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강해(01)] 히브리서, 과연 어떤 책인가?(히1:1~3)_2024-02-28(수)

by 갈렙 posted Feb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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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M36pIaxDQBE
날짜 2024-02-28
본문말씀 히브리서 1:1~3(신약 353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주제어 히브리서의저자,히브리서의수신인,히브리서를쓴목적,히브리서의배경,5가지배교위험경고,히브리서의결론

2024-02-28(수) 수요기도회

제목: 히브리서강해(01) 히브리서, 과연 어떤 책인가?(히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M36pIaxDQBE

 

1. 들어가며

  히브리서는 과연 어떤 책인가? 그런데 히브리서는 다른 책에 비해 상당히 베일에 쌓인 책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제사제도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약의 제사제도를 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풀어내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가 누군지 알기가 쉽지 않다. 신약성경의 서신서는 대부분 누가 저자인지를 스스로 밝히거나 알아볼 수 있게 해 놓았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누가 저자인지 밝혀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내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이 책의 저자가 누군지를 알 수만 있다면, 이 책을 이해해하는데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를 쓰려고 했던 것일까? 대체 히브리서의 편지를 받을 성도들은 대체 무슨 문제에 봉착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뚫어야 이 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13장이나 되는 히브리서에 대한 전체적인 개관을 포괄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 책의 발신자와 수신자, 그리고 이 책을 씌여진 배경과 시기 그리고 이 책의 구조와 중심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시작하는 만큼 상당히 재미도 있을 것이다. 

 

2. 히브리서, 과연 누가 쓴 책인가?

  히브리서, 이 책의 저자는 누구인가? 이 책의 저자는 한 마디로 잘 모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왜냐하면 이 편지의 서두 인삿말에서 이 책의 저자가 누군지를 밝혀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의 내용과 이 책을 쓰게 된 배경 그리고 이 책의 말미에 나오는 끝 인삿말을 통하여 우리는 이 책의 저자가 누군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가 있을 뿐이다. 

  먼저 이 책의 저자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자. 가장 먼저 이 책의 저자의 1순위는 사도 '바울'이다. 그러한 이유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고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다른 견해는 무엇인가? 첫째로, 초기 교부였던 터툴리안은 이 책의 저자를 '바나바'라고 했다. 바나바가 구브로 섬 출신의 레위인이자(행4:36), 안디옥 교회에 파견된 예루살렘 교회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이기 때문이다(행11:22). 또한 그가 레위인이니만큼 제사제도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종교개혁자의 루터의 견해인데, 이 책의 저자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던 '아볼로'라는 것이다(행18:24~25). 아볼로는 당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있었던 아프리카의 북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학식이 많았고 구약성경에도 능통했기 때문이다(행18:24). 그러나 그가 비록 유대교에 박식했어도 그리스도에 관하여 히브리서에 기록된 것 만큼 박식한지를 알려지지 않고 있다. 셋째는 현대 신학자 하르낙이 주장하는 것으로 이 책의 저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유대인이기는 하나, 텐트제조업자로서 평신도사역자로서 히브리서의 책을 쓸 만큼은 아니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말미에 가면, 이 책의 저자를 '나'라고 하는 1인칭 단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3:19,22~23). 넷째는 누가라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누가는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안디옥 출신의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유대인이기 때문이다(히1:1).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책의 저자는 바울로서 히브리어로 기록한 것을 의사 누가가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성경의 증거와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 책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첫째,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유대인이기 때문이다(히1:1~2). 바울은 당시 길리기아 다소 성의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베냐민 지파 사람이자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배운 자이자, 예루살렘에 유학와서 당시의 석학이었던 가말리에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이었다. 둘째, 이 책의 저자는 한 때 이 책의 수신자들과 함께 있었다가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잠시 떨어져 있어었는데, 곧 그리로 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바울이 잠시 로마감옥에서 벗어나 서바나로 전도할 때와 일치하기 때문이다(히13:19, 23b). 또한 당시에 수신자들에게도 인도하는 직분을 가진 자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저자는 그들의 지도를 잘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3:17,24).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 책의 수신자는 바로 로마에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다(히13:24). 고로 이때는 사도 바울이 1차 로마 감옥에서 풀려나 서바나로 떠나 전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셋째, 이 책의 저자가 디모데의 소식을 전하면서 디모데를 자신의 형제라고 밝히고 있고 석방되었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3:23). 디모데를 형제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위의 저자군들 가운데 사도 바울이 가장 적격자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바울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고 바울이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다(딤전1:12).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에는 항상 형제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고후1:1, 골1:1, 몬1:1, 히13:22). 넷째, 이 책의 저자가 사용하는 문구 중에 사도 바울이 쓴 문구가 자주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히13:18, 19, 20~21, 22, 23, 25). 다섯째, 이 책의 내용을 보면,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제사제도를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뛰어난 인물인데, 그럴려면 사도 바울 이외에 다른 사람을 거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3. 히브리서, 누구에게 쓴 책인가?

  그렇다면 이 편지는 누구에게 쓴 것인가? 그것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이 히브리서에 등장한다. 첫째, 책 제목이 이 편지의 수신자가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히브리서의 책 제목은 무엇인가? 그것은 '히브리인들을 향하여'이다. 히브리인들은 아브라함을 지칭할 때 처음 등장하는데(창14:13), 이는 '강을 건넌 자들'이라는 뜻이다(수24:2). 즉 우상을 섬기던 땅 갈대아 우르를 떠나 유브라데 강을 건너온 자가 아브라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뒤 히브리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즉 아브라함처럼 할례를 받아 약속의 자손이 된 자들을 지칭한 것이다. 그리고 음식법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히13:9), 이 편지의 수신자는 당시 유대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둘째,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히13:24). 왜냐하면 끝인삿말이 이렇게 쓰여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너희[들]를 인도하[고 있]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거룩한 이들)에게 문안하라(인사하라). 이달리야에서[부터] 온(있는)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히13:24)" 즉 이탈리아 출신인 자들이 바울과 함께 있어서 이 편지들의 수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는 이 책의 저자사 인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편지의 수신자들과 이탈리아 출신인 자들이 원래는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었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이미 한 차례 어떤 대대적인 박해를 상황을 겪었던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이다(히10:32~34). 이들은 당시 다른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있었고 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자신의 소유를 빼앗기기도 하였던 자들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이 책의 배경과 쓰여진 연대를 계산해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왜냐하면 이들이 예수님을 믿는 유대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로마 정부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있었으며, 감옥에 갇히거나 자신의 재산을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A.D.64년경 로마의 네로 황제(A.D.54~68년 통치)가 로마시를 불질러놓고는 그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오리라는 생각이 들자 그 책임을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돌렸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주님(퀴리오스"로 믿고 있는 자들이었다(히13:20). 

  넷째, 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원래 그들을 지도하고 있던 지도자 말고 다른 지도자의 인도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히13:17,24).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인도하고 있는 자들에 순종하고 복종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로 즐거움을 인도하는 책임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들로 근심으로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 편지의 수신자는 로마에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히브리서는 언제 어떤 배경에서 쓰여진 책이며, 이 책을 쓴 목적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언제 쓰여진 것일까? 그것은 이 편지의 저자와 수신자들이 누군지와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어느 정도 그 답을 찾아낼 수 있다. 먼저, 이 편지의 발신자는 사도 바울이다. 그리고 이 편지가 쓰여진 시기는 바울이 1차 로마감옥생활(A.D.61~63)에서 풀려나 서바나로 가서 전도하던 시기(A.D.64~66)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당시 떨어져 있는 로마 교회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2차 로마감옥생활을 A.D.67~68년에 했으니, 이 편지는 A.D.64~66년경이라고 추정해볼 수 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 책의 저자는 이 편지를 로마에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인가? 그것은 로마에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동족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고 또한 네로 황제가 다스리고 있는 로마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은 상황 때문에, 이 책의 수신자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들은 2가지 박해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이들은 자신의 동족으로부터 끊임없는 선동과 위협과 회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로마에 있어서 유대교는 합법적인 종교였으나, 기독교는 로마로부터 공인받지 못한 종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래 유대인들이었던 유대 기독교들에게 유대인들이 말했다.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는데, 왜 계속해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려느냐면서 다시 유대교로 개종하라고 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이제는 기독교를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서 합법적인 울타리 안에 안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다. 또한 A.D.64~66년 당시는 아직 예루살렘에서 성전제사가 드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전히 구약의 전통과 제사제도가 살아있는 상황이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도를 넘어간 것이라는 생각도 얼마든지 들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로마의 박해 때문이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모라에서 기독교신앙을 갖는 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잡히면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고 재산도 몰수당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계속해서 올라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얼마나 율법보다 뛰어나신지를 설명해주어야 했고, 또한 예수님의 대제사장 되심과 제물 되심이 얼마나 첫 언약인 율법보다 얼마나 더 뛰어난 것인지를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5. 히브리서는 어떤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가?

  이제 히브리서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를 살펴보자. 히브리서는 다른 여타의 바울 서신의 경우처럼 전반부(1:1~10:18)는 교리를, 후반부(히10:19~13:25)는 생활을 다루고 있다.

  이 편지의 저자는 이 편지의 전반부(1:1~10:18)에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다른 것들과 비교한다. 가장 먼저는 천사와 비교한다(1~2장). 그리고 이어서 여호수아와 비교하고 있고(3~4장), 모세와 비교하고 있으며(3장), 아론과도 비교하고 있다(5장). 그리고 예수께서 아론보다 더 뛰어난 대제사장인 것을 5~7장까지 증거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영원히 제사장으로 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8장에서 10:18까지에서 이 책의 저자는 제사장과 제물을 예수님과 비교하는데, 예수께서는 더 좋은 제사장이자 제물이며,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이 책의 저자는 후반부(히10:19~13:25)에서 성도들에 대한 믿음과 인내를 강력하게 권고한다. 믿음의 선배들도 다 이러한 고난을 받았으며, 인내로서 자기 앞에 당한 경주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에 준비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11장에서 신앙선배들의 삶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믿음으로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말한다. 

 

6. 히브리서의 핵심개념은 무엇인가?

  고로 히브리서의 핵심개념은 전반부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고(히3:1). 후반부는 성도들의 '믿음과 인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히12:1~1). 그때 당시 다수의 히브리인들이 복음을 듣고 유대교에서 개종하여 기독교인이 된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로마에 있는 유대 기독교인들은 2가지 큰 환난과 핍박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자 그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가 얼마나 큰 징계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경고하는데, 이때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위대하게 여기는 것들과 예수님을 비교해서 설명한다. 먼저는 천사요 그 다음에는 믿음의 선배들을 예수님과 비교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시며,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이다. 고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어떤 인물과 비교한다고 해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분이신 것을 언급함으로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것은 배교가 될 것이고, 구원에서 탈락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고 있고, 그분만이 천국까지 그들을 인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감사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들과 똑같은 인성을 지니셨기에 시험을 받았셨으나 죄를 짓지 아니한 분이라고 언급하면서, 예수께서도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체휼하실 줄 아는 인애가 크신 분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저자는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잘 감당하여, 예수님이 인내로서 자기 앞에 당한 경주를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은 자가 되었던 것처럼 이 책의 수신자들도 그렇게 하라고 권명한다. 

 

7. 나오며

  히브리서는 참으로 구약적인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율법 중에서 의식법의 하나인 제사법과 제사장법을 아주 많이 끌어와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의식법들을 동원하여, 예수께서 얼마나 뛰어나신 분이신지를 제시한다. 즉 예수께서는 구약의 어떤 제물보다도 더 좋은 제물이시고, 더 뛰어난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영원히 계시는 대제사장으로 계시며, 그분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늘의 장막에 들어가서 참 속죄제사를 드리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드린 속죄 제사의 효력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흠없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린 예수님의 속죄제사를 통하여 구약의 모든 제사가 완성되었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는 누구든지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또한 더이상 지상에 있는 제사장을 찾아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잠깐 불어닥친 환난을 맞이하여 성도들은 결코 뒤로 물려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얼마 안 있어 예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었는지를 심판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한 번 잡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코 모형이자 그림자로 주어진 옛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끝까지 인내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을 사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늘에 준비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02월 28일(금)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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