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78) 실수를 통해 배워가는 아브라함(창13:1~13)_2021-04-25(주일)

by 갈렙 posted Ap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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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실수한 후에 어떻게 그것을 처리하는가에 달려있다. 아브라함의 실수는 파렴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회개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럼 그가 회개했는지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그가 그 후에 보여 준 행동을 통해서다. 그럼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는가? 그런데 그의 행동은 그를 한층 더 뚜렷하고 확실한 복으로 인도하였다는 것이다.

 

1. 들어가며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예수님 외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치고 실수하지 않고 살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600년 동안 주님과 동행했던 노아도 실수하였고 구약시대 최고의 인물이라 여겨졌던 모세와 다윗도 실수할 때가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신약에 들어와서 어린 양의 12사도의 대표였던 베드로도 실수하였으며, 부활 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던 바울도 실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실수를 저지른 후에 어떻게 반응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때의 반응에 따라 어떤 사람은 더 훌륭한 사람으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더 못한 사람이 되어 나중에는 버림받는 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실수를 했던 아브라함의 삶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자신의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려다가 그만 애굽 왕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으로 인해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애굽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그 후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그가 진정 그 실수로부터 배웠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늘 넘어지지만 발전이 없는 사람은 오늘 이 메시지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2. 아브라함은 대체 무슨 실수를 한 것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의 땅(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탈출했던 아브라함은 곧이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세겜 땅에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벧엘로 옮겼는데 거기에서도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거기에서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리고는 초장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찾아왔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잠시 기근을 피하고자 애굽 땅으로 들어간다. 왜냐하면 애굽은 언제나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푸른 풀밭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축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백옥생 피부가 문제였다. 셈족 출신이 그곳에 오니 함족 출신이 보기에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 것이다. 그 소식은 왕에게 들어갔고 이내 왕 앞에 불려간 사래와 아브라함은 그들의 관계를 숨겨야 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아브라함은 사래를 자기 누이동생이라고 속였다. 그러자 왕은 정략적인 관계를 맺고자 사래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사래를 데려갔다. 그리고 대신에 결혼 답례품을 보내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사실 관계를 밝히면 죽임을 당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브라함을 함부로 대하는 자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 사건에 개입하셨고, 애굽 왕 바로와 그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이내 왕은 자초지종을 알아보았고 결국 그 원인이 남의 아내를 빼앗은 것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곧장 아브라함에게 사래를 내어 주고 그 땅을 떠나게 한다. 그럼, 아브라함의 실수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아내가 약속의 자손을 낳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녀를 애굽 왕에게 내준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애굽에 내려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기근을 피하려고 결정한 그의 오판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아내를 팔아먹은 파렴치한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3. 아브라함이 실수한 후에 맨 처음 한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애굽 땅에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그때 아브라함은 애굽 땅과 가나안 땅 경계선에서 서성이지 않았었다. 곧장 북쪽을 향해 올라갔던 것이다. 그는 네게브와 예루살렘을 지나서 벧엘로 향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가 처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허물어진 돌을 다시 쌓아올리고 무성한 잡초를 제거한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린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서 살았는데, 제가 실수하여 그만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씨를 낳아 줄 제 아내를 잃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아 발생한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저에게 있사오니, 저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때 아브라함은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온 뒤 첫 제사와 기도를 드린 바로 그 장소를 찾아가, 회개 기도를 올린 것이다. 그리고 감사와 결단의 기도도 같이 했을 것이다. "하나님, 제게 붙여 준 사람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제게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으로부터 빠져나올 수는 있었지만,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제게 붙여 준 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꼭 지켜 내겠습니다. 하나님, 제 아내를 다시 찾게 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 아브라함이 진정 회개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때 드린 기도가 진정 회개였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그 후에 벌어진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다. 진짜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을 본 사람치고 어느 누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 것이며,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작심삼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후 그 사람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그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함께 의좋게 지내던 조카 롯과 분쟁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조카 롯의 목자들과 자신의 목자들 간의 다툼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서로 정해져 있던 목초지를 넘어가는 것에서 그리고 양떼에게 먹일 식수를 확보하고 그 순서를 선점하다가 발생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양떼들이 적었는데, 점점 불어나 더 이상 두 집단이 함께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벧엘과 세겜 땅 주변에는 역시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도 살고 있었기에, 그 땅은 롯과 아브라함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함께 거주할 수 없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을 불러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 한 형제의 사람들이다. 너나 나나, 네 목자나 내 목자나 서로 다투어서 되겠느냐? 네 앞 사방에 땅이 있다. 그러니 나로부터 갈리어서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거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로 갈 것이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모든 선택권을 조카 롯에게 주었다. 이것은 전에 그가 행동했던 것과는 전혀 달라진 모습이다. 애굽에 들어가서는 애굽 왕이 아내를 빼앗아 가도 자기 아내를 위해 한 마디도 말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조카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그가 잘될 수 있도록 모든 선택권을 그에게 준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난 번의 실수로 배운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붙여 준 사람을 결코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결심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조카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조카는 푸른 초장이 보이는 남쪽을 선택하여 떠나가고 말았다. 얄밉기도한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떠나는 조카를 흐뭇하게 그리고 물끄러미 보고 있다. 아브라함은 흡족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기에게는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일전에 푸른 초장이 있다고 해서 애굽 땅을 선택해 그리로 내려갔지만 결국은 아내만 빼앗긴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는 애굽 땅은 초장이 아니라 사막보다 더 못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그곳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장소라면 그에게 벧엘도 아무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으면 그곳이 목초지가 될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곳에서 샘물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그는 확실히 공부를 했던 것이다. 

 

5. 롯과 분쟁을 해결한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어떤 축복의 말씀을 주셨는가?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가장 기뻐한 분은 누구였을까? 그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에게 복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것은 이전에 그가 들었고 약속받았던 복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 더 확실해지고 뚜렷해진 복의 선언이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땅을 주실 것인지 그리고 그 땅을 누구에게 주실 것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주실 것인지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씨가 장차 얼마나 많게 될 것인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어떤 약속의 말씀을 주셨는가? 첫 번째는 창세기 12:1에 나온다. 그런데 그때에는 저주로부터 빠져나오라고만 하셨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곧 지시하실 땅으로 가라고만 하셨다. 이때에는 그에게 땅을 주신다는 약속도 없었고 누구에게 주신다는 말씀도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이 땅을 너의 씨(후손)에게 줄 것이다(창12:7)"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전에 비하면 놀라운 발전이었다. 왜냐하면 불임의 저주 가운데 놓여 있는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자식을 줄 것이라고 약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씨에게 아브라함이 머무르고 있는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카 롯과의 분쟁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을 보셨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전보다 더 확실하고 더 뚜렷한 복을 주시게 된다. 그것은 첫째, 아브라함이 눈으로 보고 있는 모든 땅을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땅의 경계가 좀 더 명확해진 것이다. 둘째, 그 땅을 주시되 그와 그의 씨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이것은 그의 씨에게만 준다고 하신 말씀에서 한층 더 나아간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아브라함도 가나안 땅을 받을 수 있는 복이 임하게 되었다. 셋째, 그 땅을 그와 그의 씨에게 영원히 주신다고 했다. 여기서 '영원히'라는 것은 '올람'이라는 말로서, 그것이 합당하면 그에게 영원히 주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와 그의 후손이 땅을 받을 기한도 정해진 것이다. 넷째, 그의 씨가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이 일 후에 아브라함은 또 하나의 사건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때에도 믿음으로 행동을 잘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또 복을 주시는데, 이번에는 그가 받을 땅의 경계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알려 주신다. 그것은 큰 강 유브라데부터 애굽 강까지라고 말씀하셨다(창15:18). 그렇다. 사람이 받을 복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다. 그런데 그러한 복은 우리의 회개와 순종 여부를 통해서 점점 더 확장되고 더 확실해지고 더 또렷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6. 아브라함은 한 번만 그렇게 살았을까?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한 번만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회개하고, 한 번만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끝까지 완수했던 것일까? 아니다. 그는 첫 번째 실수를 통해서 배운 공과를 결코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깨달은대로 그는 계속해서 살았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목초지를 옮길 때마다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 증거는 그가 다음 정착지로 간 곳(헤브론)에서도 역시 제단을 쌓았기 때문이다(창13:18). 그리고 그는 조카 롯을 떠나 보낸 것으로 모든 책임을 완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후 그의 조카 롯이 북방의 연합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그냥 있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에서 길리고 훈련받은 자 318명을 데리고 가서, 목숨걸고 4개의 연합군을 무찔러 조카 롯을 구해 왔기 때문이다. 자기 부인을 애굽 왕에게 빼앗긴 쓰라린 현장에 그가 있었지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고로 그는 자신의 생전에 더이상 자신과 관계된 사람을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러자 당시 중과부적의 상태였어도, 그는 대적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과 함께 하심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조카 롯을 건져내었고 빼앗긴 모든 물품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가나안 거민들이 그를 대대적으로 환영하게 된다. 자신들의 왕은 자기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는데, 아브라함이 그 일을 했기 때문이다. 우선은 소돔 왕이 그를 환영해 주었고 살렘 왕도 마중 나와 그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환영했다. 이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거민에게도 칭송을 받는 이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이 창대하게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증명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7. 나오며

  구약에서 메시야의 조상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고르라면 단연코 아브라함과 다윗을 들 수 있을 것이다(마1:1).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첫째, 둘 다 실수를 통해 배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실수했고 다윗도 실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실수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그 이후가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가 있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둘에게 메시야 곧 여자의 후손에 관한 특별한 약속의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이때 아브라함도 실수를 통해 배운 공과 때문에 더 훌륭하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다윗도 두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그것을 통해 두 번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며, 무엇이 하나님을 화나게 하며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하는지를 정확히 배울 수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인물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동일한 죄를 반복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보다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수를 통해 배운 공과를 통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 결단해야 한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동행하시고 더 큰 복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즉시 돌이키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찾고 그것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번 결정한 결단을 따라 쭉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도 아브라함과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을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04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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