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25)] 새 예루살렘 성은 어린양의 신부인가 실제하는 장소인가?(계21:1~10)_2023-11-13(월)
https://youtu.be/cR8knbCMB4A [또는 https://tv.naver.com/v/43804115]
1. 들어가며
천국은 과연 실재하는 장소인가 아니면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천국이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가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어떤 면에서는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공간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천국만을 믿는다면 새 하늘과 새 땅도 우리에게 필요 없으며,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태적인 천국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천국을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셨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요14:1~3). 그러므로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은 공간적으로 실제 존재하는 천국인 것이지 상태적인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천국이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장소인지 그리고 그것이 상태를 표현하는 말인지를 중심으로 새 예루살렘 성에 관한 실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새 예루살렘 성(도시)은 어떤 곳인가?
새 예루살렘 성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백보좌 심판 이후에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에 중심이 되는 도시를 가리킨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옛 하늘과 옛 땅은 떠나가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조성하시게 되는데, 그때 새 땅으로 하늘 안에서부터와 하나님 밖으로부터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오게 하실 것이다(계21:2).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의 중심이 바로 새 예루살렘 성(도시)이 되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더 이상 사망이 없으며,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도시는 정방형의 크기로서 장광고가 각각 12,000스타디온(약 2,400km)으로 조성된 정말 아름다운 빛의 도시인데, 이곳이 바로 진정한 천국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신앙생활하는데 최종적인 목표가 되는 것이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죽은 후에 혹은 주님이 오실 때에 바로 이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3. 새 예루살렘 성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인가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이는 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켜 천상의 교회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 주겠다고 했는데, 그때 사도 요한 앞에 나타난 것은 하늘 안에서부터와 하나님 밖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이었기 때문이다(계21:9~10). 그렇다면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는 새 예루살렘인가? 문자적으로 얼핏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새 예루살렘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첫째, 신부는 인격체인 반면에, 새 예루살렘은 물체이기 때문이다. 인격체와 물건이 서로 같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신부의 모습이 꼭 새 예루살렘 성과 같다고 표현하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다. 새롭게 단장된 채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부 자체가 새 예루살렘은 아니다. 둘째, 천사가 어린양의 신부를 보여 주겠다고 했을 때에 그것이 새 예루살렘 성이었다 할지라도 어린양의 신부가 새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그 성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도 영안이 열려서 저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가 보라. 그리고 거기 천국에 누가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라. 거기에는 지금도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 수많은 성도들이 살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신부는 사람들인 것이지 어떤 집이 아니다. 셋째, 어린양의 신부가 곧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하면 그 성 안에는 천사들도 있는데, 그럼 천사들도 어린양의 신부가 된다는 뜻인가? 그럴 수는 없다. 천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결단코 어린양의 신부가 될 수 없다. 넷째, 어린양의 신부가 곧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한다면, 새 예루살렘이 원래는 '아버지의 집'이었다는 것은 말씀과 위배되기 때문이다(요14:1~3). 고로 우리는 새 예루살렘 성은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장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께서도 그의 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들려주셨기 때문이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거처들)'이 많도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말하였겠느냐?)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장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장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천국에서는 누가 왕 노릇하며, 지금 이 세상에서도 과연 천국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인가?
천국에서는 과연 누가 왕 노릇하는 것일까? 그들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로서(계7:3, 22:3~5), 이기는 자들이다(계2:26~27). 이들은 순결한 처녀로서, 음녀와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다(계14:4). 그리고 그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던 자들이다(계14:5). 그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거기에서 왕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영영 천국을 경험할 수는 없는가? 아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 성도들은 얼마든지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늘의 왕적인 통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마8:16), 자신의 제자들을 통하여 그것을 경험하게 하셨기 때문이다(마10:1).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귀신을 축출하고 병을 고치는 것이다. 특히 영물인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그에게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는 것이라고 하셨다(마12:28). 그러므로 우리가 장차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누가 왕 노릇할 자인지를 이 세상에서도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하며 살 자는 이 땅에서 왕권을 가지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속해 있는 이 세상(지구)에서 귀신을 쫓아낸 적이 없는 성도는 이 땅에서 철장 권세를 사용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144,000명이라고 표현하기는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왕적 통치라는 것은 영적인 세계에서 명령하면 그대로 되게 하는 능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5. 단수의 하늘의 왕국(천국)과 복수의 하늘들의 왕국(천국)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한글 성경에서 '천국'이라는 단어는 오직 마태복음에서 36번 나오고(마4:17 외) 그리고 마태복음 외에는 디모데후서에서 딱 한 번 나온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 둘은 서로 다른 단어이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천국'은 전부 헬라어로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으로서 '하늘들의 왕국'이란 뜻이다. 이때 하늘이라는 단어는 복수형태다. 즉 '하늘들'인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언급했던 '천국'은 헬라어로 '헤 바실레이아 투 에푸라이우'라는 단어로서 '하늘에 속한 왕국'이라는 뜻이다(딤후4:18). 그러므로 '하늘'이라는 단어가 단수형태이다. 고로 사도 바울은 순교하기 전에 진정 사모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셋째 하늘로 가는 구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계속] 회개하[고 있어]라 [왜냐하면] 천국(하늘들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왔기 때문이다) 하시더라
딤후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부터] [장차] 건져내시고(건져내실 것이다) 또[그분은]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렇다면, 왜 마태복음의 기자는 '천국'이라는 단어를 전부 다 복수로 사용한 것일까? 그것은 비록 장소적으로는 이 세상이라 할지라도 직접적으로 하늘의 왕적 통치가 이 땅에서도 얼마든지 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도 하늘들의 왕국의 하나로서 왕적인 통치가 적용되는 공간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도 사실은 상태적으로 본다면 얼마든지 왕적 통치가 임하는 천국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낼 때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도래한 것이다(마12:28). 그러므로 장차 들어갈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들은 이 땅에서부터 상태적인 천국을 누리다가 결국 죽어서 장소적인 천국인 저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 땅에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지위와 신분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본다.
6. 왕의 세대가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마지막 시대다. 아마도 우리 시대 안에 주님의 공중강림(성도들의 휴거)과 지상재림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했다. 주님의 강림(파루시아)이 결코 적그리스도의 출현보다 결코 앞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살후2:1~3). 또한 요한계시록을 보면 대환난의 전반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통과하는 것이지만, 대환난의 후반부 어느 경점에 갑작스러운 주님의 강림과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대환난의 시기를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세대들 가운데 이제 초등학교 이하의 아이들은 아마도 적그리스도 치하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적그리스도의 핍박도 이겨내야 하고 뿐만 아니라 휴거 이후에 발생하는 기근의 재난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럼, 적그리스도의 치하에서 과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으며,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고도 어떻게 음식을 구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적그리스도의 치하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게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것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은 대환난의 시대에 활동할 왕의 세대들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두 증인처럼 이들에게 입술의 권세가 주어져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올 것을 명령했을 때에 그대로 불이 내려오게 할 수 있는 세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늘을 명하여 비가 오지 않게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물을 피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따르면, 정말 이기는 자들을 산출할 여자가 광야로 쫓겨났지만 광야에 그들을 위한 보호처가 있을 것이고 또한 양육을 받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또 다른 세대가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추측해 보건대, 왕의 세대가 도래하면 말하면 그대로 되어지는 권능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마지막 추수를 담당할 것이다.
2023년 11월 13일(월)
정보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