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20) 초막절에 행하신 생수의 강 설교와 예수님의 진정한 신분(요7:1~53)_2022-11-23(수)

by 갈렙 posted Dec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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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3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스물넷째주일)
[제  목] 요한복음강해(20) 초막절에 행하신 생수의 강 설교와 예수님의 진정한 신분(요7:1~53)
[찬  송] 찬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찬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찬 333장 충성하라 죽도록
[말  씀] 요7:1~53(신약 155면)
[키워드] 초막절,예수님의 형제들,유대인들,무리들,산헤드린공회원,생수의강,때,바리새인들,생수의강설교,그리스도,선지자,체포하지못함,.니고데모,갈릴리

 

1. 서론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가장 심오한 복음서이다. 기적이 7가지가 나오기는 하지만 기적에 대한 찬양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공관복음서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책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가복음이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복음이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가 땅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의 인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서는 하늘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1) 제 목 : 헬라어 원전의 카타 요안넨(요한에 의한)’이라는 원래의 제목에 기쁜 소식을 뜻하는 단어가 덧붙여져서 요한복음으로 명명됨.

2) 저 자 : 예수님의 행적과 사역의 직접 목격자이며(1:14 ; 19:35 ; 21:24.25), ‘예수의 사랑하시는 자(13:23 ; 19:26; 20:2; 21:7,20,24)로 소개된 사도 요한, 초대 교회의 각종 전승들과 교부들의 서신들이 모두 요한의 저작을 확증함.

3)기록연대 : 공관복음서 작성이 완료된 A.D.70년 이후로부터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된 A.D. 95년 사이, 예루살렘 함락(A. D. 70)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 1세기 말에 기록된 요한 서신들보다 앞서 기록되었다고 간주되는 점을 종합하면 기록 시기를 약 A.D. 80-90년 사이로 좁혀서 추정할 수 있음.

4)수 신 자 :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포함한 헬라 세계의 독자들

5)내 용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때 생명을 얻게 됨을 증거하는 복음서 (20:31).

6)요한복음의 구분

크게는 세 부분으로, 서론(1:1~18), 본론(1:19~20), 결론(21)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지만 작게는 5가지 부분으로도 나눠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1:1~18). 둘째, 하나님의 아들의 나타나심(1:19-4). 셋째,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거부(5-12). 넷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교훈(13-17). 다섯째,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과 부활(18-21).

요한복음의 내용 구조는 전체적으로 다섯 부분으로 파악할 수 있다. 1:1-18까지요한복음의 신학적 서론(Prologue), 1:19-12:50까지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와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의 공적 사역, 13:1-17:26까지다락방 강화, 18:1-20:31까지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마지막 21결론(Epilogue) 부분이다. 그러니까 서론과 결론 부분을 제외하면, 예수님의 사역의 개시와 부활에 이르는 전과정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본서의 신학적 서론 부분인 1:1-18성자 예수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또한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어, 세상의 빛으로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서론적으로 밝히고 있다.

다음 1:19-12:50 주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보도하고 있는 공관복음과는 달리, 유대와 예루살렘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보도하고 있다. 이 부분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의 표적들(Seven Signs)그와 연관된 선언들(Proclamations)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성자 예수께서 자신 및 성부 하나님을 세상에 계시하시는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 부분을 좀 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9~2:12예수께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 예수님과 처음 제자들과의 만남제자들의 신앙 고백, 그리고 예수의 신성을 입증한 1표적인 가나 혼인 잔치의 이적을 보도하고 있다. 이는 서론 부분에서 나타난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증거(Witness)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사역이 시작됨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어 2:13~3:36까지는 공생애 사역 개시 후 첫번째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을 기점으로 일정 기간 동안의 사역을 보도하고 있는데, 곧 예루살렘 성전을 숙청하신 사건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유대 지방에서 머무신 내용예수께 대한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거에 관해 보도하고 있다. 이어 제4장은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 다시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오시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사마리아 지역을 경유하실 때 예수께서는 수가 성의 한 여인구원하시고 또 그 일을 통해 많은 사마리아인들을 회심하게 하신다. 그리고 가버나움에 돌아오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2의 표적으로서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신다.

이어 제5장에서는 공생애 시작 후 두번째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3표적으로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이를 둘러싼 사건들을 보도하고 있으며, 6장에서는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4표적으로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오병 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5표적으로서 물 위를 걸으신 이적, 그리고 오병이어의 이적과 관련하여 추종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주신 생명의 떡에 관한 주님의 교훈들을 보도하고 있다. 또 제5, 6장에서는 표적들로 인하여 예수님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됨과 동시에 예수께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배척과 무리들의 오해가 대두되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어 7:1-10:42까지는 다시 예루살렘에서의 초막절을 전후한 사역들을 보도하고 있다. 이 즈음에 이미 예수께서는 명절을 맞아 모여든 군중들의 이야깃거리의 중심이 될 정도로 커다란 관심 및 의혹의 대상이 되어 있었으며,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는 첨예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결국 성전에서의 논쟁을 기회로 예수에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체포령을 내리는계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예수를 배척하게 된다. 한편, 예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위축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공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며,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6표적소경의 눈을 치유하는 이적을 행하시며, 특히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로서의 자기 선언 (Self-Proclamation)을 하신다.

이어 11,12은 유대인들의 배척을 피해 잠시 베레아로 피신하셨던 예수께서 다시 예루살렘 인근 베다니로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의 향유 도유 사건, 그리고 헬라인들의 예수 방문 사건 등을 보도하고 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예수께서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기 위해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 중 마지막 제7표적으로서 가장 큰 표적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요한복음에서 진정한 표적 중의 표적인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력히 예표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또 마리아의 향유 도유 사건과 헬라인들의 방문은 모두 예수님의 수난 사건이 임박하였음을 시사하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볼 때, 11,12장은 표적들의 장(the Chapters of the Signs)이라고 할 수 있는 1:19-12:50까지의 종결 부분이면서, 다음 제13장 이후의 내용으로 이어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13-17장은 소위 다락방 강화(the Upper Room Discourse) 부분으로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 설교(13-16)대제사장적 기도(17)를 보도하고 있다. 유월절 전날 자기가 떠날 때가 된 것을 아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신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시며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다. 또한 당신의 승천 이후 세상에 남아 당신을 대신하여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할 제자들에게 새로운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 주실 것약속하시며, 자신의 죽음과 부활 및 승천에 대해서도 예고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지만 자신이 세상을 이기었으므로 담대하라고 하는 권고를 주심으로 고별 설교를 마치신다. 이어 17장에서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마지막 기도를 드리시는데, 기도의 내용은 곧 자신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제자들을 및 미래의 성도들을 포함한 중보의 기도이다.

다음으로, 18~20장은 성자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보도하고 있다. 세분하면, 18, 19장에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체포에서부터 대제사장과 빌라도의 연속적 심문 과정과 십자가형의 집행시신의 처리와 장례 과정을 사실적이고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으며, 20장에서는 빈 무덤의 장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 도마에게 차례로 현현(顯顯)하신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20:30,31에서 본서의 기록 목적을 밝힘으로써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과 수난 및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보도 내용을 일단락짓고 있다.

마지막 제21장은 본서의 결론 부분으로서,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재회를 보도한다. ,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하여 섬겨 주시며, 세 번이나 거듭 당신을 부인함으로 사도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린 베드로를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그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장면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이 부분은 이미 본서의 기록 목적을 밝힌 이후에 나와 부록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상 베드로의 온전한 회복과 그에게 부여된 사명을 묘사함으로써 교회의 사명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측면에서 볼 때 매끄럽게 끝맺음을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인 21:24,25에서증언자들의 추신(Postscripts)을 기록함으로써 본서의 진정성을 재차 확증해 주고 있다.

2. 예수를 정치적 메시야로 부각시키려는 형제들의 인간적 요구 및 예수의 거부(7:1~9)

1)본문내용(7:1~9)

첫째, 예수께서 유대지방 사람들의 살의를 아시고 갈릴리에서 활동하심(1)

둘째, 형제들이 정치적 동기로 예수께 유대로 가시기를 요구함(2~5)

유대 사람들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지자,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께서 시골에 묻혀 있지 말고 유대로 올라가서 자신을 세상을 나타내라고 청한다. 이러한 요구는 형제들조차 예수를 진정한 구원자로 믿지 못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셋째, 예수께서 형제들의 요구를 거절하시고 갈릴리에 머무심(6~9).

예수께서 자신의 때라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거절하신다. 이 세상의 악함을 책망하는 자신의 증거로 인해 세상이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고 하신다. 자신은 당장은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시며 형제들만 올라가고 하신다. 말씀 후에 갈릴리에 머물러 계신다.

 

2)영적 교훈

본문은 A.D.29년의 초막절을 전후로 하여 갈릴리와 특히 예루살렘에서 있엇던 사건을 보도하는 7~8장의 기사의 전반부다. 예수께서는 초막절 전에 제3차 갈릴리 사역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에 고향에 계실 때에 육신의 형제들에게 의해 불신과 배척을 받으신 사실을 보도한다.

 

첫째, 성도는 세상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해야 한다(1).

예수께서 유대로 가시지 않고 갈릴리에서 사역하심은 유대 당국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과 불필요한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뜻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명예욕에서 자유한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2~4).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더러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게 하려면 갈릴리 촌구석에 있지 말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자신을 나타내라고 한다. 가서 유명해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알려 칭찬과 명성을 얻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에 자기의 명성을 얻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제물로 내어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세상에 자기 이름을 내는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불신 가족들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5).

처음에는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는 공생애를 6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셨을 때에 예수님의 가족들은 전부 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한다. 특히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기둥같이 여겨지는 인물이 되었다(2:9).

넷째, 주님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다(6~8).

예수님은 형제들의 권위를 물리치신다. 유명세를 타고 거기에 편승하고 실은 욕망을 버려야 한다. 준미은 주님의 때를 위해 일하신다. 사역자들은 나의 때인지 주님의 때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다섯째, 신앙 때문에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은 참된 신앙인이라는 증거다(7).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은 예수께서 세상이 악하다고 증거한 까닭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그들을 죄에서 돌이키도록 촉구하셨기 때문에 미움을 받으셨다. 세상의 악함을 폭로하고 악함에서 돌이킬 것을 권고하는 자는 미움을 받는다.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질시와 따돌림과 배척을 받게 된다.

 

3. 예수의 예루살렘 잠행과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악의 및 분분한 여론(7:10~13)

1)본문내용(7:10~13)

첫째, 형제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후에, 예수께서도 은밀하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심(10)

둘째, 초막절 중에 악의를 품은 산헤드린 소속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음(11)

셋째, 예수에 대한 무리들의 여론이 분분함(12~13)

각지에서 모여든 무리 중에 혹은 예수를 선한 분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무리를 미혹하는 자라고 하는 등의 여론이 분분하였다. 그러나 무리들이 유대 당국자들을 두려워하여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지는 않았다.

 

2)영적 교훈

요한복음 7:1~9절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 부각시키려는 불신 형제들의 인간적 요구 및 예수님의 단호한 거부를 보도하고 있다. 이어 10~13절은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잠행예수를 잡고자 하는 산헤드린 공회의 예수 수소문, 그리고 예수께 대한 군중들 사이의 분분한 여론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첫째, 매사에 신중을 기하셨다(10).

둘째, 예수님을 찾는 이들 중에는 불순한 목적으로 주님을 찾는 이가 있다(11).
셋째, 예수님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항상 존재한다(12).

넷째,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에 처할 것 같은 말은 잘 하지 않는다(13).

다섯째, 성도에게는 세상적인 인기나 비난을 피하며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10).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을 때에 신중하게 행동하셨다. 이는 공개적으로 상경할 경우 많은 무리들에 의해 둘러싸여 대대적으로 환영을 받고 떠받들려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예수에 대해 적개심을 품도 기다리고 있는 유대 종교지도자들과의 전면적인 충돌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불필요한 충동을 피하기 위해 은밀히 올라가셨다.

여섯째, 종교지도자들은 교권에 집착해서는 아니된다(11).

종교 지도자들 곧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찾고 있었다. 이는 자기들의 종교적인 권위가 예수님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권에의 집착이 잘못된 판단을 낳은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 반대되는 것은 발설조차 못하도록 권위적이고도 억압적인 분위를 조성한 것이다. 교권이 진리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고 있었던 것이다. 교권에 집착하게 되면 진지 자체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죽이려 한다.

일곱째, 신앙 문제에 관한 공개적인 질문과 토론이 허용되는 풍도가 조성되어야 한다(12).

예수님에 대한 예루살렘의 무리들의 반응은 2가지였다. 하나는 좋은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무리를 미혹하는 자였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했다. 유대 당국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란거리가 될 만한 예민한 신앙문제라든지 혹은 지도자의 방침에 대한 의문이 있어도 묻지도 않고 의견을 표명하지도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4. 예수의 교사로서의 자신의 권위 및 안식일 치유 사건 변호(7:14~24)

1)본문내용(7:14~24)

첫째, 초막절 중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심(14).

둘째, 유대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평가 절하함(15).

유대인들은 한편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기이히 여겼다. 그러면서도 예수께서 율법에 관한 공적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구실로 은근히 예수의 가르침을 무시하였다.

셋째, 예수께서 자신의 가르침의 신적 권위를 주장하심(16~18).

예수께서 자신의 교훈의 근원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자는 자신의 교훈이 진정 하나님께서 근원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자신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므로 자신의 진술에는 불의가 없다고 주장하신다.

넷째, 살의를 품은 유대인들의 악함을 지적하시자 무리가 반박함(19~20).

자신에 대한 유대인들의 살해 의도를 지적하시며 그것이 곧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냐고 책망하신다. 무리들이 마치 예수를 살해 위협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몰아 붙이며 오히려 예수 그가 귀신이 들렸다고 매도한다.

다섯째, 모세 율법에 근거하여 자신의 안식일 치유 행위를 변호하심(21~24).

예수께서 안식일 논쟁의 원인이자 유대인들의 적대감을 촉발시켰던 38년된 병자 치유 사건을 언급하신다. 모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시행하고 있음을 언급하신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안식일에 사람을 치유한 것으로 자신에게 노를 품는 것은 부당한 일임을 지적하신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로 공의로 판단하라고 훈계하신다.

 

 

2)영적 교훈

요한복음 7:14~24의 말씀은 예수님의 교사로서의 자신의 신적 권위에 대한 증거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안식일 치유 행위에 대한 변호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율법주의에 빠진 유대 지도자들을 향한 책망을 보도한다.

 

첫째, 말씀의 권세는 사람의 학식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14).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정규 랍비 수업을 받지 않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글들을 알아온 채 있느냐고 이상하게 여긴다.

둘째, 설교는 설교자의 사상이 아닌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은 둔 것이라야 한다(16).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음을 발힌다. 즉 자신의 교훈은 신적 기원을 둔 것이라고 밝히신 것이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가르침조차도 철저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계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설교자는 성령의 지도 가운데 충분한 사색과 묵상을 해야 한다(16).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설교의 내용과 영감의 원천은 설교자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넷째, 성경은 따르고 실천할 때에 더 잘 깨달아지는 것이다(17).

말씀을 전하는 자는 그 가르침을 먼저 자신이 실천하고 전해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은 실천하지 않고 말만 하였다.

다섯째, 설교의 진실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세에서 나온다(18).

설교가 자기 영광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항상 설교자가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느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신앙없는 종교행위는 주님이 인정하지 않는다(19).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율법을 지킨 것은 종교행위로서 지킨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으로 남들을 비교평가했고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 하였다. 신앙이 없는 종교행위는 위험한 것이다.

일곱째, 안식일은 사람의 전인격적인 건강과 회복을 위해 주어진 날이다(20~23).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지 못하게 한 것은 장로들의 유전이다. 율법에는 그러한 규정이 없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근본정신을 실천하였다.

여덟째, 외모에 기초한 판단이 온갖 편견과 오류를 낳는다(24).

 

 

5. 예수게 대한 예루살렘인들의 배척 및 유대 당국자들의 체포 시도(7:25~36)

1)본문내용(7:25~36)

첫째,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의 출신을 거론하며 예수를 배척함(25~27).

예루살렘 사람들 중에 일부가 예수를 가리키며 그가 바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살해하려는 자가 아니냐고 말한다. 예수의 공개적인 활동에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 유대 당국자들에 대해 기이히 여긴다. 자신들은 예수의 신상을 너무나 잘 알므로 예수는 그리스도일 수 없다고 단정한다.

둘째, 예수께서 자신의 신적 기원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심(28~29).

예수께서 사람들이 자신의 육적 출신은 알 수 있다고 인정하신다. 하지만 자신은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나셨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자라는 것을 주장하신다.

셋째, 유대 당국자들이 예수의 체포를 시도함(30~32).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를 체포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꼈으나 실제 체포를 시도하지는 않는다. 이는 아직 예수의 수난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군중들이 예수가 행한 많은 표적으로 인해 예수께서 그리스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자 무리의 반응을 감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체포하도록 하속들을 보낸다.

넷째, 예수께서 자신의 승천을 암시하시자 유대인들이 오해함(33~36).

예수께서 자신은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므로 자신을 찾고자 하여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이 예수의 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가르치려고 떠나가는가 하고 추측하며 그 말의 의미를 매우 궁금해한다.

 

 

2)영적 교훈

요한복음 7:25~36절은 예수께 대한 예루살렘 사람들의 배척유대 당국자들의 체포 시도에 대해 보도한다.

 

첫째,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인간사에 직접 개인하신 분이시다(25~26).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어 가르치신 대도 당국자들은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그분이 체포당해 죽으실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한 자들이 세력을 떨치는 것은 잠시 동안 뿐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직접 개입하실 때가 있다.

둘째, 어설픈 지식에 대한 확싱느 사람을 잘못된 신앙으로 이끌 수 있다(26~27).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2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고 것이다(5:2). 또 하나는 아마도 단7:13이나 말3:1, 외경서들의 기록에 의거하여, 그리스도가 갑자기 출현하실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설프고 불확실한 지식에 확신이 더해지자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셋째,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이신 것을 아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지식이다(28~29).

예수님의 육적 기원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예수님은 신적인 기원을 가진 분이셨다. 그분은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기 이전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시기 때문이다.

넷째, 표적을 보는 것보다 영적인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31).

표적을 보는 것은 어느 정도 신앙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한 자들에게는 표적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육적인 눈만 뜨지 말고 영적인 눈을 떠야 하는 것이다. 표적을 통해 육적인 혜택에만 눈이 멀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행하신 표적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믿음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는 자는 담대하게 된다(33~34).

여섯째,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수 있다(33~34).

아버지로께로부터 오신 분만이 다시 아버지께로 가실 수 있으며, 그분을 붙든 자들이 그분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일곱째, 하나님은 때로 불신자들의 말을 성취하심으로 신적 섭리의 오묘함을 나타내신다(35~36).

사람들은 예수께서 가시면 그분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그리고 그분이 계신 장소에 올 수 없을 것이라고 하니까, 예수께서 흩어진 유대인들에게로 가서 헬라인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말대로 이뤄졌다. 왜냐하면 성령강림 후에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6. 생수의 강에 관한 선포와 초청 및 예수의 신분에 대한 유대인들의 쟁론(7:37~44)

1)본문내용(7:37~44)

첫째, 생수의 강에 대한 예수의 선포와 초청(37~39).

명절 끝날 예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크게 외치시며 초청하신다. 자신을 믿는 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여기서 말씀하신 생수는 바로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요한은 주께서 아직 구속 사역을 완수하기 전이라 성령강림과 내주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부기한다.

둘째, 예수의 신분에 관하여 무리 중에 쟁론이 일어남(40~43)

무리 중에 어떤 이들은 예수를 신18:15에 언급된 그 선지자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예수를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는 구약 예언을 근거로 갈릴리 사람 예수가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고 한다. 이처럼 무리 중에서 예수로 인해 쟁론이 발생한다.

셋째, 예수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손을 대지 못함(44).

 

2)영적 교훈

요한복음 7:37~44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생수의 강 선포와 초청 그리고 예수님의 신분에 대한 유대인들간의 쟁론에 대해 보도한다.

 

첫째, 예수님은 광야의 반석이요, 반석에서 솟아난 샘물은 성령을 가리킨다(37~38).

둘째, 영적 갈증을 해결하려면 예수님께로 가야 한다(37).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영적인 갈증에 시달린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단절에서 오는 본능적인 결핍이요 영혼의 목마름이다.

셋째, 예수님이 교회의 모든 예배와 행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37).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려 직접 몸을 입고 오셨지만 아무도 몰라보았다. 그러자 예수께서 장차 생명을 주실 분이신 것은 초막절 절기에 실로암 못에서 황금주전자에 물을 담아서 성전 제단의 서쪽 굴뚝에 붓는 의식의 본 뜻을 알려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주시는 분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광야의 쪼개진 반석이며, 그 속에서 생수를 공급해주신 분이신데 그것을 아는 이가 없었다.

넷째, 성령은 예수를 믿는 자 속에 내주하신다(38).

장차 예수께서 보내주실 성령을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데 그분은 사람 속에 거쳐를 정하실 것이다. 그래서 성령은 사람의 존재 깊은 곳에서 생수를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다섯째, 성령은 인간의 영적 갈증을 근원부터 해소하여 주신다(38).

여섯째, 성령의 은혜를 누리려면 계속적이고도 전인격적인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37~38).

성령을 마시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한 번의 단독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계속적이고 반복적이라야 한다. 그래서 목마르지 않는다.

일곱째, 잘못된 선입견이 신앙의 성장을 막는다(40~43).

예수께 대한 3가지 반응이 있었다. 그분은 그 선지자다(18:15). 그분은 그리스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분은 갈릴리 출신이니 그분은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 결국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끝까지 주님을 몰라보기도 하였다.

 

 

 

7. 예수로 인한 산헤드린 내부의 쟁론(7:45~53)

1)본문내용(7:45~53)

첫째, 예수를 체포하지 못한 하속들의 보고와 종교 지도자들의 힐책(45~49)

예수를 체포하러 갔던 하속들이 그냥 오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힐책한다. 하속들이 예수께 받은 깊은 인상을 그대로 진술한다. 바리새인들이 노하며 하속들을 꾸짖는다. 바리새인들이 산헤드린 공회원 중에나 바리새인들 중에는 예수를 믿는 자들이 없다고 장담한다. 예수의 추종자들을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라고 매도하고 저주한다.

둘째, 니고데모의 이의 제기와 그에 대한 다른 당국자들의 비난(50~52).

공회원 중에 전에 예수를 만난 적이 있던 니고데모가 예수에 대하여 충분한 심리를 하기 전에 정죄하는 것과 관련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니고데모에게 너도 갈릴리 출신이냐고 비아냥거리면서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날 수 없다고 상고해 보라고 한다.

셋째, 성전 안에 모여 있던 무리들이 절기를 마치고 각각 집으로 돌아감(53).

 

 

2)영적 교훈

요한복음 7:45~53의 말씀은 예수님으로 인한 산헤드린 내부의 쟁론에 대해 보도한다.

첫째, 신앙문제에 관한 최종 권위는 성경 자체에 있다(45~48).

신앙문제에 있어서 특정 지도자나 종교기구의 권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그것은 개신교의 정신을 말살시킨다. 개신교회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입장과 배치된다고 타인의 신앙을 무조건 정죄한 산헤드린 형태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만이 성도들의 유일한 신앙의 완전한 권위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성경을 많이 하는 자는 독선주의에 빠질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49).

산헤드린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만이 바른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백성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예수에게 미혹당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 많은 성경지식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월감은 교만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상대적인 우월감이나 독선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셋째,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먼저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49~51).

많은 것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자기가 가르치는 바를 행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불의감과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반대로 자신이 가르치는 바를 전혀 행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자들도 있다. 둘 다 잘못된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먼저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넷째, 지도자는 정당한 건의나 충고에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52).

산헤드린 공회를 니고데모가 이의를 제기하자 면박주기에 바빴다.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행한 것들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갈릴리 출신의 선지자로서 고정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갈릴리에서도 요나, 호세아, 나훔 선지자가 있었지만 말이다.

 

 

 

 

< 요한복음 7:1~53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예수께서 왜 초막절에 성전에 올라가시어 초막절 설교를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명이요(7) ‘이라는 것(8~9)을 알려주시려고 초막절에 성전에 올라가셨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쪼개어진 반석으로서, 믿는 자들에게 생수이신 성령을 공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의 동생처럼 세상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처럼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면,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아무리 사람이 어떤 일을 추진하려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결정적인 때(카이로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만세 전에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분이시자, 아버지께로부터 파송받아 이 땅에 들어오신 아드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는 모세가 약속했던 선지자이며, 다윗의 씨로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생명이요 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생명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빛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쪼개진 반석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생수공급자로 믿고 의지합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선지자와 그리스도로 믿고 의지합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초막절을 보면서도 예수께서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께서 생명이요 빛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쪼개진 반석이자 성령의 공급자가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을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이자, 자신의 위치를 빼앗아 가는 자로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2. 예수께서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분이자 아버지로부터 파송받은 채 있는 아들이시로구나.

3. 예수님은 쪼개진 반석으로서, 성령을 보내주시는 분이로구나.

4.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아니하면 인간의 어떤 노력도 헛 수고가 될 수 있구나.

5. 예수님은 선지자이자 그리스도로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요한복음 7장 헬라어 직역

(01) 그리고 이 일들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안에서 걸어다니고 계셨다. 왜냐하면 그분이 유대 안에서 걸어다니기를 원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유대인들이 그분을 죽이려고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02) 그런데 유대인들의 명절인 초막절(장막절)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03) 그러므로 그분의 형제들이 그분을 향하여 말하였다. 당신은 여기서부터 떠나십시오. 그리고 유대 안으로 가고 있으십시오. 이는 당신의 제자들도 역시 당신이 행하고 있는 바 당신의 그 일들을 [장차] 지켜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04) 왜냐하면 누구든지 은밀함 안에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이 자신이 개방함 안에 있기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자신을 세상에게 나타내십시오

(05) 왜냐하면 그분의 형제들도 그분 안으로(그분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06)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나에게 속한 [결정적인] (카이로스)는 아직 가까이 있지 않다. 그런데 너희에게 속한 [결정적인] (카이로스)는 항상 준비되어 있다.

(0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을 능히 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세상)은 나를 미워하고 있다. 이는 나 자신이, 그것의 일들이 악한 것들로 있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08) 너희 자신들은 명절 안으로 올라가라. 이는 나에게 속한 [결정적인] (카이로스)가 충만하게 된 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이 명절 안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09) 그런데 그분 자신이 이것들을 말씀하신 후에, 갈릴리 안에 머무르셨다.

(10) 그런데 그분의 형제들명절 안으로 올라갔을 때에, 그때에 그분 자신도 올라가셨다. 공개적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은밀함 안에서 있는 것처럼.

(11) 그러므로 명절 안에서 유대인들이 그분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저이가 어디에 있느냐?”

(12)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무리들 안에서 수군거림(속삭임)이 많이 있어왔다. 참으로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그분은 좋은(선한) 분이라고 그런데 다른 이들은 오히려 그분이 무리를 미혹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두려움 때문에, 그분에 대하여 아무도 공개적으로(공공연히) 발언하지 않고 있었다.

(14) 그런데 이미 명절중간에 있을 때에, 예수께서 성전 안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그분은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다.

(15)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기고 있었다. 말하고 있으면서. 이 사람은 배우지도 않은 채 있는데, 어떻게 글들을 알아온 채 있느냐?”

(16)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에게 속한 가르침은 나에게 속한 것으로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를 보내셨던 분의 것으로 있습니다.

(17) 만약 어떤 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기를 원한다면, 그는 [장차] 스스로 알게(기노스코) 될 것입니다. 그는 가르침에 관하여 어느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있는지 혹은 나 자신이 나 자신으로부터 발언하고 있는지를.

(18) 자기 자신으로부터 발언하고 있는 자는 자기 자신의 영광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내셨던 분의 영광을 찾고 있는 이이는 참된 이입니다. 그리고 그이 안에 불의가 있지 않습니다.

(19) 모세가 여러분에게 율법을 준 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에서부터 아무도 율법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고 찾고 있습니까?”

(20) 무리가 대답하였다. 당신은 귀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고 찾습니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리고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두가 기이히 여기고 있습니다.

(22) 이것 때문에 모세가 여러분에게 할례를 준 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할례)은 모세에서부터 있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조상들에서부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안식일 안에서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허물어뜨리지) 않도록, 만일 사람이 안식일 안에서 할례를 받고 있다면, 내가 안식일에 한 사람의 전신을 건강하게 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나에게 노여워합니까?

(24) 여러분은 외모를 따라 판단하지 말고 있으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공의로운 판단으로 판단하고 있으십시오.”

(25) 그러므로 예루살렘 사람들에서부터 어떤 사람이 말하고 있었다. 이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찾는 바, 그이이지 않습니까?”

(26) 그리고 보십시오. 그분이 공개적으로(공공연히) 발설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통지자들은 이이가 그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을까요?

(27) 그러나 우리는 이이를 알아온 채 있습니다. 그분이 어디에서부터 있는지를.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부터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28) 그러므로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가르치시면서 외치셨다. 그리고 말씀하고 있으면서. 여러분은 [이미] 나를 알아온 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서부터 있는 것[이미] 알아온 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온 채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를 보내셨던 분은 참된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런 그분을 여러분은 [이미] 알아온 채 있지 않습니다.

(29) 나는 그분을 알아온 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에게서 있고, 저분이 나를 파송하셨기 때문입니다.”

(30) 그러므로 그들이 그분을 체포하려고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 위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였다. 이는 그의 시각(호라)이 온 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31) 그런데 그 무리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분 안으로(그분을)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혹 오신다면 이이가 행했던 것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행하시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32) 그분에 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고 있는 것과 함께 이것들을 바리새인들이 들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을 체포하기 위해 아랫사람들(보조자들)을 파송하였다.

(33)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조금의 시간(크로노스)이 아직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보내셨던 분을 향하여 떠나갑니다.

(34) 여러분이 나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있는 곳(장소)에 여러분 자신들이 오지 못할 것입니다.”

(35)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그들 자신들을 향하여 말했다. 이이는 어디로 가는 것을 작정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그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가 헬라인들의 흩어져 사는 자들 안으로 가는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가 헬라인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36) 그가 말하였던 바, 이러한 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나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있는 곳(장소)에 여러분이 오지 못할 것입니다.

(37) 그런데 명절의 마지막 날 큰 날 안에서 예수께서 [이미] 서신 채 있었다. 그리고 그분이 외치셨다. 말씀하고 있으면서. 만일 누구든지 [장차] 목마르다면, 그는 나를 향하여 오고 있으십시오. 그리고 마시고 있으십시오.

(38) 내 안으로 믿고 있는 이는 성경기록이 이미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자기의 배 안에서부터 살아있는 물(생수)의 강들[장차] 흘러나올 것입니다.”

(39) 그런데 그분은 그분 안으로 믿었던 자들이 취하려고(받으려고) 작정하고 있었던 바 그 영에 관하여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아직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40) 그러므로 무리들에서부터 이 말씀들을 들은 후에 그들이 말하고 있었다. 이이는 참으로 그 선지자입니다

(41) 다른 이들은 말하고 있었다. 이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부터 오는 것 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42) 성경기록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에서부터 그리고 다윗이 있어온 바 그 마을 베들레헴으로부터 오신다.”

(43) 그러므로 그분 때문에 무리 안에서 분열이 있게 되었다.

(44) 그런데 그들에서부터 어떤 이들은 그분을 체포하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 위에 손들을 대지 못하였다.

(45) 그러므로 아랫사람들(보조자들)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갔다. 그리고 저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무엇 때문에 그를 끌어오지 않았느냐?”

(46) 아랫사람들(보조자들)이 대답하였다. 어떤 사람도 이와 같이 결코 발언하지 못하였습니다.”

(47)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너희 자신들도 역시 미혹을 받은 채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48) 통치자들에서부터 어떤 이도 그분 안으로(그분을) 믿었던 것은 아니지 않느냐? 바리새인들에서부터 [어떤 이도]

(49) 그러나 율법을 알지(기노스코) 못하고 있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들이다.”

(50) 그들을 향하여 니고데모가 말한다. 그분을 향하여 왔던 이, 그분에서부터 한 사람으로 있으면서.

(51) 우리의 율법, 만약 그에게서 먼저 듣지 않고 그리하여 그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람을 판단(심판)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52)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역시 갈릴리에서부터 있는 것은 아니지 않소? 당신은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보십시오! 갈릴리에서부터 선지자가 일어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53) 그러자 그들 각자가 자신의 집 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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