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단, הַקְּטֹרֶת하케토렡 מִזְבַּח미즈바]

by 갈렙 posted Mar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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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단, הַקְּטֹרֶת하케토렡 מִזְבַּח미즈바]

프로파일 이레 Jireh ・ 2022. 5. 20. 1:10

 

출30:1 너는 분향할 제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2 길이가 한 규빗, 너비가 한 규빗으로 네모가 반듯하게 하고 높이는 두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이어지게 하고 3 제단 상면과 전후 좌우 면과 뿔을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를지며 4 금 테 아래 양쪽에 금 고리 둘을 만들되 곧 그 양쪽에 만들지니 이는 제단을 메는 채를 꿸 곳이며 5 그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6 그 제단을 증거궤(법궤) 위 속죄소(시은좌 곧 은혜의 자리)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1 분향할 제단[קְטֹרֶת케토렡 מִקְטַר미크탈 מִזְבֵּחַ미즈베아흐]

“향을 피울 제단<한킹> altar as a place for burning incense향을 태우는 제단<NASB>, an altar for making perfume향을 만들기 위한 제단<YLT>” 등으로 번역되는 이것은 하나님께 향[קְטֹרֶת케토렡]을 태워[מִקְטַר미크탈 burning, making] 제사 드리는 제단[מִזְבֵּחַ미즈베아흐 altar]으로서 성소 안에 있으며, 일명 “분향단, 향단”으로 불린다.

▣ 제단[מִזְבֵּחַ미즈베아흐 altar]

제물을 태워 향기로운 향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이다. 뜰의 제단은 희생제물을 살라 바치는 장소이나 분향단은 향을 살라 바치는 장소이다. 토라에는 이 두 개의 성구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제단[מִזְבֵּחַ미즈베아흐]”으로 부르고 있어 문맥으로 구별하여야 한다. 분향단은 뜰의 번제단과 그 형태(네모반듯함, 네 모퉁이에 뿔이 있음)와 용도(향으로 주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가 유사하다. 다만 크기만 매우 작다.

【분향단의 위치】

분향단은 성막 안에 있지만 성막의 성구들을 만들도록 명령하시는 곳<출25:10~27:19>과 떨어져 있는 것이 주목을 끈다. 지성소의 궤<출25:10>로부터 뜰의 포장 말뚝<출27:19>에 이르는 길은 이스라엘 가운데 주 하나님의 거하심(말씀)이 나타나 보이는 길(궤의 말씀이 흘러나온 강)이므로 그 길(이정표)을 따라 들어가면 그분(증거궤, 토라)에게로 나아 갈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 “분향단, 물두멍”은 분명히 그 길에 놓여 있지만, 이정표<출25:10~27:19>에서 떨어져 “제사장 위임식<출29장>” 이후에 기록된 점은 특이하다. 이것은 “분향단, 물두멍”이 <출25:10~27:19>의 성구들이 목적하는 바와 다른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지성소의 궤<출25:10>~ 뜰의 포장 말뚝<출27:19>에 이르는 성구들은 궤의 토라(그분의 임재, 그분의 통치)가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나아가는 것을 가르치나, 분향단과 물두멍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제사장으로 위임받은 자들이 어떻게 그분을 섬기며 그분께로 나아가야하는 지를 가르치는 성구이다(전자는 주 하나님 관점, 후자는 위임받은 제사장 관점).

그분 앞에 제사장으로 위임받은 것은 “주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에게 그분의 영광(토라)을 전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제사장으로 위임받은 자의 임무(번제물을 통하여 백성에게 하나님을 나타냄)를 가장 먼저 명령하시는 상번제 구절에 나타나있다. 하나님께서 상번제를 드리는 제단에서 제사장과 먼저 만나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이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출29: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주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분향단도 위임받은 제사장 사역의 본질적인 장소(태우는 향으로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함)로서 뜰의 번제단과 그 정체성이 유사하다. 곧 상번제를 끊이지 않고 드려야 하는 제사장의 의무가 분향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분향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물두멍을 먼저 지나가야 하나 증거궤 가까이에 있는 분향단이 제사장 사역의 본질이며 중요하므로 물두멍<30:17-21>보다 분향단<30:1-10>에 대한 말씀이 앞에 기록되었다.

「Sforno」는 분향단은 성막 안의 다른 성구들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기 위한 것<출25:8-9>이며 희생제물을 통한 제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만남의 장소가 되도록 하는 중재역할을 한다<출29:43>. 이때, 성막과 그 안에서의 제사는 그분의 임재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는 가운데 분향단은 “왕을 영접하며 또 그분에게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분향단은 성막 안에서의 모든 의식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므로 모든 것들에 대한 말씀을 마치신 후에 가장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Cassuto」는 성막 전체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분향단의 기능을 살펴볼 때, 분향단 그 자체는 하나님에게 관련되는 것보다는 “사람에게 관련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사장의 옷과 분향단, 그리고 물두멍은 성막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이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막은 그곳에서 일하는 제사장을 필요로 하는데, 그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유지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그들이 입는 옷이며 또 그들이 일하는 가운데 더럽혀진 발과 손을 씻는데 필요한 물을 담아두는 물두멍, 그리고 분향단에서 피우는 향은 그들이 드리는 제사 가운데 속죄를 위한 것보다는 감사와 찬양에 관련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Arthur Pink」는 성소의 금 제단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대제사장의 중보사역을 행하시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금 제단은 죄를 지은 우리를 위해 놋쇠 제단에서 고난당하고 심판을 견디며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운 폭풍 아래 머리를 숙이신 그분께서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시고 영원히 살아 계시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백성의 이익을 지켜주시고자 그분의 모든 존귀와 탁월함의 능력으로 중보를 행하시는 메시아 예슈아, 그분을 생각하게 한다.

▣ 분향단의 향[קְטֹרֶת케토렡 어원קָטַר카타르 향을 피우다, 불사르다, 연기가 나도록 하다]

분향[קְטֹרֶת케토렡 מִקְטַר미크탈 to burn incense LXXυμίαμα뒤미아마]은 곧 제사장의 기도, 예배(찬양과 감사)를 상징한다.

시141:2 나의 기도[προσευχή프로슈케]가 주의 앞에 분향함[קְטֹרֶת LXXθυμίαμα]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사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προσευχή프로슈케]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랍비들의 가르침은 [קטרת] 각각의 문자가 상징하는 단어를 가지고 [קטרת]의 의미를 설명한다.

① [ק코프]는 [קָדוֹשׁ카도쉬] 즉, “거룩함”을 나타낸다. 거룩함은 택함 받은 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제사장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로서 거룩하게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레11:45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주니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표>

② [ט테트]는 [טָהֹור타호르] 즉, “정결함, 순결함”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분 앞에 예배하는 자가 갖추어야하는 의식적인 조건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정결함과 순결함을 항상 갖추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③ [ר레쉬]는 [רַחֲמִים라하밈] 즉, “긍휼, 자비”를 나타낸다. 제사장은 긍휼의 마음, 어머니가 자식에게 갖는 모성애[רָחַם라함]로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여야 함을 나타내고, 그분의 사랑과 긍휼하심이 제사장들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전해져야 함을 의미한다.

④ [ת타우]는 [תִּקְוָה티크바] 즉, “희망, 소망, 소원”을 나타낸다. 이것은 [מִקְוֶה미크바 정결례, 죽었다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 그분께 소망을 두는 것]와 동일한 뿌리를 두는 단어로서 분향단의 향은 다시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메시아의 고귀한 보혈로 인함이며, 죄인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길이가 한 규빗[אַמָּה암마] 너비가 한 규빗[אַמָּה암마]

성막의 길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영원성(시간적 속성), 너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광대함(공간적 속성)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1)은 “오직 유일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유일하신 한분)에서 드려져야 함을 의미한다. 분향단에서 피우는 향들의 연기(향연)단수와 성도들의 기도들복수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금향단으로 올라가는데단수 유일한 길로 올라간다. 사도요한은 성도들의 기도들과 향들은 오직 한길을 통하여 그분께로 올라가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다.

계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단수를 가지고 많은(들)복수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들)복수기도(들)복수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단수 함이라 4 향연(향들복수의 연기단수)성도(들)복수기도(들)복수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단수

 

이는 마치 주 예수께서 자신을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한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간청을 되풀이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분의 간청은 아버지께서 항상 들으심으로<요11:42> 단 한번으로 충분하며 그 간청은 영원한 효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한 규빗”은 연합(하나, 한 몸)을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중보는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분의 영광을 입고 들어가 서로 “하나 됨”을 원하는 간청이었다.

요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 높이는 두 규빗

성막의 높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성함(영적 속성)이 나타나 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임하심은 위로부터 오신 것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시는 신적 권위(장엄함, 숭고함)를 가지고 있다. 번제단 그물(골고다 십자가)의 높이, 증거궤, 떡상의 높이는 “한 규빗 반”이지만 분향단의 높이는 “두 규빗”으로 조금 더 높다. 두 규빗의 높이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주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나타내기도 한다.

민11:23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주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31 바람이 주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이스라엘 진영 사방의 지면에 두 규빗 높이로 내린 메추라기는 강력한 주 하나님의 손(창조주의 권능)을 상징한다. 사도요한은 분향단에서 올라가는 기도가 주 하나님의 손(창조주의 권능)을 움직이는 심판으로 응답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계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Arthur Pink」는 “두 규빗”은 아마도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 있는 성도들의 찬양과 아직 땅에 있는 성도들의 찬양을 둘 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 네모가 반듯하게 하고[רָבַע라바]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네모 반듯함)의 완전함을 보여주는 단어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네모반듯한 것, 완전함은 오직 성막에만 존재한다. 성막의 뜰에 놓인 “번제단”, 성소의 “분향단”, 대제사장 에봇의 “판결흉패”가 네모반듯하다. “네모 반듯함”에는 주 예수님의 십자가, 중보, 생명의 말씀이 계시되어 있다.

출27:1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רָבַע]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출28:16 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רָבַע]

출30:2 길이가 한 규빗, 너비가 한 규빗으로 네모가 반듯하게 하고[רָבַע] 높이는 두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이어지게 하고

 

금 제단은 “네모 반 듯”하다. 이것은 그분의 중보가 땅의 네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흩어져 있는” 그분의 모든 백성을 포용한다는 것을 말해준다(Arthur Pink). 우리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형제들, 곧 그분이 위하여 피를 흘리신 제자들을 기억하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지만 그분은 기억하고 계신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라고 명령한다. 이것이 분향단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네모 반듯함”이다.

딤전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 뿔[קָרֶן케렌 양각나팔, 제단의 뿔, 빛의 광선]

정사각형의 모양(네모 반듯함)이 그분의 공의 혹은 정의를 상징한다면, 뿔은 히브리적 사고에서 “강건함과 힘”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남<출34:29, 합3:4> 권력을 가짐<단8:3> 부끄러움을 벗고 지위를 회복함<삼상2:1>” 등에 쓰인다. 분향단의 뿔은 당연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중보 능력을 상징한다. [קָרֶן케렌]은 “구원의 뿔”, 그 속에 감추어졌던 그분의 힘과 능력으로 잃었던 지위를 회복하게 한다.

합3:4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קָרֶן]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토라는 분향단의 “뿔”의 수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놋 제단과 같이 각 모퉁이에 하나씩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출38:2>.

3 주위에 금 테를 두를지며

금 테[זָהָב자하브 זֵר]”는 “언약궤, 떡상, 분향단”에만 윗쪽 가장자리의 테두리[זֵר제르 테두리, 화관]를 금으로 둘러 마치 왕관(crown)을 씌운 모양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출애굽기>에서만 열 번(10:하늘의 완전, 충만) 나타나며 동사원형은 [זוּר주르 누르다, 으깨다, 죄다, 짜다]이다.

「Arthur Pink」는 성막의 가구 일곱 개 중 세 개에는 “면류관”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언약궤의 금테는 율법의 면류관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높이시며 그것을 존귀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사42:21 주께서 그의 의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교훈[תּוֹרָה토라]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

사42:21 주께서는 그의 의로우심으로 인하여 매우 기뻐하시나니, 그는 율법[תּוֹרָה토라]을 높이시며 그것을 존귀하게 하시리로다.

둘째, 진설병의 상의 금테는 교제의 면류관이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영예이자 최고의 특권은 영광의 관을 쓰신 분과의 교제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분배의 관점에서 본다면, 떡 열두 덩어리가 있는 상은 장차 회복되고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이스라엘을 가리킬 것이다. 이것이 그 왕국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셋째, 황금 제단의 금테는 제사장의 면류관이다. 이것은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보좌”에 앉아 계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4 금 고리[טַבְּעֹת타베오트 어원טַבַּעַת타바아트 인장반지, 고리, 목걸이] 둘

성막의 주요 성물에는 모두 고리가 달려있다(언약궤<25:12> 떡상<25:26> 널판<26:29> 번제단<27:4,7> 판결 흉패<28:23> 분향단<30:4>). 고리는 성막에 임재하신 거룩하신 분의 발이 되어 이동하는 레위인을 연결하며, 48장의 널판이 고리에 의해 띠(빗장)로 연결되어 견고하게 세워지고, 대제사장 에봇과 판결 흉패, 에봇 띠는 판결 흉패의 금 고리로써 연결되어 떨어지지 않도록 붙여졌다. 성막(하나님의 거룩함)은 고리를 통하여 이동(궤, 떡상, 번제단, 분향단), 건축(널판), 유지(에봇과 흉패)되고 있어 고리의 본질은 이스라엘 가운데 주 하나님의 거하심[שָׁכַן샤칸]을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양쪽에 금 고리 둘을 만들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네 모퉁이에 금 고리를 하나씩(한 쪽 면에 두 개, 반대 쪽 면에 두 개) 달았다고 생각하지만, 「라시」는 폭 1규빗(약50cm)으로는 두 사람이 메고 운반하기에 불편할 것이므로 대각선 모퉁이에 하나씩 두 개만 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

지성소 증거궤 앞의 분향단은 하늘나라 보좌 앞의 금 제단을 이 땅 가운데 투영시키신 것이다<계8:3,9:13>. 제단은 본질적으로 주 하나님의 귀(들으시는 곳)를 상징한다. 사도요한은 제단에서 큰 소리가 나고 하나님은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시는 것으로 기록한다. 그분이 들으신다고 하는 것은 곧 기억하시고 움직이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단은 곧 그분이 약속하신 것을 기억나게 하는 장소이다.

마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계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계9: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계16: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

분향단을 놓는 곳 “속죄소 맞은편[הַכַּפֹּרֶת하카포렡 לִפְנֵי리페네]”은 문자적으로 “before the mercy seat속죄소 앞”이다. 실제적으로 분향단에서 아론이 “아침과 저녁으로” 향을 살라야했으므로 그것은 지성소 안이 아닌 성소에 위치했다(탈무드에서는 메노라와 식탁과의 사이에 두는 것이라고 함). 여기에서 속죄소 앞[הַכַּפֹּרֶת하카포렡 לִפְנֵי리페네]의 의미는 속죄소와 분향단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증거궤 앞, 곧 증거판을 덮고 있는 속죄판 앞, 휘장 정면<표>

증거궤 옆에 있는 휘장 앞, 곧 증거궤 위의 자비석 앞<한킹>

before the vail that is by the ark of the testimony, before the mercy seat<NASB,KJV>

before the veil that is by the ark of the testimony, before the ark-cover<JPS>

before the vail, which is by the ark of the testimony, before the mercy-seat<YLT>

before the veil which is over the ark of the testimony, before the mercy seat<PJE>

front of the curtain that shields the ark of the covenant law--before the atonement cover<NIV>

 

“속죄소(mercy seat) 앞”은 사실상 주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상번제를 드리는 제단이 있는 곳도 이와 유사한 “주 앞(before the LORD)”으로 되어있다. 그곳은 주님께서 제사장과 만나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장소로서 그분과 가장 가까운 장소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출29: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주 앞[יְהוָה아도나이 לִפְנֵי리페네]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주 앞에서 끊이지 않게[תָּמִיד타미드]<출29:38> 아침과 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려야 하는 번제단과 속죄소 앞에서 끊이지 않게[תָּמִיד타미드] 아침과 저녁으로 향을 살라야 하는 분향단은 모양뿐 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유사점이 많다.

출30:7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8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주 앞에 끊지 못할지며 9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10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제단은 주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7 아침마다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속죄소 앞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향을 사르는 것은 마치 주 앞[יְהוָה아도나이 לִפְנֵי리페네] 번제단에서 상번제를 드리는 것과 같다.

분향단에서 향기로운 향을 사르는 불은 번제물을 태운 놋 단에서 꺼낸 것이다<레16:12-13, 민16:46>. 그러므로 두 제단 사이에는 매우 긴밀한 연결이 있다. 후자의 활동은 전자의 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제물을 바친 불 위에서 향을 피우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두 제단에서의 제사장의 직무를 식별할 수 있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은 그분이 피로 사신 축복에 대하여 간청하시며, 그분이 속죄하신 죄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로부터 용서를 구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6: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사야가 성전에서 주의 영광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위엄을 찬양하는 스랍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과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다는 느낌에 압도되었다. 이때 스랍 중의 하나가 제단에서 취한 숯불을 가지고 날아와서 그의 입술에 대었다. 희생 제물을 태운 신성한 거룩함의 숯은 선지자의 입술을 깨끗하게 했으며 백성 가운데로 보내심을 받게 했다.

▣ 향기로운[סַמִּים사밈 향기로운, 향기]

타낙흐에서 16번만 나타나는 이 단어는 오직 분향단의 신성한 향기에만 쓰였다. 영어역은 대부분 “sweet달콤한, fragrant향기로운” 등으로 번역하나 <LXX>는 [λεπτόν렙톤 어원[껍질을 벗기다] 고운(가는), 질 좋은]을 넣어 [σύνθετον λεπτόν / fine compound곱게 조제한]으로 번역하였다.

이 [λεπτόν렙톤]은 가장 작은 동전단위인 “렙돈<막12:42,눅21:2>”의 헬라어인데 이 단어는 “가늘고 얇고 작고 가벼움”을 뜻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은 분향단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두 번 살랐던 “곱게 조제한 향”을 생각나게 한다.

분향단의 향기로운 향[סַמִּים사밈 קְטֹרֶת케토렡]은 번제단의 향기로운 향[נִיחוֹחַ니호아흐 רֵיחַ루아흐]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번제의 향기는 죄의 씻음으로 그분의 마음[לַיהוָה]을 “향기롭고 달콤하며 기쁘게” 채워드리는 것이지만, 분향단의 향은 대제사장이신 메시아 예수님의 중보를 생각나게 하는 기도의 향기이다.

분향단에서는 번제나 소제를 드릴 수가 없으며 전제의 술도 부을 수가 없는 것은 죄의 씻음은 오직 번제단 위에서만 이루어짐을 시사하는 것이다. 분향단의 향은 십자가(번제단)에서 예수님의 단 한번의 죽으심을 통한 구속의 은혜가 계속해서 그분의 중보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도 그분 앞에 나아오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또 구원받은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하고 계신다.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아침과 저녁으로)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등불을 손질할 때[בְּהֵיטִיבֹו베헤티보]

메노라를 밝히는 것과 분향단의 향을 사르는 것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제사장은 “아침마다[בַּבֹּקֶר보보케르בַּבֹּקֶר보보케르 every morning, from morning to morning<PJE>, morning by morning<YLT> 아침을 두 번 연속 사용하여 반드시 기억하여야 함을 강조]” 등불을 손질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손질하는 것[יָטַב야타브 좋게 하다, 평안하게 하다, 단장하다, trims<LXX,NASB>]은 심지를 다듬고 기름을 보충하고 등잔을 청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메노라의 빛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해서 타오르게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처럼 제사장의 중보도 끊어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8 저녁 때[הָעַרְבָּיִם하알바임 בֵּין문자적으로 “between the evenings두 저녁들 사이에”]

[הָעַרְבָּיִם하알바임]는 사실상 번역하기 난해한 단어인데 이것은 “저녁[עָרֶב에레브]”의 복수이므로 [הָעַרְבָּיִם하알바임 בֵּין]을 직역하면 “저녁들 사이에(between the evenings)”가 된다. 이는 “새로운 날의 시작”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때 유월절의 어린 양을 잡았으며<출12:6; 레23:5; 민9:3,5,11>, 광야에서 메추라기가 진에 덮였고<출16:12>, 상번제 중 두 번째 어린 양을 드렸다<출29:39,41; 민28:4,8>.

출16: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주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הָעַרְבָּיִם하알바임 בֵּין]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 등불을 켤 때에[בְהַעֲלֹת베하아로트어원עָלָה알라 올라가다, 솟아나다, 나오다]

제사장은 해질 때(저녁 때)에 규칙적으로 등불을 밝히고 그 아래서 향을 살랐다. 즉, 아침과 저녁으로 반드시 등불을 먼저 정리하고 그 아래에서 향을 살라야 했다. 이것은 성도들의 기도는 자기 감정이나 판단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성령 안에서 드려지는 것이라야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임을 시사한다<엡6:18, 유1:20>.

레24: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לְהַעֲלֹת]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유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제사장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등잔불을 정리하라[עָרַך아라크]는 명령을 받았다. 여기서 “진설하다, 정렬하다, 벌여놓다, 배치하다”를 뜻하는 [עָרַך아라크]는 아침마다 등불을 손질하고[יָטַב야타브], 저녁마다 등불을 켜는 것[עָלָה알라]을 의미한다.

레24:3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עָרַך]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1세기 유대 역사가였던 요셉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제사장은 저녁 때, 성소에 들어가서 일곱 개의 등을 다 켠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일곱 개 중 바깥쪽 네 개의 등불은 끈다”고 한다(John Gill). 계속 타는 등불, 영원한 등불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메노라의 빛으로 성소를 밝히듯이 제사장의 중보의 삶 또한 주님 앞에서 영원히[דּוֹר도르 세대, 시대, 후손, 자손, 족속, generation] 끊지 못할 언약적 명령이다. 향은 사르는 것, 제사장의 기도는 반드시 일곱 등불의 빛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령의 조명과 지식의 빛이 없이는 제사직의 중재의 그 최고 형식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Lange).

9 다른 향[זָרָה자라 קְטֹרֶת케토렡 strange incense]

여기에서 [זָרָה자라 다른strange]는 타낙흐에서 8번 쓰였는데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다른 불[זָרָה자라 אֵשׁ에쉬]로 3번, 음녀[זָרָה자라 אִשָּׁה잇솨]를 표현하는 단어로 3번 쓰였다. 어원[זוּר주르]는 사전적으로 “이방인, 일반인, 음녀, 타국인, 우상숭배자”를 뜻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준비한 이상한 불은 성막의 제단 이외의 단(우상의 제단과 다를 바 없음)에서 가지고 온 향 또는 불로 피운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세 번의 다른 불과 세 번의 음녀가 겹치는 것은 마치 나답과 아비후가 음녀[אִשָּׁה잇솨 그들의 아내가 될 수도 있음]의 유혹에 빠져 불순종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나답과 아비후는 자신들의 아내(마치 말로 호리는 이방계집과 다를 바 없는 음녀 같음, 음녀는 하나님의 계약 밖에 있는 자)의 말을 따라 성막 밖에서 피운 불로 드린 것으로 보인다(마치 하와에게서 선악의 열매를 먹은 아담을 생각나게 함).

레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주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אֵשׁ זָרָה]을 담아 주 앞에 분향하였더니

민3:4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주 앞에 다른 불[אֵשׁ זָרָה]을 드리다가 주 앞에서 죽어 자식이 없었으며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의 아버지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주 앞에서 죽어 자식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결혼한 상태였음을 시사)

민26:61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אֵשׁ זָרָה]을 주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잠2: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אִשָּׁה זָרָה]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잠5:3 대저 음녀[זָרָה]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잠7: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אִשָּׁה זָרָה]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이 규례는 놋 제단과 금 제단의 용도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이다. 금 제단은 오로지 향기로운 향(중보와 찬양)을 사르는 곳이며, 놋 제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피와 구속)를 상징하는 곳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예배한다고 하면서 금 제단과 놋 제단을 혼동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Pulpit」은 분향단에서 금하는 세 가지 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로 “이상한 향”이니 이는 기도마다 다 참 기도는 아니니 이를테면 이기적이고 광신적 기도와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둘째는 “번제”이니 여기서 구체적 요점은 육체적 금욕이 아니라, 마음을 드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제, 전제”이니 이는 기도하는데 음식을 간소하게 먹어야 되기 때문이다.

10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כָּפַר카파르]

문자적으로 “뿔들 위에 바르되”이다. 분향단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는 없지만 속죄일의 피는 분향단의 뿔에 바르라고 명하셨다. 피[דָּם]는 죄와 오염을 닦아내는 도구이다. 죄의 대속물의 피(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는 일 년에 단 한번 성소로 들어가 그분 앞에서 뿌려지고 발라져 오염된 것을 닦아내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속죄일에 그분 앞에서 “구원의 뿔”에 피를 바르는 행위[כָּפַר카파르 덮다, 가리다, 칠하다]는 곧 “죄의 책임을 면제받는 것, 죄의 흔적을 지우는 것, 그분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것”을 말한다. 그분의 권위(힘과 능력) 안에서 죄의 구속과 함께 새로운 생명의 탄생(지위의 회복)을 의미한다. 뿔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하니, 여기에 희생 제물의 피를 바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피를 받으시고 대신 인간의 죄를 사해 달라는 기도이다.

출30:9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10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כָּפַר]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כָּפַר] 이 제단은 주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연관되는 글 같이보기

[번제단, מִזְבֵּחַַ미즈베아흐, brazen al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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