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의 은사] 사도행전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방언을 하라(행2:1~4)_2023-09-22(금)

by 갈렙 posted Sep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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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2(금) 금요기도회

제목: [방언의 은사] 사도행전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방언을 하라(행2: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HKBf_xZ8I9g [또는 https://tv.naver.com/v/40877816]

 

1. 들어가며

  예수님의 수제자는 베드로다. 그는 공생애 초기에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로로서 부르심을 받았다. 특히 그는 '고기잡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성령받고 복음을 전해주었던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는 낚시로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말씀처럼 그는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 그래서 한 번에 3,000명과 5,000명을 전도할 수 있었다. 한편 공관복음서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성령받기 전까지는 그 에게 능력이 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열심은 있어으나 오히려 주님께서 책망드는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나약했던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이후부터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 시작한다.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는가 하면, 중풍병자를 일으키고, 죽은 다비다마마저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드로에게 성령받기 전과 성령받은 이후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것은 기도할 때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하나 더 추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체 방언이 무엇이길래 베드로는 기적을 일으키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말인가? 그것은 그가 영으로 기도하는 것에 었다. 곧 방언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방언이란 애체 무엇을 가리키며, 그 오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방언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방언을 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방언에 대한 논란은 무엇이며, 방언의 실체는 무엇인가?

  방언이란 무엇인가? 방언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외국어'다. 어떤 사람은 '고린도현상'이다. 어떤 사람은 '마귀(귀신)이 지껄이는 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역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쓰임받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언에 관한 말씀도 헬라어원문으로 보아야 한다. 

  방언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사실 우리 주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있었다. 그것은 믿는 자는 누구든지 방언을 말하게 된다고 하셨다(막16:17). 그리고 방언은 일종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셨다(막16:17).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인 고린도전서에서, 방언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 곧 신령한 은사라고 언급하고 있다(고전12:10). 누구의 말이 맞는가?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헬라어 워문으로 보았을 때에, 예수님의 말씀(막16:17)과 사도바울의 증언(고전14:5)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둘 다 "방언들('글로싸이', 복수)로 발언하는 것('랄레오', 동사)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사도행전에 2장에 나오는 방언('글로싸', 단수)은 단지 '외국어'였을 뿐이고,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글로싸)는 귀신들린 사람들이 말하는 고린도현상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헬라어를 보라. 단어철자 하나도 틀리지 않는 똑같은 말인 것이이다.

  그렇다면, 방언은 이 세상에서 발언되고 있는 언어인가 천상의 언어인가? 예수께서 최초로 언급하셨던 '방언'(글로싸)를 보면, 그것이 어떤 말이었는지를 사실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것에 대해서 주님의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만 사도바울이 말한 정의에서 그 뜻이 나온다(고전14:2). 그것은 결국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특수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 도바울은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말을 공중에서 예배에서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통역을 세우라고 하였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사실은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방언('글로싸')(막16:17)이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글로싸')(행2:6,8 10:46, 19:6)이나 그리고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 언급하고 있는 방언(고전12장, 13장, 14장)은 다 똑같은 단어 곧 '글로싸'라고 쓰였다는 사실이이다. 고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방언(막16:17)과 사도행전 2장에서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의 방언(행2:4), 그리고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집안의 방언(행10:46)과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사울이 가서 안수함으로 에베소 성도들이 받았던 방언(행19:6)은 다 똑같은 방언이었던 것이다. 

 

3. 방언이란 어떤 종류의 것을 가리키는가?

  우리는 방언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예수님의 언급과 사도행전의 기록과 사도바울의 기록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방언은 새 언이며, 딴 언어라는 것이다.

  방언에 대해 예수께서는 그때 제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아람어가 아니라 새로운 말(정확히는 '혀'의 발성기관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라고 말씀하셨다(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곧 그들이 새 방언[들]을 말하며(발성하며)"(막16:17). 고로 우리는 제자들이 사용하던 언어 곧 아람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방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저자 의사 누가는 그것을 '다른 언어들'이라고 언급했다(행2:4). 그런데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그것은 '딴 언어들"이라고도 번역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여기서 '다른'이라는 단어가, 같은 종류의 다른 것을 언급하는 '다른'이라는 뜻의 '알로스(other, another)'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다른 것 곧 딴이라는 의미의 '헤테로스(different)'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2:4에 나오는 '헤테로스'를 NIV성경은 'other(다른)'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우리말 개역개정성경 역시 '다른'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아니다. 방언은 이 세상에 속한 언어가 아니다. 딴 종류의 언어인 것이다. 즉 천사의 언어처럼 하늘에 속한 언어, 영이 말하는 언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인 것이다. 

  둘째, 방언은 표적으로 주어진 말이지만 또한 초자연적인 은사로서 여러가지 종류의 언어가 주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방언은 '표적'으로 주어지는 방언이면서 동시에 '초자연적인 은사'로서 주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방언이 표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모든 사람들은 다 방언으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불신자가 거듭날 때 자기 속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새 생명인 저 아버지의 생명을 아들을 통해서 자기 안에 생명을 분배해줌으로 그 영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아기가 태어나면 말을 하듯이, 영도 새로 거듭 태어나면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일종의 표적인 것이다. 특히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말하는 있는 방언을 가리켜, 하나님의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 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방언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고전14:22). 그런데 사도바울은 방언이 표적이지만 또한 은사로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것은 고전12:10에 나오는데, 그 단어를 헬라어로 보면, '게네 글로쏜'이다. 이 말은 '방언들의 종류들'이라는 말이지만, 좀 더 정확히 번역하면, "방언들의 다른 출생'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며, 하늘에 속한 초자연적인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해보면 엄청 다른 종류의 말이 나온다. 수 백가지라고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다. 그중에는 진짜 자신이 배우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의 말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

 

4.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은 어떤 방언이었는가?

  그렇다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 곧 성령강림을 기다리면서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이들에게 주어진 방언은 어떤 방언이었을까? 그들은 주님의 지시를 따라, 사실 구약시대에 이미 약속된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성령의 내주와 동시에 성령세례에 관한 약속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거룩한 영을 맞아들이기 위해 회개하면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성령이 오시기까지 오로지 기도에 힘쓴 것이다. 그러자 그때로부터 10일뒤인  오순절날이 이르자, 아침 9경에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려오셨다. 그러자 그들 각자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성령이 말하기 하심을 따라 "딴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했던 방언이란 대체 어떤 방언이었을까?

  문제는 이때 120명의 성도들이 말하는그 방언을 듣고 찾아온 15개국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반응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각자가 자기들의 언어('디아레크토',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당시 120명의 사람들은 갈릴리 촌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했다.  갈릴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보면, 그날 120명의 성도들이 외국어를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그러한 가능성이 100%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날 그들이 말한 방언이 고린도전서 12:10에 언급된 '각종 방언들 말함'으로서, 자신들도 배우지 않은 언어인 '외국어'를 말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기록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것은 사도행전 2장 11절의 말씀이다. 15개국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들(글로싸)로 말하는 것을 듣는도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만약 120명의 성도들이 진짜 15개국 나라의 말로 말했다면, 15개국에서 온 유대인들은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들(디아레크노)로 말하는 것을 듣는다도"라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의 언어들('글로싸이스')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날은 다른 무리들도 그들 중에 있었다. 그들은 120명의 성도들의 방언을 '디아레크토'로 듣지 못했던 자들이다. 누가복음의 기자는 그들을 딴('헤테로스') 종류의 사람들이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게 그들의 반응는 어떠했는가? 그것은 이은 아침부터 120명의 성도들이 술취한 것이라고 조롱했다(행2:13). 그러므로 120명의 성도들이 딴 무리들도 똑똑히 들리는 외국어로 말했다면, 그들은 결코 120명이 말하는 방언을 듣고 술취한 것이라고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귀에 120명 성도들의 방언은 술취한 이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들렸기 때문에 그렇게 반응한 것이다.  딴 무리들은 성령의 역사에 전혀 감각이 없는 사람이었거나 불신앙적인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귀에는 자기들이 사용하는 모국어로 들린 것이 아니라, 미친 사람들의 흥얼거림으로 들렸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의 날에,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이 성도들은 그날 표적으로서의 방언(글로싸) 곧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15개국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은사로서의 방언을 같이 한 것이다. 그랬다. 그날 하나님께서는 15개국 사람들이 변화되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고 구원을 받아서 교회가 탄생할 수 있도록,  자기들에게는 120명 성도들이 말하고 있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글로싸')가 자기들이 사용하는 모국어('디아레크토')로 들리게 한 것이다. 그렇지만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무릳르의 귀에근 그 방언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들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 터진 방언은 '표적'으로서의 방언임과 동시에 '은사로서의 방언'이었던것이다. 그러므로 그날 터진 방언을 가리켜, 은사로서의 방언 중에 '대국방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5. 방언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이상의 사실을 통해 우리는 방언에는 '표적으로서의 방언'과 '은사로서의 방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거듭난 성도들은 누구든지 표적으로서의 방언 곧 알아들을 수 없는 딴 언어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거기에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은사로서의 방언을 받아서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다른 출생을 갖는 새로운 방언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전12:10). 그래서 여러가지 방언을 할 수 있는데, 먼저는 말을 하는 대상에 따라 '대신방언', '대인방언', '대물방언', '대국방언'이 있다. 즉  은사로서의 방언에는 하나님께 말하는 방언이  '대신방언'이 있다. 그리고 '대인방언'도 있다. 어떤 개인에게 말하는데 그 사람이 그 방언을 알아듣는 방언인 것이이다. 또한 '대물방언'도 있다. 이는 새들과 꽃들과 대화를 하는 방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국방언'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면 듣는 자가 각기 자기나라의 말로 방언을 알아듣는 것이다. 

  그런데 방언을 발음이 나오는 소리에 따라 구분하면 소위 "애기방언', '언어방언', 대적방언'이 있다. '애기방언'이라 함은 주로 '랄랄라'는 말로 방언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좀 더 유창하게 언어적으로 나오는 '언어 방언'도 있는데, 그것을 가리켜 '언어방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귀신을 쫓을 때에는 '단파방언'(능력방언, 대적방언)을 사용한다. 이때 방언은 주로 단파로 딱딱딱 끊어져 나오는데, "다다다, 두두두, 파파파" 이런 식으로 나온다. 

  그리고 방언은 그 쓰임새에 따라 다르게 분류할 수도 있으니, '대화방언', '방언기도', '방언찬양', '축복방언(혹은 책망방언')도 있다. 다시 말해, 방언에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언이 있고(대화방언, 고전14:2),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언도 있는 것이다(고전14:14, 방언기도). 그리고 찬양하는 방언도 있으며(고전14:15, 방언찬양), 다른 사람을 주께서 직접 축복하는 방언(고전14:15, 축복방언)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방언을 통역해보면, 주님께서 그 성도에게 예언적으로 말씀하는 축복방언(반대로는 책망방언)이 한 90%가량 나오고, 나머지가 자기가 하나님께 방언으로 기도하는 내용이 나온다. 

 

6. 방언의 유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방언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주는가? 그것은 이전에 전했던 메시지들을 씨리즈로 정리해놓았으니 그것을 동탄명성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확인해보기 바란다. 오늘은 그것에다가 아주 중요한 한 가지 것을 더 말씀드리겨고 한다. 

  먼저, 기존에 말씀드셨던 방언의 유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님과 더욱도 친밀하게 대화하고 주님을 찬양하되 영으로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주님과 영으로 직접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둘째, 방언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고 틀린 기도나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가 하나도 없다 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말로 드리는 기도는 벌써 우리의 개인적인 욕심과 세상의 욕망이 섞여 들여간다. 그러나 방언은 절대 그러한 기도가 단 하나도 안 나온다는 것이다. 셋째, 방언은 영권을 강화시키는 아주 중요한 도구라는 것이다. 영권이 강해지려면 영이 강해져야 한다. 방언은 영을 강해지도록 담금질하는 거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많이 말할수록 영이 강해진다. 넷째, 방언은 다른 은사를 가져오는 통로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방언을 하지 않는데, 방언통역이나 예언을 할 수 없다. 그리고 환상이나 꿈의 은사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귀신쫓는 것이나 병자를 치유하는데에도 한계가 있다. 다섯째, 방언은 오래동안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알아듣는 말로 기도하면 조금만 기도하면 할 말이 별로 없다. 하지만 방언으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무려 10시간 이상도 기도할 수 있다. 여섯째, 방언은 통역이 가능하다면 지금 나에게 혹은 다른 대상(개인, 교회, 국가,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내 영이 무슨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일곱째, 방언이 은사방언으로 나타나 대인방언과 대국방언으로 나타난다면, 전혀 언어가 다른 소수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처음으로 말씀하는 방언의 효능에 대해 추가로 더 말씀드리고자 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방언은 나에게 능력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이는 방언이 곧 내게 능력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방언이 곧 능력이라는 도식이 직접적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언이 능력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차례대로 살펴보면 금방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 방언은 어떤 상태에서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람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다(행2:1~4). 성령이 그를 사로잡아 장악하게 되면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성령세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성령이 제자들에게 부어지면 제자들이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행1:8).그런데 성령께서 오실 때에는 천사들을 데리고 온다.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 모인 모든 성도들의 머리 위에 각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있었는데, 사실 그 실체를 살펴보면 불을 다스리는 천사들이다(행2:3, 히1:7). 천국에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있기 때문이다(계14:18). 그리고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이 땅에 성령을 보내실 때, 달랑 성령 혼자만 보내신 것이 아니다. 당연히 천사들이 같이 온 것이다. 그런데 그때 성령님과 동행한 천사들은 성령의 지시를 받는 천사들이요,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선물을 자세히 보면, 천사들로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고로 귀신을 축사하고 병든 자를 고칠 때에는 천사들이 와서 일한다. 즉 하늘에서 귀신잡는 군대천사가 내려와서 귀신을 결박하여 끌고가며, 병든 자를 고칠 때에는 병을 치료하는 천사들이 내려와서 병을 고친다.

  그런데 천사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따고 말한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손 곧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셨다고 하셨다. 이때 예수께도 천사들이 붙어서 일을 한 것이다. 시편말씀을 보라. 

시103:20-22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1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2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렇다. 천사들은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 천사들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그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일을 하고 있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능력을 받았다는 것은 능력의 천사를 부릴 수 있는 더 큰 권한이 부여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 천사들을 자유롭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면,  다른 말로, 천사를 부릴 수 있는 은사가 그에게 주어졌다면 그에게서 더 크고 많은 능력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를 부릴 수 있는 권한은 그의 영적 계급과 비례한다. 그러니까 영권이란 그가 얼마나 천사를 부릴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더 크고 더 많은 천사들이 많이 파송되는가? 그것은 기도에 전념할 때다. 우리가 기도하면 천사가 파송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도 이러한 사실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이 되었을 때, 120명의 성도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그랬더니 오순절날에 그들에게 성령과 함께 천사들이 불처럼 바람처럼 내려왔다(행2:2~3, 히1:7). 기도하면 천사가 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12장에 보니,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성도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를 했다(행12:5). 그러자 주님께서 보낸 천사가 베드로를 구출하려고 왔다(행12:7). 그렇다. 기도하면 이처럼 천사가 파송되는 것이다. 그런데 천사는 능력을 갖고 있는 천사다. 그리고 천사가 오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언기도란 무엇인가? 이것도 일종의 기도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해도 천사가 파송되는 것이다. 그런데 방언기도는 일반기도에 비해 더 강력한 천사와 더 많은 천사가 파송된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만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면 능력의 천사들이 오는데, 더 강력하고 더 많은 천사들이 파송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파송하시는 천사들이다. 그리고 천사들은 구원얻을 상속자로 섬기도록 파송되는 존재들이므로(히1:14),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하면서 때로는 그들에게 일할 수 있도록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사들을 부릴 수 있는 것에는 기도가 있고, 또한 기도 중에는 방언기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하되 방언기도를 통하여, 더큰 천사들과 더 많은 천사들을 파송받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방언기도인 것이다. 

 

7. 나오며

  누군가가 방언을 기도한다고 해서 다 똑같은 방언이라고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영권을 더 가진 자의 기도와 방언기도는 더 큰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의 기도와 명령은 더 크고 더 많은 천사들로 하여금 일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방언기도의 능력이다. 그러나 한 술에 배부를 사람이 없는 것처럼, 처음부터 한 번에 큰 능력을 발취하는 사람은 없다. 아직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회개하고, 더 많이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영권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언을 많이 해야 영권이 올라간다. 그리고 영권이 올라갈수록 능력은 더 많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더 큰 천사와 더 많은 천사가 파송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더 많은 능력이 나타나게 하려면 방언을 하라. 사도행전에 나온 것처럼 방언을 하라. 사실 성령을 받기 전까지 제자들에게는 거의 능력이 없었다. 파송된 천사들이 적었고 또한 큰 천사들도 달라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전부터 그들은 전념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강력한 기도를 해야만 했다. 특히 방언기도는 오순절 이후에 덧붙혀진 놀라운 기도가 되었다. 왜냐하면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 더 큰 천사와 더 많은 천사가 내려와서 일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에게 있어서 방언받기 전의 기도와 방언을 받은 후의 기도는 그 양상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더 큰 능력을 맛보기 원한다면, 더 많이 더 자주 방언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루에 1~2시간은 기본이고, 많게는 5~6시간, 10시까지도 방언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놀라운 능력들이 자기에게 나타나하게 된다. 

 

2023년 09월 22일(금)

정보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