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115) 에서와 야곱, 과연 유기와 선택 예정의 예표인가?(창25:22~26)_2021-06-08(화)

by 갈렙 posted Jun 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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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15) 에서와 야곱, 과연 유기와 선택 예정의 예표인가?(창25:22~2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gwyBcEd1I7c

  

1.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을 한 후에 왜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했는가?(창25:22)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한 이후, 걱정할 일 이 생겼다. 그것은 태중에 있는 아기들이 서로 싸웠기 때문다. 그러다가 혹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리브가는 하나님께 기도 다. "하나님, 이런 경우에는 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말이.

 

2. 리브가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는가?(창25:23)

  그때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기도를 들으시고, 복중에 는 쌍둥이가 잉태되어 있는데, 이들은 장차 두 민족(나라)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둘이 복중에서 서로 싸우는 것은 장차 서로가 나눠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어느 때가 되면 한 족속(이스라엘 족속)이 다른 족속(에돔 족속)보다 더 강하게 될 것이고, 큰 자(에돔)는 어린 자(야곱)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나중에 아기가 태어는 것을 보니, 아기들은 진짜로 쌍둥이였다. 그중에 먼저 나온 자는 전신이 붉고 털이 많은 아기였으며, 후에 나온 자는 자기의 손으로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올 정도로 욕심많은 아기였다. 따라서 이름을 짓기를 전신이 붉은 장자는 '에서(붉다)'라고 칭하였고, 차자는 '발꿈치를 잡았다'고 하는 뜻으로 '야곱'이라고 칭하였다

 

3. 오늘날 개신교 중 일부에서는 에서와 야곱이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정하심을 두고서 '선택과 유기(버림받음)'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바른 해석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오늘날 개신교 중 특히 장로교 쪽 에서 는 에서와 야곱이 서로 태중에서부터 서로 갈라진 것을 두고서, 구원에 있어서 동생 야곱은 선택받은 자이며, 형 에서는 버림받은 자를 예표하고 있다고 해석을 다. 그들의 선택과 유기가 그들이 태어난 후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태중에서부터 하나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셨다는 것다. 얼핏 들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은 크게 잘못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 태중에서부터 구원론적 관점에서 미리 결정해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다. 사실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을 태중에서부터 서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안배하신 것은 맞다. 하지만, 구원과 멸망을 이미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이 결정해 놓으신 것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 해석한 것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구원과 멸망을 태중에서부터 선택해 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것은 그들의 구원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그들에 대한 특별한 안배가 있음을 말해줄 뿐다. 

 

4. 사람의 쓰임과 구원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어떻게 쓰임받을 것인가 하는 것과 더불어 그가 관연 구원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버림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에 속한다. 앞의 것이 사람의 쓰임(용도)에 관한 것이라면, 뒤의 것은 사람의 구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다. 그런데 우리 믿는 이들 어떤 이들은 사람의 구원과 멸망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믿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회개를 한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어떤 이는 멸망으로 예정되어 있고, 어떤 이는 구원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라고 말이다(딤전2:4). 그런데 다만 사람이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한 채 제 길로 가기 때문에 결국 멸망을 당할 뿐다(요3:7). 그러므로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장차 어떻게 살아갈(쓰임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미리 말씀해주신 것이다. 그런데 어떤 믿는 이들은 에서는 영원한 멸망으로, 야곱은 영원한 구원으로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예정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바울도 로마서 9장에서 에서와 야곱의 경우를 비교할 때에는 그들이 구원이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쓰임이 미리 결정된 채 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을 서로 용도로 쓰실 것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했다. 즉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21)"라고 언급한 것이.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는 그를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지를 미리 정하실 수 있다. 그래서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들이 더러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사명을 가진 채 이 땅에 보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에서와 야곱의 경우처럼, 그들이 어떻게 쓰임받을 것인가가 미리 정해진 채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이는 성경을 잘못 과도하게 해석한 나머지,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하시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구원으로 예정하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해석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비정하고 난폭한 폭으로 만드는 것이 될 뿐이다. 하나님은 어떤 개인의 구원과 멸망을 처음부터 정해 놓고 이 땅에 보내시는 분이 아니시다. 

 

5.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배 없이 태어난 사람일지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큰 자가 될 수 있는가?

  사람이 잉태될 때에  영안으로 그것을 살펴보면, 보통 사람이 태중에 잉태되고 2~3개월이 지날 즈음에, 하나님께서 태중 아이 속에 영을 집어넣어준다는 것을 알 수가 있. 그런데 이때 하늘로부터 보내어지는 영의 나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보통 3~4살에서부터 15~16세의 시기까지 다양다. 그런데 대부분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의 나이에 하늘로부터 보내어지낟. 하지만 어떤 아이는 청소년기에 보내어져서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3~4살에 보내어진 아이는 특별한 사명을 받지 않은 채로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지를 잘 살펴보면, 아무래도 이 땅에 보내어질 때에 청소년기의 아이로 보내지거나,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천국에 훨씬 더 잘 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들어오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늘에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지 않았어도,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자도 있는 것이다. 그런 자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면류관도 쓸 것이고,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나아가서 예배드리는 특권을 갖기도 한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서는 종과 같이 남을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 섬김을 받게 될 것이고 큰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0:26~27). 참고로, 야곱과 에서의 경우 큰 자(에서)가 어린 자(야곱) 섬길 것이라고 했으니, 에서가 천국에서 들어가서는 더 큰 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다. 그러므로 구원과 상급은 이미 확고하게 정해진 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다. 물론 어떤 사람이 어떤 용도로 쓰임받을 것인지 하나님의 정하심을 따라 태어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다. 또한 구원은 누구라도 이 땅에서 복음을 들었을 때에 깊이 회개하고 믿음을 갖게 되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만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받을 상급도 결정되는 것이다. 고로 어떤 사람이라도 처음부터 구원과 멸망이 예정된 채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가 결국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말라기에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말씀을 하신 것일까? 그것은 다음 편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기로 하자. 

 

2021년 06월 08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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