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등장하는 사탄의 개념

by 갈렙 posted Jan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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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등장하는 사탄의 개념

 

 

 

사타나스 사탄 Satan, 대적자 adversary.

 

 

 

1. 구약성경의 용법.

 

 

명사 사타나스는 히브리어 사탄의 음역이며, '악한 상대, 적, 대항자, 대적자, 사단'을 의미한다. 70인역본에는 사타나스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으며, 사탄만 3회 나온다(왕상 11:14; 왕상 11:25; 왕상 11:23).

70인역본에서 히브리어 사탄을 디아볼로스(고발자, 참소자, 비방자)로 번역했다. 여기서 정관사가 붙어서 '그 사탄'이다. 이것은 그가 천상과 지상에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하나님의 대적자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원래 '아침의 아들 계명성(참조: 사 14:12), 기름부음을 받은 덮은(하나님의 보좌를 보호하는) 그룹(참조: 겔 28:13-18)'으로 불리워진, 하나님의 천사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과 필적하고자한 교만으로 말미암아 정죄되었고(딤전 3:4; 사 14:12-15) 사탄이 되었다.

 

 

사탄은 아담의 타락 배후에서 유혹한 자이다(창 3:1 이하; 창 3:15; 롬 16:20). 사탄의 타락이 이 유혹과 동시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짙다(참조: 창 1:31에 보면 피조물의 완전성이 아직 손상되지 않았다). 사탄의 타락의 때가 언제이든 그 때 이래 그는 그의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여 왔다(요일 3:8).

 

 

그러나 그의 지위 상실에도 불구하고 사탄 곧 마귀는 여전히 계속하여 지상에 실력을 행사하고 핫사탄(고소자, 욥 1:9; 욥 2:4; 슥 3:1)로서, 또는 '한 영'으로서(왕상 22:19-22) 신전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하여 비평가들은 핫사탄의 개념을 '기소 대리인, 검찰관'의 역할에 제한시켰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구약성경 전체의 증언은 하나님을 향한 사탄의 변함없는 적대 행위와 인간을 향한 적의를 분명히 보여준다(욥 1:11; 욥 2:3-5).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죽음 및 부활, 승천과 더불어 하늘로부터 추방 당했으며, 더 이상 형제들을 참소할 수 없게 되었다(요 12:31; 계 12:10). 그러나 그는 여전히「지상」의 '공중에 권세 잡은 자'로서 역사한다(엡 2:2).

 

 

사탄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원수이다. 사탄은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방해하고, 또 방해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제한 당하며, 단지 허락받은 일만 행할 수 있다(눅 22:31; 눅 22:32; 딤전 1:19; 딤전 1:20; 딤후 2:23-26). 이 사탄은 유혹하여 넘어뜨릴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벧전 5:8; 벧전 5:9),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미워하도록 한다. 그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써서 그러한 일을 한다(참조: 창 3:1-6). 신앙심 깊고 크게 복받은 의인 욥은 사탄이 찾던 바로 그 목표물이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탄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도 역시 미워한다. 사탄은 그의 죄로 인하여 최후 심판을 받고 불못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계 20:10).

 

 

 

 

2.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사타나스는 신약성경에서 3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1. 고소자와 그의 타락.

 

 

신약성경에서 사단에 관한 기록의 특징은 사단이 하늘로부터 타락한 동기에 대한 특별한 용법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사단이 하나님 앞에 고소자로 나선다는 친숙한 구약성경의 개념을 그대로 따르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새롭다. 눅 22:31의 상항은 욥기의 서두의 상황과 유사하다.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제자들을 청구하였다. 까부르는 목적은 각 제자들의 마지못해 하는 마음을 드러내어 사단이 그들을 고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고소는 예수님의 개입으로 반대에 부딪힌다.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교의 천사들, 특히 미가엘의 역할을 스스로 담당하신다. 

 

 

계 12:7-12는 이와 관련이 있는데, 여기서 미가엘은 큰 뱀 사단과 싸운다. 이곳에서 언급하는 것은 사단이 하늘에서 최종적으로 떨어져 이제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참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계 12:10). 이 하늘에서 사단의 떨어짐과 그 시점, 즉 예수님의 오심과의 결합(계 12:5)은 신약성경을 유대교로부터 분리시킨다. 눅 10:18에서 이 결합을 찾아볼 수 있다(누가복음에만 독특하게 나타남):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여기서 에데오룬("보았노라")은 확실히 선재시에 본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최후 심판에서 있을 사건을 미리 보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하늘에서 사단이 떨어지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고소할 가능성의 종말을 나타낸다. 그러나 문맥은 일반적인 사단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할지라도 고소하는 능력의 전체적인 중지와 함께 또한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사단의 해하는 능력 또한 상실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에데오룬이 가리키는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 알 수가 없다. 만일 눅 22:31이하에서 사단이 아직도 하나님께 참소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면 이것은 눅 10:18에 대하여 지금까지 이해한 내용과 상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생명은 유일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기록한 것으로 여겨지는 서신들과 혹자들이 그의 저작으로 간주하지 않는 다른 서신들 어느 곳에서도 이 고소자가 떨어졌다는 이미지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요 12:31(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에서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난 자리는 심판의 자리, 즉 하늘일 수 있다. 요 16:11의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에서 그에 대한 심판은 그렇게 분명치 않다. 마귀의 떨어짐이나 그에 대한 심판에 관하여 말하는 이 모든 구절들에서 '이미'는 '아직'과 결합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사단에 관한 신약성경말씀의 특징적인 면이다. 

 

 

우주창조 이전 루시퍼의 타락의 신화적인 개념은 시간 속에서 사단의 타락의 사상과 접합될 수 없으며, 쿰란의 기본원리, 하나님이 창조하신 두 영들에 관한 교리와도 연관성은 없다. 유다서는 그 문헌적 출처를 알 수 없는, 마귀에 관한 한 설화를 이용한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신약성경이 사단의 최초의 타락과 그 관련 동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을 완전히 별도로 하고도 요한의 기록도 이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요일 3: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에서 엔 아르케 디아볼로스 헤마르텐이 아니라 아프 아르케스 하마르타네이이다. 똑같은 아프 아르케스가 요 8: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에도 나온다. 

 

 

이미 바울의 문헌에서 그랬듯이 계 12:9에서 에덴동산의 뱀이 사단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바울은 뱀/사단이 하와를 성적으로 유혹했다고 하는 유대교의 사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요 8:44에서 마귀를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고 하였을 때 이것은 뱀과 마귀가 동일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후대의 랍비들은 사단을 죽음의 천사 혹은 악한 충동과 동일시 했는데,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이러한 면을 찾아볼 수 없다. 

 

 

 

 

2. 공관복음에서 사단에 관한 말씀들

 

 

어원학적 자료. 

 

마가복음(막 1:13; 막 2:23, 막 2:26; 막 4:15; 막 8:33)과 눅 10:19을 제외하고(호 엑스드로스 "원수") 누가복음에 고유한 자료들(눅 10:18; 눅 13:16; 눅 22장)은 오로지 호 사타나스를 사용하며(막 3:23; 눅 22:3만이 관사가 없고, 마 4:10; 막 8:33 = 마 16:23에서는 호격임), 호 사타나스는 아람어 사타나에서 유래한다. 마 4:10을 제외하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호 사타나스는 오직 바알세불과 관련하여서만 나온다. 시험기사에서 마태복음(마 4:3의 호 페이라존과 마 4:10의 사타나는 제외)과 누가복음은 호 디아볼로스를 사용하며, 그 밖의 곳에서는 마 13:39; 마 25:41에서만 발견된다. 마태복음도 역시 호 엑스드로스와 호 ㅍ네로스를 아주 흔하게 사용한다. 막 4:15의 호 사타나스 대신에 마 13:19은 호 포네로스를, 눅 8:12은 호 디아볼로스를 사용한다.

 

 

공관복음 기자들에게 전수된 초기 기독교 전승에는 사단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지만, 신약성경에서 사단에 대한 견해를 더듬어 보고 기본적인 윤곽을 그려보기에는 충분하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신 것은 소극적인 행동 그 이상이다. 그것은 보다 더 강한 자임을 증명하는 승리이다. 시험기사에서 마귀를 예수님의 삶과 고난의 길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막으려 하고 그 손에 이 세상의 권세를 가진 하나의 의식적 의지로 간주했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라고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에서 사단은 우선적으로 "대적자"라는 의미에서의 총칭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막 8:33 병행구 마 16:23). 하지만 전승은 거의 대적자를 나타내는 용어일 때를 제외하고 아람어를 보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면 다른 모든 종류의 난제들이 제기된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사단이라 불리운다. 그러나 사단은 인간적인 견지에서보다 사단의 견지에서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적인 것은 하나님에게 매우 적대적일 때 사단의 것이라 불리울 수 있으며, 이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길에 배치되기 때문일 것이다. 

 

 

공관복음 기자들은 수난기사에서 오직 이 점에서, 그리고 눅 22:3(병행구 없음)의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에서 사단을 언급한다. 그런데 특히 겟세마네와 관련되지 않는다. 공관복음 기자들이 예수님의 삶과 수난을 사단과의 싸움으로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 혹은 그들이 사단을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개는 놀랄만하다. 어쨌든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기 위해 주어진 질문들의 배후에 악한 자(the evil one)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기사가 예수님의 삶에 던지는 빛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삶과 고난 전체는 하나님께는 "예"이며, 따라서 당연히 시험하는 자에게는 "아니오"이다. 일찍이 공관복음 기자들은 사단과의 투쟁을 언급한다. 즉 바알세불이 언급된 막 3:22(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이하와 그 병행구에서이다. 

 

 

초기 기독 공동체는 이 기사로써 온전하게 갖추어진 중요한 말씀을 전수해 준다. 귀신들에 관한 유대교의 널리 유포된 모호성 대신에 우리는 먼저 하나의 우두머리 사단 아래 있는 악의 나라의 모호하지 않은 단일성에 주목한다. 게다가 귀신들린 자들은 예수님의 메시지에 결단하도록 요청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그들의 개인적인 삶에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세력에서 해방된 자들이다. 그들은 특별한 종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한데, 그들의 병은 악한 자(the evil one)의 권세의 소행이다. 귀신들렸다는 특징들을 가지지 않는 병도 역시 사단에게 기인할 수 있다(눅 13:16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병이 당연히 사단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또 자연적인 질병과 사단에 의한 질병 사이에 대조적 혹은 분명한 구별이 시도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는 질병의 현상 배후에 몰래 숨어있다. 따라서 행 10:38의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는 예수님의 모든 치유 사건을 마귀의 축출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바알세불과 관련된 기사에서 세 번째 기본적인 진술은 강한 자와 더 강한 자에 관한 비유, 즉 막 3:27과 병행구이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정당화하는 것이며, 예수님 자신의 삶 가운데 일어난 한 에피소드를 암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강한 자를 결박한 일은 예수님의 시험에서 일어났다고 여겨진다. 이 가정은 십자가와 부활이 시험 가운데 원래부터 존재했다고 인식할 때 올바르다. 

 

 

사단의 무장 해제는 단지 능력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권리의 문제이다. 강한 자를 결박하는 것과 하늘에서 고소자가 떨어지는 것은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 막 3:27과 눅 10:17(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이하는 서로를 설명해 준다. 두 가지 더 중요한 진술들이 비유들의 해석에서 전해져 내려온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어떤 씨앗이 길가에 떨어지는 사실이 그 운명을 결정한다(막 4:4). 그 해석에서 길가에 떨어지는 것은 오로지 마태복음에서 마 13:19에서만 발견되는 메 쉬니엔토스(깨닫지 못하는 자)에 해당한다. 여기서 해석은 그 비유를 알레고리화하지 않는다. 복수형 "새들"은 마귀의 행위와 관련 있는 언급이며, 그러므로 또한 핍박과 관련한 악한자의 활동이나 부의 기만성을 생각할 수 있다. 사단의 소행은 막 4:15과 눅 8:12에서만 언급되는데, 그것은 인간의 이해범위를 넘어서는 초자연적 요소이다. 

 

 

 

3. 서신들에서 사단.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를 포함하여 오래된 서신들에서 호 디아볼로스를 결코 사용하지 않고 대개 호 사타나스를 사용한다. 롬 16:20; 고전 5:5; 고전 7:5; 고후 2:11; 고후 11:14; 고후 12:7; 살전 2:18; 살후 2:9(관사없이 고후 12:7); 그 밖에 다음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호 페이라존, 살전 3:5; 호 포네로스, 살후 3:3; 벨리아르, 고후 6:15. 또한 호 사타나스는 딤전 1:20; 딤전 5:15에서, 호 디아볼로스는 엡 4:27; 엡 6:11, 딤전 3:6, 딤전 3:7; 딤후 2:26; 호 포네로스는 엡 6:16에서 나온다. 다른 용어들이 고후 4:4; 엡 2:2에서 사용된다. 사도행전에서는 행 5:3; 행 26:18에서 호 사타나스가, 행 10:38; 행 13:10에서 (호) 디아볼로스가 사용된다. 공동서신에서는 디아볼로스만이 나온다, 약 4:7; 히 2:14; 벧전 5:8; 유 1:9. 요한계시록에서는 요 2:9, 요 2:13, 요 2:24; 요 3:9; 요 20:7에 호 사타나스, 요 2:10; 요 12:12; 요 20:10에 호 디아볼로스가 사용된다. 요 12:9; 요 20:2에서는 강조되어 둘이 함께 나온다. 호 카테고르가 요 12:10에서 나오며, 비유적으로 쓰인 호 호피스와 호 드라콘도 발견된다.

 

 

신약성경의 서신들에서 마귀는 공동체에 대한 그의 공격과 관련하여 두드러지게 언급된다. 이 공격은 먼저 핍박 가운데서 발생한다. 계 2:10; 계 12:17; 계 13:7; 벧전 5:8; 계 2:9; 계 3:9이 유대교 공동체를 사단의 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적극적인 적대 때문이다. 그러나 마귀는 특별히 시험으로 공동체를 공격한다. 살전 1-3장은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할까" 염려하여 기록된 것이다. 즉 공동체가 성에서 성으로 쫓겨 다닌 사도의 운명에 의해 의욕을 잃을까 염려해서였다. 

 

 

고전 7:5(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에서 사단에게 시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크라시아(절제 못함)이다. 

 

 

바울은 고후 2:11(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에서 사단의 노에마타(궤계)를 언급한다. 여기서 사단은 속이려 하는 자이다. 엡 6:11(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에서는 마귀의 메도데이아이(궤계)에 대해 말한다. 딤전 3:7은 마귀의 올무를 언급하며 딤후 2:26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특히 자유주의적 사상에서 사단의 위험스럽고 그릇된 일을 본다. 자유주의 사상의 투사들은 그리스도의 사도인체 한다. 그리고 사단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때 그 모습은 사단이 얼마나 위험스러운지를 보여준다(고후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초대 교인들에게 줄곧 존재했던 동일한 위험도 또한 사단과 관련된다. 사단의 유혹하는 활동은 적그리스도의 활동에서 절정에 이른다(살후 2:3-12; 계 13:17). 시험은 어린양의 피로(계 12:1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음으로(엡 6:11), 즉 믿음으로(엡 6:16), 혹은 자주 시험이 올 수 있는 상황을 피함으로써(고전 7:5; 딤전 3:6이하; 딤전 5:14이하; 참조: 엡 4:27; 롬 16:17) 물리친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롬 16:20)는 로마 교회에 한 바울의 요구이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실 것이나, 공동체를 통하여 그리하실 것이다.

 

 

사단은 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동체를 대적하려 시도한다. 사단은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가고자 하는 꼭 필요한 여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며(살전 2:18), 사단의 사자가 바울에게 타격을 가했다(고후 12:7).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나 동역자들의 모든 불행을 마귀와 연관시키지 않으며(빌 2:25-30), 또한 방해 받은 모든 여행을 사단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는다(롬 1:13).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울 사도가 결코 어떤 합리적 방식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단의 방해를 상호 관련시키려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마찬가지로 사단의 방해도 그의 사역 가운데서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고전 5:5(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과 딤전 1:20(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에 언급된 사단의 일이다. 후기 유대교는 사단과 죽음의 천사를 동일시했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사단과 그의 무리가 사람에게 해를 가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고 생각하였다.

 

 

후기 유대교에서는 멸망의 사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고전 5:5에서 사단 자신이 집행하는 판결은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후기 유대교에서는 이 대담한 사상을 감히 소유하지 못했다. 사단의 사자, 즉 육체의 가시는 바울이 스스로를 높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바울에게 "주어진" 것이다(고후 12:7).

 

 

마귀의 최종적인 멸망에 관한 유일한 직접적인 언급은 마 25: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과 계 20:10(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에 나온다.  고전 15:24-26에서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의 의미는 사탄을 따르는 영적인 세력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을 뜻한다.

 

 

 

 

4. 요한의 복음서와 요한 서신에서 이 세상의 왕.

 

 

요한의 기록에서는 네 가지 용어가 마귀를 나타낸다.

 

 

(a)  디아볼로스는 고유명칭이 아니고 특성을 지적해주는 참된 칭호다(7회);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은 서로 대립된다. 요일 3: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b)  사타나스는 요 13:27에서 가룟유다에 관한 결정적인 언급에서 단 한번 나타난다: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c)  호 포네로스는 중성 토 포네론과 항상 확실하게 구별되지는 않으며, 요한복음에서는 요 17:15(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에서만 나오고, 요한일서에서 6회 나온다.

 

 

(d)  호 아르콘 투 코스무 투투("이 세상 임금")는 요 12:31; 요 14:30; 요 16:11에서 사단을 뜻하는 결정적인(final) 이름이다.

 

 

마귀에 관한 결정적인 요점은 요 8:44에 있다. 마귀와 인간의 관계는 아비와 자식의 관계와 같다(참조: 요일 3:10). 즉 마귀는 인간의 전 존재를 결정 짓는다. 이리하여 우리는 또한 요일 3:12(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에서 에크 티노스 에이나이를 발견한다. 

 

 

이렇게 사단에 의해 인간 본성이 결정되는 특별한 형태가 요 6:7에 나온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이것은 막 8:33의 베드로에게 언급한 사단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또한 사단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하는 요 13:27과 이와 병행되는 눅 22:3도 사단에 의해 인간 본성이 결정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들 중 어느 말씀도 후기 유대교에서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 후기 유대교에서 마귀나 벨리알은 그들의 영들 가운데 하나일 뿐 인간에게 들어가지 않는다. 

 

 

요 8: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에서는 마귀에 관하여 세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그가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는 말씀은 타락을 상기시켜준다. 그 다음에 이어 나오는 말씀, 즉 "진리에 서지 못하고"는 마귀와 관련하여서는 언제든지 진리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귀가 거짓말 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한다고 하는 세 번째 단언에 의해 명백해진다. 그 의미는 타락과 거짓말은 마귀 스스로의 소행이며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마귀가 마귀가 되기 전에 무엇이었는지 질문하는 것을 금한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마귀는 그가 마귀라는 사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고의적이든 비고의적이든 마귀의 존재와 본성과 기원에 관하여 쿰란을 포함하여 후기 유대교에 의해 표현된 사상은 여기서 거부된다.

요한의 기록들에서 특별한 측면은 존재적 진술들에 의해 그들 안에서 행해진 역할이다: 즉 하나님에게서 태어나거나 마귀에게서 태어나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거나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 이런 이유에서 죄를 짓는 자는 에크 투 디아볼루이다(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역으로 가인은 에크 투 포네루였기 때문에 그의 아우를 살해했다(요일 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며 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 못한다(요일 5:18). 이것은 달리 말하면 예수님께서 나무와 그 열매에 관해 말씀하신 것과 정확히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직설법과 명령법을 상호 관련시키고 병치 시킴으로 동일한 요지를 전개한다. 

 

 

요한이 네아니스코이(청년들)에게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라고 외칠 때(요일 2:13이하) 이것은 본질상 자명한 것이라는 의미에서나 엄격한 숙명론의 의미에서 의도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에서의 간구,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요한의 실제적인 말에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요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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