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강해(16) 이사야에 나타난 고난받는 메시야(1)(사52:13~53:12)_2016-09-28

by 갈렙 posted Sep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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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GV7Mflsy2Pg
날짜 2016-09-28
본문말씀 이사야 52:13~53:12(구약 103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이사야강해, 이사야53장, 고난받는 종, 고난과 영광, 고난과 죽음과 부활, 속죄와 대속제물, 예상치 못한 사건

1. 들어가며

  이사야 선지서의 백미라 하면 어디를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단연코 사53장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예언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내용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이 사53장의 "고난받는 종"의 개념은 시22편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이사야 53장의 예언은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또한 얼마나 등장하는 것일까? 오늘 이 시간에는 사53장 곧 고난받는 종에 관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그것이 신약성경에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이사야 53장의 위치

  먼저, 우리는 사53장의 고난받는 종에 관한 예언(사52:13~53:12)의 위치를 살펴보자. 사53장의 말씀은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총 5편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 가운데 5번째 노래에 속한다. 여호와의 종의 노래 중에서 "고난받는 종에 관한 노래"라고 불리우는 제5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장사를 아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3. 달갑지 않은 고난받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

  그런데 메시야가 과연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인가에 대해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종교지도자들을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그들이 기다리고 대망하던 메시야는 정치적인 메시야로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나라를 독립시키어 태평성대를 이루어줄 다윗과 같은 성군으로서의 메시야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무명의 알려지지 않던 목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눈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소외시켜버렸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들은 비유적으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보이는 메시야를 고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고대한 것은 늠름하고 멋있고 흠잡을 데 없는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였다. 그들은 한 마디로 영광스러운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나사렛 출신의 목수의 아들은 그들의 안중에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였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것을 그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그들은 언제나 자기의 생각 속에 멤도는 메시야만을 고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대하고 기다려야 할 메시야는 성경의 토라(율법)과 선지서에서 예언하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야였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만을 한사코 고대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사렛 출신의 목수의 아들의 말씀은 아예 들으려고도 시도하지 않았고, 그가 행했던 표적들을 보면서도 그들은 한사코 메시야의 기적이라고 보지 않았다.


4. 고난받는 메시야에 관한 신약의 기록들

가. 예수님의 인용

  자. 그렇다면 예수님과 신약의 사도들은 어떻게 고난받는 종의 노래를 빈번히 인용한 것일까? 우선 예수님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예수께서는 비록 자신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 자신이었지만, 자신은 인류를 위해 고난받다가 대속제물로서 인류의 죄를 처리해야 하는 존재인 것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그래서 예수게서는 자신의 성육신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대신에 몸값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그리고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에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고난받으실 것과 죽으실 것에 대해 3번씩이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밝히) 나타내시니(마16:21)"라고 말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주님으로 나타나게 되는 시기는 초림의 예수의 때가 아니었다. 그것은 재림의 예수 때이다. 초림의 예수는 많은 사람들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대속물로 자신의 몸을 드리러 온 것이다(막10:45). 사실 모든 인류의 죄악청산방법과 예표는 출12장의 유월절제사와 속죄 및 속건제사법에 나와 있다. 그것은 흠없는 속죄제물이 죄인을 대신하여 피흘려 죽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만한 흠없는 속죄제물이 하나도 없었다. 아담의 타락이후 인간은 다 본성에서 이미 부패된 상태였고, 죄로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는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죄없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에도 신성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죽으실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 죽을 수 있는 인성을 취하신 것이다. 결국 초림의 예수님은 자신을 인류의 죄를 대속할 대속제물로 내어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막10:45). 이러한 속죄제물의 대속의 죽음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구원해내기 위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자기자신)을 주셨으니(갈1:4)",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2:6)" 그리고 사도요한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하심이라(요일2:2)" 그렇다. 예수님은 결코 자기의 죄로 죽으신 분이 아니시다. 세상죄를 지신 흠없는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어(고전5:7), 십자가에서 우리 인류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다(고전15:3).

  그런데 예수께서 태어날 당시까지만 해도 메시야가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3년반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마저도 그러한 추측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혀 죽으러 가시는 예수님에게, 야고보와 요한은 주의 나라에서 자기를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까지 했다. 왜냐하면 제자들까지도 다 다윗과같은 정치적으로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줄 성군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막10:38)"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야고보와 요한이라도 예수님처럼 고난의 잔을 마시고 죽음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보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그리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래서 결국 야고보가 12사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순교하게 된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곁을 끝까지 지켰던 사도요한만큼은 정말 끝까지 살아남아서 A.D.90~95년경,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 그리고 요한계시록까지 다 기록한 후에 기력이 쇠하여 주님께도 돌아갔다. 


나. 신약의 사도들의 인용

  그렇다면 사도들은 어떻게 고난받는 종의 노래를 인용했을까? 사도요한은 요12장 38절에서 사53:1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자신이 메시야이신 것에 대한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선지자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음을 언급한 대목에서다. 그리고 메시야의 하찮은 외적인 신분과 직업에 대한 말씀(사53:2)을 신약성경에서는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6:3)"에서 성취되었음을 언급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멸시를 받고 고초를 겪는 장면은 공관복음서에 공히 다 기록되어 있으며, 그가 우리 인간의 질고를 알고 슬픔을 당한 것에 대해서는 마8장 16~17절에서 마태가 인용하고 있다. 즉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6~17)"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곤욕과 심문을 받고 괴로울 때에도,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이나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사도베드로는 인용하였으며(벧전2:29),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인하여 우리 인간이 질병에서 나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임을 사도베드로는 사53장 5절의 말씀을 벧전2:24에서 인용하였다. 그리고 예수께서 죽으신 다음에 무덤이 묻히시되, 부자의 무덤에 묻힐 것이라는 예언(사53:9)도 그대로 성취되었으니, 죽으신 예수께서는 정말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산헤드린 공회원이 판 새 무덤에 묻히시게 된다(요19:38~42, 마27:57~60). 어디 이러한 사례뿐이겠는가?


5. 나오며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사53장에 예언된 고난받는 종이 과연 어떤 고난 후에 죽임을 당하고 무덤에 묻히실 것인지를 현장에 있는 것처럼 보게 된다. 그러나 이사야53장의 말씀은 B.C.690년경에 있었던 예언이다. 실로 놀랍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 우리가 믿는 예수께서는 "내가 메시야다"라고 주장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성취해야 할 모든 일들 곧 이미 구약 4천년의 역사 가운데 예표와 예언으로 주어진 것을 다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따라야할 분은 오직 메시야이신 예수님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른 존재는 결코 메시야가 될 수 없다. 신성을 지니지 못한 죄많은 사람들은 절대 메시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를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드리며, 그분만을 경배하기를 원한다. "오, 주여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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