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과 도시

by 갈렙 posted Apr 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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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탑.

성서에 의하면, 바벨 탑은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창세 11:1-9) 흥미롭게도, 고고학자들은 고대 바벨론(바빌론)의 폐허와 그 주변에서 여러 개의 지구라트, 즉 피라미드형으로 된 계단식 신전 탑들의 유적을 밝혀 냈다. 그 유적 중에는 바벨론의 성벽 안에 있었던 붕괴된 에테메난키 신전이 포함된다. 그러한 신전에 관한 고대 기록에는 흔히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리라”는 말이 들어 있다.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왕은 “짐은 에테메난키의 계단식 탑 끝을 높여 그 꼭대기를 하늘과 맞서게 하였노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단편은 그러한 지구라트의 붕괴에 관해 이렇게 알려 준다. “이 신전의 건축은 신들을 격노케 하였다. 어느 날 밤 신들은 건축된 것을 무너뜨렸다. 신들은 그들을 널리 흩어지게 했고 그들의 언어를 생소한 것이 되게 하였다. 신들은 일의 진척을 방해하였다.”  -「성서와 삽」(Bible and Spade), 1938년판, S. L. 케이거 저, 29면.

 

에테메난키(Etemenanki)지구라트(바벨탑)

 

대홍수 후 인류가 최초의 도시문명을 이루었을 때

고대인류는 홍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하늘에까지 탑을 쌓아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신에게까지 도달하려고 했다

 

성서 「창세기」 제11장에 나오는 이 탑은 흔히 바벨탑으로 불리며, 신을 경배하지 않는 인간들의 교만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바빌론에 에테메난키라는 이름의 지구라트가 존재했던 것으로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 따르면, 지구라트의 평면부는 한 변이 약 177.7미터에 이르는 장방형 구조로 모두 8층 규모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계단 모양의 탑 바깥쪽으로는 나선형의 계단이 있었으며, 계단 중간에는 휴게용 무도장도 있었다고 한다.

 

우르의 도시국가(기원 2000~2500년)의 중앙에는 신전이 있었다

지구라트 가운데 ‘하늘에 닿을 만큼’의 높이로 쌓아올린 최고의 탑은 신 바빌로니아 때 재건된 ‘에테메난키’(‘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라는 뜻)라 일컫는 탑이다. 이 탑은 7층으로 높이가 90m며 8천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다.

 

바벨론 왕이였던 나보폴라살이 이 신전을 에테메낭키 지구라트 라고 부르면서 마르둑신의 명령으로 다시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나보포라싸왕은 ‘마르둑신이 나에게 에테메난키(바벨탑)의 기초를 지구 중심까지 닿도록 단단하게 만들라고 명령했다.


 

바빌론 중심부에 있는 에테메난키는 거의 정방형 구조로, 한 변이 약 400미터에 이르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시크기는 690*1000m 정도로 약 20만명이 거주하였다

가장 부유층으로 지식인이었던 필경사가 있었는데 이들에 의해 점토판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우르시대에 만들어진 스탠더드라는 작품에 당시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잔을 들고 있는 상류층과 상인,도공,악사,군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당시 맥주도 만들어 마셨다

그러나 토양속에 있는 소금기가 증가하면서 밀의 수확량이 급감하여 우르는 쇠퇴의 길을 걷고 이민족의 침입으로 수메르는 멸망하게 된다​

 

 

벽 안쪽에 있었던 지구라트는 현재 기초 부분밖에 남아 있지 않다.

에테메난키는 원래 구바빌로니아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지구라트는 이후 신바빌로니아 시대에 나보폴라사르 1세(B.C. 626~B.C. 606년 재위)와 네부카드네자르 2세(B.C. 605~B.C. 562년 재위)에 의해 재건되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32609&cid=43109&categoryId=43109

 

 

쵸가 잔빌 지구라트(바벨탑)

 

현존하는 이란의 Khuzestan 지방에 있는 고대 엘람인의 지구라트 유적 쵸가 잔빌(Chogha Zanbil) 

기원전 약 1,250년전에 Untash-Napirisha 왕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가로*세로 (105m*105m) 크기로 높이는 50m 추정

 

건축자재는 성경의 기록처럼 진흙 벽돌과 가끔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창11:3)

물론 초가 잔빌이 바벨탑의 원형은 아니다.

이런 지구라트는 바벨탑 사건으로 인종이 갈라진 후 다른 지역(이집트,중국,남미)에서도 발견된다

인류를 멸종했던 대홍수가 얼마나 큰 충격을 준 사건인지는 전세계에 대홍수 설화와 지구라트가 발견되는 것을 보아서도 짐작할 수 있다

원형 바벨탑 사건은 기원전 2,800년전이다 / ars

 

나보니두스는 유프라테스 강의 동쪽 강가를 따라 성벽을 세워서 외성의 끝 부분을 연결하였다. 이 성벽은 폭이 8.5미터쯤 되었으며, 또한 여기에는 망대들이 있었고 폭이 3.5미터인 선착장도 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유프라테스 강 양옆으로 계속 이어진 선착장이 있었으며 그 선착장은 25개의 출입구가 있는 성벽에 의해 도시 지구와 분리되어 있었다고 알려 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도시의 성벽은 높이가 약 90미터, 두께가 26.5미터, 길이가 약 95킬로미터에 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바빌론에 관해 말할 때 실제보다 과장한 것 같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바빌론은 규모가 훨씬 작았으며 외성도 길이가 훨씬 짧고 높이도 훨씬 낮았다.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에 강변을 따라 이어진 선착장이 있었음을 확증할 만한 증거도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거대한 성벽의 문들에서부터 도시 한가운데로 도로들이 뻗어 있었다. 주된 대로였던 ‘행렬의 길’은 포장이 되어 있었으며, 도로 가에 있는 담벼락들은 경배를 받는 신들을 상징하는 사자와 용과 소의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2권, 323면 사진) 느부갓네살 2세는 옛 궁전을 수리하고 확장하였으며 북쪽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여름 궁전을 지었다. 또한 그는 볼트(vault) 구조의 아치 길들이 층층이 있는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는데, 바빌론의 가공 정원으로 알려진 이 구조물은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lD;g]m:미그달

탑, 망루

 

 

미그달(명남)은 가달(ld'G:: 자라다, 커지다)에서 유래했으며, '탑, 망루'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탑이 도시에서 가장 큰(가장 거대한) 건물이었던 초기에 생긴 것 같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2회 나온다.

 

 

(a) ① 미그달은 성읍의 요새를 견고히 하기 위해 세워진 높은 탑(창 11:4, 창 11:5, 삿 8:9, 삿 9:46-52, 왕하 9:17 등).

② 성벽을 공고히 하기위해 만든 방위 구축으로서의 망대를 의미한다(느 3:1, 느 3:11, 느 3:25, 느 3:26, 느 12:38, 느 12:39, 렘 31:38).

③ 미그달은 포도원 망대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사 5:2).

④ 비유적으로 피난처로서 하나님(시 61:3, 잠 18:10), 아름다운 목(아 4:4), 코(아 7:4), 유방(아 8:10)에 대해 사용되었다.

 

(b) 미그달은 올라가는 계단, 나무 '강단'에 대해 사용되었다(느 8:4).

 

(c) 미그달은 정원 중앙에 더 높이 올라가는 '꽃밭'에 대해 사용되었다(아 5:13).

(참조: BDB; Gesenius).

 

 

lb,B;:바벨

바벨은 바벨론(바빌론)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62회 나온다.

 

 

바벨은 바벨론어 바빌리(bab-ili), 복수형 바빌라니(bab-ilani)의 번역이다. 이 바벨론어는 더 이전의 수메르어 명칭 카딩길라(ka-dingir-ra: '신의 문')를 번역한 것이다.

이 명칭이 후 바빌로니아어로 '밥 일리'(Bab-ili)라고 번역되어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 같으며, 창 11:9의(언어를) "혼잡케 하셨다"를 뜻하는 발랄(balal)의 어원이 바로 이 '밥 일리'에 근거한 용어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이 바벨론은 성경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시로 언급되고 있다. 바벨론은 B.C. 2,100년 경에는 간혹 B.C. 7세기 경에는 매우 자주 틴 티르키(tin-tir ki: 나무들의 생명), 에-키(e-ki: 운하의 장소)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렘 25:26; 렘 51:41의 세샤크는 바벨의 암호형의 철자의 번역으로 해석하지만 옛 이름 쉐쉬키(ses-ki)의 희귀한 출현일지도 모른다(참조: NBD; ISBE).

 

 

바벨론은 시날(Shinar, 창 10:10) 땅의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위치한 도시이며, 이 도시의 유적지는 현재 이라크의 바그다드의 남쪽 80㎞, 힐라(Hillah)의 북쪽 8㎞ 지점에 위치해 있다(890헥타아르).

 

 

창 10:10에 의하면 니므롯이 이 도시를 자신의 수도로 건설했다. 창 11:1-9에서 패역한 인간이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반항하여 그 유명한 바벨탑을 이곳에 세우기 시작했지만 하나님이 막으심으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수메르인들의 기록에도(B.C. 2,250경), 아카드의 사르곤왕에 의해 파괴된 이 도시의 신전을 니므롯이 복구하였다고 나타난다. 이 도시는 우르 제 3왕조 때에(B.C. 2,150-2,050년경),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들에게 점령당했다. 그 후에 이 도시는 바벨론 제 1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바벨론 제 1왕조의 함무라비 왕은(B.C. 1,750년경) 이 도시를 복구시키고 그 영향력을 크게 확장시켰다. 함무라비는 그 곳을 근동의 문화 중심지로 만드는 책임을 지고 노력했으며, 이것은 헬라 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마르둑(Marduk)을 바벨론의 도시 신(神)으로 만든 것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약 1,300여 신들의 수메르-아카드 만신전(pantheon)의 우두머리 신으로 만든 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종교적 전통을 하나의 체계 속에 편입시켜 버렸다. 함무라비는 바벨론을 세계적인 세력으로 만들었으며,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사르곤(Sargon)과 나람신(Naramsin)이라는 아카드 왕들을 세계적인 권력의 계승자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바벨론은 그리스와는 관계없이 과학적인 지식을 발전시켰으며, 이에 관한 주요한 발달은 신화, 철학, 의학, 수학(1세기 경의)과 천문학 방면에서 이루어졌다(참조: 단 1:4, 단 1:17).

 

 

B.C. 1,600년경 이 도시는 헷 족속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그 후에는 카시트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이 도시는 계속하여 앗수르와 엘람의 침범을 당하였고, B.C. 1,124년경에 느부갓네살 1세에 의해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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