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일제시대(1921년) 2%의 기독교와 (1995년) 26%의 기독교

by 갈렙 posted Jan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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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기독교와 26%의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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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922년 2월 15일자 기독신보에 실려 있는 교회 통계이다.

조선기독교회통계표 -신도 총계와 교역자 총계
1921년 선교사연합회에서 작성한 통계표
장로교 및 감리교인 총계 24만명(1920년보다 3600명 증가)
천주교인 8만명, 조합교인 만명, 성공회 교인 만명, 동양선교회 구세군 칠일안식교인 합하여 약 만명 합하면 조선인 기독교신자만 실로 35만명.
1920년 인구조사표 조선 전인구 1964만 8천명 조선인 56명중 1인은 기독교신자.

조선내 사역 외국선교사
장로교감리교 양 교회 472명(장로교측 305명 / 감리교측 167명)
기타교회선교사 165명 총637명(남자 163명, 혼인한 부인 150명, 미혼여자159명 / 1년 평균 백명 가량은 귀국 휴양중에 있음)
조선인목사 313명(장로교측 218명 / 감리교측 95명)
778인의 유급조사 전도사 / 215명의 매서인 / 325명의 전도부인 / 25명 병원전도인
교역에 종사하는 유급교역자 총계 1683명,
조선교인중 봉급을 전담하는 교역자 대략 1천명 내외. 조선교인 240명 중 평균 1인이 유급교역자.

  조선인 56명 중 1명이 기독교 신자이니 백분율로 하면 약 1.8%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1920년대 중반 개신교인과 천주교인을 합쳐서 기독교인구는 2%에 미달하였다. 일제시대 동안에 이 수치는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 한국 교회는 1920년대까지 성장세를 보이다 1920년대부터는 오히려 위축되거나 현상유지를 하는 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1920년대 사회주의가 유입되었고 반면에 교회는 사회참여를 꺼리는 태도를 취하자, 교회를 찾는 젊은이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게 된다. 1950년대까지 교인 증가에 도움을 줄만한 별다른 이슈가 없기 때문에 1.8%의 숫자가 유지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거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해방 무렵 한국 기독교 인구가 2%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1920년대부터 현상유지를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2%라는 숫자가 적지 않은 숫자임에는 틀림없다. 무에서 2%까지 늘어났다는 것은 엄청난 확장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성격이 형성된 것도 이 2%에서였다. 그럼에도 그 숫자는 지금의 26% 정도의 엄청난 기독교인구에 비해서는 미미한 숫자임에 틀림없다. 막말로 2% 정도라면 다른 지역 선교 사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비율이고, 한국 기독교만이 유달리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는 못 된다.

  해방의 시점에 기독교 인구가 2% 정도였다는 사실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이상하게도 그리 많이 언급되지는 않는다. 한국 기독교가 언제 이처럼 엄청난 세력을 얻었는가? 다름 아니라 이승만 정권 등장 이후이다. 기독교 성장을 이야기하려면 1960,70,80년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부분은 아직 학계에서 정교하게 논의되고 있지 않다. 많은 한국 기독교 연구들이 일제시대에 집중되어 있다. 해방 이후의 이야기는 마치 부록처럼 뒤의 몇 장(章)으로 달려 있을 뿐이다. 교회가 무지막지하게 큰 것은 그 이후인데, 미국과의 관계 아래 엄청나게 성장한 것인데, 교회사는 일제시대의 민족적인 교회라는 (내가 보기엔) 꽤나 허구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노력한다. 그러한 역사 서술이 한국교회의 성장이 민족적인 노선을 가졌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직접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술을 따라가고 있노라면 그런 막연한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교회사 서술은 의미의 역사일진대, 그 의미는 신학적인 의미일 수밖에 없다. 사회 현상으로서 볼 때는 아무래도 2%보다는 25%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의미로 기술할 때는 2%가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과정에 눈이 가게 되는 것이다. 마치, 초기 기독교가 성장한 것은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제국 종교가 되어버린 이후가 핵심적인 시점인데, 신학적인 의미의 눈으로 보면 그 이전의 순교의 역사에 눈이 가고 국교로서의 기독교는 타락한 모습이 보인다는 이유에서 덜 눈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리라.

  작년 한 수업에서 한국 개신교 인구가 1960년에 62만 3천명, 1985년에 648만 9천명, 1995년에 881만 9천명으로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인 나에게도 놀라운 수치인데, 한국 교회 얘기를 처음 듣는 미국애들은 오죽했겠는가. 그거 오타 아니냐고 묻는 애가 있는가 하면, 사방에서 “crazy" 연발하며 난리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왜 그런 성장이 있었는지 질문이 날아 들어오는데, 솔직히 제대로 답변하기가 힘들었다. 성장을 설명한 제대로 된 글을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몇몇 ”지론“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 상황 등등의 여러 이야기들을 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핵심적인 요인일텐데, 그리 만족스러운 설명을 해주진 못했다. 이건 쪽팔린 일이다. 한국에서 기독교사 공부 잠시 했는데, 가장 놀라운 현상에 대한 번듯한 설명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의 문제이고, 부분적으로 우리나라 학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기 공부 부족한 생각은 안 하고, 2%에 몰두한 나머지 2%에서 26%가 된 뻥튀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학계를 잠시 원망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난 어떤 책이 이 뻥튀기를 설명해주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납득할만한 설명을 마련해 놓은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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