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06) 누가 참된 유대인인가(롬2:17~3:8)

by 갈렙 posted Nov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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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khz6-E73FxA
날짜 2015-11-11
본문말씀 로마서 2:17~3:8(신약 24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유대인의 교만과 실상, 율법준수와 할례의 상관관계, 역할과 지위, 사명과 특권,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 유대인의 나은점, 죄아래 있는 인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믿음생활을 해왔던 자들은 보이지 않지만 유대인들처럼 어떤 자부심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부심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와 합해질 때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그때 이러한 자부심은 이내 특권의식으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자신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교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교회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맡아왔으며, 지금도 어떤 직분을 맡고 있다면, 그의 특권의식은 이내 배타적 교만의식으로까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자신의 역할과 지위를 혼동함으로 나중에는 자신이 유대인의 혈통이라는 이유와 할례를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는 존재라고 믿는 것과 흡사하다. 오늘 이 시간에는 유대인들이 비록 율법을 소유하고 있고 할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외형적 틀 자체가 의로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까? 사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맡았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니 먼저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자기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려 그 역할을 잘 감당하기만 한다면 엄청난 축복이 주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그리고 자기들이 율법을 맡은 역할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말았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자신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맡은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서, 그 역할과 책임을 잘 감당했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게 된 만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왜 율법을 맡겼던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것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롬3:20). 그리고 두번째로는, 그렇게 해서 죄인임을 깨달은 자신이 약속의 자손인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붙잡아 구원을 얻으라는 것이다(갈3:24, 요5:39).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 사용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을 자신들이 맡았다는 특권의식만을 부각시켰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남들(이방인들)을 정죄하는 데에 사용하고 말았다.

  사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오직 율법자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만을 내세웠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이 율법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의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자신을 의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율법을 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만족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근본적인 목적을 잃어버렸다. 만약 그들이 진정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붙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을 맡았다는 특권의식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배척했다.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말았다. 이것이 율법을 맡았던 유대인들의 결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유대인들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자신의 역할과 지위를 혼동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해서 율법을 맡겨주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율법을 맡은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이 율법을 맡았으므로 자신들만 구원을 받고 자신들 외에 이방인들은 구원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의 이러한 오해는 사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역할과 지위의 혼동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구원받을 뿐만 안라 그 뒤에는 이방나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출19:5~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먼저 그들에게 율법을 맡겼던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서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정말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들의 구원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을 이방민족에게도 전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을 맡았다는 지위과 특권만을 앞세운 나머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내팽개쳐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선민으로서의 유대인의 역할을 망각하고 오히려 선민으로서의 지위만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전혀 이루어드릴 수가 없었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을 이미 구원받은 민족으로 착각하는 치명적인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자기가 율법을 맡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미 자신들의 구원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후 그들의 신앙생활은 외형적인 겉치레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수많은 규례들을 더 만들어야 했고, 더 경건하게 보이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이미 자신의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그들은 이제 자신이 다른 민족보다 더 경건하다는 것과 특별한 선민이라는 것을 더 부각시키기에 힘을 쓴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자칫 잘못하면 유대인들의 오류에 빠질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는 이미 교회 다닌지 오래 되었고 직분까지 맡고 있으니 자신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특히 칼빈의 예정론과 견인교리가 과대해석됨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교회마다 장로나 권사같은 직분을 맡게 되면 그것을 자기의 지위로 오해하게 되었고 그런 직분을 맡으면 그때부터는 일반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경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먼저 믿게하시고 먼저 직분맡겨주신 것은 교회의 구성원을 섬기라고 직분을 주신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지위로 알고서 군림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유대인들처럼 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미 수십년을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자라 할지라도 최종적인 구원에서 얼마든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히6:4~8). 오늘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일차적인 구원은 받았을른지 모르지만 그들의 구원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의 완성을 위해 달려가야 한다(빌2:12).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유대인들처럼 자신이 예수믿은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직분까지 맡고 있으니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자는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렇게 될 때,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당연히 유대인들과 같은 특성이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리스도인들도 형식에 치우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구원받았는데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겉으로는 거룩한 성도인 척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러운 삶을 사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은 말씀대로 살고 있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거룩한 삶을 살라고 가르치기만을 즐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된 이유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아니다.

  자, 유대인들을 보라. 그들은 정말로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다(롬3:2). 하지만 그들 중에 과연 몇이나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았던 것인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선택받았음으로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사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아야 했을 그들이 오히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죽이고 만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특권을 내려놓지 않고 더 누려보기 위해 그들은 양심에도 저촉된 행동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도 먼저 믿은 것과 다른 사람이 갖지 않은 직분을 가졌다는 생각이 지나쳐, 하나님의 뜻을 헤칠 수가 있는 것이다. 자신도 구원받을지 못받을지도 모르는데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가 유대인들처럼 멸망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히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인지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먼저 믿은 자일수록, 먼저 직분을 받은 자일수록 겸손하게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먼저 율법을 맡았고 먼저 선민이 되었지만 율법을 맡은 자로서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므로 버림받고 말았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가 덧붙혀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유대인들의 '할례' 문제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선민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자신이 할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를 통해 판단했다. 왜냐하면 할례는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전통으로서, 할례를 통해 언약백성의 표를 자신의 몸 안에 새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할례는 형식만 남게되고, 그 뜻과 목적은 희미해져갔다. 후대로 갈수록 살가죽에 할례를 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뿐, 할례의 뜻을 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했는지에 대한 뜻과 목적은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할례의 본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육체를 따라 자식을 얻기 위해 첩 하갈을 취해 아들 이스마엘을 얻음으로 복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놓쳐버리게 되었음을 회개하고 다시는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않겠다고 서약한 것이 바로 할례였던 것이다. 그런데 후대로 갈수록 이러한 할례의 본 뜻은 저버린 채, 자신의 살가죽만을 베어내면 언약백성이 되는 것이고 구원의 백성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할례 곧 표면적인 할례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리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마음으로는 육체를 따르는 자신의 죄악된 삶을 회개하지도 않으면서, 할례만 행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셨다. 예를 들어보자.

렘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우리가 고쳐야 하고 우리가 진정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살가죽을 베어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는 일이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철저히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없이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자각하고 예수님을 붙듣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 중에 어떤 이는 물로 세례만 받으면  구원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개가 로마카톨릭 교인들이다. 하지만 개신교인들 중에서도 육체의 살가죽만을 베어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도 다 이미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것이 성취된 것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니 혹시 죄를 범하고 있어도 자신이 구원받는 데에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이런 자들이 곧 육체의 할례만 받고 자신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같은 자들이다. 아니다. 날마다 마음가죽을 베어내야 한다. 진실로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한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자신이 할례를 받았고 율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율법을 범하면 무할례자와 똑같은 자인 것처럼,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하더라도 형식적인 회개나 하며, 믿는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구원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인처럼 우리도 표면적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고 율법을 가졌지만 결국 버림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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