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KJV과 TR성경은 12세기의 소문자사본에서 번역한 헬라어성경이다.

by 갈렙 posted Sep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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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말씀보존학회 성경관의 문제점 연구

킹 제임스 성경과 그 원문인 TR(Textus Receptus)만이 하나님이 보존하신 성경이라는 주장

 

1. <King James> 성경의 바른 이해
1611년 번역된 "킹제임스"(King James)성경은 그 당시로도 전혀 새로운 성경이 아니라 이전의 번역판들에 대한 개정작업이었으며 제임스 왕이 권위를 인정한 것이었다.

"이른바 흠정역(欽定譯) 'Autorized Version'이라는 것도 사실상 그 자체는 그 이전의 번역판들을 개정한 것으로 1611년 제임스 왕이 권위를 인정한 것으로 Erasmus의 그리스어 텍스트를 기초로 한 것이다. 에라스무스가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6개의 후기의 빈약한 그리스어 사본 뿐이었으므로 많이 애용되어 온 흠정역에 있는 재료는 3세기 이상이나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의 성경으로는 매우 불명확한 것이다. 사실상 Erasmus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그의 사본도 전부 사용하지 않았다…. 만일 Erasmus가 그것(시내산 사본)을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의 흠정역 성경은 의심할 여지없이 좀더 정확한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George E. Ladd, The New Testamentand Criticism)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약학자 죠지 래드(George Ladd)의 말이다. 죠지 래드는 성경 헬라어와 교부 헬라어로써 박사학위를 받은 분으로서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신약학자이다.

 

횃불 트리니티신학대학원의 장두만 교수의 글을 인용해 본다.

"KJV은 1611년에 번역된 성경이다. 언어는 역사성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하면 그 의미가 변화된다. 약 400년이 경과하면서 단어의 의미가 바뀐 경우도 많이 있고, 1611년 이후에 성서 고고학은 물론 다른 학문도 급격히 발달되어 성경의 배경이나 단어의 의미가 분명히 밝혀진 경우도 많이 있다. 사본의 수도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나게 많이 있다. TR의 원형인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이 겨우 5권의 사본을 사용해서 편집된 것임에 비해 지금 우리는 약 5,400여 권의 헬라어 사본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든 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킹 제임스 유일론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 볼 때 KJV은 좋은 번역이고 믿을 만한 번역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번역판이기 때문에 오류가 상당히 많다. 우리가 성경의 영감을 말할 때 그것은 원본에만 국한시키지 결코 사본이나 번역판에까지 확대해서 적용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사본과 번역판은 다소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장두만, 목회와 신학, 98년 7월호)

 

R. C. Sproul박사가 <Knowing Scripture>에서, KJV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도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 <King James> 성경처럼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면서 널리 사용되었던 성경번역의 경우 그 영예가 위협받을라치면 그에 대한 저항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들은 킹 제임스 성경을 없애는 것은 마귀의 소행에 다름아니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King James>성경이 문자적으로 영감을 받은 번역인 것처럼 행동해 왔다.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King James> 성경은 그 오랜 수명 때문에 문학이나 시나 찬송가에서 그 글귀가 울려 퍼질 때마다 그것은 더없이 소중한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번역의 아름다움을 나만큼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King James>성경과 관련하여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하고 잊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King James>성경이 대부분의 현대 번역보다성경의 원뜻을 정확히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중요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 <King James>성경의 원문이었던 희랍어 텍스트(Texture Receptus)는 오늘날의 새로운 희랍어 텍스트들보다 분명히 좋지 못하다. <King James> 성경에서 발견되는 많은 텍스트상의 오류는 최근의 번역들에서는 거의 제기되었다. 16세기 이후 발견된 사본들은 원본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큰 도움을 주었다…. 아름다운 번역으로 말하자면 <King James>성경을 따라올 성경이 없다. 그러나 성경 번역의 정확성과 흠없음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King James>성경을 넘어서야 한다."

 

신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조언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 현재 서구 세계가 사탄의 사주를 받아서 교묘히 짜고 <King James>성경을 제거하려고 하고 있다는 럭크만과 이송오 목사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무지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2. TR(수용원문, Textus Receptus)에 바른 이해

말씀보존학회는 <King James>성경의 원문인 TR만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된 참된 말씀이라 주장하고 있다.
한글판 킹제임스성경의 서문에 이송오 목사가 쓴 부분을 인용해 본다.
"한편 신약성경의 원문은 사도시대 이후 주로 소아시아의 지역 교회들과 성도들에게 산재되어 있었고, 이 사본들이 신실한 성도들의 손에 의해 믿는 사람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던 안티옥에서 발칸반도를 거쳐 알프스 넘어 유럽으로 옮겨졌고, 독일에서 영국으로 들어갔다. 이 원문은 악한 세력들의 성경 변개 시도와 갖은 박해 속에서도 한 번도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옴으로써 정통원문(Traditional Text)이란 명칭이 붙게 되었다."

 

아래의 글은 한글 킹제임스성경의 홍보 팜플렛의 내용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최초의 원본에서 수많은 현사본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5,366개의 필사본들이 현존하는데, 이 가운데 85%의 필사본들이 "다수필사본"인 헬라어 <표준원문, TR>이며 나머지 15%가 소수필사본인 알렉산드리아 원문이다. 이렇게 알렉산드리아 원문이 소수인 이유는 사람들이 틀린 원문을 필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문에 따라 성경을 판단할 때, 영어 <킹 제임스성경>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표준원문>계열의 성격이고, <개역한글판성경>은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성경이다"(홍보 팜플렛 4~5쪽)

 

정말 그런가? 장두만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TR의 기원은 중세의 인문주의자요 신학자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9~1536)에서 시작된다. 그 당시까지 시중 판매용으로 제작된 헬라어 성경은 전무하였다. 그래서 프로벤이라는 인쇄업자의 종용으로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사본을 수집하였지만, 실망스럽게도 12세기경의 사본 5권 밖에는 입수하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입수한 사본 가운데 요한계시록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단 한 권뿐이었고 그것도 마지막 6절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에라스무스는 부득이 라틴어 벌게이트(Vulgate)성경을 번역하여 그 부분을 채워 헬라어 성경을 시중에 내놓았다. 1515년 10월 2일에 시작된 인쇄가 1516년 3월 1일에 완성되었다. 1,000페이지 가량되는 방대한 작업을 너무 급히 인쇄했기 때문에 오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헬라어 성경출판은 대성공이었다. 그것은 4판에 69쇄가 발행되었다.

 

그의 성경은 그후에도 스테파누스(Stephaus), 베자(Beza), 엘제비르(Elzevir)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특히 엘제비르는 그의 2판(1633)서문에서 에라스무스 헬라어 성경의 인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본문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TR(Textus Receptus =   Received Text)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고, KJV의 신약 부분은 바로 TR에서 번역된 것이다."(목회와 신학 98년 6월호)

 

조지 래드의 말을 들어본다.

"우리는 3세기 반 동안이나 수백만의 신도들이 사용하고 사랑하여 왔던 하나님의 말씀의 형태는 1611년의 <King James Version>이었으며 이것은 최초로 인쇄된 신약성경, Texus Receptus에 기초를 둔 것이고 Textus Receptus는 후기 사본의 대다수로서 이루어진 시리아(Byzantine) 계보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상기해 두자. 좀더 최근의 학문 연구로 만들어진 텍스트에 비교해 볼 때 이 Textus Receptus는 빈약한 텍스트일뿐 아니라 판본의 오류가 수 천개나 여기저기 있는데 이것이 바로 애지중지하여 온 흠정역을 만드는 데 기본이 된 것이다. 이것은 신앙이나 신학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하고 객관적인 사실인 것이다.(중략)

 

Textus Receptus와 KJV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인정되어야 한다. 영감적인 이 책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 구원의 관계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3세기 반 동안이나 흠정역(欽定譯)은 그 텍스트상에 수 천개의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 백만의 신도들에게 단 하나의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왔다. 그 위엄상, 아름다움, 친숙함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에도 다른 번역에서는 느낄수 없는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며 흠정역의 영어 말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인 양 읽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가 익숙해진 흠정역의 기초가 되었던, 그 시대에 뒤떨어진 텍스트의 결점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다수 번역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은 참된가?

 

장두만 교수의 글을 본다.

"사본의 숫자로 볼 때에는 비잔틴 계열에 속하는 사본이 가장 많다. 비잔틴 계열의 사본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사본의 '정상적인 전승'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보존' 때문에 비잔틴 계열의 사본이 많고, 따라서 이 계열의 사본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전승'이란 올바른 사본이 오류가 있는 사본보다 많이 제작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증명할 수 없는 하나의 가정에 불과한 것이다. '섭리에 의한 보존'이란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당연히 그 사본도 보존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본의 무오성을 약속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다.

 

그러면 왜 비잔틴 계열의 사본이 많이 제작되었는가? 우리가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한다면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릴 것으로 생각된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후 얼마 후부터 로마제국 내에서는 라틴어가 헬라어 대신에 통용되었기 때문에 헬라어 사본을 제작할 필요가 적어졌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는 헬라어 사본이 많이 제작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 사본으로는 라틴어 역본이 많다. 또 다른 이유는 이슬람교가 팔레스타인은 물론 북아프리카, 스페인 및 남프랑스에까지 영향을 미쳤지만,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 지역은 15세기까지 이슬람 영향권밖에 있으면서 계속 헬라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자연히 헬라어 사본 제작이 활발했던 것이다.

 

3. 한글 개역성경이 말씀을 삭제하고 빼먹었다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에 대하여

말씀보존학회에서는 자신들이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성경을 홍보하면서 자신들의 성경만이 유일하게 "없음"이라는 구절이 없는 참된 성경이라 주장하고 있다. "없음"이라는 구절이 없기 때문에 삭제가 없는 유일한 성경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는 곧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인용한 죠지 래드의 말처럼 TR 자체가 부족한 원문이고 판본 자체에 수 천개의 오류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더 신빙성있고 정확한 전기 시대의 사본이 있는 상황속에서 이 부족한 번역들은 교정될 수 있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개역성경에 있는 '없음'이라는 부분은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처럼 원래 있었는데 삭제한 것이 아니라 성경 필사자들이 후기에 첨가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원문비평학적으로 제외시킨 것이다.
한 예를 살펴본다.

 

■ 요한일서 5:6~7절
▶ 한글 개역성경 :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 한글 킹제임스성경(말씀보존학회 발행) :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니, 물로만 아니라 물과 피로니라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오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영어 KJV에는 이 부분을 이탤릭체로 적어 놓았다. 한글 개역성경에는 이 부분이 없음.)


말씀보존학회에서는 이 부분의 차이점을 이렇게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개역성경은 삼위일체를 완전하게 증명할 수 있는 구절을 통째로 제거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6절의 끝부분을 7절에 놓아 7절이 없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홍보 팜플렛)

말씀보존학회는 결국 사탄의 세력들이 삼위일체를 부정하기 위해 너무도 삼위일체를 증명하기 멋진 구절을 의도적으로 제거해 버렸다는 의미이다. 정말 그런가?

 

R. C. Sproul박사의 말을 들어본다.

"나는 성경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삼위일체의 교리를 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또한 위에 인용한 구절이 참된 말씀임을 믿는다. 하지만 나는 요한이 이 구절을 직접 쓰지 않았으며 또한 이 구절은 요한 1서의 텍스트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확신한다. 왜일까?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희랍어 사본들이 압도적으로 이 구절에 대한 반대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최초의 텍스트들에는 나타나있지 않다. 성경 텍스트에 우연히 첨가된 필사자의 주석을 지적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죠지 래드의 말을 들어보자.

 

"성부, 진리, 성령인데 이것을 증거하는 이가 셋이다"(요일 5:7, 8 AV) 이것에 관한 증언을 빠뜨렸다는 이유로 Easmus 자신이 비난을 받게 되었다. Easmus는 자신을 변론하여 말하기를 Latin Vulgate에 있는 이 말은 자기가 알고 있는 그리스어 사본에는 아무데도 없었으며 단 한 개의 그리스어 사본에서만 발견된다 해도 그의 후판에 그것을 집어 넣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같은 사본이 나왔을 때 Easmus는 그의 약속을 이행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흠정역에 이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이 그리스어 사본은 옥스퍼드에 있는 한 수도승이 Latin Vulgate에서 그 말을 뽑아 다 쓴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 천개의 그리스어 사본에 이 말이 있는 것은 단지 셋 뿐이며 그 연대는 12세기부터 13세기, 그리고 16세기이다. Erasmus의 신약의 다른 열 두 개의 구절에는 그리스어 사본의 증언의 뒷받침이 없는 부분이 있다."

 

장두만 교수

"사본상의 증거가 분명한데도 의도적으로 그 구절을 빼먹었다면 어떤 비난이라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NASA나 NIV번역자들이 KJV에 있는 일부 구절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사본상의 증거로 볼 때 원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필자들이 나중에 포함시켰다는 증거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시킨 사람들이 더 큰 비난을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목회와 신학 98. 6)

이 외에도 합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원문비평학적으로는 논할 구절이 많지만 원리는 같기에 지면상 한 예로 그치고자 한다. 개역 성경이 말씀을 삭제했다는 대담한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은 무모하고 무지한 주장에 불과하다. 오류가 있을 수 있는 한 인간이 편집한 사본을 마치 원본인 것 마냥 취급하고 또 그것을 한 번 더 번역한 KJV을 우상시 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4. 이송오 목사 혼자 13년간 번역했다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무오한 최종권위라는 주장에 대해

(교회와신앙 95. 2월호에서 이송오 목사의 인터뷰 내용)
▶ 한글 킹제임스성경은 누가, 얼마동안 번역을 한 것인가?
"나 혼자했다. 13년 걸렸다.

▶ 그렇다면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 100%로 번역한 것인가?
"그렇다."

▶ 한글 킹제임스성경에도 오류가 있다는 말이 있다던데?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시키려는 말이다."

▶ 한글 개역성경을 사용해도 원문과 교리적으로 큰 차이점은 없다는 의견도 많이 있던데.
"누가 그런 말을 하는가. 그런 거지같은 00의 말을 듣는가?"

▶ 만약 한글 킹제임스성경에 잘못된 부분이 발견된다면 수정할 용의가 있는가?
"물론이다."

▶ 그 의미는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불완전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고칠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인가?
"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이 있다. 유죄가 판명될 때까지 무죄라는 말이 있다. 성경에 쓰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한글 킹제임스 성경보다 훨씬 좋은 성경을 번역해 냈다고 하자. 그 때까지는 이것이 최종권위이다."

 

이송오 목사는 한글 킹제임스 성경 발간 서문에 번역의 표준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구약의 번역은 처음부터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을 영어로 가장 잘 전수한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하고, 신약은 처음에 희랍어 표준원문에서 직역했으며 제 3판을 킹제임스성경과 대조하면서부터 킹제임스성경에 철저하게 어휘를 맞추었고, 구약의 어휘는 히브리 맛소라 원문과 비교, 투영시킴으로써 히브리어, 희랍어,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는데 불가피하게 생길 수 있는 언어의 간격을 좁히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굳이 번역이 원칙이라고 내세워 틀을 먼저 짜놓고 끼워 넣는 식의 번역을 탈피하였고, 표현기법에 있어서 이전 것보다 더 낫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선택하였다. <개역한글판> 성경으로 익숙해져 버린 문화적 및 전통적 통념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성구사전(Young's Concordance)의 어휘만을 획일적으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본 성경 어휘로 새로운 성구 사전을 만든다는 자세를 취하여 어휘의 통일성과 더불어 의미의 전달에도 중점을 두었다."(한글 킹제임스성경 발간 서문)

 

위의 말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자신의 표현대로 '번역의 기준도 없이' 이것 저것 뒤섞어서 자신의 판단대로 노력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어 킹제임스에서 100% 번역했다는 그의 말은 이내 자신의 말로 거짓임이 판명된 것이다.

 

그가 혼자 원칙없이 편의주의적으로 번역한 이 성경이 어떤 부분이 오류인지 나열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욥기 29:3이 원래 "촛불"(candle)인데 단어 개역한글판성경(NASV)에는 "등불"(lamp)로 바꾸어 놓았으니 변개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준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대민족이 초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등불로 더 정확히 번역해 놓은 것을 변개라고 말하는 정도니 다른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이송오 목사는 영어 킹제임스가 이상한 듯한 부분은 자기 나름대로 고치고 영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역한 부분도 많다.

결론적으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것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도 아니고 헬라어 원문에서의 새로운 번역도 아니다. 그것은 번역으로서는 별 가치가 없는 중역(重譯)에 불과한 것이다. <말씀보존학회>사람들이 번역을 하려면 구약은 MT(Masoretic Text)에서 직접 번역을 하고, 신약은 TR(Textus Receptus)에서 번역했어야 할 것이다."(장두만 교수)

 

▶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했던 사람들이 보았던 원본을 가지고 한국사람이 한글로 직접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 무슨 수단을 쓰든지 수용언어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이것이 수용언어로 되어 나온 것이다. 우리 나라도 히브리어 학자나 헬라어 학자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이제 우리 성경에서 틀린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그 단어가 왜 여기에 쓰여졌는가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줄 수 있다. 이 나라에 학자들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는 것이다."(잡지, 교회와신앙, 95, 2)

 

결론적으로, 한글 킹제임스성경은 이송오 목사가 개인적인 의욕을 가지고 이것저것을 사용해 편집해 만든 조잡한 번역판인 '이송오 버전(Version)에 불과하다. 이 성경을 유일하게 영감된 성경으로, 고칠 것이 전혀 없는 성경으로 말한다는 자체가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100년 전통의 권위있는 성서공회를 무참히 깍아내리며 자신의 번역만이 참 성경이라고 하는 그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라 말해도 과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러기에 아래의 말은 우리가 매우 위험스럽게 여겨야 할 말이다.
"이제 성경이 나온다. 참 하나님의 말씀이 이 달에 나온다. 참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고대했던 그 성경이 나온다. 그때까지만 사탄의 사람들이 사탄의 성경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94년 4월호,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중)

 

 

Ⅳ. 경계해야 할 말씀보존학회의 위험한 주장들

1. 재창조설(再創造設, 중조론, The Gap Theory)주장

재창조설 혹은 중조설이란 우주가 2차에 걸쳐 창조되었다는 이론으로서 재창조론에 의하면 온 우주가 창조되었으나 천사가 타락하는 이변적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지구를 심판하신 결과 어둠과 물로 뒤덮인 혼돈과 공허가 생기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6일동안 다시 재정비 창조하게 되었다는 설(設)이다.

 

▣ 창세기 1:28절의 오역을 통한 재창조설 주장
▷ 개역한글 성경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에 충만하라
▷ 한글 KJV(이송오 번역) : 땅을 다시 채우고
▷ 영어 KJV : and replenish the earth

이송오 목사의 정신적 뿌리인 피터 럭크만은 '배교의 결정판 NIV'란 책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다시 채우라"(replenish)를 '채우라'(fill)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아담 이전에 있었던 문명에 대한 기억을 말끔히 없애 버린다.(욥 38:7절을 보라.) "다시 채우라"는 말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담이 채우기 이전에 이미 뭔가 채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시편 82편의 "신들"(gods)이며, 창세기 6:1과 욥기 1:6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는 천사들이다.

 

창세기 1:1에서 하나님께서 완전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을 때 이들 천사들은 땅 뿐 아니라 온 우주를 채웠으나, 사탄의 타락과 함께한 이들의 타락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물로 심판하셨고(벧전 3:5, 6), 그 결과로 온 우주는 "혼돈" 상태에 있게 되었다.(창 1:2). 그 후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3부터 시작하는 재창조를 하셨고, 그 때 아담은 이전에 채워 있었던 땅을 "다시 채우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NIV는 "다시"를 빼버림으로 이 진리를 가린 것이다."(피터 럭크만, 배교의 결정판 NIV, p. 29)

 

피터 럭크만이 영향을 받은 클라렌스 라킨(Clarence Lakin)이라는 인물은 그의 책 <세대적 진리>에서 창세기 1:1절을 아담 이전의 무한한 과거의 일로 보았다.
"태초에 땅이 무슨 이유로 공허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담 이브의 타락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죄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클라렌스 라킨, 세대적 진리, p. 50)

 

본문 창세기 1:28절에서 문제가 되는 단어는 히브리어 '말레'이다. 이 단어의 해석에 대한 의견을 장두만 교수에게 들어본다.
"Brown-Driver-Briggs의 히브리서 사전에 의하면, 이 단어의 의미는 '채우다'(fill), '가득하다'(be full)이다. 좰구약원어사전좱(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이나 퀼러 바움가르트너(Koehler Baumgartner)의 히브리어 사전에서도 동일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레'라는 단어는 '다시 채운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냥 '채운다'는 의미다. 따라서 영어 KJV는 분명한 오역이고, 한글 킹제임스는 영어 KJV의 오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 개역판은 바르게 번역하고 있다."(목회와 신학 98, 7)

 

재창조설 혹은 중조설은 현대 시조라고 할  수 있는 Thomas Chalmers가 1814년에 발표한 것으로서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성경적 근거가 희박하고 성경에 모순되며 성경 해석자의 권한을 벗어난 월권행위로, 받아들일 수 없는 비성경적 교리이다.(참조, 유재원 교수, 창세기 강해 1장, p. 27)

피터 럭크만은 KJV의 오역을 의심해 볼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바르게 교정된 성경을 악한 무리에 의한 고의적 변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적인 안목의 결여와 KJV을 무오하다고 여기는 잘못된 성경관이 빚어낸 그릇된 주장인 것이다.

 

 

2. 칼빈주의를 이단으로 보는 견해

이송오 목사는 한국의 대다수 복음주의적 교단들이 칼빈주의적 믿음, 다시말해 성경의 가르침을 정리한 칼빈주의 5대교리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의 속마음은 칼빈주의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 있다고 할 만큼 칼빈주의를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그 파장이 어떠할 것인지를 알아서인지 그는 그의 서적에서 모호한 표현으로 비판을 빗겨나가려고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칼빈주의를 이단으로 보고 있는 피터 럭크만의 주장과 같음을 곧 알 수 있다.

 

이송오 목사의 견해에 앞서 피터 럭크만의 책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칼빈주의자인가>라는 책에서 인용해 보고자 한다. 그런 이후 이송오 목사의 주장을 살펴본다.

"극단적 칼빈주의란 스위스의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이 가르친 교리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말한다. 칼빈주의의 주요한 교리들은 영어 머릿글자를 따서 이른바 튜울립(TULIP)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그 5대 교리들의 내용은 비성경적이며, 따라서 '칼빈주의'는 하나의 이단으로 분류된다."(위의 책 p. 13)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극단적 칼빈주의"는 칼빈이 가르친 어떤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주의의 5대 교리는 비성경적이며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고 철학적으로도 엉터리이다. 이제 우리는 이 사실들에 대해 하나 하나 살펴보고자 한다."(같은 책 p. 17)

 

럭크만은 위의 책의 도입부에서 칼빈주의 5대 교리를 강조하는 것을 "극단적 칼빈주의"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칼빈주의 5대 교리는 비성경적이고 엉터리라고 말했으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책을 썼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TULIP으로 요약되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칼빈주의자가 아니라고 해야 하지 온건한 칼빈주의자니, 강조의 문제니 하는 것은 비난을 염두에 둔 말의 유희일 뿐이다. 만약 럭크만의 주장대로 칼빈주의가 전혀 비성경적이고 엉터리라면 온건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철저히 배격해야 할 것이지 TULIP을 믿지 않는 칼빈주의란 이치상 이미 칼빈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럭크만은 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의식하며 그것은 인정할 만한 것처럼 글을 써 나갔다.
"우리는 존 칼빈이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존 칼빈에 대해 말할 때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지각과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의 종교개혁자였다는 것과 사람이 한 번 거듭나면 다시 타락하여 멸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이었다는 것 외에 인정할 만한 것은 별로 없다. 그 밖에도 인간이 행위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행위에 따라 구원이 지켜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 점에 있어서만은 칼빈을 높여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에 그를 인정할 만한 점이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위의 책 P. 14)

 

"그러나 우리는 그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전체적으로 암시하는 바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서만은 칼빈주의자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위의 책 p. 15)

하지만 '성도의 견인'을 약간 인정하는 듯한 제스처도 본론적인 비판에는 역시 대상이 되는 것을 발견한다.
"칼빈주의 다섯번째 교리인 '성도의 견인' 역시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라는 성경적 교리와는 상관없는 비성경적인 교리임을 알 수 있다."(위의 책 p. 64)

그럼 이송오 목사는 어떤가?


"필자도 칼빈주의자이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구원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처럼 나는 구원을 잃어버릴까봐 겁먹지 않으며 구원을 잃어버릴까봐 새벽기도하러 가는 등 행위를 붙잡지 않는다."(완벽한 교회는 없는가, p. 204)

하지만 이 말을 우리 관점에서 오해하면 안된다.


"그러나 극단적 칼빈주의 이론은 성경적으로 비추어볼 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극단적 칼빈주의는 성경으로 조명해 볼 때 이단 교리임이 지금부터 200년 전에 이미 밝혀졌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교리를 한국의 장로교회들은 기본교리로 삼아왔는가? 장로교회 교리들로 잘못 배운 사람들이 성도들을 성경으로 가르치지 않고 칼빈주의로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위의 책 p. 205)

이송오 목사는 칼빈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이렇게 부언한다.


"이러한 비성경적인 교리는 성경을 잘못 안 사람들이 날조한 것이지 성경의 교리가 아니다…. 이 교리가 왜 이처럼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는가? 그것은 초창기 선교사들이 퍼뜨려 놓은 씨앗을 그 다음 세대들이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교리가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꼬집어 헤쳐낼 수 있는 성경이 있어야 했는데, 한글 개역 성경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정확한 성경이 아니었다."(위의 책 p. 206)

한 마디로 럭크만과 이송오 목사가 주장하는 극단적 칼빈주의란 용어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에 대한 보호막이며, 그들이 주장하는 칼빈주의자는, 비성경적이며 날조된 것이 분명한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를 믿지 않는 칼빈주의인 것이다.

지면 관계상 이송오 목사의 칼빈주의에 대한 조야한 이해를 다 적을 수는 없지만 한 구절을 든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적 타락이다. 인간은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는 것이 타당한 이론인가?
둘째, 무조건적인 선택이다. 지옥갈 사람과 천국갈 사람을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았다고 하는 것은 과연 성경적인가? 이 확정되어 있다면 전도와 선교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셋째, 제한된 속죄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받는다.
넷째,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이다…. 믿고 영접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결정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주권으로 강제로 믿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칼빈주의자인가, 발간사에서 이송오 목사)

이송오 목사의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다. 인간의 의지는 타락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하나님은 예지에 근거하여 조건적으로 선택하신다는 것, 믿음은 오직 인간의 의지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 그리스도의 구속은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선택할 때에만 유효하다는 것, 하나님의 은총은 거스릴 수 있다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그의 주장은 전형적인 알미나안주의적 견해이다.

그러나 우리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는 양립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책임과도 양립될 수 있음을 믿는다.
우라 교단은 1619년 도르트 회의에서 고백된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참되다 믿으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성경적이라 믿으며 고백하기에 칼빈주의를 이단으로 여기는 말씀보존학회의 이단적 가르침을 배격해야 할 것이다.

 

럭크만의 주장을 다시 한 번 본다.
"우리가 칼빈의 저서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주권적인 은혜"에 이야기 할 때 대부분의 경우는 우리는 쓰레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럭크만의 위의 책 p. 43)

"칼빈은 심오한 성경학자가 아니었음을 기억한다. 그는 "성경에 관한 한 이단자"였다.(위의 책 p. 44)

3. 보편적 교회를 부정하며 성경침례교회만이 성경의 교리를 실천하는 교회라는 주장

말씀보존학회가 주장하는 성경의 교리를 실천하는 이른바 '신약교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주장하고 있다.

 

1) KJV만을 사용하는 독립침례교회
"교회가 운영되는 데 있어서 그 교회가 완전히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고 다른 것에 눈치를 보게 된다면 그것은 독립교회가 될 수 없다." "신약교회란 성경대로 믿는 독립침례교회를 말한다." "신약 지역교회는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회중의 의사를 집약시켜 자치적이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교회를 말한다." "말로만 성경대로 믿는다고 하면서 <개역 한글판 성경>을 최종권위로 삼는 사람은 정하지 않는다. 그런 고백은 위선이요, 자기 기만이며, 그 사람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오염시키고 있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가 참다운 신약교회인가? 모든 것은 바른 성경으로 측정되어야 한다." "주님이 지정한 교회를 다녀야 하고 주님이 지정한 성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다."(완벽한  교회는 없는가 中)

 

결국 말씀보존학회의 눈으로 보는 한국교회는 <개역성경>을 쓰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는 교회다.

"한글개역 성경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성경으로는 신학적인 논쟁이나 교리적인 연구를 물론, 잘못된 이단교리와 논쟁할 수 없습니다.(말씀보존학회 연구원 조승규씨의 교회와 신앙 인터뷰 중, 95. 2)

 

"이 나라는 130여 년 동안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지내왔기에 사탄의 무법천지가 될 수 있었다. 지난 130여 년 동안에 이 나라에는 성도의 영적 깊이를 깨닫게 해주는 단 한 권의 책도 쓴 사람이 없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30년 동안 이 나라를 영적으로 부흥시킨 부흥사도 단 한 사람 나온 적이 없다."(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3호 p. 2)

 

▶ 그런 교회(신약교회)가 한국에는 어디 있는가? 이곳 성경침례교회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이곳은 한국에서 최초의 신약교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한글 킹제임스성경을 가지지 않고서는 이런 교회가 불능하다는 것인가?
"물론이다. 한글 킹제임스성경은 변개되지 않은 성경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최종권위를 가지고 있다."(이송오 목사, 교회와신앙 인터뷰, 95. 2)

 

2) 성경침례교회는 교회의 전통적인 절기, 새벽기도, 철야기도,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비성경적인 것으로 여긴다.
"세 가지 절기, 즉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을 대략 살펴 보았다. 이 세가지 모두 성경적 근거가 없다. 이 절기들이 그리스도인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새벽기도나 금요철야, 금식기도와 더불어 사람이 만든 규례를 놓고, 지키지 않으면 가책을 받게 하여 행위를 요구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를 속박에서 풀어주셨는데 그 반대로 다 묶으려고 하는 세력은 누구이겠는가?(완벽한 교회는 없는가, p. 111)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헛소리를 하게 되어 있고 그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짓이 수치스런 일인지 아닌지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아직 유치한 수준에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예배 때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 하거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주기도문과 사도신경만 암송할 줄 알면 마치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인정해 주는 전통은 카톨릭 전통이다. 제도교회들이 이 전통을 모방해서 쓰고 있으나, 이런 전통은 비성경적 관습입니다.(위의 책, p. 97)

 

3) 침례만을 세례로 인정하며, 유아세례는 인정하지 않는다.
"구원받지도 않은 사람에게 물뿌려 교인을 만드는 행위는 순전히 콘스탄틴에게서 나온 카톨릭의 방법인데, 개신교회에서 분별없이 받아들여 주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교회를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의 교회가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라고 생각한다면 물뿌리는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아기들에게까지 물뿌림으로써 교인을 만들고, 더 나아가 예정된 자로 취급하는 것은 이단적 교리이며, 그 결과는 그로 하여금 지옥에 가게 하는 것이다."(위의 책, p. 113)

 

4)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는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
말씀보존학회에서 발행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는 간증문이 실리는데 하나같이 KJV을 사용했기에 깨달을 수 있다는 류의 내용들이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열심히 성경공부도  하고…. 그러나 나에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한 구절도 없었기에, 내 마음이 늘 공허했고, 결국은 교회 출석을 포기하게 되었다…. <한글 킹제임스성경>을 가지고 진리의 지식을 배우는 순간부터 성령님께서는 하나씩 하나씩 말씀에 조명을 해 주시며 나로 하여금 말씀을 깨닫게 하셨다."(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75호)

 

5) 교단에 가입하지 말라
이송오 목사는 교단에 가입한 교회들을 "제도교회"란 단어로 매도하며 교단을 가입하지 말도록 종용하고 있다.

"제도교회란 글자 그대로 교회가 제도화되어 성경은 뒤로 한 채 어떤 강령이나 신조 같은 것을 정해 두고, 그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괜찮게 여기는 교회를 말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제도 교회의 본보기이다. 소위 "믿음의 원칙"이라는 것을 만들어 넣고 그것들만 믿거나, 믿는 체하면 된다….

이런 카톨릭 방식을 따른 교회 운영을 그대로 전수한 것이 개신교회들이며 이들 역시 제도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제도화된 교회들은 대개 어떤 "교단"에 속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데(엡 5:23), 만일 교회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군림하는 셈이다."(완벽한 교회는 없는가, pp. 23~25)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인정하신 기구는 지역교회 밖에 없다…. 지역교회가 제도교회와 다른 것은 일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위의 책, p. 31)

"소신있는 목회를 하려면 교단에 가입하지 말라. 교단에 가입하면 교단의 종이 된다."(위의책, p. 177)

6) 이 땅에 교회는 없었다.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에 따르면 이 땅에 성경침례교회가 나오기 까지는 교회가 없었던 나라이다.
"성경대로 믿는 지역교회의 요건- 첫째, 바른 성경이 있어야 한다…. 둘째, 성경을 기초로 한 정통신학을 공부한 일꾼이 교회를 세워 이끌어나가야 한다…. 셋째, 어떻게 지역교회를 운영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 나라에는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요건을 갖추지 않음으로 성경대로 믿는 지역교회가 설립되지 않았다."(위의 책, pp. 188~185)

 

"우리 나라 교회들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교회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인하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으며 왜 아직껏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 것일까? 먼저 성경대로 믿는 교회가 우리 나라 신약교회 사상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위의 책, p. 19)

 

7) 성경침례교회외의 다른 교회는 가지 말라
말씀보존학회 연구원인 조승규 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만약에 급박한 일이 생겨 주일을 지방에서 보내야 될 경우, 이 곳의 신도들은 어느 교회를 가는가? 주변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가?
-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있기 때문에 나 혼자서 예배를 드린다.
▶ 다른 신도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교회와신앙, 95년 2월호, p. 125)

이송오 목사는 성경대로 믿는 침례교회(참교회)의 특징을 열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성경(KJV)을 거부하는 교회들이나 선교단체 또는 어떤 사람들과도 제휴하지 않는다."(완벽한 교회는 없는가, p. 29)

 

 

4.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는 주장

"구약의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는 은혜'에 의해서 새롭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는가? 혹자는 "성령께서 사람에게 임하여, 그를 주장하고 그를 살려내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령은 노아에게 임하지 않았다. 성령은 히스기야나 아사에게도 임하지 않았다. 노아나 모세, 다윗, 이삭 또는 야곱을 주장하신 "저항할 수 없는 은혜"라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도 않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지도 않았으며, 새롭게 되지도 않았고, 영적으로 할례를 받지도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지도 않았고, 양자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있던 상태에서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에 위해 구원받은 것이다."(피터 럭크만,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칼빈주의자인가, p. 44)
참으로 위험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럭크만과 이송오 목사가 세대주의적인 성경해석의 관점을 철저히 따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5.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께 순종치 않는다 해도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는 주장
말씀보존학회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얻기 때문에 행위 운운하거나 순종을 해야 한다는 것을 믿음과 연관시키고 있지 못하다.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관계로 믿음과 순종은 별개의 것으로 말한다. 이것은 한글 킹제임스성경의 팜플렛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대로 옮겨본다.

 

요한복음 3:36
▶ 한글 킹제임스성경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 개역한글판성경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차이점 : "개역성경은 이 구절에서 행위를 통한 구원을 가르치고 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예수님께 순종치 않는다 해도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개역성경의 번역은 정확하다.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도 "disobey"로 번역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문 자체가 믿지 않는 것을 거역하는 것, 불순종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반절에 분명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고 말씀하고 대조하여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를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순종치 않는 자가 믿지 않는 자이지 믿음 따로 순종 따로인 믿음도 세상에 있는가?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이송오란 인물의 성경이해 수준을 극명이 볼 수 있다. KJV의 단어를 직역하며 그 의미까지도 곡해하고 있다. 본문의 순종치 않음이 믿지 않음임은 누가 보아도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다. 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고, 성경으로 차마 인정도 안하는 공동 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이 오히려 그들이 좋아하는 번역을 따르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 공동번역 :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하느님의 영원한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 현대인의 성경 : 누구든지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지만 아들을 믿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이송오 목사는 성경속의 "의미일치" 조차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성향으로 갖고 있는, 순종이란 단어는 행위구원을 의미한다는 선입견과 전제를 따라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기존의 교회를 행위로 구원받는 가르침을 전파하는 교회인양 매도한 것이다.
상식적인 사람 누구도 이 본문을 이런 식으로 오해하지 않을 것인데 본인은 그렇게 받아들인다니 얼마나 생각이 왜곡되어 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면관계상 이송오 목사가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많은 부분을 생략하지만, 이송오 목사의 성경을 보는 시각이 대개 이러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개역성경을 사탄이 교묘히 변개시켰기 때문에 본인이 그 교묘히 변개시킨 부분을 찾아내야 한다는 사명으로 상식적인 수준의 이해를 파괴하고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서 괘변을 늘어놓는 특징이 있다.

 

6. 이 땅에는 성경을 가르칠 신학교도 교수도 없다는 주장

글 초두에서 살펴본 대로 이송오 목사는  세계를 통틀어 성경대로 가르치는 신학교는 미국의 펜사콜라 신학교(학장:피터 럭크만)과 한국의 펜사콜라성경신학원 두 곳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럭크만에 대해서 "성경에 어떤 단어가 왜 그곳에 쓰여졌는가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럭크만 맹신을 드러냈다.

 

▶ 국내에 있는 기존의 신학교 중 추천한다면 어디인가?
- 모른다. 기존의 신학교에는 성경을 가르칠 사람도 없고 가르칠 성경도 없다.(교회와신앙, 95. 2)
"또 대부분의 신학교들은 <킹제임스성경>을 배격하고 변개된 성경을 사용하는 프린스톤, 에모리, 웨스트민스터, 풀러 등 신정통주의나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를 채택함으로써,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는 상이한 신앙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펜사콜라 신학교 홍보 팜플렛에서)

 

Ⅴ. 정리하는 말

말씀보존학회와 그 대표자인 이송오 목사의 주장은 살피면 살필수록 균형을 상실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상적으로는 미국 펜사콜라신학교의 피터 럭크만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고, 해석학적으로는 세대주의적 방법과 관점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전천년설을 주장하면서 헬라어 사본 중의 하나인 TR만이 유일한 성경이고 또 그것을 번역한 KJV, 또한 자신이 이것을 보고 13년간 번역했다는 한글 킹제임스성경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의 주장을 요약할 수 있다.

이 글의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이송오 목사의 주장이 터무니없고 그릇된 학문으로 교묘히 포장된 사이비적인 가르침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주는 것은 단순히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아닌 성경 자체에 대한 부정과 비판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이 마치 구원을 알려주지 못하는, 사탄이 변개하여 품에 안겨준 성경이라 말하며, 숨겨져 있는, 섭리로 보존된 성경이 "따로 있는 듯" 주장할 때, 평신도들 뿐 아니라 원문비평학에 익숙치 않은 목회자들까지도 미혹될 수 있다는 점이 대단히 위험하다. 특별히 비판의식이 높고 아직 성숙된 성경 이해가 없는 청년층과 교회에 대한 반항감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의 가르침이 전해질 때 미혹되기 쉽다는 점에서 개신교회와 목회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먼저는 성경 사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교단의 목회자들이 가져야 겠다.
성경은 주님이 주신 원문으로부터 많은 양의 필사본으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인쇄술이 없었던 시대에 한 복사본에서 또 다른 복사본으로 내려오는 동안 그 텍스트에 여러 가지 종류의 오류가 스며 들었다. 텍스트마다 조금씩 다른 것은 때로 신학적 중요성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성경의 의미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 복사상의 오류는 사소한 차이의 것이다. 띄어쓰기 오류, 오탈자, 필사자의 착오, 중간절 건너뜀 등등

 

"과거 두 세기에 걸쳐 사본들을 수집하고 비교하는 일을 해 온 본문 비평가들의 수고로 원문과 관련된 주요 의문들은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해결되지 않은 점이 있다 하더라도 기독교 역사나 교리의 근본적인 내용들은, 그것 때문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폴 바네트, 신약성경은 믿을 만한가, p. 56)

 

"믿을 만한 텍스트를 이룩하는 것은 과학적인 학문의 작업이다. 그렇다고 이 말이 하나님의 섭리의 손이 인간의 모든 역사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인물, 사전, 과정을 통하여 자기를 나타내셨고 그의 계시적인 말씀을 인간에게 주셨기 때문에 비평은 필요하다. 그리고 비평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는 역사적 차원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성경이 마술적으로 주어졌다면 문제는 좀더 간단하고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성경 비평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원본 비평은 묻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인가? 그것을 묻는다. 하나님의 말씀의 텍스트는 어느 것인가? 얼마 만큼 정확히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를 보이신 그 말씀을 재 구성할 수 있는가?(죠지 래드, 앞의 책, pp. 94~95)

 

결론적으로 우리는 과거 400년 전의 사본과 번역보다 훨씬 좋고 믿을 만한 헬라어 사본과 번역을 가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원문 비평학이 지금보다 발달되지 않았고 고고학적 연구가 미진하고 훨씬 이전의 사본이 발견되지 않았을 당시에 제작된 성경을, 더욱 정확해진 우위에 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KJV 외의 성경들을 모두 사탄의 작품으로, 쓰레기통으로 매도하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과 가르침은 비성경적임을 확인한다. 더더군다나 자격이 검증되지도 않은 한 개인이 개인 성향에 따라 여러 번역본을 짜맞추어 번역해 놓은 것을, 유일하게 섭리로 보존된 성경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송오씨의 표현대로 "또 다른 변개된 성경"을 생산해 내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개역성경을 쓰는 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말씀보존학회와 이송오 목사에 대해서 단호한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말씀보존학회에서 나오는 출판물에 의해 더 이상 말씀이 불신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성도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특별히 신학을 알지 못하는 지성인과 일부 목회자들에게 말씀보존학회의 논리가 허황된 신빙성을 가지고 전파되지 않도록 교육이 필요할 때다.

 

믿음이 없는 것을 탓하지 않고 믿음이 없는 이유는 바른 성경을 못 가졌었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논리에 젊은이들이 미혹당하지 않도록 한층 젊은이들의 신앙교육도 힘을 써야 한다.

자신이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성경이, 완전하지만, 유죄가 판명될 때까지는 무죄라며 이상한 논리를 펴는 이송오 목사, 성경을 가지고 전혀 비성경적인 주장을 펼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어지럽히는 말씀보존학회에 이제 한국교회와 교단이 유죄를 선언할 때가 된 것이다.
(월간<교회와신앙> 1998년 11월호)

출처
(월간<교회와신앙> 199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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