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20) 초막절에 행하신 생수의 강 설교와 예수님의 진정한 신분(요7:1~53)_2022-11-23(수)

by 갈렙 posted Nov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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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_vLNOY8Bw4
날짜 2022-11-23
본문말씀 요한복음 7:1~53(신약 15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초막절,성전방문,생명의강설교,38년된중풍병자,물의축제,불의축제,생명과빛이신예수그리스도,그선지자,그그리스도,

2022-11-23(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20) 초막절에 행하신 생수의 강 설교와 예수님의 진정한 신분(요7:1~5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_vLNOY8Bw4  [혹은 https://tv.naver.com/v/31023344 ]

 

1. 들어가며

  요한복음의 구조를 보면 조금 특이한 것을 한 가지 살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1~12장까지의 표적의 책을 보면, 여기에는 '7가지 표적들'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절기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즉 2장에서 가나 혼인잔치의 첫 번째 표적이 있은 후, '유월절'이 나온다(2:13,23). 그리고 4장에도 어떤 이름 모를 명절이 나오고(요4:45), 5장에서도 역시 '유대인의 명절'(아마도 '초막절'일 것으로 추정됨)과 함께 제3표적으로서 '38년 된 중풍병자의 치유'사건이 나온다(요5:1). 그리고 6장에서 또다시 '유월절'이 나오면서(요6:4) 제4표적으로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온다. 그리고 7장에서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나오고(요7:2, 10,11, 14, 37) 여기에서 '생수의 강 설교'가 나온다. 그리고 10장에 가면 '수전절'이 나오고(요10:22), 11장에서 제7표적으로서 나사로의 회생 사건이 나오고 '유대인의 유월절'이 나온다(요12:55). 그리고 이어지는 12장에서도 유월절 사건이 계속 보도된다(요12:1,12,20). 그렇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유대인의 절기와 예수님의 사건을 아주 중요하게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7장에 등장하는 '초막절' 절기는 대체 예수님의 어떤 것을 소개하기 위하여 함께 등장시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의 생수의 강 설교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2. 예수께서는 공생애 3년 차에 맞이하는 초막절에 무슨 일을 하셨는가?

  예수께서 공생애 3년 차가 되었을 때에 다시 초막절을 맞이한다. 이것은 공생애 2년 차에 맞이하는 초막절(요5:1) 이후 다시 맞이하는 초막절로서, 예수께서는 2년 차에 맞이하는 초막절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이번 초막절을 맞이하셨다. 그것은 일주일간 진행되는 초막절 초반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초막절 중간쯤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되 그것도 은밀히 올라가셨다. 그리고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는데, 그것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포함하는 내용이었다. 그 이유는 2년 차 초막절 기간에 행하셨던 38년 된 중풍병자의 치유가 결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요7:23~24). 왜냐하면 사람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도 할례를 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대인들 그 누구도 안식일에 할례를 준 것을 불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안식일날 38년 된 중풍병자의 전신을 건강하게 한 것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명절이 끝날 무렵에 예수께서는 무리들에게 '생명의 강'에 관한 설교를 하셨다. 

 

3. 예수께서는 왜 초막절 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초막절 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셨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모든 관심이 당신에게로 집중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요,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언제 당신이 영광을 얻으셔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신 것이다(요7:39). 그때는 예수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때인데, 그때는 앞으로 6개월이 지난 후에 유월절에 있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굳이 6개월 전부터 유대 당국자들(유대 종교 지도자들)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절기 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신 것이다. 그런데 그의 형제들은 생각이 달랐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추종자와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면 일찌감치 초막절 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라고 종용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대중 앞에 나타내라고 하였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형제들이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예수께서 과연 누구신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형님인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만세 전에 존재하고 있던 하나님의 아들께서 왜 이 세상에 들어오셔야 했는가? 그것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동생들은 그와 같은 뜻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4. 예수께서 초막절 중반에 비로소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본래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초막절 중반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본래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절기의 시작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신 이유는 사실 분명하다. 그것은 유대 당국자들(종교 지도자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굳이 절기의 중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지난 초막절 때에 안식일인데도 38년 된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은 예수께서 결코 불법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요7:21~24). 왜냐하면 비록 그날이 안식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8년 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제정자이자 사람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로 예수께서는 그날 초막절에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것이 결코 불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이다. 

  둘째는 그분이 누군지를 궁금해하고 있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는 이들에게 당신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초막절을 지키러 왔던 모든 이들의 최대 이슈는 과연 예수께서 이번 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올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해서는 단지 객관적인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요7:27). 그것은 그분이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며, 또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정보 뿐이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라는 사실은 맞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결코 갈릴리 나사렛에서 출생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호적 때문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다윗의 자손으로서(삼하7:12~13),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요7:42, 미5:2).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33대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이다(마1:6~16). 문제는 예수께서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그분을 보내셨다는 것이다(요7:28). 그리고 그분은 만세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신 분이라는 사실이다(요7:29). 이는 그분의 시작이 신적 기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셋째는, 초막절 기간에 꼭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초막절이 '물'의 축제이면서 동시에 '불'의 축제로 열리는 것인데, 그 축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들에게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분은 초막절의 끝날에 '생수의 강' 설교를 하셨다(요7:37~38). 그리고 초막절을 마치고 나서는 '세상의 빛'이라는 설교도 하셨다(요8:12).  

 

5. 예수께서 초막절에 행하신 생수의 강이라는 설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초막절 끝날 곧 큰 날에 서서 크게 이렇게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이 말씀은 누구든지 생명이 없어 영적인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자들은 다 예수께 나오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자신의 몸을 쪼개어 주시는 생명 곧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을 받게 된 자는 그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살아 있는 물의 강이 계속해서 흘러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핵심 요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그분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요1:4). 그분만이 하나님의 생명(조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어 그 생명을 얻어야만 생명을 얻고 영생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그 생명은 오직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깨뜨려 자기 속에서 나오는 성령으로 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있을 때에 반석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몸을 깨뜨려 죽음에 넘김으로써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면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듯 자신의 몸에서 성령께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 성령을 생수처럼 마시는 자는 더 이상 그의 영혼이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6. 예수께서는 생수의 강 설교를 굳이 초막절 절기의 끝날에 행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생수의 강 설교를 굳이 초막절 절기의 맨 끝날에 행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누구시며, 그분이 성령을 통해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의식들이 초막절에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시 초막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행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하나는 '물'의 이미지이고 또 하나는 '불'의 이미지인데, 이번 주에는 물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초막절 절기 내내 매일 아침이 되면, 제사장들이 실로암 못가에 가서 황금 주전자에 물을 길어다가 성전 제단의 서쪽의 굴뚝에 붓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행하는 제사장들도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 일은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그 물이 강물을 만들고 그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나게 하듯이, 오직 성전이신 예수님에게서 생명이 흘러나와 모든 사람을 살게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의식이었다. 

  둘째로, 초막절 절기 내내 사람들이 초막에 거주하고 또한 초막절 내내 제사장들을 따라다니면서 '아르바 미님'을 흔들면서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르바 미님'이란 레위기 23:40에 나오는 초막절 규정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에 흔드는 4가지 식물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째로, '아름다운 실과'를 흔들어야 했다. 이 실과는 '에트로그'라는 것으로서 그들은 이 노란색 과일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식물들의 가지들을 가리키는데, 하나는 종려나무 가지('룰라브')이고, 또 하나는 '무성한 나뭇가지('하다스')로서 도금양(은매화나무)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시내 버들'('아라바')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4가지 식물을 흔들라고 명령하신 것일까? 그것은 율법에는 그 뜻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께서 초막절에 행하신 '생수의 강'의 설교를 들어 보면, 그것은 전부 생명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이 없으면 과일을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나머지 3가지 나뭇가지들도 역시 물의 양에 따라 좀더 '오래 사는 나무가 있고(종려나무 가지)', 또한 '조금만 사는 나무도 있으며(도금양나무 가지)', 마지막으로 꺾자마자 바로 '금방 죽어 버리는 나무도 있다(시내버드나무 가지)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이 모든 식물들은 물이 없으면 모두가 다 말라 비틀어져 죽는 것들을 가리킨다. 고로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르바 미님을 흔들라고 하신 것은 나도 생명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세요"라는 의미에서 그 실과와 가지들을 흔들었던 것이다. 

 

7. 초막절 설교 후에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들이 보인 반응은 어떠했는가?

  그러자 예수님의 가르침과 설교를 들었던 무리들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반응하였다. 첫째는 이분은 모세가 신명기에 약속한 '바로 그 선지자'라고 하였다(요7:40). 예수께서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 땅에 오신 약속된 선지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둘째는 이분은 '그리스도'라고 하였다(요7:41).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성경이 말씀한 바로 그 메시야라는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판단한 것은 예수님처럼 행하실 분은 앞으로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요7:41). 셋째, 이분은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고도 하였다(요7:42). 왜냐하면 당시에 알려진 사실을 종합해 보면,사람들은 예수님을 갈릴리 출신의 선지자로 알고 있었을 뿐 유대 땅 베들레헴 출신의 사람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8. 유대 당국자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본 후 어떻게 대응했는가?

  그러자 유대 당국자(종교 지도자들)은 당황하였다. 사람들이 예수께 많이 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체포하도록 아랫사람들(성전 경비병들)을 보냈다. 그런데 잡으러 간 그들이 그만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당국자들은 왜 예수님을 잡아오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요7:46). 그러자 당국자들은 아랫사람들마저 미혹된 것이라고 단정하고는 당국자들(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 중에는 그분을 믿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향하여 "율법을 알지 못하는(안식일을 지키는 않는 예수님을 따르는) 저주받은 무리"라고 말하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자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자,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말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그리고 그가 행한 것을 알기도 전에 판단합니까?"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너도 갈릴리에서부터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느니라" 이들은 니고데모에게 면박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갈릴리에서도 선지자들이 나온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요나 선지자, 호세아 선지자, 나훔 선지자는 갈릴리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이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9. 나오며

  예수께서는 때를 정확히 읽고 계셨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분의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하셨다. 하지만 그분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분명하게 그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유대 당국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이 누구시며 무엇하러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 그분은 초막절 중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그분이 1년 전 초막절에 38년 된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이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초막절 기간 내내 그들에 행하는 초막절 규례(풍습)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수의 강 설교를 통해 분명히 선포하셨다. 그것은 장차 자신의 몸을 깨뜨려 나눠 주실 자신의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분은 먼저 광야의 신령한 만나이셨다(요6:35). 뿐만 아니라 그분은 광야의 신령한 반석이시기도 하다(고전10:3~4).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물을 찾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더러 반석을 쪼개 그 쪼개진 반석으로부터 물을 마시게 하셨다. 이처럼 예수께서도 역시 사람들의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것을 생명의 강 설교를 통해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예수께 나아와서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예수께서 장차 죽으시고 영광을 받으신 후에 그분이 보내 주실 성령을 통해서 이뤄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동안 초막절에 제사장들이 날마다 성전에 물붓는 의식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고, 백성들 역시 제사장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일주일 내내 4가지 식물을 흔들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생명이 필요하니 우리에게 생명을 달라고 말이다. 그것은 마치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성전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이 흘러나와서 자신들을 살려 달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2022년 11월 23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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