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43)] 성전세 논쟁과 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인가?(마17:24~18:14)_2025-08-27(수)

by 갈렙 posted Aug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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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RcKnALot-Vg
날짜 2025-08-27
본문말씀 마태복음 17:24~18:14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5-08-27(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43)] 성전세 논쟁과 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인가?(마17:24~18: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RcKnALot-Vg

 

1. 들어가며

  예수님은 과연 누구신가?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만왕의 왕이라고 선포한다. 이는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를 경배한 것에서 시작하여, 귀신을 복종시키고 자연을 다스리시는 권능을 통해, 마태는 예수님이 단순히 이 땅의 왕을 넘어 온 우주와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간에 함께 나눌 ‘반 세겔 기적’ 역시, 물고기 입에서 돈을 꺼내시는 기이한 사건을 통해 예수께서 자연만물의 왕이시라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천국의 복음서’이기도 하다. 이 땅의 왕국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천국의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세상 나라에서는 ‘누가 더 높은가’를 두고 끊임없이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경쟁하지만, 천국에서는 그 서열과 가치가 완전히 역전된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는 과연 누가 가장 큰 자로 인정받을까?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성전세 논쟁'이라는 구체적인 사건과, 천국 서열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을 통해 이 두 가지 주제, 즉 예수님의 왕 되심과 천국의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제자들은 변화산 사건과 산 아래에서 일어난 귀신축사의 사건 이후, 자신들 중 누가 과연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에 대하여 세상적인 관심을 드러낸다. 바로 그때, 예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의 위대함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선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하여,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온전히 깨닫고,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 천국에서 가장 큰 자로 살아가는 비밀을 배우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과연 예수께서도 20세이상의 성인 남자들처럼 성전세를 내야 하는가? (마 17:24-27)
  예수께서 자신이 기거하시던 가버나움에 다시 이르렀을 때, 예루살렘으로부터 '성전세를 받는 자들'(아마도 제사장이나 레위인이었을 것)이 베드로에게 나아온다. 그리고 “네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고 묻는다. 여기에 나오는 표현으로서 '반 세겔'은 의역이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디드라크몬마'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드라크몬은 헬라문화에서 통용되는 동전으로서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한다. 그리고 '디'(디스의 준말)가 붙었다. 이는 '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디드라크마'라는 용어는 '2드라크몬들'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성전의 세겔로 환전하면 '반 세겔'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디드라크마' 곧 ‘반 세겔’은 20세 이상의 모든 유대인 남자가 생명의 속전으로, 그리고 성전 유지를 위해 매년 드려야 했던 의무적인 세금에 해당한다(출 30:11-16). 이때 베드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응당 “내신다”고 대답해 버린다. 그리고 예수께서 계시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신다. 그것은 과연 예수께서 성전세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었다. 

마 17:25-26 …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예수님의 논리는 명확했다. 세상의 왕들이 자기 아들에게는 세금을 받지 않는 것처럼,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은 성전세를 낼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성전은 ‘내 아버지의 집’이며(눅 2:49), 예수님 자신은 그 집의 아들이자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두신 아들로서,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살면서 세금을 내면서 사는 자식은 없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성전세를 내실 의무가 없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단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명확히 드러내신 사건이다. 

 

3. 예수께서는 왜 베드로에게 낚시를 하여 물고기의 입 안에 들어있는 한 세겔을 성전세로 내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칭찬을 듣고 천국열쇠까지 선물로 받지 않았던가! 그런데 며칠이 지났다고 벌써 그것을 까먹고 예수께서도 세금을 내신다고 말해버렸으니, 예수님의 얼굴을 볼 낯짝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난처해진 베드로의 입장을 모르셨을까?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성전세를 받으러 온 자들과의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자 성전세를 내기로 결정하신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이미 옳은 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성전세를 받으러 온 자들이 “실족하지(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세금을 내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그것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튼 대다수의 유대인들에게 이것이 성전에 대한 모독으로 불쾌하게 여기며 분개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으로 부각될 수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세금을 내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때 예수께서 선택하신 성전세를 위한 재원마련의 방법이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베드로에게 바다로 가서 낚시를 하여 첫번째로 잡아올린 물고기의 입을 열어서 그 입 안에 들어있는 은전 ‘스타테라' 곧 한 세겔’(두 사람 분의 성전세)을 꺼내어서, 그것으로 자신과 베드로의 세금을 내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마 17:27).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왜 다른 제자에게 가서 돈을 달라고 해서 그냥 주라고 명하지 아니하시고, 베드로더러 가서 낚시를 하라고 명하신 것인가? 그것은 2가지 목적이 있으셨던 것이다. 첫째는 조급한 베드로에게 생각을 할 겨를을 준 것이다. 베드로는 사실 낚시 전문가는 아니다. 그는 그물고기잡이 전문가이다. 그런데 낚시를 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낚시는 빨리 고기를 얻는 방법이 아니다. 기다림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낚시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는 함부로 나서지 말아야 하겠구나!", "앞으로는 생각해보고 말해야 하겠구나!" 등등을 말이다. 그리고 둘째는 예수께서 누군지를 다시 한 번 베드로에게 확인시켜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여러분은 생각해 보았는가?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았는데,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 물고기의 입 속에서 '스타테라'를 발견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고로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대로 실행되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예수께서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왕이시가는 것을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고로 베드로가 낚시를 하여 물고기의 입에서 스타테라를 꺼내서 그것으로 세금을 내게 한 예수님의 명령은 성급하게 대답했던 베드로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다시 한 번깊이 묵상하게 한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자유로운 권리를 가진 자들이다. 그렇지만 그 자유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도구로 쓰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영혼을 살리고 실족하지 않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 상처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4.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무엇인가? (마 18:1-3)
  성전세 논쟁이 있은 후, 제자들은 예수께 나아와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천국에서는 과연 누가 크니이까”(마 18:1). 이 질문의 배경에는 변화산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려가신 사건 이후 제자들 사이에 생겨난 미묘한 경쟁심과 서열 의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때 예수께서는 천국에서 ‘누가 크냐’를 논하기 이전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먼저 제기해 주셨다.  이때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서 두 가지를 제시하셨다. 첫째는 ‘돌이키는 것’(헬라어: 스트레포)이라고 했다(마 18:3). 이는 마음의 내적 변화를 의미하는 ‘회개’(헬라어: 메타노에오)와는 조금 다른, 외적인 행동의 방향 전환을 가리킨다. 죄를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을 향해 몸을 완전히 돌이키는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그 사람을 천국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이다(마 18:3). 이는 유치하거나 미성숙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가진 본질적인 특성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절대적인 의존성’이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한다. 이처럼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분의 보호하심 안에 거하는 것이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 조건, 즉 삶의 방향 전환과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이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님은 단언하신다.

 

5.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마 18:4-5)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말씀하신 후, 비로소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드디어 말씀하신다(마 18:4).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이는 천국에서의 위대한 자가 되는 것은 이 세상과는 정반대로 ‘낮아짐’과 ‘겸손’에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과 죄인 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기꺼이 배우고 순종하며, 지배하기보다 섬기는 자세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종의 형체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이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다(빌 2:6-8).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이 어린아이, 즉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를 영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겸손한 자, 소외되고 연약한 자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곧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됨을 의미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리더십은 권위를 내세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지체를 섬기고 세워주는 겸손한 섬김을 통해 나타난다. 세상은 높아지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서라고 가르치지만, 천국은 섬기기 위해 자신을 낮추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따라야 할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역설이다.

 

6. 마치는 말
  우리는 이번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다스리시는 천국에 누가 들어가며 거기에서 큰 자가 누군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그러나 그 위대한 왕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세상적인 성공이나 높은 지위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가치관을 향해 달려가던 발걸음을 ‘돌이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천국에서 진정으로 큰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높아지려는 욕망을 버리고 스스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우리도 섬김을 받으려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섬기는 자가 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자가 되는 비결이다. 오늘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경쟁하고 있는가? 세상의 인정과 더 높은 자리를 위해 달려가는가? 아니면 천국의 가치를 알고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서 하늘로 돌리고, 경쟁에서 섬김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가? 그러한 때에 우리는 비로소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영원한 천국에서는 큰 자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2025년 08월 27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본 설교는 마태복음 17-18장을 통해 예수님의 왕 되심과 천국의 역설적인 원리를 조명한다. 성전세 논쟁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의 주인이신 ‘왕의 아들’이므로 세금 면제 대상임을 밝히며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신다. 이어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라고 가르치신다. 이는 세상의 서열 경쟁과 달리, 천국은 전적인 의존, 신뢰, 그리고 겸손한 섬김의 가치가 지배하는 곳임을 역설하며, 성도들이 따라야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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