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42)] 변형되신 예수님과 간질병 귀신들린 아들을 치유하심(마17:1~23)_2025-08-20(수)

by 갈렙 posted Aug 20, 202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kJtPLEsoXY
날짜 2025-08-20
본문말씀 마태복음 17:1~23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5-08-20(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 강해(42)] 변형되신 예수님과 간질병 귀신들린 아들을 치유하심(마17:1~2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hkJtPLEsoXY

 

1. 들어가며

  우리의 신앙 여정은 때로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기도 하지만, 눈부신 영광의 산 정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번 시간에 다룰 본문은 바로 그 영광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 이후, 자신이 겪게 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마 16:21). 이 충격적인 예고는 제자들을 깊은 혼란과 슬픔에 빠뜨렸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세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마 17:1).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의 미래의 모습, 신적 영광으로 빛나는 모습으로 변형되셨다(마 17:2). 왜 예수님께서는 이 시점에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그의 제자들에게 보여주셔야만 했을까? 그것은 장차 닥쳐올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낙심하고 좌절할 제자들에게 하늘의 소망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그 너머에 영광스러운 부활과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미리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세우기 원하셨던 것이다. 동시에 본문은 영광의 산 아래에서 벌어진 또 다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도 깊이 묻는다. 아홉 명의 제자들은 간질병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이들의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란 과연 이들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이 말씀을 통해 영광스러운 미래의 주님의 모습을 뵈옵는 감격과 함께, 우리의 믿음을 가로막는 불신앙의 요소를 발견하고 제거함으로써, 세상을 이기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회복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왜 예수께서는 따로 제자들을 데리시고 높은 산 위로 올라가셨는가?
  예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예고하신 후 엿새 후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따로 데리시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엿새 후에’라는 시간적 표기는 이 사건이 앞서 있었던 첫 번째의 십자가의 수난 예고 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마 16:21). 이때 제자들은 한참동안이나 스승의 고난과 죽음 예고에 큰 충격을 받고 근심에 잠겨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바로 그들을 위로하고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제자들의 대표자였던 3명의 제자들을 데리시고 높은 산으로 오르셨다.

마 17:2 [예수께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분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그분의] 옷[들]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이때 예수님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있었고, 그분의 옷들은 속옷까지도 이 세상에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눈부신 흰 빛으로 변해 있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빛이신 하나님께서 드디어 자신 안에 있는 빛을 밖으로 투과시킴으로 그 빛이 속옷과 겉옷을 뚫고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님의 본질, 곧 그분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분은 바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한 분의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모든 영광의 본체이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때 제자들은 잠시나마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신적 영광이 무엇인지를 목격하게 된다.

  

3. 또다시 베드로는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는가?

  그런데 그때였다. 이 영광의 자리에 구약의 두 거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때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누가복음의 저자는 이때 그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즉 십자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눅 9:31).

  왜 그럼, 이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이어야 했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을 대표하는 자로 온 모세였고 선지자를 대표하는 자로 온 엘리야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로서 등장하는 것은 곧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언을 성취하는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를 지켜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십자가는 결코 우연한 실패가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하는 데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이 황홀한 광경에 압도된 베드로는 모세와 엘리야가 떠나려고 하자(눅 9:33), 예수님께서 아뢰기를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장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건의한다(마 17:4). 그러나 이것은 영적인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인간적인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모세와 엘리야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견주어서 예수님과 동일한 취급을 받아야할 대상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이것은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 들렸던 하나님의 음성이며, 예수님의 신성과 유일무이한 권위를 확증하는 선포에 해당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세나 엘리야가 아닌, 오직 ‘내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말만을 들으라고 명령하신다. 이로써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신 분으로서, 모세와 엘리야보다 더 위대한 분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선포된 것이다. 그때 제자들은 이 음성을 듣고 심히 두려워 엎드리게 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만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눈을 들었을 때,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고로 이제 제자들의 시선은 모세와 엘리야를 넘어, 오직 예수님께만 고정되어야 했던 것이다.  

 

4. 높은 산에서 엘리야를 지켜보았던 3명의 제자들이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또 하나의 사실은 무엇이었는가?

  산에서 엘리야를 지켜보았던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이 그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세기관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말이 과연 성취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마 17:9~13, 말4:5~6).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에는 서기관들의 주장처럼 아직 엘리야가 오지 않았기에 예수님이 메시야가 될 수 없다는 의구심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도 이러한 그들의 의중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마 17:11-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러나 제자들은 엘리야가 이미 세례 요한으로 왔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니 얼마 전에 세례 요한이 죽었을 때에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해서 평가하기를 그는 첫째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러 온 여호와의 사자였기에 선지자들보다 더 위대한 자라고 하셨고(마 11:9). 둘째로, 그는 세상 죄를 넘기는 자로 쓰임을 받았기에 여자가 낳은 자들 중에 최고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11:11). 그리고 셋째로, 그는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언의 마지막 주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11:12~13). 그리고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그가 바로 '오리라고 예언된 바로 그 엘리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11:14). 그렇지만 그때만해도 제자들은 들을 귀가 없었기에 예수님의 그 말씀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예수께서 딱 꼬집에서 이야기해주자, 제자들도 이제는 세례 요한이야말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라고 보내어진 선지자로서, 오리라 예언된 바로 그 엘리야인 것을 깨닫게 되었고, 더불어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성경에서 그렇게 약속하였던 바 메시야(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마 17:13). 

  

5. 왜 산 아래 9명의 제자들은 간질병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있었는가?
  영광스러운 산 위의 체험과 대조적으로, 산 아래의 현실은 무능과 실패,  그리고 고통으로 가득했다. 예수님과 세 제자가 없는 사이, 남은 아홉 제자들은 간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간절히 호소했다.

마 17:15-16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 서는 이 상황을 보시고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탄식하셨다. 이 책망은 일차적으로는 제자들을 향한 것이었지만, 나아가 당시의 완악한 유대인들과 오늘날 믿음 없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경고이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시고 아이를 깨끗하게 고쳐주셨다. 그러자 집에서 제자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가서 자신들의 실패 원인을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명확했다. 그것은 첫째로, 그들에게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것은 그들의 능력의 부재가 원인이 아니라 ‘믿음의 부재’인 것이다. 사실 이미 예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다(마 10:1).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믿음으로 사용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능력을 믿음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없었다. 여기서 '겨자씨 믿음'이란 믿음의 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고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가리킨다. 아주 작아도, 그 안에 생명을 품고 있기에 장차 자라나면 큰 나무를 이루는 겨자씨처럼, 그들의 믿음이 살아있는 참된 믿음이라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아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를 하나 더 말씀해주신다. 그것은 그들에게 회개기도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에 따르면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도’란 단순한 간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귀신들이 못 버티고 떠나가게 하는 기도를 가리킨다. 그것은 회개기도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은 철저한 회개 기도를 통해서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려면 먼저 자신의 죄를 철저히 고백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고 그럴 때에 악한 영을 추방하여 승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요일 1:7, 9). 결국 산 아래 9명의 제자들의 실패는 믿음이 적은 결과였고 결국 회개기도의 실패에 기인한 것이었다. 

 

6. 왜 예수께서는 또 다시 두 번째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셨는가?
  변화산의 영광과 귀신 축출의 능력을 보이신 후,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다.

마 17:22-23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그런데 제자들은 이렇게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매우 근심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영광의 주님, 능력의 주님만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원하였던 것은 고난받고 죽임당하는 메시아는 결코 상상하지 않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십자가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시고 싶어하셨다. 왜냐하면 변화산의 영광은 십자가를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이며,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또한 십자가의 도와 복음의 능력에 뿌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님의 이 두 번째 수난 예고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참된 제자의 길은 영광과 능력만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묵묵히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참된 부활의 영광과 하늘의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참된 믿음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예수님의 변화산의 사건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첫째, 우리가 믿고 따르고 있는 예수님은 고난받는 메시아일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영광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광의 소망을 붙들고, 인생의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십자가 너머의 부활 영광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오늘의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둘째,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살아있는 믿음과 끊임없는 회개 기도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세상의 악한 영을 이길 수 없다. 오직 겨자씨와 같은 살아있는 믿음, 그리고 철저한 회개를 동반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우리는 산을 옮기는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혹시 내가 산 아래의 9명의 제자들처럼 무능과 실패감에 빠져 있지는 아니한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시선을 다시 ‘오직 예수’께로 돌려야 한다. 변화산의 영광스러운 주님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새롭게 하고, 믿음 없음과 회개하지 않고 살아왔음을 회개하며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신 권능으로 세상을 이기고,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유업으로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5년 08월 20일(수)

정보배 목사

---------------------------

[설교요약]
본 설교는 마태복음 17장을 통해 예수님의 신적 영광(변화산 사건)과 제자도의 본질을 조명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예고 후 제자들을 위로하고 믿음을 주시기 위해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는 십자가 너머의 부활 소망을 가리킨다. 반면, 산 아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믿음 없음’ 때문이었으며, 이는 살아있는 믿음과 회개를 동반한 기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결국, 성도는 변화산의 영광을 소망하며, 동시에 십자가의 길을 믿음과 기도로 걸어갈 때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강조한다.

----------------------------

1_42-17123.png

2_.png

3_.png

4_.png

5_.png

6_.png

7_.png

8_.png

9_.png

10_.png

 

 


Articles

6 7 8 9 10 11 12 13 1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