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27)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올 결과와 주님을 따를 자들의 진정한 각오(요12:20~50)_2023-02-08(수)

by 갈렙 posted Feb 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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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KoE8uAkbZpw
날짜 2023-02-08
본문말씀 요한복음 12:20~50(신약 16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예수님의죽음,한알의밀알,이세상임금(통치자),주님의제자,주님을따르는자,빛과생명,빛과어둠,유대인이예수님을믿지못하는이유,영안,마음이굳어짐,세상사랑

2023-02-08(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27)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올 결과와 주님을 따를 자들의 진정한 각오(요12:20~5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KoE8uAkbZpw [또는 https://tv.naver.com/v/33096949]

 

1. 들어가며

  예수께서 드디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런데 이번 예루살렘 방문은 여느 때와는 달랐다. 공생애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이지만, 이번 유월절 방문은 다른 방문 때와는 아주 많이 달랐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방문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아주 많이 소동케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죽은 지 나흘된 베다니의 나사로를 살렸다는 소문이 이미 예루살렘에도 다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감람산 벳바게까지 마중을 나가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바닥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면서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때로부터 나흘 뒤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신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대체 무슨 일을 하신 것인가?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는 달리 이후 예수께서 몇몇 헬라인들의 방문을 맞이함으로 4일간의 삶을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월요일에 일어났던 기사들은 다 생략한 채, 화요일에 있었던 일들을 이어서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입성 첫날에 예수께서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일까? 그리고 이때 들려주신 말씀은 공관복음서의 말씀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떤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2. 몇몇 헬라인의 방문을 맞이한 예수께서는 군중들을 향하여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예수께서 입성하시자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다. 이때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 관심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 헬라어를 말할 줄 아는 빌립과 안드레는 그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한다. 그때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향하여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것은 바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는 것이다(요12:23).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영광'이라는 말은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이 영예롭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분의 어떠하심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때를 위하여 이 땅에 들어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통하여 당신의 어떠하심을 드러내시려 하셨던 것이다. 고로 영광이란 바로 예수 안에 들어 있는 어떤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영광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어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요12:27~28). 그때 하늘에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라고 하는 음성이었다(요12:28). 사람들은 그 음성을 '천둥소리'였다고도 말하였고, '천사의 소리'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성부의 음성으로서, 이미 예수님을 통해 영광스럽게 한 일이 있고 앞으로도 예수님을 통해서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라는 음성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이미 과거에 아들을 영광스럽게 한 일이 있었으며, 이제 앞으로 또한 영광스럽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영광이라는 의미는 결국 하나님의 생명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을 가리킨다. 고로 결국 예수께서 생명을 가진 채 이 땅에 육신을 입은 몸으로 오신 것 곧 성육신이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한 일이 되는 것이며, 또한 장차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당신의 생명을 해방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3. 예수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2가지 결과는 무엇인가?

  이때 예수께서는 이방인의 방문을 통해, 이방인들을 포함한 온 인류를 위해 그분이 행하실 죽음의 놀라운 의미를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는, 그분이 이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음에 넘겨지게 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요12:24). 여기서 한 알의 밀알이란 생명을 소유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또한 많은 열매란 그 생명을 많은 자들이 받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은 예수님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해방하시는 것이었다. 그 생명은 절대 건드릴 수 없고 파괴할 수도 없으며 영원히 사는 생명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이 생명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으셨다(요5:26).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지상에 계셨을 때에는 오직 예수 안에만 이 생명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생명을 해방할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들이든지 상관없이 그것을 나눠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생명의 위대한 영광을 드러내실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을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게 됨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비유로서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는,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됨으로 이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 마귀를 바깥으로 내던질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2:31). 그렇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류의 죄사함과 생명 분배만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이 세상의 통치자로 있는 사탄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도 오신 것이다(요일3:8). 그리고 그 방법은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 위에서 죽음에 넘겨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때 당시 사탄 마귀는 아마도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이미 다 자기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데, 오직 한 사람 예수님만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만 죽여 없애버린다면, 모든 인류가 다 자기의 손아귀에 들어올 줄로 알았다. 하지만 마귀는 몰랐다. 그렇게 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면 그것은 자신이 불법을 저지르게 되어 심판받고 쫓겨난다는 것을 말이다.

 

4. 사탄 마귀는 언제 어떻게 어디로 쫓겨나게 되었는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탄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난 것을 창조시에 있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천지만물을 창조하기 전 혹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직후에 사탄 마귀의 타락이 있었으며, 그때 하늘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만약 사탄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난 것을 천지창조 전후로 본다면 성경 말씀 중에 틀린 부분이 나오게 된다. 왜냐하면 욥기서 1장과 2장을 읽어 보면, 사탄이 하나님 앞에 서서 보고하기를 "내가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의 허락을 받고 땅에 내려가서 욥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사탄은 어전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또한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미가야가 보았던 하나님의 보좌 환상이 나온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군대인 천사들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기를 자신이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아합왕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 하겠다고 제안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기에서도 역시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다. 그렇다. 구약시대에 사탄은 악한 일을 수행하는 자로서, 여전히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탄생 전후로 하늘에서 쫓겨난 듯하다. 그때 사탄은 혼자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천사들과 함께 쫓겨나게 되는데 이들이 결국 귀신이 된다(게12:7~9). 그래서 그때 이후로 사탄은 하나님을 모방하여 음부에 자신의 보좌를 만들어 놓고 귀신들의 통치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그도 비로소 예수께서 하나님에게도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을 시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고 시도한다. 이때 사탄은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였다. 이는 그도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잘 몰랐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런데 예수님은 악한 영들이 하나도 없는 깨끗한 분, 죄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예수님을 시험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시험을 다 물리쳐 이겨 버리신다. 그러자 잠시 물러나 있던 사탄이 작전을 세운 것은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죽이도록 조종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십자가에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게 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일은 죄 없는 사람에게 사망 권세를 사용한 것이 됨으로 사탄 마귀는 자신이 가진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예수님에게 내어 주고 지상에서 쫓겨나 아직까지 무저갱에서 못 올라오고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 대환난의 때에 잠깐 올라와서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게 될 터인데(계11:7, 17:8, 20:2~3,7~8), 그때 순교자의 숫자가 차게 됨으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바로 요12:31의 말씀에 이 세상의 통치자가 장차 '밖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하늘에서 쫓겨난 이후 이 세상의 통치자로 활동하고 있던 사탄 마귀가 무저갱으로 쫓겨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사탄 마귀는 그때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주님께 내어 준 채 무저갱에 갇히게 되는 신세가 된 것이다. 

 

5.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의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주어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분배하는 것임을 밝히셨다(요12:24). 이는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도 역시 자신의 목숨을 사랑하지 말고 그것을 미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12:25). 만약 자신의 목숨을 사랑하여 그것을 아낀다면 그는 자기의 목숨을 오히려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님을 믿고 따라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받기를 원하는 자는 이 세상에 속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요12:25). 그래서 주님처럼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자리까지도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도 역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정치적인 왕국을 세울 줄로 알았다. 그래서 주님이 세우신 왕국에서 자신을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것은 아버지께서 누구를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나중에 그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우선 주님을 따르는 자는 주님이 마시는 잔을 마시고 주님이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때 주님께서 말씀하신 '잔'은 고난의 잔을 의미하고(마26:39), '세례'는 죽음의 세례를 의미한다(막10:39). 그러나 용감하게도 두 형제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던 그 순간에 야고보는 도망쳤고 요한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정말 주님의 제자가 되어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사도들이 순교해서 일찍 죽었지만 오직 요한만큼은 죽지 않고 자연 수명대로 살다가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 주님을 위해 죽기를 선택하는 자는 오히려 살게 되는 것이고, 자기의 목숨을 아까워하는 자는 오히려 먼저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러한 자를 귀히 여겨 주신다고 말씀하셨다(요12:26). 

 

6. 왜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마음이 괴롭다고 말씀하셨을까?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장차 가져올 위대한 일들을 아셨다. 하지만 그분은 죽음을 앞두고 혼이 괴로워하셨다. 즉 예수께서도 육신을 가진 존재로서 혼이 번민하신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자신의 목숨을 죽음에 내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생명의 주인으로서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으시다. 그런데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죽음에게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하는 것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번민하신 것이다. 둘째, 자신이 죽으려면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버림을 당해야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하는 것이 죽음(둘째 사망)이요, 또한 어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상 하나님과 하나였고 함께 하셨던 예수께서도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번민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외치셨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때 예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다(마27:46).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다. 이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속죄일 제사를 드릴 때에는 속죄제물로서 염소 2마리를 바치게 되는데, 그중 한 마리는 '희생양'으로 바치고, 또 한 마리는 '버림받은 양'으로 바치게 되는데, 예수께서도 역시 우리 죄를 위해 희생양으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양으로 죽으셨던 것이다(레16:7~10). 

 

7. 왜 예수께서는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고 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 통치자인 사탄에게 매여 있는 자들을 향하여 권고하신다. 그것은 당신 자신이 죽음을 통해서 이 세상 임금을 쫓아낼테니까,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어서 빛의 아들이 되라고 하신 것이다(요12:35~36). 여기서 '빛'이란 곧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초막절 설교 때에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8:12). 그분은 어둠 가운데 살고 있어서 그것이 사망의 길인지 생명의 길인지를 모르고 행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빛을 비추어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당시의 사람들은 빛이신 그분을 믿어서 생명을 소유해야 했다. 왜냐하면 빛이 없을 때에는 빛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럴수록 영적으로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그러나 빛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자는 더욱더 정금같이 빛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빛을 향해 나오지 않으면 그는 계속해서 어둠 가운데 걸어다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죄를 짓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마귀의 자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붙들 수 있을 때에 그 빛을 붙들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요, 빛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8. 그렇게 많은 표적들을 보았음에도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가?

  정말 신기한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부인할 수 없는 표적들을 보았던 유대인들이었지만 끝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았고, 이들에 의해 결국 예수께서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된다. 왜 유대인들은 수많은 표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것을 보았으면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2가지 이유로 그것을 설명한다. 

  첫째,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눈이 멀어 있었고 마음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요12:39~40). 이는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되는 것이었다. 그랬다. 그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었기에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기적들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또한 그들에게는 고정 관념이 있었다. 하나님은 절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라든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든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영광스러운 다윗 같은 왕만을 고대한 것이다. 그들은 수치와 모멸 속에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어갈 메시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지켜온 기득권을 박살내 버리는 예수님을 달갑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사역을 보고서 그들은 깨달아야 했지만 그들은 끝내 자신들의 완고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둘째, 그 이유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요12:42~43). 그랬다. 유대인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그렇게 하면 출교를 당했기 때문이다. 즉 유대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회당 예배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았지만 그것을 시인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좋아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역시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무엇이 진정 진리고 바른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뜻 가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많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의 입술이 시인한 그대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심판의 날이 되면 눈물로서 후회하겠지만 그때에는 후회한다고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9. 나오며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 한다. 죽어갈 때 느껴야 하는 혹독한 고통도 있고, 죽으면 다시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교통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죽음에 넘기겠다는 각오없이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생명의 길로 가기 어렵다. 타협은 마귀의 속삭임으로서 결코 생명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한 번도 죽어보지 않은 죽음 앞에서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완전한 버림당함을 경험해야 하는 죽음 앞에서 번민하신 것이다. 하지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겠지만 죽으면 그로 인하여 생명을 해방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받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묵묵히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죽음 이후에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행하실 영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죄인을 살리는 것이요 죄인에게 아버지의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며, 사람을 지배하는 마귀를 멸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기꺼이 자신을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내어 놓으신 것이다. 그분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도 이길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먼저 그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영안이 열리지 않아 영적 세계를 전혀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해서는 천국에서 훌륭한 지위를 얻기 어렵다. 고정 관념이 꽉 박혀 있어서 잘못된 성경 지식을 내려놓기 전까지 천국과 영의 세계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단이니 혹은 삼단이니 하는 핍박당함을 무서워해서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기 힘들다. 사도 바울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무엇이 대단한 일인가? 주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어찌 환난을 겪지 않고 들어가겠는가? 그러나 그 모든 일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그 어떤 일도 우리에게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광의 그 길은 자기의 목숨이라도 내놓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그래서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3년 02월 08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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