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03)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과연 누구신가?(01)(계1:4~8)_2017-07-12

by 갈렙 posted Jul 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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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Yn6NLTWa5qQ
날짜 2017-07-12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1:4~8(신약 39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하나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한계시록의 인삿말에 등장하는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이 과연 어떻게 소개되고 있을까?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로 소개되고 있을까?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다가 크게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친히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1:17). 이것은 구약시대에 여호와의 자기선언이었다(사41:4,44:6,48:12).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표현을 자기자신에게 쓰신 것일까? 한편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이 표현을 쓰기 전에 인간 예수께서 누구셨으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소개한다. 곧 예수께는 신성과 인성이 있으셨던 것이다. 천국에서까지 잊혀지지 않는 그분의 공생애 사역을 이제 하나씩 찾아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책이며 예언의 책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은 상징과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내용 중에는 있는 그대로를 읽기만 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어느정도 이해가가능한 부분들이 있기도 하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1~3장이요, 21~22장이다. 그런데 나머지 4장부터 20장까지는 환상과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3대7중재앙으로 겹치듯 등장하고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헤아리기란 쉽지는 않다. 그러므로 3대7중재앙에 대해서는 이때까지 인류의 역사 가운데 드러나 여러가지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책이자 예언의 책이다. 그러나 형식은 편지의 형식을 빌어서 쓰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요한계시록의 서두의 인삿말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누구시며, 성령님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원문 그대로를 살펴보기 원한다.

 

2. 요한계시록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누구신가?(계1:4a, 8)

  우리는 지난 두 차례의 강해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시며, 성령님 또한 누구신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이 누구신지에 대한 소개를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이미 부활승천하사 보좌에 앉아계시는 예수님은 누구시며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점 더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요한계시록 1:4~6의 인삿말에 나오는 하나님을 성부와 성령과 성자 곧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소개라고 언급한다. 그런데 과연 요한계시록 1:4~6에 나오는 하나님 소개는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 그리고 성령하나님에 대한 소개일까? 그렇다면, 헬라어원문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기록되어어 있을까? 먼저, 계1:4~6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직역해보도록 하겠다.

계1:4~6 요한은 아시아 안에 있는 일곱교회들에게 [편지한다]. 너희에게 은혜를 그리고 평강을 [기원한다]. [지금] 있고 그리고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그리고 [당신자신을 위하여] [지금도] 오고 있는 이로부터. 그리고 일곱 영들로부터. 이는 그의 보좌 앞에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5 신실한 증인, 죽은 자들로부터 먼저 나신 이 그리고 땅의 왕들의 통치자. 우리를 사랑하셨던 이에게 그리고 그의 피 안에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던 이에게. 6 그리고 그는 하나님에게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게 우리를 제사장들과 그리고 왕들로 만드셨다. 그에게 영광이 그리고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아멘.

  우리는 지난 시간에 계1:4~6의 말씀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계1:4의 앞부분에 소개되어 있는데, 그분은 "지금도 있고 그리고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그리고 지금도 오고 있는 이"이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누구라고 말씀하셨던 직접적인 자기소개는 아니다. 다만 사도요한이 하나님에 대해 이런 분이시다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신자신에 대해 직접적으로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을까? 그것은 요한계시록1:8에 나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따로 떼어서 소개하고 있으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계1:8 "나는 알파 그리고 오메가다." 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지금] 있고 그리고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하여] [지금도] 오고 있는 이, 전능자.

  그렇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소개하신다. 그분은 헬라어의 첫글자와 마지막글자이시다. 이것은 그분이 시작이요 마침이라는 뜻이며, 그분이 시작하시고 그분이 끝내시는 분임을 말해준다. 그렇다. 하나님은 시간을 쥐고 계신 분이다. 그분은 지금도 시간 밖에 계시면서, 지금도 앞으로도 당신이 원하는 시간을 창조해가는 절대자이시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계속해서 그분에 대한 호칭으로 "주 하나님"을 사용한다. 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로 소개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주 하나님이신 그분에 대해서 "지금도 있고 그리고 과거에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것이고, 지금도 오고 있는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요한은 그분을 "전능자"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자신을 소개하신 직접적인 표현은 오직 한 가지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실 때에 "알파와 오메가"라고 소개하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놀라운 자기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이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소개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도 당신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 성부 하나님처럼 똑같이 표현하시고 있다는 사실이다(계22:13).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이러한 표현과 유사한 표현들이 2개 더 있다. 그것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계1:17, 2:8, 21:6)"이라는 표현과 나는 "시작과 마침(계22:13)"이라는 표현이다. 그렇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당신자신에 대해 "알파와 오메가"라고 소개하셨다(계1:8).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자신을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이라고 표현하셨다. 이것은 단어들만 교체한 것일 뿐 똑같은 표현들에 해당한다. 그렇다. 시간을 창조하신 그분께서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고 있다. 앞으로 언젠가 그분에 의해 옛창조의 세상은 끝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없는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 가보면, 다시 시간이 없는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에 예수께서 당신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라고 말씀하셨다(계21:6, 22:13). 이것은 예수께서 곧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명확히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그런데 예수님도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자, 시작과 마침이신 분이다. 그렇다면, 계21장 22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자기소개를 어떻게 하셨는지 헬라어본문을 통해 조금 더 살펴보자.

계21:6 그리고 그(보좌에 앉으신 이)가 내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이루어진 채 있다." "나는 알파 그리고 오메가다, 처음 그리고 마지막이다." 내가 [지금] 목말라하고 있는 자에게 선물로서 생명의 물의 샘물로부터 줄 것이다.  

계22:13 나(예수)는 알파 그리고 오메가다. 처음 그리고 마지막[이며]. 그리고 시작 그리고 마침[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자기를 어떻게 소개하셨던 것일까? 특히 구약성경에서 이사야서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소개하시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런데 거기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자신을 소개하실 때에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사41:4, 44:6, 48:12).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소개하신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아들로 오셨다가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뒤에 하늘에 오르시어 보좌에 앉으신 후에, 당신 자신을 "나는 처음으요 마지막"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부활승천하신 보좌에 앉아계시는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두 분 혹은 세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와같은 여호와의 자기선언와 예수님의 자기선언을 종합해 본다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구약에서 여호와로 자기를 소개하신 하나님은 곧 요한계시록에서 자기를 예수님이라고 소개하신 분과 동일한 분 곧 하나라는 사실이다. 곧 여호와께서 예수님으로서, 같은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3. 요한계시록에서 성령님은 누구신가?(계1:4b)

  이제는 사도요한의 인삿말에 소개되어 있는 성령에 대해서 살펴보자. 계1:4에 의하면, 성령님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그의 보좌"는 "지금도 있고 그리고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그리고 지금도 오고 있는 이"의 보좌다. 그런데 요한게시록에서 "지금도 있고 그리고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그리고 지금도 오고 있는 이"는 누구신가? 그분은 주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곧 우리주 예수님이시다. 결국 "그의 보좌"는 주 하나님의 보좌다. 그런데 그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우리주 예수님의 보좌다(계19:4, 22:1,3). 왜냐하면 계22:1~3에 보니, 그 보좌의 명칭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계22;1,3). 그렇다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영은 하나님의 영이자(계4:5), 어린 양의 눈들(계5:6)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계4:5 그리고 뇌성들과 음성들과 번개들이 보좌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리고 불태움을 받고 있는 보좌 앞에 일곱 등불들이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다.

계5:6 그리고 내가 보았다. 그리고 보라! 그 보좌의 그리고 네 생물의 한가운데 안에, 그리고 장로들 한가운데 안에, 마치 [이미] 살해당한 채 있는 것과 같은, [이미] 서 있는 채 있는 어린양이 [있다]. 일곱 눈들과  일곱 뿔들을 [현재] 가지고 있는, 이는(이 눈들은) [이미] 온 땅 안으로 보내심을 입은 채 있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인 스가랴서를 보면, 일곱 영들은 여호와의 눈들이라고 한다(슥4: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은 하나님의 영이요 어린양의 눈들이자 여호와의 눈들이다. 그리고 이 영은 온 땅 안으로 보내심을 입은 채 있는 그분이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숫자 일곱은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의미하므로,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자 여호와의 눈이며, 어린양의 눈으로서 이 세상 모든 곳을 감찰하고 계시는 완전한 영을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 사도요한이 인삿말에서 소개하고 있는 성령님은 성부와 다른 세번째(삼위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사역하고 있는 하나님 자신 곧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인 것이다.

 

4.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은 누구시며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셨는가?(계1:5a~6a)

  그렇다면, 사도요한은 일곱교회에게 보낸 편지의 인삿말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 사도요한은 여기서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사도요한은 인삿말 후에, 자신의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가 같은 큰 음성을 들은 다음 뒤를 돌아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사람의 아들 같으신 분을 보았다고 했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계1:5-6 신실한 증인, 죽은 자들로부터 먼저 나신 이 그리고 땅의 왕들의 통치자. 우리를 사랑하셨던 이에게 그리고 그의 피 안에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던 이에게. 6 그리고 그는 하나님에게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게 우리를 제사장들과 그리고 왕들로 만드셨다. 그에게 영광이 그리고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아멘.

  그러므로 사도요한이 인삿말에서 소개하고 있는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도요한은 인삿말에서 이 땅에 사람이 되어오신 예수님이 과연 누구시며 그리고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나누어서 설명하자면, 계1:5절 상반절에서 사도요한은 사람이셨던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으며, 계1:5절 하반절부터 6절 상반절에 사도요한은 사람이셨던 예수께서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삿말에 나오는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그분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하나님이시다. 요한계시록 1:5a~6a의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살펴보자.

 

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과연 누구신가?(계1:5a)

  그렇다면 이땅에 사람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누구신가? 첫째로 그분은 신실한 증인(순교자)이시다(계1:5a). 계3:14에 의하면,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신실한 증인이자 참된 증인으로 소개하신다. 뿐만 아니라 계19:11에 의하면, 백타를 타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등장하는데, 그분의 이름이 바로 신실과 진실이라고 나온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신실하고 충성되게 사신 분이시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을 충실하게 그리고 충성되게 실행하며 사셨던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먼저 나신 분(프로토토코스)'이시다(계1:5a). 여기에 나오는 '먼저 나신 분'이라는 낱말은 헬라어로 '프로토토코스(prototokos)'라는 말로서, 이 단어를 번역할 때는 보통 3가지로 번역된다. 그것이 사람일 경우에는 '장자(맏아들)(시89:27,골1:18,롬8:29,히1:6)'로 번역하며, 동물의 경우에는 '맡배' 혹은 '첫것'으로 번역한다. 그리고 그것이 식물의 경우에는 '첫열매, 맏물(아파르케)'로 번역한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사람으로 오셨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다.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피흘려 죽으시기 위함이다(히9:22). 왜냐하면 죄값이 사망인데(롬6:23),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세상 죄를 없이하려고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요한으로 인류의 죄를 전가받으신 후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고전15:3~4). 그러나 그분은 죽임당할 죄들을 지으신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려고 죽으신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죄가 없었기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수가 있었다. 물론 그분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그분에게만 사망권세를 이길 수 있는 부활의 능력을 갖추고 계시기 때문이다. 죄가 없더라도 한 번 죽어버린 사람을 계속해서 다시 살 수 있도록 다시 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지만 하나님으로서 부활생명을 가지셨기에 다시 살아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부활의 첫열매(고전15:20, 아파르케)가 되셨다. 그리고 그분은 40일간 이 땅에 당신의 부활을 보여주신 후에 하늘에 올라가셨다. 그리하여 셋째로, 그분은 땅의 왕들의 통치자가 되셨다(계1:5a). 여기서 그분이 왕들의 통치자가 되셨다 하는 것은 그분이 하늘의 왕으로서 땅의 왕들의 지배가 되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신 뒤에 땅에서 왕노릇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왕이 되셨다. 그리고 하늘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왕으로 계신다(계5:9~10).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왕들 중의 왕이시며, 주들 중의 주라고 칭함을 받기에 합당하시다(계17:14,19:16).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이셨다. 하지만 이 땅에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대충 살지 않으셨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모든 일들에 충성되게 사셨다. 그리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뒤에 승천하시어, 땅과 하늘의 왕들의 왕이 되셨고 주들의 주가 되셨다.

 

나. 한 때 사람이셨던 예수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는가?(계1:5b~6a)

  이어서 사도요한은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소개한다. 사도요한은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소개한다. 첫째는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계1:5b). 여기에 나오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다. 이것은 말이 아니라 실제로 직접 자기를 희생시켜 실천하신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말만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셨지만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시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요13:1,34~35, 15:9). 친히 사람사랑하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분이다. 둘째로, 사람이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로서 우리를 우리의 죄로부터 해방해주셨다는 것이다(계1:5b). 이것은 하나님으로서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피를 흘릴 수가 없고 죽으실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일은 곧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분이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렇다. 그분은 인류의 속죄를 위하여 고난받으시고 피흘리신 뒤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사람이셨던 그분은 이제 믿는 우리 성도들을 왕들과 제사장들로 만드셨다고 한다(계1:6a). 그렇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우리 믿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왕과 제사장으로 살아가실 수 있도록 그 근거를 마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에게 2가지 직책이 주어질 것이다. 하나는 왕으로서의 직책이요, 또 하나는 제사상으로서의 직책이 주어질 것이다(계5:10, 20:6). 여기서 천국에서 "왕"의 직책이 주어진다고 함은 천국에서 다른 천국성도들 위에 군림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천국의 사역자들로 지어진 천사들을 다스리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천국에서 제사장의 직책을 가진다고 함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희생제사를 드린다는 뜻이 아니다. 천국에 있는 성도들은 이미 죄를 처리하고 천국에 들어가 있기에, 천국은 희생제물이 필요없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성도들은 제사장으로서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것일까?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성도들은 천국에서 다음과 같은 2가지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첫째, 천국에서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의 재림직전까지 할 일이다. 주님의 재림이후에는 기도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더이상 중보기도하는 않을 것이다. 둘째, 천국에서 성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천국에서 성도들은 영원히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전까지는 중보기도와 찬양하는 일을 하겠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이후에는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그분이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 천국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찬양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시어 행하신 일을 영원토록 찬양할 것이다(계4:11). 그러니 이 땅에서부터 우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하는 일을 더욱 힘쓰는 성도들이 되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 될 것이다. 한편, 천국에서는 찬양하는 일은 우리 성도들만 즉 천국에서 제사장노릇을 하는 우리 인간들만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계5:8~11). 왜냐하면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과 수천 수만의 천사들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찬양을 드리기 때문이다(계4:8, 5:11~12). 천국은 일종의 찬양의 나라인 것이다.

 

5. 나오며

  그렇다.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의 편지 서두에서 인삿말로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진술은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 대한 진술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고 지금도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소개하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성령은 또 하나의 세번째 하나님이 아니다.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님의 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게 하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 그렇다면, 부활승천후에 하늘에 오르시어 원래의 하나님으로 되돌아가신 예수님은 어디에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는가? 그것은 인삿말 이후에 나오는 "일곱 금촛대 사이를 왕래하시는 인자같은 이"의 환상 속에 나온다. 다음주에 이러한 예수님에 대해 만나보도록 하자. 영원토록 찬송받으신 하나님과 그의 어린양에게 부와 지혜와 찬송과 영광, 존귀와 힘, 능력을 돌려지고 돌려지기를 바란다. 아멘.

 

2017년 7월 17일(수) 작성

2017년 8월 07일(화)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