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란은 에블라 왕국에 속해 있었다_박윤식목사(구속사시리즈)

by 갈렙 posted Apr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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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은 에블라 왕국에 속해 있었다”

구속사 시리즈 저자 박윤신목사의 학문적 고집, 어떻게 입증됐나

글_정 디모데 전도사

 

구속사 시리즈에 수록된 ‘이해도움’은 유구한 역사 속에 세계 최초로 밝히는 구속사적 경륜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신령한 호외와 같다. 금번에 출간된 구속사 시리즈 제10권의 이해도움 도표 역시 유구한 역사 속에 세계 최초로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을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사실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을 그린 지도는 기존에 많이 나와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지도가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아브라함이 걸어간 길을 갈대아부터 애굽까지 전 영역을 살피는 가운데, 에블라 왕국에 속해 있던 하란에서 아브라함이 경건한 선조들에게 신앙을 전수받았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은 청동기 시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우르에서 태어나 약 909km 떨어진 하란으로 이주하여 75세까지 거주했다. 우르는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의 땅이었음이 틀림없다(수 24:2). 하란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을 볼 때, 하란은 달의 신 ‘신’(Sin)을 숭배하는 고대 도시였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하란에 머물던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말씀하실 때, ‘친척’은 아브라함의 먼 친척들로서 우상숭배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친척들이 불경건한 친척들이라면,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오자마자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설명되지 않는다(창 12:5-7). 이 친척들은 분명 아브라함에게 신앙을 전수한 신앙의 선조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달의 신을 숭배하는 도시에 살던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 도시에서 신앙의 선조들을 만나 언약 신앙을 전수받을 수 있었을까? 성경 절대무오 사상을 견지하는 가운데, 1978년부터 이어진 에블라 왕국에 대한 발견을 통하여 그 생생한 역사를 알 수 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 고대 근동 세계

구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이집트, 이라크와 이란까지의 지역에 펼쳐졌던 고대 역사를 ‘고대 근동’ 세계라고 말한다. 이 드넓은 지역에는 동쪽에 유브라데강과 티그리스강, 서쪽에 나일강이 흐르며 안정적인 농경 생활과 정착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모양이 마치 초승달과 같다 하여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부른다. 바로 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아브라함의 신앙 노정이 오갔던 지역이다.

 

같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위치하고 있지만, 나일강 주변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집트 문명과 유브라데강과 티그리스강 사이를 중심으로 발전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는 여러 차이가 있다. 인간이 살기에 너무 척박한 시내 반도로 가로막혀 폐쇄적인 지형을 가졌던 이집트는 단일 국가를 세워서 상하 이집트 왕국을 형성한 반면, 개방적인 지형을 가졌던 메소포타미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세워지며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고대 근동 지역의 옛 도시들은 대부분 구릉 위에 위치했다. 특히 동서남북 중 3면이 험난한 구릉은 한 방향으로만 출입구를 내고 방어하면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기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시는 이러한 지형에 위치했다. 만약 그 도시가 적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되면, 불탄 폐허 위에 다시 도시를 건설하기를 반복하면서 점차 지층이 쌓여갔는데 이를 ‘텔’이라고 부른다. 이 지층의 단면들을 연구함을 통해 몇 번의 흥망성쇠가 있었는지 살필 수 있으며, 비교적 정확한 연대를 추정해 낼 수 있다. 이에 고고학자들은 고대 근동 지방을 연구하기 위해서 ‘텔’을 집중적으로 발굴해 왔다.

 

에블라 왕국의 발견

알레포 바로 남쪽에 위치한 텔-마르딕(Tell-Mardikh)은 인근 평지보다 약 15미터 이상 위로 돌출된 약 17만 평(56만 5천 평방미터)의 넓은 땅으로, 지형적으로 분명 고대 도시가 위치했으리라 추정되는 장소였다. 1964년, 24세의 젊은 나이였던 파울로 마티에(Paolo Matthiae)는 시리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 도시에 대한 발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발굴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도시의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세공된 도자기나 그릇, 조각된 기둥 기초석 등이 발견되면서 이 지역에 도시가 있었음이 확실시되었을 뿐이었다. 발굴을 시작한 지 4년, 텔-마르딕에서 고대 에블라의 왕이 세운 비문이 발견되면서 바로 이곳이 에블라 왕국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발굴 초기, 텔-마르딕과 알레포에 위치한 도시는 단순히 큰 마을 정도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젊은 고고학자는 1차 발굴이 마친 뒤에도 이 지역에 대한 연구를 쉬지 않았다. 약 10년의 노력 끝에 1974년, 마티에의 연구팀은 알레포 지역에서 42개의 쐐기 문자 점토판을 발굴하였으며, 같은 해 왕궁문서보관소를 발견하여 약 16,000개의 점토판을 발견하였다. 이 발견은 성경의 무대가 되는 고대 근동에 대한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마티에는 지층을 연구하면서 에블라 왕국의 연대를 추정해나가는 한편, 로마 대학의 언어학 교수인 지오반니 페티나토(Giovanni Pettinato)의 도움을 받아 이 점토판을 해독해나갔다. 이 점토판은 당시 고대 근동에 대부분이 사용했던 수메르어와 달리 에블라만의 언어를 사용해서 기록했는데, 수메르어의 32개 어휘를 에블라어로 번역한 토판이 발견되면서 페티나토는 알레포 토판을 신속히 해독해나갔다.

이 점토판은 대략 주전 23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놀랍게도 이는 시기적으로 바벨탑 운동이 있었던 시기이자, 아담의 14대손 에벨이 살았던 시대였다. 점토판에는 주요 히브리어와 흡사한 표현이 많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왕’은 수메르어로 ‘엔’(en)이지만, 에블라어로는 ‘말릭’(malik)으로 히브리어의 ‘멜렉’(melek)과 훨씬 가까웠다. 에블라 왕국을 세운 초대 왕 ‘에브룸’(Eb-rum)은 분명 성경의 에벨이다. 한 토판은 에블라 왕국은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약 16,000개의 점토판 중 가장 많은 것은 세금이나 식량, 무역과 관련된 기록들이다. 세금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볼 때, 알레포 시의 인구는 대략 25만 명으로 추정되었다. 에블라 왕국은 바벨론부터 가나안, 애굽으로 지나는 무역로 가운데 위치하여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렸으며 주변 국가에 금속 공예품을 수출하는 수준 높은 문명이었음이 밝혀졌다. 마티에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발견한 두 점의 여인상은 당시 청동기 시대였던 고대 근동 문명에서도 아주 빼어난 수준의 것으로, 에블라 문명의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에블라 왕국과 하란

그렇다면 에블라 왕국의 영토는 어땠을까? 사실 수천 년 전 사라진 고대 문명의 영토를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다. 고대 문명의 영토는 왕의 정복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비문이나 세금 징수와 관련된 고문서 등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는 에블라 왕국의 영토를 유브라데 강을 건너기 전까지로 생각한다. 당시 강은 국가와 국가를 나누는 중요한 지류로서, 강을 건너 다른 국가를 정복하기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에블라 왕국과 유브라데강 건너편에 있는 하란을 별개의 나라로 추정해왔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페티나토 박사는 에블라 토판을 해독하면서 아주 중요한 문서를 발견했다. 에블라 왕국의 여왕이었던 주갈룸(Zugalum)이 도시국가 하란의 왕 이비지키르(Ibbizikir)와 결혼하면서, 에블라 왕국 영토에 하란을 편입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텔-마르딕의 지층들을 분석한 결과 이 사건은 주전 2400년경을 배경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두 사람의 결혼으로 에블라 왕국은 유브라데 강 건너편 하란까지 다스림으로써 강력한 도시국가가 되었으며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관통하는 대상로의 가장 중요한 지역을 장악했다. 다른 고대 근동 국가인 마리 왕국의 비문에 따르면, 주전1900년경 마리 왕국이 에블라 왕국을 공격하여 하란 지역을 빼앗았다. 이는 적어도 주전 2400년부터 1900년까지 하란은 에블라 왕국에 귀속되어 있었으며, 주전 2091년에 아브라함이 75세의 나이로 하란을 떠날 당시에 하란은 에블라 왕국에 속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속사적인 의미

박윤식 목사는 구속사 시리즈 원고를 준비하면서, 아브라함이 경건한 선조들에게 신앙 전수를 받은 하란은 성경적으로 자세히 볼 때 반드시 에블라 왕국에 포함된다고 단정했다. 아직 하란을 에블라 왕국에 포함시킨 지도나 학설이 한국에 소개되기 전이었다. 그러나 박윤식 목사는 성경은 역사학, 고고학보다 절대적으로 우선되는 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역사는 구속사가 진행되는 현장이라는 신념 아래 원고를 집필했다. 다른 한 쪽에서는 고고학적인 호기심 가운데 에블라 왕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었다. 에블라 왕국의 초대 왕이 성경 속의 에벨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굴러다니는 뼈다귀가 그저 일어났을 뿐,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의미를 전하고 있는지는 그저 추정할 뿐이었다. <구속사 시리즈>의 출간은 이 일어난 뼈들에게 살을 입히고 생명을 불어넣는 에스겔 37:1-14의 역사와도 같았다. 다니엘 12:4의 말씀처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을 더하는’ 가운데, ‘친척’이라는 글자 속에 감추어 있었던 신앙 전수의 역사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 당시 에블라 왕국에는 바벨탑 운동을 피해 에벨을 따라 이주한 경건한 선조들이 살고 있었다. 비록 하란은 에블라 왕국에 편입되기 전부터 달의 신 숭배가 발달한 지역으로써 여전히 우상숭배의 잔재가 남아있었지만, 경건한 족장 에벨이 세운 신앙의 나라 에블라 왕국에 편입되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는 결코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 지도에서 하란을 어떤 색깔로 칠할지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만약 에블라 왕국과 하란이 별개의 국가였다면, 에블라 왕국의 수도였던 알레포에 정착했던 신앙의 선조들이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신앙을 전수할 수 있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에블라 왕국이 하란을 통치했다면, 신앙의 선조들이 하란으로 이주하여 아브라함에게 신앙을 전수했다는 설명이 가능하게 된다. 성경은 분명하게 두 번째 사실을 지지한다. 창세기 12:1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란에 머물던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명령하셨다. 여기 분명 ‘친척’, ‘아비’의 집이라고 말씀하면서 하란에 아브라함의 친척들과 아비 데라가 살고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앞서 살폈듯이,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보여주는 신앙의 모습을 볼 때, 이 친척들이 경건한 친척들임은 틀림없다. 알레포로 이주했던 아브라함의 선조들은 어떠한 이유로 하란으로 옮겨왔고, 아브라함을 만나 신앙을 전수하였다.

 

박윤식 목사는 평소 “구속사 시리즈는 적어도 일곱 번은 정독해야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읽고 또 읽어도 숨겨놓은 진주가 많다.”라고 강조하였다. 지도에 보잘 것 없는 점, 소소한 문장 하나도 건성으로 지어진 것이 없다. 모래밭의 진주는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땀 흘리며 찾는 자의 것이다. <구속사 시리즈>를 읽는 독자마다 그 안에 숨겨진 수많은 금은보화를 발견하기를 소망한다.

 

 

[출처] “하란은 에블라 왕국에 속해 있었다|작성자 백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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