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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Oz78Yh09CfQ
날짜 2022-09-28
본문말씀 요한복음 3:22~36(신약 146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세례요한,세례요한에대한평가,세례,세례요한의제자들의불평,위로부터오시는이,땅에속한이,하나님이보내신이,영생,하나님의진노

2022-09-28(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14) 세례요한에 대한 재평가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의 증언(요3:22~3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Oz78Yh09CfQ  [혹은 https://tv.naver.com/v/29537866 ]

 

1. 들어가며

  사람은 자신만의 선입관을 가질 수 있다. 이전에 들어왔던 것이 있고, 그것이 점차 고정화될 때에 그것은 이내 고정관념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에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아니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결국 사람에 대한 평가를 잘못 내리는데 일조한다는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를 다시 들여다 보려고 한다. 세례 요한은 정말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인가? 아니면, 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된 사람인가?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예수님의 탁월성 및 그분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볼 것인데, 예수님에 대한 반응에 따라 어떤 사람은 영생을 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 안에 머물기도 한다는 것을 함께 살펴볼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반응이 중요한 것이다. 

 

2.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왜 투덜대기 시작했으며 이때 세례 요한은 그것을 어떻게 해소시켰는가?

  어느 날이었다. 한 유대인이 찾아와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정결예식 곧 세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논쟁이 붙었다(요3:24~25). 그러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그 문제를 자기의 스승에게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그것은 스승인 세례 요한이 증언했던 이 곧 예수님께서 자기들과 떨어진 곳에서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그리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냐고 물은 것이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은 만약 그것이 하늘에서 주어진 채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라고 말하였다(요3:27). 그리고 자신은 그리스도가 결코 아니며 또한 그분 앞에서 파송받은 채 있는 선구자라는 것을 증언해 줄 자가 바로 자기의 제자들이라고 말했다(요3:28).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 때문에 기뻐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은 신부가 신랑을 찾아가는 것이므로,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은 신랑의 친구로서 매우 기쁘다고 하였던 것이다(요3:29). 그래서 그분은 더욱 더 커지고 그분의 사역은 증가되어야 하겠고 자신은 더 작아지고 자신의 사역은 감소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요3:30).

 

3. 요한복음에서는 세례요한을 어떤 사람이라고 언급하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요한복음에 나와있는 세례 요한에 대한 기사만을 읽는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세례 요한을 추켜세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과 관련지어서 자신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사명대로 자신의 일에 충성했던 이이자 겸손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은 '빛'이 아니라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고 하였으며(요1:6~9), 자신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 불과한 자라고 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은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합당하지 않는 자라고 말했으며(요1:23~27), 자신의 존재목적은 그리스도를 이 땅에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요1:31). 그렇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누구이며,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았던 자이다. 예수님은 먼저 계신 이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라는 것을 세례 요한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땅에서 난 이로써 땅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요3:31). 그러므로 그는 자신은 점점 더 약해져야 하고 이제 예수님께서 더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4. 오늘날 세례 요한을 저평가하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런데 오늘날 교회 가운데 세례 요한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진짜로 세례 요한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 보다도 더 작은 자로 있는가? 나중에 천국에 가 보면 다 알겠지만 천국에서 세례 요한은 24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세례 요한은 실제보다 더 작은 자로 평가받고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는 기사들 중에서 마태복음 11장과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죽음직전의 사건과 예수님의 평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1장이나 혹은 누가복음 7장에 의하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 때문에 실족한 사람처럼 나오고, 그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잘못 해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1장에 의하면, 세례 요한이 죽기 전에 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내리신 평가가 나온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평가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이 평가에 대한 해석이 아주 분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과연 세례 요한에게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셨는가? 그것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보다더 더 나은(뛰어난) 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마11:9). 왜 그런가?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들 중의 마지막 주자로서, 메시야(그리스도)가 바로 이분이라고 소개했던 최종 주자였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만 예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그 메시야가 바로 이분입니다"라고 소개한 마지막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던 것이다. 둘째,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라고 하셨다(마11:11a).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기 전에 먼저 그 앞길을 예비하는 선구자가 세례 요한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일으켜진 채 없다고 하셨다(마11:11). 고로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라는 의미는 무슨 뜻인가? 그것은 죄인으로서 여인으로부터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 요한이 최고라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따라 사가랴와 엘리샤벳 사이에 잉태되어 태어났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는 모태로부터 성령으로 충만케 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그는 어려서 광야로 보내져서 금식과 기도로 단련되고 영성으로 무장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30년동안 그는 광야에서 지냈다. 넷째로, 그가 30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했던 자였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그는 제사장과 선지자로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예수님에게 안수를 통해 인류의 죄를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게 했기 때문이다. 여섯째로, 그는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셋째, 세례 요한이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예수님의 평가다(요11:11b). 이 말씀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아주 저급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를 천국에서 진짜로 가장 작은 자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세례 요한이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세례 요한이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그것은 보통 2가지로 해석되어 왔다. 첫째는 세례 요한이 마지막에 가서 실족했기 때문에 천국에서 진짜로 가장 작은 자로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니까 천국에 있는 성도들은 중에 실제로 세례 요한보다 더 작은 자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세례 요한이 마지막에 죽기 전에 실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자신의 제자를 예수님에게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마11:3).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례 요한이 질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지를 모르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요 자신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파송받아 온 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몰라서 질문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데 돌아보지 아니하는 것을 조금 섭섭해서 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 하나 잘못했다고 세례 요한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 전락해버린 것일까? 둘째는, 세례 요한은 구약시대의 인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은 마지막 주자였고, 그후부터는 구원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그가 가장 작은 자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과 가까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본다면, 세례요한은 예수님 밖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안에 성령으로서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는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구약의 성도나 신약의 성도나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백성이기도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성도라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을 얻고, 신약의 성도라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는 것은 아닌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늦게 태어난 게 더 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 보라. 구약의 성도라고 해서 신약의 성도보다 못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 대한 가장 바른 해석은 무엇인가?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는 이 말씀을 우리가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로, 이 말씀이 헬라어 원문에서는 어떻게 나와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천국에서 작은 자가 되거나 큰 자가 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첫째로,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렇다. "그런데 하늘들의 왕국 안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그이보다는 더 크다"이다. 먼저는 이 말씀이 앞 문장을 뒤집는 역접의 문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러나'가 아니라 '그런데'라고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의 정의도 맞는 것이지만 그런데' 다른 말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준이 '천국 안에서'라고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천국 안에 있는 성도들이라면 아직 이 세상에 살아있는 세례 요한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인생을 마칠 때 어떤 사람이 될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그만 실족해버리면(걸려 미끄러지면) 그가 쌓아놓은 모든 것이 결국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 안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은 이 땅에 지금 살고 있는 어떤 성도들보다도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작은 자가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즉 천국에서 받을 지위는 어떤 이유로 변동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사실 천국에서의 지위는 그 사람이 이 땅에서 행한 것으로 인해 결정되는데, 혹시 실수하여 잘못을 범했다고 할지라도 이미 하늘에 올라가 있는 것들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늘이 이미 쌓아둔 것이 허물어지는 유일한 경우가 있기는 있는데, 그것은 그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그 사람이 일평생 수고하여 쌓아둔 하늘의 것들은 절대 없어지거나 허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일평생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하여 30년을 준비하여 예수님을 메시야로 드러내었고 소개한 일과 예수님이 세례받으러 오실 때까지 회개를 외치며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했던 모든 것은 다 하늘에 남아 있다. 마지막에 가서 그의 섭섭한 말 한 마디로 인해 그것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로 고스란히 하늘에 남아 있는 것이다. 사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는 예수께서 메시야인지 몰라서 "당신이 오실 그이입니까"라고 질문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옥에 갇혀 있는데도 자신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예수님에 대해 조금 섭섭한 마음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는 그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는 미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자면 그는 선지자들의 중의 최고이며, 여자가 낳은 자 곧 죄인이 낳은 자 중에 최고였지만, 아직 그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아직 그들보다는 작은 자였던 것이다. 

 

6. 세례 요한에 대한 사도 요한의 평가는 어떠한가?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위로부터 곧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계시는 이'이신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신 분이시지만, 땅에서부터 있는 이이자 땅에 속해 있는 이인 세례 요한은 땅에서 말하고 있는 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말 자체부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그분이 스스로 지어내서 하신 말씀이 없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신 말씀은 당신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셨던 아버지께서 그에게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기에(요12:49~50), 그 말을 그대로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아요 나를 보냈던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14:24)"이라고 하셨다. 즉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의 레마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고 계셨던 것이다(요3:34).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에는 실수가 없다. 즉 예수님의 말씀에는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으며, 불필요한 말씀도 하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달랐다. 그는 땅에서 난 자이기 때문에 말에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섭섭함을 표현하는 말도 간혹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얼마나 그 사람 위에 부어주셨는가 하는 것에 달려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는 성령을 한량 없이 부어주셨지만, 세례 요한에게는 그렇게까지 부어주지는 않으셨던 것이다(요3:34).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는 심판의 권한 마저 주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셨지만 직접 사람이 되어 육체를 입으셨기 때문이요, 육신을 입어 인류의 죄를 속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차 우주의 종말이 찾아올 때,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이는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요5:22,27). 그리고 그분이 죽고 부활하실 때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고(마28:18), 사망의 음부의 열쇠마저 가지셨다(계1:17~18). 

 

7. 사람이 영생을 얻기도 하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떨어지기도 하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렇다면 사람이 최종적으로 영생을 얻기도 하고 혹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머물러 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그것을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으며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요3:36). 즉 하나님의 아들을 계속해서 믿고 있는 자는 결국 영생에 이른다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영생'이란 '다음 시대의 생명'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사람이 죽고 났을 때에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우리 죄인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믿고 그분의 음성을 순종하며 산다면, 그는 틀림없이 죽어서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즉 다음 시대에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땅에 살면서도 아들을 믿기를 거부하며, 그분의 음성에 불순종하며 산다면,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을 뿌리친 것이 되어 자신이 지은 죄의 댓가를 자신이 치러야 할 것이다. 또한 이전부터 이미 운명 지워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마침내 받고 말 것이다. 즉 그런 자 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가 살아있을 때에 주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야 하며, 그분을 믿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한 사람을 영생과 하나님의 진노로 나누기 때문이다. 

 

8. 나오며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세례 요한에 대해서 아주 얕은 평가를 하고 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 세례 요한이 살아있는 당시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그는 아직 죽지 않아서 그가 어떤 사람으로 천국에 들어갈 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천국 안에 있는 성도들에 비해서 그는 아주 작은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최종적인 상태는 우리가 죽을 때에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죽기 전에 우리가 어떤 말을 하며 어떠한 믿음으로 죽게 될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주인공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쌓아놓은 모든 상을 다 얻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에는 천국 집도 있을 것이고, 면류관도 있을 것이고,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지위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전부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준비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천국에 상이 준비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음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한다. 아직도 천국에서 받을 영원한 상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은 오직 예수님을 믿은 자가 얼마나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또한 충성했는가에 달려 있다. 그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거나 그분의 음성을 불순종하여 날마다 죄짓고 산다면 그는 죽을 때에 결코 영생을 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아들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시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면 즉시 회개하기를 바란다. 성령께서 어떤 것을 하라고 지시하면 즉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천국에서 어떤 자가 되는지를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때에 과연 나는 칭찬을 받고 상급받는 자가 될 것인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떨어질 것인가를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2022년 09월 28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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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2.10.04 19:24

    1. 들어가며

      사람은 자신만의 선입관을 가질 수 있다. 이전에 들어왔던 것이 있고, 그것이 점차 고정화될 때에 그것은 이내 고정 관념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에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아니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선입견이나 고정 관념이 결국 사람에 대한 평가를 잘못 내리는데 일조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를 다시 들여다보려고 한다. 세례 요한은 정말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인가? 아니면, 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된 사람인가?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예수님의 탁월성 및 그분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볼 것인데, 예수님에 대한 반응에 따라 어떤 사람은 영생을 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 안에 머물기도 한다는 것을 함께 살펴볼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반응이 중요한 것이다. 

     

    2.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왜 투덜대기 시작했으며 이때 세례 요한은 그것을 어떻게 해소시켰는가?

      어느 날이었다. 한 유대인이 찾아와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정결 예식 곧 세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논쟁이 붙었다(요3:24~25). 그러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그 문제를 자기의 스승에게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그것은 스승인 세례 요한이 증언했던 이 곧 예수님께서 자기들과 떨어진 곳에서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그리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냐고 물은 것이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은 만약 그것이 하늘에서 주어진 채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라고 말하였다(요3:27). 그리고 자신은 그리스도가 결코 아니며 또한 그분 앞에서 파송받은 채 있는 선구자라는 것을 증언해 줄 자가 바로 자기의 제자들이라고 말했다(요3:28).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 때문에 기뻐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은 신부가 신랑을 찾아가는 것이므로,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은 신랑의 친구로서 매우 기쁘다고 하였던 것이다(요3:29). 그래서 그분은 더욱 더 커지고 그분의 사역은 증가되어야 하겠고 자신은 더 작아지고 자신의 사역은 감소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요3:30).

     

    3. 요한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을 어떤 사람이라고 언급하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요한복음에 나와 있는 세례 요한에 대한 기사만을 읽는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세례 요한을 추켜 세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과 관련지어서 자신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사명대로 자신의 일에 충성했던 이이자 겸손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은 '빛'이 아니라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고 하였으며(요1:6~9), 자신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 불과한 자라고 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은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합당하지 않는 자라고 말했으며(요1:23~27), 자신의 존재 목적은 그리스도를 이 땅에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요1:31). 그렇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누구이며,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았던 자이다. 예수님은 먼저 계신 이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라는 것을 세례 요한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땅에서 난 이로써 땅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요3:31). 그러므로 그는 자신은 점점 더 약해져야 하고 이제 예수님께서 더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4. 오늘날 세례 요한을 저평가하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런데 오늘날 교회 가운데 세례 요한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진짜로 세례 요한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 보다도 더 작은 자로 있는가? 나중에 천국에 가 보면 다 알겠지만 천국에서 세례 요한은 24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세례 요한은 실제보다 더 작은 자로 평가받고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는 기사들 중에서 마태복음 11장과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죽음 직전의 사건과 예수님의 평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1장이나 혹은 누가복음 7장에 의하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 때문에 실족한 사람처럼 나오고, 그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잘못 해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1장에 의하면, 세례 요한이 죽기 전에 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내리신 평가가 나온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평가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이 평가에 대한 해석이 아주 분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과연 세례 요한에게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셨는가? 그것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보다 더 나은(뛰어난) 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마11:9). 왜 그런가?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들 중의 마지막 주자로서, 메시야(그리스도)가 바로 이분이라고 소개했던 최종 주자였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만 예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그 메시야가 바로 이분입니다"라고 소개한 마지막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던 것이다. 둘째,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라고 하셨다(마11:11a).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기 전에 먼저 그 앞길을 예비하는 선구자가 세례 요한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일으켜진 채 없다고 하셨다(마11:11). 고로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라는 의미는 무슨 뜻인가? 그것은 죄인으로서 여인으로부터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 요한이 최고라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따라 사가랴와 엘리샤벳 사이에 잉태되어 태어났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는 모태로부터 성령으로 충만케 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그는 어려서 광야로 보내져서 금식과 기도로 단련되고 영성으로 무장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30년 동안 그는 광야에서 지냈다. 넷째로, 그가 30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했던 자였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그는 제사장과 선지자로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예수님에게 안수를 통해 인류의 죄를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게 했기 때문이다. 여섯째로, 그는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셋째, 세례 요한이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예수님의 평가다(요11:11b). 이 말씀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아주 저급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를 천국에서 진짜로 가장 작은 자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세례 요한이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세례 요한이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그것은 보통 2가지로 해석되어 왔다. 첫째는 세례 요한이 마지막에 가서 실족했기 때문에 천국에서 진짜로 가장 작은 자로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니까 천국에 있는 성도들 중에 실제로 세례 요한보다 더 작은 자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세례 요한이 마지막에 죽기 전에 실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자신의 제자를 예수님에게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마11:3).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례 요한 질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지를 모르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요 자신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파송받아 온 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몰라서 질문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데 돌아보지 아니하는 것을 조금 섭섭해서 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 하나 잘못했다고 세례 요한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 전락해버린 것일까? 둘째는,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의 인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은 마지막 주자였고, 그후부터는 구원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그가 가장 작은 자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과 가까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본다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 밖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안에 성령으로서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는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구약의 성도나 신약의 성도나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백성이기도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성도라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을 얻고, 신약의 성도라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는 것은 아닌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늦게 태어난 게 더 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 보라. 구약의 성도라고 해서 신약의 성도보다 못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 대한 가장 바른 해석은 무엇인가?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는 이 말씀을 우리가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로, 이 말씀이 헬라어 원문에는 어떻게 나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천국에서 작은 자가 되거나 큰 자가 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첫째로,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렇다. "그런데 하늘들의 왕국 안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그이보다는 더 크다"이다. 먼저는 이 말씀이 앞 문장을 뒤집는 역접의 문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러나'가 아니라 '그런데'라고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의 정의도 맞는 것이지만 그런데' 다른 말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준이 '천국 안에서'라고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천국 안에 있는 성도들이라면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세례 요한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인생을 마칠 때 어떤 사람이 될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그만 실족해버리면(걸려 미끄러지면) 그가 쌓아 놓은 모든 것이 결국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 안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은 이 땅에 지금 살고 있는 어떤 성도들보다도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작은 자가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즉 천국에서 받을 지위는 어떤 이유로 변동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사실 천국에서의 지위는 그 사람이 이 땅에서 행한 것으로 인해 결정되는데, 혹시 실수하여 잘못을 범했다고 할지라도 이미 하늘에 올라가 있는 것들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늘 이미 쌓아 둔 것이 허물어지는 유일한 경우가 있기는 있는데, 그것은 그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그 사람이 일평생 수고하여 쌓아 둔 하늘의 것들은 절대 없어지거나 허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일평생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하여 30년을 준비하여 예수님을 메시야로 드러내었고 소개한 일과 예수님이 세례받으러 오실 때까지 회개를 외치며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했던 모든 것은 다 하늘에 남아 있다. 마지막에 가서 그의 섭섭한 말 한 마디로 인해 그것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로 고스란히 하늘에 남아 있는 것이다. 사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는 예수께서 메시야인지 몰라서 "당신이 오실 그이입니까"라고 질문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옥에 갇혀 있는데도 자신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예수님에 대해 조금 섭섭한 마음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는 그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는 미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자면 그는 선지자들의 중의 최고이며, 여자가 낳은 자 곧 죄인이 낳은 자 중에 최고였지만, 아직 그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아직 그들보다는 작은 자였던 것이다. 

     

    6. 세례 요한에 대한 사도 요한의 평가는 어떠한가?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위로부터 곧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계시는 이'이신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신 분이시지만, 땅에서부터 있는 이이자 땅에 속해 있는 이인 세례 요한은 땅에서 말하고 있는 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말 자체부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그분이 스스로 지어내서 하신 말씀이 없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신 말씀은 당신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셨던 아버지께서 그에게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기에(요12:49~50), 그 말을 그대로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냈던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14:24)"이라고 하셨다. 즉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의 레마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고 계셨던 것이다(요3:34).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에는 실수가 없다. 즉 예수님의 말씀에는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으며, 불필요한 말씀이 하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달랐다. 그는 땅에서 난 자이기 때문에 말에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섭섭함을 표현하는 말도 간혹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얼마나 그 사람 위에 부어 주셨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는 성령을 한량 없이 부어 주셨지만, 세례 요한에게는 그렇게까지 부어 주지는 않으셨던 것이다(요3:34).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는 심판의 권한 마저 주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셨지만 직접 사람이 되어 육체를 입으셨기 때문이요, 육신을 입어 인류의 죄를 속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차 우주의 종말이 찾아올 때,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이는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요5:22,27). 그리고 그분이 죽고 부활하실 때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고(마28:18), 사망의 음부의 열쇠마저 가지셨다(계1:17~18). 

     

    7. 사람이 영생을 얻기도 하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떨어지기도 하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렇다면 사람이 최종적으로 영생을 얻기도 하고 혹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머물러 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그것을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으며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요3:36). 즉 하나님의 아들을 계속해서 믿고 있는 자는 결국 영생에 이른다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영생'이란 '다음 시대의 생명'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사람이 죽고 났을 때에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우리 죄인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믿고 그분의 음성을 순종하며 산다면, 그는 틀림없이 죽어서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즉 다음 시대에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땅에 살면서도 아들을 믿기를 거부하며, 그분의 음성에 불순종하며 산다면,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을 뿌리친 것이 되어 자신이 지은 죄의 댓가를 자신이 치러야 할 것이다. 또한 이전부터 이미 운명 지워져 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마침내 받고 말 것이다. 즉 그런 자 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가 살아 있을 때에 주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야 하며, 그분을 믿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한 사람을 영생과 하나님의 진노로 나누기 때문이다. 

     

    8. 나오며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세례 요한에 대해서 아주 얕은 평가를 하고 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 세례 요한이 살아 있는 당시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그는 아직 죽지 않아서 그가 어떤 사람으로 천국에 들어갈 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천국 안에 있는 성도들에 비해서 그는 아주 작은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최종적인 상태는 우리가 죽을 때에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죽기 전에 우리가 어떤 말을 하며 어떠한 믿음으로 죽게 될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주인공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쌓아 놓은 모든 상을 다 얻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에는 천국집도 있을 것이고, 면류관도 있을 것이고,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지위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전부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준비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천국에 상이 준비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음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한다. 아직도 천국에서 받을 영원한 상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은 오직 예수님을 믿은 자가 얼마나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또한 충성했는가에 달려 있다. 그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거나 그분의 음성을 불순종하여 날마다 죄짓고 산다면 그는 죽을 때에 결코 영생을 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아들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시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면 즉시 회개하기를 바란다. 성령께서 어떤 것을 하라고 지시하면 즉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천국에서 어떤 자가 되는지를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때에 과연 나는 칭찬을 받고 상급받는 자가 될 것인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떨어질 것인가를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2022년 09월 28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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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야고보서강해(05) 세속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법(약4:1~17)_2022-04-27(수)

    세속적인 삶은 결국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를 새 예루살렘 성밖에 살게 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가 생명책에서 이미 기록된 자기의 이름이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세속적인 삶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
    Date2022.04.27 By갈렙 Views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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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야고보서강해(04) 올바른 혀의 사용과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약3:1~18)_2022-04-20(수)

    잠언기자는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다고 말했다(잠18:21).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말이 야고보서에도 등장한다. 그는 어느 누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는 자신의 말과 지혜를 통하여 자기가 올바른 믿음 안에 서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
    Date2022.04.20 By갈렙 Views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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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야고보서강해(03)이웃사랑 계명 실천과 행함 없는 믿음의 허구와 실상(약2;1~26)_2022-04-06(수)

    왜 성도들은 이웃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가? 과연 믿음만 붙들고 있어도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구원을 받아서 장차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오늘 야고보서 2장과 마주 대하...
    Date2022.04.06 By갈렙 Views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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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야고보서강해(02) 야고보가 말하는 시험과 은사 및 참된 경건이란 대체 무엇인가?(약1:13~27)_2022-03-30(수)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친동생이다. 그런데 야고보서의 저작 시기는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왜냐하면 이 책의 기록 시기가 A.D.45~49년경이라고 보면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유대인들의 유일신앙과 예수님에 대한 높여진 신앙고백이 동...
    Date2022.03.30 By갈렙 Views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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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야고보서강해(01) 야고보서 대체 어떤 책인가?(약1:1~12)_2022-03-23(수)

    보통 그리스도인들에게 '야고보서'하면,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이신칭의의 복음과 충돌되는 책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책이 그러한 책인가? 이 책은 정말 사도적인 저작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
    Date2022.03.23 By갈렙 Views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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