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7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진짜 이유는(창11:31~12:1)_2021-04-18(주일)

by 갈렙 posted Apr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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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진정 그의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인가 아니면 그곳으로부터 탈출해 나온 것인가? 우리가 알기로는 그곳에서 떠나온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그러한 어구가 없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더러 그곳에서 빠져나오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거기에는 그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엄청난 저주가 있었고 아브라함도 그 그림자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곳에서 불러내신 진짜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창세기 12장은 창세기에서 분수령과 같은 곳이다. 창세기를 두 부분으로 나눌 때, 두 번째 시작이 창세기 12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실 창세기가 1~11장까지의 이야기는 창조와 타락이라는 주제의 이야기들이 펼쳐진 것이라면, 창세기 12~50장까지는 세 명의 족장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세 명의 족장들의 이야기는 믿음의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가끔씩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소개할 때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인 여호와"라 소개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출3:6, 마22:32). 바로 그 이야기의 시작이 바로 창세기 12장인 것이다. 창세기 12장은 창조의 조상이 아니라 부르심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이 언급되기 시작하는데, 특별히 창세기 12:1~3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소명에 관한 말씀이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탈출하게 하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날 이 말씀이 나에게는 어떤 말씀으로 내게 다가와서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끄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창세기 12:1~3의 말씀은 어떤 말씀으로 인용되어 왔는가?

  보통 창세기 12:1~3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소명에 관한 말씀으로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가 믿고 의지했던 자기의 정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를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이동함으로 그가 복의 근원이 되고 그의 이름이 창대하게 되고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 길을 열었다고 설교한다. 이렇게 말이다. "네가 과거에 의지했고 사랑했으며 떠날 수 없었고 그래서 꼭 붙잡고 있었던 것들을 이제는 다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실 복을 바라보고 과감히 그곳을 떠나라" 물론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면 복을 받는다는 명제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창세기 11장에서 12장으로 넘어가면서 제공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부합하지 않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때 아브라함은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를 떠난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탈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아브라함이 거기를 떠나온 것과 탈출한 것에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생각이 좀 달라질 것이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과연 애굽을 떠나온 것인가 애굽으로부터 탈출한 것인가?" 떠나왔다는 것은 정든 고향처럼 떠나고 싶지는 아니한 마음 간절한데 하나님의 말씀에 그곳을 떠나라고 하니까 나온 것을 가리킨다면, 탈출한 것은 거기에 있으면 결코 안 되니까 급히 서둘러 빠져나온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그곳을 떠나온 것인가 탈출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은 그곳을 탈출한 것이다. 그럴만한 합당한 이유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3.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의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가?

  창세기 1~11장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거기에 기록된 사건의 의미도 달라진다. 만약 이 이야기를 회개와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시작인 제1대 아담부터 제10대 노아 때까지의 이야기가 첫 번째 이야기이며, 그리고 또 다시 제10대 노아 때부터 제20대 아브라함 직전까지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부분은 결국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시작된 인류의 저주가 노아의 홍수 때에 그 벌을 받게 되어서 끝났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노아로부터 시작된 또 다른 저주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때에 극에 달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을 집행할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노아 때부터 다시 시작된 인류의 범죄가 그의 10대 후손인 아브라함 때에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가? 그것은 경건한 셈의 후손마저 다 우상숭배에 넘어간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중의 한 사람을 불러내어 그를 새로운 가문과 조상으로 세우겠다는 이야기가 창세기 12장의 이야기다. 이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정든 고향 산천과 자신이 의지하는 부모를 떠나야 했던 안타까운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들을 것이 아니라, 그곳에 계속 남아 있으면 더이상 소망이 없어져 버릴 안타까운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계시되는가?

  여기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과연 당신의 뜻을 어떻게 계시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단번에 계시하는가 아니면 사람이 순종하면서 따라오게 될 때에 차근차근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전적으로 후자를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준들 그것을 수용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자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2:1~3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소명에 관한 말씀은 그것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때 그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이 다 계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을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어떤 이는 창세기 12:1~3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12:1~3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기를, 그가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게 된다면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 줄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도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뜻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당신이 하실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다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세기 13장, 14장, 15장, 17장, 22장을 읽어 보라.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진정 받을 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를 불러내시는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점차 밝히시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목적이 나온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자손이 번성케 하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려는 데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를 통하여 약속의 씨(자손)를 얻으시는 데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 22:16-18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그렇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의 허리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할 자손을 얻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부름받을 당시 상황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의 땅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에서 불러내신 것은 그로 하여금 약속의 씨를 얻고자 하심이었다. 그런데 당시 아브라함은 그 씨를 낳을 수 없는 저주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저주에서 건져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빠져나오라고 하셨다. 사실 아브라함의 가문은 그때 이미 저주에 휩싸여 있었다. 그의 가문은 그의 5대 조상이었던 벨렉의 시대부터 기울기 시작했다. 그때 세상은 함의 자손 니므롯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는데, 벌써 벨렉의 시대부터 니므롯을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과 교제하면서 살고 있었고 우상숭배를 자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점차로 수명이 단축되고 있었다. 더욱이 아브라함의 할아버지였던 나홀은 우상숭배의 저주로 인해 일찍 죽고 말았다. 다른 조상들은 적어도 230살 전후를 살았으나, 나홀은 148세로 단명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형인 하란도 자기 아버지보다 일찍 갈대아 우르에서 죽고 말았다. 자식을 셋이나 남긴 채 말이다. 그리고 아브라함 자신은 어떠했는가? 자기 자신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면서 깨닫는 것이지만, 한 집안에 일찍 죽는 자가 나오거나 자식을 못 낳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다 저주가 그 가문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이후 셈의 직계 후손을 통하여 약속의 씨를 보내 주시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셈의 직계 자손이었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마저 우상 제조업자가 되어 하나님의 곁을 떠나 있었고, 야살의 책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니므롯의 오른팔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만약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역시 저주를 받아 2세도 낳지도 못한 채 죽을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더러 빠져나오라고 했던 3가지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이 때 아브라함에게 3가지 것으로부터 빠져나오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셈의 직계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도구가 되려면 3가지 것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으로부터 떠나지 못한다면 아브라함 역시 저주 가운데서 인생을 마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빠져나와야 했던 3가지는 대체 무엇인가?

  첫째, 아브라함은 그때 그의 고향(땅)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했다(창12:1). 여기서 한글 성경에 나오는 '그의 고향'이란 말씀은 의역이다. 원문은 '그의 땅'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땅이 이미 죄악으로 인하여 완전히 저주로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곳에서 탈출하라고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땅이 이미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던 니므롯에 의해 점령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니므롯은 함의 손자로서 당시 갈대아 우르를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남부와 중부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사람들을 꼬드겨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었으며 우상의 신전을 만들어 숭배케 한 장본인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있으면, 결코 한 분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러다가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웠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갈대아 우르로부터 탈출하여 멀리 떠나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아브라함이 당시 살고 있었던 땅은 어디였는가? 그것은 하란이었는가? 아니면 갈대아 우르였는가? 창세기 12장만 읽어 보면, 그곳은 하란이다. 앞뒤 문맥을 보면, 그의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죽었고, 데라가 죽은 뒤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게 되는데, 그 중간에 그의 땅과 그의 친척과 그의 아버지의 집을 빠져나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갈대아 우르'는 대체 어찌 된 것인가? 그것은 성경에 답이 나와 있다. 창세기 15장에 가서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빠져나오게 한 곳은 '갈대아 우르'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창15:7).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서 스데반 집사가 설교하는 것을 보면, 영광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의 땅과 그의 친척으로부터 나오라고 한 곳이 갈대아 우르이기 때문이다(행7:2~4). 그렇다. 고로 정리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그에게 1차적으로 그의 땅과 그의 친족으로부터 나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하란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하란에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죽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아브라함에게 그의 땅과 그의 친족과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나오라고 다시 말씀하셨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친척(친족)'으로부터도 빠져나오라고 하셨다(창12:1). 왜 그런가? 그의 친족이 살고 있는 갈대아 우르와 그리고 하란 지역의 사람들은 혈통적으로 볼 때는 셈의 가문임이 분명하나, 신앙적으로는 이방인처럼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 대표는 아브라함의 둘째 형인 '나홀'이다(창11:29). 그는 아브라함의 대표적인 친족이었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었다. 나홀은 자신의 형인 하란의 딸 밀가에게 장가들었으며, 그녀로 인하여 8명의 아들을 얻었다. 그의 막내 아들이 바로 브두엘인데, 성경은 브두엘을 아람 족속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창25:20, 22:21~23). 사실 '아람'은 아담의 11대손이었던 셈의 다섯째 아들이었다(창10:22). 하지만 그 종족은 유야무야 되어서 없어져 버렸고, 아브라함의 둘째 형인 나홀이 그곳에 가서 살게됨으로, 메소포타미아('두 강 사이의 아람')는 나홀의 성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친족부터도 빠져나오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아무리 거기에 머물러 있는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는 결코 신앙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나하면 아람 족속이나 나홀의 자손들은 전부 다 이방신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더러 이제 마지막으로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도 빠져나오라고 하셨다(창12:1).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버지의 집마저 나오라고 한 것인가?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 데라의 집이 이미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저주가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데라의 아버지는 일찍 죽었다. 그리고 데라의 장남도 일찍 죽었다. 그리고 데라의 셋째 아들인 아브라함은 겉은 멀쩡하지만 자식을 못 낳는 저주에 휩싸여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을 섬겨야 할 셈의 직계 후손들이 하나님을 버린 채 우상을 섬기고 살았기 때문이다(수24:2~3). 그와 같은 사실은 여호수아 24장에 나온다. 거기에 보면 우상을 섬겼던 사람이 데라 혼자가 아니었고 그의 조상들이 그렇게 우상을 섬겼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수24:14~15). 그러므로 만약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버지의 집에 머물러 있다면 필연코 아브라함도 저주 가운데 지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자식도 낳지 못한 채 죽을 것이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곳을 빠져나와 새로운 믿음의 가문을 세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7. 아브라함의 순종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그리고 다시 하란에서 그곳들을 빠져나오라고 한 것은 결코 가혹한 명령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도 안되는 명령을 아브라함에게 내려 그의 순종 여부를 저울질했다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해석이다. 하나님은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려서 그가 순종하나 안하나를 시험하며 괴롭히는 그러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저주로부터 빠져나오기를 바라시는 분이다. 그것은 회개를 통해서 가능한 일인데, 아브라함이 그의 땅과 그의 친족과 그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은 곧 그에게 있어서 회개의 행위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의 땅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가문)을 떠났다는 것은 그가 지난 날의 조상들의 잘못을 대신 회개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믿음의 가문을 만들기 위해 그가 결단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1차적으로 합격 점수를 받았다. 그리하여 약속의 자손을 낳을 수 있는 자격을 1차적으로 확보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허리를 통하여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쏟아 내기 시작하신다. 

 

8. 나오며

  많은 성도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리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그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서 아브라함이 번성하게 되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리셨던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미 조상들로 받고 있는 저주를 끝낼 수 있는 길을 아브라함에게 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브라함도 불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약속의 자손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려 사람을 괴롭히거나 무조건적인 순종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를 살려 주시기 위해 생명의 길을 제시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늘의 복도 주어지는 것이다. 그랬다. 창세기 12:1~3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징검다리였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우선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것이 회개요 그것이 그의 결단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우상숭배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배우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지 못하는 저주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그는 우상숭배의 가문을 믿음의 가문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우리도 이제는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라서 저주로부터 탈출하여 믿음의 새 가문을 일으켜 보자. 

 

 

2021년 04월 18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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