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과연 실존 인물이었을까요?

by 갈렙 posted Sep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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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실존 인물이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실존 인물이었을까요? 그리고 기독교는 해리 포터와 같은 가상의 인물을 바탕으로 태어난 허구에 불과할까요?

2천년 가까이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를 예외적인 성격과 리더쉽, 그리고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실존 인물로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부 사람들은 예수가 존재한 적이 없다고도 합니다.

예수의 실존 여부와 관련된 논쟁인 예수 신화론은 예수가 유대 언덕을 걸어 지나간 후 17세기에 시작되었습니다.

American Atheists의 회장인 Ellen Johnson은 이 예수 신화론을 CNN TV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예수가 실존했다는 현실적인 증거는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예수는 신화적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기원과 사망에 대한 이야기를 가진 다른 신들을 통합한 존재입니다.

이에 놀란 진행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믿지 않나요?”

Johnson은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했음을 알리는 현실적인 증거는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King은 광고를 요청했습니다. 전세계의 시청자들이 궁금증을 품게 되었습니다.[1]

옥스포드의 문학자인 C. S. Lewis 역시 무신론자였던 어린 시절에 예수는 신화이며, 모든 종교는 단순히 인간이 지어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2]

수 년 후 Lewis는 Oxford 기숙사 방의 난로 옆에서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신론자”인 친구와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친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복음의 사실성에 대한 증거는 놀랄 정도로 신빙성이 높고, 실제로 있었던 일 같다.”[3]

Lewis는 크게 놀랐습니다. 예수에 대한 실제 증거가 있었다는 친구의 말은 Lewis에게 직접 사실을 알아보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는 예수의 진실에 대한 조사를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라는 저서에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Lewis의 친구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발견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고대 역사에 따른 사실

먼저 좀 더 기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허구의 인물과 실제 인물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이를테면 역사학자들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실존 인물이라고 납득시킬 수 있는 증거는 무엇이 있을까요?그리고 그러한 증거가 예수에게도 존재할까요?

알렉산더와 예수 모두 카리스마가 뛰어난 리더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30대 초에 사망해서 대외적 활동은 길지 않습니다. 예수는 사랑으로 이기는 평화로운 성격으로 알려졌으며, 알렉산더는 반대로 무력으로 통치한 전쟁의 화신으로 알려졌습니다.

B.C.336년에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군사적 천재로 잘 생긴 외모와 거만한 성격의 이 리더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수많은 마을과 도시, 왕국을 휩쓸어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판단되자 눈물을 흘렸다고도 합니다.

알렉산더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사망한 시점으로부터 300년도 더 전에 쓰여진 고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4] 그리고 알렉산더라는 사람을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알렉산더를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알렉산더가 역사에 미친 영향과 고고학을 통해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확증되었다는 것이 그 주요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가 실제 인물이었다면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존재의 증거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1.  고고학
  2. 초기 비기독교적 설명
  3. 초기 기독교적 설명
  4. 초기 신약 필사본
  5. 역사적 영향

1. 고고학

시간은 예수와 관련된 많은 미스터리를 묻어버렸으며 이 미스터리들은 최근에서야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발견은 18~20세기 중에 발굴된 고대 필사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필사본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신약에 등장한 예수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수많은 장소와 유물들도 발견했습니다. Malcolm Muggeridge는 영국 언론인으로 BBC에서 TV 관련 업무차 이스라엘에 간 동안 그러한 증거를 보기 전까지 예수를 허구로 생각했습니다.

신약의 예수 관련 이야기에 등장한 장소들 관련 보도를 한 후 Muggeridge는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의 탄생, 사역, 십자가에 못박힘 등에 대한 확신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예수라는 한 사람이 정말로 존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5]

하지만 20세기 전까지 로마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 유대의 대제사장인 요셉 가야바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재판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만든 핵심 인물입니다. 회의론자들은 이런 불충분한 증거야말로 예수 신화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961년에 고고학자들은 “본디오 빌라도, 유대의 총독”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석회석 벽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에는 가야바의 이름이 새겨진 납골 상자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어떠한 의심도 할 수 없는” 진품으로 확인되었습니다.[6]

또한 2009년까지는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이 그의 생전에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었습니다. Rene Salm과 같은 회의론자들은 1세기 당시 나사렛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음을 기독교의 치명적인 오류라고 생각했습니다. 2006년 Salm은 저서 Myth of Nazareth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자유사상가들이여, 축복하라…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가 드디어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7]

하지만 2009년 12월 21일, 고고학자들은 1세기의 나사렛에서 사용된 점토 조각을 발견했으며, 이 작은 마을이 그리스도의 시대에 존재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참고: “예수는 정말로 나사렛 출신인가?”).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이 예수가 그 곳에서 살았음을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생애의 복음서들을 뒷받침해 줍니다. 역사학자들은 늘어나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예수에 대한 이야기에 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뒷받침해준다고 합니다.[8]


2. 초기 비기독교적 설명

Ellen Johnson과 같은 회의론자들은 예수와 관련하여 “세속사의 부재”야말로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존재했던 인물과 관련된 증거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부분 고대 문서들은 전쟁, 화재, 약탈 또는 단순 풍화 등으로 인해 1세기 중에 파괴되었습니다.

로마제국과 관련된 비기독교 문서 대부분을 정리한 E. M. Blaiklock에 따르면 “특히 그리스도 생전과 관련된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하며, 율리어스 시저와 같은 실제 지도자 관련 자료도 없다고 합니다.[9]

하지만 황제의 존재를 의심하는 역사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Darrel Bock에 따르면 예수는 위대한 정치 또는 군사적 지도자도 아니었으므로 “우리가 가진 자료에 예수가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우면서 중요한 점”이라고 합니다.[10]

그렇다면 Bock이 말하는 자료는 무엇일까요? 예수를 다룬 초기 역사학자들 중 기독교적인 연관성이 없었던 이는 누구일까요? 먼저 예수의 반대 세력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유대인 역사학자: 예수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이득이 가장 큰 이들이 유대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야말로 예수를 실존 인물로 간주해왔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의 자료를 보면 예수를 자신들이 반대한 실존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11]

이는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에 대해 다룬 적이 있는 유대인 사학자 Flavius Josephus의 말입니다.[12]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면 Josephus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다소 논쟁거리가 될 만한 다른 말을 들어보면 Josephus는 예수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13]

이 당시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선했으며, 도덕적인 이로 알려졌습니다. 유대인 중,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그에게 십자가에 달리는 형을 선고하여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은 그에 대한 제자의 신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제자들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후 3일 만에 자신들 앞에 나타났고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에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14]

논란거리가 된 발언도 있지만 Josephus의 예수의 존재에 대한 이러한 확인은 많은 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15]

이스라엘의 학자 Shlomo Pines은 이러한 글을 남겼습니다. “기독교를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이들조차 예수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에 의구심을 표한 적이 없습니다.”[16]

세계 역사학자인 Will Durant에 따르면 1세기를 살았던 유대인이나 비유대인 중에서 예수의 존재를 부인한 이는 없다고 합니다.[17]

로마 역사학자 초기 로마 역사학자들은 황제에게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기록만 남겼습니다. 예수 역시 정치나 군사적으로 로마에 크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로마 역사학자 중 예수를 언급한 이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로마 사학자 중에서도 중요한 인물들인 Tacitus와 Suetonius는 예수의 실존을 인정합니다.

Tacitus(서기 55~120)는 초기 로마 역사학자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 이로 Christus(그리스도의 그리스어 표기)가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살았으며 “본디오 빌라도의 핍박을 받았고 예수의 가르침이 로마까지 전해졌으며 기독교인들은 죄인으로 여김 받아 십자가형을 포함한 여러 방법으로 고문을 받았다” 고 기록했습니다.[18]

Suetonius(서기 69~130)는 “Chrestus”를 선동자로 묘사했습니다. 대부분 학자는 이것이 예수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서기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네로 황제의 핍박을 받았다고도 기록했습니다. 64.[19]

로마 관료: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가이사) 대신 예수를 왕으로 받아 들였으므로 로마의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로마 황제 2명을 포함하여 다음의 로마 정부 관료들은 그러한 관점에서 서한을 남겼으며, 예수와 초기 기독교의 기원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습니다.[20]

플리니(Pliny the Younger)는 트라얀 황제 시대의 총독이었습니다. 서기 112년에 플리니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신으로 숭배하는” 그리스도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시도와 관련하여 황제에게 서한을 남겼습니다.

트라얀 황제(서기 56~117)도 예수와 초기 기독교 기원에 대해 언급한 서한을 쓴 바 있습니다.

하드리안 황제(서기 76~136)는 기독교인을 예수를 따르는 자들로 묘사했습니다.

이교도: 일부 초기 이교도 작가들도 2세기 말 이전에 예수 또는 기독교인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였습니다. Thallus, Phlegon, Mara Bar-Serapion, Lucian of Samosate 등이 이러한 작가들이었습니다.[21] 특히 Thallus의 예수에 대한 언급은 예수가 사망한 후 약 20년 뒤인 서기 52년경에 작성되었습니다.

총 9명에 달하는 초기 비기독교 세속 작가들이 예수가 사망한 후 150년 내에 그를 실존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수의 세속 작가들이 예수의 시대에 황제였던 디베료 황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 자료를 고려하게 되면 예수를 언급한 자료의 수는 디베료를 언급한 10명에 비해 42명이나 됩니다.[22]


예수에 대한 역사적 사실:

이러한 초기 비기독교적 자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나사렛 출신이었습니다.

예수는 지혜롭고 선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여겨져 디베료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에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죽었다고 생각했으며, 그 후 3일이 지나자 죽음에서 돌아왔습니다.

예수의 반대 세력들은 그가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빠르게 늘어났으며, 로마에서도 제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도덕적인 삶을 살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경배했습니다.

예수의 삶에 대한 이러한 전반적인 요약 내용은 신약과도 완전히 일치합니다.[23]

Gary Habarmas의 말에 따르면 “비기독교인 자료 중 약 3분의 1이 1세기에 나타났으며, 대부분은 2세기 중반에 나타났다”고 되어 있습니다.[24] 또한 Encyclopedia Britannica 에 따르면 “이러한 독립적인 이야기들은 기독교에 반대하는 이들도 예수의 역사적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25]

3. 초기 기독교적 설명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와 관련하여 수천 건의 서한과 설교 및 주석을 남겼습니다. 또한 예수를 언급한 교리들도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지 5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26]

이러한 비성경적 글들은 십자가에 못박힘과 부활을 포함하여 예수에 대한 신약의 내용을 대부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27]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점은 이러한 기록의 일부 또는 전체 36,000건 이상이 발견되었으며 그 중에서는 1세기에 작성된 것도 있습니다.[28] 이러한 비성서적 기록은 전체 신약 중 몇 구절을 제외한 내용을 재구성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29]

이 기록을 작성한 이들은 예수를 실존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예수 신화론자들은 이러한 기록이 편향된 것이라고 무시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답해야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가 허구의 인물이라면 어떻게 단 수십 년의 그의 삶에 대해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가 쓰여질 수 있을까요?


4. 신약성서(초기 신약 필사본)

Ellen Johnson과 같은 회의론자들은 신약도 “편향”되어 있으며 예수에 대한 증거로 충분치 못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비기독교적인 역사학자들도 고대 신약 필사본을 예수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간주합니다. 캠브릿지의 역사학자이자 무신론자인 Michael Grant의 경우 신약을 다른 고대 역사에 대한 증거와 동일하게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야 하겠지만, 역사적 자료가 담긴 고대 기록과 동일한 기준을 신약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역사적 존재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다수의 이교도 인물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더 이상 예수의 존재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30]

4대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는 예수의 생애와 언행을 묘사한 주요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경우 데오빌로에게 전하는 말로 시작됩니다.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나도 데오빌로 각하 당신에게 차례대로 써서 알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였으니”[31]

유명 고고학자인 William Ramsey 경은 원래 누가복음의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거부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최근 그는 이렇게 인정했습니다. “누가야말로 최고의 사학자입니다… 이 분은 역사상 최고의 사학자들과 함께 존경받아야 합니다… 누가가 남긴 역사는 그 신뢰성에 있어서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32]

알렉산더와 관련된 초기 자료는 그가 사망한 후 300년이 지나서 작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삶에 대한 복음서들의 이야기는 실제에 얼마나 근접한 것일까요? 예수를 실제로 본 이들이 그 때까지 살아있었으며, 또는 예수에 대한 전설이 완성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까요?

1830년대에 독일 학자들은 신약이 3세기에 작성되었으며 이는 예수의 사도들이 작성하기에는 너무나 늦은 시기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9, 20세기에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필사본의 사본을 통해 이러한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3세기보다 훨씬 전에 작성되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참고: “하지만 사실일까요?”]

William Albright는 신약이 작성된 일자를 “서기 50년에서 서기 75년 사이”[33]사이라고 추정했으며, 캠브리지의 사학자 John A. T. Robinson의 경우 서기 40~65년 사이로 추정했습니다. 이러한 시간대가 의미하는 것은 예수를 본 증인들이 살아 있었으며 예수와 관련된 전설이나 허구가 완성되기 훨씬 전이라는 뜻입니다.[34]

C. S. Lewis는 복음서들을 읽어본 후 이렇게 적었습니다. “문학 사학자로서 나는 복음서들이 허구가 아니라는 점을 100%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 관련 전설은 많이 읽어봤으며 복음서와 전설은 다르다는 점을 매우 명확하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35]

신약 필사본의 수는 엄청납니다. 부분 또는 전체 필사본의 경우 24,000 건 이상이 존재하며 이는 다른 어떤 고대 문서보다 월등히 많은 양입니다.[36]

다른 어떤 종교적 또는 세속적인 고대 인물도 예수 그리스도만큼 많은 문서가 뒷받침해주지 못합니다. 역사학자 Paul Johnson은 이런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를테면 Tacitus와 같은 인물은 단 하나의 중세 필사본에만 등장하지만 초기 신약 필사본의 양은 놀라울 정도입니다.”[37]

(신약의 신뢰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복음서는 믿을 수 있습니까?”)


5. 역사적 영향

허구는 역사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역사학자 Thomas Carlyl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의 역사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전기라 할 수 있습니다.”[38]

국가의 기반이나 유산을 신화적인 인물이나 신으로 내세우는 국가나 정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평균적인 로마 시민은 예수가 사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예수가 미친 영향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는 군대를 지휘한 적이 없습니다. 책을 쓰거나 법을 바꾼 적도 없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과 로마의 황제들은 예수와 관련된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으며, 성공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은 고대 로마의 유적 뿐입니다. 황제의 강력한 군대와 로마 제국의 강력한 힘도 모두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오늘날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그가 지금까지 남긴 영향력은 무엇일까요?

  • 역사상 예수보다 더 많은 책에 쓰인 인물은 없습니다.여러 나라에서는 예수의 말을 정부의 기반으로 활용했습니다. Durant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스도의 승리야말로 민주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39]예수의 산상 수훈은 윤리와 도덕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 학교, 병원, 그리고 인권 단체들이 그의 이름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다트머스, 콜롬비아, 옥스포드를 비롯한 100개 이상의 유명 대학들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40]
  • 서양 문화권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승한 것도 예수가 근원입니다 (예수 시대의 여성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퍼지기 전까지 열등한 존재이자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습니다).모든 인간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예수의 가르침 덕분에 영국과 미국에서는 노예제도가 사라졌습니다.

놀라운 점은 대중(공생애) 사역으로 3년 만에 이러한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니다. 유명한 세계 역사학자 H. G. Wells에게 역사상 가장 큰 유산을 남긴 이가 누구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러한 기준이라면 예수야말로 최고입니다.”[41]

예일대의 역사학자 Jaroslav Pelikan은 예수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예수에 대해 누가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거나 믿음을 갖더라도 나사렛의 예수가 거의 20세기 동안 서양 문화권을 지배해 온 인물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가 태어나면서 인류의 달력 대부분이 시작되었고, 예수의 이름에 의해 수백만 명이 그에게 저주를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수백만 명이 기도를 합니다.”[42]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허구가 어떻게 이 정도로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에 의문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전설 속의 신들이 인간의 환상과 욕망을 대신 실현해주는 슈퍼히어로들로 묘사되는 한편 복음서들은 예수를 겸손하고 인애를 겸비하고 순전한 도덕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추종자들은 예수에 대해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실존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비기독교 과학자인 Albert Einstei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서들을 읽다 보면 예수가 실존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단어 하나 하나에 예수의 성격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어떤 전설이나 신화도 그만큼 생생하지 못합니다…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과 그의 말이 아름다웠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43]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러한 전설에서 표절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유튜브에서 공개된 영화인 시대정신(Zeitgeist)에서도 제기되었으며, 이 영화를 만든 Peter Joseph은 대담하게도 이런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사실 예수는 허구적인 인물이며, 여러 유신론적 종교를 비롯한 기독교는 그 시대의 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44]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와 신화 속의 신들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분명합니다. 복음서에서 드러난 실제의 예수와 비교할 때 신화의 신들은 이러한 환상 속의 요소를 가진 비현실적 신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 미트라는 바위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45]
  • 호루스는 매의 머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46]
  • 바커스,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은 페가수스라는 말을 타고 천국에서 날아왔다고 합니다.[47]
  • 오시리스의 아내인 이시스는 그를 살해한 후 시신을 14조각으로 자른 후에 다시 모아서 •부활시켰다고 합니다.[48]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일까요?

예수의 추종자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주장에 대해 목숨이라도 걸 수 있다고 합니다. [참고: “예수는 죽은 후에 부활한 것인가요?”]

게다가 “예수의 부활과 유사하게 부활한 신에 대한 이야기들은 예수의 부활이 알려진 후 최소 100년 후에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49]

다시 말하자면, 호루스, 오시리스, 미트라 등의 신이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원래 신화에 없었으며, 복음서에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진 후에 추가된 것입니다.

룬드 대학 교수인 T. N. D. Mettinger는 “현대 학자들은 부활한 신들이 기독교보다 나중에 등장했다는 점에 거의 공통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 신들은 모두 1세기 이후에 등장했습니다.”[50] [메모 50 참고]

대부분 역사학자들도 이러한 신화의 신들과 예수 그리스도 간에 진정한 유사점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C. S. Lewis의 생각은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 공통적인 주제는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Lewis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3부작의 저자인 J. R. R. Tolkien과 나눈 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Tollkien은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진정한 신화일 뿐이고 실제 일어난 사건과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51]

신약성서 연구학자인 F. F. Bruce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일부 작가들은 ‘예수 신화론’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인 증거를 기반으로 활용하지는 않습니다. 편견이 없는 역사학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역사적 진실성은 줄리어스 시저의 역사적 진실성 만큼이나 자명합니다. ‘예수 신화’론을 퍼뜨리는 것은 역사학자들이 아닙니다.”[52]

--- 끝 ---


http://y-jesus.org/korean/wwrj/1-%ec%98%88%ec%88%98%eb%8a%94-%ec%8b%a4%ec%a1%b4-%ec%9d%b8%eb%ac%bc/

에서 발췌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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