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고려 조선시대에 걸친 우상숭배(불상,조상신숭배)의 댓가는 어떤 것이었나?

by 갈렙 posted Oct 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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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신앙, 수난의 민족사

 

불상 앞에 절하고, 조상님께 제사한 대가 


                                                  

                                                  

  대륙에 웅거하던 고구려는 수나라 114만 대군을 물리쳤던 동아시아의 강자였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서는 30만 수나라 군대 중 살아서 돌아간 사람은 2천7백 명 뿐이었다. 그러나 그 강대했던 고구려도 A.D. 688년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망하고 말았다.

  

  한국사는 고구려의 멸망으로 활동 영역이 한반도로 좁혀진 이래 약소국으로 전락하여 부단하게 위축일로를 걸었으니, 약 1천 번에 달하는 이민족의 침략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수난을 당하던 우리 겨레는 마침내 20세기 초에 이르러 일제에 나라를 완전히 강탈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민족의 혼인 말과 글을 빼앗기고 부모, 형제, 자매가 징병, 징용, 정신대로 끌려 나가고 공출(供出) 요구로 놋그릇이고 뭐고 다 긁어 바치면서 35년 동안이나 질곡의 역사를 경험해야 했다.

  

  고구려 멸망 이전까지는 약소민족이 아니었던 배달겨레가 왜 그렇게 약소국이 되어 외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한 채 위축되고 시든 역사를 이어 와야 했을까? 우리 한민족은 어떤 민족보다 슬기가 뛰어난 백성인데도 말이다.


  외래 종교의 수용과 제천신앙의 상실


  그 근본적 원인은 겨레의 고향인 고조선의 ‘제천신앙’이 민족적으로 승화 ․ 계승되지 못하고 일찍이 외래 사상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즉 선조들이 물려준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을 배척하고 외래 종교를 신봉하면서 배달겨레는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왜일까? 우리 겨레는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직계 후손으로서(창 10:21; 25),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느님과 함께” 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천손민족(제천민족)’이기 때문이다.

 

  [알이랑의 '알'은 성경의 '엘'처럼 하느님을 뜻한다. '하느님'의 어원은 '한님'이다(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느님). 고대에 '알'은 유일신 하느님의 신명이었다. '엘'의 어원은 '알'이다. 그리고 '알이랑'의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다. 그래서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종교적인 뜻이다. 우리 겨레의 민요 아리랑은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찬송가이다].

 

  무릇 하늘겨레, 천손민족이 하느님을 잊으면 ‘복’ 대신 ‘화’를 당하는 법이다. 우리는 이것을 벨렉 계열의 천손민족 이스라엘의 백성의 역사를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주전 586년 유대 나라는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멸망했다. 이유는 우상을 숭배하여 하느님의 진노를 격발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어 폐허가 되었고 성전은 무너져 터만 남았으며 재산은 바벨론으로 반출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던 것이다.


  고조선의 국법인 8조금법 제1조는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정성을 다해 순수하게 섬기라”는 것이었다(규원사화 ‘단군기’에 8조금법의 여덟 가지가 다 수록되어 있다). 그것은 구약성경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의 제1계명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과 본질상 똑같은 것으로서, 욕단 계열의 천손민족(알이랑민족)이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었다.


  그러나 고조선 붕괴 후 북부여시대로부터 삼국시대에 들어오면서 외래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였다. 가장 먼저 고구려가 소수림왕 2년(A.D. 372)에, 다음에 백제가 침류왕 원년(384년)에 불교를 수용했다. 신라는 눌지왕(417~457) 때에 불교가 전래되었다가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법흥왕 14년(527년)에 공인되었다. 8조금법의 제1조가 깨진 것이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1계명을 거역한 것과 같았다.

  

  그 후 이 땅에는 우리 겨레 고유의 종교인 ‘제천신앙’을 버리고 불교의 부처를 신봉하는 우상숭배자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아마도 원래 여덟 개였던 고조선의 8조금법이 세 개만 남게 된 역사적 사연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8조금법은 모두 제천신앙, 즉 유일신 하느님과 관련이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특히 없어진 다섯 가지는 하느님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무엇보다 제1조인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만 섬기라”는 법은 십계명의 제1계명 바로 그것이었다. 따라서 외래 종교인 불교를 신봉하는 자들이 득세하면서 그들에 의해 제1조는 지켜지지 못하도록 강요당했고, 또한 다섯 개의 금법은 고의적으로 제거된 것이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삼국유사를 쓴 승려 일연은 불교라는 것이 생기지도 않았던 B.C. 2333년의 일을 기록하면서 하느님(桓因)을 불교의 신이라는 제석(帝釋)으로 주석해 놓았다.* 하느님을 반대했던 자인 그는 고대 한국인의 경건한 유일신 신앙의 역사를 불교식으로 각색해버렸던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던가? 하느님을 반대하는 자들은 하느님이라는 유일신의 이름 자체를 제거하기를 원한다. 얼마 전 이 나라 불교계에서는 정부 당국에 ‘애국가’ 가사를 바꾸자는 청원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왜? 애국가 가사 가운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싫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느님을 불신하는 그들은 애국가에서 ‘하느님’이라는 성호를 또 제거하고 싶은 것이다.

  

  삼국시대에 한국인이 불교를 수용한 것은 8조금법 제1조를 거역한 것이었다. 그것은 배달겨레가 알이랑 민족(제천민족) 본연의 모습을 망각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겨레가 고구려 멸망과 함께 지속적으로 쇠망하게 된 결정적 원인인 것이다. 아래는「규원사화」‘단군기’에 기록된 강대했던 발해의 멸망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서, 우리 한민족이 쇠퇴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알려준다.

 

  “나라 이름은 진(震)이라 하고 건원을 천통(天統)이라 하여 항상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자손들이 교만해져서 점차 이것을 폐지하고 유교와 불교를 함께 일삼아 드디어 나라가 시들어졌다.”


  우리 알이랑 민족 배달겨레는 단군 이래로 ‘제천의식’을 성대히 거행하여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이었는데, 그 거룩한 제천신앙을 잃어버리고 외래 수입종교인 유교와 불교를 신봉하면서 나라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 민족사를 국력과 비교하여 종교사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도표에서 보듯이 하느님을 버리고 우상 및 귀신을 섬길수록 나라가 약해졌다. 특히 불교가 가장 왕성했던 고려 시대는 137년간이나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민족사 최대의 수난기였다. 온 겨레가 ‘불상’ 앞에 열심히 절을 했는데 왜 그렇게 긴 고난을 당했는가? 그것은 ‘우상’을 숭배한 죄에 대한 징벌이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시 16:4). 우리 겨레는 “알이랑 민족”으로서 오직 유일신 하느님만 섬겨야 할 제천민족(천손민족)이거늘, 외래 종교의 우상인 ‘불상’에 절하다가 ‘화’를 자초한 것이다.

 

  그리고 불교와 더불어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지나(支那) 산 수입품 유교가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와서는 급기야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조상에게 제사하는 풍습은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이 아니다. 그것은 용을 숭배하는 나라 지나의 풍습이 수입된 것이다. 우리나라 반만 년 역사 가운데 조상에 대한 제사가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 이후이며 겨우 500년 밖에 안 된 것이다. 지나에서 유래한 것이니 그것은 지나의 풍습이지 우리 겨레의 풍습은 아닌 것이다. 다만 조선 왕조의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지나의 풍습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일 뿐이다. 그것도 정종 때까지는 백성들에게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하다가 왕가에서 덕행 교육의 일환으로 적극 장려하는 바람에 수많은 폐단을 안고 있으면서도 민간에 퍼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기독교는 서양적이고 불교 ․ 유교는 한국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불교는 인도적이요, 유교는 지나적인 것이며, 기독교가 한국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서양이 아닌 동양에서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는 단군의 고조선 시대부터 기독교의 하느님을 섬겼기 때문이다(고대에 한국인이 제천의식을 통해 섬긴 하느님이 성경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느님과 동일한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문헌상의 증거들이 있는데, 여기서는 주제에서 벗어나 기술하지 않습니다).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풍습은 지나적인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나에서 유교와 함께 수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사 안 지내는 놈은 상놈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제사를 지내는 양반은 되놈(지나놈)이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자들은 그것이 효도라고 생각하는데 실로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무효다! 자기기만이다! 이미 돌아가신 분께 무슨 효도를 한단 말인가? 죽은 조상에게는 더 이상 어떤 방식으로도 효도를 할 수 없다. 효도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알이랑 민족 우리 겨레는 단군 이래로 오직 한알님(하느님)께만 제사하는 백성이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와서는 ‘하느님께 드리던 제사’(祭天)를 모든 죽은 조상에게 드리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사에서 조선 왕조 500년은 천손민족(제천민족) 본연의 모습이 가장 심하게 훼손된 최악의 시대였다.

 

▲ 죽은 자들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한국인 고유의 것이 아닌 되놈의 풍습이다.

  후손들이 코와 귀가 잘릴 때

  젯밥 드린 조상님은 무얼 하셨나

 

  ‘불상’은 사람의 수공물로서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는 우상이다(시 115:6). 조선의 백성들은 그 조각한 ‘우상’ 앞에 절하는 것도 모자라 더 이상 보지도 듣지도 냄새 맡지도 못하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엎드려 절을 하기 시작 했다. 절이란 절을 받는 대상 앞에 엎드려서 코를 땅에 박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다. 천손민족이 그와 같은 자세로 헛된 것을 향해 절을 하면 하느님의 질투를 격발시킨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선 백성에게 아주 혹독한 징벌이 임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가 말했다. “조선을 정벌해야지!” 1592년 4월 13일(선조 25년) 왜병 25만 대군이 칼과 조총으로 무장하고 조선을 침략했다. 임진왜란 7년 환난이 시작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왜군이 저지른 만행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조선을 침략한 왜군들은 병사 1명당 코 한 되씩의 책임량을 할당 받았다. 그리하여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코를 베었다. 심지어 금줄이 걸려있는 해산한 산모의 집에도 들어가 산모의 코도, 갓난아기의 코도 베어간 왜군이었다. 갓난아이들은 죽은 엄마의 젖꼭지를 빨며, 어린 아이들은 거리를 방황했다.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은 당시의 재난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 때에 적이 3도(道)를 짓밟아 지나가는 곳마다 여사(廬舍)를 모두 불태우고 백성을 살육하였으니 무릇 우리나라 사람을 보기만 하면 모조리 그 코를 베어서 공(功)으로 삼고 겸하여 시위하였다.”


  당시 왜병의 용맹성은 조선인의 귀와 코를 많이 벤 것으로 증명 되었다. 특히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당한 패전에 대한 분풀이로 호남 지역에서 많이 베어 갔는데, 남원에서만 6천여 명의 코가 잘려졌다고 한다. 조선인의 잘린 귀와 코는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내졌다. 히데요시는 그것의 수량으로 부하들의 전공을 가늠하였다. 일본의 도처에는 아직까지 조선인의 귀무덤과 코무덤이 남아 있다. 오카야마현(岡山縣) 비젠시(備前市)에는 천비총(千鼻塚)이 있다. 정유재란 때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베어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코 6만 명분이 묻힌 곳이다.

 

  기록에 남아 묻히고 보존된 것만 10만여 총이다. 실제로는 배가 되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임란 정유재란 후 이 땅에는 코와 귀가 없는 백성이 몇 집 건너 있었다고 한다. 전공을 인정받기 위해 시체에서 떼어가고 산 사람에게서 떼어가고 심지어 갓난아기의 귀와 코도 베어가고... 히데요시가 코 베기를 명령한 것은 인간의 기(氣)가 코에 머문다는 것 때문에 기를 꺾자는 의도였다. 히데요시는 단군 자손의 기를 짜른다는 의도로 이 잔혹 행위를 명했던 것이다.

  

 

* 김씨단두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산모 함경도 영흥 여인 김씨의 목을 베는 왜군.

(출처: 동국신속삼강행실도,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임진왜란 책)

             

 

  성경은 ‘우상’은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도 다 “그와 같을 것” 이라고 말한다(시 115:6~8). 코가 잘리고 겨우 목숨을 건진 가련한 조선 백성들은 그들이 코를 땅에 쳐 박고 절하던 그 ‘불상’들처럼, 그리고 무덤에 있는 죽은 조상들처럼 평생을 냄새 맡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

  

  하느님은 자기 백성, 곧 하늘겨레(천손민족)가 다른 것에 절하면 질투하신다(출 20:5). 조선 백성들이 그렇게 이민족에게 침략을 당하여 처참하게 귀와 코를 잘린 것은 질투하시는 하느님께서 내리신 징벌이었다.


  “또 내가 네게 대하여 내 질투를 두리니 그들이 광포하게 너를 다룰 것이며 그들이 네 코와 귀를 잘라 갈 것이요 네 남은 자들은 칼에 쓰러지리라. 그들은 네 아들들과 딸들을 데려갈 것이요 네 잔류물은 불에 삼켜지게  되리라.”(겔 23:25 ․ KJV) 


  “… 그들이 네 코와 귀를 잘라 갈 것이요!”

  이 두려운 예언의 말씀은 유다 백성이 이방 열국들을 의뢰하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하느님의 심판으로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멸망할 때에 성취된 바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대사상으로 명나라를 의뢰하고 그들의 풍습을 좇아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며 외래 종교의 우상인 ‘불상’ 앞에 열심히 절하던 조선 사람(chosen people)에게도 이 예언이 문자 그대로 정확히 이루어진 것이다.

  

  “… 그들이 네 코와 귀를 잘라 갈 것이요”라는 구절만 성취된 것이 아니다. “네 아들들과 딸들을 데려갈 것이요”라는 말씀도 성취 되었다. 왜병들은 조선인을 납치해 노예시장에 내다 팔 인간상품으로 끌고 갔었다. 일본군은 군자금 확보를 위해 이재(理財)의 수단으로 조선인 포로들을 노예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의 화폐가치로 5원에 팔려 필리핀, 마카오, 인도 등지로 갔다. 노예시장엔 조선인 노예들로 들끓었다. 구주 등지에 포르투갈 상인들의 총포와 백사(白絲)에 교환되어 갔다. “네 남은 자들은 칼에 쓰러지리라”는 예언도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7년 전쟁동안 조선 인구의 1/3이 왜군의 칼과 조총에 살육을 당했다. 또한 왜병들은 일제 시대에 조선 처녀 20만 명을 정신대로 끌고 간 황군(皇軍)의 조상들답게 여자를 보기만 하면 길거리든 대낮이든 사람들이 보든 말든 닥치는 대로 강간을 했다. ‘욕봤다’는 말은 이때에 생긴 것이다.

 

 

* 이씨단지 경기도 연천 마전에서 강간에 저항하는 여인 이씨의 귀와 코,

사지를 베는 왜군 (출처: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외래 사상인 유교를 수입해 조상님께 열심히 제사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란 말인가? 그렇다! 조선 백성은 외래 종교의 우상인 ‘불상’에 절하고, 거기에 더하여 죽은 조상에게 정성을 다해 제사하다가 이렇게 참혹한 재앙과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들이 또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시 106:28,29). 제사는 조상을 귀신으로 보는 신앙에서 온 것이고, 제사를 드려야 조상이 복을 주고 드리지 않으면 재앙이 온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죽은 조상은 아무리 절을 많이 해도 복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는 죽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로서 복은 고사하고 저주만을 초래할 뿐이다.

 

 

 

가족과 가문, 민족 위에 불행과 저주를 초래하는 차이나산 수입품 조상숭배,

민족주체성회복 차원에서라도 척결해야 할 이민족의 퇴폐풍습이다.

 

                                                                

   임진왜란 7년 대환난을 겪은 후에도 조선 사람들은 여전히 조각한 ‘불상’ 앞에 절하고, 무덤에 계신 조상님께 열심히 제사했다. 햅쌀 나오면 젯밥부터 드렸다. 그러나 구한말에 이르러서는 일본의 침략을 다시 받고 아예 나라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이래도 계속 ‘불상’에 절을 하고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해야 할 것인가? 살아 있을 때도 복을 줄 수 없던 조상님이 죽어서는 어떻게 복을 준단 말인가.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시 73:27). 천손민족이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거나 헛된 것에 분향하는 것은 남편 있는 여인이 외간 남자와 연애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을 떠난 천손민족을 ‘음녀’로 비유하신다. 음녀처럼 하느님을 떠난 “알이랑 민족” 한국인은 징계를 받아야 했다.   

  

  명절이 되면 가족들과 같이 조상의 무덤을 찿아가 고인의 은덕을 기리자. 그러나 무덤 앞에 서서 묵념만 할 것이며, 결코 어리석게 죽은 자 앞에 젯상을 차려놓고 제사하지는 말라. 그것은 우리 겨레 고유의 미풍양속이 아니다. 사대모화를 왕조의 기초로 삼았던 조선 왕조가 수입한 차이나 풍습으로서, 가족과 가문, 민족 위에 불행과 저주를 초래하는 악습이다.

 

  사대사상에 찌들어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지나의 퇴폐 풍습을 수입한 조선 왕조는 종국엔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하고 완전히 망했다. 그리고 35년간 또 다시 왜놈들에게 식민지 백성으로 강압통치를 받으며 온갖 수치와 굴욕과 살육을 당해야 했다. 실로 그것은 반만년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오욕의 역사였다.

 

 

경성 거리를 행군하고 있는 일본 군인들.

 

 

  알이랑 민족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라


  이처럼 우리 민족사가 이민족에 의한 침략과 지배라는 어두운 역사로 점철되었던 것은 한마디로 오직 하느님만 섬겨야 할 알이랑 민족 우리 겨레가 선조들이 섬겼던 유일신 하느님을 버리고 헛된 것을 섬겼기 때문이다. 성경은 선택 받은 백성이 하느님을 잊고 헛된 신을 섬기면 그들의 땅이 치소(嗤笑)가 된다고 말한다: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반석을 떠나겠으며 원방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대저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케 하여 그들의 땅으로 놀랍고 영영한 치소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 머리를 흔들리라”(렘 18:14~16).

  

  우리 배달겨레는 단군 이래 천손민족으로 태어났다는 긍지를 지니고 살아온 하느님의 백성이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후 외래 사상이 유입되면서 주체성은 사라지고 사대의 병독에 걸리기 시작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 불교와 유학이 성행하고 천민사상(天民思想)과 경천사상(敬天思想)에 관한 기록들이 진멸되어 가면서 제천민족 고유의 얼이 급격히 파괴되어 갔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겨레가 약소국이 되어 이민족으로부터 멸시 천대를 당하며 살아온 근본적 원인이다. 자기의 얼을 잃어버리고 정체성을 상실한 백성이 어떻게 강한 민족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고조선의 제천신앙을 잃어버리고 불교 ․ 유교가 공급하지 못했던 신지식(神知識)을 애타하던 한국 백성은 19세기에 이르러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조상이 섬겼던 창조주 하느님을 다시 발견했다. 그러자 마치 연어가 귀소본능(歸巢本能)으로 태어난 곳을 찾아 되돌아가듯이 10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단기간에 하느님 앞으로 돌아왔다! 2천년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는 대부흥이 알이랑 민족 한국 백성 가운데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좌우하시는 하느님을 열심히 섬기면서 대한민국은 다시 부강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180여 나라 중에서 경제력이 10위권을 넘보는 작은 거인이 되었다. 또한 올림픽도 개최했고 월드컵도 치렀다. 실로 우리 겨레는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제천민족(천손민족, 하늘겨레)이기 때문에 오직 유일신 하느님을 온전히 섬겨야만 복을 받을 것이다.

 

  장차 통일 한국이 ‘복음의 나라’가 되면 우리나라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마침내 단군 조선 때와 같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 민족이 하느님 섬기기를 싫어하면 한반도는 여전히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다. 민족적 수난이 계속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자각하고 민족의 주로 예수를 믿고 민족의 하느님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복음의 나라를 기어이 이루어야 한다! 알이랑 민족 본연의 모습을 꼭 되찾아야 한다! 천손민족으로 태어난 자긍심을 회복해야 한다! 성경은 여호와를 자기 하느님으로 삼는 백성의 복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의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들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의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로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의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느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144:12~15


_____________

* [『三國遺事』券第一 古朝鮮(王儉朝鮮)]

  魏書云 乃住二千載有檀君王儉 立都阿斯達(經云無葉山 赤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輿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 (謂帝釋也)

 

징비록(懲毖錄): 조선 중기 선조 임금 때에 재상으로 있었던 유성룡(柳成龍)이 임진왜란 때에 자신이 겪은 일들을 자세히 적은 책. 1592년에서 1598년 사이의 7년간에 일어났던 임진왜란에 대한 수기(手記)이다. 이중환이 번역하여 삼중당에서 간행한 『징비록』 1,2 권이 있다.『징비록』이라는 책의 제목은 시경(詩經)에서 따온 말로 “자신을 징계하여 후손들에게 교훈을 남긴다”는 뜻이 담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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