사 현현에 거꾸로 집어넣어 세 분이 늘 별도로 나타났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구약 시대의 인물이나 선지자는 미래의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미리 볼 수&lt;/strong&gt; 있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장차 자신의 주에게 오른편에 앉으라고 하시는 장면을 보았고, 다니엘은 인자 같은 이가 영원한 나라를 받는 미래를 보았다(시 110:1; 단 7:13-14). 그러므로 &lt;strong&gt;다니엘서 제10장의 모습이 부활 후 그리스도와 같다는 사실은 그가 미래의 영광을 앞당겨 보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성육신 이전의 아들이 그 현장에 별도로 서 있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한 분 하나님이라는 열쇠는 제10장의 그리스도적 모습과 제12장의 맹세 장면을 동시에 지켜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미래 영광을 보되 구약에서 두 하나님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천사의 역할을 인정하되 그리스도의 예표를 지워서도 &lt;/strong&gt;안 된다. 이 첫 번째 열쇠 위에 다음 해석 열쇠를 더해야 세마포 옷 입은 이의 정체를 끝까지 풀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진리는 오늘의 신앙도 바로잡는다. 우리가 바라볼 예수님은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향해 가시던 분만이 아니라, 사명을 완수하고 금띠를 띠며 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천상의 왕이시다. 그분은 교회의 촛대를 옮기고 미지근한 자를 토해 내겠다고 경고하시며 각 사람의 행위를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신다(계 2:5; 3:16). 한 번 믿었다는 과거만 의지하지 말고 믿은 뒤 지은 죄를 날마다 회개하며 이기는 자로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등장하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와 여러 천상 존재의 정체를 분별하는 첫 번째 과정을 살펴보았다. 다니엘서 제10장부터 제12장은 마지막 큰 전쟁을 다루는 하나의 환상이지만, 세마포 옷 입은 이와 해설자와 사람 모양의 존재들과 미가엘과 강 양쪽의 두 사람을 구별해서 읽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10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우바스 순금 띠와 번갯빛 얼굴과 횃불 같은 눈과 빛난 놋 같은 팔과 발을 지녔다. 그의 모습은 요한계시록 제1장의 부활하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거의 그대로 평행하게 보여준다. 특히 금띠는 천사의 흰옷과 구별되는 왕권과 승리의 표지다. 그러므로 그는 미래에 영광을 얻으실 그리스도를 강하게 예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흰옷과 많은 물소리만으로 정체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 천사도 흰옷을 입고 나타나며, 많은 물소리는 하나님의 음성과 천상 생물의 날갯소리와 그리스도의 음성과 허다한 무리의 소리에 모두 사용된다. 제12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므로 높은 천사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제10장과 제12장의 존재가 같은지 다른지는 다음 열쇠까지 적용하여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 번째 열쇠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진리다. 구약에서 독생자는 아버지 품속에 계셨고 한 분 여호와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선지자가 미래의 영화로운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는 것과 성육신 이전의 아들이 실제로 별도로 활동했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한다. 그래야 삼위일체를 믿으면서도 구약의 한 분 하나님을 바르게 고백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는 다니엘이 미리 본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불꽃 같은 눈으로 마음을 살피고 교회 가운데를 거니시는 주님 앞에서 믿은 뒤 지은 죄까지 회개하며, 끝까지 사명을 완수한 이기는 자로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 분 하나님과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그분의 통치를 끝까지 따르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7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ChatGPT Image 2026년 9월 17일 오후 02_49_2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a4abdfdaf52fbb800cf6d9d0d13f5a0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c43fa0b376c71bdc0fce146b988c1d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00e5fba05c1f0ef1f5123a7b4d63e8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09882a7b5084e38dc914c3f4c3c723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328ce62bae1e24dfb7bcc338080c5f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e24c6d74e2847f1ccc23f5b7fb0fd7c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58cd1def9e44b9c30b55df328b1bac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301baed3c49a1e87ac3a35e918cbb9a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d4afa7050265198705c31e5d3ee009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bbf97319c796bf017c0e4ebf9cfd82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0db7a794949326a3a7c733d7136a06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60c5ddc36266d5aee149155d67e8fc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6e3148430b6b89e3939ff7f4a655ee9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4b9cb7ab55e1dba2791a1f48989c0d6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다니엘서_세마포_인물_분석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1520a7cbfffbdf7d98dcb8629d3dfb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다니엘서의_그리스도_예표_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8b5a442dc1eae4ad5cde2e9e43b257a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12de3b6d146bf8715a98317da50b74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0b21a135f298b23e74d8f2235055dc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b05e8284f8c6fa9d8fed7ed2c4989a0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5ee10c12b3e8e80b9b14a7ebc25b1e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4979844cc17b90ea9f04a2739d1a9f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af5aa2767f7b877db1ed7ce0ac01b4f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c56fb15ecc20c78461660649bd19e3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b73d9e7ce9aac7b68ae588e621ed5b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35e9a761276802e5a7ca7a93ad710e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723ad54b8e7f4e5384d40faad440a95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레위기강해(21)] 성결법(08)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레25:1~25:55)_2026-09-16(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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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6T21:01:27+09:00</published>
		<updated>2026-09-17T17:49:17+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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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2026-09-16(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21)] 성결법(08)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레25:1~25:5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J8C_9uSBuI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은 왜 함께 필요한가? 2. 등잔대와 진설병은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3. 안식년은 왜 땅을 쉬게 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선포하는가? 4. 면제년은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9-16(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레위기강해(21)] 성결법(08)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레25:1~25:5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kJ8C_9uSBuI&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kJ8C_9uSBuI?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br /&gt; 1.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은 왜 함께 필요한가?&lt;br /&gt; 2. 등잔대와 진설병은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3. 안식년은 왜 땅을 쉬게 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선포하는가?&lt;br /&gt; 4. 면제년은 왜 빚을 탕감하고 동족 종을 놓아주게 하는가?&lt;br /&gt; 5. 희년의 네 가지 원상회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lt;br /&gt; 6. 토지&amp;middot;가옥&amp;middot;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br /&gt; 7.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레위기 25장을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안식년과 희년&lt;/strong&gt;이 단순한 휴식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거룩함을 회복하는&amp;nbsp;&lt;strong&gt;단체적인 성결례&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핵심은 모든 땅과 인간은&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소유&lt;/strong&gt;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이 탐욕으로 잃어버린&amp;nbsp;&lt;strong&gt;자유와 기업을 원상태로 회복&lt;/strong&gt;시키는 &amp;#39;특사 조치&amp;#39;와 같은 은혜를 설명합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구약의&amp;nbsp;&lt;strong&gt;고엘(기업 무를 자)&lt;/strong&gt;&amp;nbsp;제도를 현대의&amp;nbsp;&lt;strong&gt;회개&lt;/strong&gt;와 연결하여, 가까운 친족이 대신 빚을 갚아주듯 우리가 조상과 자녀를 위해 대신 회개함으로써&amp;nbsp;&lt;strong&gt;영적인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음&lt;/strong&gt;을 역설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amp;nbsp;&lt;strong&gt;하늘의 가족과 기업을 되찾는 것&lt;/strong&gt;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축복임을 일깨워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레위기강해(2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성결법(0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레 25:1-5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의 성결법(레 18~27장)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함께 다룬다. 먼저 제18장부터 제22장까지는 일반 백성과 제사장이 각각 지켜야 할 개인적인 성결(聖潔, holiness)을 가르친다. 그러나 제23장부터 제27장까지는 온 회중이 함께 모이고 함께 순종함으로 이루는 단체적인 성결을 보여 준다. 그중에서 제23장에서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를 지킴으로 거룩해지고, 제24장에서는 성막 안의 등잔불과 진설병을 돌보아 거룩해지며, 제25장에서는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온 백성이 함께 시행함으로 거룩해짐을 말씀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하나님께서는 개인이 혼자 거룩해지는 것으로 온전하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안식일과 절기에는 성회를 열어 함께 찬양하고 감사하며 말씀을 들어야 한다. 혼자 부르는 찬양과 온 회중이 한마음으로 부르는 찬양은 다르다.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높일 때 예배의 풍성함이 커지고, 천사들의 도움과 마음을 치유하는 은혜도 강하게 임한다. 개인적인 회개(悔改, repentance)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함께 모여 순종하는 단체적인 성결례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막 안에서의 봉사도 제사장만의 일이 아니었다. 백성이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가져오면 제사장은 그것으로 등불을 밝히고 열두 진설병을 차렸다. 주의 종이 성령의 불을 밝히고 신선한 말씀을 준비하려면 성도도 자기 몫을 감당해야 한다. 제사장과 백성이 서로의 사명을 다할 때 공동체 전체가 빛을 받고 생명의 양식을 먹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레위기 25장의 단체적인 성결례는 이 협력을 땅과 경제와 가족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먼저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하고, 추가로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희년(禧年, jubilee)은 땅을 쉬게 하고 종을 놓아주며 기업을 되돌리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완전한 원상회복(原狀回復)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지와 가옥과 종을 무르는 고엘(גֹּאֵל, go&amp;rsquo;el) 제도는 장차 우리를 되찾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이 규례들을 실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공동체 전체가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받고 자유와 회복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지키지 않았다. 마침내 예수께서 오셔서 그 규례의 영적 실체를 이루셨고, 지금은 회개하는 자가 그 은혜에 참여하게 하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이 왜 함께 필요한지, 등잔대와 진설병이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지,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은 무엇을 선포하는지,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지, 그리고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은 왜 함께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결례 중에서도 개인적 성결례(레 18-22장)는 각 사람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을 가리킨다. 일반 백성은 이방인의 음란과 우상숭배를 버려야 했고, 제사장은 죽음과 부정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며 거룩한 제물과 성물을 바르게 다루어야 했다(레 18:1-22:33). 누구도 다른 사람의 성결을 대신할 수 없다. 자기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각자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공동체의 성결례도 필요하다(레 23-27장). 만약 공동체 전체가 세상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한 사람의 결단만으로 거룩함을 지키기가 어렵다. 한 사람만 안식년을 지켜 밭을 쉬게 하는데 이웃은 계속 농사를 짓는다면, 순종한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한 사람만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는데 다른 사람들은 계속 채무자를 독촉하고 종을 부린다면 하나님의 질서가 공동체 안에 뿌리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 백성이 같은 때에 함께 멈추고 함께 놓아주며 함께 회복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레위기 23장의 안식일과 일곱 절기는 단체적인 성결의 첫 형태다. 백성은 정한 날에 성회로 모여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다. 속죄일(贖罪日, Day of Atonement)을 제외한 절기에는 창조와 출애굽과 추수의 은혜를 기뻐하며 축제를 누렸다.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온 공동체가 기억하고 감사할 때 그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했다. 예배는 개인적인 감정 표현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함께 닮아 가는 통로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교회도 같다. 혼자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함께 드리는 예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성도들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고 말씀을 들으며 회개할 때 한 사람의 믿음이 다른 사람을 붙들어 준다. 낙심한 사람은 공동체의 찬양 속에서 힘을 얻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성도의 간증과 순종을 보며 깨닫는다. 하나님은 지체들이 서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회를 세우셨다(고전 12:12-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단체적 성결례는 획일적으로 똑같은 일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의 일을 하고 백성은 백성의 일을 하되, 서로의 역할이 한 목적을 향해야 한다. 백성은 기름과 곡식을 드리고 제사장은 등불과 떡을 잘 관리해야 한다. 성도는 헌신과 물질로 말씀 사역을 돕고, 주의 종은 기도와 연구로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 한 지체가 자기 역할을 버리면 공동체 전체가 약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결은 결국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이 땅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거룩해질수록 천국에서도 주님 가까이에 나아갈 자로 준비된다. 한 사람만 뜨거워지고 다른 사람들은 차가운 교회가 아니라, 모든 지체가 회개하고 충성하여 함께 성령의 통치를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정결(淨潔)한 마음과 공동체의 질서 있는 순종을 함께 받으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등잔대와 진설병은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4장의 &amp;#39;등잔대&amp;#39;와 &amp;#39;진설병&amp;#39;은 성막 안에서 이루어지는 단체적 성결례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등잔대의 등불을 간검하는 것부터&lt;/strong&gt; 살펴보자(레 24:1-4).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봉사해야 했지만 필요한 재료는 백성이 다 가져왔다. 백성이 감람나무를 가꾸고 감람을 찧어 순결한 기름을 드리면, 제사장은 그것을 가지고 아침과 저녁으로 등잔을 살피고 심지를 손질하여 밤새 불꽃이 타오르게 했다(레 24:1-4). 제사장의 봉사와 백성의 헌신이 합쳐져야 성소가 밝아졌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ㄷ게 이때의 감람기름은 성령을 상징하고, 등잔불은 하나님의 빛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세상의 참빛이시며, 그분을 따르는 성도도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았다(요 1:9; 8:12; 마 5:14-16). 교회가 어둠을 밝히려면 성도는 성령 충만(聖靈充滿,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을 받아야 하고, 주의 종은 공동체 안에서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살펴야 한다. 성령의 인도와 통치를 받지 않으면 세상과 구별된 빛을 낼 수 없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주의 종들은 성도들이 피땀 흘려 드린 헌금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 헌금 가운데 일부로 사례를 받는다면 성도의 노동과 헌신을 기억하며 더 충성해야 한다. 백성이 힘들게 마련한 감람기름을 제사장이 허비할 수 없었던 것처럼, 목회자는 성도가 드린 시간과 물질을 말씀과 기도와 영혼 구원(救援, salvation)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성령의 불을 밝히고 진리를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그 헌신에 응답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이제는 진설병을 진설하는 규례를 살펴&lt;/strong&gt;보자(레 24:5-9). 등잔불의 간검 외에도 제사장이 성막 안에서 해야 할 일은 진설병을 진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등잔불과 같은 원리를 보여 준다. 이것은 성막 안에서 진행되는 단체적인 성결례의 두 번째 사례다. 제사장이 성소 안에 떡을 진설하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운 가루를 가져와야 했다. 그것이 첫 열매이든 십일조이든지 하나님께 바치면, 제사장들은 그것으로 열두 덩이의 떡을 만들어 두 줄로 떡상 위에 놓아야 했다. 이때 열두 떡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를 상징한다. 제사장은 온 백성을 어깨에 메듯 그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어느 한 지파도 굶지 않도록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했다(레 24:5-9; 출 28:9-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제사장은 안식일마다 묵은 떡을 물리고 새 떡을 진설해야 했다. 오늘날 말씀을 맡은 종도 매주 신선한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이전에 전한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간에 성도들이 먹어야 할 말씀을 기도와 연구로 새롭게 차려야 한다. 성도가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이 자라지 못하고 작은 환난에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생명의 떡을 꾸준히 먹을 때 영적 내공이 쌓이고 가정의 파수꾼으로 담대히 설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4:8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어린 시절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아 떫은 감을 된장물에 우려 떫은 맛을 빼고 먹었다. 먹을 것이 귀했기에 그것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성도에게 공급하는 말씀까지 묵은 것을 계속 우려내어 먹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영원하지만 공동체가 지금 들어야 할 적용과 깨달음은 신선하게 준비해야 한다. 주의 종은 말씀의 큰 우물에서 계속 길어 올려 성도가 배불리 먹도록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물린 떡은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가? 그것은 제사장과 그 가족이 거룩한 곳에서 먹게 했다. 이는 말씀을 충성스럽게 진설하는 제사장과 그 가족을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원리도 함께 보여 준다. 주의 종이 세상일로 인하여 지쳐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성도도 굶고 자신도 먹을 떡을 잃는다. 반대로 성도를 살리는 생명의 떡을 풍성히 공급하면 공동체의 헌신을 통해 목회자와 가족도 돌봄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목회자 혼자 잘해서도 안 되고 성도 혼자 열심을 내서도 안 된다. 성도는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드리듯 은사와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주의 종은 그것을 소중히 받아 성령의 빛과 생명의 말씀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서로가 자기 몫을 감당할 때 교회 전체가 밝아지고 자라며 거룩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lt;strong&gt;성막 밖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는 자와 이웃의 형제를 살인을 행한 자에게는 공동체의 성결을 위해 그들을 그대로 두지 말고 죽이라&lt;/strong&gt;고 하셨다(레 24:10-24).&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안식년은 왜 땅을 쉬게 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선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안식년은 어떤 단체적인 성결례인가? 하나님께서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들 그리고 성막 안에서의 성결례와 성막 밖에서의 성결례를 언급하신 후에, 두 가지 단체적인 성결례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단체로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는 것이었다(레 25:1~2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는 어떻게 안식년을 지켜야 했는가? 그것은 그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육 년 동안 농사를 하고 나서 일곱째 해가 찾아오면 그 해에 땅을 쉬게 하라는 규례였다(레 25:1-7). 그러면 그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해에는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 포도원을 가꾸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저절로 난 곡식과 포도는 자기 소유로 취하지 말라고 했다(레 25:1-5).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의 생계를 막으려 하신 것이 아니라 땅의 참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치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젖과 꿀이 흐리는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되었고, 가나안 족속의 죄가 가득 찬 뒤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유권 자체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기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땅에 머무는 거류민이며 동거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 년 동안 농사하고 살면 계속해서 그 땅이 자기 땅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해가 찾아오면 그 땅을 쉬게 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그 땅이 자기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안식년 저절로 자신 소출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가? 그것은 주인만이 그것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저절로 자란 것들은 땅의 주인뿐만 아니라 그의 남종과 여종, 그의 품꾼과 거류민이 함께 먹을 수 있었고, 또한 심지어 가축과 들짐승도 먹을 수 있게 하라고 하셨다(레 25:6-7). 그 해는 주인이 그 땅에서 농사한 것이 아니므로, 누구도 그 땅의 산물을 가리켜 &amp;ldquo;내가 수고해서 얻은 내 것&amp;rdquo;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경험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이 규례를 한 사람에게만 지키라고 한다면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나만 밭을 놀리고 이웃은 계속 소출을 거둔다면 억울하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민족이 안식년이 되면 그 해에는 모두 함께 쉬라고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안식년을 지켰을까? 놀랍게도 성경 기록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년을 지켰다는 대목을 발견하기 어렵다. 역대하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서 바벨론에서 70년을 살게 했다고 언급하였다(대하 36:21). 그리고 신약 시대가 되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신이 안식년의 성취자로 오셨음을 그들에게 드러내셨다. 즉 당신이 안식일의 주라는 것을 선포하시면서(마 12:8), 그날 병든 자를 고쳐 귀신들린 자로부터 귀신을 쫓아주시어,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마귀의 종노릇한데서 해방시켜 주셨다(눅 13:16).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대하셨고 그들에게 안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 1:28-3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건 &lt;strong&gt;십일조도 마찬가지다&lt;/strong&gt;.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권을 믿고 십일조를 드린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자신만 드린다고 생각하면 손해처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단체적 성결은 서로의 순종을 지지하여 탐욕을 이기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땅의 소유권에 관한 말씀은 &lt;strong&gt;우리의 몸과 재물과 재능에도 적용&lt;/strong&gt;된다. 건강할 때에는 몸이 내 것처럼 보이고, 지혜와 노래와 기술도 내 능력으로 얻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병이 들거나 힘이 사라지면 그것이 맡겨진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과 시간과 지식도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기업이다. 내 것처럼 움켜쥐지 않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성경을 연결하여 깨달은 바에 따르면 흙으로 지음받은 육체도 하나님께 속한 땅이다(창 2:7). 귀신이 죄를 틈타 사람의 몸에 들어와 괴롭힌다 해도 그 몸의 영원한 소유자가 될 수 없다. 안식년이 되면 땅을 쉬게 해야 했듯이, 하나님은 자기 소유인 사람에게 안식을 주고 악한 영의 압제에서 놓이게 하기를 원하신다. 병이 심해졌다 약해지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허락 아래 있으며, 마귀가 사람을 끝없이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안식년의 핵심은 일하지 않는 데 있지 않고 주인을 인정하는 데&lt;/strong&gt; 있다. &lt;strong&gt;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임을 믿고, 맡기신 것을 이웃과 나누며, 몸과 재물과 은사를 주님의 뜻에 돌려 드리는 것&lt;/strong&gt;이다. 땅을 쉬게 하는 순종을 통해 온 백성은 자신들이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임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면제년은 왜 빚을 탕감하고 동족 종을 놓아주게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안식년 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7년에 면제년을 지켜야 했다. 이러한 규례는 레위기에는 나오지 않고 신명기 15장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매 칠 년 끝에 동족의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는 규례를 지키라고 하셨다(신 15:1-18). 안식년은 국가 전체가 같은 주기로 일곱째 해를 지키는 규례이지만, 빚과 종살이의 면제는 각 관계가 시작된 때부터 계산해서 7년째에 지키는 공동체 성결례였다. 즉 돈을 빌렸더라도 일곱째 해가 되면 채권자는 더 독촉하지 말아야 했고(신 15:1-11), 동족이 종으로 팔려 여섯 해를 섬겼으면 일곱째 해에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했던 것이다(신 15:12-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15:1-2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 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규례는 희년에도 지속되어야 했다. 형제가 가난하여 곁에 머물면 이자를 받아 이익을 남기려 하지 말고, 거류민과 동거인처럼 함께 살게 하라고 하셨다(레 25:35-37). 종을 놓아줄 때에도 빈손으로 보내지 말도록 했다. 양 떼와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에서 넉넉히 주되, 하나님께서 복 주신 만큼 나누어 새 삶을 시작하게 하라고 하셨다(신 15:13-14). 면제는 채무자를 겨우 풀어놓는 일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기반까지 마련해 주는 은혜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모든 사람은 빚을 끝까지 받아내기를 원하고, 값없이 일하는 종을 계속 붙들어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만 면제를 요구하면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만 손해 보는 것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 공동체가 함께 면제년을 시행하게 하여 어느 집이나 같은 기준으로 형제를 놓아주게 하셨다. 개똥이네와 소똥이네가 면제했다면 말똥이네도 면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고 공동체 가운데 영구적인 종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면제년를 실시하라고 한 것인가? 그것의 근거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하셨으므로 그들은 사람의 영구적인 종이 될 수 없고, 언제나 하나님의 종이었다. 채권자와 주인은 잠시 그들의 노동과 채무 관계를 맡았을 뿐 한 사람의 미래를 영원히 붙잡을 권리는 없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55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동시에 마귀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붙잡을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람이 죄를 지어 마귀의 종이 되고 악한 영에게 시달릴 수 있지만 사람의 참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사탄은 죄의 빚을 붙들고 사람을 영원한 채무자처럼 부리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자기 피로 값을 치러 우리를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속량하셨다(막 10:45; 벧전 1:18-1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면제년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도 흘려보내야 한다.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셨다. 즉 &amp;ldquo;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amp;rdquo;라고 번역된 말을 보면, 빚을 탕감해 주라는 뜻이다(마 6: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베드로가 형제를 일곱 번 용서하면 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하셨다(마 18:21-22). 이 70&amp;times;7의 용서는 다니엘의 70이레가 품은 면제와 희년의 정신과도 연결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용서에는 계산의 끝이 있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면제는 무책임과 게으름을 장려하는 제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자유를 기억하여 형제의 미래를 빚으로 묶어두지 말라는 명령이다. 나도 애굽에서 구원받은 종이었고,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탕감받았음을 기억할 때 다른 사람을 놓아줄 수 있는 것이다. 면제년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긍휼을 경제와 노동의 관계 속에서 실제로 나타내는 성결례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희년의 네 가지 원상회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안식년에 의해 희년은 어떤 제도인가? 이 규례는 안식년과 면제년을 확대하여 완전한 원상회복을 이루는 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일곱 번의 안식년, 곧 7년을 일곱 번 지난 49년 뒤 오십 년째가 되면 그 해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라고 하셨다. 안식년은 49년째 되는 해의 일곱째 달 열흘 속죄일에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어 자유를 선포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희년을 뜻하는 히브리어 &amp;lsquo;요벨&amp;rsquo;(יוֹבֵל)이라는 말은 뿔나팔(쇼파르)에서 나온 말인 것을 알 수 있다(레 25:8-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희년에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는 무엇을 해야 했는가? 그 해에는 네 가지 일을 해야 했다. &lt;strong&gt;첫째, 49년째 안식년에 이어 50년째에도 땅을 쉬게&lt;/strong&gt; 했다. &lt;strong&gt;둘째, 종을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했&lt;/strong&gt;다. &lt;strong&gt;셋째, 가난 때문에 팔았던 기업을 원래 소유자에게 되돌려&lt;/strong&gt;주어야 했다. &lt;strong&gt;넷째, 흩어진 사람이 자기 가족에게 돌아가게&lt;/strong&gt;&amp;nbsp;해야 했다. 그러므로 희년은 단순한 휴식의 해가 아니라 땅과 신분과 기업과 가족이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lt;strong&gt;자유와 해방의 해&lt;/strong&gt;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부득이 땅을 매매해야 한다면, 그때에는 희년까지 남은 햇수에 따라 값을 정하도록 했다. 희년이 오래 남았으면 여러 해의 소출을 얻을 수 있으므로 값을 많이 받고, 희년이 가까우면 적게 받아야 했다(레 25:14-17). 땅 자체를 영원히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다음 희년까지 얻을 소출의 권리를 거래한 셈이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 많은 땅을 사들여도 희년이 되면 원래 기업을 받은 가문으로 돌려주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희년을 지켰을까? 아니었다. 그들은 안식년과 면제년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희년도 역시 지키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년의 성취자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나사렛 회당에서의 첫 공생애 취임설교에서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펴게 하셨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해야 한다는 말씀을 읽게 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그날 듣는 사람의 귀에 응했다고 선언하셨다(사 61:1-2; 눅 4:18-21).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돌아보면 그분이 희년을 실제로 시행하는 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랬다.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몸을 고쳐 육체라는 땅에 안식을 주셨다. 죄의 빚을 자기 피로 갚아 마귀의 종을 자유롭게 하셨다.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을 다시 차지할 길을 여셨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원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셨다. 예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값을 치르셨기에 희년의 네 가지 회복이 한꺼번에 이루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만약 이스라엘이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실제로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그 규례가 선포될 때 땅은 쉬고 종은 풀려났을 것이며, 기업과 가족은 원래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필자가 깨달은 영적 원리에 따르면, 그렇게 되었다면 귀신도 일곱째 해마다 사람의 몸을 놓아주어야 했고, 희년에는 사람이 마귀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가족과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규례를 행하지 않았기에 그 회복이 공동체 안에서 시행되지 못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희년을 강제로 시행하셨다. 희년이란 우리가 아무리 갚아야 할 것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값을 해결하고 본래 자리로 돌려놓으시는 특별사면과 같은 것이다. 다만 지금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이 은혜가 적용된다. 회개하는 자에게 악한 영이 떠나가고,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벗어나며, 하나님 가족의 신분과 하늘 기업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혜택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희년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육적 이스라엘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민족이므로, 그들을 위한 선교도 필요하다. 그러나 불순종한 육적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과 물질적 성전만을 위해 성도의 피땀 어린 물질을 쏟아야 한다는 세대주의적 선교는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모든 민족에게 열어 놓으신 희년의 복음을 전하고, 회개하는 영혼을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하며, 그들이 하늘 기업을 얻도록 돕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만 탓할 수 없다. 우리가 채권자와 주인의 자리에 있었다면 빚을 없애 주고 종을 놓아주며 산 땅을 돌려 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같은 아담의 후손이며 탐욕에 기울어진 죄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부지런히 회개하여 희년의 원상회복을 실제로 누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토지&amp;middot;가옥&amp;middot;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희년이 돌아오기 전에 팔아서 잃어버린 토지와 가옥(집)과 종살이는 어떻게 되물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희년이 오기 전에도 무르기(히브리어로, &amp;#39;게울라&amp;#39;)를 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 주셨다. 그것은 팔어버린 토지도 가능했고, 팔아버린 가옥도 가능했다. 심지어 팔아버린 사람(노예)도 가능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토지 무르기&lt;/strong&gt;를 보자(레 25:23-28). 이스라엘 백성 중 하나가 가난하게 됨으로 어쩔 수 없이 땅을 팔았다고 치자. 그것을 자신이 다시 되돌려받고 싶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가? 그때에는 그 땅을 판 자기가 부유해져서 그 값을 치를 수 있다면, 남은 햇수를 계산하여 그 값을 치르고 다시 토지 무르기를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자신에게 만약 그렇게 할 만한 힘이 없다면, 가까운 친족이 그 값을 치러 주고 그 땅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이때 팔렸던 토지를 다시 사서 되찾아 줄 자 곧 기업 무를 자를 히브리어로 &amp;lsquo;고엘&amp;rsquo;이라고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를 들어,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가 대표적인 고엘제도의 실행의 예인 것을 알 수 있다.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죽은 뒤, 맏며느리 룻은 아무 기업도 없는 이방 여인이 되었다. 그러나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가 값을 치르고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며 룻을 아내로 맞이했다. 룻이 보아스에게 옷자락을 펴서 자신을 덮어 달라고 한 것은 그가 바로 그녀의 전남편의 기업 무를 자였기 때문이다(룻 3:9; 4:9-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룻 3: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사람이 종으로 팔린 사람을 무르는 경우를 보자&lt;/strong&gt;.(레 25:39-55) 이때에는 가까운 혈족이 와서 종의 값을 치르고 놓아주라고 하셨다. 먼저 형제가 무를 수 있는 것이 제일 우선 순위이고, 그다음에는 삼촌이나 삼촌의 아들, 곧 사촌이 무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밖의 가까운 살붙이도 무를 수 있었다(레 25:47-49). 그러나 팔린 종에게 고엘이 되어 주려면 혈연적으로 가까워야 하고, 값을 치를 능력이 있어야 하며, 기꺼이 무르려는 마음이 있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예수님이야말로 이 세 조건을 완전히 갖춘 우리의 고엘(기업무를 자)&lt;/strong&gt;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기꺼이 사람이 되어 우리와 같이 피와 살을 함께 나누셨다. 그리고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히 2:11-14). 그런데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으므로 우리의 죄값을 치를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놓을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 보아스가 룻을 덮고 기업을 되찾아 주었듯이 예수님은 자기 피로 우리를 사서 잃어버린 생명과 기업을 회복하셨던&amp;nbsp;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가옥을 무르는 규례&lt;/strong&gt;를 보자(레 25:29-34). 이때에는 집이 어디에 있고 누구의 집이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성벽이 없는 마을 안쪽의 집의 경우는 토지처럼 희년이 되면 원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했지만, 만약 성벽 있는 성읍의 집은 판 뒤 일 년 안에 무르지 않으면 산 사람의 영구적인 소유가 된다고 하셨다(레 25:29-31). 필자는 성벽에 붙은 집을 기생 라합의 집과 같이 멀리 내다보는 파수꾼의 사명을 가진 자와 연결하여 이해한다(수 2:15). 시대를 먼저 보고 경고해야 할 사람이 죄로 인하여 자신의 사명을 팔아 버렸다면 지체하지 말고 빨리 회개하여 그 사명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정한 때를 넘기면 그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위 지파의 경우는 레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옥을 무를 수 있었다. 혹시 물어줄 사람이 없으면 희년이 되면 응당 레위 사람에게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었다(레 25:32-3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고엘의 원리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필자가 교회 건물을 마련할 힘이 없었을 때 누나와 매형이 동생의 사명을 알아보고 자기 재산을 드려 교회 명의로 마련하도록 도왔다. 어린 시절에는 누나가 어두운 부엌에서 설거지할 때 필자가 늑대 소리를 두려워하면서도 곁을 지켜 주었다. 혈육이 서로를 지킨 작은 사랑이 세월 뒤에는 사명을 살리는 큰 헌신으로 돌아왔다. 가까운 친족은 어려움에 빠진 가족의 기업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매형과 누님 가족은 물질적으로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어떤 인간 친족도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기업을 되찾아 줄 수는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의 값을 완전히 치를 수 있는 참된 고엘이시다. 성도는 그분의 속량(贖良, redemption)을 받아 자유인이 되고, 이어 가족을 위해 값을 치르는 사랑과 회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고엘 제도는 우리를 찾아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며,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속한 가족을 살려야 할 책임이 함께 있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희년이 되기 전에 땅과 집과 종을 되돌려주는 고엘 제도는 자신의 혈통과 관계없는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자기와 피를 나눈 가까운 친족만이 실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lt;strong&gt; 가족을 위한 회개의 영적 원리가 어떤 것인지&lt;/strong&gt;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즉 자기 조상이 지은 우상숭배와 음란과 살인과 무속의 죄로 인하여 나와 내 후손에게 악한 영이 내려왔다면, 누가 그것을 끊어 주어 자유롭게 놓아 줄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나의 혈통에 속한 자여야 한다. 나와 피를 나눈 가까운 사람이 내 조상의 죄를 대신 자백함으로써 저주의 사실을 끊어줄 수 있는 것이다. 혹시 부모가 회개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더라도 상관없다. 그의 자녀가 그 죄를 찾아 회개함으로 내려온 영을 내보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녀를 위한 회개도 마찬가지다. &lt;strong&gt;자녀가 영적으로 어리고 죄에 묶여 스스로 회개하지 못한다면 부모가 먼저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자녀의 사슬을 풀어줄 수 있다&lt;/strong&gt;. 왜냐하면 부모와 자녀는 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부모가 깨끗해진 뒤 자녀에게 역사하는 악한 영을 불러내어 예수 이름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회개와 축사(逐邪, deliverance)의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자기 속의 영을 뽑을 때보다 자녀에게서 불러온 영을 뽑을 때 더 큰 고통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다. 이는 가까운 혈육을 살리는 일에는 그만큼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도 그것을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자녀의 책임을 아예 삭제해 준다는 뜻이 아니다. 가족을 위한 대신 회개는 악한 영이 붙잡은 혈통의 근거를 제거하고 회개할 길을 열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후에 자녀가 깨닫고 자기 죄를 직접 회개하고 또한 믿음으로 순종하면 그에게 드리워진 저주의 사슬을 끊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직 본인이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가까운 친족이 고엘처럼 앞서 값을 치르는 수고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다. 죄를 구체적으로 찾아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그 죄와 관계된 우상과 물건과 습관을 끊으며, 악한 영에게 떠나갈 것을 명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먼저 정결해져야 가족의 영을 받아서 쫓아낼 힘이 생긴다. 자기 속에 악한 영이 가득한 채 자녀의 문제만 해결하려 하면 싸움을 감당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가족을 위한 회개는 희년의 네 가지 회복을 가져오게 한다. 육체라는 땅이 안식을 얻게 하고, 마귀의 종 된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며,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을 되찾아 주고,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해 준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와 형제자매가 함께 회개한다면, 한 사람만의 회복을 넘어 가문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로 돌아가는 단체적인 성결이 일어날 수 있다. 자녀가 부모와 조상의 죄를 대신 회개하면 부모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길이 열리고, 부모가 자녀를 위해 회개하면 자녀가 악한 영의 속박에서 벗어나 온전한 사람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알면 가족이 완고하다고 해서 가족 전도를 쉽게 포기하지 않게 해준다. 자녀가 회개하지 않고 방황한다고 정죄만 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더 깊이 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조상들의 죄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원망하기보다, 나를 통하여 그 죄의 사슬을 끊으시려는 통로가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내가 먼저 구원받고 회개의 길을 알게 된 것은 가족 전체를 천국으로 이끄는 파수꾼이 되라는 부르심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족을 무르는(되돌리는, 회복케 하는) 일의 궁극적인 능력은 예수님의 피에 있다. 우리의 회개가 값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값을 치르신 그리스도의 피를 가족에게 적용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참된 고엘로서 우리를 덮어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 이름과 권세를 의지하여 부모와 자녀와 형제의 영적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가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먼저 믿은 자가 가족의 파수꾼이 되어 조상의 죄와 자기 죄와 자녀의 죄를 회개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악한 영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회개가 가정으로 번지고 가정의 회개가 교회 공동체의 성결로 이어질 때 희년의 원상회복이 오늘 우리 가운데 실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레위기 25장의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 그리고 토지와 가옥과 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가 단체적인 성결을 어떻게 이루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개인이 혼자 거룩해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제사장과 백성, 채권자와 채무자, 주인과 종,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회복되기를 원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등잔대와 진설병은 교회의 협력을 보여 준다. 성도는 순결한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가져오듯 은사와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주의 종은 그것을 받아 성령의 빛과 신선한 생명의 말씀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서로가 자기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때 공동체 전체가 밝아지고 말씀으로 성장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면제년은 사람이 하나님의 종임을 선포한다. 희년은 땅을 쉬게 하고 종을 놓아주며 기업을 되돌리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완전한 원상회복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희년과 고엘로 오셔서 자기 피로 죄의 빚을 갚고 우리를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하며 하늘 기업과 하나님 가족을 되찾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은혜는 회개하는 자에게 적용된다. 조상의 죄와 자기 죄와 자녀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며, 가까운 가족을 위한 영적 싸움을 감당해야 한다. 자신부터 정결해지고 가족의 파수꾼이 되어 한 사람의 자유가 온 가문의 회복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맡기신 몸과 재물과 은사와 사명은 우리의 영원한 소유가 아니다. 청지기로서 그것을 사람을 살리고 복음을 전하며 공동체를 거룩하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희년의 자유와 기업과 가족을 회복하고 온 가정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6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hatGPT Image 2026년 9월 17일 오후 04_59_2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ffea5128d8fe265d30b058625237fdc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7a1d6a3bf2445af6f072ff5c10c326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5c8490b88a7a9101efb417fe6c47e5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619926d28168a500708e3b5984343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171f08026c703a26a5ba1ea73e3fa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4b7582e3633bb7e2c31d7fb79f8395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db42f0c1eb1843117db52e06727f4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c29c8bf4a05e516f7ea9bc3e895ff8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a783046b00a0ad7cd00a2c1faadf0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51a34c69ea642470058f4d9281a96c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506fa962f852c83b52512fd27faa4f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9df974ebb28d31596275cdb240cfc4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fddbbe9b4f9a5790efa81a3879bce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55120bff113e94fa0500d42a68c8a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c5173d27e5693307ba990834ced92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Corporate_Jubilee_Restora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01c26d7e8a2fe034862a2351a7f5baf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안식년_희년_고엘_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39bbf470919426a9b4cbb8b6350cf0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안식년과_희년의_성경적_원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76f79de2c33fcbde0342301e5e7a42e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0b14c68d460ef554af2867eb6cf2f6f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35ce651205af0371c07ba8cc3294b3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76acbc70c98baf64b9ea09e1c065e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9c4eb42c8b352f576d9f4ac04382d7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48d6bfc0f8803c7a07dd715208ff2f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400fc8d0ba1cda6ca92e02634a0678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af74b9e50696c50bcc39b8d05e01c8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13f25ef029af58f86f62ec2576025d3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282daad3f16d472aa374821d4b124b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e108f9bdb4a53bfd0049a391368f3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6d78ba2fc3b85bdb1485d848537272b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레위기강해(21)] Golden_Jubilee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20/485/266/fa53589c181b2d8c3940ab75dac40b8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3)]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02)(단9:24~27)_2026-09-16(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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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6T08:30:02+09:00</published>
		<updated>2026-09-17T09:04:0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3)]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02)(단9:24~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Um3zJD82MI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세대주의는 어떤 공헌과 오류를 함께 남겼는가? 2. 육적 이스라엘만 편드는 종말론은 왜 복음과 어긋나는가? 3. 144,000명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 &lt;strong&gt;[기독론(193)]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02)&lt;/strong&gt;&lt;/span&gt;(단9:24~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YUm3zJD82MI&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YUm3zJD82MI?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br /&gt; 1. 세대주의는 어떤 공헌과 오류를 함께 남겼는가?&lt;br /&gt; 2. 육적 이스라엘만 편드는 종말론은 왜 복음과 어긋나는가?&lt;br /&gt; 3. 144,000명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lt;br /&gt; 4. 70이레를 그리스도 중심의 연속된 기간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lt;br /&gt; 5. 7년 평화조약과 환난 전 휴거 해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lt;br /&gt; 6. &amp;lsquo;하나님의 성전&amp;rsquo;은 왜 물질적인 제3성전만을 뜻하지 않는가?&lt;br /&gt; 7. 종말을 준비하는 교회가 세워야 할 성전과 싸울 대상은 무엇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니엘서의&amp;nbsp;&lt;strong&gt;70이레&lt;/strong&gt;&amp;nbsp;예언을 중심으로&amp;nbsp;&lt;strong&gt;세대주의적 종말론&lt;/strong&gt;의 한계를 지적하며 성경의 바른 해석 방향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세대주의가 성경 읽기를 대중화하고 선교 열정을 고취한 공로가 있으나, 마지막 한 이레를 미래로 유예하여&amp;nbsp;&lt;strong&gt;적그리스도와 유대인&lt;/strong&gt;&amp;nbsp;중심의 교리를 만든 것은 성경적 근거가 부족한 자의적 해석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제3성전 건립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맹목적 지지보다는, 모든 민족을 향한&amp;nbsp;&lt;strong&gt;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이 신약의 핵심 경륜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물질적 성전 회복에 집착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amp;nbsp;&lt;strong&gt;영적 성전&lt;/strong&gt;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철저한 회개를 통해 천국 입성을 준비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9:24-2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9장의 70이레는 성경의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예언이다. 이 예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 마지막 한 이레의 주인공, 환난과 휴거의 순서, 예루살렘 성전(聖殿, temple)의 재건 여부까지 달라진다. 여기에서 대체 신학(代替神學, replacement theology)과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라는 서로 다른 신학적 흐름도 갈라진다. 그러므로 70이레는 날짜를 계산하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救援, salvation)의 경륜을 밝히는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는 19세기 존 넬슨 다비(A.D.1800-1882)에 의해 체계화된 뒤 미국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A.D.1909년 스코필드 관주성경 발간은 방대한 주석을 따로 구입하기 어려웠던 평신도에게 성경 해석의 기본 틀을 제공했고, 임박한 재림(再臨, second coming)을 강조하여 수많은 사람을 선교에 헌신하게 했다. 한국 교회도 그 열매를 크게 누렸다.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의 수고와 세대주의가 일으킨 선교 열정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공헌이 있다고 해서 모든 해석이 옳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 한 이레를 앞선 69이레에서 떼어 2천 년 뒤로 옮기고, 그 기간에 적그리스도(Antichrist)가 이스라엘과 7년 평화조약을 맺는다고 해석한 데서 여러 문제가 생겼다. 교회를 이스라엘의 시간표에 잠시 끼어든 존재로 보고, 환난 전에 교회 전체가 휴거되며, 예루살렘에는 반드시 제3성전이 세워져야 한다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초림 때 이루신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과 속죄(贖罪, atonement)보다 미래의 적그리스도와 물질적 성전에 시선이 쏠리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의 중심은 육적 이스라엘도, 적그리스도도, 날짜 계산도 아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 회개(悔改, repentance)하고 복음을 받아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신약 시대의 성전은 먼저 예수님의 몸이며, 이어 성령을 모신 교회와 성도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어린양 자신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세대주의의 공헌과 오류를 함께 분별하고, 육적 이스라엘과 144,000명에 대한 문자적 해석의 한계를 살피며, 70이레와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의 문제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로잡고, 마지막 시대 교회가 세워야 할 성전과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세대주의는 어떤 공헌과 오류를 함께 남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가 인류에게 공헌한 것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공헌은 평신도라도 누구든지 성경을 읽고 해석하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것&lt;/strong&gt;이다. 스코필드 이전에는 주석이 백과사전처럼 여러 권으로 되어 있어 목회자나 부유한 사람만 소유하기 쉬웠다. 그러나 관주성경은 성경 본문 아래에 해석과 시대 구분을 붙여 놓았다. 평신도도 성경을 펼쳐 해당 구절의 의미와 관련 성구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 읽기를 목회자에게만 맡기지 않고 모든 성도에게 확대한 것은 분명한 유익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공헌은 재림의 긴박성과 선교의 열정을 일깨운 것&lt;/strong&gt;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 때문에 의사와 교사와 선교사들이 낯선 나라로 들어갔다.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도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여 이 민족을 섬겼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적인 선교 국가가 된 데에는 그 헌신의 열매가 들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trong&gt;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지나치게 분리&lt;/strong&gt;했다. 하나님께서 육적 이스라엘을 위한 경륜을 따로 가지고 계시며, 교회는 그 계획 사이에 잠시 삽입된 존재라고 보았다. 메시아를 거절하여 멈춘 이스라엘의 시계가 교회의 휴거 뒤 다시 움직이고, 마지막 7년에는 하나님께서 다시 유대 민족을 중심으로 일하신다고 규정한다. 이 틀을 유지하려면 70이레의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본문이 말하지 않은 약 2천 년의 공백을 넣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세대주의는 &lt;strong&gt;구약의 이스라엘과 예루살렘과 성전에 관한 예언을 미래에 문자적으로 성취해야 한다고 주장&lt;/strong&gt;한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세워지고, 유대인들이 다시 제사를 드리며, 이방 민족들이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가야 한다고 본다. 다니엘서 9장 27절의 한 이레를 적그리스도의 7년으로 바꾸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불법한 자를 그 성전 안에 앉히면서 하나의 종말 시간표가 완성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성도의 관심을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보다 미래의 정치와 전쟁에 집중시킨다. 예수께서 한 이레의 절반에 끊어지심으로 죄를 속죄하고 희생제사를 그치게 하신 사건이, 적그리스도가 조약을 깨고 제사를 금지하는 사건으로 바뀐다. 성도는 회개와 성결(聖潔)을 준비하기보다 이스라엘의 전쟁과 제3성전의 건축을 종말의 시계처럼 바라보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세대주의를 전부 악한 것으로 몰아붙여서도 안 되고, 그 공헌 때문에 오류까지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성경 보급과 선교의 열매에는 감사하되, 본문에 없는 공백과 시간표는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이나 단체를 정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빗나간 중심을 바로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신학은 성경을 돕는 도구여야 하며 성경 위에 서는 틀이 되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육적 이스라엘만 편드는 종말론은 왜 복음과 어긋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열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이방인의 길로도, 사마리아인의 고을로도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다(마 10:5-6). 메시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고, 율법과 언약과 예배와 약속을 받은 유대 민족 가운데 태어나셨다(롬 9:4-5).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적 역할과 그들에게 먼저 주어진 은혜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지만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의 백부장과 수로보니게 여인에게서도 큰 믿음을 보셨다(마 8:5-13; 15:21-28). 부활하신 뒤에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다(마 28:18-20). 베드로가 할례자 중심의 사역에 머물렀을 때에는 바울을 불러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다(갈 2:7-9).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유대인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유대인에게만 갇히지 않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자기 동족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육신의 동족이 돌아오기를 바랄 만큼 고통스러워했다(롬 9:1-5). 그러나 혈통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김을 받고,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은 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다(롬 2:28-29; 9:6-8).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민족과 상관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다(갈 3:28-2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귀한 사명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군사 행동을 옳다고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과 무슬림의 죽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사람의 생명도 귀하고 팔레스타인 사람의 생명도 귀하다. 우리 민족도 육적 혈통으로 보면 이방인이 아닌가! 신약시대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어느 민족이든 회개하고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 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은 신앙을 육적인 전쟁으로 끌어 가려고 한다. 이스라엘이 이기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박수치고, 상대 민족이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순간 복음의 보편성을 잃는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을 죽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라고 하신 적이 없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를 가한 것이 아니라 박해를 받았고, 남을 죽인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구약의 예언들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일은 반드시 성취된다. 그러나 사람을 향한 예언은 언제나 그의 순종 여부에 따라 완성 여부가 결정된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을 받고도 자기 민족을 괴롭힌 앗수르가 망하기를 바라며 다시스로 도망쳤다. 하나님은 그를 돌이켜 니느웨에 회개를 선포하게 하셨고, 그 성의 사람들이 돌이키자 재앙을 거두셨다(욘 1:1-3; 3:4-10).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까지 구원하기 원하셨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세워 일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혈통적 특권보다 믿음과 순종이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성도의 유일한 사명은 아니다. 교회가 받은 명령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증인이 되고 모든 민족에게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행 1:8; 눅 24:47). 이스라엘도 이 보편적인 복음 안에서 구원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한 민족을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새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이다(엡 2:14-18).&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144,000명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7장에는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가운데 인침을 받은 144,000명이 나온다. 그런데 세대주의는 이를 육적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나오는 문자적인 유대인 사명자로 본다.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되고 나면, 이들이 마지막 7년 동안 세계에 복음을 전하며, 마침내 육적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으로 이끈다고 해석한다(계 7:4-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경 앗수르에 멸망하여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졌다. 오늘날 누가 르우벤 지파이며 누가 납달리 지파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혈통으로 정확히 열두 지파에서 똑같이 12,000명씩 뽑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요한계시록의 숫자와 지파 명단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충만함과 완전한 질서를 보여 주는 영적 의미로 보아야 한다. 단순히 현대 이스라엘 국적이나 유대 혈통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14장의 144,000명은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 있고,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이름을 지니며, 사람 가운데서 속량되어 하나님과 어린양께 처음 익은 열매가 된 이들이다(계 14:1-5). 그들의 핵심 표지는 국적이 아니라 어린양을 따르는 믿음과 정결(淨潔)과 충성이다. 마지막 때 주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혈통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준비되어 어린양을 끝까지 따르기 때문에 선택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쓰실 144,000명의 사명자 가운데에는 한국인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의 문자를 한국 민족으로 바꾸자는 뜻이 아니다. 마지막 사명자의 범위를 육적 유대인에게만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어느 민족에서든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충성하는 사람을 불러 쓰신다. 마지막 전쟁에 참여할 자는 교단과 혈통이 아니라 영적 준비 상태로 구별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로마서 11장의 &amp;ldquo;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amp;rdquo;는 말씀도 육적 유대인만 자동으로 모두 구원받는다는 뜻으로 좁혀서는 안 된다(롬 11:25-27). 유대인 가운데도 그리스도를 믿고 돌이키는 자가 구원받으며, 이방인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자가 하나님의 백성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는 조건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이며, 꺾이는 이유는 불신앙이다(롬 11:17-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아예 버렸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바울은 이방인 신자가 교만하지 말고 원가지를 향해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나님은 꺾인 가지도 믿지 아니함에 머물지 않으면 다시 접붙이실 수 있다(롬 11:18-24).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그들의 불신앙까지 언약의 특권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이방인도 같은 믿음과 회개로 들어왔으므로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144,000명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르게 이해하면 교회의 시야가 넓어진다. 유대인을 사랑하되 모든 민족을 함께 품고, 마지막 사명을 특정 혈통에 맡긴 채 자신은 환난 전에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나 자신이 어린양을 따르는 정결한 첫 열매로 준비되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종말론은 다른 민족의 역할을 구경하게 하는 지식이 아니라 오늘 내가 충성된 사명자로 준비되게 하는 말씀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70이레를 그리스도 중심의 연속된 기간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지금까지 몇 시간을 통하여 다니엘의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기준을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그중에 첫 번째 기준은 그리스도 중심&lt;/strong&gt;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니엘서 9장 24절은 허물을 마치고 죄를 끝내며 죄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드러내며 환상과 예언을 성취하고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을 붓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고레스와 아닥사스다 왕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모두 포로 귀환과 성전 및 성벽 재건에 쓰임받았지만 인류의 죄를 영원히 없애지는 못했다. 고로 이 여섯 가지 항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것이다(단 9:24; 히 9:11-1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기준은 70&amp;times;7이라는 수에 담긴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구조&lt;/strong&gt;다. 하나님은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 하고 동족의 빚을 면제하며 종을 놓아 주라고 하셨다(레 25:2-7; 신 15:1-18).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난 49년 다음 해에는 희년의 나팔을 불어 자유를 선포하고, 팔린 기업을 되돌리며, 각 사람이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셨다(레 25:8-13). 490년은 희년의 49년을 열 번 품은 기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실체로 오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안식을 주고, 죄의 빚을 탕감하며, 사탄에게 눌린 자를 풀어 주고,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과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셨다(마 11:28; 눅 4:18-21). 그러므로 70이레는 적그리스도가 활동할 시기를 계산하는 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해방을 이루시는 구속의 시간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기준은 7이레와 62이레와 1이레를 연속된 기간으로 보는 것&lt;/strong&gt;이다. 본문 어디에도 69이레 뒤에 시간이 멈추고 2천 년의 교회 시대가 삽입된다는 말이 없다. 7이레와 62이레 뒤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나고, 이어지는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그가 끊어짐을 당하며 희생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다(단 9:25-27). 이 세 구간은 한 예언 안에서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거꾸로 계산하면 연대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기원전 457년 아닥사스다 왕 제7년에 에스라가 귀환하여 백성을 말씀으로 돌이켰고, 뒤이어 느헤미야가 와서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했다(스 7:7-10; 느 2:1-8). 그때부터 7이레와 62이레가 지나 주후 27년경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받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마 3:13-17; 행 10:38).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인 약 3년 반 뒤에 주후 30년경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끊어짐을 당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를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하셨다(마 26:28). 그분이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반복하던 희생제사와 예물은 효력을 다하고 그치게 되었다(히 10:10-14). 그러므로 다니엘서 9장 27절의 &amp;lsquo;그&amp;rsquo;는 많은 사람과 새 언약을 굳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해야 한다. 뒷부분의 황폐하게 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대조되는 별개의 존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를 연속된 기간으로 보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한 예언은 초림하신 그리스도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향해 마무리된다. 그 뒤 복음의 문은 모든 민족에게 활짝 열렸다. 이스라엘의 역사적 의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의 실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이다.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속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된다(갈 3:29).&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7년 평화조약과 환난 전 휴거 해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성경에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lt;strong&gt;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amp;lsquo;7년 평화조약&amp;rsquo;을 맺는다고 하는 문장이 없다&lt;/strong&gt;. 다니엘서 9장 27절은 그가 한 이레 동안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런데 &amp;lsquo;한 이레&amp;rsquo;를 7년으로 계산한 뒤 그 주체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로 바꾸고, &amp;lsquo;언약&amp;rsquo;을 정치적인 평화조약으로 바꾸면서 7년 평화조약이라는 교리가 만들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여기에다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이 결합되었다. 바울은 주의 날 전에 배교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 자신을 높이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것이라고 했다(살후 2:1-4). 세대주의는 이 불법한 자를 다니엘서 9장 27절의 &amp;lsquo;그&amp;rsquo;와 동일시하고, 그가 유대인에게 성전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하기 때문에 평화조약을 맺는다고 추론했다. 3년 반 뒤에는 조약을 깨고 그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시간표가 완성되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살후 2:1-4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이나 또는 말이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에는 1,260일과 마흔두 달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나온다(계 11:2-3; 12:6, 14; 13:5). 이것들은 3년 반에 해당하지만 &lt;strong&gt;&amp;lsquo;7년 대환난&amp;rsquo;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lt;/strong&gt;. 다니엘서의 마지막 한 이레를 미래로 옮긴 뒤 그 전반과 후반을 각각 3년 반으로 나누어 요한계시록에 덧씌웠기 때문에 7년 대환난이 된 것이다. 서로 다른 본문을 이미 정한 시간표에 맞추어 짜 맞춘 결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환난 전 휴거설(患難前携擧說, pretribulationism)도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lt;/strong&gt;. 하나님께서 마지막 7년에 다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일하시려면 그 사이에 삽입되었던 교회가 먼저 하늘로 올라가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교회 전체가 휴거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도들이 자신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고 환난과 죽음을 겪을 것을 말씀하셨다(마 24:9-13). 요한계시록도 짐승이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 죽이는 장면을 보여 준다(계 13:7-1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의 휴거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익은 곡식을 거두는 추수가 나온다(계 14:14-16). 다만 &lt;strong&gt;예수 믿는 이름만 가졌다고 교회 전체가 환난 전에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lt;/strong&gt;. 주님의 마지막 전쟁에 참여할 첫 열매와 알곡으로 준비된 자가 먼저 거두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안전한 탈출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순교까지 각오하도록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환난을 피할 것이라는 확신만 가지고 있다가 실제 핍박이 닥치면 믿음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성경의 종말론은 공포를 조장하지 않지만 고난을 숨기지도 않는다. 교회는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어떤 박해 속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믿음과 회개와 충성을 준비해야 한다. 주께서 재림하시면 입의 기운으로 불법한 자를 죽이고 강림의 광채로 폐하실 것이다(살후 2:8). 마지막 승리는 교회의 정치력이나 무력이 아니라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 속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amp;lsquo;하나님의 성전&amp;rsquo;은 왜 물질적인 제3성전만을 뜻하지 않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만약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데살로니가후서 2장 4절에 나오는 &amp;lsquo;하나님의 성전&amp;rsquo;을 예루살렘에 다시 세워질 제3성전으로 단정하려면 먼저 신약에서 &amp;lsquo;성전&amp;rsquo;이 어떻게 쓰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헬라어에는 &amp;#39;성전&amp;#39;으로 번역되는 대표적인 두 단어가 있다. &amp;lsquo;히에론&amp;rsquo;(ἱ&amp;epsilon;&amp;rho;ό&amp;nu;)은 성전 뜰과 건물을 포함한 물질적 성전 구역을 가리킨다. &amp;lsquo;나오스&amp;rsquo;(&amp;nu;&amp;alpha;ό&amp;sigmaf;)는 본래 성소를 뜻하며 물질적 성소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적인 성전에도 쓰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적그리스도가 앉아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석하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4절에 쓰인 &amp;#39;성전&amp;#39;은 어떤 단어가 쓰였는가? 놀랍게도 그 단어는 &amp;lsquo;히에론&amp;rsquo;이 아니라 &amp;lsquo;나오스&amp;rsquo;라는 단어다. 그러므로 &lt;strong&gt;이 구절만으로 예루살렘에 물질적인 돌 성전이 반드시 재건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다&lt;/strong&gt;. 불법한 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를 침범하고, 하나님께 속한 자리에서 자신을 높이며, 성도와 교회를 핍박하는 영적 실재를 포함한다. &lt;strong&gt;물질적인 성전이 다시 세워질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종말의 필수 조건으로 만들 근거도 없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일찍이 유대인들에게 &amp;ldquo;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46년 동안 지은 건물을 생각했지만, 요한은 예수께서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요 2:19-21). 이때 예수님의 몸을 가리키는 &amp;lsquo;성전&amp;rsquo;도 나오스다.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거하시는 참 성전은 먼저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신 예수 그리스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신 뒤에는 믿는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 안에 계신다고 말했다. 여기에서도 성전은 &amp;#39;히에론&amp;#39;이 아니라 &amp;#39;나오스&amp;#39;다(고전 3:16-17; 6:19).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가 되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amp;nbsp;&lt;strong&gt;성전의 궁극적인 완성은 새 예루살렘에서 나타난다&lt;/strong&gt;. 요한은 그 성 안에서 별도의 성전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이다(계 21:22). 구원의 경륜은 돌로 된 성전으로 되돌아가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과 어린양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는 데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제3성전의 건축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교회의 중심 사명이 될 수 없다. 돌 성전이 실제로 세워진다 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몸과 교회라는 참성전을 대신하지 못한다. 지금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성전은 회개하여 죄를 씻고 성령께서 거하실 처소가 된 사람들이다. 성전의 재건 여부를 바라보며 종말의 날짜를 계산하기보다 나 자신이 거룩한 성전으로 준비되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종말을 준비하는 교회가 세워야 할 성전과 싸울 대상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종말을 준비하는 교회가 세워야 할 성전은 먼저 성도 자신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사람은 거룩한 성전이므로 죄와 악한 영이 마음과 몸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이 붙어 있을 근거를 제거하며 예수 이름의 권세로 그들을 내보내야 한다. 이것이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실제적인 과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의 싸움은 사람을 향한 싸움이 아니다. 바울은 &lt;strong&gt;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lt;/strong&gt;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lt;strong&gt;슬람교도나 팔레스타인 사람, 다른 정치 진영과 민족을 원수로 삼아 없애려 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그 배후에서 죄와 미움과 전쟁을 일으키는 악한 영들과 싸워야&lt;/strong&gt;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예수께서는 어떤 정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장 군대를 조직하지 않으셨다&lt;/strong&gt;.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원수들의 손에 자신을 내어 주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도 복음을 위해 핍박과 순교를 감당했다. 신약의 교회는 사람을 죽여 승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죽기까지 어린양을 따름으로 악한 자를 이기는 공동체다(계 12: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싸움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다. 악한 영이 가득한 채 외부의 적만 공격하면 사탄에게 속는다. 혈기와 분노와 미움으로 이스라엘을 돕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교만과 음란과 탐욕과 시기와 미움을 자백하고 끊어야 한다. 회개로 성전이 깨끗해질 때 성령의 권세와 은사가 바르게 나타나며, 주님이 마지막 때 쓰실 수 있는 군사로 준비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교회는 모든 민족에게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유대인도 들어야 하고 무슬림도 들어야 하며, 공산권과 복음이 닿지 않은 종족도 들어야 한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면 죄의 빚을 탕감받고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며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과 하늘의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것이 70이레가 보여 주는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복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이 마지막 때 나팔을 불어 사명자를 소집하실 때에는 준비된 자가 참여한다. 적진과 내통하는 간첩을 전쟁에 데려갈 수 없듯이, 죄와 악한 영을 품은 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거룩한 전쟁에 합당하지 않다. 교회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나 특정 종말론을 믿는다는 사실이 준비를 대신하지 못한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라야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는다(계 22: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박해를 피하기 위한 계산보다 믿음을 지키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환난이 오더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복음을 증언하며,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동시에 최종 심판과 원수 갚음은 주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가 사람에게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황폐하게 하는 자를 심판하고 모든 전쟁을 끝내신다(살후 2:8; 계 19:11-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의 사명은 분명하다. 물질적인 제3성전을 세우는 일보다 성도와 교회를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야 한다. 육적 원수를 만들어 미워하기보다 악한 영과 죄를 대적해야 한다. 유대인만을 위한 특별한 복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동일한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준비된 성도가 하늘의 기업과 신분을 얻고, 주님의 마지막 사역에 귀하게 쓰임받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의 마지막 한 이레를 둘러싼 세대주의 해석과 종말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길을 살펴보았다. 세대주의는 관주성경을 통하여 평신도의 성경 읽기를 도왔고 선교 열정을 일으켰지만, 이스라엘과 교회를 과도하게 분리하고 마지막 한 이레를 2천 년 뒤로 옮김으로 7년 평화조약과 환난 전 휴거와 제3성전이라는 시간표를 만들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구원은 육적 이스라엘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셨지만 마침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무슬림을 포함한 모든 민족의 생명을 똑같이 귀히 여겨야 한다. 144,000명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도 혈통의 특권이 아니라 어린양을 따르는 믿음과 회개와 충성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는 그리스도 중심,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 중심, 연속된 시간이라는 세 기준으로 읽어야 한다.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새 언약을 굳게 하고 제사를 그치게 하신 분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단번에 속죄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다. 요한계시록의 1,260일과 마흔두 달을 다니엘서의 미래 7년에 억지로 묶어 교회 전체의 환난 전 휴거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데살로니가후서의 성전은 &amp;lsquo;히에론&amp;rsquo;이 아니라 &amp;lsquo;나오스&amp;rsquo;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예루살렘의 물질적 제3성전만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고, 성령을 모신 성도와 교회가 성전이며,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과 어린 양께서 친히 성전이 되신다. 교회가 힘써 세워야 할 성전은 회개로 깨끗해진 사람과 거룩한 공동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는 종말론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최종 승리를 바라보는 종말론을 붙들어야 한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여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모든 민족에게 희년의 복음을 전하며, 하늘의 기업과 마지막 사명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중심의 바른 종말 신앙으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6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ChatGPT Image 2026년 9월 17일 오전 08_53_4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139c61dc24f08df5feaefbb7eed3550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94ffeb93d1003a674ff80e8ab082df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c9a16fea717d4d2c7965a451319e83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938b384b53a3acd8c12ed5b769eebe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b6c7330d455a11fcbd8e6d62e1ccb5e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e02ea5284c2955ca29d82baf86d7a97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803556262b9577fe60198e597d1e24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fb76a5b3668f3dabeacc76d3ff6a95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40445b0f4a1f84f3b2f88aeafba3d7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bb2c248b7ca0ad6b01a4c43ca6bdefc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3d9ab96eeda4aa0dd5ad2808c967ff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4dc4b12adca7cde49936bfd592fcba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6d6d5ad3677a22b78ac48aea626119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70c8c3d03390add596dc4869e24121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7165de3d3c7edacec023eff23647b87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99d79e62b668d93b9df90d93fa6d893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그리스도_중심의_70이레_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9f6414bd37ac67f5ffbda5d3762b25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다니엘의_70이레_해석_비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3ea9818e3cbbeaa1fb5aafb59bb31d2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a48083aad098295527cbb7e37fa8ec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d25b6d62ef0c450e08feb545625867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8432a7041d38214800e7d09f4394a04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d6b16978210f85003d1bc7f72ce458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50351a1368a4a28ac97c29d50077ae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c62a6511fd0f1bf19d78b2cbf42a5d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d2038e1326a9e66860d588d6e23ba5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79d3551e66792a33a426ec6f9e4813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0b59555c25d2546a9b3a9fb315a4514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a1966929d69db2a492c262958ad856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ab56e10dedec6f86104cdefa5df770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8af41ecdccce31a044a8585f8a6ea21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3)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단9:24~27)_2-26-09-15(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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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5T11:57:20+09:00</published>
		<updated>2026-09-15T20:51:1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3)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단9:24~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WhqAlJuyIgM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한국교회의 종말론은 왜 세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는가? 2. 바른 종말론을 위해 성경 연구와 영적 실상이 왜 함께 필요한가? 3.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세 가지 기...</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9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3)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단9:24~2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WhqAlJuyIg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WhqAlJuyIg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p&gt; &lt;p&gt;1. 한국교회의 종말론은 왜 세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는가?&lt;br /&gt; 2. 바른 종말론을 위해 성경 연구와 영적 실상이 왜 함께 필요한가?&lt;br /&gt; 3.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세 가지 기준은 무엇인가?&lt;br /&gt; 4. 70이레는 BC 457년부터 AD 34년까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br /&gt; 5. 세대주의는 왜 마지막 한 이레를 2천 년 뒤로 분리했는가?&lt;br /&gt; 6. 다니엘서 9장 26-27절의 &amp;lsquo;그&amp;rsquo;는 누구를 가리키는가?&lt;br /&gt; 7.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 해석을 벗어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lt;br /&gt;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해석&lt;/strong&gt;을 바탕으로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오류를 비판하고 다니엘서의 &amp;lsquo;70이레&amp;rsquo;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한국 교계에 깊이 뿌리박힌&amp;nbsp;&lt;strong&gt;세대주의 신학&lt;/strong&gt;이 이스라엘과 교회를 극단적으로 분리하고 마지막 한 이레를 적그리스도의 평화 조약 기간으로 오해함으로써 성도들이 천국의 실상을 준비하는 데 혼란을 주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amp;nbsp;&lt;strong&gt;70이레의 연속성&lt;/strong&gt;을 강조하며,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일어난 사건은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아니라&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대속적 죽음&lt;/strong&gt;을 통해 구속사가 완성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신학적 전통이나 문자적 계산보다&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희년 선포&lt;/strong&gt;라는 관점에서 종말론적 틀을 바로 잡아야 함을 역설하며, 성도들이 제3성전 건립과 같은 외적 징후에 매몰되지 말고&amp;nbsp;&lt;strong&gt;회개와 거룩함&lt;/strong&gt;으로 내면의 성전을 세울 것을 촉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9:24-2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학적 사고의 틀은 성경을 보는 각도와 신앙의 목표를 결정한다. 성경에는 창조에서 종말까지 장엄하고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으므로, 어느 부분을 중심에 놓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신학적 사조가 만들어진다. 특히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결정하므로 그 영향이 매우 크다. 잘못된 종말론을 받아들이면 적그리스도와 날짜 계산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을 누리지 못한 채 엉뚱한 일을 준비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국교회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에 도착한 뒤 2026년까지 141년 동안 세계에서 보기 드문 성장을 이루었다. 복음이 정복과 억압이 아니라 학교와 병원과 봉사의 모습으로 전해졌기에 우리 민족은 기독교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오늘날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주신 큰 복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복음을 전해 준 미국과 캐나다의 선교사들은 당시 서구 교회를 휩쓸던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에게 배운 한국의 지도자들이 다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면서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한국교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교회를 완전히 분리하고, 환난 전 휴거설(患難前携擧說, pretribulationism)과 7년 대환난과 제3성전(第三聖殿, Third Temple) 재건을 당연한 종말의 시간표처럼 받아들이는 교회가 많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흐름을 바로잡으려면 다니엘서 9장의 마지막 한 이레를 다시 보아야 한다. 70이레의 중심은 미래에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고 한 이레의 절반에 끊어짐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고 70&amp;times;7이 품은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뜻을 보며, 7이레와 62이레와 1이레를 연속된 시간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한국교회의 종말론이 왜 세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는지, 성경 연구와 영적 실상을 왜 함께 알아야 하는지, 70이레를 푸는 세 기준과 그 역사적 성취, 마지막 한 이레를 2천 년 뒤로 분리한 해석의 문제, 다니엘서 9장 26-27절의 &amp;lsquo;그&amp;rsquo;가 누구인지, 그리고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 해석에서 벗어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한국교회의 종말론은 왜 세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국교회의 종말론이 세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은 한국에 복음을 전한 초기 선교사들의 신학적 배경과 관계가 있다. 북장로교와 남장로교, 캐나다와 호주 등지에서 온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한국의 젊은 인재들을 미국으로 보내 신학을 공부하게 했다. 당시 미국 교회에는 존 넬슨 다비(A.D.1800-1882)에게서 시작되어 스코필드 관주성경(A.D.1909)과 달라스신학교 및 밥 존스 신학교를 통하여 체계화된 세대주의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의 지도자들도 자연스럽게 그 종말론을 받아들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선교사들이 전해 준 복음의 열매는 매우 귀하다. 한국은 오랜 기독교 역사를 가진 나라가 아니었지만 불과 몇 세대 만에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약 1만 5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주님의 재림(再臨, second coming)이 임박했다는 긴박감을 주어 선교 열정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의 헌신과 세대주의가 낳은 모든 열매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들이 전한 종말 시간표까지 성경 자체와 동일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신학적인 틀은 이단을 방어하는 과정에서도 형성되었다. 초대교회에 아리우스와 몬타누스 같은 이단적 가르침이 나타나자 교회는 공의회를 열어 믿음의 내용을 교리로 정리했다. 이 작업은 복음을 보호하는 데 필요했지만, 인간이 만든 설명 체계에는 실수가 더해질 수 있다. 처음에는 성경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였던 교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을 바라보는 안경이 되고, 마침내 그 안경에 맞추어 본문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일이 생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사상적 틀의 영향은 정치와 사회에서도 드러난다. 공산주의 체제는 기독교를 적대해 왔는데도 일부 목회자는 그 사상을 등에 업고 성경적 기준을 흐린다. 모든 죄는 다 죄이지만, 오늘날 동성 간 성행위를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성경이 그것을 죄라고 규정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롬 1:26-27; 고전 6:9-10). 또한 악한 체제를 분별하지 않은 채 평화라는 말만 앞세운 결과 북한이 핵무기를 57개나 만들도록 허용한 셈이 되었다. 어떤 사상적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같은 단어와 현실을 전혀 다르게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성도는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평신도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교회사와 조직신학을 모두 다 공부하기가 어렵다. 목회자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일반대학 4년과 3년의 신학대학원, 2년의 인턴십과 고시 및 안수 과정을 포함하여 약 10년을 준비한 뒤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 긴 과정에서도 성경 전체를 직접 공부한 분량은 극히 적었다. 신학교는 성경 66권을 한 절씩 파고들기보다 신학의 틀과 여러 학자의 견해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목회자가 졸업 뒤 어떤 자세로 20년, 30년을 연구하느냐에 따라 성경 이해의 깊이는 크게 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장로교와 감리교와 침례교와 순복음교회는 저마다 물려받은 전통이 있다. 그 전통은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지만, 성경보다 높은 최종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필자도 장로교의 건전한 훈련을 받아 목사가 된 것을 귀하게 여기며 교단을 사랑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떤 사상을 가졌다고 자녀가 그 사상까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단의 틀이 본문과 어긋난다면 성경을 따라 바로잡아야 한다. 종말론을 결정하는 최종 권위는 특정 교단이나 달라스신학교나 유명한 주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바른 종말론을 위해 성경 연구와 영적 실상이 왜 함께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른 종말론을 세우려면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일과 영적 실상을 분별하는 일이 함께 가야 한다. 성경만 연구하면서 실제 천국의 모습을 전혀 알지 못하면 본문에 기록된 것을 자기 체계에 맞추어 설명할 위험이 있다. 반대로 꿈과 환상과 예언만 좇으면서 성경과 신학의 검증을 받지 않으면 악한 영이 보여 준 것을 하나님의 계시(啓示, revelation)로 착각할 수 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온전한 분별에 이르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 연구에 깊이 들어간 대표적인 흐름으로 본다면, &lt;strong&gt;한국복음서원과 워치만 니 계열&lt;/strong&gt;을 들 수 있다. 그들이 펴낸 &lt;strong&gt;『회복역 성경』&lt;/strong&gt;에는 존중할 만한 방대한 연구와 주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흐름도 존 넬슨 다비의 세대주의가 중국으로 들어가 꽃피운 한 갈래다. 성경 본문을 깊이 파고들었지만 천국의 실제 신분 체계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성도에게 주어질 신분의 차이를 왕국 시대에만 적용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면 모두 똑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고 해석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에서 성도의 신분은 모두 같지 않다. 대제사장과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섬기는 자의 위치처럼 각 사람이 이 땅에서 준비한 분량에 따른 구별이 있다. 베드로전서 2장 5과 9절의 헬라어 표현도 왕 같은 제사장 한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체계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천국의 실상을 보지 못하면 이런 차이를 읽어 내지 못하고, 장차 받을 신분과 상급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른 한편에는 &lt;strong&gt;요셉과 다니엘과 에스겔과 스가랴처럼 꿈과 환상과 예언을 강조하는 흐름&lt;/strong&gt;이 있다. 오늘날에는 신사도운동과 빈야드운동, 예언과 기름부음과 축사를 강조하는 선교단체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영적 은사(恩賜, spiritual gift) 자체를 모두 부정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도 꿈과 환상과 예언이 분명히 나온다. 그러나 필자가 분별한 바에 따르면 이 흐름에는 많은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다. 성경의 기준과 신학적 분별이 약한 상태에서 보이는 것만 따라가면 귀신이 보여 준 천국을 참된 천국으로 믿고 전할 수 있다. 실제를 말하면서도 진리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경과 영적 실상은 서로를 배척하는 두 길이 아니다. 성경은 체험의 진위를 판단하는 기준이며,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실제는 성경의 말씀을 더 입체적으로 깨닫게 한다. 살아 계신 주님은 지금도 만날 수 있는 분이다. 다만 영적 체험을 받았다는 이유로 성경 위에 서려 해서는 안 되며, 성경 지식을 많이 쌓았다는 이유로 주님의 현재적인 인도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양쪽을 함께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런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lt;strong&gt;성경 원문을 연구하고 천국의 실상을 함께 살펴&lt;/strong&gt;왔다. 그러나 필자는 세계적인 석학들처럼 라틴어와 아람어와 고대 근동의 모든 자료를 평생 연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배 학자들이 남긴 방대한 주석과 원어 자료를 활용하고, 헬라어 연구와 영적 체험을 통하여 신학의 잘못된 틀을 분별할 수는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논문과 원어 자료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도 사실이 아닌 답을 만들어 내는 환각 현상이 있으므로 반드시 본문과 자료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사명은 선배들의 모든 연구를 대신하는 데 있지 않다. 구원론과 삼위일체론과 교회론과 성령론과 은사론과 종말론에 스며든 잘못된 틀을 바로잡고, 성경과 천국의 실제가 함께 증언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 유명한 학자와 큰 기관의 이름만 보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그 해석이 그리스도를 높이는지, 성경의 문맥과 일치하는지, 실제 하늘의 경륜과 맞는지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세 가지 기준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필자는 3가지로 정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기준은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연구하지만 그 성경이 바로 자신을 증언한다고 말씀하셨다(요 5:39). 구약의 예언은 적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데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엇을 이루실 것인지를 보여 주는 데 중심이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9장 24절은 70이레 동안 여섯 가지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반역을 끝내고, 죄를 마감하며, 죄악을 속죄(贖罪, atonement)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예언을 성취하고,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을 붓는 일이다(단 9:24). 고레스와 아닥사스다와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포로 귀환과 성전과 성벽의 재건을 수행한 귀한 도구였지만, 인류의 죄를 영원히 속죄할 수는 없었다. 이 여섯 가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기준은 70&amp;times;7이라는 숫자를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구조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7년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을 주셨고, 일곱째 해에는 동족의 빚과 종살이를 풀어 주는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을 명하셨다(레 25:2-7; 신 15:1-18).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49년 다음 해에는 희년(禧年, jubilee)의 나팔을 불어 종을 놓아주고, 팔린 기업을 돌려주며, 각 사람이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셨다(레 25:8-1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은 이 명령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안식과 면제와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다. 그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쉼을 주셨고, 죄의 빚을 탕감하셨으며, 마귀의 종 된 사람을 풀어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과 하늘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셨다(마 11:28; 눅 4:18-21). 그러므로 70이레의 숫자는 단순한 날짜 계산표가 아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희년의 시간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기준은 7이레와 62이레와 마지막 1이레를 끊지 않고 연속된 490년으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본문은 앞의 69이레 뒤에 2천 년의 교회 시대를 삽입한 다음 마지막 한 이레를 시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을 돌이키고 건축하라는 말씀이 나간 뒤 7이레와 62이레가 지나며, 이어진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진다(단 9:25-27). 세 구간은 한 예언 안에서 연속하여 진행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세 기준 가운데 하나라도 놓치면 해석이 비틀어진다. 만약 그리스도 중심을 잃으면 마지막 한 이레의 주인공을 적그리스도로 바꾸게 된다. 또한 희년의 구조를 놓치면 70&amp;times;7이 가리키는 죄 사함과 해방을 보지 못한 채 날짜만 계산하게 된다. 그리고 연속성을 버리면 본문에 없는 2천 년의 공백을 끼워 넣게 된다. &lt;strong&gt;그리스도 중심,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 중심, 그리고 연속된 시간&lt;/strong&gt;이라는 세 가지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제안하는 해석 역시 인간의 해석이므로 틀릴 가능성은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또 하나의 절대 교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한 성도에게 성경 전체와 역사적 성취를 일관되게 설명하려면 가장 타당한 틀을 제시해야 한다. 여러 해석을 종합해 보았을 때 이 세 기준을 적용하면 70이레의 문맥과 연대가 함께 풀리고, 무엇보다 예언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선명히 드러난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70이레는 BC 457년부터 AD 34년까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의 기산점은 언제일까? 그것은 예수께서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A.D.27년) 한 이레의 절반(A.D.30년)에 돌아가신 날짜를 기준으로 역추적하면 된다. 그러니까 A.D.27년을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출현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을 마지막 한 이레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뒤로 62이레(434년)을 계산하면 B.C. 408년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7이레(49년)을 뒤로 가면, 기원전 457년, 아닥사스다 왕 제7년이 70이레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즉 바사 아닥사스다 왕 7년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조서를 받은 때가 70이레의 기산점이 되는 것이다(스 7:7-10, 25-26). 그리고 이어서 아닥사스다 왕 20년에 느헤미야가 통치자(나기드)가 되어 예루살렘에 와서 허물어진 성전을 다시 짓는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9장 25절에도 역시 그 기산점인 예루살렘을 &amp;lsquo;돌이키고&amp;rsquo; 그리고 &amp;lsquo;건축하라&amp;rsquo;는 두 가지 내용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앞의 단어는 히브리어 &amp;lsquo;슈브&amp;rsquo;(שׁוּב)로서, 돌아오다 또는 돌이키다라는 뜻이고, 뒤의 단어 &amp;lsquo;바나&amp;rsquo;(בָּנָה)는 건축하다는 뜻이다. 개역개정은 &amp;lsquo;슈브&amp;rsquo;를 &amp;lsquo;다시&amp;rsquo;라는 부사처럼 처리하였고, 거기에다가 &amp;lsquo;건축하라&amp;rsquo;는 뜻을 합하여 &amp;lsquo;중건하라&amp;rsquo;고 번역했지만, 백성을 돌이키는 일과 성읍을 건축하는 일을 함께 보아야 한다. 즉 백성을 돌이킨 일은 에스라고 한 것이고, 성읍을 건축한 것은 느헤미야가 한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유다인들의 포로 귀환은 세 차례의 흐름을 가진다. 먼저 고레스 왕 통치 원년(B.C.538)에 그의 명령으로 스룹바벨이 백성을 이끌고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다(스 1:1-4; 2:1-2). 다음으로 아닥사스다 왕 제7년(B.C.457)에 에스라가 돌아와 율법을 가르치고 이방 여인과 결혼한 문제를 다루며 백성 전체의 회개(悔改, repentance)를 이끌었다(스 7:10; 9:1-10:17). 마지막으로 아닥사스다 왕 제20년(B.C.445/444)에 느헤미야가 파송되어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했다(느 2:1-8; 6:15). 그러니까 남유다 백성을 돌이킨 사람은 에스라이고. 성벽을 세운 사람은 느헤미야이므로, 두 사역의 시작을 품은 아닥사스다 제7년을 기산점으로 삼는 것이 합당하다. 왜냐하면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했던 기간이 7이레(49년) 안에 다 들어가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기산점에 등장하는 바, 다니엘서 9장 25절의 &amp;lsquo;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amp;rsquo;은 &amp;lsquo;왕&amp;rsquo;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amp;lsquo;멜레크&amp;rsquo;(왕)가 아니라 &amp;lsquo;나기드&amp;rsquo;(נָגִיד)(통치자)이기 때문이다. &amp;#39;나기드&amp;#39;는 한글로 &amp;#39;지도자&amp;#39; 또는 &amp;#39;통치자&amp;#39;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인 고레스나 아닥사스다와 그 명령을 수행한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구별해야 한다. 마소라 본문의 구두점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7이레 뒤에 기름 부음을 받은 지도자가 나타난다고 읽을 수도 있고, 7이레와 62이레 전체 뒤에 나타난다고 읽을 수도 있다. 어느 독법을 취하든 포로 귀환과 회개와 성읍 건축은 이 기간 안에 이루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의 기간은 어떻게 산정할 수 있는가? 기원전 457년에서 7이레인 49년이 지나면 기원전 408년이 된다. 거기서 다시 62이레인 434년이 지나면 주후 27년경에 이른다. 이때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마 3:13-17; 행 10:38). 이 날짜를 기준으로 마지막 한 이레가 시작된다. 그리고 한 이레의 절반인 약 3년 반 뒤, 주후 30년경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끊어짐을 당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다니엘 9장 26절에서 예언하고 있는 바,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를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마 26:28). 그리고 이어서 그분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려 구약의 희생제사와 곡식제사를 그치게 하셨다. 이러한 제사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하신 것이다(히 9:11-15; 10:10-14). 그러므로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 분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한다. 고로 주후 27년에 시작된 마지막 한 이레는 주후 34년경에 마무리되고, 그 안에서 초림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사역이 완성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마지막 한 이레의 중심에 십자가가 놓이면서 이스라엘의 봄 절기도 성취된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날에 유월절 양으로 죽으셨고, 무교절과 초실절의 뜻을 이루어 부활하셨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어 주시어 교회가 탄생하게 하였다(고전 5:7; 15:20; 행 2:1-4).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과 칠칠절이라는 전반기 절기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 강림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 9장 24절에 나오는 바,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 부음 위함이라는 예언의 성취인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다니엘서 9장 26절에 나오는 바, 62이레 뒤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amp;lsquo;끊어져 없어질 것&amp;rsquo;이라는 표현은 번역에 오해를 불러온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표현은 그가 끊어질 것이며 &amp;lsquo;그에게 속한 것이 없다&amp;rsquo;는 뜻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amp;lsquo;없어질 것&amp;rsquo;이라고 번역하면 메시아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듯한 오해를 줄 수 있다. 정동수 목사의 킹제임스 흠정역은 &amp;lsquo;그것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니라&amp;rsquo;고 옮기지만, 히브리어의 부정 표현을 그렇게 확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타인에 의해 끊어지지만 부활로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기산점을 고레스나 느헤미야에게 먼저 맞춘 뒤 예수께 도달하려 하면 연대가 어긋나기 쉽다. 반대로 주후 27년의 기름부음과 주후 30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거꾸로 계산하면 기원전 457년의 에스라 귀환과 일치한다. 70이레는 기원전 457년부터 주후 34년까지 이어지는 연속된 구속사의 시간이며, 그 한가운데에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세대주의는 왜 마지막 한 이레를 2천 년 뒤로 분리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세대주의가 마지막 한 이레를 분리하고 떼어서 중간에 교회시대를 집어넣고, 그 시기를 2천 년 뒤로 분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완전히 별개의 경륜으로 나누고, 마지막 7년을 적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의 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세대주의는 69이레까지 진행된 뒤, 메시아가 출현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거절되자 이스라엘을 위한 시간표가 멈추게 되었고, 그 사이에 성경이 예고하지 않은 교회 시대가 삽입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교회가 7년 대환난 전에 휴거된 뒤에야, 멈추었던 마지막 한 이레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시작된다고 설명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시간표에서는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7년 평화조약을 맺고, 3년 반이 지나면 조약을 깨뜨려 성전 제사를 금지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유대인은 그때에 제사를 다시 드리고 있어야 하므로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교회의 완전한 분리, 환난 전 휴거설, 7년 대환난, 적그리스도의 평화조약, 제3성전 재건이 하나의 체계로 묶이게 되었다. 이 모든 구조를 떠받치는 핵심 본문이 바로 다니엘서 9장 27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인 로버트 앤더슨과 해럴드 호너는 70이레의 기산점을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곧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러 간 기원전 445년 또는 444년으로 잡았다. 그러나 거기서 69이레인 483년을 지난 때를 A.D.32년이나 33년으로 본다. 그러나 1년을 365일로 계산하면 필자의 계산으로는 주후 38년 또는 39년 무렵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시점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한 해를 360일로 계산하여, 예수께서 끊어지신 연도를 주후 32년 또는 33년이라고 산출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A.D.32년이나 33년이 아니라, 30년에 돌아가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세대주의의 계산법은 억측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그들은 문자주의(文字主義, literalism)를 표방하면서도 날짜가 맞지 않게 되자, 한 해의 길이를 달리 계산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이레는 본문에 없는 긴 공백을 집어넣는 일을 시도하였다.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으로 세대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를 보자. 그분이 제시한 도표를 보면 기원전 445년을 70이레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69이레 뒤를 주후 30년으로 그림에 표시해 놓았다. 하지만 단순히 483년을 B.C.445이나 444년에 맞추면 예수께서 돌아가신 해는 A.D.38년이 되고 만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세대주의는 영국의 존 넬슨 다비에게서 두 방향으로 전파되었다는 것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세대주의의 한 갈래는 미국으로 가서 스코필드와 달라스신학교를 거쳐 미국의 근본주의와 한국의 사랑침례교회 같은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 갈래는 중국으로 가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거쳐 지방교회와 한국복음서원으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교회의 분리,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의 공백, 환난 전 휴거라는 핵심 틀은 똑같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회복역 성경』&lt;/strong&gt;은 다니엘서 9장 27절의 번역 자체는 비교적 잘했지만, 각주에서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길이를 알 수 없는 간격이 있다고 주석하고 있으며, 마지막 7년 초에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견고한 평화언약을 맺는다고 주석하고 있다(회복역 성경 참조). 또한 로마의 티투스(디도)로 예표된 적그리스도가 재건될 성전을 황폐하게 할 것이므로 제3성전의 건축이 필수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한국복음서원은 본문 번역은 비록 바르게 했다고 하지만, 주석의 신학적 틀이 독자의 결론을 세대주의로 이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 안에도 성경을 사랑하고 선교와 연구에 헌신한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모든 가르침을 나쁘다고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대주의가 바르게 설명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이레를 분리함으로써 초림하신 그리스도의 언약과 십자가를 적그리스도의 조약과 박해로 바꾸어 놓은 부분은 바로잡아야 한다. 사람과 단체를 정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성경의 중심을 다시 그리스도께 돌려놓는 것이 목적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다니엘서 9장 26-27절의 &amp;lsquo;그&amp;rsquo;는 누구를 가리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다니엘서 9장 26-27절에 나오는 첫 번째 &amp;lsquo;그&amp;rsquo;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가?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70이레의 예언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분은 A.D.27년에 기름부음을 받았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26절을 보자. 여기에는 두 명의 다른 존재가 대조된다. 먼저 69이레 뒤에 끊어짐을 당하는 &amp;#39;기름부음을 받은 자&amp;#39;가 있고, 그다음에는 &amp;#39;장차 올 한 통치자의 백성&amp;#39;이 있어 그가 성읍과 성소를 파괴한다. 그러므로 앞에 등장하는 &amp;#39;기름부음을 받는 자&amp;#39;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고, 후자는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무너뜨린 로마의 티투스(디도) 장군과 그의 군대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때 티투스(디도) 장군은 장차 마지막 시대에 활동하게 될 적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26절의 본문은 그리스도와 그를 대적하는 통치자를 나란히 대조해서 보여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27절도 똑같은 대조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부분의 &amp;lsquo;그&amp;rsquo;는 한 이레 동안 많은 사람에게 언약을 굳게 하고, 이레의 절반에 희생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피를 흘려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세우고 단번의 제사로 속죄를 완성하신 예수께 정확히 해당한다(마 26:28; 히 10:12-14). 이어지는 뒷부분에는 가증한 것들의 날개 위에 서서 철저히 황폐하게 하는 자가 나오고, 정해진 끝에 진노가 그 황폐하게 하는 자 위에 쏟아진다. 그가 바로 장차 적그리스도가 될 자이다. 그러므로 앞에 나오는 그분인 그리스도와 뒤에 나오는 황폐하게 하는 자는 서로 다른 존재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만일 27절 앞부분의 &amp;lsquo;그&amp;rsquo;를 26절의 장차 올 통치자 곧 적그리스도로 본다면, 27절 뒷부분도 같은 대명사 &amp;lsquo;그&amp;rsquo;로 계속 받아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히브리어 문장은 뒤에서 &amp;lsquo;황폐하게 하는 자&amp;rsquo;를 별도의 주체로 다시 제시한다. 그러므로 한 절 안에서도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하는 그리스도와 가증한 것을 의지하여 황폐하게 하는 대적자가 대조된다고 보아야 문맥이 맞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70이레의 본문에는 어디에도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amp;lsquo;평화조약&amp;rsquo;을 맺는다는 말이 없다. 단지 많은 사람에게 언약을 강하게 하거나 굳게 한다고 되어 있다. &amp;lsquo;언약&amp;rsquo;을 정치적 평화조약으로 바꾸는 순간 예수께서 피로 세우신 언약이 사라진다. 또한 히브리어 동사는 희생제사와 예물을 &amp;lsquo;금지한다&amp;rsquo;기보다 &amp;lsquo;그치게 한다&amp;rsquo;는 뜻이 맞다. 적그리스도가 가능한 제사를 폭력으로 금지하는 장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 때문에 반복 제사가 효력을 다하고 그치는 장면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서로 다르게 번역한 번역본들을 비교해 보면, 신학의 틀이 번역에 얼마나 성경 해석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 허성갑 목사의 『직역성경』은 많은 부분을 원문에 가깝게 옮겨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다니엘서 9장 24절의 &amp;lsquo;거룩한 것들의 거룩한 것&amp;rsquo;을 &amp;lsquo;지성소&amp;rsquo;로 한정해 놓았고, 25절의 &amp;lsquo;슈브&amp;rsquo;를 &amp;lsquo;다시&amp;rsquo;로 처리하였으며, 26절을 &amp;lsquo;끊어져 없어질 것&amp;rsquo;이라고 옮긴 부분은 70이레의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7절에서 제사와 곡식제사가 그친다고 번역한 점은 바르게 번역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백석대 총장을 역임했던 고영민 박사의 『원문번역직역성경』도 방대한 원어 연구의 결실이지만, 27절의 &amp;lsquo;그&amp;rsquo;를 &amp;lsquo;그 왕&amp;rsquo;이라고 바꾸어 번역했다. 원문에는 &amp;lsquo;왕&amp;rsquo;이라는 명사가 없는데 세대주의적 선이해가 번역문에 들어간 것이라 추정된다. 왜냐하면 각주에서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현 교회 시대가 놓인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한국복음서원에서 발해한『회복역 성경』은 앞부분을 비교적 정확히 옮기면서도 제사를 &amp;lsquo;바치지 못하게 한다&amp;rsquo;고 표현하는 측면이나, 각주에서 그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정말 아쉬움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킹제임스 흠정역을 번역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는 &amp;lsquo;언약을 확정하고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한다&amp;rsquo;는 앞부분을 잘 살렸지만, 황폐하게 하는 자의 주체는 다소 모호하게 번역하고 있음을 본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무리 원어에 능통하고 방대한 연구를 한 사람이라도 이미 가진 신학적 틀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운가 보다. 그러므로 번역자의 명성과 학위만 볼 것이 아니라 원문에 실제로 어떤 단어가 있고, 문장의 주체가 어떻게 바뀌며, 앞뒤 문맥이 누구를 대조하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26절과 27절을 함께 읽으면 언약을 굳게 하고 제사를 그치게 하는 이는 그리스도이며, 성읍과 성소를 황폐하게 하는 이는 그를 대적하는 통치자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 해석을 벗어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 재건은 또 어떠한가? 다니엘서 9장 27절에서 직접 말씀하고 있는 것은 정말 종말의 필수 조건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없는 평화조약을 만들어서 집어넣고, 그 조약이 깨어지려면 성전 제사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고 추론한 결과, 제3성전이 종말론의 중심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제3성전은 끝까지 세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종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제3의 성전이 건축되느냐를 지켜보며 날짜를 계산하는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냐하면 신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기 때문이다(요 2:19-21; 고전 3:16; 6:1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성전은 예루살렘에 돌로 지어지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날마다 예루살렘에 제3성전을 세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가 회개하여 깨끗해지고 주님이 쓰실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적 시간표를 따르면, 성도의 눈은 언제 이스라엘과 적그리스도가 조약을 맺는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중심의 70이레를 따르면, 예수께서 무엇을 이루셨고 어떻게 해서 우리가 그 축복을 누릴 것인가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분은 안식년의 쉼을 주셨고 면제년의 빚을 탕감하셨으며 희년의 자유와 기업 회복을 가져오신 분이시다. 십자가의 목적은 미래의 공포를 계산하게 하는 데 있지 않고, 지금 죄와 마귀에게 매인 사람을 해방하는 데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종말을 준비한다는 것은 날짜와 인물을 맞히는 일이 아니다. 먼저 회개하여 우리 안의 악한 영을 제거하고,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깨끗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 주께서 장차 나팔절에 나팔을 불어 하늘의 군대를 소집하실 때에 적진과 내통하는 그를 데려가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금은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추측하는 때가 아니라, 죄를 자백하고 내 안에 간첩으로 숨어있는 악한 영을 내보내며 주님의 뜻에 충성할 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지금은 천국에서 받을 신분과 상급을 준비해야 한다. 모든 성도가 천국에서 똑같은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회개하고 충성하며 주님의 사명을 감당한 분량에 따라 왕과 제사장의 신분과 기업이 달라질 것이다. 세대주의적 틀이 이 차이를 왕국 시대의 일로만 돌려버리면 성도는 영원한 천국을 준비할 동력을 잃는다. 종말론은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시간표가 아니라 오늘의 삶을 거룩하게 만드는 진리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대주의를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되고, 유명한 학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해석을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옳은 것은 감사히 배우고 잘못된 것은 성경으로 분별해야 한다. 필자도 선배들이 쌓아 놓은 연구를 존중하고 활용한다. 다만 어떤 교단과 기관과 번역본도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보다 앞설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께서 한 이레의 절반에 끊어지심으로 죄를 속죄하고 새 언약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그분이 안식과 면제와 희년을 이미 가져오셨으므로 그 은혜를 누리고, 아직 죄와 마귀에게 묶인 사람에게 해방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종말론이 낳는 실제 열매이며,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교회의 올바른 자세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의 마지막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 해석과 종말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길을 살펴보았다. 한국 교회는 복음과 함께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전해 받았고, 그 틀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분리와 환난 전 휴거,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 재건이라는 시간표를 만들었다. 선교와 성경 연구에 끼친 유익은 존중해야 하지만, 본문에서 벗어난 해석은 성경 앞에서 바로잡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성경 연구와 영적 실상이 함께 가야 한다. 성경 없는 체험은 미혹에 빠질 수 있고, 영적 실상을 알지 못하는 연구는 자기 신학의 틀 안에서 본문을 제한할 수 있다. 그리스도 중심,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 중심, 7이레와 62이레와 1이레의 연속성이라는 세 기준으로 70이레를 읽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기원전 457년의 에스라 귀환에서 시작된 70이레는 주후 27년의 예수님의 기름부음과 주후 30년의 십자가를 거쳐 주후 34년경까지 이어진다. 한 이레의 절반에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하고 희생제사를 그치게 한 &amp;lsquo;그&amp;rsquo;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다. 황폐하게 하는 통치자는 그와 대조되는 별개의 존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2천 년의 공백과 미래의 평화조약을 계산하기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속죄와 해방을 붙들어야 한다. 예루살렘의 돌 성전이 재건되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 자신과 교회가 회개로 정결해져 거룩한 성전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천국의 신분과 기업을 바라보며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고, 죄와 마귀에게 묶인 이들에게 희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관심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있어야 하고, 날짜가 아니라 십자가의 성취에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말씀과 성령 안에서 진리를 분별하고 주님의 재림을 온전히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5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교에 사용한 그림들]&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의70이레의 기산점] ChatGPT Image 2026년 9월 15일 오전 02_11_59.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ccb643ec1cf4008b36c1b3495aa669a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의 칠십이레_사랑침례교회 정동수목사(칼라)_성경바로알기.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9a63c6a7c458b296ace4da470dd7ff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의 칠십이레_사랑침례교회 정동수목사(흑백)_성경바로알기.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301f5a8a552816a9ed47076c2c2e3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천국과 하나님의 왕국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도표.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0a161328116860af740f7a56e1135a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칠십이레와 그리스도께서 오심 및 성도의 휴거에 관한 도표 - 한국복음서원.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27b63adca38943e81768265e53d24ef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099ce8ef5288674db2019b1eeb63481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532f4f775d474551663f579f10c58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0a0bad1fe297841c6c9175d27de44e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2dcca4f61220905f7caabdb28cff8f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bcc45c9b5efa8703a4bbbce57a7fbb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da277355f616c537dc16572d3339df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atGPT Image 2026년 9월 15일 오후 08_35_3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ca3c19c8d4f33977468c128cc7920bc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bd06d264fed6234ede756c524565f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5c336125595041467aad222fb6978eb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299937c61e733a51c7701eaf50534c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278ac5fbb362086c8a1668e6634d5ca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809de98195d66771deacd2cc93bb53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7b559de442d49a75f3fc387532203a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5ea29fe58b0297306795a8e472b4297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539a59d46c705b2c4c4480cbb9125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3d2692df5d59b02399bd10562302c8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10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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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db94d7d6b3ef27c7034fae5b85c47b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다니엘의_70이레_오해와_진실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3cd54fe03d9ace44ebc376a2c3da83e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그리스도_중심_다니엘_70이레_시간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6fd0e2cf0444feffc0b4d9b6963dea2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1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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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역자론(16)]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딤후4:6~8)_2026-09-14(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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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4T08:08:22+09:00</published>
		<updated>2026-09-14T21:18:1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6)]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딤후4:6~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NPVNppsOOA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왜 깨끗함인가? 2.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끝까지 완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는 자세가 왜 필요한가? 4. 하나님의 주...</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16)]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딤후4:6~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mNPVNppsOO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mNPVNppsOO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1.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왜 깨끗함인가?&lt;br /&gt; &amp;nbsp; 2.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끝까지 완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br /&gt; &amp;nbsp; 3.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는 자세가 왜 필요한가?&lt;br /&gt; &amp;nbsp; 4.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역자는 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가?&lt;br /&gt; &amp;nbsp; 5. 크게 쓰임받을수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br /&gt; &amp;nbsp; 6. 의의 면류관을 받을 충성되고 의로운 사역자는 어떤 사람인가?&lt;br /&gt; &amp;nbsp; 7. 평신도 사역자가 감당해야 할 세 가지 사명은 무엇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참된 사역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내면의 자세와 실천적 요건들을 강조하는 신앙적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토대는&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한 자기 정결&lt;/strong&gt;로,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시켜야만 악한 영의 흔듦을 받지 않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일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사역자는 사람의 비난이 아닌&amp;nbsp;&lt;strong&gt;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태도&lt;/strong&gt;로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사명을 묵묵히 완수해야 하며, 때로는 생명까지 내걸 수 있는&amp;nbsp;&lt;strong&gt;철저한 충성심과 순종&lt;/strong&gt;이 요구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권한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amp;nbsp;&lt;strong&gt;겸손한 마음가짐&lt;/strong&gt;을 유지함으로써, 겉모습만이 아니라 중심까지 의로운 모습으로 천국의 상급을 예비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1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딤후 4:6-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와 일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삶을 오랜 세월 다듬으시고, 말씀을 배우게 하시며, 성품과 순종(順從, obedience)을 훈련하셔서 당신이 쓰실 그릇으로 준비하신다. 그러므로 큰일을 맡는 것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다. 과연 나는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인가 하는 문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든 사역의 &lt;strong&gt;기초에는 회개(悔改, repentance)가 있어야&lt;/strong&gt; 한다. 회개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혈기와 교만과 음란과 명예욕과 자기 자랑을 통하여 사역을 흔든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한 것처럼 보여도 마음과 성품이 정결(淨潔)하지 않으면 결국 변덕과 다툼과 타락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깨끗함 하나만으로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lt;strong&gt;자신에게 맡기신 사명(使命, mission)을 분명히 알고 묵묵히 걸어가야 하며, 그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작은 일에도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lt;/strong&gt; 한다. 모든 주권(主權, sovereignty)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며, 아무리 많이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일하신 것임을 알고 겸손(謙遜, humility)해야 한다. 끝까지 신실하고 의롭게 달려간 사람이라야 주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볼 수 있다(딤후 4:6-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목회자나 특별한 은사(恩賜, spiritual gift)를 받은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성도는 가정의 파수꾼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돕고, 교회의 지체를 섬기도록 부름받았다. 어떤 직분과 역할을 맡았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사역자요 일꾼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이 왜 깨끗함인지,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완수하는 길은 무엇인지,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자세, 겸손과 충성과 의로움, 그리고 평신도가 감당할 세 가지 사명이 무엇인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왜 깨끗함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인정받는 &lt;strong&gt;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amp;#39;깨끗함&amp;#39;(정결)&lt;/strong&gt;이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를 사모하는 것보다 먼저 정결한 사람이 되기를 사모해야 한다. 은사와 능력과 지식이 있어도 그릇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 안에 담긴 것이 오염된다. 쓰임을 받는 것과 주인에게 인정받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한때 크게 쓰임받았더라도 혈기와 교만과 음란과 명예욕을 회개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그 약점을 붙들고 사역을 흔들어 버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큰 집에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으며, 귀하게 쓰는 그릇과 천하게 쓰는 그릇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릇의 재료보다 중요한 것은 그릇이 깨끗한가 하는 점이다. 누구든지 악한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거룩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되기 때문이다(딤후 2:20-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lsquo;주인&amp;rsquo;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일반적으로 주님을 가리키는 &amp;lsquo;퀴리오스&amp;rsquo;가 아니라 &amp;lsquo;데스포테스&amp;rsquo;(&amp;delta;&amp;epsilon;&amp;sigma;&amp;pi;ό&amp;tau;&amp;eta;&amp;sigmaf;)다. 이는 절대적인 주권자요 소유주라는 뜻을 지닌다. 사역자는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빌리는 사람이 아니다. 나를 소유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필요에 따라 사용하시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그릇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준비는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다. 훈련자가 명령해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날마다 자기 죄를 살피고 자백하며 악한 영이 붙들 근거를 없애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역을&lt;/strong&gt; 시작하면 &lt;strong&gt;작은 자극에도 변동이 심해진다&lt;/strong&gt;. 귀신은 혈기를 자극하여 관계를 깨뜨리고, 교만을 부추겨 책망을 거부하게 하며, 음란과 명예욕을 통하여 위대한 종까지 무너뜨리려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언제나 회개가 들어가야 한다. 회개 없이 시작한 열심은 오래 가지 못하고, 회개 없이 사용하는 은사는 자기 자랑의 도구가 되기 쉽다. 먼저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낼 때 마음이 안정되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도 온전히 사용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원(救援, salvation)은 인간의 실력이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겠는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다(엡 2:8-9). 그러나 구원받은 뒤에 어떤 삶을 살고 얼마나 충성했는지에 따라 하늘에서 받을 지위와 신분과 상이 달라진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일하지 않은 것을 일한 것으로 계산하지 않으시고, 사람 앞에서만 보인 충성을 영원한 상으로 바꾸어 주지도 않으신다(고후 5:10; 계 22:12).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행한 대로 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역의 출발점은 더 큰 일을 달라고 구하는 데 있지 않다. 오늘 내 안에 있는 혈기와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자랑을 발견하고 회개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금그릇인가 질그릇인가를 먼저 보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인가를 보신다. 나를 깨끗하게 하는 일에 힘쓸 때 비로소 주권자의 손에 붙들려 오래도록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끝까지 완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lt;strong&gt;끝까지 완수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lt;/strong&gt; 한다. 사명이 분&lt;strong&gt;명하지 않으면 환경과 사람의 말에 따라 쉽게 흔들린다&lt;/strong&gt;. 어제까지 하던 일을 오늘 갑자기 그만두고, 지난번에 강조한 것을 다음에는 외면한다면 아직 자기 길을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사명이 분명한 사람은 처음과 끝이 일관된다. 상황이 어렵고 비난이 따라와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에게 주어진 사명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숨에 알게 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 조금씩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부터 천국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하셨고, 스물다섯 살 무렵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 세미나로 알려진 이상관 목사를 만나 배우게 하셨다. 그는 필자의 첫 번째 영적 스승이었다. 필자는 전국 부흥회를 다니는 그를 돕기 위하여 반주를 맡았고, 설교 내용을 기록하여 주보에 요약해 올렸다. 같은 말씀을 거듭 듣고 적다 보니 설교의 흐름과 예화와 성구를 거의 외울 만큼 배우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시절 필자에게 특별한 실력이 있어서 반주를 맡은 것이 아니었다. 부탁을 받았을 때 &amp;lsquo;아멘&amp;rsquo; 하고 순종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맡기신 분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마음으로 섬겼다. 배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이미 안다는 태도가 아니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누구를 만나든 경청하고 필요한 것을 배우려 했다. 그 모든 배움은 하나님께서 회개와 천국복음의 진리를 찾아가게 하신 과정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다가 1998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07년에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2013년에 이르러 비로소 회개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회개 없이는 구원의 여정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경 전체에서 회개의 뜻과 사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뒤 4년 동안 연구하고 외친 내용을 모아 2017년에 시중에 나온『회개와 천국복음』(2017, 발해)을 펴냈다. 이 책에서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구원이 어떻게 시작되고 이루어지는지를 정리했다. 예수를 믿고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받을 때 구원은 시작되지만, 광야와 같은 교회 생활을 지나 천국에 들어갈 때 구원의 경륜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믿음과 회개로 끝까지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빌 2:12; 히 3: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사명을 발견하는 과정은 대개 이처럼 한 걸음씩 진행&lt;/strong&gt;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릇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열어 주시고, 배움과 훈련과 인내를 통하여 사람을 만드신다. 만일 처음부터 모든 환상과 계획을 한꺼번에 보여 주셨다면 필자는 교만해져 타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때마다 하나씩 알려 주셨고, 마침내 세계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터전까지 마련하게 하셨다. 사명은 어느 날 생겨난 개인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생을 통하여 빚어 가시는 부르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사명이 분명해지면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게&lt;/strong&gt; 된다. 필자는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그 이후의 과정과 상관없이 자동으로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는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사람이나 마귀가 아니라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하나님 한 분이시다(마 10:28). 하나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도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고 계신다(마 10:29-31).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이 삼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추격했어도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침입을 통하여 막으시자 다윗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은 &amp;lsquo;셀라하마느곳&amp;rsquo;, 곧 분리의 바위라 불렸다(삼상 23:26-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그리고&amp;nbsp;&lt;strong&gt;회개를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악한 영의 공격이 나타났다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lt;/strong&gt; 하나님께서 중심을 아시고 지켜보신다. 하나님이 쓰시기로 작정하여 오랜 세월 준비하신 사람을 사탄이 마음대로 끌어내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비난을 피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받은 사명을 믿음으로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배우는 마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을 따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걸어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는 자세가 왜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는 &lt;strong&gt;맡은 일이 크든 작든 목숨을 내놓는 자세로 감당&lt;/strong&gt;한다는 사실이다. 목회와 선교처럼 눈에 띄는 일만 사명이 아니다. 교회를 청소하고,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찬양 한 곡을 맡는 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이다. 작은 일이라고 적당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청소할 때에도 영혼을 회개로 깨끗하게 하듯 하나님의 집 한편을 깨끗하게 한다는 &lt;strong&gt;마음으로 충성(忠誠, faithfulness)해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각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증언을 들었어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위하여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행 20:22-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함부로 다루거나 무모하게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편의와 기분에 따라 버리지 않고, &lt;strong&gt;손해와 고난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책임진다&lt;/strong&gt;는 뜻이다. &amp;lsquo;이번에는 할 수 있지만 다음에는 못 하겠다&amp;rsquo;며 수시로 돌아서는 사람이 아니라, 한 번 맡은 일을 초지일관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부족하다. 모든 능력이 확보된 뒤에 사명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먼저 순종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과 권세를 더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첫 스승이었던 광주의 사랑의 빛 교회 이상관 목사는 예수를 믿기 전 조직폭력배로 살다가 감옥 독방에서 성경을 읽고 주님을 만나 목회자가 되었다. 그가 백 평 남짓한 가건물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소음 문제를 빌미로 위협적인 사람들이 찾아온 일이 있었다. 마침 그날 이상관 목사님의 후배였던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가 있었는데, 그 우두머리의 한마디에 찾아온 사람들이 다 물러갔다. 그 일을 계기로 필자는 왜 그 후배가 우두머리가 되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싸울 때에는 &amp;lsquo;너를 쓰러뜨리고 나는 살아야겠다&amp;rsquo;는 자세로 싸우지만, 그분은 &amp;lsquo;오늘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amp;rsquo;는 각오로 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이야기는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lt;strong&gt; 사명 앞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결단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lt;/strong&gt;를 설명하는 비유다. 영적 싸움에서도 악한 영을 두려워하여 피하기만 하면 영권이 자라지 않는다. 회개하고 믿음으로 맞서며, &amp;lsquo;나는 쓰러질지라도 하나님의 원수를 끝까지 대적하겠다&amp;rsquo;는 자세로 서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사탄에게 마음대로 삼켜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싸울수록 믿음이 단련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권(靈權)을 경험하게 된다(약 4:7; 벧전 5:8-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드릴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한 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매우 작은 도시락이었지만, 주님 손에 드려졌을 때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재료가 되었다(요 6:8-13). 전능하신 주님은 우리 도움 없이도 일하실 수 있지만, 우리의 작은 내어드림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 과정에서 믿음을 시험하시고 하늘의 상을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은 사역일수록 가볍게 여기지 말고 생명을 드리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역자는 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역자에게서는 &lt;strong&gt;절대적인 순종&lt;/strong&gt;이 나온다. 나를 부르시고 세우시며 일을 맡기시는 분도 하나님이요, 사역을 멈추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역자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일을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주권자의 명령에 따라 시작하고 멈추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amp;lsquo;여기까지다&amp;rsquo;라고 말씀하시면 그날 멈출 수 있어야 한다. &amp;lsquo;내가 이토록 수고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amp;rsquo;라고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면 아직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하나님의 불을 보았고, 큰 승리를 경험했다(왕상 18:20-40). 그러나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로 도망했고, 다시 호렙산까지 가서 자신만 홀로 남았다고 호소했다(왕상 19:1-14). 그는 열심이 특심이었지만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무시하지 않으셨다.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며,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대신할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명하셨다(왕상 19:15-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상 19: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엘리야는 그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를 지나 요단강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데려가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엘리사에게 기꺼이 자신의 겉옷과 사명을 넘겨주었다(왕하 2:1-14). 그는 그간 자기가 세운 업적을 붙들고 자리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 시작하라고 하실 때 시작하였고, 후계자에게 맡기라고 하실 때 맡겼으며, 그만두라고 하실 때 그만두었다. 이것이 순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순종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자기 생각이다. 어떤 생각을 밤낮으로 되풀이하다 보면 며칠 뒤에는 그럴듯한 논리가 서게 된다. 마침내 &amp;lsquo;내 생각이 옳고 명령한 사람이 틀렸다&amp;rsquo;고 확신하게 된다. 사탄은 이렇게 생각을 이론으로 굳혀 하나님의 뜻에서 사람을 이탈시키려 한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한다고 말했다(고후 10:4-5). 그러므로 자기 논리가 아무리 합당해 보여도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그 생각의 출처와 열매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지도자의 정당한 가르침을 받을 때 자기 고집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라,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와 사역의 질서를 존중하라는 뜻이다. 순종하는 사람은 자기 의견이 없어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내 삶과 사역의 최종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기 때문에 따른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크게 쓰임받을수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크게 쓰임받을수록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lt;strong&gt;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사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시고 있는 일이기 때문&lt;/strong&gt;이다. 많은 수고를 했더라도 은사와 기회와 능력과 열매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잊고 &amp;lsquo;내가 했다&amp;rsquo;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받은 것을 자기를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마련이다. 자기가 최고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의 책망을 듣지 못하게 된다. 책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바로 교만의 뚜렷한 표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자기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말했다. 그때 그가 그것이 떠나가기를 세 번 간구했지만 주님은 &amp;lsquo;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amp;rsquo;고 대답하셨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므로 바울은 오히려 자기 약한 것을 자랑했다(고후 12:7-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교만하려는 바울에게 두 가지 장치를 두셨다. 하나는 사탄의 사자가 남아 있게 하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한 부분을 완전히 없애 주지 않으시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에게 사람을 넘겨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강하다고 착각하지 않고 늘 주님을 찾도록 붙들어 두시려는 배려의 선물이다.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되고 모든 능력을 한꺼번에 받으면 자기 힘으로 일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부족한 것이 남아 있기에 고개를 숙이고 은혜를 구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큰 사명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큰 시험을 만날 수 있다&lt;/strong&gt;.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크게 쓰시는 만큼 더 깊이 무릎 꿇게 하시고, 끝까지 순종하는지를 살피신다. 높은 계시와 강한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저절로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꾼도 얼마든지 사탄에게 이용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날마다 자신의 동기와 태도를 하나님 앞에서 점검해야 한다. 약함이 드러날 때 불평하기보다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겸손은 하나님 앞에서만 낮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섬기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과거 우리 교회에서 식당 봉사 책임을 맡은 이는 목회자에게 좋은 음식을 챙기며 잘했지만, 다른 봉사자들에게는 위압적으로 명령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함께 섬기는 다른 지체를 위압적으로 눌러서는 안 된다. &amp;lsquo;하나님께서 내게 이 일을 맡기셨고 당신에게도 일을 맡기셨으니 서로 연합하여 감당하자&amp;rsquo;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많으면 일을 나누고, 부족한 사람은 도우며, 각 사람을 하나님의 종으로 존중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자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lt;strong&gt;겉모습만 잘 꾸미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은 보이는 자리와 보이지 않는 자리의 태도를 모두 살피신다. 내가 설교하거나 앞에 설 때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똑같아야 한다. 나 같은 부족한 사람을 사용해 주시는 것이 감사하여 끝까지 낮은 자리에서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계속 쓰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의의 면류관을 받을 충성되고 의로운 사역자는 어떤 사람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도가 훗날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설 때에 받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머리에 쓰는 면류관이다. 그중에서 의의 면류관을 받을 사역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길을 끝까지 달리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다.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전제와 같이 벌써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켰기에,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주실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그 면류관은 바울에게만 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딤후 4:6-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바울은 단순히 면류관이라고 하지 않고 &amp;lsquo;의의 면류관&amp;rsquo;이라고 했는가? 면류관을 주시는 분이 그날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어서 판정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크기나 사람의 평판만 보지 않으시고 마음과 동기와 과정까지 심판하신다. 불의하게 이룬 성과에는 상을 주지 않으시며, 사람 앞에서는 열심히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형편없이 산 이중적인 삶도 인정하지 않으신다. 설교할 때의 말과 설교하지 않을 때의 생활이 같고, 사람 앞과 하나님 앞이 같은 사람이 의로운 사역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amp;#39;충성&amp;#39;은 맡은 일을 신실하고 변함없이 감당하는 것이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다(고전 4:2). 주님도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amp;lsquo;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amp;rsquo;라고 칭찬하시며 더 많은 것을 맡기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셨다(마 25:21, 23). 충성은 잠시 뜨거웠다가 식는 열심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마음으로 주인이 맡긴 일을 완수하는 태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땅의 삶과 천국의 상급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며, 불로 각 사람의 공적을 시험하신다(고전 3:12-15).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여 충성하지 않은 삶까지 충성한 것으로 계산되는 것은 아니다. 천국은 의가 지배하는 나라이므로, 이 땅에서 교만하고 불의하게 살면서 하늘에서 높은 지위와 아름다운 집을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을 정직하고 신실하게 감당했다면 의로우신 주께서 결코 잊지 않으신다(히 6:1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구원은 믿을 때 시작되지만, 천국에 들어갈 때 완성된다고 가르쳐 왔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것은 구원의 시작이었지만, 불순종한 다수는 광야에서 엎드러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전 10:1-12; 히 3:16-19). 그러므로 한때 믿었다는 생각이나 한때 쓰임받았다는 경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날마다 회개하고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주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재판장 앞에 서기를 힘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의로운 사역자는 &lt;strong&gt;자기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lt;/strong&gt; 모든 능력은 은혜로 받았다고 고백하되, 받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더 많이 수고한다(고전 15:10). 자신이 세운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평가를 바라보고, 눈앞의 칭찬보다 마지막 날의 면류관을 소중히 여긴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생애 마지막에 바울처럼 &amp;lsquo;달려갈 길을 마쳤다&amp;rsquo;고 고백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평신도 사역자가 감당해야 할 세 가지 사명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특별한 사명자들 외에 모든 평신도에게도 분명한 사명이 있다. 그것은 세 가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자기 가정의 파수꾼이 되어야&lt;/strong&gt; 한다. 파수꾼은 위험을 먼저 보고 깨우는 사람이다(겔 33:7). 가정에 죄와 분열과 영적 공격이 들어오지 않도록 자신부터 깨어 회개하고, 배우자와 자녀를 말씀과 기도로 지켜야 한다. 다른 가족을 책망하기 전에 자기 안의 혈기와 교만을 처리하고, 사랑과 인내로 가정예배와 신앙생활을 세워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하나님께서 쓰시는 주의 종을 도와야&lt;/strong&gt; 한다. 이는 목회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사람을 우상화하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음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시간과 재능과 물질로 협력하며, 필요한 일을 기꺼이 나누어 맡는 것이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을 때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길 수 있었다(출 17:10-13). 사역의 현장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뿐 아니라 곁에서 손을 붙들어 주는 충성된 동역자가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교회의 지체를 섬겨야 &lt;/strong&gt;한다. 교회는 한몸이며 성도는 서로 지체다. 눈이 손에게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머리가 발에게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전 12:12-27). 식당 봉사와 청소와 교사와 찬양과 안내는 서로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자리다. 맡은 역할이 다르다고 우열을 정하거나, 책임을 맡았다고 다른 지체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서로 봉사해야 한다(벧전 4:10-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세 가지 사명을 감당할 때에도 &lt;strong&gt;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깨끗함&lt;/strong&gt;이다. 혈기와 분노로 가정을 지키려 하면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시기와 질투로 주의 종을 도우면 사역을 분열시키며, 교만과 명예욕으로 지체를 섬기면 봉사가 지배로 변한다. 그러나 회개하여 악한 영이 떠나가고 마음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자신이 할 일도 더욱 분명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평신도의 사명은 목회자의 사명보다 낮은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다른 분량과 자리를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훗날 하나님은 저마다 맡은 자리에서 얼마나 신실했는지를 보신다. 가정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기도를 드리고, 주의 종의 짐을 말없이 나누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한 지체를 돌보는 일이 하늘에서는 귀한 사역으로 기록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유명한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주인이 맡긴 일을 깨끗한 마음과 충성된 자세로 감당했는가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평신도도 자신을 단순한 예배 참석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 나는 가정에 세워진 파수꾼이며, 복음 사역을 함께 짊어진 동역자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꾼이기 때문이다. 이 정체성을 붙들고 날마다 회개하며, 작은 일에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겸손과 충성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를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느 날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움과 훈련과 인내를 거치고, 좋은 지도자를 만나 가르침을 받으며, 순종과 성품을 하나씩 다듬는 가운데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모든 준비의 &lt;strong&gt;첫째는 깨끗함&lt;/strong&gt;이다. 회개하여 혈기와 교만과 음란과 명예욕과 자기 자랑을 처리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약점을 붙들어 사역을 흔든다. 그러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은사와 능력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큰일을 맡는 것보다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을 먼저 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기 사명을 분명히 발견한 뒤에는 &lt;strong&gt;둘째로,&amp;nbsp;사람의 비난과 환경의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야&lt;/strong&gt; 한다. 작은 봉사에도 생명을 드리는 자세가 필요하며, 시작과 끝과 결과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많은 일을 이루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행하셨음을 알고 낮아져야 한다. 약함과 시험이 남아 있을 때에는 불평하기보다 그것을 통하여 주님을 더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마지막에는 충성과 의로움&lt;/strong&gt;이 남게 해야 한다. 사람 앞과 하나님 앞이 같고, 보이는 자리와 보이지 않는 자리의 삶이 같아야 한다. 구원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고 믿음과 회개로 달려갈 길을 마쳐야 한다. 평신도 역시 가정의 파수꾼으로 서고, 주의 종을 도우며, 교회의 지체를 섬기는 세 가지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나는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어떤 결격 사유가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발견한 죄는 회개하고, 부족한 성품은 고치며, 맡기신 자리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 서는 날 의로우신 재판장께 인정받고 의의 면류관을 받도록 끝까지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4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ChatGPT Image 2026년 9월 14일 오후 09_01_4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b38ac60a4855d76cac32311232061be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7864f2c9ee4e1507fff8907f64cdb0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f754597534104312fd9225126b427d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d488b9c95917ee435bb4dae80ede884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70ef40a45c3eba7759c6bea9351d4e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097483af9528c25ea54a6a53fdd42f9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a74f4240493ff4e3322e88f5639bbc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696ec150dce1a3e1a9620645ad73b53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1f6964e99c2852b57e709a73acd512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37ad2b6bae177fbaad4713ee0b22a8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56fa7406e490363663223a980adf3d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95a8ba5c12ecf6af217ba66a2ed659f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하나님께_인정받는_사역자의_길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543094fba81b6f875ca987fb054d98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_사역자의_7가지_삶의_자세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b62d5a8daca1c9dd3e2745eac50d424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8c2758273891d20869f231e1242103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52f695dc15337f22967fcabc4b229a7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d39f1089890fa764196e4ab2f220cb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c130a7e065e04a1c15e2183547a60e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e3ea03ea956960a08c8581300f42b0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096546b880d777635acdd1b64084d10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6482234da97ad7708cf0ba4b0d2702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1c748aecbbfb45e0b2d1add053a6fb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08b1284ac9ca8dd654bc65fe4e3895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94455bc98ee37336bf53de5d89e164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075375ea337543dffb6288b14e79fbb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1)]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6)(단9:24~27)_2026-09-13(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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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3T22:00:00+09:00</published>
		<updated>2026-09-14T09:26:1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9-13(일) 주일2부예배 제목: [기독론(191)]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6)(단9:24~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8c6dcW-uh7o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핵심 질문들] 1. 다니엘서는 그리스도를 어떤 네 가지 모습으로 예언하는가? 2. 묵시문학으로서 다니엘서의 구조와 네 환상은 무엇인가? 3. 70이레의 세 구간과 그 안에서 성취될 여섯 일은 무엇인가? 4...</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9-13(일) 주일2부예배&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91)]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6)(단9:24~2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8c6dcW-uh7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8c6dcW-uh7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핵심 질문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1. 다니엘서는 그리스도를 어떤 네 가지 모습으로 예언하는가?&lt;br /&gt; &amp;nbsp; 2. 묵시문학으로서 다니엘서의 구조와 네 환상은 무엇인가?&lt;br /&gt; &amp;nbsp; 3. 70이레의 세 구간과 그 안에서 성취될 여섯 일은 무엇인가?&lt;br /&gt; &amp;nbsp; 4. 다니엘서 9장 24-27절의 번역에서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가?&lt;br /&gt; &amp;nbsp; 5. 세대주의의 70이레 해석은 어떻게 초림을 재림으로 바꾸었는가?&lt;br /&gt; &amp;nbsp; 6. 70이레를 푸는 세 열쇠와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은 무엇인가?&lt;br /&gt; &amp;nbsp; 7. 70이레는 언제 성취되었으며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lt;br /&gt; &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다니엘서 9장의 &amp;#39;70이레&amp;#39; 환상&lt;/strong&gt;을 세대주의적 미래 해석이 아닌&amp;nbsp;&lt;strong&gt;초림 예수 그리스도 중심&lt;/strong&gt;으로 풀어낸 설교강해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경의 오역을 바로잡으며, 70이레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메시아의 사역과 대속적 죽음&lt;/strong&gt;을 통해 구약의 안식년, 면제년, 희년의 정신을 완성하는 과정임을 역설합니다. 특히 신자들이&amp;nbsp;&lt;strong&gt;그리스도 중심의 성경관&lt;/strong&gt;을 가질 때 환난을 이길 내면의 힘을 얻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회개와 충성&lt;/strong&gt;을 다해 천국 시민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70이레의 환상과 성취(06, 최종회)&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9:24-2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난 1월 14일부터 구약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공부하고 있다. 왜 우리는 그리스도를 공부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그분이 주시는 것을 누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충만한 만큼 환난과 풍파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 없이 은사와 축사만 따라가면 시련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며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알면 우리 안에 있는 말씀을 붙들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우리가 들었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시다(요 14:26).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말씀이 쌓일수록 그것을 먹고 자라므로 영의 나이는 성정하게 되고 환난 앞에 담대해진다. 필자는 손이 작고 본래 두려움도 많은 사람이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을 채우고 믿음의 은사로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 버렸다. 그때 주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이 내 것이 되었고 귀신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일은 지식 축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채우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창세기부터 시작한 그리스도의 예표 공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모세와 여호수아와 사사들, 다윗과 솔로몬을 지나 이제는 예언서에 이르렀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에 이어 이제 다니엘서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다. 다니엘서의 70이레는 구약의 난해한 예언 가운데 하나다. 해석의 기준이 달라 일곱 가지가 넘는 견해가 있으며, 같은 교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종말 시간표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예언은 대부분 역사 속에서 이미 성취되었으므로 성경과 역사를 대조하면 그 중심을 분명히 찾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의 핵심은 적그리스도나 날짜 계산이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이 예언은 그분이 죄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성취하실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니엘서가 그리스도를 예언한 네 가지 모습, 묵시문학으로서 다니엘서의 구조와 네 환상, 70이레의 세 구간과 여섯 가지 성취, 다니엘서 9장 24-27절의 번역 쟁점, 세대주의가 초림 예언을 재림 예언으로 해석한 과정, 70이레를 푸는 세 열쇠와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의 의미, 그리고 70이레가 언제 성취되었으며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다니엘서는 그리스도를 어떤 네 가지 모습으로 예언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다니엘서는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그리스도를 네 가지 모습으로 예시해 주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 다니엘서 2장에서는 &amp;#39;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amp;#39;&lt;/strong&gt;로 나타난다. 그 돌은 신상의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을 쳐서 세상 제국들을 무너뜨리고, 큰 산이 되어 온 세계에 가득해진다. 이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영원한 나라와 그 나라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단 2:34-35, 44-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다니엘서 7장에서는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lt;/strong&gt;로 나타난다. 사자와 곰과 표범과 열 뿔 가진 짐승으로 상징된 제국들이 성도들을 괴롭히지만,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다(단 7:13-14). 이 땅에 인자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復活, resurrection)하신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모습을 다니엘은 인자 같은 이로 보았다. 그분의 권세는 영원하며 그 나라는 폐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다니엘서 9장에서는 &amp;lsquo;기름부음을 받은 자&amp;rsquo;&lt;/strong&gt;로 나타난다. 히브리어 &amp;lsquo;마시아흐&amp;rsquo;(מָשִׁיחַ, Messiah)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며, 헬라어 &amp;lsquo;크리스토스&amp;rsquo;(&amp;Chi;&amp;rho;&amp;iota;&amp;sigma;&amp;tau;ό&amp;sigmaf;, Christ)와 연결된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기름부음을 받아 직분을 수행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직과 제사장직과 선지자직이라는 삼중직(三重職, threefold office)을 모두 수행하신다. 그 최초의 중요한 모형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왕 다윗이다(시 2:2, 6).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성도는 장차 하늘에서 그분과 함께 다스리는 공동 왕의 지위에 참여하게 된다(계 22: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다니엘서 10장부터 12장에서는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분&amp;#39;&lt;/strong&gt;으로 나타난다. 그분은 힛데겔 강가에서 다니엘에게 장차 일어날 북방 왕과 남방 왕의 충돌과 마지막 환난을 알려 주며 역사의 주권을 행사한다(단 10:4-6; 12:5-7). 세상 왕들이 싸우고 악한 권세가 성도를 핍박해도 역사의 마지막 결정권은 그리스도께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네 모습은 모두 세상 나라를 심판하고 성도를 구하며 영원한 나라를 이루시는 한 분 그리스도에게 모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9장의 초점은 세 번째 모습인 &amp;#39;기름부음을 받은 자&amp;#39;다. 그분은 단순히 한 왕조를 바꾸는 정치적 통치자가 아니다. 죄와 반역을 끝내고 죄악을 속죄하며 영원한 의를 가져올 분이다. 그분이 어떻게 죽음을 통하여 이 일을 이루고 하늘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셨는지를 70이레의 환상이 정밀하게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묵시문학으로서 다니엘서의 구조와 네 환상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1장부터 6장까지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제국의 궁정에서 겪은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한다. 1장에서는 이들이 바벨론 왕궁의 교육을 받게 된 과정이 나오고, 2장에서는 느부갓네살이 본 거대한 신상의 꿈이 나온다. 3장에서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졌다가 살아나오며, 6장에서는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다가 구원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장부터 12장까지는 장차 일어날 일을 상징적인 환상으로 보여 준다. 계시(啓示, revelation)는 하나님께서 감추어진 뜻을 열어 보이시는 것이고, 예언(豫言, prophecy)은 장차 이루어질 일을 미리 선포하는 것이다. 묵시(默示, apocalypse)는 악한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지만 하나님께서 강한 구원자를 보내 악을 심판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신다는 내용을 꿈과 환상과 천사와 짐승 같은 상징으로 보여 준다. 이런 까닭에 다니엘서는 구약 묵시문학의 완전한 모형이라 할 수 있다. 2장과 4장의 느부갓네살의 꿈도 이러한 묵시적 성격을 지닌다. 특히 에스겔서와 스가랴서와 요엘서, 이사야서 24-27장에도 묵시적인 부분이 있으나 그 요소를 종합적으로 갖춘 책은 다니엘서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이 본 네 환상은 다음과 같다. &lt;strong&gt;첫째, 7장의 네 짐승 환상&lt;/strong&gt;이다. 사자와 곰과 표범과 열 뿔 가진 무서운 짐승은 바벨론과 메대&amp;middot;바사와 헬라와 로마 제국을 가리킨다. 작은 뿔이 올라와 성도들을 괴롭히지만 인자 같은 이가 와서 그 권세를 끝낸다(단 7:3-14, 19-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8장의 숫양과 숫염소 환상&lt;/strong&gt;이다. 두 뿔 가진 숫양은 메대와 바사 왕들을, 큰 뿔 가진 숫염소는 헬라 왕을 가리킨다. 큰 뿔이 꺾인 뒤 네 뿔이 나고 그 가운데 작은 뿔이 올라와 성소와 성도를 짓밟지만,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깨뜨려진다(단 8:3-12, 20-2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9장의 70이레 환상이다.&lt;/strong&gt;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와서 끊어짐을 당하고 죄를 속죄하는 초림의 사역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넷째, 10장부터 12장의 세마포 옷 입은 분의 환상이다. &lt;/strong&gt;이는 장차 벌어질 제국들의 충돌과 마지막 구원을 주관하는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도 짐승과 천사와 환상과 전쟁을 통하여 같은 묵시적 구조를 보여 준다. 적그리스도의 핍박과 666 표가 있어도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가 구원(救援, salvation)을 받고, 주께서 오셔서 아마겟돈 전쟁을 끝내심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묵시의 목적은 성도를 공포에 빠뜨리는 데 있지 않다. 악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며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승리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70이레의 세 구간과 그 안에서 성취될 여섯 일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는 히브리어식으로 &amp;lsquo;일흔 개의 이레들&amp;rsquo;, 곧 70&amp;times;7을 뜻한다. 이때 숫자 하나를 한 해로 환산하면 490년이라는 기간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백성 이스라엘과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이 기간을 정하셨다고 말씀해주셨다(단 9:24). 그런데 이러한 490년은 7이레와 62이레와 마지막 1이레라는 세 구간으로 나뉜다. 앞의 두 구간은 69이레, 곧 483년이며 그 뒤에 마지막 한 이레 곧 7년으로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환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적으로 이 예언이 주어진 배경을 먼저 보아야 한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끝난다는 말씀을 깨달았다(렘 25:11-12; 29:10; 단 9:2). 그는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자신과 조상과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포로 생활 70년이 언제 끝나는지만 알려 주지 않으시고, 가브리엘을 보내 이스라엘을 향한 490년의 더 큰 경륜을 계시하셨다(단 9:3-23).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회개(悔改, repentance)할 때 다니엘은 민족의 회복을 넘어 그리스도의 사역까지 보는 보너스의 계시를 받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이 70이레 곧 490년 안에는 여섯 가지 일이 성취될 것이라고 하셨다(단 9:24). 첫째, 반역이 철저히 끝난다. 둘째, 죄들이 마감된다. 셋째, 죄악이 속죄(贖罪, atonement)된다. 넷째, 영원한 의가 나타난다. 다섯째, 환상과 예언이 성취된다. 여섯째,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이 부어진다(단 9:24). 고레스나 아닥사스다 같은 왕은 포로 귀환이나 성전과 성벽의 재건을 명령할 수 있었지만 사람의 죄를 영원히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올 수는 없었다. 고로 이 여섯 가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전히 성취하실 수 있는 것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그것을 예루살렘을 돌이키고 다시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간 때다. 그 명령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통치자가 나타나기까지 7이레와 62이레가 지나가고,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했다(단 9:25). 69이레 뒤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짐을 당하며, 그 뒤 장차 올 통치자의 백성이 예루살렘 성과 성소를 파괴한다고 하였다. 전쟁과 황폐함은 이미 작정되어 있고 대적하는 자의 끝은 홍수처럼 닥칠 것이다(단 9:2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이 예언을 해석할 때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가?&amp;nbsp; 이것을 찾는 일이야말로 이 해석을 제대로 풀어내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왜냐하면 날짜를 중심에 두면 계산에 매이고, 사건만 중심에 두면 성전 파괴에 머물며, 미래의 적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면 초림의 십자가를 놓치기 때문이다. 고로 이 예언은 인물을 중심에 두되 그 인물을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세 구간과 여섯 성취가 하나로 연결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마지막 한 이레의 성취도 중요하다. 마지막 한 이레를 성취할 자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인가? 세대주의는 69이레 다음에 있는 한 이레를 무려 2천년 이상 떼어내서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행할 일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어떤 근거도 없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리스도로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오셔서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세우셨기 때문이다(막 14:24). 그리고 그 이레의 절반인 3년반 후에 그분이 죽으심으로 희생제사와 곡식제사가 그치셨기 때문이다(단 9:27). 그렇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성만찬을 집행하시면서 그분은 자신의 피를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마 26:28). 그러므로 한 이레의 중간에 일어날 그리스도의 죽음은 재림 때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행동이 아니라 초림하신 그리스도가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세우고 구약의 속죄 제사를 단번에 완성하신 사건이라고 해석해야 한다(히 9:11-15; 10:10-18).&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다니엘서 9장 24-27절의 번역에서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70이레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성경 본문 특히&amp;nbsp;&lt;strong&gt;히브리어 원문을 세심하게 살펴 보아야&lt;/strong&gt; 한다. 번역의 작은 차이가 중심인물을 그리스도에서 적그리스도로 바꾸고, 연속된 예언을 먼 미래의 종말 시간표로 옮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개역개정의 다니엘서 9장 24-27절에는 네 가지 중요한 오류와 삭제와 추가가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24절의 &amp;lsquo;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amp;rsquo;는 부분&lt;/strong&gt;이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 표현은 문법적으로 사람만을 가리키는 &amp;lsquo;지극히 거룩한 자&amp;rsquo;로 제한되지 않는 단어이다. 사람이나 장소나 사물을 모두 다 가리킬 수 있는 &amp;lsquo;지극히 거룩한 것&amp;rsquo;이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대목은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이 부어질 것이라고 옮겨야 그 범위를 보존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25절에는 &amp;lsquo;돌이키다&amp;rsquo;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amp;lsquo;슈브&amp;rsquo;가 빠져&amp;nbsp;&lt;/strong&gt;있다. 원문에는 예루살렘을 다시 건축하라는 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예루살렘을 돌이키게 하고, 곧 회개시키라는 단어가 있고 그리고 다시 건축하라는 단어가 나온다. 회개(悔改, repentance)와 재건은 분리되지 않는다. 무너진 성읍의 외형을 세우기 전에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개역개정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빠져 있다. 그런데 성전 건축 이전에 회개시키는 사역이 먼저 있어야 했던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25절의 &amp;lsquo;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amp;rsquo;에서 &amp;lsquo;왕&amp;rsquo;으로 옮긴 단어는 히브리어 &amp;lsquo;멜레크&amp;rsquo;가 아니라 &amp;lsquo;나기드&amp;rsquo;다&lt;/strong&gt;. 나기드는 지도자 또는 통치자를 뜻한다. 고레스나 아닥사스다 같은 왕과, 그 명령을 받아 백성을 이끌었던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를 구별하려면 이 단어를 &amp;lsquo;통치자&amp;rsquo; 또는 &amp;lsquo;지도자&amp;rsquo;로 옮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26절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amp;lsquo;끊어져 없어지는&amp;rsquo; 것이 아니라 &amp;lsquo;끊어짐을 당한다는 뜻이다.&lt;/strong&gt;&amp;rsquo; 히브리어 동사는 수동의 뜻을 가지므로 그가 타인에 의해 죽임당하는 사건을 가리킨다. &amp;lsquo;없어질 것임이요&amp;rsquo;라는 말로 그 존재가 사라지는 듯 번역하면 십자가 뒤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흐름을 놓칠 수 있다. 그분은 끊어짐을 당하겠지만 없어지는 분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27절의 동사는 희생제사와 예물을 &amp;lsquo;금지하다&amp;rsquo;가 아니라 &amp;#39;솨바트&amp;#39;라는 단어로서 &amp;lsquo;그치게 하다&amp;rsquo;라는 뜻을 가진다&lt;/strong&gt;. 그래서 이 단어를 &amp;lsquo;금지한다&amp;rsquo;고 번역하면 미래의 적그리스도가 성전 제사를 폭력으로 중단시키는 장면으로 읽히기 쉽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성경을 번역하던 분들이 이미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amp;lsquo;그치게 한다&amp;rsquo;고 번역하면 예수께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더는 반복 제사가 필요하지 않게 하신 사건임이 분명해진다. 히브리서가 말하듯 그리스도는 단번에 자신을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12; 10:12-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성경 번역도 번역자가 가진 바,&amp;nbsp; 어떤 신학적 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신약 원문을 연구해 온 필자는 앞으로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헬라어 본문을 충실히 옮긴 신약성경을 내고자 준비하고 있다. 구약은 전문 연구자들의 도움과 훈련한 AI도구를 활용하여 히브리어 형태도 살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신학사상을 번역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이 말하는 문법과 문맥을 따라 그대로 번역하여, 성경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성경의 주제인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데에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세대주의의 70이레 해석은 어떻게 초림을 재림으로 바꾸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 세대에 주어진 성경해석 가운데 하나인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최초로 다니엘서와 에스겔 성전과 천년왕국 같은 난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종말론의 빈틈을 상세한 시간표로 채웠기 때문에 많은 교회가 그것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 틀을 표준처럼 따라가면 본문이 말하지 않는 간격을 삽입하고 초림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미래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활동으로 바꾸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존 넬슨 다비는 성경 역사를 일곱 세대로 나누어 시대마다 하나님의 통치와 경영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의 사상은 미국으로 전해졌고, 사이러스 스코필드는 1909년 성경 본문 아래에 세대주의 해석을 붙인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발행했다. 방대한 주석서를 갖기 어려웠던 목회자와 평신도는 한 권으로 본문과 해석을 함께 읽을 수 있었고, 이 성경은 미국 교계에 선풍적인 영향을 일으켰다. 그 결과 이전의 칼뱅주의와 웨슬리안 전통 위에 세대주의 종말론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흐름은 선교에도 큰 열정을 일으켰다. 주님이 곧 오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마지막 시대에 복음을 듣지 못한 나라로 가야 한다고 결단한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다. 학자와 의사로 온 이들은 학교와 병원을 세우며 복음을 전했고, 한국 교회는 큰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의 인재들이 미국에서 신학을 배우고 돌아오면서 환난 전 휴거설(患難前携擧說, pretribulationism)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前千年說, premillennialism)도 널리 퍼졌다. 그러므로 세대주의가 준 선교적 유익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해석의 오류까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대주의는 7이레와 62이레를 연속된 69이레로 보면서도 마지막 한 이레는 거기서 떼어 2천 년이 넘는 교회 시대 뒤로 옮겨버렸다&lt;/strong&gt;. 그리고 &lt;strong&gt;그 마지막 7년을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는 7년 대환난으로 해석하고 있ㄴ다&lt;/strong&gt;. &lt;strong&gt;이레의 절반인 3년 반이 지나면 적그리스도가 그 조약을 깨고 성전의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시간표&lt;/strong&gt;를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다니엘서 9장의 본문은 69이레 뒤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지고, 마지막 한 이레 동안 그가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하며, 그 절반에 희생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다고 말한다(단 9:26-27). 먼저 끊어지게 될, 죽임당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누군가? 그분은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재림(再臨, second coming)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다. 왜냐하면 재림하신 예수께서는 다시 죽으실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다니엘 9장 27절에 나오는 &amp;#39;그&amp;#39;는 초림하셔서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과 굳게 세운 언약도 적그리스도의 평화조약이 아니라 예수께서 피로 세우신 &amp;#39;새 언약&amp;#39;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세대주의는 27절의 &amp;lsquo;그&amp;rsquo;를 적그리스도로, &amp;lsquo;언약&amp;rsquo;을 이스라엘과 맺는 정치적 조약으로, &amp;lsquo;그치게 한다&amp;rsquo;를 &amp;lsquo;금지한다&amp;rsquo;로 바꾸어 읽는다. 그러면 초림의 그리스도가 사라지고 관심은 미래 적그리스도와 7년 대환난과 날짜 계산에 집중된다. 트럼프나 일론 머스크를 적그리스도와 666 체계의 주역으로 지목하는 주장도 나오지만 미래의 인물을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원문에서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70이레의 중심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죽임당하여 언약을 세우는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70이레를 푸는 세 열쇠와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의 예언을 가장 바르게 해석하려면 어떤 성경해석 기준이 필요한가? 그것의&amp;nbsp;&lt;strong&gt;첫째 열쇠는 이 예언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lt;/strong&gt;이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요 5:39; 눅 24:44). 특히 다니엘서 9장 24절의 여섯 가지 일, 곧 반역을 끝내고 죄를 마감하며 죄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예언을 성취하고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을 붓는 일은 오직 예수께서 완성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바사의 초대왕 고레스는 이사야서에서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불리고, 총독 스룹바벨을 보내어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의 길을 열었던 왕이었다(사 44:28-45:1). 바사왕 아닥사스다는 예루살렘 재건을 명령했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백성을 이끈 지도자였다. 그러므로 이들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와 통치자(나기드)의 부분적인 예표가 될 수 있지만 죄를 영원히 없애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중심을 왕이나 지도자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예언의 중심을 죄용서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열쇠는 70&amp;times;7을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구조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70은 7&amp;times;10이며, 여기에 다시 이레의 7을 곱하면 490이 된다. 안식년의 일곱 주기가 지나면 49년이 되고 그 다음 해는 희년이다. 그러므로 490년은 희년의 구조가 열 번 반복되는 충만한 기간이며,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안식과 빚의 탕감과 자유와 기업의 회복을 가져올 것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역대하 기자가 남유다가 가나안땅을 떠나 포로로 잡혀가 70년을 살게 되었던 이유가 그들이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해놓았기 때문이다(대하 36:21). 그러므로 70이레를 정확히 해석하려면 우리는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과 면제년, 그리고 안식년이 7번이 지나서 돌아오는 희년의 뜻과 구조를 살펴보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먼저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lt;/strong&gt;은 가나안 땅을 7년마다 쉬게 하는 제도다(레 25:2-7). 땅은 이스라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맡기신 것이므로 일곱째 해에는 경작하지 않고 자연히 난 소산을 모든 사람이 먹게 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다. 역대하 기자는 예루살렘이 황폐한 70년 동안 땅이 안식을 누림으로 예레미야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해석한다(대하 36:20-21). 가나안 땅의 분배(B.C.1399)에서 바벨론 멸망(B.C.586)까지 약 813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를 7년 단위로 계산하면 안식년은 약 116차례, 희년은 16차례 지켜야 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 안식년을 외면한 불순종이 결국 백성이 땅에서 뽑히는 징계로 돌아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쉼을 주러 오셨다(마 11:28; 12:8). 흙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육체가 죄와 악한 영의 억압으로 안식을 잃었으나,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쳐 육체에도 안식을 주셨다(창 2:7).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풀어 주신 사건이 그 뜻을 보여 준다(눅 13:10-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음으로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lt;/strong&gt;은 동족이 진 빚과 종살이를 일곱째 해에 풀어 주는 제도다(신 15:1-18). 이스라엘은 빚을 끝까지 받으려 하고 종을 놓아주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죄의 빚을 탕감하고 마귀의 종 된 사람을 해방하러 오셨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빚진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게 한다(마 6:12). 베드로가 형제를 일곱 번 용서하면 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마 18:21-22). 70&amp;times;7의 용서는 70이레가 품고 있는 면제의 정신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strong&gt;&amp;nbsp;마지막으로 희년(禧年, jubilee)&lt;/strong&gt;은 안식년 일곱 번, 곧 49년이 지난 뒤 속죄일에 나팔을 불어 자유를 선포하는 해다(레 25:8-22). 희년에는 네 가지가 이루어진다. 첫째, 땅을 쉬게 한다. 둘째, 종을 놓아준다. 셋째, 팔렸던 기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 넷째, 각 사람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스라엘은 이 명령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성령께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께서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이 그날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사 61:1-2; 눅 4:18-21). 그분은 우리 몸에 안식을 주고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풀어 주며, 잃어버린 하늘 기업을 되찾게 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사역은 곧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사람에게 선물하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열쇠&lt;/strong&gt;는 &lt;strong&gt;7이레와 62이레와 1이레를 끊지 않고 연속된 490년으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본문은 마지막 한 이레를 2천 년 뒤로 옮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69이레 뒤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마지막 이레의 절반에 끊어져 새 언약을 세우고 제사를 그치게 한다. 그리스도 중심,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 중심, 연속된 시간이라는 세 열쇠를 함께 사용할 때 70이레의 구조가 하나로 풀린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70이레는 언제 성취되었으며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의 연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점으로 삼아 살펴야 한다. 예수께서는 주후 27년경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마 3:13-17; 행 10:38). 그때부터 약 3년 반 뒤인 주후 30년경, 곧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십자가에서 끊어짐을 당하셨다. 그 죽음으로 많은 사람을 위한 새 언약을 세우고 구약의 희생제사를 완성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기름부음의 시점에서 62이레, 곧 434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408년이며, 다시 7이레인 49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457년에 이른다. 이때는 아닥사스다 왕 제7년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율법을 가르치고 공동체를 돌이키며 재건하도록 명령받은 시기다(스 7:7-10, 25-26). 이 연대는 예루살렘을 돌이키게 하고 다시 건축하라는 말씀이 나간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통치자까지 69이레가 지난다는 예언과 맞아떨어진다.&lt;/p&gt; &lt;p&gt;&lt;img alt=&quot;ChatGPT Image 2026년 9월 13일 오전 02_29_15.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f5232571b33e185ace5fb5219f68b6dc.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남유다 백성의 포로 귀환은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첫째, 고레스의 명령으로 스룹바벨이 백성을 이끌고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작했다(스 1:1-4; 2:1-2). 둘째, 아닥사스다 왕 제7년에 에스라가 돌아와 율법과 예배를 회복했다(스 7:1-10). 셋째, 아닥사스다 왕 제20년에 느헤미야가 돌아와 다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다(느 2:1-8). 고레스와 아닥사스다 왕들은 재건을 명령한 기름부음 받은 도구가 될 수 있었고,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그 명령을 수행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의 최종 목표는 죄를 속죄할 참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데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 끊어짐을 당하신 뒤 약 40년이 지난 주후 70년, &amp;#39;한 통치자의 백성&amp;#39;인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했다. 이는 장차 올 통치자의 백성이 성읍과 성소를 파괴하고 전쟁과 황폐함이 뒤따를 것이라는 말씀의 성취다(단 9:26). 이처럼 시작과 기름부음과 십자가와 성전 파괴의 사건을 역사 속에서 연속적으로 보면 70이레는 미래 적그리스도를 위한 빈 시간표가 아니라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언하는 완성된 예언으로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오늘 우리에게 세 가지를 요구한다. &lt;strong&gt;첫째, 구약성경을 읽을 때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를 힘써야&lt;/strong&gt; 한다는 것이다. 예언의 중심을 적그리스도와 날짜에 두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속죄와 해방과 기업을 누리지 못하고 두려움에 빠지기 때문이다. &lt;strong&gt;둘째, 예수께서는 정치적 해방자가 아니라 영적 메시아로 오셨음&lt;/strong&gt;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로마의 압제에서 풀어 줄 다윗 같은 왕을 원했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8:36). 그분은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고 죄의 종을 풀어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행 10:38; 히 12:22-2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예수께서 이루신 해방의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해야&lt;/strong&gt; 한다. 주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마 28:18-20). 육체와 영혼이 악한 영에게 눌려 안식을 잃은 사람이 회개하면 해방받을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돌아가 하늘의 기업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한다. 이 사명을 감당한 분량에 따라 하늘에서 누릴 지위와 기업도 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가을 절기들의 의미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보아야 한다(레 23:23-43). 먼저 7월 1일 &amp;#39;나팔절&amp;#39;은 모든 신자가 무조건 환난 전에 휴거되는 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속죄일과 아마겟돈 전쟁을 앞두고 참여할 자들을 소집하는 절기로 인식해야 한다(계 16:16; 19:14-21). 그리고 7월 10일 속죄일에는 지성소와 성소와 제단을 성결케 하였듯이, 그날에는 예수님과 함께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악의 무리를 완전히 청산하고 자유와 해방을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되는 초막절의 절기에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완성을 누려야 한다. 그러므로 그날 나팔절에 나팔이 울릴 때 우리가 주님의 군대로 소집되려면 지금부터라도 회개를 실천하여 우리 안의 악한 영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내 속에 간첩이 없어야 그날 하나님의 군대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한다. 악한 영과 내통하는 상태로는 하늘의 군대에 참여할 수 없으며, 충성하지 않는 자는 천국에서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회개가 끝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구원받은 이후부터 진짜 본격적인 회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때가 가까워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하시는데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버틴다면 땅에서 뽑힌 이스라엘처럼 하늘의 생명책에서도 내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계 3:5).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하여 정결(淨潔)해지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안식과 면제와 희년의 복을 누리며, 아직 묶인 자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만난 것과 말씀을 들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은 시간 동안 회개하고 충성하여 천국의 기업을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가 예언한 그리스도의 네 모습과 70이레의 구조, 번역의 쟁점과 역사적 성취,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70이레는 7이레와 62이레와 1이레로 이어지는 490년이며, 그 중심에는 기름부음을 받고 마지막 이레의 절반에 끊어짐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반역과 죄를 끝내고 죄악을 속죄하며 영원한 의를 가져오셨다.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고 반복되던 희생제사를 그치게 하셨다. 그분은 안식년의 쉼과 면제년의 탕감과 희년의 자유를 성취하여 죄와 마귀에게 매인 사람을 풀어 주고,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과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70이레 사이에 2천 년의 간격을 삽입하여 초림의 예언을 미래 적그리스도의 시간표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성경과 번역과 주석을 분별하되, 날짜 계산과 적그리스도에 대한 공포보다 구약 전체가 증언하는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 그분이 이미 이루신 속죄와 해방을 믿고 누리며, 날마다 회개하고 맡겨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안식을 잃은 자에게 그리스도의 쉼을, 죄의 빚과 마귀의 종살이에 묶인 자에게 면제와 자유를, 하늘의 기업을 잃은 자에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길을 전해야 한다.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충만히 알고 우리 안의 악한 영을 제거하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날까지 환난에 흔들리지 않고 천국의 기업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3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ChatGPT Image 2026년 9월 14일 오전 09_02_4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b5f6db20b4bf54ff2a5be55e750ff17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ce308aa2d48a4cad25ba3c2313249a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0898dbe724f0f4ccde84089549f28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b7e265d79ae297976dacff53b21409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3450f49c3aeb07b42cd6cea5aaecaa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6981dbfcd845e60014a0b0798142d7f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a4f2f02d638c52ca7f468c40a06798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b23ca18872c8438f6b82c77dd7a927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d35ed040abe59da1d73a88915386a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bef5ddc36e2ee0ead2d9688a7cc932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8251e525384c9c5918c96d8c37d851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16fbdca774a9e902440bf0056496b0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8049272765739ab4f896ace648172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64a1b4e8e89c72a20425da3080f734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95950895fa00fba382d6f071266304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70_Weeks_Fulfilled_in_Chris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7e9a09c9dd066a19fc1727e3e25e6d3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다니엘의_70이레와_그리스도의_성취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c4a6fae0206bdfd0582760f2205ef54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다니엘서_70이레와_그리스도의_성취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2a16b3da9be38454371d682c432c99d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44f2acfafe3b880405063bb8933b968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e6cbdc04e93faacd3a5e5de289e92c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2a17911287a2ae6b865e573dad055c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3961dfbb1d03e2dac1dbbb77b8a56a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8b569f4da4b371553c39a5a3849e2d4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9fcbe0b4b8b7b6bf2bb37d8063756f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d24dca49c8e99b0712e89c50953391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08fff862f6b7326015ac488e6735b2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4e19e67d88d28396d470fb704dda8b8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aad2763f5de60b9cc9b086132e8652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c5f0d30c0d951ff9dc4010692a73a1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13371f4e5e2ada0c84ca7b9b8b8efa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ab7fda81b73a6d385963c3f9172227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bfa0a4c30bc1a1012490b0d9503360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1)] The_70_Weeks_Fulfilled.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2883/330/266/74bfb09577986db8bc567c8d2299eb7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금요기도회]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축사의 새로운 차원과 방법은 무엇인가?(막5:1~15)_2026-09-11(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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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2T00:39:43+09:00</published>
		<updated>2026-09-12T12:17:0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9-11(금) 금요기도회 제목: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축사의 새로운 차원과 방법은 무엇인가?(막5: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u90Hj8LcmKU [이 설교를 파악하기 위해 던지는 7가지 질문] 1. 예수님은 군대 귀신과 대화하여 어떻게 정체를 드러내셨는가? 2. 귀신과 뱀은 무엇이 다르며 사람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3. 축사받는 사람의 생각과 혀를 통해 귀신의 말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4. 어떤 질문으...</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9-11(금) 금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축사의 새로운 차원과 방법은 무엇인가?(막5:1~1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u90Hj8LcmK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90Hj8LcmK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파악하기 위해 던지는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1. 예수님은 군대 귀신과 대화하여 어떻게 정체를 드러내셨는가?&lt;br /&gt; &amp;nbsp; 2. 귀신과 뱀은 무엇이 다르며 사람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lt;br /&gt; &amp;nbsp; 3. 축사받는 사람의 생각과 혀를 통해 귀신의 말이 어떻게 드러나는가?&lt;br /&gt; &amp;nbsp; 4. 어떤 질문으로 귀신의 정체와 목적을 밝히고 거짓말을 분별하는가?&lt;br /&gt; &amp;nbsp; 5. 대화식 축사자가 갖추어야 할 영적 권세와 무기는 무엇인가?&lt;br /&gt; &amp;nbsp; 6. 회개의 분량과 예물은 악한 영이 떠나는 범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lt;br /&gt; &amp;nbsp; 7. 안전하고 바른 축사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예수님이 거라사 광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 이름을 물으셨던 사례를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대화를 통한 축사의 새로운 차원과 구체적인 방법론&lt;/strong&gt;을 제시합니다. 이때 사역자는 영적 권세와 무기를 갖추어 악한 영을 고문하여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하며, 피사역자는&amp;nbsp;&lt;strong&gt;자신의 혀와 생각을 개방하여 귀신의 정체를 드러냄&lt;/strong&gt;으로써 영적 도둑이 숨어 있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귀신이 나가는 분량은 사역자의 능력보다&amp;nbsp;&lt;strong&gt;대상자의 철저한 회개 분량&lt;/strong&gt;에 의해 결정되므로, 예물을 동반한 지속적인 회개가 집을 파괴하고 영을 떠나보내는 핵심 동력임을 설명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축사 사역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amp;nbsp;&lt;strong&gt;영적 대화라는 실전 기술과 회개라는 근본적 토대&lt;/strong&gt;를 결합하여 신앙인들의 영적 자유를 돕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금요기도회&lt;/p&gt; &lt;h1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예수님께서 사용하신&lt;/h1&gt; &lt;h1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축사의 새로운 차원과 방법은 무엇인가?&lt;/h1&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막 5:1-1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축사(逐邪, deliverance)의 방법에는 여거 가지가 있다. 이번 시간에 나누는 축사 방법은 필자가 축사를 시작한 지 6년 만에 처음 소개하는 새로운 차원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악한 영을 무조건 몰아붙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행하신 것처럼 질문을 통하여 답을 하게 하여 그 정체를 드러낸 뒤에 그것들을 내보내는 방법이다. 예수께서는 군대 귀신에게 &amp;ldquo;네 이름이 무엇이냐?&amp;rdquo;고 물으셨다. 귀신은 &amp;ldquo;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amp;rdquo;라고 대답했고,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막 5:9-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장면은 귀신과 대화하는 행위 자체가 영매 행위가 아님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악한 영에게 지식을 얻거나 도움을 받으려고 질문하지 않으셨다. 숨어 있는 정체와 세력이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어 사람에게서 내보내려고 물으셨다. 그러므로 대화식 축사의 목적은 귀신과 친교하는 데 있지 않고, 거짓말로 숨은 도둑의 정체를 밝혀 예수님의 권세로 떠나보내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악한 영은 자기 정체를 숨길 때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다. 평생 숨어 있다가 사람의 믿음과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마지막에는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특별히 목회자라도 자기 속에는 귀신이 없다고 단정한다면, 악한 영에게 자기의 몸을 안전한 은신처로 내줄 수 있다. 필자 역시 과거에 기도할 때 눈물을 흘리고 주님을 사랑했지만 귀신은 떠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을 미쳤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내게서 어떤 신기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내 안에는 한 마리의 귀신도 없다고 생각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실제 축사 과정을 겪으면서 생각이 엄청 달라졌다. 필자가 축사를 위한 안수를 46번째로 받던 날 비로소 몸 안의 귀신의 집들이 파괴되는 것을 경험했고, 그때까지 치자면 약 2조개가 넘는 악한 영이 떠난 것 같다. 이러한 귀신의 수치와 귀신의 집의 파괴는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체험의 언어이기 때문에 법칙이나 진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귀신과 뱀의 종류, 집의 구조, 계급, 들어온 때와 목적, 부하의 수, 떠날 장소를 하나씩 배우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일명 &amp;#39;대화식 축사&amp;#39;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사역자는 악한 영보다 높은 영적 권세와 성령의 은사를 갖추어야 하고, 축사받는 사람은 충분히 회개하고 와야 한다. 또한 악한 영은 거짓말의 아비에게 속했기에 숫자와 이름과 그들의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서도 안 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예수님께서 군대 귀신과 대화하여 정체를 드러내신 방법이 무엇이며, 오늘의 축사 사역에서 그 방법을 어떻게 안전하고 바르게 적용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수님은 군대 귀신과 대화하여 어떻게 정체를 드러내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만났던 미친 사람은 무덤 사이에 살며 쇠사슬과 고랑도 끊을 만큼 큰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옷도 입지 않은 채, 밤낮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상하게 했다. 그런데 그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절한 뒤 &amp;ldquo;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amp;rdquo;라고 외쳤다(막 5:1-7).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안의 귀신은 예수님의 신분과 권세를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미 그를 향하여 &amp;ldquo;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amp;rdquo;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신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하였다. 여기에서 &amp;lsquo;괴롭히다&amp;rsquo;로 번역된 헬라어 &amp;lsquo;바사니조&amp;rsquo;라는 단어로서, 고통을 주거나 고문한다는 뜻을 가진다. 이처럼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귀신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겼고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갈 곳을 요청했다. 그것이 주변에 있던 돼지떼였다. 축사에서 중요한 것은 악한 영이 자발적으로 선해져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에 굴복하여 나간다는 사실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5:7-8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자 예수께서는 그의 정체를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amp;ldquo;네 이름이 무엇이냐?&amp;rdquo;고 물으셨다. 이름을 묻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귀신으로 규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사람과 귀신을 분리하고, 사람 안에 숨어 있던 악한 세력의 정체와 규모를 밖으로 드러내기 위한 질문이다. 그때 귀신은 자기 이름이 &amp;lsquo;군대&amp;rsquo;이며 수가 아주 많다고 대답했다. 로마 군대의 한 군단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으로, 한 사람 안에 매우 많은 악한 영들이 들어 있었음을 알려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군대 귀신은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돼지떼에게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돼지 떼에게 들어갔고, 돼지들은 바다를 향해 비탈로 내리달아 몰사했다(막 5:10-13). 돼지들도 군대 귀신이 들어오자 미쳐버린 것이다. 그 뒤 귀신 들렸던 사람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 곁에 앉았다(막 5:15). 이제 그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축사의 목적은 귀신을 구경하거나 대화를 길게 이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온전하게 회복시키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질문에는 질서가 있었다. 먼저 나오라고 명령하시고, 저항하는 영에게 고통을 가했다. 그러자 자기를 더이상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는 그 영들의 대장의 이름을 물어 정체를 밝히셨으며, 그의 요청을 들은 뒤 그가 거느리고 있는 2,000마리의 영들을 같이 데리고 떠나도록 허락하셨다. 필자가 사용하는 &lt;strong&gt;&amp;#39;대화식 축사&amp;#39;&lt;/strong&gt;도 바로 이 원리를 따른다. &lt;strong&gt;악한 영의&amp;nbsp;이름과 들어온 때와 목적을 묻고, 그 아래 있는 영들의 범위와 떠날 곳을 확인한 뒤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보내는 것&lt;/strong&gt;이다. 그러나 귀신이 얼마나 떠나게 되는지 여부는 언제나 주님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귀신과 뱀은 무엇이 다르며 사람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귀신론에서는 &lt;strong&gt;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lt;/strong&gt;을 크게 &lt;strong&gt;귀신(鬼神, demon)과 뱀&lt;/strong&gt;으로 구별한다(막 16:17-18, 눅 10:19). 그이러한 구분은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0:19&amp;nbsp;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amp;nbsp;&lt;br /&gt; &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즉 악한 영들에게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쫓아내야 할 귀신들이 있고, 영의 손으로 집어올리거나 발로 짓밟아서 고통을 주어 보내야 할 뱀들과 전갈들이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들 둘 다는 원래 천사들이었지만 타락한 장소와 나타나는 양상이 다르기에 구별하는 것일 뿐 원래는 똑같은 타락한 천사들에 해당한다. 하늘에서 타락하여 내려온 천사들은 영안(靈眼, spiritual sight)으로 보면, 사람이나 짐승의 형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고, 이 땅에서 인간을 섬기도록 보내졌다가 타락한 천사들은 뱀과 전갈 같은 파충류나 곤충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하늘에서 직접 떨어진 귀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늘에서 떨어진 귀신들은 대부분 할아버지와 할머니, 장군, 대사, 보살과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호랑이나 개, 송아지 같은 짐승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조상 제사와 관련된 영은 죽은 조상인 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으로, 싸움과 다툼의 영은 개의 모습으로, 혈기와 분노 또는 산신 숭배와 관련된 영은 호랑이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무당의 영은 대사나 장군 등의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나 필자가 기도 가운데 그들의 겉을 벗겨 보았을 때 안에는 전부다 타락한 천사의 모습을 하고 하고 있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뱀도 그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작은 실뱀부터 시작하여 큰 구렁이와 용의 모습까지 있고, 머리가 둘이나 셋인 뱀도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큰 누런 구렁이는 믿음을 갉아먹고 기도를 방해하는 일과 관련된 영임을 알 수 있었다. 혹시 꿈에 거대한 용이 나타났다면 큰 뱀의 영적 영향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필자 집안의 공중에도 워낙 제사의 영들과 부처의 영들이 많아서 21마리의 용들이 멤돌고 있었다. 그리고 집 둘레에는 무당의 영과 미신 잡신의 영이 진을 치고 있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귀신들과 뱀들은 어떻게 축사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집어 올릴 것이라고 서로 다른 다르게 말씀하셨다. 귀신에게는 나오라고 명령하셨고, 뱀과 전갈에게는 손으로 집어올리든지 발로 밟아서 원수의 능력을 제어하셨다(막 16:17-18; 눅 10:19). 필자는 이 표현을 근거로 귀신과 뱀을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축사 방법도 구별하여 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악한 영들은 사람 안에 집과 방을 만들고 자기 종류에 따라 다른 영들을 불러 모은다. 필자가 본 집에는 흙집, 기와집, 나무집, 쇠집, 놋집과 같은 차이가 있었다. 오래 되면 흙집이 저절로 놋집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큰 계급의 영이 들어와 강한 집을 짓는다. 필자의 경우 가장 파괴하기 어려웠던 놋집은 반짝이는 빛을 띠었고, 방마다 여러 계열의 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집의 우두머리로 사명대사의 형상을 한 영이 있었다고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집안 조상들 중에 불교와 관련된 큰 영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그것들이 내 속에 들어와 나 자신을 불교 지도자로 쓰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불쌍한 사람을 보면 분별하지 못한 채 무조건 돕고 싶은 충동이 매우 강했고, 개척교회 형편이 어려운데도 계속 구제하며 살았다.&amp;nbsp; 그런데 몇 번이고 속이는 자들에게 넘어갈 뻔 하였다. 구제 자체는 선한 행위이지만 속임수까지 분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이 사례는 악한 영의 역사가 언제나 광기나 이상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판단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꿈이나 떠오른 형상 하나만으로 악한 영의 종류가 정확하게 이렇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영적으로 보여지는 상징은 필자의 사역 경험에서 형성된 분별력이며 의학적 검사나 보편적인 진단표는 아니다. 꿈은 스트레스와 기억과 신체 상태의 영향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한 장면보다 지속적인 회개와 말씀, 삶의 열매, 숙련된 사역자의 분별을 함께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축사받는 사람의 생각과 혀를 통해 귀신의 말이 어떻게 드러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사역자로부터 &amp;ldquo;너는 누구냐?&amp;rdquo;라는 질문을 받으면 처음에는 &amp;ldquo;내가 어떻게 아느냐?&amp;rdquo;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필자도 그랬다. 귀신을 눈으로 본 적도 없고 자신이 귀신 들렸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으므로, 머릿속에 있는 영의 이름과 들어온 시기와 목적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 축사를 받을 때 가장 곤란했던 질문이 바로 &amp;ldquo;너는 누구냐?&amp;rdquo;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안이 열린 사람이나 무속의 신기가 강한 사람은 질문을 받는 순간 할머니, 호랑이, 장군, 보살 같은 모습이 떠오를 수 있다. 그러면 보이는 대로 이름을 말한다. 그러나 필자처럼 영안이 가려진 사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숙련된 사역자는 &amp;ldquo;장군이냐, 대사냐, 보살이냐&amp;rdquo;, &amp;ldquo;어릴 때 들어왔느냐, 성인이 된 뒤 들어왔느냐&amp;rdquo;와 같이 몇 가지 선택지를 조심스럽게 제시하여 떠오르는 반응을 살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렇게 귀신과 대화가 가능해지는 원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혀의 기능을 보아야 한다. 혀는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은 신체의 도구다. 평소에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혀를 사용하여 자기의 모국어로 말을 한다. 그런데 오순절에는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들의 혀를 사용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다른(딴) 언어들(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즉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딴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강림과 충만(聖靈充滿,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은 사람으로 하여금 방언(方言, speaking in tongues)을 말하게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사역 경험에 따르면 대화식 축사에서는 사람의 생각에 갑자기 떠오르는 이름이나 시기나 목적을 입으로 말하게 할 때 그 안의 영이 자기 정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본인이 추측하여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도 사역을 반복하면, 질문 직후 특정한 생각과 말이 빠르게 올라온다. 필자와 같이 무당 계열이 아닌 사람에게는 무엇이 보이거나 들려서 말하기보다 그때 문뜩 떠올라서 말을 하게 되는데, 나중에 모면 그때 말하게 된 대부분 영들이 실제와 맞았음을 경험하게 되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지만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귀신의 말이나 하나님의 계시로 확정하면 안 된다. 혹시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믿음이 없거나 귀신이 더 많다고 정죄해서도 안 된다. 말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들이 말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그래도 말을 하지 못할 때에는 그 영이 자신이 누군지를 말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주면 본인도 금방 깨닫고 자신의 혀를 귀신에게 내주어 말을 하게 된다.&amp;nbsp;&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어떤 질문으로 귀신의 정체와 목적을 밝히고 거짓말을 분별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화식 축사에서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그의 신분이나 이름을 묻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첫 질문은 &amp;quot;너는 누구냐?&amp;quot; 혹은 &amp;ldquo;네 이름이 무엇이냐?&amp;rdquo;라고 하면&lt;/strong&gt; 된다. 왜냐하면 그가 어떤 존재라는 것과 그의 이름이 드러나면 그 영이 어떤 계열의 영이며 어떤 죄와 관련되어 들어왔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만약 그의 입에서 &amp;ldquo;대사&amp;rdquo;라는 답이 나온다면, 그다음에는 그가 어떤 대사인지 물으면 된다. 그러면 &amp;quot;무슨 대사야?&amp;quot;하고 물으면 된다. 그래도 대답을 하지 못하면, 선택지를 준다. 예를 들어 &amp;quot;너는 사명대사야, 서산대사야, 원효대사야, 무슨 대사야?&amp;quot;라고 물으면 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혹시 그의 입에서 &amp;ldquo;장군&amp;rdquo;이라는 답이 나오면 그다음에는 어떤 장군인지를 물으면 된다. &amp;quot;넌 장군들 중에 누구야?&amp;quot;, 그래도 답을 못하면, &amp;quot;너는 최영 장군이야, 계백 장군이야, 이순신 장군이야?&amp;quot;라고 물으면 된다. 이때 선택지는 거의 다 억울하게 죽은 장군의 이름을 선택지로 줘야 한다. 행복하게 죽은 장군의 이름은 귀신이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amp;ldquo;보살&amp;rdquo;이라고 답하면, 어떤 보살인지를 더 물으면 된다. 그러면 어떤 이는 &amp;#39;선녀 보살&amp;#39;이라고 말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의 경우 처음에는 내 속에 들어 있는 영의 신분과 이름을 몰랐으나, 선택지를 들은 뒤 사명대사라는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내 머리에 귀신의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의 대장이 사명대사였다. 왜냐하면 영안이 열린 분의 도움으로 내 머리를 보니, 그 안에서 놋으로 만들어진 귀신의 집이 있었고, 그 집 안에는 여러 개들의 방들이 있었으며, 그 안에는 각종 영들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이 놋집의 주인이 사명대사였던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로 그 영이 들어온 시기를 묻는다. 즉 &amp;ldquo;너는 언제 들어왔어?&amp;rdquo; 혹은 &amp;quot;몇 살 때 들어왔어?&amp;quot;고 물으면 &lt;/strong&gt;된다. 그러면 그 영이 자신은 태중에 있을 때인지, 열 살이나 스무 살 무렵인지, 특정한 제사나 굿이나 사건을 통하여 들어왔는지를 말하게 된다. 말을 하지 못하면 선택지를 주면 된다. 때로 물어도 끝까지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 영이 전혀 떠날 마음이 없을 때에 그렇게 한다. 필자는 무당과 관련된 영들이 태중에 있을 때에 들어와 훗날 무당이 되게 하려 했다고 말하는 사례를 여러 번 들었다. 들어온 시기를 알면 그 시기의 가족 역사와 개인의 죄와 상처를 돌아보고 구체적으로 회개케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로는 목적을 물어보는 것이다. &amp;ldquo;너, 무엇 하려고 들어왔어?&amp;rdquo;라고 묻는 것이다&lt;/strong&gt;. 그러면 그 영이 그 사람을 못 믿게 하려고 들어왔는지, 기도를 방해하려 들어왔는지, 혹은 목회를 막으려고 들어왔는지, 무당이 되게 하려고 들어왔는지, 그것도 아니면 암병 주려고 들어왔는지, 우울과 자살 충동을 일으켜 죽이려고 들어왔는지를 말하게 된다. 사역자가 영안이 열렸거나 열린 사역자를 대동할 경우에는 그 영이 몸의 어느 부위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amp;quot;너 여기가 무얼 하려고 했어?&amp;quot;라고 질문을 던지면 좋다. 그래서 살펴보면, 머리에는 주로 뇌출혈이나 중풍, 이명 증상, 치매와 파킨슨병을 주려고 들어왔다고 고백한 것을 들었다. 그리고 복부에는 폐암이나 위암, 췌장암이나 당뇨, 신장암이나 혈액암 같은 것을 주려고 왔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면 추가적으로 질문하기를 &amp;quot;언제 주려고 들어왔어?&amp;quot;, &amp;quot;이 딸에게 언제 암병 주려고 들어왔어?&amp;quot; &amp;quot;몇 달이야 몇 년이야?&amp;quot;라고 물으면 답을 한다. 그리고 더불어 &amp;quot;이 딸을 죽이려고(무당 삼으려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시도했어?&amp;quot;라고 물으면 더 구체적으로 답변을 한다. 그리고 &amp;#39;그런데 왜 못했어?&amp;quot;라고 하면 &amp;quot;이 년이 예수님을 너무 잘 믿잖아. 그래서 못했어.&amp;quot;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amp;quot;그래서 뭐 했어?&amp;quot;라고 물으면 계속해서 답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 영이 무슨 목적으로 그 사람에게 들어왔는지 그가 그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몇 번을 시도했는지, 그리고 안 되니까 무슨 일을 벌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네 번째로 하위 영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묻는다. 즉 우두머리 영에게 &amp;ldquo;네 아래 몇 명이 있어?&amp;rdquo;고 묻는다&lt;/strong&gt;. 그러면 몇 마리가 있다고 대답하는데, 이때 속지 말아야 한다. 귀신은 자신이 계급이 높거나 힘센 영이라고 가장하기 위해 부풀려서 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mp;quot;응, 내 밑에 2만 명이 있지&amp;quot;라고 대답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군대 귀신처럼 큰 영들은 대부분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면 이어 질문하기를 &amp;ldquo;너, 오늘 몇 명 데리고 나갈래?&amp;rdquo;라고 묻는다. 이때 악한 영은 처음에 터무니없이 적게 말하거나, 반대로 실제보다 큰 수를 말하여 속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더 적은 숫자나 더 많은 숫자를 말하면, 그놈도 &amp;quot;아니야, 그것밖에 없어. 그런데 더 없는데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amp;quot;라고 대답한다. 필자가 만난 이순신 장군의 형상을 한 영은 자기 아래 500명이 있다고 대답했으며, 그것보다 훨씬 많은 영을 가지고 있지 않으냐고 되묻자 &amp;quot;아니야. 500명이 다야&amp;quot;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amp;quot;얼마나 데리고 갈래&amp;quot; 했더니, &amp;quot;내 새끼들 내게 데리고 가야지 여기에 두었다고 뭐 하겠어&amp;quot;라고 대답했고, 실제 사역에서도 그 무리가 함께 떠나는 것을 확인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 번째로 떠날 행선지를 묻는 것이다. 이때는 &amp;quot;너 어디로 갈래,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말해 봐&amp;quot;라고 말을 하면 된다&lt;/strong&gt;.&amp;nbsp;그러면 무당 계열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곧잘 이야기한다. 하지만 제사나 무처의 영의 경우에는 말을 잘 못한다. 그러면 선택지를 준다. &amp;quot;너 산으로 갈래, 바다로 갈래, 강으로 갈래?&amp;quot;라고 묻는다. 그래서 그 영이 선택하면, 그곳으로 보내는데, 보낼 장소도 구체적으로 말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다가 딴 곳으로 셀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에서 보면, 무속과 관련된 영은 태백산&amp;middot;삼각산&amp;middot;계룡산&amp;middot;지리산 같은 영산과 용인 민족촌 같은 곳으로 간다고 말하고, 짐승 형상의 영은 백두산&amp;middot;한라산&amp;middot;금강산 같은 명산을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과 관련된 영은 한강이나 다른 강과 바다(동해, 부산 해운대, 목포 앞바다, 군산 앞바다, 심지어는 하와이)를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다에서 신을 받은 영은 바다로 간다고 말하고, 산에서 신을 받은 영은 산으로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나 가정을 목적지로 삼아 보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음부로 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때가 되지 않은 영은 그리로 가지 않는다. 간다고는 하지만 그리로 가지 않는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것 때문에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회개가 충분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에는 음부(陰府, Hades)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무저갱(無底坑, Abyss)은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가두시는 특별한 감옥이므로 우리 성도가 그곳으로 보낼 수는 없다(눅 8:31). 그리고 그 영이 말하는 목적지가 최종적인 장소가 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디로 떠날지에 대한 최종 권한은 주님께 있고, 사역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라고 명령한 뒤 하나님의 처분에 맡겨야 한다. 그런데 경험상 음부로 가는 것보다 산과 강과 바다로 가는 것이 훨씬 더 영이 잘 나가는 것을 보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엇보다 귀신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에게 속한 자들이다(요 8:44). 그러므로 &lt;strong&gt;그의 이름과 숫자와 들어온 시기와 목적과 행선지&lt;/strong&gt;를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같은 질문을 다른 순서로 다시 묻고, 앞뒤가 맞는지 살피며, 영안이 열린 동역자의 분별과 축사를 받는 사람의 실제 역사와 회개 내용도 대조해 보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대화식 축사자가 갖추어야 할 영적 권세와 무기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대화식 축사는 질문만 잘하면 되는가? 평신도라고 다 할 수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귀신에게 질문하고 그것을 답해 주었다고 해서 귀신이나 큰 뱀들을 다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역자가 대화식 축사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최소 2가지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악한 영보다 높은 영권(靈權, spiritual authority)을 가지고 있어야&lt;/strong&gt;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안 나가려고 저항하는 영을 제압할 성령의 은사(恩賜, spiritual gift)와 영적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귀신이나 뱀들은 이미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무장해제되었지만(골 2:15) 원래 계급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도 영적 계급 질서를 따른다. 그러므로 내보내려는 영의 계급이 나보다 더 높으면 그 영들은 사역자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리고 거짓말로 속인다. 그러므로 평신도가 귀신 들린 자나 가족을 붙들어 놓고, 무작정 귀신에게 이름을 묻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마가복음 5장을 보니, 예수님의 권세는 막강했고 절대적이었다. 군대 귀신은 주님을 알아보았고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다. 왜냐하면 이미 주님께서 그 영에게 나오라고 했는데 안 나오니까, 어떤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축사할 때에 악한 영이 견디지 못하도록 두 가지 방식을 쓴다. 첫째는 머리에 불 안수를 한다. 그러면 회개가 된 사람의 경우에는 악한 영이 견딜 수 없어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반응한다. 그리고 몸에 안수를 하면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필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와 무기를 주셨기 때문이다.&amp;nbsp;그래서 필자의 손바닥과 손끝에서 불이 나가는데, 손바닥에서는 빨간 공처럼 불이 나와서 머릿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머리에 안수를 하면 견딜 수 없어서 몸을 부들부들 떤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서는 약한 영들을 상대할 때에는 빨간 불이 나가서 녹여버리고, 강한 영을 상대할 때에는 파란 불이 나가서 그 영들을 뚫어버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필자의 손에는 철장이 쥐어져 있다. 축사 사역을 하라고 주님이 주신 것이다. 이때 철장이란 지휘관에게 주어지는 권한으로서 아랫 영들을 처리할 수 있는 명령권한을 가리킨다(계 2:26-27). 그러므로 &amp;quot;철장 권세로 명하노니, 이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사명대사와 오늘 떠날 영들은 한꺼번에 태백산으로 가!&amp;quot;라고 명령하면, 번개처럼 그것들이 쑥 빠져나와 태백산을 향하여 날아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대화식 축사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참으로 곤란하다. 하지만 이러한 영적 원리를 알면 사역자나 피사역자가 악한 영들을 잘 처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전에는 악한 영의 정체를 묻지 않고 불과 칼의 은사로 몸의 여러 부위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처리했다. 그러면 영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기도 했지만, 어느 부위에 어떤 영이 있는지 알기 어려울 때에는 축사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후 영안이 열린 목회자들이 머리에 무당의 영이 있거나 가슴에 압정과 도끼 같은 물건이 박혀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알려 주면서 사역은 더 확장될 수 있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경험을 통하여 필자는 몸에 박혀 있는 물건뿐만 아니라 영 자체도 결박하여 끌어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군대 천사에게 큰 영의 머리와 가슴과 몸을 결박하라고 명령하고, 영적 집을 작게 만들거나 무너뜨린 뒤 끌어내는 방식도 사용한 것이다. 그래도 저항하면 더 강한 영적 명령을 사용했다. 그러나 사역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필자의 스승에게 배운 대화식 방법을 적용하여 정체와 부하와 행선지를 확인한 뒤 한 번에 내보내는 방식으로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사역자에게 이러한 권세와 능력을 주신 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필자는 스승을 통하여 2년 동안 직접 안수받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사와 영적 무기를 받았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러한 은사를 주셨는지를 매일매일 생각한다. 이것은 곧 있을 예수님의 재림 시에 주님과 함께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하여 악한 영들과 사람들을 상대할 전사를 만들라는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자신이 영안이 열리고 철장 권세를 받었어도 천사나 귀신을 사람 마음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영은 나가지 않으며, 모든 능력과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회개의 분량과 예물은 악한 영이 떠나는 범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피사역자의 입장에서 볼 때, 대화식 축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회개(悔改, repentance)의 정도&lt;/strong&gt;다. 악한 영이 사람 안에 들어오는 데에는 죄 때문에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그 죄를 자백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면, 악한 영들은 사역자가 주는 고통 때문에 떠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나가지 않는다. 또한 악한 영이 나간 뒤 깨끗하게 비어 있는 집에 더 악한 딴 일곱 영들을 데리고 돌아올 수도 있다(마 12:43-45). 그러므로 축사만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죄를 회개해야 하고 사역을 받고 나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아는 한 목회자는 4년 전에 진단을 받았다. 자신에게 엄청난 영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필자의 말을 듣고 그때부터 회개를 시작하였다. 회개하는 동안 다른 사역을 일체 하지 않고 회개에만 집중하여 4년간 회개기도문을 약 2,300번 회개하고 찾아왔다. 그런데 그분은 충분히 회개한 상태였기에 그 안에 들어 있는 큰 영들은 자신의 입으로 자기 정체를 말하고 자기 밑에 있는 부하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이 사례는 횟수 자체가 공로라는 뜻은 아니다. 오랜 시간 죄를 자백하며 악한 영이 붙잡고 있는 근거를 제거하였기 때문에 축사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대로 회개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역자로부터 강한 안수를 받으면 악한 영들이 고통 때문에 즉시 떠나가지만 떠날 이유가 없었기에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딴 악한 영들을 더 데리고 들어오므로 나중 형편이 처음 형편보다 더 나빠지는 것을 보았다. 또한 회개를 해도 덜 된 상태에서 축사를 받으면 그 영들이 자기의 몸 안에서 다른 곳으로 피신한다. 그러므로 축사를 받으려면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적어도 백 번 정도는 회개한 뒤 사역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권장한다. 그러나 100회나 2,300회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기계적인 숫자는 아니다. 하나님은 숫자만 아니라 진실한 자백과 삶의 변화를 보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악한 영이 &amp;ldquo;오늘 500명을 데리고 나가겠다&amp;rdquo;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실제로는 50명만 떠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날 떠날 분량은 사실 사역자나 피사역자 속에 있는 대장 영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축사를 받는 사람이 회개한 분량과 하나님의 허락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귀신이 얼마든지 거짓말로 숫자를 부풀리거나 줄일 수도 있으므로 말한 숫자만 보고 성공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역 뒤에 실제 평안과 믿음과 성품과 생활의 변화를 지속해서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lt;strong&gt;회개의 예물(禮物, offering)&lt;/strong&gt;에 대해서도 바른 질서가 필요하다. 필자는 사역을 받으러 오는 분들에게 절대로 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축사를 돈을 받고 파는 사역으로 만들지는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없으면 내지 않아도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회개와 기도에 힘쓰는 것이다. 감사할 형편이 생겼을 때 그때 자원하여 감사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물은 귀신을 내보내는 수수료나 하나님의 능력을 사는 값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만 필자의 임상적 목회 경험에서는 &lt;strong&gt;진실한 회개와 함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 결단과 헌신의 표현이 되어, 쉽게 떨어지지 않던 영이 떠나가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있었다&lt;/strong&gt;. 특히 사람과 한몸처럼 강하게 붙어 성적인 음란한 꿈과 귀접(鬼接)을 일으키는 영을 처리할 때는 더욱 그런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는 법칙이 아니며, 예물을 많이 내면 더 많이 나간다는 것도 아니다. 가난한 사람을 배제하거나 두려움을 이용하여 돈을 요구하는 것은 복음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lt;strong&gt;회개의 분량은 단순한 횟수가 아니라 죄의 뿌리를 얼마나 정직하게 드러내고 끊었는지를 말해주는 것&lt;/strong&gt;이다. &amp;ldquo;무슨 죄를 지었습니다&amp;rdquo;라고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그 죄를 통하여 &amp;ldquo;무슨 영을 받아들였습니다&amp;rdquo;라고 인정하며, 그 뒤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삶을 돌이켜야 한다.&lt;strong&gt; 회개와 정결(淨潔, purification)이 깊어질수록 악한 영의 권리는 약해지고, 사역자는 더 적은 시간과 명령으로 그 영을 내보낼 수&lt;/strong&gt;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안전하고 바른 축사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안전하고 바른 축사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축사의 목적은 사람을 살리고 온전하게 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귀신의 이름과 수를 알아내는 일이 중심이 아니다. 거라사 사람은 축사 뒤의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 곁에 앉았다. 그러므로 사역의 열매는 얼마나 극적인 반응이 나왔느냐가 아니라 믿음과 평안과 절제와 일상생활이 회복되는지로 살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5: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충분한 회개가 먼저라는 것&lt;/strong&gt;이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 강한 사역을 서둘러 시행하면 영이 숨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본인이 자유롭게 동의한 상태에서 죄를 자백하고 말씀과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사역 뒤에도 회개와 예배와 말씀과 순종을 계속하여 비워진 자리를 성령으로 채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자신의 영적 권한을 넘어서는 일을 함부로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대화식 축사는 영권과 은사와 경험을 갖춘 사역자의 지도 아래 진행해야 한다. 특히 큰 계급의 영이나 많은 부하를 거느린 영을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상대하면 거짓말에 속거나 두려움에 빠질 수 있다. 사역자는 동역자와 함께 분별하고, 모든 명령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허락 아래 행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귀신의 말을 절대화하지 말아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이름과 숫자와 질병과 미래의 사고에 관한 말은 모두 검증 대상이다. 특정 사람을 원인으로 지목하거나 누군가를 저주하고, 들은 말을 근거로 가족 관계를 끊거나 재산을 처분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나타나는 신체 질환에 대해서는 의료 검사로, 법률과 재정 문제는 해당 전문가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폭행과 강압을 금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불과 칼과 철장과 결박과 집의 파괴는 영적 기도 언어다. 사람을 때리거나 흔들거나 넘어뜨리고, 가슴을 압박하거나 목을 조르며, 숨을 못 쉬게 하는 행위는 축사가 아니다. 경련, 실신, 심한 구토, 흉통, 호흡곤란, 의식 저하가 나타나면 즉시 사역을 멈추고 119와 응급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예물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도 자유롭게 말씀을 듣고 기도와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역비나 감사 예물이 축사의 효력과 구원을 결정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자원하는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지만, 공포와 죄책감을 이용한 모금은 금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일곱째, 악한 영의 행선지와 최종 처분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가정에, 교회에 보내거나 저주해서는 안 된다. 음부와 무저갱의 기능도 구별해야 한다. 필자의 신학에서 음부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최후 심판 전까지 머무는 임시 처소이며, 무저갱은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가두시는 특별 감옥으로 여기고 있다. 사람이 자기 권세를 과시하며 무저갱을 명령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과 천사의 집행에 맡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마지막으로 사역자 자신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회개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귀신의 집이 파괴된 뒤에도 악한 영은 다시 들어갈 틈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스승에게 찾아가 내게 숨어 있는 영이 없는지 늘 점검받는. 목회자라고 안전지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높이지 않고 말씀과 회개와 공동체의 검증 아래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안전하게 섬길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예수님께서 군대 귀신과 대화하여 정체를 드러내신 사건, 귀신과 뱀의 차이, 생각과 혀를 통한 말의 드러남, 질문과 거짓말의 분별, 사역자의 영적 권세, 회개와 예물의 역할, 안전한 축사의 원칙을 살펴보았다. &lt;strong&gt;대화식 축사는 귀신과 친교하는 영매 행위가 아니라 숨어 있는 악한 영의 정체를 밝혀 사람에게서 내보내는 사역&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먼저 더러운 귀신에게 나오라고 명령하시고 이름을 물으셨다. 군대 귀신이 자기 수와 요청을 말하자 주님은 그들을 내보내고 고통받던 사람을 온전하게 회복하셨다. 오늘의 사역도 &lt;strong&gt;이름과 들어온 시기와 목적과 부하와 행선지&lt;/strong&gt;를 묻되 귀신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예수님의 권세로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사역 경험에서는 악한 영이 사람과 짐승의 모습으로, 또는 여러 크기의 뱀으로 나타나며 몸 안에 집과 방을 만든다. 이때는 성령의 불과 칼과 철장과 군대 천사를 통하여 그것을 처리하는 영적 명령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몸에 폭력을 가하라는 뜻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것이 모든 사역의 안전선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축사의 열매는 회개와 연결된다. 회개기도문의 횟수는 공로가 아니지만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끊는 시간이 쌓일수록 악한 영이 붙잡은 근거가 약해진다. 예물도 능력을 사는 값이 아니며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도 차별 없이 돌봄을 받아야 하고, 감사 예물은 오직 자유로운 결정이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현상과 질병을 함부로 혼동하지 말고, 목회적 분별과 의학적 진료를 안전하게 병행해야 한다. 사역자와 축사를 받는 사람 모두 날마다 회개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채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충분한 회개와 바른 분별과 예수 이름의 권세로 악한 영의 정체를 드러내어 내보내고 고통받는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안전하게 회복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1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hatGPT Image 2026년 9월 12일 오후 12_13_5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8cdce9c2118c0ab0d1d38eef802f661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f56e2d8476aacc6959853a3e8e6aefa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dcad19f92c383b2a6739d54d93605c6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211aa77839b7fd526d31566b1eb07e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972023b3498d7e9e785bd9826a71f56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427b3e33219678ad1ce58e941fff044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83de0870b6835286fe6e04fe65ef34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7cc8ee98b2612755c1154569bcc2f7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2c4dba2d93c6e88ae411280681e4e4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8feca102f456b459f3aec33525d362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738968e69efac5932891b83052b7a9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e60e9c9a8ded2254c6629769fea125a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d27795b8eb22fa06ad21a2e618f7d55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ec97621201f4392659bb7e285d6cee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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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Protocol.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78d824c11fbd0cd3ef3a349269e489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Protocol.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c2a02cbee23d982a6e5fa840cf9d09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Protocol.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9359b2412c4de28327937c0db70bca1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Protocol.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cd0b99846c03d11263b5c217163eb68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Protocol.pdf_5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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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Protocol.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e934dd80795598c68c1bf0b4417e835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Protocol.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f476cd4d31f77788ffc7199d0a55cd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금요기도회(26.09.11)] Conversational_Deliverance_Protocol.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3013/268/266/6a424ccde15791bc15c9d1a6de58329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