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02)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주 하나님은 과연 누구신가?(02)(계1:1~8)_2017-07-05

by 갈렙 posted Jul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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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S0Sbe52rw28
날짜 2017-07-05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1:1~8(신약 39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요한계시록강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 신론, 성령론, 어린양의 일곱 눈, 하나님의 일곱 영, 한 분이신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알아보려면 성경66권 중에서 어떤 성경책을 열어보면 알 수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에 대해서는 구약성경에서는 이사야서를 읽어보기를 추천해드린다. 특히 이사야 40장에서 66장을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거기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아주 정확하게 나와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은 육신을 입으셨던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뒤 적어도 60년이상 시간이 흐른 후에 쓰여진 성경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A.D.90~95년이후 장차 되어질 일을 묘사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우주를 다스리시고 통치해나가는시는지가 적나나하게 나온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지금도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 알려면,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계시요 최종적인 계시를 담고 있는 요한계시록을 읽어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에 대해서 특히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를 원한다. 성부와 예수님은 어떤 관계에 있으며, 또한 성령과 하나님은 또 어떤 관계가 있는 것는가?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은 매우 특별하다. 왜냐하면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되시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주관하시는가를 알려주고, 독자에게 심판의 날을 대비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종말에 관한 예연과 계시를 듬뿍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것을 정확히 해석하고 잘 적용할 수만 있다면, 이 불투명한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책이므로, 우리는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지식으로서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구약성경 중에서 계시와 환상의 책인 다니엘서와 에스겔서와 스가랴서는 기본적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거의 모든 상징들이 여기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 편지의 책인 요한계시록

  더욱이 이 책 요한계시록은 편지형식을 빌어서 쓰여진 서신서다. 이 편지는 사도요한이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일곱교회의 사자들에게 편지처럼 보낸 것인데, 요한이 어느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써서 일곱 교회에게 보내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서두(1:1~8)와 인삿말(계1:4~6)이 있고, 맨 마지막에서는 끝맺는 인삿말(계22:6~21)이라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3. 하나님에 대한 계시의 책이기도 한 요한계시록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가장 완성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이 과연 어떤 존재방식으로 거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과연 그분은 천국에서 세 분으로 존재하시는지, 아니면 한 분으로 존재하는지를 똑바로 알려준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가 과연 몇 개인지 즉 세 개인지 아니면 한 개인지도 알려준다. 사실상 천상에 계시는 전능자 하나님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확실하게 알려주는 책은 더이상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지난주에 이어서 요한을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인지에 대한 알아보고, 이어서 성령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4. 이제는 눈을 떠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다시 보자.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성경을 보는 눈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읽느냐에 따라 성경은 전혀 다른 각도로 보여질 수 있다. 사람은 아무래도 주관적인 견해를 가진 채 있다. 특별히 어려서부터 어떤 특정한 교회에서 자란 성도들은 자기가 자란 교회의 목회자의 신학적인 견해를 간과할 수 없다. 자신이 배웠던 안경을 통해 성경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담임목회자로부터 들었던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교리가 성경을 보는 눈이 된다. 특별히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양태론적인 하나님에 대해 아는 자도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 특히 개혁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우선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오늘날 개혁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은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대부분 고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으며 교리로 정착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발전되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와 같이 체계화되었는지에 잘 모른다. 삼위일체의 교리가 정통이라고 하니까, 그냥 맞겠지 하면서 그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가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보다 훌륭한 신학자들이 성경을 열심히 연구해서 얻은 결론이니만큼 삼위일체 교리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고 배웠던 교리들 중에는 우리가 성경적이라고 알고 있으나 사실은 사람이 만들어놓은 교리라는 것을 들어보았는가? 어떤 교리는 사실 100%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교리는 당시의 낮은 이해의 수준으로 만들어져 그것이 고착화된 것들도 참 많다. 당시에는 그것이 최고의 지식이었지만 오늘에 와서 보면 얕은 수준도 더러 있는 것이다. 그렇다. 과거로부터 정통으로 받아들인 것이지만 오늘날 21세기에 들어와서 볼 때, 어떤 것은 성경에서 상당히 어긋나 있거나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는 교리들도 더러 있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교리 즉 신론에 있어서는 더욱 그런 것들이 많다고 하겠다. 그래서 오늘은 신론에 관한 잘못된 부분과 또한 성령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신지 그리고 성령은 성부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5. 사도요한이 소개하고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인삿말은 어떤 인삿말인가?

  먼저, 사도요한이 언급하고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인삿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계1:4~7). 이 편지를 썼던 사도요한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다음과 같이 인사한다(계1:4~6).

계1:4-6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부분에서, 보통 신학자들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묘사이고,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묘사이며,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에 대한 묘사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소개라고 말한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러한 견해가 맞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5~6절에 나오는 분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가 맞기는 맞다. 하지만 그가 "우리를 그의 아버지와 하나님께 왕국과 제사장들로 삼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6절에 나오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성을 취한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 찬찬히 보라. 5~6절에 나오는 예수님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인성을 취하신 후에 인류를 위하여 속죄사역을 마치고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과 제사장들로 만드신 분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한 마디로, 5~6절에 나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개는 성자 하나님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사람이신 예수님에 대한 소개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삼위일체 방식으로 성경을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이 부분은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 역시 성자 하나님에 대한 묘사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인 것이지, 결코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아들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묘사는 좀 더 나중에 나온다. 그렇다. 계1:4~6의 말씀은 세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가 아닌 것이다. 또한 서로 인격이 다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소개도 아니다. 계1:4~6의 말씀은 무소부재하신 한 분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그분이 어떻게 그의 영을 통해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며, 과거에 사람이 되어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도요한은 한 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먼저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성령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인성을 취하시어 인류의 구속사역을 마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과 제사장들로 삼으신 사람이신 예수님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6.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은 대체 누구신가?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소개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4절 상반절에 나온다. "이제도 계시도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가 바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소개 부분이다. 이 본문을 헬라어원문을 가지고 풀어서 옮겨보면 이렇다. "지금도 계시며, 전부터 있어 왔는데 아직까지도 그 영향이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계1:4b)"다. 그렇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기에, 지금 계시지만 과거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오고 계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묘사가 나온다. 그것이 바로 이 편지의 인삿말의 끝에 나오는 계1:8의 말씀이다. 사도요한은 계1:8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소개했다.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렇다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을 가리키는가?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8절에서 3가지로 소개하고 있으니, 첫째,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고 소개하셨다. 그리고 둘째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은 계1:4상반절과 1:8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시다(계1:4a,8). 그리고 셋째,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은 전능자('판토크라토르', 만물의 지배자, 만물의 통치자)이시다(계1:8).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가리키는 표현들이다. 그분이 알파와 오메가라는 것은 그분이 모든 것을 시작하고 또한 끝내실 수 있으며 그러한 하시고 계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면서,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시작과 마침"이신 분이시다. 한편, 그분이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이라는 표현들은  같은 뜻에 대한 다른 용어들에 해당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도요한이 이 편지를 기록하기 무려 700년전에(B.C.700년경) 이사야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미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소개하셨다는 사실이다(사41:4, 44:6, 48:12). 그리고 그분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이다.

사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표현을 인자이신 예수께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도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 구약의 여호와와  똑같이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계1:17, 2:8, 21:6, 22:13)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님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계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그렇다. 우리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자기선언을 통하여, 예수께서 바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 아니라, 바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여호와는 대체 누구신가? 그분은 예수님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다가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동정녀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태어나신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언젠가는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인데,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 및 천군천사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슥14:3~9, 행1:11~12).

  결국 계1:4에서 소개되어 있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인 것이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소개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7.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사도요한은 성령님을 과연 어떻게 소개하였을까? 요한계시록에서 성령님은 성부도 아니고 성자도 아닌 제3의 하나님이신가? 삼위일체하나님을 주장하는 분들은 성부도 하나님이고, 성자도 하나님이시며, 성령도 하나님이시지만, 성부는 성자과 같지 않고, 성자는 성령과 같지 않으며, 성령은 성부와 같지 않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셋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성령님은 성부와 다르고 성자와 다른 분으로 나오지 않는다. 한 분 하나님으로 나온다. 만일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이 누구신지가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모든 사람들은 성령님을 단독적인 제3위의 하나님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성령님을 단독적인 제3위의 하나님이라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틀린 주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요한계시록에서 성령님은 단독적인 제3위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구약성경에 나오는 성령님은 다른 보혜사로서,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가장 온전하게 성령님을 표현한다면,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의 영이고 해야 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성령님에 대해 좀 독특하게 다음과 같이 4가지로 표현한다. 그것은 첫째, 성령님이 일곱 영[들]이라는 것이다(계1:4,3:1,4:5,5:6). 둘째,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영[들]이라는 것이다(계5:6), 그리고 셋째, 성령님은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는 것이다(계:5:6). 넷째, 예수께서 그 성령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다(계3:1). 자, 이제부터는 직접적으로 요한계시록에 표현된 성령님에 대한 이 독특한 표현들을 직접적으로 살펴보자.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계1:4)", "하나님의 일곱 영[들]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계3:1)",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계4:5)", "어린 양에게 일곱 눈[들]이 있으니, 이 눈들을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더라(계5:6)" 그렇다. 성령은 어린양의 눈[들]이시다. 그것도 일곱 눈들이시다. 그런데 실제는 성령님은 일곱 영들이며 일곱 눈들인 것인가? 아니다. 여기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다. 만약 어린양에게 눈들이 7개가 달려있다면 어린 양은 아마도 괴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이란 상징적인 숫자로서 이 세상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온 땅에 보내어져 이 땅 모든 곳을 다 감찰하시는 완전하신 예수님의 완전한 눈, 전지하신 예수님의 눈이 바로 성령님이신 것이다. 고로 성령님은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영이시다. 그 예수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시니, 성령님은 한 분 하나님의 영이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떠한가? 어떤 이는 양태론적 신관에 빠져 있어서, 오순절 이후 시대는 성령 하나님의 시대가 되셨으니, 성령을 따로 만나야하고 성령을 따로 배워야하며, 성령을 따로 체험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지금의 시대는 예수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오순절 이후에 이 땅에 오신 성령님을 알고 그분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이 누군지 아는가? 그들이 바로 신사도와 빈야드운동을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성령님을 예언이나 방언, 치유과 능력같은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외친다. 물론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뜻대로 은사를 주시는 것은 맞다. 하지만 신사도와 빈야드운동을 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체험하고 느끼고 있는 그 성령님이 진짜 성령님이라도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성령은 사실 성령이 아니다. 좋게 말하는 은사와 능력에 치우친 성령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들이 말하는 성령님은 귀신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귀신들도 얼마든지 능력이 있어 예언도 할 수 있게 해주며, 방언도 터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성령님은 귀신들이 성령을 사칭하여 성령님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체험하고 있는 그분이 성령님이라고 말한다. 귀신충만을 성령충만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신사도와 빈야드 운동쪽에서 성령운동을 하는 자들에게서 저주가 떠나가지 않는다. 귀신을 받고 귀신의 능력을 받아 사역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니다. 귀신은 거룩한 영이 아니라 저주받은 영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힘입으면 저주가 나타난다. 하지만 성령은 체험으로 알 수 있다고 가르치니, 계속해서 은사운동하는 집회에 쫓아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군데에 낭비하려는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물질을 허비하려고 하는가? 거기에 들어사는 귀한 시간과 물질을 예수님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는데 써야지 어디에 쓰고 있는가? 오직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물질을 온 땅에 참된 천국복음을 전파하는데에 써야 하지 않겠는가?

 

8. 나오며

  결국 계1:4~6의 하나님의 인삿말 말씀은 홀로 한 분이시나 동시존재가 가능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인 것이다. 여기에서 성령님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자 예수님의 눈으로서 온 땅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성을 취하신 아들로서, 인류의 죄사함을 위해 친히 사람으로서 오셔서 사역하신 뒤에, 높이 올려지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동등한 삼위일체의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소개하는 본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 대체 누구시며, 그분이 어떻게 영으로 활동하고 계시며, 과거에 어떻게 인류구속을 위해 일하셨는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한 분 하나님이 무슨 일을 행하하고 있는지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오직 홀로 한 분이시다. 하지만 무소부재하시며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은 이 땅에 당신의 영인 성령을 보내신 채 존재하신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이천년전에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들어오셨고,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다시 올라가셨다. 이것을 고스란히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계1:4~6의 인삿말의 실체인 것이다. 이제 다음 이 시간에는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과 그분의 재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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