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44)] 천국에서 큰 자 및 교회의 권징과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마태복음 18:1~35)_2025-09-10(수)

by 갈렙 posted Sep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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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EKWtcTuivfE
날짜 2025-09-10
본문말씀 마태복음 18:1~35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5-09-10(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44)] 천국에서 큰 자 및 교회의 권징과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마태복음 18:1-3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EKWtcTuivfE

 

1. 들어가며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거든 먼저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높이려 한다면 천국에서 가장 낮은 자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예수께서는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문제와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문제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신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코 남을 실족시키지 않아야 하며, 나에게 죄를 범한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필수적인 삶의 자세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남을 실족케 하는 자가 받게 될 징계는 대체 무엇이며, 남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는 자가 받게 될 최후의 결과는 어떠한 것인가?  

 

2.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죄란 어떤 것이며,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가?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자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곧 예수님을 섬기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작은 자들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매우 큰 죄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작은 자를 실족케 한다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최소 3가지다.

  첫째, 그렇게 한다면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씀하셨다(마 18:6). 주께서는 그러한 경우에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그 정도로 작은 형제를 실족케 하는 죄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해를 끼치는 것을 넘어, 영혼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둘째, 이러한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18:7). 예수께서는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일이 있는 그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자신의 손과 발 그리고 눈이 작은 자를 실족케 한다면 차리리 그것을 제거해 버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8:8-9). 이는 작은 자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 모든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만드는 것들은 끊어내야 할 만큼 위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러한 자들이 영원한 불 곧 불의 게헌나(지옥 불)에 던져질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18:8-9). 실족케 하는 일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믿음이 약한 자를 실족케 하여 그가 걸려넘어진다면 그것에 대한 합당한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천사들이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뵙고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마 18:10).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목자처럼, 작은 자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족하게 하는 죄는 곧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심각한 죄이기 때문이다.

마 13:41-42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3.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에 어떻게 그를 돌이키게 할 수 있는가?

  마태복음 18장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는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 특히 교회의 권징 절차에 대해 제시해주고고 있다. 그렇다면 형제가 내게 범죄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죄를 범한 형제에게 일대일로 찾아가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권면해야 한다는 것이다(마 18:15). 만일 그가 그 말을 듣는다면 형제를 얻는 것이다. 둘째, 그래도 그가 듣지 않는다면 한두 사람의 증인을 데리고 다시 찾아가야 한다고 하셨다(마 18:16). 왜냐하면 자신의 잘못을 혼자가 가서 권책하는 것보다 두 세 증인이 함께 가서 권책할 때에 더 수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듣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교회의 공동체에 말해야 한다고 하셨다(마 18:17). 그런데 만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는다면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와 같이 여겨야 한다고 하셨다(마 18:17). 이는 단순히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구원을 위해 최후의 경고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 18:15-17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그렇다면, 왜 성도들은 자신의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에 그 형제가 돌이킬 수 있도록 회개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가? 그것은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위 때문이다. 교회는 무엇이든지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게 되고,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수 있도록 권위를 주셨기 때문이다(마 18:18). 특히 두 세 사람이 이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할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권위를 인정하시고 그들의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하셨다(마 18:19). 왜냐하면 성령을 가진 두 세 증인의 권위는 곧 예수님께서 가지신 권위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4. 형제가 내게 죄를 범했을 때에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가?

  그때였다. 베드로가 나아오더니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묻는다(마 18:21). 이때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해주면 되는지를 물었다. 이는 당시 랍비들은 세 번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더 후하게 말씀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마 18:22). 이는 490번까지만 용서하라는 뜻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아무도 죄를 지었는데 490번까지 와서 죄용서를 해 달라고 요청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것은 완전수인 일곱이라는 숫자가 몇 번 겹치는 표현으로서, 무한한 용서를 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평행본문에서는 형제의 죄를 용서해주는 조건이 하나 붙어 있다. 그것은 죄를 지은 형제가 자신이 지은 죄들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경우라고 말하고 있다(눅 17:3-4). 왜냐하면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자는 용서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눅 17: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만약 형제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을 때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가?

  이어서 예수께서는 형제가 나에게 죄를 범했을 때에 얼마만큼 용서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비유를 들어 발씀하신다. 그것이 바로 일명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이다(마 18:23-35).

  당시 1만 달란트의 액수는 당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금액이다. 왜냐하면 1만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었기 때문이다. 1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1만 달란트는 노동자의 20만년치의 품삯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하루 품삯의 값을 5만원만으로 계산해도 이는 3조5천억 원어치의 값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개인이 벌어서 갚을 수 있는 양은 결코 아니다. 주인은 그 종이 그 빚을 다 갚으려면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과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갚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돈을 모은다고 해도 그것은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고로 이 종이 빚진 양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의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은 그 종에게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 왜냐하면 그가 엎드려 빌면서 참아주시면 그것을 다 갚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렇게 해서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종이 나가서 한 일이 동료 종들의 눈에 잘못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1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가 가다가 자신에게 1백 데나리온(노동자의 석 달 열흘치 품삯) 빚진 자를 만났는데, 그가 한 일은 너무나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1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했을 때, 1백 데나리온 빚진 자 역시 엎드려 빌면서 자신에게 참아주시면 갚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고 그를 옥에 가두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의 동료 친구들이 보았을 때에 그가 행한 일은 몹시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자 그러한 사실을 주인에게 고한다.

  그러자 주인은 1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를 도로 소환한다. 그리고 그에게 말한다. "악한 종아, 네가 나에게 간청했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저 모든 빚을 내버려두었다. 나 자신도 역시 너를 불쌍히 여겼던 것 같이, 너 자신도 역시 너의 동료 종을 불쌍히 여겨야 하지 않았느냐?"(마 18:32-33). 그리고 주인은 그 종에게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형리들 곧 고문하는 자들에게 넘겨 고문하도록 하게 하였다(마 18:33). 그리고 예수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마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6. 믿는 사람이 이미 받은 죄용서함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수많은 성도들은 자신이 주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은 것에 대해서 다들 자신의 모든 죄가 없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1만 달란트의 비유에 따르면, 사람이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았다는 의미는 죄를 삭쳐주어 없애버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잠시 그 빚을 갚는 것에 대한 것을 유보해두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탕감받았다'는 동사의 의미는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사면'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잠시 유보해 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탕감하다'(아피에미)는 단어의 뜻은 '내버려두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당분간 그를 풀어보낸 것일 뿐 그가 탕감받은 자답게 살지 않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다시 불러 그가 갚지 못한 빚에 대해 추궁하여 그 죄값을 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믿었으면 자신의 죄는 다 영원한 사면을 받았기 때문에 더이상 자신의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는 그러한 용서가 아니다. 유보된 용서일 뿐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은 우리가 치를 수 없는 죄를 치렀기에 일단 유보해두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받은 자답게 사는지를 주님께서 지켜보시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받은 자답게 살지 않았을 때에는 얼마든지 다시 불러내어 우리의 죄값을 치르게 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받은 용서는 얼마든지 철회가 가능한 것이다. 다만 우리가 죄인임을 시인하고 주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선 우리가 죄값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신 것 뿐이다.

  사실 모든 성도라도 그가 죽는 날 그는 다시 한 번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때에 그는 용서받은 자답게 살았느냐를 다시 심판받을 것이다. 그때에 만약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모든 성도는 다시 죄인이 되어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큰 죄를 용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아주 작은 빚을 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는 악한 종과 같은 모습이 내 안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하게 경고하셨기 때문이다(마 6:14-15). 그것도 주기도문의 말씀을 주신 뒤에 그에 따른 부록편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마 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7. 나오며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길은 자신을 낮추고, 교회의 권징을 통해 죄를 바로잡으며, 무엇보다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데 있다. 우리의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구원의 조건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형제의 작은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하며, 나에게 죄를 범한 자를 온전히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를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종국에 가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채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시키지 말아야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죄지은 자가 용서를 빌 경우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2025년 09월 10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마태복음 18장은 천국에서 큰 자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이며, 구원은 작은 자를 실족시키지 않고 형제를 용서하는 삶과 직결됨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여기에서서는 교회의 권징을 통해 죄를 다루는 질서와 함께,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일만 달란트의 큰 용서를 기억하고 다른 사람의 작은 죄를 진심으로 용서해야 함을 일깨운다. 그리고 마지마긍로 진정한 용서가 없이는 하나님 의 용서 또한 없으므로, 용서는 구원의 필수 조건임을 말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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