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15) 생수와 예배에 관하여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말씀(요4:1~42)_2022-10-05(수)

by 갈렙 posted Oct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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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EMzCkOuNO40
날짜 2022-10-05
본문말씀 요한복음 4:1~42(신약 14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사마리아,수가성,생수,예배,추수,그리스도,야곱보다큰이,선지자,세상의구주,영과진리로예배,상종하지않음

2022-10-05(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15) 생수와 예배에 관하여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말씀(요4:1~42)_2022-10-05(수)

https://youtu.be/EMzCkOuNO40  [혹은 https://tv.naver.com/v/29743485 ]

 

1. 들어가며

  사마리아 여인, 그녀는 사마리아의 수가성에 살고 있던 어떤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물을 뜨러 왔다가 예수님과 마주치게 된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시면서, 왜 베뢰아를 거쳐서 가는 우회 길을 선택하지 아니하시고 그날 따라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는 직행로의 길을 선택한 것인가? 혹시 그 여인을 만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더 큰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일까? 그때 예수께서 그녀에게 주실 수 있다고 하신 '생수'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리고 그 여인이 질문했던 '예배'의 핵심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사마리아 여인은 사마리아 동네의 창녀였던 것일까? 우리는 요한복음 4장에 관련지어 참으로 질문할 것도 많이 가지고 있고 알아볼 것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혼의 갈증은 예수님을 만나면 끝이 난다"는 제목의 설교의 본문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전도법 강의에 주요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요한복음 4장의 핵심 주제는 대체 무엇인 것인가? 오늘은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이 이야기의 주제를 한 번 살펴보고, 그동안 풀지 못했던 궁금증들을 풀어봄으로서 주님이 주신 위대한 말씀의 진면목을 함께 나누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요한복음 4:1~42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대체 무엇인가?

  요한복음 4:1~42절에는 사실 3가지 중요한 작은 주제가 나온다. 첫째는 '생수'를 주제로 하여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께서 대화를 나눴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예배'를 주제로 하여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께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추수에 관하여 예수께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눴다는 내용이 이어 나온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4:1~42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대체 무엇인가? '생수'인가, '예배'인가, '추수'인가? 오늘 본문을 다 공부하고 나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만,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은 '추수'라는 거대한 주제 가운데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 그리고 제자들과의 대화 및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대화가 등장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다른 길을 통해서 갈릴리로 갈 수도 있으셨는데, 일부러 사마리아 길을 통과하여 가는 것을 선택하셨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또한 그분의 양식이 다름이 아니라 이 땅에 '자신을 보내셨던 이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요4:34)이라는 말씀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곧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일부러 사마리아로 가신 것이다(요4:6). 헬라어 원문을 보면, 그와 같은 사실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데, 특히 4절 말씀에, "그런데 그분은 사마리아를 통하여 통과하여 가는 것을 반드시 해야만 하셨다(원문)"는 말씀에 들어 있다. 그렇다. 그분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제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셨다. 그러고는 희어져 추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을 향해 일부러 찾아가신 것이다. 그때에 가장 먼저 사마리아 전도의 첫 시작점으로 주님의 눈에 들어온 사람을 만났으니 그가 바로 우물가의 한 여인이다. 

 

3. 사마리아 여인은 정말 창녀였는가?

  그렇다면 그날 물을 뜨러왔던 여인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과연 '창녀'였을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녀의 신분을 창녀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느 때에 신부가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했는데, 그녀가 창녀였다고 설교함으로 대부분의 주석들이 이 여자를 창녀로 주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4장에서는 그녀를 어떤 여자로 표현하고 있는가? 그것은 창녀가 아니라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인으로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여자를 주님께서도 '귀네'라고 불렀기 때문이다(요4:21). 이것은 주님께서 그녀를 귀부인으로 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이 여자는 낮 12시에 물을 뜨러 온 것이 아니라 오후 6시에 물을 뜨러왔던 평범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요4:6). 왜냐하면 오늘 본문 6절에 의하면, 그 여인이 물을 뜨러 온 시각이 '대략 6시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그 시각이 오후 6시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 시간은 로마의 시간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힌 시간을 요한복음 19장에서도 로마시간법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준 시간이 '제 6시'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그 시각이 아침 6시였기 때문이다(요19:14).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쓴 복음서이기 때문에 공관복음의 시간 기록 방법처럼 유대인의 시간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그 시각은 예수께서 여행 중에 피곤해서 지쳐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다(요4:6). 즉 예수께서 낮 12시부터 피곤하여 물가에 앉으신 것이 아니라, 아침부터 온종일 걸으신 후에 비로소 저녁 6시쯤 되어 사마리아 동네에 도착하셨기 때문에 피곤하신 것이다. 셋째, 만약 이 여자가 창녀였다면 나중에 그녀가 동네에 들어가서 자신이 '메시야를 만났다'고 간증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창녀가 말한 것을 귀담아 듣고 예수님을 만나러 나올 사람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요4:28~30). 그런데 보라. 이 여인의 말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넷째, 이 여인은 남자를 여러 명 거느린 여자가 아니라 정식으로 남편을 다섯 명 두었지만 기구한 운명 때문에 그때 같이 살고 있던 남자와는 결혼도 못한 채 지내왔기 때문이다. 남편을 다섯 두었다는 것을 통해 그 여인을 창녀라고 볼 수 없다. 창녀는 남편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그녀는 기구한 운명 때문에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사별을 했거나 아니면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한 불쌍한 과거를 가진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로 만난 남자와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여인을 비롯한 사마리아 동네 사람들 전체가 당시 메시야를 매우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여인이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했을 때 동네 사람들도 메시야를 만나러 물가로 나아온 것이다. 

 

4. 예수께서는 어떻게 해서 여인에게 복된 소식을 전해주었는가?

  예수께서는 이미 선험적인 지식으로 사마리아 동네의 영적인 상황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군가가 그곳에 가서 복된 소식을 전해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번 기회에 직접 그곳에 가서 그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해주고 싶으셨다. 그래서 일부러 사마리아 동네를 향하여 간 것이다. 그래서로 그곳 마을의 입구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 그분이 멈춰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동네 사람 누군가는 물을 뜨러 그곳에 올 것이라고 예상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한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그리고 손에는 두레박을 가진 채 물을 뜨러 오고 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간단하게 물을 달라고 하는 청을 한다. 그러자 일반적인 일이었다면 그것은 너끈히 청을 들어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사마리아인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보였기에 그 청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녀는 예수님의 청을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까?" 그러자 주님은 그녀가 관심을 갖지 아니할 수 없는 말씀을 그녀에게 들려주신다. 그것은 만약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또한 그분이 줄 수 있는 선물 곧 생수가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오히려 자신에게 물을 좀 달라고 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님에게는 물을 길을 두레박도 없고, 그 우물은 매우 깊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떻게 생수를 가지고 있게 되었기에 그러한 말씀을 하는 것이냐면서 반문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우물 물을 마시는 자는 또다시 목마르겠지만 예수께서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물을 마시는 자의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구치는 물의 샘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자 그녀는 그러한 물이 정말 있다면 자기에게도 주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게 하고, 물을 긷기 위해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일상적인 화제를 통하여 영적인 진리를 이끌어내시고,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시키는 대화법을 통하여 그 여인을 전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5.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주실 수 있다고 하는 '생수'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생수(생명의 물)'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아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답이 들어있다. 첫째로, 그것은 그것을 한 번만 마시더라도 다음 시대까지 결코 목마르지 아니할 물이라고 하셨다(요4:14). 그리고 둘째로, 그 생수는 그것을 받은 자의 속에서 계속해서 솟아오르는 물의 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4:14).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생수라는 것은 이 세상의 물질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갈증을 영원히 해결해줄 그러한 물은 이 세상에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물이 이 세상의 물이 아니라 천국에서 오는 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에는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계22:1). 고로 이 물은 하나님의 생명(조에)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결국 생명을 가지고 사람 속에 들어오실 '성령'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사도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두 번씩이나 '하나님의 선물'을 '성령'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행8:20, 11:17). 또한 성령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하시면서 그분이 주실 수 있는 것은 '생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17). 그리고 예수께서도 초막절 끝날에 생수의 강에 대해 설교하시면서, 그것은 믿는 자의 뱃속에서 솟아올라오는 성령의 물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요7:37~39). 

요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그렇다.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실 수 있는 생명의 물은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성령이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게 되면, 사람의 영의 배에서부터 물이 올라와서 가슴을 채우게 된다. 그러면 그시로 그냥 만족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더이상 이 세상의 것을 가지지 않아도 부요한 마음으로 가득차게 되고 세상 것이 하나 없어도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6. 예수께서는 왜 뜬금없이 가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했을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생수를 달라고 하는 여인에게 가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다. 왜 예수께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달라고 하는 그 여인에게 갑자기 자신의 남편을 불러오라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죄인인 것을 모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죄의 문제 해결없이는 예수께서는 결코 성령을 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때 그 여인은 과연 어떻게 대답했을까? 그녀는 자신에게는 남편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그녀가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실은 그녀의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솔직하게 대답할 이유가 그녀에게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예수께서 그것을 직접 확인해야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예수님에게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도 그녀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그대로 고백하자, 그녀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를 들려준다. 그것은 그녀에게 지금까지 남편이 다섯 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죽어서 다시 재혼했는지 아니면 남편이 그녀를 버렸기 때문에 재혼했는지를 알 수는 없지만, 그녀는 이처럼 기구한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지금 간음을 저지르고 있는 상태와 같았다. 그렇지만 그것을 솔직하게 예수님에게 말씀드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모진 인생을 다 알고 있는 예수님을 가리켜, "당신은 선지자이십니다"라고 말한다. 

 

7. 여자는 왜 갑자기 예배할 장소를 물어본 것인가?

  자기의 눈 앞에 있는 유대인이 남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점차적으로 알게 된 여인은 예수께서 진정 선지자라면 알 수 있는 어떤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자기들이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물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말합니다. 예배하는 곳은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예배에 관한 진실을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대상을 예배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은 알지 못하는 대상을 예배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심산에서도 아니며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예배할 때가 오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때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영 안에서 진리로 예배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예배를 받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8.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렇다면,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예배의 핵심은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먼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면 그러한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영과 진리 안에서'라는 말의 뜻은 대체 무엇인가? 첫째, '영 안에서'라는 함은 유대인들이 예배드릴 때에 너무나 형식에 치우쳐 있었을 뿐 마음은 거기에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예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려 함이요, 둘째, '진리 안에서'라 함은 사마리아인들이 자기들이 정한 방식에 따라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 아님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의 형식적인 예배 방식도 잘못된 것이요, 말씀에 없이 자기들이 정한 방식에 따라 예배하는 사마리인들의 예배 방식도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어떠한 예배인가? 그것은 형식에 따라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서 마음을 다해 예배하는 것을 가리키며, 자기의 정한 방식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에 따라서 예배한느 것을 가리킨다. 

  그러자 그 여인이 말한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가 오시게 되면 그분은 전체의 모든 것을 다 알려주실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지금 네가 말하고 있는 이가 바로 그이이다'라고. 그러자 그녀는 지금까지 자기에게 일어났던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이해해버린다. 즉 자기와 말씀하고 있었던 바로 그이가 모세가 예언했던 '나와 같은 선지자'(신18:15)로서,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실 주실 메시야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자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 둔 채 동네로 들어간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향하여 크게 외친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9. 그 여자가 물동이까지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자신이 메시야를 만났다고 외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놀라은 현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첫째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분에게 감사하고 찬양하고 드리고 싶어서다. 그리고 둘째는 그분을 전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야를 만나자 그녀는 즉시 예배에 관해 질문한 것이다. 그리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자신이 행했던 만큼 많이 모든 것을 다 자신에게 말했던 사람을 와서 보라고 외친 것이다. 이분이 메시야가 아니라면 또 누구겠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그녀의 외침을 듣고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 야곱의 우물가로 몰려나온다. 그렇다. 한 여인의 능동적이고도 열성적인 외침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 모두가 메시야를 기다려왔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야가 왔다는 외침을 듣고는 메시야를 보기 위해서 우물가로 몰려온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때문에 예수님에게 나아온 것이지만, 나중에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듣고 메시야에게로 나아오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하게 된다(요4:42).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후에 몇 년이 지난다. 그리고 예수께서 인류의 속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 달려 돌아가신다. 그리고 생수와 같은 성령을 오순절날 마가다박방에 모인 120명의 유대인들에게 보내주신다. 그리고 스데반의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자들 중에 일곱 집사의 하나인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에도 복음을 전파하게 하신다(행8:4~13). 하지만 그때에 그들은 성령을 받지는 못한다. 그러자 예루살렘에서 이 소식을 들었던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간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게 된다(행8:14~17). 그리하여 생수와 같은 성령을 값없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그대로 성취가 된다. 

 

10. 나오며

   예수께서는 왜 다른 길들을 놔두고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는 길을 선택하셨던 것일까? 그것은 사마리아가 이미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가서 그들을 추수해야 한다는 것을 아시고 처음으로 그 문을 열어젖히고자 일부러 그곳을 찾아가신 것이다. 그때에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가 바로 우물가를 찾아온 사마리아 여인이었다. 주님은 그녀가 메시야를 만나지 못해서 그때까지 자신의 영혼에 갈급함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는 그녀에게 생수에 관한 말씀을 시작으로 그녀에게 복음을 전하신다. 하지만 생수로 비유하신 성령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지 않는 자는 받을 수 없기에 그녀의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한다. 부끄러운 자신의 실상이지만 그녀가 솔직하게 예수님에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자신이 그녀가 찾고 있는 메시야라는 것을 가르쳐주신다.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참된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신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과 그동안 대화를 나눴던 분이 메시야이신 것을 알아차리고는, 동네 안으로 들어가서 메시야를 만난 소식을 기쁘게 전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희어져 추수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마리아에도 추수가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추수는 훗날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그렇다. 우리 주님께서는 지역과 인종과 민족에 상관없이 누구나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그들에게 값없이 생수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리고 누구든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 주님을 진정 예배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신다. 

 

2022년 10월 05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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