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구열복)

by 갈렙 posted Nov 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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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강해, 구원(1) "교회가 잃어버린 언어, 구원"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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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할 말이 있는가?

지금의 한국 교회가 세상에게...

세상이 개독교니 먹사니 라고 돌을 던진다고 할 말이 있는가?

그것이 사단의 짓거리라고그래서 핍박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가?

 

우리는 그냥 돌을 맞아야 한다.

가서 채찍이라도 때려 달라 할 용기가 없다면 던지는 돌을 피해선 안된다.

사단의 핍박이 아니라 세상을 통해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이 시대타락하여 악취가 풍기는 한국교회를 향해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설교할 자격이 있는가?

복음을 전할 낮짝이 있는가?

세상을 향해 바로 살라고 말할 수준이라도 되는가?

믿음을 자랑할간증이라고 꺼내어 놓을 자격이라도 있는가?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는가?

주일날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내 뒷모습이 왜 이렇게 화끈거리는가?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고 말씀하셨다.

지금이 시대이 교회  그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었구나.

아!  우리 속엔 예수가 없다.    

교회에 예수가 없다.  

우리에게서 더이상 세상을 향해 꺼내어 놓을 것이 없다.

더 이상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다.

세상이 교회의 건물이나 엄청난 숫자에 감동하겠는가?

쇼 같은 예배에 감동하겠는가?

역동적인 찬양에 감동하겠는가?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지식에 감동하겠는가?

넘어지고 쓰러지고동물소리 내는 모습에 감동하겠는가?

아니면...

기도해서 잘사는 모습에 감동하겠는가?

 

내용이 없다.

우리 속에 아무 것도 없다.

이는...  

우리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감동시키는 방법 조차도 모르지 않는가?

세상을 감동시키지도 못하는 복음은 죽은 복음이다.

?  !   이렇게 망가졌을까?   아니 망가진 것조차도 모를까?

 

오호라!

이사야의 통탄은 그 시대뿐 아니라 이 시대 이 교회를 향함이었구나!

                (1:2-21/ 표준새번역)  

하늘아들어라땅아귀를 기울여라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슬프다죄 지은 민족허물이 많은 백성흉악한 종자타락한 자식들너희가 주를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등을 돌리고 말았구나.

 어찌하여 너희는 더 맞을 일만 하느냐?   어찌하여 여전히 배반을 일삼느냐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고,

 속은 온통 골병이 들었으며,

 발 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처난 곳과 매맞은 곳과 또 새로 맞아 생긴 상처뿐인데도

 그것을 짜내지도 못하고싸매지도 못하고상처가 가라앉게 기름을 바르지도 못하였구나...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그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녀가 되었습니까?

 그 안에 정의가 충만하고공의가 가득하더니이제는 살인자들이 판을 칩니다

 

이 시대이 교회가 이 지경이 된 이유는... ?

가장 큰 이유는...

구원을 잃어버림일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그 구원을...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며 내 삶을 전율케 만드는 그 구원을...

 

잃어버린 구원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방종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피로 물든 복음의 옷을 벗고 사치스런 옷을 입었다.

두려움을 상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았다"는 

과거형 속에 축복과 세상을 즐기는 향락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불쌍하다.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구원은 과거형이 없다.   오직 현재형과 미래형 뿐이다.

누가 구원을 받았는가?   

누가 천국을 약속이라도 받았는가?

도데체 성경에도 없는 이 확신은 어디서 온 것인가!

 

어쩌면 이 말에 반발심도 생길지 모른다.

구원이라니우리가 받은 구원 말입니까?”

그렇다구원이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린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이 아닌 교리가 순화시킨 가짜 구원을 들었을지 모른다.

오랫 동안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인줄 알고 있다.

교리가 순화시키고강단이 순화시키고여러 가지 현상들이 희석시킨 가짜 복음을..,

 

교회가 잃어버린 언어구원.

불행하게도 교회는 하나님의 언어, 구원을 잃어 버렸다.

우리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회복해야 한다.

               (3:14-18)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다시 성경 앞에 서자

다시 구원의 도를 깨닫자!

다시 옷을 찢고 회개하자!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 앞에 내 몸을 던지자.

그가 일으키실 것이다.

내 속에 소망이 시작될 것이다.

 

       PS) 구원 원전강해는 1주일에 한 편씩 쓸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이 읽는 모든 분들께와 한국교회에게 있기를...

[출처] 원전강해, 구원(1) "교회가 잃어버린 언어, 구원"|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2)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1)”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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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오해가 시작되었으며...

어디서부터 곡해되기 시작했을까?

 

어떤 이들은 

구원은 창세 전에 예정(택정)되었다그래서 택정받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상실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한다.

구원은 상실될 수 있으며 개인의 삶의 여부에 따라 버림 당할 수 있다라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견해 차이가 아니다.

그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중간지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말도 일리는 있어라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너무 큰 결과가 기다린다.

마치 진화론과 창조론이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둘은 결코 공존불가하다.

한 쪽은 구원에 있어 인간이 할 것이 없다.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은 목숨 걸고 구원을 이뤄야 한다.

전자는 후자에게 행위구원이라고 몰아붙이고 후자는 전자를 사변적이라고 한다.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잘못하면 믿고도 지옥으로 갈 수 있다.

 

 

 

성경이다.

성경을 근거로 해서 둘 다 나온 주장이다.

다른 한 쪽이 성경이 아니라 그냥 사변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있겠는가?

둘 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해놓으셨다는 말씀은 성경에 있다.

            (3:20)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3-7)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정론은 있다.

성경에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쪽에서는 예정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이라 한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22:1-10)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벧후3:9)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분명한 것은 구원에 관해서 성경이 양면성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다른 사람에게는 저렇게 믿어도 되도록

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속성은 결코 그렇지 않으시다.

진리는 명백하며 하나다오직 하나 뿐이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하나가 심하게 곡해한 것이다.

곡해에서 끝날 수 있는 문제라면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문제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닌 사람이 만든 교훈이다.

마치 예수님 당시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말씀하셨던 그것처럼....

 

(15:1-9)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둘 중 하나는 이 두려운 책망을 피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시대,

둘 중 하나에 속한 교회와 신학교신학자그리고 성도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교리를 믿고 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도를 모르는 것보다 더 잘못된 것은...

곡해된 것이다.

불행한 것은 그 교리가 성경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 그것이 성경을 잘 요약한 것이라고 속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조사해보지도 않고…

이 불행은 결국 지옥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어느 한 편의 사람들은 이 시대가 만든 잘못된 교리라는 괴물에 치명적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결론적인 말로 시작한다면 많은 분들이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을 꺼내 놓고 증명해나가려 한다.

만약 반발심이 일어난다면 그냥 잠시 접어두고 끝까지 읽어 보시길 바란다.

누구나 주의(主義 , ism)에 빠져있다.

그래서 발전이 없다.

 

 

 

결론은 이것이다.

개인예정론은 성경에 없다.

성경에 있는 예정론은 공동체 예정론이다.

그러므로 창세 전에 각 한 사람을 예정(택정)했다는 것은 심각한그리고 아주 불행한 성경곡해의 결과다.

 

성경에서 개인에 대한 예정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

 

(3:20)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다른 예정에 관한 것은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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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것은 개인에 관한 예정 말씀이 아니라 공동체 예정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믿음의 요구에 합당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자녀 공동체다.

바로 그 공동체를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창세 전에 믿는 자들(믿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앞으로 분명한 정의가 있을 것이다)로 구성된 자녀 공동체를 만드실 것을 예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정된 공동체 안에 들어 올 수 있는 자는 누구든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나!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다 이 공동체에 들어 올 수 있다.

 

하나님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다 들어오기를 원하신다.

(벧후3:9)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 때문에....

 

(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쩌면 개인 예정 구원론 주의(主義 , ism)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는 반발심도 생길 것이다.

 

아마 이 말씀 외에도 개인예정에 관한 수많은 말씀들이 생각 날 것이다.

여기도저기도...

그 문제는 하나씩 해석해 나갈 것이다.

오해가 풀어질 것이다.

아마 계속 읽어 나간다면 충분히 오해가 풀어지면서,

그 동안 내 눈을 덮고 있던 수건이 벗어지면서 성경이 보이게 될 것이다.

 

개인 예정론이라는 바탕 위에 서있는 칼빈주의를 보게 될 것이다.

칼빈주의는 결코 성경이 아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칼빈교리가 성경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성경이 아니다.

성경적이라고 생각했다면 오해한 것이다.

성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인간의 교훈(장로들의 유전)이다.

 

개인 예정은 없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2:12)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출처] 원전강해, 구원(2)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1)”|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3)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2)”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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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분들께 한 가지 바램은...

조금 더 기다리면서...

조금 더 인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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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실례일지 몰라도...

제가 칼빈주의를 벗어난 사실이 지금 가장 기쁨이요 발견이라면...

아마도...

화가 날지도 모릅니다.

눈을 뜨게 된 것은 학문도 아니었고고집도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의 은혜였습니다.

전적으로...

이 사실을 나누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부디 진리의 구도자로서 이 글 앞에 서길....

 

칼빈의 예정론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극한적으로 드러낸 교리가 또 있을까?

없다.

칼빈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교리는 없다.

이 점이 칼빈의 교리를 가장 성경적이라고 극찬 받게 만든 이유가 된다.

또한 칼빈의 교리만큼 믿는 자들을 안락의 침상으로 인도하는 것도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개인 예정론이 흔드는 요람에 누워

영원히 구원받았다라는 사람들의 졸음에 찬 신앙이 오늘 이 시대 교회의 단면이다.

칼빈의 개인 예정론과 개인 예정론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감대가 오늘의 칼빈주의를 최고의 자리로 올려놓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칼빈주의가 극한적으로 드러낸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길 원하시는 영광이 아니며,

개인 예정론이 흔드는 요람은 성경이 주는 안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칼빈주의의 하나님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칼빈주의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보다 더 자비롭다는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구원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이 더 자비롭고 영광스럽다고 그 길이 옳은 것인가?

그것이 진리인가?

분명히...

칼빈의 개인 예정론은 성경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이 점에 관한 칼빈주의 개인예정론과 성경은 다음 편에 쓸 것이다.

 

칼빈의 개인 예정론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그것은 어거스틴에게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B.B. Warfield 이중 예정론은 칼빈 자신의 창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거스틴에게서 온 것이다

Henry Meeter 칼빈의 교의들은 어거스틴 사상의 부흥이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은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의 열매다.

개인 예정론이 뿌리라면 그의 5대 강령은 열매다.

(5대 강령에 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말씀할 것임)

개인 예정론은 어거스틴이 성경(바울서신)을 잘못 해석해서 

얻어 낸 지식을 칼빈이 정리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거스틴의 곡해된 교리와 

그것을 정리한 칼빈의 교의를 성경으로 검토하지 않은 데 있다.

칼빈주의는 무조건 맹신한다.

그것이 가장 큰 해악이다.

 

성경에도 없는 개인 예정론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그 시작은 어거스틴이다 (Augustine of Hippo. AD396~430)

어거스틴의 구원론은 3가지다

            1) 구원은 믿음으로부터 받는다.

            2) 구원은 교회로부터 받는다

            3) 구원은 신적작정에 의해 받는다

1)은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이다.

옳다.

바로 이 점을 우리는 신앙한다.

구원은 믿음으로부터 받는다” 그것이 진리이며 그 진리 외에는 없다.

그러나 2)와 3)은 어거스틴 개인의 사변이다.

 

구원 교리사를 보면 구원의 불행한 곡해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로마카톨릭은 “2) 구원은 교회로부터 받는다를 채택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발전시켜 

교회가 주는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고 발전시켰다.

그래서 중세 때 가장 무서운 형벌은 수찬정지며 종부성사다.

그 결과 사제가 제왕적인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은 어거스틴의 교회를 통한 구원에 몇 가지를 더했다.

물질적 기부와 선행이다.

 

             교회를 통한 구원 세례 기부 선행

이것을 행위구원론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위구원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이미 예정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구원에 있어 어떤 것도 해서 안된다

무엇을 하려는 것은 행위구원이다

그러나 행위구원이란 구원에 있어 인간이 외적인 행위를 하려는 것을 말한다.

내적변화 없이 외적인 행위를 통해 구원을 이뤄내려는 것을 말한다.

세례를 받고기부를 하고선행을 하고각종 일들을 행하는 것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행위구원이다.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해서 목숨을 걸고 내면적인 변화를

이루어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치열한 구원의 전투를 삶 속에서 벌이는 

사람을 행위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다시 말해행위구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분들을 행위구원자들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완료해 놓으신 구원의 요람에 누워서...

 

카톨릭의 행위구원론에 항거해서 종교개혁이 터졌다.

그 당시 종교개혁은 카톨릭의 행위구원론으로 

윤리와 도덕이 추악한 수준에까지 이른 것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어거스틴의 구원론 중 “3) 신적작정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구원이 철저히 인간의 손에 의해 시작되고

인간의 행위로 결론지어지는 카톨릭의 행위구원론을 거부하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카톨릭을 대항하고 구원의 주권을 하나님께로 찾아오려는 것이었다.

 

이해한다.

충분히....

그 당시 개혁자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러나 개혁자들이 카톨릭의 “2) 구원은 교회로부터 받는다와 싸워야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구원 “1)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로 가야만 했었다.

이 점이 안타깝고 통탄스럽다.

빛으로 가기 위해 어두움과 싸우다가 다시 어두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어거스틴의 주장 가운데 유일하게 옳은

“1)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를 개혁자들이 주장했었더라면 

오늘 하나님의 진리가 이처럼 훼손되지 않았을 것이다.

 

구원은 시작은 절대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었지만 

믿음으로(자신의 내면적 변화)이루어지는 것이다. (2:8)

이 점은 카톨릭도 개혁자들도 다 틀렸다.

이 구원에 관한 강좌의 목적은 “1)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로 회복하는데 있다.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칼빈은 절대 예정론을 이중 예정론으로 발전시켰다.

어떤 이들은 구원받도록 예정되었고어떤 이들은 버림(유기받도록 예정되었다

 

참으로 무서운 정의다.

그것은 숙명론적이며 운명론적이다.

절대적인 숙명론 속에 하나님을 전제폭군으로 몰아세우는 무서운 결론이다.

 

선택과 유기에 대한 섭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을 주시기로 약속한 '개개인'은 물론 현재 태어나지 않은 자도 해당됨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John Calvin)

 

"영생에로 예정된 자가 다시 영멸에로 예정되거나영멸에로 예정된 자가 다시 영생에로 예정되는 변동은 없다"  (김장수)

 

"경이 중의 경이는 무한한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이다"   (L.B Bottner)

 

칼빈이 자신의 예정론을 개혁교회의 신조로 만들려고 했을 때

그의 옛 신학 동지들이었던 불링거도 자제를 호소했고

파브리도 유지될 수 없는 교리라고 반대했으며

멜란히톤은 그것이 헬라사상인 스토아 철학의 운명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중 예정설은 칼빈의 제자 베자가 더욱 발전시켰다.

베자는 타락 전 예정설을 주장한다.

인간이 타락하기도 전에 죄가 예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과 버림을 이루기 위해서 죄를 창조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칼빈주의의 하나님은 창세 전에 유기하도록 정해 놓은 자들을 버리기 위해서는 

죄를 짓게 만들어야만 한다...

 

따라서 죄의 원인이 하나님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다룰 것이다.

 

화란에서는 베자의 주장(타락 전 예정설)은 

권력과 정치의 영향력을 가진 자들과 결탁되어 확고해졌다

그러던 중...

코른헤르트라는 평신도가 일어나 학술대회를 연다.

그는 베자의 타락 전 예정설을 실랄하게 공격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대중적으로 퍼져 나갔다

많은 평신도들과 귀족들이 코른헤르트의 주장을 지지하자 화란의 입장에서는 

그를 비판하고 무너뜨릴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을 내세울 필요가 요구되었다.

인품신앙학문 등... 모든 면에서 두루 갖춘 박학다식의 대표적인 인물을 찾았는데 

그가 아르미니우스다.

아르미니우스는 베자의 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베자에게는 대표적인 두 제자가 있었는데 아르미니우스와 고마루스였다.

그 중 아르미니우스가 선택 된 것이다.

아르미니우스는 대표적인 칼빈주의자였고 이중 예정론과 타락 전 예정설의 신봉자였다.

코른헤르트가 틀린 것을 밝혀내기 위해 세워진 그는 성경을 연구하던 중에 

로마서 9장을 통해 스승 베자와 칼빈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오히려 스승 베자와 칼빈이 틀렸음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른헤르트의 주장을 논리화신학화 했다.

 

그는 베자가 틀렸음을 4가지로 압축했다

         (1) 성경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2) 이전 1500년 간 신학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3)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든다

         (4) 창조되기도 전의 사람을 작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르미니우스가 열어 놓은 새로운 시각은 다음과 같다.

         (1) 구원에 있어 개인예정은 없다.

         (2) 하나님은 회개하고 나아오는 모든 자를 받아들이시기로 작정하였다.

         (3) 그리스도의 은혜와 공로로 구원은 참고 견디는 자에게 주어진다

         (4)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시키시는 수단으로 은총을 사용하신다.

              선행적 은총론이라고 한다.   즉 하나님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믿음을 가질 수는 없다.

         (5)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만 믿음의 행위는 인간이 한다

         (6) 하나님께서는 신적예지에 의해서 예정하신다.

예지 예정론을 주장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룰 것이다.

 

"예정론무엇이 문제인가(3)"은 다음에 계속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출처] 원전강해, 구원(3)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2)”|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4)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3)”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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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예정에 관한 말씀이 있다.

칼빈도 예정을 말한다.

칼빈의 예정론은 교리의 기초가 되었고 거기서 모든 건물이 세워졌다.

그렇다면...

칼빈의 예정론이 성경의 예정론인가?

칼빈주의 예정론의 태풍의 눈은 바로 이 점이다.

칼빈주의는 이 질문에 대해 당연히라고 할 것이다?

칼빈만큼 성경을 교리적으로 잘 체계화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칼빈만큼 교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인 자가 누군가?”

 

정말 그럴까?

칼빈이 말한 절대예정과 이중예정그리고 그의 제자 베자가 발전시킨 타락 전 예정”.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예정일까?

(절대예정이중예정타락 전 예정설은 예정론무엇인 문제인가(2)” 참고하세요)

 

시각을 열어야 한다.

열기 위해서 먼저 전제(前提)된 사고에서 빠져 나오자.

그리고 아무 것도어떤 선입견도 없이 성경을 보자.

 

칼빈주의는 개인예정을 말하고 있다.

성경도 개인예정을 말씀하고 있을까?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한 사람의 구원을 예정하셨을까?

그러나 예정론무엇인 문제인가(1)” 에서 말했듯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예정은...

개인예정이 아니라 공동체예정이다.

예정에 관한 말씀은 있다그러나 하나님은 창세 전에 개인 개인을 예정 하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예정하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칼빈주의의 성경적인 반박은 다음과 같다.

개인 예정에 관한 성경말씀이 있다.     1:4-5, 왕상13:2, 44:28, 9:15 등이 그것이다

그 구절들이 개인예정에 관한 말씀일까?

 

“(1:4-5)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개인을 태어나기도 전에죄를 짓기도 전에 알았고

성별했다는 이 말씀이 개인예정을 증명하는 구절일까?

그러나 구원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다시 읽어 보자.

지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하셨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에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을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을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사명을 예정하신 것이다.

이것을 사명 예정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구속사에 있어서 특별한 방법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그래서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맞는 자신의 사역자를 세우신다.

예레미야는 그런 점에서 특별히 예정된 사역자였다.

 

       “(왕상13: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 역시 사역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우상 종교에 물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개혁할 왕

요시아를 예정해 놓으셨다는 말씀이다.

요시아 개인의 구원을 예정하셨다는 말씀이 아니다.

가장 어두운 시대에가장 위대한 개혁자 요시아를 사용해서 어둠을 몰아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사역예정에 관한 말씀이다.

 

 

“(사44:28, 45:1)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놀랍게도...

이 예언을 하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는 200년 후의 일을 말하고 있다.

200년 후 고레스라는 왕이 나올 것이다.

아직도 유다가 바벨론이란 나라에게 멸망당하기도 전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후그 바벨론을 메데와 파사가 무너뜨릴 것이고 그 후...

다시 파사의 고레스가 나올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해방시킬 것이며 성전건축을 허락할 것이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가리켜 이렇게 부르셨다.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

 

200년 후 실제로 이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역대기 기자가 이렇게 기록한다.

“(대하36:22-23)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그렇다면 고레스가 하나님을 신앙했을까?

그의 구원이 예정되었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역사적 증거는 그는 페르샤의 왕으로 다신론자다.

여호와도...

그가 섬겼던 수많은 신들 중 하나였다.

 

 

이 말씀은 고레스를 개인예정했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역자로서 예정하셨다는 말씀이다.

 

         “(행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나님께서 다메섹에 살던 아나니아라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다.

사울(후에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강한 햇빛으로 시력을 잃었다.

다메섹의 한 집에서 시력을 잃고 절망하고 있는 사울에게 가라고 하셨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울은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죽이려고 했던 자인데 그의 눈을 고쳐주라니...

그러나 아나니아에게 하나님은 설명하셨다.

이 사람은 택한 나의 그릇이다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바울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구원을 개인예정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억지스러운가...

문자 그대로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이렇게 사용하시기로 사역예정하신 것이다.

 

바울 자신도 구원이 예정된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말한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버림을 당하다라는 아도키모이는 자격이 박탈되다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놓고 자신은 구원의 자격이 박탈될까봐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했던 바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롬9:10-13)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9장만큼 개인예정론을 힘 있게 뒷받침하는 구절도 별로 없다.

(앞으로 롬9장은 따로 다룰 것입니다)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말씀은 성경의 두 구절이 합쳐진 말씀이다.

25:23절과 말1:2-3절이다.

 

큰 자(에서)가 어린 자(야곱)를 섬기리라한 구절은 창25:23절에 나온다.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이상하게 이 구절을 야곱과 에서그들이 복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에서를 버리시고

야곱을 택하셨다고 이해한다.

그런 의미는 전혀 없다.

그냥 하나님 말씀은 섬김에 관한 것이다.

에서가 야곱을 섬길 것이라는 예언이다.

구약을 찾아보면 에서와 야곱이 살아있을 동안 에서가 야곱을 섬긴 적이 없다.

오히려 야곱이 형 에서를 섬겼다.

얍복강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400명을 데리고 형 에서가 온다는 전갈을 듣고 야곱은

밤새워 기도한다.

그가 얼마나 절박했으면 몇 차례의 선물을 형에게 먼저 보내 마음을 풀려했다.

그 후 그가 형을 만났을 때 형 앞에 거의 기다시피 가서 머리를 숙인다.

다소 노가 누그러진 형에게 마치 하나님을 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야곱의 일생 동안 형의 섬김을 받은 적은 없다.

이 말씀은 약 1,000년이 지나 다윗 왕 때 성취되었다.

에돔 족속이 유다족속을 섬긴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하신 것은...

장차 1,000년 뒤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는지를 예언하신 대목일 뿐이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라기의 말씀이다.

“(1:2-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말라기 선지자의 이 말씀은 야곱과 에서가 태어났던 때로부터 1,600년 후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그들의 삶의 결과론적인 말씀이다.

야곱은 사랑받을만한 삶을 살았고에서는 미움받을만한 삶을 살았다.

 

에서의 삶에 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창25:29-34)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 하여 야곱

         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

         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후에 히브리서 기자는 에서의 행동을 이렇게 기록했다.

(히12:14-17)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망령된 에서의 행실에 근거해서 말라기서는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시고에서는 미워하셨다고...

더 이상 이 구절에서 개인구원의 예정론을 찾을 수 없다.

(더 많은 내용은 앞으로 쓸 것입니다)

 

예정론은 있다.

개인예정론도 있다.

그러나 개인예정론의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한 분 뿐이시다.

(행3:20)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그 외 예정에 관한 말씀은 모두 공동체 예정이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창세 전이 부분에 대한 것은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이루실 공동체를 만드실 것을 예정하셨다.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은혜에 믿음으로 반응하여 나아오는 모든 자들로 이루어진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을 향하여...

오늘도...

육체와 세상과 사단과의 전쟁을 치르며...

두렵고 떨림으로 마침내 구원을 이룰 사람들로 채워질 자녀 공동체...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설레임이다.

그리고 그 나라를 사모하는 우리들의 설레임이기도 하다.

 

이미 구원은 시작되었으나...

아직 받은 줄 여기지 않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서 마침내 이루어낼 그 자녀들...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마치 밭에서 발견한 보화처럼...

기뻐하고... 가서...  자신의 소유를 팔아....

마침내 그 밭을 사고야 마는 사람들...

어떻게 해서든지 이르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

그들을 성령께서 도우시며 위로하신다.

이들을 자녀 공동체라고 부르고 싶다.

 

장차...

그 시간...

심장이 멎어 버릴 것 같은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이시고...

세마포 옷으로 갈아 입히시고...

그들의 머리에 의의 면류관을 씌우실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피뭍은 전투복을 벗지 않고 전신갑주를 입은 채로 세상을 살아내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로 이루어질...

그 영광스러운 공동체를 멀리서 바라보고...

환영하며...

나그네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낮선 외국인들은...

그 공동체에 반드시 이를 것이다.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린다.

성령과 함께...

 

주여!

우리 속에 주님의 형상이 맺혀지게 하소서.

 

 

                                예정론무엇이 문제인가(4)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출처] 원전강해, 구원(4)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3)”|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5)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4)”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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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거나...

격한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칼빈주의자이거나 그 사상에 젖어 있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합니다.

철저한 칼빈주의 목사로 20여년 이상 살아왔던 사람이기에...

 

교회와 신학교에서 칼빈주의적 관점으로 로마서를 가르쳐왔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영혼의 고백은 마치 “Amazing grace” 1절과 같습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놀라운 은혜입니다. 얼마나 감미로운지)

That saved a wretch like me

  (나 같은 형편없는 자를 구원하시다니)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전 잃어버린 자였지만 이제는 발견했습니다.  소경이었지만 이제 눈을 떴습니다)

 

한 때...

칼빈주의에 갇혀 소경이었던 제게 눈을 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읽다 격해지시면 그냥 조용히 덮으십시오.

그러나 한번 깊이 생각도 해보시고기도해보십시오.

그래도 계속 그러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을 위해 기도할 것 밖에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칼빈주의 교리의 꽃은 5대 강령이다.

전적타락무조건적 선택제한적 속죄불가항력적 은혜궁극적 견인.

 

영어로 각 강령들의 첫 자를 따서 만들면 "TULIP"이란 단어가 된다.

문자 그대로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의 꽃(튜울립)이 5대 강령이다.

개인 예정론이 뿌리라면 5대 강령은 꽃이다.

 

튜울립이 아름답듯이 칼빈주의는 5대 강령이 아릅답다고 말한다.

성경의 진리를 잘 드러낸 아름다운 교리다...

과연 그럴까?

 

5대 강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 속에 있다.

전적 타락되었기 때문에 무조건적 선택이 되었고,

무조건적 선택이 되었기 때문에 제한적 속죄가 있다.

제한적 속죄 때문에 불가항력적 은혜가 발생하고,

불가항력적 은혜 때문에 궁극적 견인이 된다.

 

1. 전적 타락.

범죄한 인간은 스스로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전적으로 타락하였으며,

실제로 중생은 회심보다 우선한다.

 

2. 무조건적 선택

사람의 어떠함이나 행위에 상관없이하나님의 창세 전에 작정하신,

바꿀 수 없는 예정에 따라 구원과 멸망이 각각 정해졌다.

 

3. 제한 속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예정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만의 속죄를 위해 돌아가셨다.

 

4. 불가항력적 은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선택된 자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역사하시지만저주가 예정된 자들에게는

이 은혜가 주어지지 아니한다.

 

5. 궁극적 견인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은 결코 상실되지 않으며 끝까지 보존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완전히 타락되었기 때문에 구원은 인간의 반응이 필요 없다.

(전적타락)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시작이요 완성일 뿐이다.

 

그래서...

택자와 버릴 자를 하나님이 결정하신다(무조건적 선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오직 선택된 자만을 위해서다(제한 속죄)

 

성령께서 십자가의 구속을 적용하시는 대상은 제한 속죄의 대상뿐이다.

예수님은 선택된 자만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성령은 그들만을 위해 역사하신다.

강제적으로...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은혜를 받은 택한 자들은...

결코 구원이 상실되지 않는다(궁극적 견인).

(앞으로 칼빈의 5대 강령이 주장하는 성경구절의 오역을 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아르미니우스는 5대 전제를 말한다.

(우리는 칼빈주의도 아르미안주의도 아니다오직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을 믿을 뿐이다)

 

1. 자연적 무력함

타락한 상태의 자연적인 인간은 스스로 선하게 될 수도 없고새로워 질 수도 없다.

의지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인간은 자신이 구원에 대해 무력하고 무능하다.

 

2. 조건적인 선택

하나님이 예지하신 바에 따라사람의 믿는 여부를 조건으로 한 선택에 의하여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창세 전에 작정하셨다.

 

3. 보편적 속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이것을 제한시키는 것은 각 사람의 믿는 여부에 달려 있다.

 

4. 저항이 가능한 은혜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됨이 없이는 인간의 구원은 시작될 수도 없고,

진행될 수도보존될 수도 없다.

그러나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 역사하시는 방식 때문에

인간의 악한 의지에 의하여 거부될 수 있다.

 

5. 조건적 견인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죄와 유혹에서 능히 지키시고 보존해 주시지만

인간의 나태함에도 불구하고이 은혜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성경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는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자력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할 정도로

자유의지가 타락했다(자연적 무력함).

 

이 무력한 모든 인간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보편적 속죄)

 

그리고 이 은혜에 반응하는 자들을 조건적으로 선택하기로 작정하셨다(조건적 선택)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해서 믿음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그의 강팍함이나 죄로 인해 은혜는 거절될 수(구원이 취소될 수)있다.(저항 가능한 은혜)

 

그리하여...

하나님은 끝까지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를 조건적으로 견인하신다.(조건적 견인)

 

 

한 때 베자의 제자였지만 코른헤르트를 비판하기 위해 세워졌던,

철저한 칼빈주의였던 아르미니우스,

그가 로마서 9장을 연구한 끝에 오히려 베자와 칼빈이 틀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일방적인 예정에 따른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하여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선한 일의 시작이요계속이요마침이다....

 그러나 이 은혜는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성령을 거역하였고제공된 은혜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수 없다면...

 인간이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한 낱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러한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거저 주시는 은혜가 인간에 의하여 저항 받을 수 있도록 용납하셨다.

 요한복음 3장 16절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반응을 확실하게 논증하는 구절은 없다.

         이토록 확실한 성경의 논증에 기초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는  

         자율적인 사랑의 관계지 일방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있는 까닭은 은혜의 속성 때문이 아니라   

         그 은혜가 역사하는 방식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범죄까지도 예정하셨다고 가르치는 타락 전 예정설은

         선택 받지 못한 인간은 자신들의 범죄 여부에 관계없이,

         예정된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간다는 결론에 이르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이 범한 죄의 창시자로 오해되는 신성모독인 것이다

 

 

신학자 와인쿱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에 대해 말해질 수 있는 신성모독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보는 것이다.

 죄와 상관 없이 피조물들을 이미 예정된 멸망으로 저주 받도록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인간이 범한 죄의 창시자로 설명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신성모독을 선하신 하나님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칼빈주의와 웨슬레 신학、밀드레드 와인쿱한영태 역생명의 말씀사 1987. p49)

 

아르미니우스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적인 분위기에서 이 문제를 토의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종교회의를 열어주도록 국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요청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과로와 병고에 시달리던 그는...

1609년 10월, 49세를 일기로 참으로 짧았지만 경건한 일생을 마쳤다.

 

교회사가(史家필립 샤프는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유식하고 유능한 신학자였으며,

 그의 생애를 쓰디 쓰게 만든 논쟁의 와중에서도

 그는 온유함과 그리스도인다운 정신을 드러냈다.....

 남들에 의하여 정죄를 받았으나

 그는 아무도 정죄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필립 샤프는 이렇게 당시의 역사를 써내려 간다.

그가 죽은 다음 해인 1610년...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 지지하는 46명의 칼빈주의 개혁교회 목사들은

 논쟁을 성경적인 원칙에 의하여 해결하는 온전한 방편으로

 다섯 가지 신조를 공인해 주도록 탄원하는 항변서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에 대하여 엄격한 칼빈주의 지도자들은...

 즉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반항변서를 제출하였으며,

 아르미니우스 지지자들은 칼빈주의에 항의하는 항변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두 주장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논쟁이 가열되자,

 화란의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했던 당시의 정치상황을 이용하여

 반대파를 제거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열렬한 칼빈주의자로 중앙집권제를 주창하던 총독 Maurice는,

 1618년 7월 쿠데타를 일으켜,

 그의 정적으로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 지지하며 공화제를 주창하던

 지방자치주의 국가 지도자 올덴바르네벨트와 다른 유력한 아르미니우스 지지자들을 

 투옥하였다.

 그런 다음,

 서둘러 같은 해 11월 13,

 국가가 일방적으로 소집한 종교회의가 도르트에서 열렸다.

  ....

 도르트 회의 참석 인원 102명이었다.

 그 중 18명은 정부가 임명한 칼빈주의 신학자였고,

 나머지 의장 및 서기 등 모든 회원은 엄격한 칼빈주의자였다.

 아르미니우스파 사람은 없었다.

  ...

 그리하여 아르미니우스파의 운명은 사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사람에 의하여 예정된 예정론의 예정대로 된 승리였다.

  6개월 간이나 계속된 종교회의는 154번의 회의를 거치며 논란을 계속하다가 

 이듬해인 1619년 5월9일 막을 내렸다.“

 

 

도르트 회의 결의 내용

타락 전의 예정에서 타락 후의 예정으로 바꿈

이전의 칼빈주의 예정설을 그대로 승인

아르미니안의 5개항은 모두 이단의 신조로 정죄

회의 폐막 4일 후인 5월 13,

   투옥 중이던 아르미니안 정치 지도자 올덴바르네벨트를 처형

당대 최고의 학자로 해양법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그로티우스에게는 종신형을 선고

* 200명의 아르미니안 목사들을 성직에서 추방

 

 

도르트 회의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다음과 같다.

도르트 종교회의는 칼빈주의자들이 자행한 로마 가톨릭식의 종교재판이었다.

                                                        - Motley

 

도르트 신조를 지금까지 공적인 표준 신조로 인정하고 있는 교회는 화란 밖에서는,

미국에 있는 화란 개혁교회뿐이다.

 

 

 

우리는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과 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주의(ism, 主義)가 더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라는 수건에 가려진 성경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교리에 목숨을 걸어선 안됩니다.

교리에서 인용하고 있는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됩니다.

그것이...

칼빈주의든아르미니안이든웨슬레안이든...

답답한 것은,

성경을 가장 신뢰하고 있는 분들에게 성경이 저항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구원에 관한 말씀을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물론,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경을 벗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동안,

그렇게 봐왔기 때문에...

 

제가 안경을 벗는데 30년이 걸렸습니다.

30년 동안 전 안경을 쓰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가장 성경적이라고 자부하면서...

그러나,

이제야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Amazing grace”로...

 

 

예정론무엇이 문제인가(5)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출처] 원전강해, 구원(5)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4)”|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6)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5)”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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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떤 분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긍휼한 마음으로 위로해 드렸습니다.

장문의 내용으로...

그리고,

그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

그것은 저를 좀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그런 내용을 보낸 것은 이율배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삭이기로 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 저녁 즈음에,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 그것은 나의 오해였습니다.

그 내용은 감사의 내용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떻게, 감사의 내용이 그렇게 “주어” 하나로 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니...

아마 그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 때문이었을 겁니다.

교리도 그렇습니다.

교리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저의 이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교리적 지식을 갖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지요...

교리든, 위대한 주석가든, 신학자든, 철학이든...

버리면 성경을 얻게 될 것입니다.

 

 

 

TULIP 배경, 예정론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4)”에서 말씀드렸듯이,

개인 예정론이 뿌리라면 칼빈주의 5대 강령은 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5대 강령의 허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교리의 모체인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을 알아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그것이 성경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5대 교리는 결코 성경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교리일 뿐이다

성경은 그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인용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교리는 성경의 권위 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결론인가!

 

로마 카톨릭이 가지고 있는 3가지 권위가 있다.

영어의 첫 자를 따서 3H라고 부른다.

1. Holy Pope (교황)

2. Holy Tradition (전통)

3. Holy Bible (성경)

 

카톨릭이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은 성경의 권위가 전통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카톨릭의 최고의 권위는 교황이다.

교황의 말이 성경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말하기 전에 교리를 절대적으로 내세우는 자들에게서,

비슷한 점들이 발견되지 않는가?

칼빈주의든, 아르미니안이든, 웨슬레안이든...

성경을 교리를 증명하는 인용대상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신성모독이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는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교리를 권위로 삼고 성경은 종의 위치에 두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교리와 성경이 충돌되는 부분을 보게 될 것이다.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의 5가지 불변의 법칙들

 

1. 창세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됐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배경인 예정론에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인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하나는 ‘창세 전’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그 창세 전에 ‘세상의 전 과정에 대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일정한 시간이 되면 일어날 모든 것을 결정하셨을 때,

 동시에 그것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방식과 방법도 결정하였다” (베자)

「Reformierte Dogmtik」 Heinrich Heppe.

  크리스챤다이제스트. ‘개혁파정통교의학’ 이정석 옮김. P.222

 

 

2. 창세 전에 결정된 계획은 역사 속에서 완전하게 일치하여 진행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그 자신의 뜻하신 바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계획에 의하여

 장차 있을 모든 일을 자유롭고 변치 않게 작정하셨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Chapter3:1)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모든 계획과 행위 위에 있다는 것이며

 그는 한 사람의 행동까지 그의 섭리의 도구로 이용하셔서

 그가 작정하신 바 심판을 수행케 하신다”

「The Theology of Calvin」Herold Knight.

   칼빈과 신학사상. 기독교 문화협회 p.88-89

 

 

3. 역사나 세계는 이미 배정된 순서에 따라 오직 앞으로만 전진해나간다

 

“그가 창조하시기로 결정하셨을 때

 그에게는 가능한 계획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그 계획들은 실제로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이런 세계를 창조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The Reformed Doctrine Predestination」L. B Bottner.

   칼빈주의 예정론. 김남식 홍의표 역, 보문출판사 1990. p.36

 

“창조 시에 역사의 과정이 정해졌기 때문에 역사는 직선적이다”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James W. Sire I.V.P. p.64

 

이것을 결정론,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발전론이라 한다

 

 

4. 결정(예정)한대로만 모든 것이 발생된다

 

“하나님이 아시고 뜻하시고 정해놓은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1:16:3

 

“하나님의 계획은 전 우주의 사물을 포괄할 만큼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가장 세미한 부분에까지 관계할 만큼 치밀하여

 장래 발생할 모든 사건에 있어서 불가피적 확실성을 가진다”

 (L.B. Bottner. Op. cit. p.35~38)

 

 

5. 창세 전 결정, 그리고 성취는 절대자의 주권이다

 

“Calvin에게 있어서 신적작정론이야말로,

 하나님의 주권성의 가장 깊은 데서 나온 이론이다”

「조직신학」 조석만,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p.73

 

“하나님은 장래에 일어날 모든 것을,

 영원부터 주권적으로 결정하시고,

 자연적 정신적 모든 피조계에 자신의 주권적 의지를 행사하시되

 자기의 선정하신 계획에 의하여 하신다”

「Systematic Theology」 Robert S. Rapp, P.133

 

“하나님의 결정은 영원불변하며 주권적이다.

 하나님이 결정하거나 허락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발생할 수 없다”

     L. B. Bottner

 

 

 

이상 5가지 “칼빈주의 예정론의 불변의 법칙들”은

참으로 심각하다.

그것은 운명론이요 숙명론이다.

교리가 성경인가?

아니다,

그것은 철학일 뿐이다.

 

어거스틴이 회심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헬라철학을,

회심 이후 성경을 인용해서 만든 것이다.

그것은 철학이다.

교리라는 탈을 쓴 철학이다.

사람들은 교리라 하면 성경을 조직적으로 압축해 놓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교리란 성경이 아니다.

성경을 인용한 철학이다.

 

교리주의자들은 무엇을 신앙하고 있는가?

성경인가?    철학인가?

 

                 B.B. Warfield    “이중 예정론은 칼빈 자신의 창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거스틴에게서 온 것이다”

 

 Henry Meeter   “칼빈의 교의들은 어거스틴 사상의 부흥이다”

 

 

어거스틴의 헬라철학이 칼빈주의의 뼈대였다.

 

교리가 성경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명령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이 “좁은 길로 가라는 말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으리니(롬8:13)”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없다 !

창세 전 결정론은 결코 성경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단편적인 것 외에는 성경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설명되지 않는 것은...

억지로, 꿰어 맞춘다.

교리는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는지...

예를들면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를 이렇게 보고 싶어 한다.

“누구든지”는 “창세 전에 예정된 누구든지”다.

 

얼마나 황당스러운 해석인가?

그래도 그들은 신앙한다.

철저히...

“창세 전”에 목숨을 건 그들은 언제나 이렇게 믿고 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현재가 있는가?

없다.

현재, 지금 이 시간, 삶의 현재 시간...

삶에 대한 나의 반응과 책임에 대한 아무런 심각성이 없다.

다 결정되었으니까,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 얼마나 무서운 반응인가?

영원과 영멸의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떠 맡긴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이 얼마나 무서운 반응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까지 하다니...

 

이 숙명론 앞에 인간은 그저 기계다.

반응할 수도 없고, 반응해서도 안되는...

 

“칼빈이 자신의 예정론을 개혁교회의 신조로 만들려고 했을 때,

 그의 옛 신학 동지들이었던 불링거도 자제를 호소했고,

 파브리도 유지될 수 없는 교리라고 반대했으며,

 멜란히톤은 그것이 헬라사상인 스토아 철학의 운명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2)  中에서

 

 

 

창세 전 예정의 모순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주셨던 명령이다.

칼빈주의의 불변하는 5가지 법칙들에 따르면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창세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으니 그 후의 세상은 그랬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그런데 창세가 시작되자마자 하나님은 아담에게 율법을 주었다.

이른바 행위언약이다.

행위언약은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지는 조건적 언약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지만,

먹지 않는다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조건적 약속을 하셨다.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으로 이 말씀이 설명 가능한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정말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면...

하나님께서 행위언약을 세우신 것은 이율배반이요 표리부동다.

어떻게 창세 전에 정해 놓으시고, 다시 조건을 내 세울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교리라는 편견의 틀을 벗고 성경 자체를 보라.

교리를 버리고 성경을 보면 그냥 성경 그대로다.

창세가 시작되고 아담에게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아무 것도 !!!

결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창세 후에도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담에게...

양자택일하라는 율법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세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계획되었다는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근거가...

모두 허구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모든 인류가 영생으로 갈 것인지, 멸망의 사망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담 이전에 결정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행위언약이라 부르는 것이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아담이 인류에게 멸망을 가져왔다.

창세 전에 예정된대로라면 아담이 아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라고 해야 맞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결정내릴 때까지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창세 전에 모두 결정되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전 인류가 가야 할 역사의 특징을 결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창세 후에 결정된 일이다.

이것은 칼빈주의의 창세 전의 결정론이 전혀 근거 없는 허구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칼빈주의는 와인쿱의 말대로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내몰고 있다.

“하나님에 대해 말해질 수 있는 신성모독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보는 것이다.

 죄와 상관 없이 피조물들을 이미 예정된 멸망으로 저주 받도록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인간이 범한 죄의 창시자로 설명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신성모독을 선하신 하나님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4) 中에서

     (칼빈주의와 웨슬레 신학 、밀드레드 와인쿱, 한영태 역,

                          생명의 말씀사 1987. p49)

 

 

 

구원과 유기(버리심)는 창세 전 하나님이 미리 결정해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에 책임있게 반응하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리고,

구원으로 가는 그 과정은...

죄에 한없이 나약하게 노출된 타락한 인간이,

오직 성령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함으로써

성령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 분께서 우리 속에 이루시는 성화의 결과로 말미암아,

신의 성품으로 변화하여,

예수님을 닮아 가는 전 과정을 가리켜 성화라고 부르며,

성화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것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행위구원론자라고 부르는 것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행위구원이란 말의 의미는...

내적인 변화 없이,

외적인 행위(선행, 헌신, 기도...)로 구원을 이루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성화로 얻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구원을 성령을 의지하여 성화함으로 이루는 구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성경으로 말하면 많은 지탄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에 이르려 달려갑시다.

승리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6)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출처] 원전강해, 구원(6)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5)” |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7)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6)”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13:58

복사 http://blog.naver.com/lljwhkingll/1996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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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예정론 교리는 성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학입니다.

어거스틴이 가지고 온 철학입니다.

“어거스틴은 몇 가지 전적으로 새로운 견해를 교회 제도 안으로

 이끌어 들였다. ....

 그 중 몇 가지는,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절대적인 예정,

 그리고 선택된 자들에게만 베풀어지는 그리스도의 제한된 속죄이다.”

 

회심 전까지,

헬라 철학에 동양의 신비사상을 가미한 신플라톤 사상에 깊이 몰두했던,

어거스틴에게서,

칼빈은 개인예정론을 물려받았습니다.

(John Calvinm Tracts and on the Doctrine and Worship of the Church,

  Vol.3, 1958, 468, 469)

 

칼빈의 개인예정론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반성경적 사건인지는,

그 당시 그 이론을 채택하려할 때 있었던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칼빈이 자신의 예정론을 개혁교회의 신조로 만들려고 했을 때,

그의 옛 신학 동지들이었던 불링거도 자제를 호소했고,

파브리도 유지될 수 없는 교리라고 반대했으며,

멜란히톤은 그것이 헬라사상인 스토아 철학의 운명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2) 中 에서

 

 

칼빈이 개인예정론을 채택하려 하자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신정(神政)을 베풀고 있던 때,

자신의 예정론에 이의를 제기한 수도승 출신 의사인 볼섹과 논쟁하면서,

이를 “매우 불쾌하게 느껴, 언성을 높여 반박하고, 성경와 어거스틴을 인용하면서 

        예정론이 진실된 교회의 교리라고 변호하였다.”라고 역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인으로 고전학자였던 카스텔리오는 로마 가톨릭에서 개종한 뒤,

칼빈에게 와서 배우고 그의 신임을 사서 제네바 고등학교장까지 지냈으며,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와 불어로 번역까지 한 박학한 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칼빈의 예정론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고,

하나님의 의지를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의지로 갈라놓았다.”고 비평했습니다.

그는 결국...

파면당하고 축출되었다.

 

스위스의 성경주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비블리안더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여 칼빈의 예정론을 거슬렀다 하여,

취리히 대학의 교수직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네바 밖의 다른 개혁교회들도,

칼빈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제네바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강력한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마지못해 칼빈의 견해를 수용하게 하였습니다.

 

진실이 가리워져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교리라는 수건을 쓰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수건이 벗어지도록 기도합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5) 에서 개인예정론의 이 주장은,

창세 후 에덴 동산에서부터 심각한 모순을 드러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라는 조건적 행위구원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으셨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선택과 유기는 창세 전에 결정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인간의 선택에 맡기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조건적 행위구원의 언약을 아담과 세우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멸망을 선택했기 때문에 심판이 오게 된 것이다.

 

“(롬5:12,17)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칼빈주의는,

창세 전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성경은,

아담 자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양자택일의 기회에서

스스로 판단한 것을 결정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

그 자신의 결정에 의해 인류 모든 후손의 방향이 결정된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칼빈주의는 이 말씀 역시, 창세 전 예정된대로 타락했다고 읽고 싶은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정된대로 아담을 타락시켜 놓은 뒤,

그 모든 책임을 아담에게 뒤집어 씌워 놓았다고 모독하는 죄를 멈춰야 한다.

그것은 모독행위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담이 자신의 의지로 결정을 내렸을 때

 최소한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를 결정한 것이다”

 

아담의 이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과 무관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결정에 관한 모든 기회를 주셨고,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서 자신이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그의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아담이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시조 앞에 양자택일의 방도를 놓으셨다.

그 한편에서는 완전한 순복의 길이 있었는데,

이 길은 오직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불순종의 길이었는데,

이 길은 오직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

G. I Williamson

 

얼마나 확실하고 명쾌한 고백인가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칼빈주의자에게서 이런 모순적인 고백을 듣고 있다.

 

 

  

모순은 진실 앞에 절대 감출 수 없다. 

모순의 출발은 모순이기 때문에 항상 자체적으로 모순임을 드러낸다.

칼빈주의 개인예정론이 그렇다.

스스로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충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계약인 율법을 주었다.

이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후손을

인격적이고 전적이며 엄밀하고 영구적인 순종에 매이게 하셨다.

사람이 그 율법을 지킬 때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것을 범할 때 사망을 준다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아담에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chapter 19:1

 

 

인간이 이것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에 찾아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넘어졌다

Calvin

 

칼빈도 아담의 행위언약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었나보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6-17절에 개인예정론이 들어갈 어떤 틈새도 없었나보다.

그래서 아무 언급 없이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넘어졌다” 라고만 말한다.

칼빈주의의 특징은 개인예정론으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더 깊은 뜻이 있을 것인데, 다만 우리가 이해 못하니 덮어두자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칼빈은 아담에 관해서는 노코멘트다.

 

그들은 적어도 다음과 같이 말했어야 한다.

아담의 타락은 정해진 것이라고,

창세 전에 예정된대로 아담이 타락했다고...

그것이 자신의 주장에 대해 용기 있는 답변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몰아세우는 형국이 되어,

더욱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됨으로,

은근슬쩍 넘어간다.

 

인간이 이것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에 찾아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넘어졌다

Calvin

 

그냥 묻지 말라는 것이다.

 

 

철저한 칼빈주의자인 Bottner 역시 이 점을 피해갈 수 없었나보다.

 

“하나님은 아담과 더불어 행위 언약을 맺으셨다.

즉 완전한 복종(행위)를 조건으로 한 영원한 생명의 계약을

 아담 및 그가 대표하는 모든 인류와 맺으셨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복종은 잠정적 기간의 특별시험이었고

 그것은 반드시 복종의 결과로서 보상을 받든지 아니면

 불순종의 결과로서 사망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 약속된 보상은 영원한(인류전체에게 주는) 생명이었다.

 그것은 아담이 창조 시에 받았던 것보다 더 큰 것을 포함하는 은혜였고 

 그것이 허용되었더라면 아담을 대표하는 전 인류는,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거룩함과 행복의 상태로 올라갔을 것이다.

 하나님을 순종치 않을 경우...

 벌로서 경고된 것이 사망(인류 전체의)이었다.

칼빈신학자 L.B Bottner

 

 

하나님은 그들(아담과 인류)를 거룩한 존재로 창조하시지만,

타락할 수도 있게 지으셨다.

이런 상태에 있는 그들을 얼마 동안 도덕적으로 시험하신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그들은 확고하고 타락하지 않는 도덕적 성격을 상으로서 받으며,빼앗을 수 없는 행복을 받는다.

(그러나) 시험에 떨어지면 그들은 법적으로 하나님의 총애와 교제에서 영원히 제거되며, 따라서 도덕적으로 영원히 죽게 된다.

새로 창조된 천사들과 사람들에 대하여 이것이 확실히 하나님이 쓰신 방법이다.

시험방법으로서 심히 훌륭한 것이었다.

즉 그들이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충성하는가, 하나님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는가 하는 것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칼빈신학자 A.A Hodge. op. dit. p. 141

 

 

이 얼마나 자기 모순인가?

칼빈주의는,

창세 전에 선택 자와 유기될 자들을 모두 하나님이 확정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에 관해서는 예봉을 피해간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에 따라 아담의 타락 전에 온 인류와

모든 개인의 운명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

Calvin

 

 

이렇게 예정된 천사들과 사람들은 변할 수 없이 계획되었으며,

그 수효도 확정되어 있으므로 증감할 수 없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3장 4절

 

 

이처럼...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율법관을 보면,

아직(창세 전에) 전 인류에 대한 결정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기에,

칼빈주의 창세 전에 택자와 유기자들을 모두 확정적으로 결정했다는 

예정설은 완전한 허구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다.

 

전 인류가 멸망의 타락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영생으로 갈 것이냐가 

결정되어져 있지 않는데 어떻게 택자와 유기자들이 모두 !!!

창세 전에 결정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정론 자체가 완벽한 허구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개인예정론은 신성모독 행위다. 

 

칼빈주의 하나님은(이렇게 부르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인류에게,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영생을 줄 수 없다.

 

타락은 이미 절대 주권으로 결정이 나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율법을 줄 때에도 그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에덴동산에서,

칼빈주의 하나님은 마치 창세 전에 그런 결정이 없었던 것처럼,

그런 계획을 세운 적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고 속이면서...

마치 아담에게 그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줄 수도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얼마나 위선적이고 거짓된 행위로 

인간을 속이고 기만하고 있는가?

 

속과 겉이 다른 표리부동의 하나님인가!

인간의 타락을 이미 결정지어 놓고, 위선적으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그것은...

마귀나 하는 짓이다.

마귀는 그에게 경배하면 온 천하를 줄 것처럼 위장하여 접근하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가,

이미 정해진 지옥으로 끌고 간다.

 

이것은 얼마나 큰 신성모독인가!

얼마나 더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시켜야 되겠는가?

 

칼빈주의의 하나님이 진정 공의로운 하나님이라면,

그래서 타락을 절대주권으로 창세 전에 결정했다면...

‘내가 너에게 결정한 것은 타락이니 타락하거라’ 라는 것이 더 정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타락 결정이라는 불변적인 계획은 철저하게 숨겨놓고,

가면적인 수단들을 동원하여 그 책임을 인간에게 몰아가며 

타락을 주도해내는 칼빈의 하나님은 기만의 대명사이다.

어떻게 타락을 결정해 놓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준다 말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도저히 줄 수 없는 거짓말이며 거짓된 약속이다.

이 약속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가증한 거짓이 된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가증한 기만자로 만든다.

 

아담과 인류는...

칼빈주의 하나님이 줄 수 없는 

영생이라는 기만에 속고 또 속은 것이다.

 

창세 전의 작정 속에,

존재하지 않는 영생 테스트라는 거짓된 기만에 인간은 속고 또 속은 것이다.

이미 절대적 주권으로 타락과 심판을 결졍해 놓은 다음,

그 음흉한 계략은 감추어 둔 채,

칼빈주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영생을 줄 것처럼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타락을 명령하면서...

그 책임을 고스란히 인간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철면피한 기만적인 신인가?

 

우리는 이와 같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제공하는,

불가항력적 은혜니, 무조건적 선택이니, 궁극적 구원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파렴치한 허구인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개인예정의 요람에서 나오십시오.

그 동안...

당신이 누워서 젖병을 빨며 “오직 하나님께서 다 하셨으니...”라고 

했던 요람에서 빠져 나오십시오.

자신을 돌아 보십시오.

칼빈의 개인예정론이 흔들어주는 요람 안에서,

당신은 여전히 자라지 않은 아이로 남아 있었습니다.

육체와의 전쟁을 치러보지도 못했으니...

바울처럼 날마다 죽을 필요도 없고,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질 필요도 없었겠지요.

 

여전히...

옛 사람,

옛 습성,

옛 모습들을...

그대로 껴안은 채

“오직 하나님이 다 하셨으니..” 라고 찬양만 하시겠습니까?

 

한국교회의 타락은 그래서 그랬던 것입니다.

죽을 육체를 그대로 가진 채 구원의 확신과 감격에 찬 찬양만 불러대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의 합창이,

세상의 지탄으로 메아리 되어 돌아 온 것입니다.

당신이...

구원의 노래를 부르면서...

여전히 옛 사람, 그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슬프게도,

당신은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회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만

우린...

죽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랑합니다.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7)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출처] 원전강해, 구원(7)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6)”|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8)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7)”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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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쓸데없는 교리논쟁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교리논쟁이 쓸데없었으면...

 

“지금 우리는 칼빈과 웨슬리의 시대를 모두 경험하고 배웠다.

 어느 한 쪽의 편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정점들을 모두 활용해 보다 발전된 교리를 완성해 갈 수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해묵은 교리 논쟁에 빠져선 안 될 것이다”

배본철 교수

 

배교수님의 말처럼 해묵은 교리논쟁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러기엔,

너무 깊이 교리가 신앙을 점령해버렸습니다.

자신도 모릅니다.

얼마나 깊이 교리가 내 신앙의 뿌리를 이루었는지...

 

그래서 신앙을 수술하기 전에,

먼저 교리라는 혹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논쟁이 불가피하겠지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상태로 창조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원하고도 변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구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멸망에 내어줄 사람들을

 오래 전에 확정하셨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도대체,

이 뿌리를 어떻게 잘라낼 수 있을까요?

칼빈의 이 말을 신앙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어떻게 수술해야 합니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태함의 침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텐데... 

많은 분들이 이 뿌리에 손을 대면...

마치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백안시(白眼視)합니다.

실제로 자신들이 격분하는 것이 성경이 아니라 교리라는 사실도 모른채...

참 안타깝고 아픕니다.

 

사람들은 구원이 작정되어있는 안락한 침상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작정되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 한번 서 보십시오.

정말 비참합니다.

칼빈이 스스로 ‘비참한 작정’이라고 부를만큼 비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정하실 때,

 인간 안에 있는 어떤 조건을 보고 하신 게 아니다.

 인간의 공로와 관계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예정하신다.

 칼빈에게 예정론은 사색의 결과가 아닌 신앙의 산물이다.

 자신을 돌아보니 신앙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예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평하신 하나님이 예정으로 어떤 사람들을 유기하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하기보다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선택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게 되는 것이다”

김종희 교수(백석대학교 역사신학)

 

참으로 “비참한 작정”입니다.

무조건적 선택의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뒷 무대에서는,

작정되지 못하고 버려진 자들의 비참한 통곡의 소리가 들립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칼빈주의 개인예정론은 스스로 모순임을 드러낸다.

 

“어떻게 타락을 결정해 놓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준다 말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도저히 줄 수 없는 거짓말이며 거짓된 약속이다.

  이 약속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가증한 거짓이 된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가증한 기만자로 만든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6) 中에서

 

 

 

칼빈주의 개인 예정은 조건적 구원의 성경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롬6:5,8)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고전15: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골1:22-23)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게 

       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벧후2: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

 

(요일1:7) 만일 ...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2:24)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히10:38)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요8:51)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히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요일2:15)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마귀로 보는가?

 

 

칼빈주의 하나님이,

타락을 처음부터 의중(意中)에 설계하고 이미 창세 전에 ‘타락’을 결정하였다면...

그 신은 우리가 정상적으로 알고 있는 성경의 생명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 신은...

인류를 타락시킨 타락의 원흉이며 악마적 사탄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같은 타락을 계획하고 결정한 칼빈주의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의 정체는 원수 마귀이다.

 

(마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칼빈주의 하나님은 바로 인간의 타락을 계획,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유기된 자를 죄에 빠지게 하여 타락시켜 지옥으로 이끌기 위해,

고의적으로 가라지를 심은 원수마귀이다.

 

 

칼빈은 말장난을 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칼빈주의는,

아담에게 율법을 주어 그것을 지키면 영생을 주고,

지키지 못하면 멸망을 준다는 것과,

창세 전에 타락을 결정해 두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믿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는 두 개의 허구구조를,

교묘히 성경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의 두 개의 구조를 하나로 만들면,

거짓이라는 결론뿐이다.

거기서 나온 열매의 결정체가 “5대 강령”이다.

바로 그들의 구원론, 즉 “5대 강령교리”

이와 같은 허구 가운데 세워져 있는 허구의 모래이다.

 

이런 교리가 기독교 정통교리로 지금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그것은,

정교하게 조작된 그들의 교활한 교리적인 허구를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피해 나갈 수 없는 허구를 말하면서도,

온갖 방법으로 피해 나가기 위해 말장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표현이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는 수 없이 나온다.

 

 

“하나님의 은밀한 예정의 문제를 여기서 소개한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John Calvin「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1:15:8

 

그러나 이것은,

자신들의 허구를 감추는 교활한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범죄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미봉책은 미봉책이다.

그 뚜껑만 열면 허구의 증거들이 쏟아진다.

서로 모순된 말을 얼버무리는 모습들을 보라.

 

“범죄의 책임은 인간이 전적으로 질 수 밖에 없다”

John Calvin

 

창세 전,

하나님께서 인간이 범죄하기도 전에 이미 결정해 놓으셨다고 말하면서,

그 책임은 인간이 지란다.

 

그 말이 얼마나 모순인지 칼빈 스스로도 억지스러웠던지,

이렇게 다른 말을 한다.

 

“어떻게 하셔서 그 죄를 범했던 우리의 첫 조상(그리고 우리 자신들)에게

 전적으로 그 죄책을 돌릴 수 있으셨는가?

 여기에 대하여는 하나님 자신 이외에 아무도 이 엄청난 신비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 두도록 하자”

John Calvin

 

‘엄청난 신비’라는 말로 자신들의 허구를 밀봉해 버리고 만다.

도대체 ‘엄청난 신비’라는게 무엇인가?

개인예정의 교리로 성경이 풀어지지 않으면 ‘엄청난 신비’ 탓으로

돌려 세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인간 타락이 하나님의 기쁨인가?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인간 타락이,

칼빈주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고, 하나님이 그렇게 좋게 여겼다는 것인가.

그래서...

타락한 인간을 보면서 겉으로는 몹시 진노한 것처럼 하면서,

그 책임을 물어 사망을 명령하지만,

뒤 돌아서서는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는 칼빈주의의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인가 !

 

 

 

타락시켜서 견인하신다고?

 

    “죄에서 구출된 다음 구원에 대해 더욱 깊이 감사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빠지는 것을 종종 허락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성결한 상태를 계속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으셨다“

  L. B Bottner

 

“전 인류의 타락을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영광을 드러냈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61항

 

 

이런 주장을 믿고 있단 말인가?

 

칼빈주의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구원의 은혜를 더욱 감사하게 하려고,

죄에 빠지도록 계획했고, 죄 가운데서 올리는 영광을 받는다.

이것은,

악마적 가르침이다.

창세 전에 결정된 불변적인 계획에 따라,

절대주권적인 명령으로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 앞에 죄의 기회가 오면,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에 의해,

계획을 성취시켜 드려야 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인하신단다.

 

칼빈주의는 알미니안 주의를 공격할 때 이렇게 말한다.

      (알미니안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옳지 않다.    오직 성경 외에는...)

 

‘알미니안의 잘못된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가

 내일은 악마의 아들이 될 수 있으며

 자기 마음이 변하는 대로 이렇게 되었다가 갑자기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L. B Bottner)

 

인간이 이랬다 저랬다 함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도 반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고 트집을 잡는다.

(그러나 이 부분은 성경을 곡해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회를 주시고 참고 기다리시지만

 완고한 채 계속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기회를 박탈하신다.

 한번 박탈된 기회는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인간의 반응과 관계없이,

인간이 죄를 범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구원된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오늘날 계속 죄를 범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절대예정이라는 이 시대의 또 다른 면죄부인 셈이다

 

칼빈주의 5대 강령 구원론은…

허구 위에 세워진 허구의 꽃이다.

 

허구는 어디까지나 허구이다.

허구라는 나무에 진리라는 열매가 맺힐 수 없고,

진리라는 나무에 허구라는 열매가 맺을 리 없다.

칼빈주의 사상체계가 허구이기에 죽을 수밖에 없다.

허구를 믿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고 또 죽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어떤 분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곤 합니다.

“저희 목사님은 칼빈주의 예정론을 믿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지 않던데요? 

 성화를 강조하고 거룩한 삶을 강조하던데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목사님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계신 겁니다.

하의는 칼빈의 옷을 입고, 상의는 알미니안의 옷을 입은 모습입니다.

많은 칼빈주의 목사님들이 변형된 칼빈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변형된 칼빈주의 목사님들의 생각들이 아니라 칼빈,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다소 이해가 되지 않을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상,하의가 다 칼빈주의나 알미니안주의의 복장을 입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으로 옷 입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적 구원은 구약과 신약이 동일하며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긴 이야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글이 좀 더 많이 진행된다면 더 많이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랑합니다.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8)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출처] 원전강해, 구원(8)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7)” |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9)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8)”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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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간이 타락한 것이 전적타락일까요?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전적 타락교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본래의 의를 잃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렵혀지고 말았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3장 2항,

 

“이 근본적인 부패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선에 대해서 싫증이 나며,

 무능해지고, 반발하고, 전적으로 모든 악에 기울어지게 되었다.

 이 근원적 부패로부터 모든 실제적인 범죄가 생긴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3장 4항

 

“인간은 타락하여 죄의 상태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수반하는 영적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래서 자연인은 선을 전적으로 싫어하고 죄로 죽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회심하거나 회심하도록 준비할 수가 없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9장 3항

 

 

 

그리고,

전적타락의 관련 성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6: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롬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성경에는 인간이 타락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성경구절이,

전적타락을 말하는 것일까요?

전적으로 타락되어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에도 반응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일까요?

영혼의 전적인 무능상태에 처한 인간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견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 올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일까요?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영혼이 타락을 말씀함과 동시에,

영적 자발성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칼빈주의의 전적타락설이 옳지 않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겔18:21-23)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사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신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렘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행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눅8: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전적타락설의 허구에 관하여...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말하는 전적타락론의 배경에는,

어떤 허구적인 구조와 주장이 도사리고 있는가에 관해,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서술했듯이,

칼빈주의는 창2:16-17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두 가지의 타락론을 다 인정하고 있다.

즉, 아담책임론의 타락설과 칼빈주의 하나님의 타락결정론이다.

에덴 동산에서의 타락은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과 동시에,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타락을 이미 예정해 놓았다고 말한다.

 

“전 인류의 타락을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영광을 드러냈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61항

 

참으로 놀라운 조화다.

칼빈주의는,

이 두 가지 절대 공존할 수 없는 타락론을 공존시킨다.

오직,

말장난으로….

그리고 그것을 성경에서 나왔다고 믿고 있다.

 

 

 

전적 타락을 계획했다고?

 

“전적타락은 하나님에 의해 설계되고 추진되었다”는 것이 칼빈주의의 명제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전적 타락의 기본명제는,

인간 타락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절대주권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칼빈주의 절대 예정론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다.

 

"그의 섭리는 아담의 타락과 천사들과 천사들의 모든 죄까지도 포함한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5:4

 

 

참으로 기가 막히는 주장이다.

하나님을 죄의 창시사로 몰아세우는 칼빈의 정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칼빈주의에서 전적타락은,

전적으로

칼빈주의 하나님에 의해 설계되었고 주도되었다.

칼빈주의의 타락론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진다.

사람이 아니라 칼빈주의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이 죄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한다.

 

이런 말장난으로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구원까지 한다.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몰아세우는 동시에, 죄에서 구출해내는...

칼빈주의의 기막힌 반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우리가,

전적타락론을 허구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을 살펴 보자.

 

인간이 받은 저주에 대해서 스스로가 책임이 있다고 할지라도,

타락 그 자체는 하나님에 의해 명령된 것임에 틀림 없는 것이다

강정진

 

주께서는 멸망으로 갈 줄을 분명히 미리 아신 자들을 창조하셨다.

주께서 그렇게 하시고자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 III. 23:5

 

 

인간타락의 궁극적 원인이 인간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것을 반대한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타락한 것은 아니다

강정진

 

하나님의 섭리가 죄를 허용하려는 그의 작정의 실행을 포함한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朴亨龍, 韓國基督敎敎育硏究院. 1988. 3. 15. p.432

 

 

인간의 죄행 역시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L.B Bottner

 

의심의 여지없이,

신은 그의 섭리 가운데서 이 최조의 인간의 타락에 개입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틀림없이 영원 전부터 예지되었으며,

아무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주님께서 아담이 타락하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에

첫번째 사람이 타락하도록 하신 것이다

John Calvin

 

하나님이 어떤 의미에서는

죄의 원인자(Cause of Sin)이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Gordon H. Clark

 

 

 

우리는 성경을 따르려는가?

아니면

칼빈과 칼빈주의를 따르려는가 !

아직도...

칼빈과 칼빈주의를 성경이라고 굳게 믿고 싶은가?

 

칼빈의 하나님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

피조물이다.

 

다시 말하면 칼빈의 하나님은 

칼빈이 창조한 피조물이다.

그가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교리들도?

칼빈주의 신학은…

예정론이라는 바탕 위에 세워진 집이다.

예정론이 허구라면…

신적 작정론, 구원론, 믿음론, 기독론, 주권설, 영광론, 섭리론, 율법론, 타락론, 

계획설, 신론,교회론, 종말론, 역사관, 우주관, 세계관…

이 모든 것도...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이다.

 

 

우리는...

구원에 관해서

오직 성경만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1. 각 개인들이 구원에 선택(예정)된 것이 아니다.

 

개인예정은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다.

예수님만이 창세 전에 선택된 자(Elect Man)이시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각 개개인을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거하는(머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즉,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있는 모든 자,

그리스도와 연합된(붙은) 자는

누구든지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2. 구원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자들에게 부여된다.

 

각 개인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것을 경고한다.

 

3.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은총을 부여 받았다

 

창세 전에 개인의 구원이 예정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신해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대신해 믿을 수는 없다.

믿음이라는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 얻지만,

그 은혜를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는...

각 사람에게 달려 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시작해 놓으신 구원을,

어떻게 해서든지,

성령님을 의지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날마다 자아를 죽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며,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느냐?

그것이...

우리의 전쟁이며 자랑입니다.

좁은 길이라고 부르신 이유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좁아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기에...

오늘도,

자신이 믿음에 있는지 시험하고 확증하면서

이 좁은 길을 갑시다.

죽으면 산다는 것을 알기에...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9)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출처] 원전강해, 구원(9)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8)”|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10)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9)”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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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인간은...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습니다.

            (12:20)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여기,

상한 갈대라는 것과 꺼져가는 심지라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부러진 갈대가 아니고 꺼진 심지가 아닙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의()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상한 갈대처럼,

작은 바람에도...

상한 성품은 아파하며분노하며염려하며쉽게 교만합니다.

간혹,

폭풍우가 몰아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악함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1:28-31 우리말 성경)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타락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셔서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질투와 살인과 다툼과 사기와 악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수군거리기를 좋아하고 서로 헐뜯고하나님을 미워하고건방지고,   

    교만하고자랑하기 좋아하고악한 일을 궁리해 내고부모를 거역하고 어리석고,

    신의가 없고인정도 없고무자비한 자들입니다

 

 

아담적 본성이,

인간 내면에 뿌리 박혀 있어...

오늘도 상한 갈대들의 아픔들이 고통스러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한 갈대는 꺾인 갈대가 아닙니다.

꺼져가는 심지는 꺼진 심지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진다면 반응할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의를 행할 수 없을 만큼 상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할 수 없을 만큼 꺾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일으켜 세우시며,

꺼져가는 심지가 다시 불이 붙도록 고치십니다.

절대예정론은 인간의 반응을 없애버림으로써 무책임한 인간으로 몰아세웁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무 것도 해서도 안되는...

 

 

요한 웨슬레이(1703-1791)는 칼빈의 절대예정을 이렇게 비판했다.

 

만약 예정(개인예정론)이 옳다면 모든 설교는 헛되다.

 예정(선택)된 사람에게는 설교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그들은 설교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필연코 구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설교의 목적은 그들과의 관련 하에서 볼 때

 공허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설교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 받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설교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필연코 멸망하게 된다.

                                             John Wesley,  “Free Grace” 中에서

 

 

 

모순된 이중예정론과 제한 속죄.

 

누가 구원을 받고 누가 멸망을 받는 여부가,

창세 전에 하나님에 의하여 무조건 미리 작정되어 있어,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드러내도록 예정되었다는 무조건적인 이중예정은,

성경에도 어긋날뿐더러,

하나님의 속성에도 조화되지 않는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벧후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칼빈의 예정론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순에 빠져버린다.

또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길을 예정된 대로 당연히 가고 있을 뿐이므로

성경에 전적으로 어긋난다.

Nichols

 

 

Nichols 의 말처럼 칼빈의 예정론은 성경에 어긋난다.

만약,

선택과 유기가 결정되었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없다.

인간의 책임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말씀을...

 

(3:18-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18-20)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면 그가 그 가운데서

            죽을 것이고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요일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칼빈의 절대 예정론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듦으로 어둠으로 만든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오직 택하신 자들만을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칼빈주의 제한속죄론은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크게 왜곡하는 중대한 과오다.

제한된 속죄론은 결과로부터 원인을 추론한다.

그들은 요3:16요일2:2딤전2:4벧후3:9절 등의 성경 말씀에 대하여 

만족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Philip Schaff, 516

 

 

 

 

인간의 책임과 심판의 당위성.

 

성경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분명히 선언한다.

 

(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6:16-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 나라들아 들으라 무리들아 그들이 당할 일을 알라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12:35-37)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2:12-13)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행동은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선택은 의지를 행사한 결과이다.

하나님께서 거듭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경고하시고,

순종함으로 생명을 선택하도록 촉구하신 사실은,

사람이 가진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바르게 행사하라는 요청인 것이다

 

(30:15-20)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24:15-21)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1:16-20)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5:14)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17:1-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불의한 이 세상에서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한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

하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미리 작정해 놓으신 결과에 따라 행동한 것에 대해

어떻게,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실 수 있는가?

그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당위성을 훼손하는 위험한 가르침이다.

 

(전12:1-2, 13-14)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마25: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바라시는”(딤전2:4) 하나님의 소원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베푸시는 은혜를 거역하지 말고,

의지를 바르게 행사하여,

믿음으로 반응하도록 가르치는 사람들을,

자력구원을 주장하는 자들로 정죄하는 것은,

성경에 크게 어긋난 것이다.

 

 

 

 

칼빈주의자들 가운데 성화를 강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칼빈주의에 있어 성화는 상급에 관한 문제이지만,

어떤 분들의 가르침 중에는,

성화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칼빈주의가 그 정도로만 변형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칼빈주의는 이미 택함을 입었기 때문에,

성화를 위한 자기 죽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위험한 것입니다.

 

거룩한 성도로 자라가길 기도합니다.

 

 

 

         예정론무엇이 문제인가(10)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출처] 원전강해, 구원(10)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9)” |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11)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10)”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23:38

복사 http://blog.naver.com/lljwhkingll/199683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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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Chip이 짐승의 표일까?   아닐까?

격론이 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격론으로만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베리칩의 보편화는 이제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보편화되면,

모든 사람들은 조지 오웰이 쓴 소설 <1894>에 나오는,

빅브라더에게 감시되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13:16-17)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4:11)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쉼을 얻지 못하리라

 

(14:9-11)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Veri -Chip 논쟁은,

단순히 베리칩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논쟁의 뿌리는 구원관에 있습니다.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의 관점에서 보면 종말적 상황이 이해가 안됩니다.

어떻게 창세 전에 예정된 사람이,

단순히 자신의 선택으로 베리칩을 받았다고,

구원이 상실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2011년 3,

재미고신총회 북서노회는,

베리칩에 관한 본 노회의 성경적 입장이란 성명을 통해,

베리칩은 짐승의 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뿌리는 개인예정론에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베리칩을 받으면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정면으로 대치하며,

 외부의 어떤 힘을 인하여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 십자가 피의 공로를 사단의 능력이 압도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가르침이다”

재미고신총회 북서노회

 

 

2011년 7월,

OC(오렌지카운티)교협도 다음과 같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베리칩에 관한 오해로 인해 교계와 교회성도들에게 영적 혼란을 주며 두려움을

 주고 있음에 주목해 왔다.

  베리칩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무지한

 주장이요성도들로 하여금 잘못된 종말론을 심어 주려는 사탄의 계략이다.

 특히 구원은 베리칩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베리칩을 짐승의 표로 보고 베리칩을 맞으면

 구원을 잃는 것으로 호도하는 것은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잘못된 성경해석이요,

  이단성 해석임을 천명한다

 

 

모두 베리칩을 구원의 문제와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종말의 문제가 구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를 믿는 것이 구원의 핵심이기에,

베리칩이 그 구원의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무효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말을 보는 시각의 문제는 결국 구원관에 의해 결정됩니다.

한번 받은 구원은 결코 상실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짐승의 표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구원이 상실되므로 상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상실될 수 있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짐승의 표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는 결정적인 것입니다.

 

 

 

상실할 수도 있는 구원

어떤 분들은 이 말에 격분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누렸던 사람도,

불순종이나 나태함으로,

구원을 잃어버린바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고전9:23-27)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주/ 어떤 분은 바울이, 구원이 아닌 사명을 상실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 “너희는 갈라디아 교인들입니다)

 

(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0:26-29)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성경에 기록된 많은 실례들은,

인간의 불신과 반역고의적인 불경에 의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성령의 역사가,

거절되거나 소멸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사63:8-10)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살전5:19) “성령을 소멸(σβέννυτε extinguish, suppress)하지 말며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고후6:1-2)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 거절될 수 없다는 칼빈의 가르침(불가항력적 은혜)도,

어거스틴에게서 물려받은 사상이다.

 

“어찌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모두 은총에 순종하지 않는가?

  어거스틴은 이에 대하여 예정의 교리를 가지고 답변하였다.

  영원 전부터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형벌을 받도록 예정되었다.

  이처럼 예정된 자들의 수는 고정되어 있고 변경시킬 수 없으며, 

      또한 서로 교체될 수도 없다.”

                                                              Philip Schaff, 234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거나 받아들이는 근거마저도,

예정에 돌림으로써,

성경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한 셈이다.

 

 

 

아르미니우스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다.

(아르미니우스가 옳은 것을 말함이 아니다비교적 옳다는 것이다)

 

성경에 무조건적인 선택이나 절대적인 예정으로 생각되는 표현이나 실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어거스틴과 칼빈이 예정론의 뿌리를 내린 롬9장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열거한 야곱과 에서애굽왕 바로이스라엘 민족

진흙과 토기장이의 실례들은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망 받도록 작정하셨다는 것을 설명하는 개인 예정의 문맥이 아니다.

 

사명과 역할을 위한 선택,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정하신 절대적인 구원의 계획을 이루는데 

필요한 사람들의 역할과 사명을 설명하는 문맥에서 쓰여진 것이다.   

즉 개인구원 예정이 아니라 사명과 역할을 위한 예정인 것이다.

 

9장은 아르미나우스에게는,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킨 다메섹이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했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의 제자 바울이 되었으니,

그렇게 불러도 될 법하다.

한 때 베자의 제자였으며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그가,

9장에서 빛을 받아 변했다.

다메섹처럼...

그 후 오히려 칼빈과 베자를 맹공한다.

 

 

아르미니우스가 칼빈주의자였을 때 롬9장은,

그에게는 칼빈의 개인구원예정을 입증하는 성경이었다.

그러나,

그가 빛을 받은 후,

9장은 개인구원예정을 반박하는 것이 되었다.

그는 롬9장이 사역예정이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도,

다메섹 이전이 아니 다메섹 이후의 눈으로 이 부분을 다시 읽어보자.

 

(9)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 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 부분은 예정론무엇이 문제인가(3)을 참조하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 구원 자체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사명 공동체인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부르심의 목적이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사명과 역할이,

예정과 선택의 목적이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용도(用途)에 적절하게 쓰이기 위해 진흙으로 만들어지는 토기와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용도에 맞게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주권을 가진 토기장이의 실례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롬9:19~24)

 

사도 바울 자신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위해 부름받은 “택한 그릇이었으며(행9:15),

이러한 선택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9:27)고 고백하였다.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것은,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순종하며 사명에 충실한 결과였지,

구원받도록 예정된 선택의 기계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누구도,

당신의 구원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크고 두려운 구원을,

하나님께 책임 지우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너무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창세 전에 갇혀

종말적으로 다가온 자발적인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가 이미 하셨으니...”라고 손을 씻고 있다가,

무책임의 결과를 고스란히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위해 열어 놓으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당신이,

자아를 죽이고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죽고,

쳐서 복종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길입니다.

이 좁은 길을 가는 것을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을...

당신은 걷고 있습니까?

 

 

 

예정론무엇이 문제인가(11)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예정론무엇이 문제인가(11)”는 예정론무엇이 문제인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다룬 후 구원원전강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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