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의 종교와 모자숭배 사상이 어떻게 가톨릭에 숨어 들어갔을까?

by 갈렙 posted Oct 17,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바벨론의 종교

바벨로니아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 중에 최고신은 마르둑(Marduk)이었다. 마르둑을 히브리어로 기록하면 므로닥이라고 한다. 폭풍과 창조의 신 엔릴(Ennlil)의 기능과 공적을 물려받았다는 마르둑 신은 바벨로니아의 민족신이었다.
 
또한 바벨로니아의 신들 중에는 벨로스(Belos)라는 신이 있었는데 이는 벨(Bel)이라 불리기도 하고 그리스식으로는 제우스(Zeus)라 불려지는 신이었다.
 
일반적으로 신화가 발달한 나라는 그리스와 로마이지만 그 기원은 거의가 다 바벨론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바벨론이나 그리스의 신화들은 사실 신화(神話)라기 보다는 인화(人話)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신들 중 상당수가 사람을 신격화 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벨로니아 사람들의 신들 중에는 여신(女神)도 있었다. 그중에서 유명한 여신(女神)은 밀릿타(Milita)라는 여신인데 이 여신을 앗수르 사람들은 이쉬타르(Ishtar)라고 했고 페니키아 사람들은 아스다롯(Ashtaroth)이라고 불렀으며 로마 사람들은 비너스(Venus)라고 불렀다. 이 여신은 온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리스 사람들은 이를 아프로디테( Aphrodite)라고 불렀다. 에베소에서는 이 여신을 아르테미스(Atremis)즉 아데미 여신이라 불렀다.
 
바벨로니아 여인들은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밀릿타(Milita)여신의 신전에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져야만 되는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바벨로니아의 모든 여인들이 일생에 단 한 번이지만 이러한 망칙한 종교 행위를 가지게 했는데 그 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여인들은 신전에 앉아 자기를 지명하는 남자가 나타나 자신의 무릎에 은화를 던지며 "밀릿타(Milita)여신의 이름으로 !"라고 하는 음성이 들릴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게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들에게는 금방 남자가 나타나지만 그렇지 못한 여자들 중에는 이렇게 앉아서 4년간이나 기다린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자는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외모가 아름답지 못한 경우는 그야말로 혹독한 형벌이었다.
 
이러한 풍속을 소개하는 헤로도토스(Herodotus)도 바벨론의 풍속들 중에 아주 고약한 풍속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밀릿타(Milita)신을 아프로디테(Aphrodite)라는 이름으로 그리스에서 섬길 때는 그런 풍속은 없어지고 대신 신전에 바쳐진 여자 사제(司祭)들이 있었다고 한다.


니므롯, 세미라미스, 담무스의 신격화


우리가 일반적인 역사에서 다루는 밀릿타(Milita) 여신의 기원을 유대인 백과사전(The Jewish Encyclopedia)에서는 니므롯(NImrod)의 아내는 세미라미스(Semiramis)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세프스도 니므롯을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하게 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는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창10:8-9)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창9:7) 
 
사람들이 온 세계로 편만하게 흩어져서 땅을 관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니므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흩어 보내시는 목적은 세력을 꺾어 통치하기 쉽게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청년들을 선동하여 흩어지지 말자고 주장했다. 니므롯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게 했고 바벨탑을 쌓았다. 메소포타미아의 시날 평지에 건설된 바벨탑과 함께 바벨론은 하나님을 반역하게 된 기원이 되는 곳이었다. 그 이후로 성경에서 악령을 숭배하는 도시의 대명사가 되었다.(창11:2)
 
니므롯의 아내는 세미라미스(Semiramis)였다. 그녀는 남편 니므롯이 죽고 나자 남편의 시체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각 지방으로 보내었다. (삿19:29 ,삼상 11:7 참조)  세미라미스는 그 후 사생자를 낳았는데 그녀는 이를 자기 남편 니므롯의 환생(還生)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이름을 담무즈(Tammuz)라 하였고 그를 태양신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 담무즈가 바로 여인의 후손 곧 구세주(창 3:15)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자기의 몸에서 난 자기 아들 담무즈와 결혼을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침내 신의 아내요 신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담무즈를 신(神)으로 섬기게 되었고 세미라미스를 신의 어머니 곧 여신(女神)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이 여인은 음녀(淫女)요 여신의 기원이며 어머니 신 아들 신, 남신 여신의 기원이 된 것이다. 바벨탑을 쌓다가 흩어지면서도 어머니 신과 아들 신을 섬기는 것에는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세계에 퍼져 있는 모자 숭배
온 세상에 어머니 신과 아들 신 곧 여신과 남신의 사상이 일반화된 것이다.
1,바벨론에서는 여신을 세미라미스(Semiramis)하였고 남신을 담무즈(Tammuz)라 하였던 것이다. 
2,중국에서는 어머니 신 곧 여신을 성모(聖母)를 싱무라 하였다. 
3,독일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처녀 신을 헤르타(Hertha)라 하였다. 
4,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신을 디사(Disa)라 하였다. 
5,에투리아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신을 누트리아(Nutria)라고 했다. 
6,드루이드 교에서는 여신을 비르가 파티튜라(Virga-Patitura)라고 했다. 
7,인도 지방에서는 어머니 신을 인드라니(Indrani)라고 했다. 
8,인도의 다른 지방에서는 여신을 데바키(Devaki) ,아들을 크리쉬나(Chrishina)라고 불렀다. 
9,슈메르인들은 여신을 나나(Nana)라고 불렀다. 
9,로마에서는 여신을 비너스(Venus)라 하였고 아들 신을 쥬피터(Jupeter)라 한다. 
10,소아시아 지방에서는 여신을 키벨레(Cybele)라 하고 아들은 데이오스(Deoius)라고 했다. 
11,가나안 지방에서는 여신 아스다롯(Ashtharot)을 섬겼다. 
12,에베소 지방에서는 여신을 아데미(Ardemis)라고 하였다. 혹은 다이아나(Diana)라고 했다. 
13,고린도 지방에서는 여신을 아프로디테(Aphrodite)라고 하였다. 
14,애굽에서는 여신을 아이시스(Isis)라 하였고 그 여신의 아들은 호루스(Horus)라고 불렀다.
이렇게 여신 혹은 어머니 신과 아들 신을 섬기는 것이 익숙한 세상에서 성모 마리아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게 하는 것이 카톨릭의 착상이다.
 

1931년,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확정

처음에는 마리아에 대한 교리가 없었다. 그러나 AD. 431 년 에베소 회의(The Council of Ephesus)에서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냐 그리스도의 어머니냐 하는 논쟁이 있었지만 확정을 지우지 못하고 지나오다가 최근에 와서 완전히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확정을 지웠다. (1931년 데오토코스 논쟁 종결 확정) 1854년에는 교황 비오 9세가 마리아 무원죄 잉태설(Immaculate Conception)을 발표하였다. 그 기념 축제일이 12월 8일이다.  그 이후로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자라고 확정지었다. (1917)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은총의 중재자는 한 분 곧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딤전 2:5)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하는 생각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고도 기발한 것이었다.
 
유명한 카톨릭 저술가 알폰수스 리큐오리(Alphonsus Riquuori)는 그리스도께 기도하는 것 보다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더 효과적인가 하는 이론을 써서 교황 그레고리 14세로부터 성인으로 시성(諡聖)되었고 교황비오 9세는 리큐오리를 카톨릭 교회의 박사로 선언하였다.

출처: 
http://cafe.daum.net/perfectlove7/7eqk/360?docid=4070047236&q=%B9%D9%BA%A7%B7%D0%C0%C7%20%C1%BE%B1%B3
 

1950년에는 마리아 부활 승천설을 발표하였다.
1951년 교황 비오 12세는 마리아의 몸이 썩지 않고 하늘로 올리어졌다고 발표하였다.

비오 12세는 1950년 11월 1일 회칙 《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 성모 승천을 다음과 같은 말로서 믿을 교리로 반포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성좌의 고유한 권위에 따라,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다음,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으로 들어올림을 받으셨다는 교의를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대로 공언하고 선언하며 분명히 정의하는 바이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A%B5%90%ED%99%A9_%EB%B9%84%EC%98%A4_12%EC%84%B8

Articles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