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11)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과 이 사건이 주는 영적인 의미(요2:1~12)_2022-08-31(수)

by 갈렙 posted Aug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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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6AxoOHhg1fE
날짜 2022-08-31
본문말씀 요한복음 2:1~12(신약 14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가나혼인잔치,첫표적,셋째날,기도와믿음과순종,여섯째날,어린양의혼인잔치,주닙의때,인자가십자가에달릴때,인자가부활할때,인자가혼인잔치를할때,갈릴리가나,표적들의시작

2022-08-31(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11)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과 이 사건이 주는 영적인 의미(요2:1~1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6AxoOHhg1fE  [혹은 https://tv.naver.com/v/28949313 ]

 

1. 들어가며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맨 처음에 무슨 일로 시작하셨을까?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첫 번째 사역을 어떻게 시작하셨으며 또한 그때 어떤 기적을 행하셨는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것이 분명하게 나온다. 그것은 갈릴리 가나에 있는 어떤 혼인잔치 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대체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이 어떤 종류의 사건이었길래 사도 요한은 그것이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이라고 그렇게 힘주어 말하고 있는가? 또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이 주는 영적인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은 진정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것을 들어주신 일에 불과한가 아니면 더 큰 영적인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것인가? 

 

2.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은 단순 부탁에 대한 수락인가 아니면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맨 처음에 행하신 일은 물을 포도주로 만든 일이다. 이것은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2가지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께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다. 즉 이것은 마리아의 청을 들어주다가 생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일은 이것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표적이라는 것이다. 이 일은 단지 예수께서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준 정도가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려는 의도가 있으며 또한 예수님 자신에게도 이 사건이 주는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렇게 했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때 마리아의 청원이 없었다면, 이러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요, 또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의도가 없었거나 자기자신에게도 어떤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일을 행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예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의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11절에 나와 있다. 예수께서 이 표적을 행하심으로 그분의 제자들의 그분을 믿었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건 직전에 예수께서는 6명의 제자들을 뽑으셨다. 그들 중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안드레와 이름이 안 나오는 제자(이는 사도 요한임에 틀림없다)가 있다. 그리고 안드레의 전도와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인하여 제자가 된 베드로, 요한의 형제 야고보 그리고 예수께서 직접 불러내신 빌립과 그의 친구 나다나엘(바돌로매)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중 안드레와 요한은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님이 누군지를 간접적으로 들었다. 그것은 그분이 첫째,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자, 둘째, 먼저 계신 이요, 셋째, 성령이 머물러 계신 이이며, 넷째,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이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를 받았다. 그런 후에 제자들은 점차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을 랍비이자, 그리스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기록한 이, 요셉의 아들이며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이스라엘의 임금(왕), 인자라고 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세례 요한의 소개와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것을 바탕으로 한 간접적인 신앙고백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가를 알아야 했다. 그것은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심으로 인하여, 그분은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자이시자, 만물의 창조자이신 것을 그들이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이어서 예수께서는 자기자신에게는 어떤 목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인가? 우리는 이 사건을 쓰고 있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이 사건이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는 이 표적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원문상으로 보더라도 이것이 "표적들의 시작"이라고 나오기 때문에, 이 표적은 이어서 등장하게 될 다른 표적들의 샘플이 되며, 또한 그것들과 매우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사건의 서두에서 아직 당신이 표적을 일으킬 때는 아니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이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이 사건은 예수님에게도 매우 큰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럼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때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표적이라는 것이다. 

 

3. 예수님은 자기자신에게 어떤 의도로 이 표적을 행하신 것인가? 

  이 사건의 발단은 예수의 어머니께서 예수님에게 이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이야기함으로 시작된다.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고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그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이야기함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은 왜 이 잔치자리에 참여하게 된 것인가?

  우리는 이 사건이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났으며, 이때 예수의 어머니는 잔치의 주관자로 참여하고 있었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잔치에 초청받은 자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는 예수께서 어머니의 부탁이라 할지라도 꼭 들어주어야 할 위치에는 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잠깐 초대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군지를 살펴보자. 제일 첫 번째로 들어갈 제자는 아마도 나다나엘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다나엘은 갈릴리 가나 출신의 제자였기 때문이다(요21:2). 그리고 예수께서 그를 처음 만나셨을 때에 그가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그에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요1:50). 고로, 제자들 중에 우선 순위로 초대된 자는 아마도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이었을 것이고, 이어서 다른 제자들도 같이 초대되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도 이 잔치에 초대되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 잔치의 주인공과 어떤 인척관계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 잔치에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잔치의 주관자로서 등장한다. 즉 그녀는 이 잔치의 마실 것들을 담당하는 봉사자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문에는 또한 '연회장(잔치의 최고주관자)'이 나온다. 그는 이 잔치에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이때 예수의 어머니는 이 잔치의 마실 것의 주관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문제가 되었다면, 그것은 예수의 어머니에게는 좀 난처한 상황이 되는 것이고, 총 책임자는 신랑이든지 신부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예수의 어머니는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연회장이나 신랑이나 신부에게 말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부탁을 한다. 그리하여 이 사건이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이 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4절을 헬라어에서 직역해 보자.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여인이여! 나의 때(적절한 시간)는 [아직] 다다르지 않고 있나이다" 그렇다. 포도주가 떨어진 일은 사실 마리아의 잘못도 아니며, 예수님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님은 이때 포도주가 떨어졌다면 야단치거나 섭섭해할 입장인 것이지 책임질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말 한 마디가 예수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들이 포도주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3절). 그때 예수께서는 포도주가 필요하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반응하셨는데, 이는 '포도주'가 자신에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내 때가 아직 다다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사건은 예수님에게도 어떤 커다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4.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의 때'란 어느 때를 말씀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의 때(호라)"는 어떤 시각을 가리키는 것인가? 여기서 '때'는 '호라'라는 단어로서 그 의미가 '가장 좋은 시간, 적합한 시간'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이 때란 예수님에게 있어서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어떤 사건의 때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예수께서 자기 자신이 직접 포도주가 되거나 아니면 포도주를 풍성하게 만들어야 할 때는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장차 그렇게 되어질 일에 대한 예표로서, 자신이 직접 포도주를 만들겠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때'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나의 때'는 어떤 때를 가리키는 것인가?

  예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나의 때'는 적어도 3가지 의미로 나온다. 첫째는 그가 죄인들의 손에 팔리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때를 가리킨다(마26:45).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로 내어주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였다(요7:30,8:20,13:1). 

요7: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요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리고 둘째는 그가 죽으신 후에 영광을 받으실 때를 가리킨다. 즉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피로 대속하시고 다시 부활하실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죽으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시고 말씀하셨다(요17:1,12:23).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그분이 재림하시어 거룩한 신부들을 취하여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갈 때를 가리킨다(마26:45, 계19:7~9). 이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의 때'에 대한 완성의 때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거룩한 신부들을 얻으시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마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계19:7-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5. 예수께서는 첫 표적을 왜 혼인잔지집에서 셋째 날에 일으키신 것인가?

  고로 우리가 이 사건을 바라볼 때, 우연히 잔치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예수께서 자신의 어머니의 부탁을 받아 단지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으로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에 있어서 우연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필연적인 것이고 사건마다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시각에 예루살렘에 개기일식이 있었지 않았는가? 그런데 개기일식이라는 것이 갑자기 일어나고 싶다고 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운행하게 하실 때부터 이미 작정된 일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첫 표적을 행하실 것도 이미 만세전에 작정된 대로 되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첫 표적이 '셋째 날에' 어떤 '혼인잔치 집에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고로 이 사건은 사실 '셋째날'에 일어난 사건은 우연이 아니며, 동시에 '혼인잔치집'에서 일어난 것도 우연히 아닌 것이다(1절). 왜냐하면 이 사건의 시작을 사도 요한은 '셋째 날에'로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날이 셋째 날이었다는 것은 사도 요한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장에서 '이튿날에'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오듯,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났었는가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세례받으시던 날이 첫째 날이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일컬었다. 그날이 또한 둘째 날이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언급하였다. 그날은 적어도 두 명의 자신의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었던 셋째 날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은 후에 다시 셋째 날이라고 했으니(요2:1), 이날은 실제로는 여섯째 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섯째 날이란 대체 어떤 날을 가리키는가? 그 날은 한 마디로, 천지창조 때에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던 바로 그날이요 이 둘이 하나가 되던 결혼식 날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께 여섯째날에 이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은 창조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때는 아담과 하와만이 결혼하던 날이었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예수님과 성도들이 신랑과 신부로 참여하는 결혼식을 치를 날이기 때문에, 미리 예표적으로 이날에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이다. 그리하여 잔치의 기쁨을 한층 더하신 것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이 날을 '여섯째 날'이라고 하지 않고 '셋째 날'이라고 기록한 것은 예수께서 셋째 날에 부활하셔서 영광을 얻으시는 날도 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등장하는 소품까지도 이 사건이 창조의 마지막 날이자 동시에 안식의 날을 앞 둔 여섯째 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유대인의 정결 의식(율법)에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봉사자들이 이 여섯 항아리에 아구까지 물을 채웠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섯째 날 맨 마지막 시간에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이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6. 사람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어떻게 해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 사건을 바라볼 때 예수님의 측면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우리 인간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사람에게 왜 기적이 필요하며 또한 어떻게 해야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지도 알려준다. 

  첫째로, 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함께하는 기적이 필요한 것인가? 그 답은 간단하다. 인간의 계획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랑이 이 결혼잔치를 위해 얼마나 꼼꼼하게 잔치계획을 세웠겠는가! 잔치에 먹을 것이 떨어지거나 마실 것이 떨어진다면 신랑에게는 아주 수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랑은 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를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포도주가 동이 나서 모자라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다. 그런데 그 시각에 어디가서 포도주를 마련해 온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곳에 전능자께서 함께 하고 있었다. 

  둘째로, 어떻게 될 때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될 때 사람에게도 기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이 사건에 따르면 3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에는 예수님께 청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찾아서 부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그 일은 마리아의 몫이었다. 마리아는 이 잔치의 주관자의 입장이었기에 그것에 대한 책임을 일부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예수님과 의논한 것은 아주 잘한 것이다. 또 하나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마리아의 몫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예수님을 잉태할 때부터 아주 특별한 소식들을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그녀에게 나타나 그녀에게 잉태될 자는 성령으로 잉태될 자이며,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질 것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가 탄생하던 날에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와서 그녀에게 말하기를 그 아이는 이 세상을 구원할 구주이며 그리스도이자 주님이라는 것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동방박사으로부터 그 아이가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들은 것도 있었고, 예수께서 12살 때에는 성전을 자기의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했던 것도 가슴에 새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슨 일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 문제를 연회장이나 신랑과 의논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가져간 것이다. 그분은 모든 것을 수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그 잔치집의 일꾼으로 봉사하고 있었던 봉사자들의 순종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때 일하던 일꾼들을 '하인들'이라고 번역해 놓았지만 실제는 '하인들(둘로스)'가 아니라 '봉사자들(디아코노스)'이다. 이들은 자원하여 그 잔치일을 도우러 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봉사자들에게 마리아가 말했다. "그가 혹 너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너희는 그대로 행하라(5절)" 이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시키는 일이 혹 사리에 맞지 않고 이상하게 들릴지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말고 즉시 행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이 그대로 시행한 것이다. 빈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운 것이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이제는 그것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다. 그때 연회장은 이미 포도주가 된 채 있는 물을 마시고는 감탄을 하면서 신랑을 불러 칭찬을 한다. "모든 사람은 처음에 좋은 포도주를 내놓는 것이 일반이오. 그리고 그들이 취하게 된 때에 더 못한 것을 내놓기 마련이라오. 그런데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간직한 채 있었소(10절)". 사실 찬사는 예수께서 받으셔야 마땅한 것이지만 새로 맛 본 포도주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를 몰랐던 연회장은 신랑을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당신이 행하신 일도 감추신다. 얼마나 겸손한 미덕인가?

 

7. 나오며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신 첫번째 표적은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마리아의 부탁에 대한 결과이지만 실제는 제자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 사건은 예수께서도 앞으로 자신의 공생애를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표적이었다. 즉 예수께서도 자신을 어떻게 십자가의 제물로 바치며 또한 죽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장차 천국에서 진행될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염두해두시고 행하신 기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께서 전능하신 창조주이자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또한 이 사건을 통하여 모든 인생은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렇더라도 그러한 위기를 타계할 방법이 예수님에게 있음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곧 '기도'(청원)와 절대적인 '믿음'과 절대적인 '순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내게 진정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이 사건의 사람들처럼 주님을 경험하고 주님의 능력을 맛보는데,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게 필요하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지금 그것을 구하고 믿음으로 반응해보자. 왜냐하면 예수께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그때에는 우리도 역시 물떠온 봉사자들처럼 놀라운 기적을 맛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08월 3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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