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역사 한 눈으로 보기

by 갈렙 posted Aug 29,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왕, 분봉왕, 총독이란 무엇인가? Bible Study / Ⅰ 한 손에 성경

2011.05.20. 14:49

복사 http://philosophy78.blog.me/130109250500

전용뷰어 보기

2011.05.20.

_분봉왕_총독

 

 

(1. 말라기 기록연대)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서와 마태복음 사이에는 약 4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있습니다. 비록 이 4백년의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시기는 알렉산더 대왕의 출현과 같은 세계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이 신약성경을 이해하는데 알아두면 매우 도움이 되는 시기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2. 성구)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3:1-2)

 

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23:11-12)

 

지금 읽은 본문에 나온 헤롯은 예수님이 갓 태어나셨을 때 2살 미만의 아이들을 모두 죽인 헤롯대왕이 아닌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헤롯대왕에 대해서는 왕이라고 하고, 지금 읽었던 헤롯 안티파스는 분봉왕, 빌라도는 총독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물론 에스라, 느헤미야서를 보면 다시 유다민족이 포로생활을 끝내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지만 말라기서가 끝날 때까지 유다에는 더 이상 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 마태복음을 보면 갑자기 유대인도 아닌 헤롯이 유다의 왕으로 소개가 됩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고 이두매인입니다.

 

 

(3. 고대 이스라엘 지도)

이두매는 구약시대로 말하면 에서의 후손인 에돔족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돔 심판이후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큰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모압이고, 둘째 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벤암미입니다. 모압은 모압의 조상이고, 벤암미는 암몬의 조상입니다.

이두매인이었던 헤롯대왕 이후에는 그 아들들이 분봉왕이라고 불리게 되고 로마의 총독이라는 관리가 유다와 사마리아를 통치합니다. 거기다 헤롯 안티파스와 빌라도 즉, 분봉왕과 총독은 본래 서로 원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을 보다가 바로 신약을 보면 뭔가 큰 연결고리가 빠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400년의 연결고리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면서 왕과 분봉왕, 총독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36년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그 여파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어서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500년 이상을 타민족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대략 그 역사를 살펴보면

 

 

(자료4_시대구분)

1. 출애굽 후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 사사시대가 시작됩니다. 이때는 왕은 없었고 각 지파에서 뛰어난 리더들이 등장하여 돌아가면서 리더십을 발휘했던 12지파 연합공동체의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이 사도행전에 따르면 450년입니다.(13:19)

 

2.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가 시작되는데 사울-다윗-솔로몬때까지는 하나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고고학적으로 거의 정확한 연대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솔로몬 사망한 B.C.931년 경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이 됩니다.

 

 

(자료5_분열왕국 지도)

3. 지도에서 보라색이 유다이고 초록색이 이스라엘인데 이때부터 유다는 남유다,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분열 후 약 2백년 후인 B.C.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하면서 잃어버린 10지파 시대가 시작됩니다.

 

 

(자료6.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배)

앗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후 포로들을 유배시키는데 본국에서 수백, 수천킬로가 떨어져 있는 고산, 할라, 메대까지 끌고 가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포로들을 이스라엘로 이주시키는데 당시의 이런 상황이 앗시리아 부조에 그려져 있습니다.

 

 

(자료7. 앗시리아 부조): “부조는 평면상에 형상을 입체적으로 조각하는 조형기법

이 부조를 보면 앗시리아 인들이 포로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대우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오른쪽 부조에서는 포로로 끌려가는 유대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이방 이주민들이 혼인을 하게되면서 10지파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자료8. 사마리아 지도)

신약성경에서는 이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 당시의 상황을 보면 유대인들이 갈릴리와 유다 사이에 있는 사마리아를 밟지 않으려고 요단강을 건너 돌아갈 정도로 사마리아인들을 매우 격멸했는데 여기에는 이런 역사적인 유래가 있습니다.



 

(자료9. 바벨론 포로)

4. 그런데 이후 바벨론이 앗시리아를 정복하고 B.C.586년 예루살렘 성전을 멸망시키면서 유다역시 망하게 되는데 바벨론은 이때 유다의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자료10. 6세기 열강들)

5. 하지만 앗시리아, 바벨론를 이어 새로운 고대근동의 패자인 페르시아가 등장하게 되는데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B.C. 539년 바벨론을 점령합니다.

 

 

(자료11. 고레스 진흙원통문서)

당시의 상황이 고레스의 <진흙원통문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원통에는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점령한 사건과 유다를 비롯한 포로들을 본국으로 해방하겠다는 그 유명한 고레스 칙령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 대영박물에서 소장중입니다.

 

 

 

(자료12. 포로귀환)

페르시아 왕인 고레스 2세가 유다의 포로들을 해방시키면서 유다의 백성들은 3차에 걸쳐서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의 이야기가 에스라, 느헤미야이고 돌아온 유다의 백성이 다시 팔레스타인에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한 것이 B.C.515년입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유다는 한 동안 자치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B.C.430년 경의 인물입니다. 이제부터 성경에 없는 역사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자료13. 알렉산더와 다리우스 3세의 익수스 전투)

6. B.C. 336년 저 유럽 마케도니아에서 알렉산더라는, 당시 20세의 청년이 왕이 되면서 세계의 판도가 다시 한번 바뀌게 되는데 알렉산더는 이집트, 유다를 정복하고 331년 페르시아까지 패퇴시키고 바벨론과 수사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자료14. 알렉산더 통치지역)

그리고 323년 겨우 33살의 나이에 이 엄청난 대제국을 남겨두고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자료15. 알렉산더 제국의 분열)

7. 그러가 알렉산더 수하의 네 명의 장군 프톨레마이오스, 안티고누스, 데메트리오스, 셀류코스가 알렉산더의 제국을 분활해서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 유다는 다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부터 100년간 지배를 당하고, 그 후에는 또 다시 셀류코스 왕조의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자료16. 남유다의 독립)

8. 그러다 B.C.167년부터 마타티아스 가문의 주도로 유다 독립전쟁이 시작되는데 이것을 마카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이 마카비 혁명을 통해 결국 B.C.142년에 드디어 유다가 독립을 하게 됩니다.

 

 

(자료17. 446년의 식민지 시대)

B.C.586년에 바벨론에게 망한 후 446년 만에 독립을 한 것입니다. 유다는 446년 동안 바벨론, 페르시아, 알렉산더, 프톨레마이오스, 셀류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이때 셀류코스 왕조에서 독립한 유다 왕조를 하스모니아 왕조라고 부릅니다.

 

 

(자료18. 폼페이우스의 유다점령)

9. 하지만 하스모니안 왕조는 그 후 두 왕자인 아리스토불루스 2세와 히르카누스 2세 간의 왕위다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보이다가 히르카누스 2세가 B.C.63년 새로운 신흥강국이었던 로마를 끌여들이면서 결국 다시 식민지 시대가 시작됩니다.

 

10. 구약과 신약 중간 400년간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했고, 그의 후계자들인 프톨로마이오스, 셀류코스의 후손들이 유다를 식민지로 다스리다가 유다가 독립을 해서 하스모니안 왕조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다시 형제간의 다툼에서 궁지에 몰려 있던 히르카누스 2세가 로마를 끌어들이면서 B.C.63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의 지배가 시작되었다지만 그래도 유다의 공식적인 통치자는 하스모니안 왕조입니다. 일제식민시대때의 조선왕조, 대한제국처럼 말입니다.

 

 

(자료19. 헤롯대왕의 통치)

11. 이제 여기서부터 성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다의 왕이 누구였습니까? 헤롯대왕이었습니다. 도대체 헤롯이 누구기에 로마의 식민지배하에 있던 유다의 왕으로 있었던 것일까요? 헤롯 대왕은 하스모니안 왕가 사람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앞서 말씀드렸다 시피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두매인, 즉 구약의 에돔인입니다. 에돔의 조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에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헤롯이 어떻게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당시 유다의 왕이 되었을까요?

 

12. 하스모니안 왕가 내에 있었던 왕의 다툼 과정에서 로마가 자신들의 대리자로 이두매인이었던 헤롯을 유다의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때가 B.C.37년입니다. 이때 헤롯은 유다를 통치하기 위한 정당성을 위하여 자신의 아내인 이두매인 도리스와 이혼하고, 하스모니안 왕가의 공주 마리암네와 결혼을 합니다. 헤롯 자신은 정통성이 없지만 하스모니안 왕가와의 결혼을 통해서 유다 통치의 정당성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대왕 당시까지만 해도 헤롯이 유대와 사마리아, 이두매, 갈릴리, 베레아를 포함한 과거의 이스라엘을 모두 통치했습니다.

 

 

(자료20. 헤롯왕국의 분립)

13. 그런데 헤롯 대왕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그의 세 아들 아켈라오, 안티파스, 빌립에 의해서 3등분이 됩니다. 안디바는 보라색 부분인 갈릴리와 베레아, 빌립은 황토색 부분인 갈릴리 바다 북동쪽, 아켈라오는 빨강색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렸던 헤롯대왕은 그냥 이지만 그의 아들들은 한 지역만을 다스리는 분봉왕이라고 부릅니다. 분봉왕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테트랄케스인데 이 단어는 한 나라의 3분의 1이나 절반 정도를 가리키는 통치자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헤롯대왕때까지는 없던 분봉왕이 갑자기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로마가 유다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전략에서 나온 것입니다.

 

14. 그런데 헤롯의 세 아들 중에 아켈라오라는 인물이 몹시 억압적으로 유대인들을 다스렸고 성경에도 요셉과 마리아가 아켈라오를 피해 갈릴리 지방으로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향인 유다 베들레헴에서 살지 않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생활하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료21. 성구)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2:22-23)

 

결국 아켈라오의 폭정에 유대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자 로마는 아켈라오를 추방시키고, 로마가 직접 로마의 통치자를 파견해서 아켈라오가 다스리던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를 통치하게 됩니다.

 

 

(자료22. 역대 총독)

로마가 이처럼 직접 파견한 사람들을 총독이라고 부르는데 로마의 첫 총독이 코포니우스이고 우리가 잘 아는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가 유다에 파견한 5번째 총독입니다.

 

14 . 예수님을 십자가에 재판했던 두 인물이 헤롯 안티파스 왕과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헤롯과 빌라도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습니다. 당연합니다. 헤롯은 나름대로 헤롯대왕을 뒤이어 유대를 통치하는 그나마 정통성이 있는 왕이었고, 빌라도는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인들을 어떻게 하면 헤롯 왕조를 무너뜨리고 로마가 팔레스타인 전체를 다스릴까만 생각했기에 그 둘은 서로 원수일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는 서로 협조를 한 것입니다.

 

15. 오늘은 이스라엘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역사와 함께 예수님 당시 주님을 재판했던 왕과 총독의 개념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 공부하신 내용이 앞으로 복음서를 읽으실 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Articles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