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불교에 대하여_지금 우리 선조들이 믿고 있던 불교는 가짜다(나가르주나 즉 용수보살이 만든 가짜다)

by 갈렙 posted Sep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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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불교에 대하여

 

석가모니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이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의 심오한 철학은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도 아니요, 구원자도 아니며, 다만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애썼던 안내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불교도 자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종교가 아니요, 인간학이요 휴머니즘입니다.

 

불교를 연구하다 보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는 불교가 아니라 힌두교와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말하였던 정통 불교와 지금 한국불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철스님도 봉암사 결사를 통하여 석가모니가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은 내용을 배척하자고 결의까지 하였습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법당이 운영 되겠느냐?” 라고 하면서 반대하였습니다.

 

한국의 많은 불교 개혁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믿는 바가 불교냐? 힌두교냐?” 많은 개혁자들이 현재의 수정되고, 첨삭된 한국불교를 원래의 불교, 정통 불교로 개혁하고자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현실적으로 불당이 유지될 수 없다는 이유로 머뭇거리고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석가모니가 가르쳤던 원래의 정통 불교는 무엇일까요?

 

붓다가 가르침을 시작할 당시의 상태를 보존한 불교를 원시불교, 근본불교, 초기불교라고 부르며 이것을 정통 불교라고 부릅니다. 경전으로는 ‘팔라삼장’과 한역된 ‘아함경’이 있습니다. 이것은 구전되다가 1세기 중반에 문서화 된 것입니다. A.D 32-35년 경의 일입니다. '팔라삼장'과 한역된 '아함경'이 석가모니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이고, 최초의 경전이며, 석가모니의 사상을 제대로 잘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경전입니다.

 

붓다는 B.C 486년 세상을 떠나는데, 스승의 장례를 치른 제자들이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붓다의 가르침을 훼손하지 않고 잘 보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백 명의 고승들이 모여 경전의 결집에 착수했습니다. 오 백 명의 고승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라 하여 오백결집이라 하는데 결집이란 붓다의 말씀이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붓다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마다 다 다를 수도 있다고 보고 오백 명의 고승들이 이견이 있는 부분을 하나로 결론을 지어 묶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노래와 암송으로 구전되어 오다가 최초로 문서화된 것은 B.C 35-32년 이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450년 정도 구전되다가 후에 경전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붓다가 말한 것은 추상적인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붓다는 오직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주력하였습니다. 석가모니는 영혼이나 윤회나 이런 것들은 “단지 말로 설명이 있을 뿐이요, 물어도 알 수 없고 의혹만 증폭시키는 것이니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석가모니는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으며,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였습니다(아나타나 - 무영혼설).

석가모니는 영혼을 믿지 않았기에 그의 영혼설은 무영혼설로 불져지고 있씁니다. 붓다는 영혼설 지지자들과 이런 논쟁을 했습니다. 영혼은 무엇인가 영혼은 어디에서 왔는가? 육체가 숨을 거둘 때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영혼은 육체와 유리된 후에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가?

 

석가모니는 반대심문형식으로 영혼을 믿는 생각이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영혼에 대한 논의는 무익하며 영혼신앙은 신을 믿는 신앙과 마찬가지로 유해할 뿐만 아니라 미신의 온상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석가모니가 윤회설을 부정하자 제자들이 석가모니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영혼은 어떻게 됩니까?” 석가모니가 제자 아난과 춘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영혼을 보았느냐?” 제자들이 “보지 못했습니다” 라고 말하자, 석가모니는 “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라며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였습니다.

 

석가모니 그는 제자 마할리에게도 영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영혼설을 비영혼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도제나 49제 등은 석가모니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석가모니도 모르는 것이었고, 석가모니 사후 수 백년이 지나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또, 석가모니는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환생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환생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묻고 비판하자 석가모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망고씨앗에서 망고 나무가 자라날 것이고 그 나무는 망고라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것이 망고씨앗의 환생이다. 그러나 이 망고에 영혼은 없다. 이와 같이 영혼이 없더라도 환생은 이루어 질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환생은 영혼을 가지고 그 영혼을 가진 존재가 다시 이 땅에 태어난다는 윤회와는 다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석가모니의 환생’은 ‘유물론적 사관에 입각한 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없으므로 망고가 씨앗이 이 땅에 떨어질 때에, 그것이 죽고 새로운 많은 망고가 나오는 것입니다. 원래 존재하였던 망고와는 다른 존재가 복제되어서 이 땅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자신은 죽고 사라지며 다시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고, 처음의 망고와 나중의 망고는 완전 다른 존재가 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들을 낳고 자신은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적으로는 복제양 둘리와 같습니다. 겉모양은 같되, 영혼이 없으므로 서로가 다른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이러한 ‘유물론적 사관에 입각한 복제’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사리불은 세상을 떠나면서 석가모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석가모니여, 우리는 힌두교의 윤회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석존과 저 사이의 마지막 만남입니다.” 석가모니의 제자 사리불은 너무나 슬픈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석가모니는 모든 것이 소멸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복제양 둘리같이 복제가 되고 환생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의 영혼존재의 부정과 윤회설의 부정은 인도의 정통불교 회복을 외쳤던 Ambedkar 암베드카르(1891-1956)의 ‘인도로 간 붓다’라는 책을 참고하면 됩니다. 암베드카르는 간디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가 죽었을 때 국경일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봄베이대학교 엘핀스톤 칼리지를 졸업 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학위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노동부 장관을 시작으로 1947년 독립 인도의 법무장관, 인도 헌법 초안작성위원회 의장이 되었으며, 일생동안 불교와 석가모니의 생애를 연구하여 1950년대에 20만명 밖에 되지 않던 인도의 불자들을 1억 명까지 개종시켰습니다.

 

  

석가모니가 윤회설을 부정했던 사회적인 이유

윤회설은 원래 힌두교의 교리인데, 윤회설이란 전생에 죄를 지으면 낮은 계급(카스트)에 태어나고 전생에 선을 행하면 높은 계급에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사회는 카스트제도가 모든 것을 결정했습니다. 사회생활도 결혼도 오직 카스트에 의해서 결정되었습니다. 높은 카스트에 태어난 사람은 전생에 선을 행하여 높은 카스트에 태어났기 때문에 낮은 카스트에 태어난 사람을 도와주기보다는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였습니다. 반면 낮은 카스트(천민)에 태어난 사람들은 죽고 난 다음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의 카스트에서 불평하지 않고 만족하며 어떤 수치와 모욕도 받아들이고 순응할 때에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교리였습니다.

 

석가모니가 볼 때 이 카스트제도는 권력을 가진 자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었으며 카스트제도에 의해서 신분은 고착화되고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석가모니는 이 카스트제도를 인간이 만든 제도 중 ‘가장 사악한 제도’라고 선언하며 카스트제도를 뒷받침하고 지키는 윤회설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윤회설을 주장하는 이상 카스트제도가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극락을 부정한 석가모니

석가모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믿으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사람이 죽고 난 다음은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내가 살아서의 일도 모르는데 죽고 난 다음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 라고 대답합니다. 석가모니는 제자 목련에게 “나는 도를 찾아가는 구도자이지 구원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예언자나 신의 메신저라고 불려지는 것에 대하여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또 석가모니는 숨을 거두기 직전 “모든 사물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수행하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석가모니는 극락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후에 극락이론이 첨가되었으며, 석가모니는 또한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유물론적 사상에 입각한 재생’ 즉, 나와는 다른 망고가 이 세상에 있을 뿐이라고 했는데, 정통 불교와는 다르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윤회사상이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윤회사상은 불교사상이 아니라 카스트 제도를 굳건하게 떠받치는 힌두교의 교리입니다. 석가모니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으며, 윤회사상을 부정했고 극락도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결론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학입니다. 석가모니는 영혼도 부정하고 극락도 부정하고 윤회사상도 부정한 사람으로서, 그는 신이 아니며, 구원자도 아니고 다만 구도자로서,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하는 사회학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극락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불교 개혁자들, 예를들면 불교 강남포교원장으로 있는 성열원장과 다른 많은 정통 불교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스님들이 석가모니의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있지만, 그 주장에 대한 답변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불교가 존재 할 수 있겠는가?” 불교계의 많은 사람들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불교라는 종교가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성철스님의 가르침!

 

성철스님의 열반송

 

일평생 남녀 무리를 속여 미치게 하였다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녀군 - 속일기, 미칠광)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산보다 더 크구나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 - 두루미, 넘어서다과)

 

산 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 - 빠지다함, 언덕아, 코비, 아비-아비지옥)

 

한 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一輪吐紅掛碧山(일륜-하나, 륜 숫자를 세는 단위, 토 토해내다, 괘 걸다, 푸를 벽)

 

 

 

성철스님의 유언

 

내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시에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성철스님이 운명 직전 지옥의 석가를 보고 쓴 시

 

(성철스님은 자신의 제자들과 저널의 기자가 보는 가운데 임종하였다)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서천(西天)에 속이고 동토(東土)에 기만하였네

 

도적이여 도적이여!

 

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녀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한 마디 말이 끊어지니 일천성의 소리가 사라지고

 

한 칼을 휘두르니 만리에 송장이 즐비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상신 실명을 면치 못하리니

 

말해보라 이 무슨 도리인가

 

작약 꽃에 보살의 얼굴이 열리고

 

종녀잎에 夜叉(야차 - 마귀 이름)의 머리가 나타난다

 

목 위의 무쇠간은 무게가 일곱근이요

 

발밑의 지옥은 괴로움이 끝없도다

 

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

 

가섭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

 

몸을 날려 백옥 난간을 쳐부수고

 

손을 휘둘러 황금 줄을 끊어버린다

 

산이 우뚝우뚝 솟음이여 물은 느릿느릿 흐르며

 

잣나무 빽빽함이여 바람이 씽씽분다

 

사나운 용이 힘차게 나니 푸른 바다가 넓고

 

사자가 고함지르니 조각달이 높이 솟았네

 

알겠느냐 1234567 이여

 

두견새 우는 곳에 꽃이 어지럽게 흩어졌네

 

 

 

억! - (억하는 소리와 함께 임종하다)

 

 

 

위의 시는 성철스님의 운명직전 <시사저널> 김훈 기자가 취재해온 것이며 이 시는 추상적인 시가 아니라 운명 전 영계를 직접 보고, 지옥의 석가와 달마와 가섭과 아난이 지옥에서 괴로워 하는 모습을 시로 묘사한 것으로 영계에서 직접 보지 않고는 자기가 평생 섬겼던 석가를 도적이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석가와 달마도 극락을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져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성철 스님이 죽음 직전 그 광경을 보고 시로 옮긴 것이다.

[출처] 불교를 5분 만에 깨는 비법, 스님에게도 전도할 수 있는 비법|작성자 엔젤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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