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면류관의 종류

by 갈렙 posted Feb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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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면류관'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사용되는 데 그것은, 1) 생명의 면류관(약1:12, 계2:10), 2) 기쁨의 면류관(빌4:1), 3) 썩지 않을 면류관(고전9:24-25), 4) 자랑의 면류관(살전2:19), 5) 영광의 면류관(벧전2:4), 6) 의의 면류관(딤후4:8), 7) 교회의 면류관(계2:10, 3:11)이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마27:29, 막15:17, 요19:2, 5).

헬라어에서 ‘면류관’이라는 단어는 왕이 쓰는 '왕관'을 의미하는 '디아데마'(διαδήμα)와 경기나 전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진 '스테파노스'(στέφανός)가 있다.

 

'스테파노스'(στέφανός)는 월계수의 잎, 혹은 야생 올리브(olive) 잎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 만찬이나 큰 기쁨의 축제에 초대받은 손님들에게 씌워주는 관이었으며, 때로 결혼식에서 신부에게 씌어주기도 하였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의 이름 자체에는 이런 이름 뜻이 있다(킷텔의 신약용어 단권사전).

 

신약은 대부분 '스테파노스'(στέφανός)를 사용한다. 즉 승리, 기쁨, 영광 등을 상징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왕관을 의미하는 '디아데마'(διαδήμα)는 왕권이나 왕의 위엄의 의미로 계시록 일부 구절에서만 발견될 뿐이다(계시록12:3, 13:1, 19:12).

1. 생명의 면류관(약1:12, 계2:10)

- 이 절에 있는 생명의 면류관,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께서 우리를 낳으신 것, 우리를 그분의 피조물 중에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는 것(약1:17-18, 27), 심어진 생명의 말씀(약1:21)은 모두 믿는 이들에게 신성한 생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리킨다(약1:12 각주4).

- 생명의 영광, 곧 생명의 표현. 믿는 이들은 신성한 생명을 힘입어 시련을 견디면, 이것이 그들의 영광과 그들의 표현, 곧 생명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그들이 받게 되는 보상이며, 오는 왕국에서 그들에게 누림이 될 것이다(약2:5)(약1:12 각주5).

- 신약의 용례에서 면류관은 항상 구원에 더해진 상을 가리킨다. 박해를 이기면서 죽기까지 신실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 곧 생명의 면류관은 부활 생명의 능력(빌3:10)인 이기는 힘을 가리킨다. 또한 이것은 이 이기는 이들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부활, 즉 탁월한 부활에 이르렀다는 것(빌3:11)을 가리킨다(계2:10, 각주3).

- 생명의 면류관은 생명의 영광이며 생명의 표현이다. 믿는 이들은 신성한 생명에 의해 시련을 견딘다. 이것은 그들의 영광과 표현과 생명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그들의 누림을 위해 오는 왕국 안에서 나타나실 때 그들에게 주실 보상이다(야고보서 LS, M2).

-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새로운 출생을 얻지만, 생명의 면류관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통하여 받는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신성한 출생을 갖지만,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계속 나아가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생명의 면류관은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CWWL, 1964. 2권).

- 마침내 생명은 면류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승리의 순교자들의 영광이 될 것이다. 신약의 용법에서 면류관이란 늘 구원에 부가된 상을 가리킨다(계3:11, 약1:12, 딤후4:8, 벧전5:4, 고전9:25). 핍박을 이기는 데 았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성된 자들에게 주는 상인 생명의 면류관은 부활 생명의 능력인 이기는 힘을 가리킨다(빌3:10). 또한 그것은 이러한 이기는 자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부터 뛰어난 부활(the out-resurrection)", 즉 특출한 부활을 획득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빌3:11)(요한계시록 LS, M11).

2. 기쁨의 면류관(빌4:1)

- 기쁨은 내적인 것이며, 면류관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믿는 이들은 사도의 내적인 즐거움이었고, 외적인 영광이었다(빌4:1 각주1).

-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어린 성도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 믿는 이들의 성숙함이 우리 일의 결과이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합당하게 성숙한다면 그들은 왕국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 성숙은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주 예수 앞에서 우리의 면류관과 기쁨과 자랑이 될 이다(살전 LS, M13).

- 빌립보서 4장 1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을 '사랑하는' 이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한다. 믿는 이들을 그의 사랑하는 자로 언급한 후에 그는 다시 사랑하는 자들인 그들에게 말했다. 믿는 이들은 안으로는 그의 기쁨이었고 밖으로는 그의 면류관이었다. 기쁨은 안에 있는 반면에 면류관은 밖으로 나타난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믿는 이들이 그의 안의 즐거움인 동시에 그의 밖의 영광이라고 말했다(빌 LS, M26).

3. 썩지 않을 면류관(고전9:24,25)

- 월계관(회복역), 그 당시에 운동 경기의 우승자에게 씌어 주었던,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관. 경주에서 승리한 이기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주실 썩지 않을 면류관은 구원에 더하여 주어지는 보상이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인 우리는 모두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한 번 만에 영원히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께 보앗을 받을 것인가 받지 못할 것인가는 어떻게 경류를 하는가에 달려 있다. 여기 9장에서 사도는 달리고 있었다(고전9:26). 후기 서신들 중 하나인 빌립보에서도 그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빌3:14). 디모데후서 4장 6절부터 8절까지에 있는 경주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비로소 사도는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그분께 보상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상을 생각하면서 사도는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그분께 보상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상을 생각하면서 사도는 보상을 얻도록 달리라고 고린도의 믿는 이들을 격려했다(고전9:24)(고전9:25 각주1).

- 고린도전서 9장에서 사도는 달리고 있었다. 후기 서신서들 중 하나인 빌립보서에서도 그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3:14). 디모데후서 4장 6절부터 8절까지에 있는 경주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비로소 사도는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그분께 보상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상을 생각하면서 사도는 고린도의 믿는 이들에게 보상을 얻도록, 썩지 않을 면류관을 상으로 얻도록 달리라고 격려했다(신약의 결론 10권, M171).

4. 자랑의 면류관(살전2:19)

- 우리가 구원받은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우리는 반드시 이기는 생활을 하여 주님께 드릴 '열매'를 가져야 한다. 바울은 주님 앞에서 그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그가 구원받도록 이끌어 주님 앞에 서게 된 믿는 이들이라고 말한다(살전2:19-20). 여러분이 주님을 만날 때 다른 사람들은 다 한 무리의 어린양을 데려왔는데 오직 여러분의 두 손만 비어 있다면, 여러분은 너무나 괴롭고 부끄럽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또한 많은 어린양을 데리고 주님을 만난다면, 그 느낌과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CWWL, 1984년 4권).

- 사도들이 믿는 이들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이고 권유하는 아버지였기 때문에(살전2:7, 11) 사도들의 자녀들인 믿는 이들이 사도들의 영광이요 기쁨이다(2:19-20).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신실하게 일한다면, 그분께서 오실 때 그분은 기쁨과 면류관과 영광으로 우리에게 보상하실 것이다(신약의 결론 22권, M359).

5. 영광의 면류관(벧전5:4, 사28:5)

- 사도 시대에는 운동 경기의 승리자들에게 월계관이 수여되었지만(고전9:25, 딤후4:8), 그것은 그 영광이 시들어 버리는 썩을 면류관이었다. 주님께서 신실한 장로들에게 주실 면류관은 그들의 충성스런 봉사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며, 이 면류관의 영광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이 나타날 때, 이기는 이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한 몫일 것이다(벧후1:11)(벧전5:4 각주1).

- 보상은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들이 받을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일 것이다(벧전 5:4). 사도 시대에는 운동 경기의 승리자들에게 월계관이 수여되었지만(고전 9:25, 딤후 4:8), 그것은 그 영광이 시들어 버리는 썩을 면류관이었다. 주님께서 신실한 장로들에게 주실 면류관은 그들의 충성스러운 봉사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며, 이 면류관의 영광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이 나타날 때, 이기는 이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한 몫일 것이다(벧후 1:1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양 떼를 신실하게 목양하는 신실한 장로들을 격려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보상으로 주실 목자장이시다(신약의 결론 제23권, M387).

- 사도 시대에 면류관은 운동 경기와 전투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졌다(고전 9:25, 딤후 4:8). 그것들은 그 영광이 시드는 썩어질 면류관들이었다. 주님이 신실한 장로들에게 주실 면류관은 그들의 충성스런 봉사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이 면류관의 영광은 결코 시들지 아니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의 나타남 안에서 이기는 자들의 누림을 위한 영광의 한 분깃일 것이다(벧후 1:11)(벧전 LS, M32).

6. 의의 면류관(딤후4:8)

- 영광을 상징하는 면류관은 경기에서 승리한 경주자(고전9:25)에게 주님의 구원에 더하여 상으로 주는 것이다. 은혜에 속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엡2:5, 8-9)과는 달리, 이 상은 은혜에 속하거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의에 속한 것이며 행위에 따른 것이다9마16:27, 계22:12, 고후5:10). 믿는 이들은 주님의 은혜가 아니라, 그분의 의에 따라서 이와 같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이며, 보상을 주시는 분은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이시다. 바울은 이러한 상이 자신을 위하여 마련되어 있다는 것과 주님께서 두 번째 나타나시는 날에 그러한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을 확신했다(딤후4:8 각주1).

- 디모데후서 4장 8절에서 바울은 이어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이며, 보상을 주시는 분은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이시다. 여기에서 이것은 은혜의 면류관이 아니라 의의 면류관이다. 의의 면류관은 왕이 되게 하는 면류관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바울이 천국의 출현을 보상으로 받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 속한 왕국은 ‘그들의 아버지의 왕국’(마 13:43), ‘내 아버지의 왕국’(마 26:29),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엡 5:5),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벧후 1:11)이며, 이기는 성도들에게 보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디모데후서 4장 8절에 있는 의의 면류관과 동일하며, 하늘에 속한 경주를 하는 믿는 이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4장 18절과 8절에서 사도 바울의 말은 이 보상이 그에게 격려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바울은 그가 하늘에 속한 이 왕국 안으로 구원되리라는 것을 확신을 갖고 승리에 차서 선포하였다(신약의 결론 22권, M365).

- 영원한 구원은 은혜에 의한다. 그러나 왕국 보상은 의에 의한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에서 바울은 그를 위해 예비된 이 상급을 상징하는, 은혜의 면류관이 아닌 의의 면류관을 말한다. 그러므로 같은 장 18절에서 그는 주께서 그를 하늘에 속한 왕국으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것은 그가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데 신실했기 때문이었다. 「의의 재판장」이신 주님은 은혜에 의한 것이 아닌 그분의 의로움에 따라서 이 왕국의 보상을 그에게 줄 것이다(히 LS, M46).

7. 교회의 면류관(계2:10, 3:11)

- 회복된 교회는 이미 면류관을 얻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주님이 회복 안에서 가진 것을 굳게 붙잡지 않는다면, 그 면류관을 다른 이에게 빼앗길 것이다(계3:11 각주).

- 일곱 교회 가운데 다섯은 책망이 있고 둘은 책망이 없다. 책망받지 않은 두 교회 중 하나는 서머나요, 하나는 빌라델비아이다. 오직 이 두 교회만이 주님의 눈에 든 것이다. …서머나 교회에서는 주님이 ‘시험을 받게 하리니’라 하셨고, 빌라델비아에서는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말씀하셨다(계 3:10). 주님은 이 두 교회에게만 면류관을 말씀하셨으니, 서머나에게는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고, 빌라델비아에게는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 두 교회에는 두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곧 그들이 같은 직선―사도 시대 교회의 정통적 선상―에 있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그가 서머나 교회처럼 책망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칭찬도 받은 것이다(교회의 정통, 제6장).

- 빌라델비아의 모두가 다 면류관을 갖고 있다. 다른 교회에서는 면류관을 얻는 것이 문제이나, 여기에서는 그것을 잃는 것이 문제이다. 주님은 너희들이 다 면류관을 갖고 있다고 하신다. 신약 전체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자기의 면류관이 있는 것을 알았는데 그는 곧 바울이다(딤후4:8). 또 교회 가운데에서는 빌라델비아만 자기의 면류관이 있음을 안다. 이제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빌라델비아로부터 나오지 말며 네 위치를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지키라고 말하는 것이다(교회의 정통, 제6장).

* 가시 면류관(마27:29, 막15:17, 요19:2, 5)

- 가시는 저주의 상징(창3:18-18)이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셨다(갈3:13)(마27:29 각주1).

- 가시 면류관은 주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다고 말한다. 사람은 저주 아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저주를 가져가셨다. 가시 면류관은 이렇게 저주를 가져가신 것을 상징한다. 우리는 주 예수님이 짊어지신 저주였다. 그분께서 우리를 짊어지셨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분의 축복 아래 있는 가시나무 떨기가 될 수 있다. 창세기 3장에서 가시나무는 저주 아래 있었고 저주 자체였지만, 출애굽기 3장에서 가시나무는 축복 아래 있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로 데리고 가셔서 저주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구속하셨으므로 오늘 우리는 축복 아래 있는 가시나무 떨기이다(CWWL 1979. 제1권).

[출처] 성경에 나오는 면류관의 종류|작성자 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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