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디님 사람들

by 갈렙 posted Mar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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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사랑

느디님 사람들

 2018. 8. 16. 17:32

 

느디님 사람들

바벨론 포로귀환후 예루살렘성에 다시 돌아와 성전재건을 위해 봉사한 자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느디님사람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대상9:2)

포로귀환후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성전회복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간 자들중에 느디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느디님사람들은 누구인가?

느디님(נתינימ )이란 temple slaves assigned(given) to the Levites and priests for service in the sanctuary 성소안에서 봉사를 위해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성전노예들.  

느디님이란 “바쳐진 사람” 이라는 뜻으로  민수기 31장 40절에 나오는 “여호와께 공물로 드려진 자”가 이 사람들. 전쟁 포로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이방민족. 이들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수하에서 하나님의 집을 청소하고, 제단에 물을 나르고, 나무를 패고, 희생 의식에 쓰이는 그릇을 닦는 일을 하였다.(수9:23)

성전노예

느디님사람들의 시초는 기브온 사람들.  기브온은 히위사람.  기브온에 거주한 자들은 아모리 사람들.  한 때는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다스리던 민족.   기브온은 언덕에 속한 이란 뜻.

광야에서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땅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아이성을 함락시켰다는 소문을 듣고 가나안의 유력한 6족속들의 왕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대항하여 싸우려고 했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화친하기 위해 꾀를 내어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를 만나러 왔다.

자신들이 얼마나 먼곳에서 왔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곰팡이 난 빵과 찢어진 가죽부대와 헤어진 옷과 신을 보여주었다.
이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확인해보지 않고 평화조약을 맺었다(B.C. 1405년).(여9:3-27)

그 후 3일이 지나서 기브온 사람들이 가나안 히위족속인 것을 알고 멸하려고 했으나 이미 족장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들을 치지 못했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불러다가 "너희가 거짓말을 했으니 대대로 호와의 제단에서 나무패며 물긷는 자들이 되라"고 했다.

기브온 사람들은 그 후로 대대로 성전에서 험한 일에 부리는 성전 노예가 된 것이다.

생명을 택한 그들을 하나님이 보호하시다.

느디님 사람들은 기브온 사람들을 비롯해서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에 귀화하여 성전에서 허드렛일로 봉사하는 사람들.   죽기보다 여호와의 성전에서 일하는 것을 더 큰 영광으로 여기며 대대로 성전노예로써 살게 된 것.

역사상 노예생활하면서 즐겁고 기쁘게 만족하며 사는 자들은 느디님 사람들일 것이다.  성전에서 노래하고 문을 지키는 고라자손. 아삽자손 처럼  성전에 물긷는 자와 장작패는 자로 사는 것이 영광이라고 여겼다.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알고 누리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 약속을 1.000년 넘게 지키다.
B.C. 1405년 - B.C. 536년 1차 귀환.
B.C.458년 에스라 2차 귀환.
B.C. 444년 느헤미야 3차 귀환 때도 느디님 사람들은 동행하였다.

느디님 사람들은 처음 얻은 구원으로 만족할 뿐아니라 그 구원의 기쁨을 대대로 간직하고 변함없이 성전노예로 순종하기를 대대로 이어가는 모습.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들. 이방인으로써 성전에서 물긷고 나무를 패며 가장 비천한 일을 해도 그들은 변함없이 그 천한 일을 묵묵히 수행했다.

구원을 최고의 복으로 알고 순종하다.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을 보여주다.

느디님사람들은 포로귀환 후에  오벨을 거주지를 삼고 족장을 세워  명실상부 유대인의 한 족속으로써 자리를 잡게 된다.

[느헤미야 3:26]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여 동편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어민 망대까지 미쳤느니라)

레갑 자손이 분문에 거한 반면, 르디님 사람들은 중심부 큰 망대에 거하는 중심 세력이 되었다.

 
느디님사람들은

1)생명을 구원받은 것을 최고의 복(가치)으로 여겼다.

2)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며 성전노예외에 어떤 다른 유익을 구하지 않고 충성했다.

3)구원의  기쁨이 오랜 시간을 거쳐 변치 않았다.  바벨론 포로시 그들의 임무는 끝나것이나 같았지만 2차. 3차 귀환시  에스라. 느혜미야를 도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그 직임을 그대로 감당했다.

4)구원받은 자들의 참 귀감이 되었다.

 [역대상 9:2]  먼저 그 본성(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이라

성전 재건 후에 느디님 사람들의 위상이 올라가서 에스라 2장 43절에서 제사장, 레위인, 노래하는 자와 함께 느디님 사람들을 나란히 기록하고 있어 동등한 자격을 갖게 된 것. 

유대인들은 보통 예루살렘을 드나들 때 통행세와 관세 등의 세금을 내는데 느디님 사람들은 제사장과 레위인, 노래하는 자, 문지기와 함께 이 세금을 내지 않고 조공도 받지 않음(스 7:24). 

이방인 노예이면서도 제사장, 레위인과 같은  지도자 그룹에 포함되게 된 것. 느헤미야 10장 28절에서는 느디님 사람들이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하게 취급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스룹바벨에 의한 1차 귀환자. B.C. 536년. 성전 재건. 예수님 탄생 준비.

귀환자 중 제사장의 총수는 4,289명. 전체 귀환자 42,360명에 비해 십분의 일에 해당. 레위인은 제사장과 달리 341명에 불과. 아마 제사장들은 제사 업무에 직접 담당하는 자들이었고 레위인들은 그 일을 돕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전체 수가 42,360명이었습니다. 그 외에 노비(느디님 사람들)가 7,337명이었고 - 에스라 2:65-70

에스라에 의한 2차 귀환자. 예배(신앙) 회복. 예수님 탄생 준비. 1775명 중 220명이 느디님 사람들.

수종자 - 느디님 사람들 220명이 귀환자

느디님사람들이라는 용어는 성경에 총 19번 사용되고 16번 등장한다(대상 9:2;스 2:43, 58, 70; 8:17, 20; 느 3:26, 31; 7:24, 46, 60, 72; 10:29; 11:3, 21).

성전에서의 봉사를 위한 것. 노예에 불과한 이들이 성경에서는 여러번 언급.  이들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무리를 모아둔 상황에서 사흘을 머물면서 사람들을 점검했다.

거기에는 레위인이 없었다. 그리고 느디님 사람들도 없었다. 그것을 파악한 에스라는 레위인과 느디님 사람들을 찾아서  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의 족보에 느디님 사람들은 복수로서 “느디님 사람들”이라는 표현만 등장하고 그들의 이름이 언급이 되지 않는다.

 에스라가 찾은 레위인과 느디님 사람들은 성전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이미 1차 포로 귀환 때 그런 사람들이 돌아왔지만, 새로운 영적 부흥을 위해서 에스라는  영적 회복의 에너지가 고갈된 사람들 보다는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하나님을 예배함에 목마른 사람들로  모아서 돌아가고자 한 것.

에스라의 주된 임무는 영적 예배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거기에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과  그들을 돕는 느디님 사람은 절대 필요한 사역자들이었다.  

에스라 2장에는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제1차로 이스라엘로 돌아온 자들의 명단이 가족별로 기록. 약 5만 명.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살았다. 바벨론에 정착하기에 충분한 시간. 바벨론에 뿌리를 내렸다. 
 
 예루살렘의 상황이 황폐하고 최악이었지만,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유의  몸에서  노예의   삶을  결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들 중에는 느디님 사람들(2:43)과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2:55)도 있다.  전쟁 포로의 후예들.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바벨론에 사는 것이  편안하고 좋았다. 그러나  영적 삶.  메시야  사상.  메시야 대망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결단하고 스스로 선택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결단과 선택을 기뻐하셨다. 그래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가족별로 성경에 기록해 놓았다(느7장). 이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계신다는 표시일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성도들이 보고 배우라는 표시이기도 하다. 

아닥사스다 앞에 느헤미야

3차 귀환. 느헤미야 B.C. 444년. 성벽 완공 - 예수님 탄생 준비.

제 3차 귀환 시에 몇 명이 돌아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고, 느헤미야 한 사람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 의해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어 예루살렘에 보내진 것으로 기록(느 2:5-8, 5:14).

아닥사스다 제 20년부터 32년까지 12년 동안 유다 총독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면서(느 2:1, 5:14, 13:6), 그들의 정착과 신앙개혁을 힘있게 이끌었다.

당시 유다는 바사 제국에서 파견된 총독의 관할 지역에 속해 있었던 관계로, 성벽을 짓는다는 것은 곧 반란이나 폭동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오인될 수도 있는 일.

아닥사스다 왕은 방백 르훔(사마리아 총독)과 서기관 심새를 중심한 강 서편의 아닥사스다의 신하들의 고소장을 받고(스 4:6-16) 예루살렘 성곽 공사를 중단시켰다(스 4:17-23). 이 때 대적들은 부분적으로 세워졌던 성벽을 무너뜨리고 분명히 불을 질렀을 것.

아닥사스다 20년 기슬르월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문들이 불타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느 1:1-3) 아닥사스다 20년 니산월까지 4개월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느 1:4-2:2).

마침내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느 2:8, 18),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벽을 중건하게 되었다. 성벽 재건을 심하게 방해했던 왕은 느헤미야의 간청을 듣고 귀환을 허락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예루살렘 성벽 중건을 도와주었다(느 2:3-8). 왕이 자기가 내렸던 조서를 번복해서 다시 조서를 내리는 일은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

성 재건의 방해하는 사람들

담부(擔負. 등에 지고 어깨에 멤)치 않은 드고아 귀족들(느 3:5) - 드고아에 거주하던 유대인 귀족들은 성벽을 쌓는 데 있어서 무거운 짐을 나르지 않았다. 구속 사역의 가장 중대한 때에, 주의 일보다 자신들의 체면을 앞세운 것.

예루살렘 근처에 있으면서 성벽 재건에 협조하지 않은 귀환자들(느 4:12) - 성벽 재건은 지역을 초월해서 이루어졌는데(느 3:2-18), 예루살렘 근처에 살면서도 자기 신변의 안전만 먼저 생각한 자들이 있었다.

느헤미야가 치밀하게 성벽 전체를 42구역으로 나누어 조직적으로 공사를 진행하자(느 3:1-32), 산발랏과 도비야 등의 대적들은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라며(느 4:3) 유다 민족을 조롱하고 노골적으로 방해(느 4:1-4).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자(느 4:6), 대적들이 군사적 방법까지 동원하려 했다(느 4:8, 11). 큰 위기에 직면하자 유다 백성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어 사기가 떨어지다(느 4:10).

대적들의 위협이 더욱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다가오자 느헤미야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신속하게 실행에 옮겼다.

▸ 건축 공사와 함께 전쟁 무기 준비를 병행(느 4:16-17)
▸ 전쟁 시 신호와 군사 집결을 위해 나팔 부는 자가 느헤미야 곁에 둠(느 4:18-21)
▸ 각 사람이 공사하는 동안 그 종자(노비)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자도록 함(느 4:22)
▸ 느헤미야와 그 곁에서 파수하는 자들은 잘 때도 옷을 벗지 않고 병기를 손에 잡음(느 4:23)

성벽 공사가 마무리되어가자 대적들은 급기야 느헤미야를 살해하려는 음모(느 6:2). 산발랏 제사장 스마야를 매수하여 거짓 예언을 통해 느헤미야를 해치려 하였으나, 느헤미야가 요동치 않으므로 모든 시도가 실패(스 10-14).

느헤미야를 도와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힘쓴 느디님 사람들

비록 성전에서 이런 허드렛일을 하는 종들이었지만 1.000년 이상 흐르면서 그들은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고,  이방인들과의 혼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벨론 문화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런 느디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다.

느혜미야의 명대로 성벽 건축에 전심전력하였다.  느혜미야 7장에 느디님 사람들의 귀환한 자손들의 이름이 쭉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새기신 것이다.

느헤미야 - 예루살렘 성 완공.

예루살렘 성 준공식


(엘룰)월 25일,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의 완성(느 6:15)
성벽 재건 공사는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주전 444년) 아브월(5월) 4일에 시작하여, 모든 방해와 음모를 이겨 내고 52일 만인 엘룰월(6월) 25일에 전격적으로 완성(느 6:15).  하나님의 구속사 경륜 속  사건.  

 성벽을 완성한 유다인들은 에스라를 청하여 율법을 듣고 온 백성이 눈물로 회개(느 8:1-12), 초막절을 규례대로 성대하게 지키고 크게 즐거워하였다(느 8:13-18). 

 7월 24일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 인을 쳐서 언약 준수(느 9:1-38).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방인과 같은 신세였던 이스라엘은 성이 중건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서 새롭게 출발. 

 엘룰월(6월) 25일에 공사는 마쳤지만 낙성식은 예루살렘 거민이 너무 적었던 탓에 낙성식은 계속 연기,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의 거주지를 재배치하는 현명한 정책으로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안에 거주(느 11:1-24) 비로소 낙성식을 거행(느 12:27-43).

느헤미야는 감사 찬송하는 무리를 두 떼로 나누어 한 떼는 에스라가 인도하고 다른 한 떼는 느헤미야가 인도하면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여 성벽 위를 걷는 독특한 의식을 거행(느 12:27-43). 낙성식이 거행되었던 날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신 23;3-6) 이스라엘 가운데서 섞인 이방인을 분리하여 언약 공동체를 새롭게 하였다(느 13:1-3).

페르샤(메데 바사)  연표 (B.C. 536-330)

1. 고레스[키루스 2세](주전 539-530; 30년)
  
2. 캄비세스 2세(주전 529-522; 7년)
  
3. 바르디야(6개월), 고레스의 동생이자 캄비세스2세의 동생으로, 실질적으로는 가우마타가 통치함.

4. 다리우스 1세[대왕] 히스타페스(주전 521-486; 35년). 490년 마라톤 전쟁.

5.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 1세(주전 485-465; 20년), 유명한 에스더 왕비의 부군.  480년 살라미스 해전 패전으로 후에 암살당함.  
 
6.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주전 464-424; 40년). 아하수에로의 아들.  에스더의  양 아들.    에스라. 느헤미야 귀환 허락.
  
7. 다리우스 2세(주전 423-405; 18년)
  
8.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므네몬(주전 404-359; 45년)
  
9.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오쿠스(주전 358-338; 20년)
  
10. 아르세스(주전 337-336; 1년)
  
11. 다리우스 3세(주전 335-331; 4년)             

 [에스더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아하수에로] 1세(주전 485-465; 20년), 유명한 에스더 왕비의 부군.

[아하수에로] 1세(주전 485-465; 20년), B.C.480년  헬라 연합국과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  귀국후  암살.

[출처] 느디님 사람들|작성자 예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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