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환난전휴거론(세대주의)는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고 발전되었는가?

by 갈렙 posted Sep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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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전 휴거

 

 

 

“세대론”은 폴리캅( Polycarp) 시대로부터 기독교 문헌 속에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초대교회가 세워진 이후 1800년 동안 교회에서 전혀 가르쳐진 적이 없었으며 크리스텐돔(Christendom)의 역사 내지 문헌 속에도 이 교리(세대론)을 변론하는 글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 교리가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교회역사 전반에 걸쳐 비밀휴거(Secret Rapture)의 기원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휴거”라는 용어는 예수회에서 만들어져 교회 전반에 널리 퍼져 사용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휴거”비성경적인 용어이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피하심이 바람직 하다고 봅니다.

 

 

 

1. 리베라

1). 7년 대환란전 휴거설 - 리베라(Ribera 1537~1591)라는 제수이트 신부는 “세상에 특별한 지도자 즉 적그리스도가 3년 반 동안 통치하고 나서의 마지막까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언을 해석하고 7년 대환란 전 휴거설을 발표하였으며 이 학설은 지금 모든 사람들에게 굳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불행한 일을 자행했던 그 시대의 거짓 선지자 리베라와 벨라민 추기경(Cardinal Bellarmine) 같은 제수이트 신부가 활동한 시기는 그때 잠깐이 아니라 그전부터 몇 세기에 걸쳐 크리스천들을 괴롭혀왔습니다.

리베라의 환란 전 휴거설은 이후 계속되어 21세기 개혁교회들의 교리적 중요한 부분을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2). 예수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전 휴거(Rapture)에 관한 교리는 1591년에 로마 예수회 신부 리베라(Ribera)에 의해서 도입되었으며 엠마누엘 라쿤자(Emmanuel Lacunza/P. Manuel Lacunza)로 이어집니다.

라쿤자는 본래 유태교로 개종한 랍비 벤 에즈라(Rabbi Ben Ezra)라고 합니다. 그는 요안 요사파트 벤 에즈라(Juan Josafat Ben Ezra)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예수님이 지상으로 다시 오시기 전에 “교회가 휴거될(raptured)”이라는 이론을 체계화시켰습니다.

1827년에 그의 저서는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 -스코틀랜드 급진주의자)에 의해서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어빙은 자신의 논문 “The Morning Watch”을 통해서 라쿤자의 이론을 밝혔습니다.

 

 

 

2. 마가렛 맥도날드(Margaret Macdonald)

1). 생애 : 1815년 port Glasgow에서 태어났고 1840년 스코트랜드에서 사망.

2). 발생 : 1830년 15세의 은사 소녀(방언 통역과 계시) 마가렛 맥도날드는 자신이 “비밀휴거” 환상(환란전 휴거)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1년 후 남자 은사주의자인 로버트 노턴(Robert Norton)이 마가렛 맥도널드를 만났고 영국 전역에다 그 여자의 “비밀휴거” 환상을 퍼뜨립니다.

15세 어린 소녀의 말 한마디가 환난 전 휴거라는 엉터리 교리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3). 동조자 : “비밀휴거”의 원조 마가렛 맥도널드는 25세의 처녀로 죽었기에, 사진 밑 초상화가 전무하다고 합니다. “비밀휴거”를 계시 받았다는 영필(靈筆)이 전해오고 있는 가운데 불편한 몸의 맥도널드로부터 당시의 많은 목회자들이 안수받았다고 합니다.

 

3. 환란 전 휴거의 추적

제수이트 신부 리베라(Ribera 1537~1591)와 마가렛 맥도널드 말을 여과 없이 믿는 목사들이 전한 설교에 의해 현재까지 “비밀휴거”가 전해졌으며 현재도 환난 전 휴거를 많은 목사들이 위 두 사람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파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요 성경학자인 사무엘 P. 트레겔레스(Samuel Prideaux Tregelles/1813-1875) 박사는 존 다비(John Darby)의 저술들을 통하여 에드워드 어빙에 이르는 “휴거개념”을 추적하여 1866년에 한 권의 소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1).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의 창설자인 존 다비(John N. Darby)는 1870년부터 어빙의 모임에 수차례에 참가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는 어느 시점에서 “하나의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자신의 서신들 속에서, 다비는 예수회 드 라쿤자(De Lacunza)의 저작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다비는 키러스 I. 스코필드(Cyrus I. Scofield)를 만났습니다.

①. 전환난설(Pretribulationalism)과 세대론(Dispensationalism)의 광범위한 전파는 스코필드(Cyrus Ingerson Scofield/1843-1921)에게 가장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1909년에 스코필드는 자신의 “스코필드 주석 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을 발간합니다.

주석에서 다비의 교리들(가르침)을 옹호한 이 성경은 근본주의界(Fundamentalist Circles)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습니다.

수많은 성경교사 근본주의 목회자와 리스투인들을 가르치는 자들의 마음들 속에는 “스코필드의 주석들(Scofield's Notes)”이 하나님의 그 말씀 자체와 동일시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②. 이처럼 스코필드는 “라쿤자⟶맥도널드⟶다비”로부터 많은 휴거론들을 포함시켰으며, 결국에는 계속해서 그것들을 주석 성경 속에다 포함시켜 온 것이라고 합니다.

2). 그 당시 고든(A. J. Gordon), 무어헤드(W. G. Moorhead), 어드먼(Charles R. Eerdman)을 비롯한 다른 신중한 성경학자들은 스코필드의 환란 전 휴거에 관한 주석 삽입을 만류하였다고 합니다.

스코필드 성경 개정위원회의 저명한 세 회원들조차 스코필드가 자신들의 조언에는 아무런 회답이 없이 막무가내로 “라쿤자⟶맥도널드⟶다비”의 이론들을 지지하기 때문에 성경 개정위원회를 사직하였다고 합니다.

3). “라쿤자⟶맥도널드⟶다비⟶스코필드”로 이어지는 종말론의 열렬한 지지자 무디 성경학교(Moody Bible Institute)의 해리 아이언사이드(Harry Ironside) 박사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신비들(Mysteries of God)”에서 다비의 저술들을 통해서 그 앞의 종말론들이 전해질 때까지, 스코필드 박사가 가르친 교리 곧 “칠년환난(the Seven-Year Tribulation)”은 과거 1600년 기간을 통하여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고 시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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