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출애굽시대의 애굽왕 바로들

by 갈렙 posted Nov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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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8에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한 시기는 애굽의 제 18왕조의 통치 시기를 가리킨다. 그 이전에 애굽을 통치했던 왕조는 애굽의 북동쪽에서 온 셈족 계통의 힉소스 왕조(Hyksos, 애굽 15·16·17왕조)였다. 힉소스 왕조는 타민족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사용했다.

 

힉소스 왕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들어온지 약 300여 년이 지난 주전 1580년경에, 애굽 제 18왕조의 아흐모세 1세(Ahmose, 주전 1584-1560년)에 의해 무너졌다. 제 18왕조는 순수한 애굽 본토인으로서, 이방인 힉소스인의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요셉의 모든 업적까지 말살하고 토착왕조의 지배를 확립하여 나갔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이 18왕조 가운데 세 번째 왕인 투트모세 1세(Thutmose I, 주전 1539-1514년)이다. 투트모세 1세는 강한 탄압 정책을 펴 히브리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노동을 시켰다. 심지어는 새로 태어나는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져 모조리 죽이는 민족 말살 정책까지 강행하였다.

 

이러한 때 레위지파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모세가 태어났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웠으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 상자에 모세를 넣고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여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었다. 모세는 바로의 딸에게 발견되어 건짐을 받는다. 모세를 나일 강에서 건져 낸 바로의 딸이 바로 투트모세 1세의 딸인 하쳅수트(Hatshepsut)이다.

 

* 구속사 시리즈 2권 "잊어버렸던 만남" 188-19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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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쳅수트 황금완장│사진 출처 : 평강 성서유물 박물관 ]

 

지금까지 이름이 밝혀진 이집트 파라오들의 숫자는 170여 명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여성 파라오가 바로 하쳅수트이다. 하쳅수트라는 이름 자체가 “여성들 중에 가장 으뜸인 자”라는 뜻이다. 하쳅수트는 투트모세 2세와 결혼하였으나 투트모세 2세는 10년을 통치(주전 1514-1504년)하고 후계자 없이 요절하였다. 투트모세 2세가 양자 삼은 투트모세 3세가 왕위를 계승하지만 당시 투트모세 3세는 불과 9-10세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카리스마있고 왕위계승에 절대적 영향력을 지닌 하쳅수트가 섭정을 하게 된다. 훗날 하쳅수트는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올라 22년간 통치하였다(주전 1504-1482년).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위해 부르심을 받던 주전 1447년 모세는 80세였으므로(참고-출 7:7) 그는 주전 1527년에 태어났다. 하쳅수트가 왕위에서 물러난 것은 주전 1482년으로 모세 나이 45세 때이다. 모세가 40세 때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므로” 자기 민족을 괴롭히던 애굽인을 쳐 죽였다. 이 때문에 모세는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가게 되었다. 만약 모세가 5년만 기다렸다면 하쳅수트의 아들로 자란 그는 하쳅수트가 물러난 후 저절로 애굽의 왕이 될 수도 있었다. 자연히 하쳅수트의 양자였던 투트모세 3세와 모세는 왕좌를 사이에 둔 경쟁관계였을 것이다. 그래서 투트모세 3세는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세를 죽이려 했다.

 

애굽왕들과_모세와의_관계도.jpg

 

[ 애굽 왕들과 모세와의 관계도 ] 

 

투트모세 3세 후에 아멘호텝 2세가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이 아멘호텝 2세가 출애굽 전에 있었던 10대 재앙을 모두 겪은 왕으로 마지막 10번째 재앙에서 장자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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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파라오의 역사 도표│전체 도표는 하단 첨부 파일 "이집트 왕조의 역사"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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