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남유다인들을 2차와 3차에 걸쳐 귀환시켜주고 성과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한 바사(페르시아)제국 아닥사스사왕

by 갈렙 posted Jul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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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마누스 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

 

2018. 4. 18. 23:56

 

 
 

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는 할아버지인 다리우스 1세 황제의 통치시기에 황태자인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의 셋째 아들로태어났다. 다른 창작물에서는 아하수에로에게 폐위되고 참수 당한 왕후 와스디(에스더1장)가 어머니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와스디는 아르미안의 공주였을 당시 페르시아의 귀족 청년 리할 오타네스와 사랑에 빠졌으나 여왕 계승자인 언니 레 마누아가 리할을 선택하자, 리할의 사촌인 크세르크세스와 결혼했었다는 사연을 '풍운아 크세르크세스'편에 적었었다.
호사가들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리할의 아들이라는 설을 펴기도하는데...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 아닌 사료에 의해 전해 내려 오는 전설이므로 그냥 참고만 하시길....
아버지 크세르크세스 1세가 국내의 권력 항쟁에 휘말려 호위대장 아르타바노스에게 암살되자 주모자로 지목된 형 다리우스를 찾아내 살해하고 즉위하는데 즉위 후에는 아르타바노스도 제거한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왕위에 오른(기원전 464년) 다음해(463년)에 제국의 국경 동부 박트리아와 이집트, 리비아에서 동시에 반란이 일어난다.  이에 아테네가 호응하고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은 200척의 선단을 파견해 이집트를 지원하면서 키몬이라는 사령관을 내세워 지휘케 하는데 엎치락 뒤치락하던 끝에 선박 50척과 병사 6,000을 잃었으나 키몬은 승리한다.
다리우스 1세 때부터 이어진 페르시아 전쟁에 지친 양측은 급기야 평화협정을 맺어 전쟁을 종식하기로 한다. 
마라톤에서의 승전 장군인 밀리아테스와 트라키아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키몬은 기원전 478년 사령관으로 선출되어 테미스토클래스를 대신하여 살라미스 해전 후의 페르시아에 대한 그리스 해방전쟁 수행의 중심이 되었고 기원전 449년 키프로스 원정 중에 사망한다.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래스


박트리아와 이집트에서의 난을 평정하고, 아테네와도 화평하며 제국 내의 내란도 평정하였으나 그와 함께 페르시아 제국의 융성기도 끝이 난다.
교양이 높고 문화에 조예가 깊어 치세 중에 성읍을 건축하는 등의 노력을 많이 했는데, 페르세폴리스의 '100개의 기둥이 있는 방'의남문에 낙타에 앉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인 테미스토클래스가 스파르타와의 갈등으로 '페르시아 왕과 내통하고 있다'는 스캔들에 휘말려 도편추방 당하자 부친인 크세르크세르는 그의 망명(기원전 459년)을 받아 들였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역시 테미스토클래스를 극진히 보호한 너그러운 왕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원전464에 재위에 올라 기원전 424년까지 40년간 페르시아를 통치한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오른쪽 팔이 왼쪽 팔보다 유난히 길어 롱기마누스(긴 팔)라고도 불리었다.

아르카크세르크세스 왕 앞의 테미스토클래스


성경에서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 왕)
제 1차 바벨론 포로 귀환이 있은 지 79년 후인 기원전 458년에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스7:11-12, 21. 느8:9, 12:26)의 지도하에 제 2차 귀환이 이루어지는데 이때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통치 7년째이다(스7:7-9, 스7:10)
느헤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 때 바사를 다스린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중단시켰던 그는 느헤미야의 탄원을 받아 들여 느헤미야로 총독을 삼아 성벽 재건에 임하도록 지시를 내리는 한편, 에스라 선지자에게 은 100달란트(3,400kg), 밀 100고르(22,000리터), 포도주는 100밧(2,200리터), 기름 100밧(2,200리터), 소금은 무제한으로 허락한다( 스7:22)
고맙게도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에스라에게 "종교 지도자로서 율법을 가르치라"는 명령과(스7:25), 행정 지도자로서 왕이나 유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큰 권세까지 부여 한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통치 20년에 이르러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었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불 탔다는 소식을 듣고 울며 금식하는데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함을 읽은 왕은 이유를 묻는다. 이를 들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느헤미야를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3차로 포로를 돌려 보내며(기원전 444년)성전 재건을 할 수 있도록 건축 재료까지 지원했다는 기록이 느헤미야서에 전반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박윤식목사님의 구속사 시리즈 5권에서는 ...
1차 귀환은, 성전을 건축하게 하심으로 유다 백성을 구속사의 주역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
2차 귀환은, 에스라 선지자의 개혁을 통하여 내면적인 신앙회복을 이룩하고
3차 귀환은, 성벽 재건을 통하여 외부로부터 공격을 차단하고 개혁과 부흥을 이루게 된다고 정리해 주셨다.

키루스 원년 이듬해인 기원전 537년에 유대인 포로 1차 귀환이 있은 후 79년 동안 포로 귀환이 끊어졌으나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르) 왕의 첫번째 아들은 부친의 암살에 연루되어 제거당하고 셋째 아들인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에 이르러서야 페르시아(신바빌로니아)에 남아 있던 유대인을 돌려보내게 된다.
기원전 605년 바벨론 네브카드네자르(느브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잡혀 가기 시작해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왕이 기원전 444년에 마지막 남은 포로들을 3차로 돌려 보내기까지 장장 161년이 걸렸다.
세계사를 통해 내가 느낀 건, 페르시아라는 당시 세계 인구의 절반을 다스렸던 제국의 역사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키루스 대왕이 일어나서 바벨론을 침략하고 지배하면서 유대 민족의 귀환이 시작되었고 기원전 444년 3차 포로가 귀환하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죽고 난 후 이 거대 제국은 계속되는 혼란과 혼돈 속에서 급격히 국력이 기울어 113년 후인 기원전 331년에 이르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지배당함으로 헬라제국시대(배와 넓적다리 놋)가 열리게 된다.

예언하신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셨고 세계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지금, 세계사를 어떻게 작정하시고 써 나가고 계시는걸까?
나는...
우리는...
그 뜻 앞에서 어디에 서 있고 어떻게 쓰임 받을지 숙연해질 뿐이다.

다음 : 네브카드네자르

참고 - 도서출판 휘선, 구속사 시리즈 5권
          헤로도토스
          지식백과
          나무위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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