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장 4~12절에 대한 주석

by 갈렙 posted Mar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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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빈주석 : 히브리서 6장 6절

In short, the Apostle warns us, that repentance is not at the will of man, but that it is given by God to those only who have not wholly fallen away from the faith. It is a warning very necessary to us, lest by often delaying until tomorrow, we should alienate ourselves more and more from God. The ungodly indeed deceive themselves by such sayings as this, — that it will be sufficient for them to repent of their wicked life at their last breath. But when they come to die, the dire torments of conscience which they suffer, prove to them that the conversion of man is not an ordinary work. As then the Lord promises pardon to none but to those who repent of their iniquity, it is no wonder that they perish who either through despair or contempt, rush on in their obstinacy into destruction. But when any one rises up again after falling, we may hence conclude that he had not been guilty of defection, however grievously he may have sinned.

Crucifying again, etc. He also adds this to defend God’s severity against the calumnies of men; for it would be wholly unbecoming, that God by pardoning apostates should expose his own Son to contempt. They are then wholly unworthy to obtain mercy. But the reason why he says, that Christ would thus be crucified again, is, because we die with him for the very purpose of living afterwards a new life; when therefore any return as it were unto death, they have need of another sacrifice, as we shall find in the tenth chapter. Crucifying for themselves means as far as in them lies. For this would be the case, and Christ would be slandered as it were triumphantly, were it allowed men to return to him after having fallen away and forsaken him.

(99) Some render the verb “renew” actively, in this way, — “For it is impossible as to those who have been once enlightened, and have tasted of the heavenly gift, and have been made partakers of holy spirit, and have tasted the good word of God and the powers of the world to come, and have fallen away, to renew them again unto repentance, since they crucify again as to themselves to Son of God, and expose him to open shame.”

This is more consistent with the foregoing, for the Apostle speaks of teaching. It is as though he had said “It is impossible for us as teachers;” as they had no commission. To “renew” may be rendered to “restore.” It is only found here, but is used by the Sept. for a verb which means renewing in the sense of restoring. See Psa 103:5; Lam 5:21 (refs2). Josephus applies it to the renovation or restoration of the temple.

 

2. 김효성주석

[4-6절] [이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없음이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본문은 우리가 초보적 진리에 머물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보인다. ‘한번 비췸을 얻었다’는 말씀은 복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것은 복음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선한 내용들, 즉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내세에 있을 부활과 천국의 기쁜 일들과 심판과 지옥의 두려운 일들에 대해 믿게 된 것을 뜻하는 것 같다. ‘타락한 자들’이란 기본적 신앙에서 떨어져 배반한 자들 즉 배교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혹은 공공연하게 욕을 보였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타락하여 배교자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믿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도가 끝까지 견디어 영광에 이른다는 것 즉 소위 ‘성도의 견인(堅忍)’을 밝히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요 10:28; 빌 1:6), 하나님의 선택의 불변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과 중보 사역의 완전함, 성령의 인치심의 진리들은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하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자들은 잠시 연약할 수 있으나 마침내 다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가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로 이해하지 말고 가상적인 경고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자들은 넘어질까 조심하면서 겸손과 두려움으로 깨어 있는 생활을 해야 한다. 만일 어떤 이가 타락하여 믿음을 배반했다면 그는 참으로 중생한 자가 아닐 것이다.

[7-8절] [이는]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단비, 은혜의 단비를 받아 성장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영적으로 성장하기는커녕 가시와 엉겅퀴 같은 나쁜 열매를 맺으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마침내 지옥 불에 던지울 것이다.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타락과 배교의 위험한 경계선에 서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성장은 선택과목이 아니고, 필수과목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라면, 우리는 반드시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9-10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이는]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사랑의 수고로](전통사본)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하심이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배교에 대해 경고했지만 그 편지 수신자들이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한다. ‘구원에 가까운 것’이라는 원어(에코메나 소테리아스)는 ‘구원에 수반하는 것들’이라는 뜻이다(KJV, NASB, NIV). 그것은 그들에게 구원에 수반하는 행위의 열매들이 있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의 영적 미성숙을 책망하며 배교를 경고했지만, 실상 그들 속에 좋은 것들과 선한 행위의 열매들이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않으셔서 그들의 행위와 그들이 성도들을 섬긴 것을 잊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행위’라는 말은 그들의 선한 행위를 가리킨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의 수고로 성도들을 섬겼고 또 섬기고 있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성도들을 섬기는 행위로 표현되었다. 사람들은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또 알아도 곧 잊어버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롭고 선한 행위들을 다 기억하신다.

[11-12절] [그러나]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저자의 간절한 소원은, 첫째로, 이 서신을 받는 수신자들이 다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는 것이다. ‘너희 각 사람이’라는 말은 이 권면의 말씀이 교회의 일부 사람들에게가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기를 원함을 나타낸다. ‘동일한 부지런’이라는 말은 열심 있는 성도들과 비교하여 그들의 부지런과 동일한 부지런이라는 뜻이다. 모든 성도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둘째로, 성도들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이다. ‘소망의 풍성함’이라는 원어는 ‘소망의 충만한 확신’이라는 뜻이다. 성도들의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천국과 영생이다.

셋째로, 우리는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살았고 마침내 약속들의 성취를 받았다. 그들이 받은 약속들이란 죽은 후에 그들의 영혼들이 들어간 천국과 거기에서의 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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