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21) 1,260일과 큰 성 및 두 증인의 부활승천의 비밀(계11;3~14)_2017-12-06

by 갈렙 posted Dec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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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wRi9Piwq8bk
날짜 2017-12-06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11:3~14(신약 40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두 증인,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환난란 휴거, 다니엘의 한 이레, 전3년반, 후3년반, 42달, 1,260일, 이방인의 때, 두 증인의 사역기간,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두 짐승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은 대체 누구인가? 정말 인류 마지막 시기라고 말하고 있는, 다니엘의 한 이레의 기간에 나타나 활동하는 주의 사역자들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리고 이들이 사역하는 시간이라고 일컬어지는 1,260일은 과연 3년반의 시간일까? 아니면 상징적인 기간인가? 그리고 교회가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히는 시기는 후3년반의 시기요, 두 증인이 활동하는 시기은 전3년반의 시기라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누가 이러한 해석을 내놓았으며, 이것은 과연 올바른 해석인가? 뿐만 아니라 두 증인이 활동하다가 죽임당한 장소가 "큰 성"이라는데 그곳은 대체 어디인가? 그곳은 과연 예루살렘성인가 바벨론성인가? 오늘은 참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도 참 많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환난전휴거를 따라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환란통과를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 중에서 난제 중의 난제는 역시 요한계시록 11장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두 증인"과 두 증인의 활동하는 기간인 "1,260일"과 두 증인의 순교하는 장소인 "큰 성" 그리고 그가 죽고 난 3일반 후의 "부활승천의 시기"에 대한 갖가지 해석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 두 증인"은 대체 누구이며, 두 증인이 활동하는 기간인 "1,260일"은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두 증인이 순교하는 장소인 "큰 성"은 어디며, 이들이 죽고 난 후에 부활하고 승천한다는데 그 시기가 언제인지 등은 지금도 수십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모두들 저마다 올바른 해석이라고 내놓고 있지만 어느 것이 정말 바른 해석인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시간관계상 이것들 중에서 "두 증인"에 대한 확실한 정의와 아울러 두 증인이 활동하는 시기인 "1,260일" 그리고 두 증인이 순교하는 장소인 "큰 성"에 대해서만 살펴보고자 한다.

 

2.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은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리해보자.

  그럼 첫째로, "두 증인"은 누구인지를 정리해보자. 우리는 요한계시록 11장에 등장하고 있는 "두 증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지난 두 시간에 걸쳐 조금씩 살펴보았다. 거기서 우리는 두 증인이 단지 두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계11:3). 왜냐하면 두 증인이 자신의 활동을 마치게 될 경우,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계11:7). 어찌 두 사람과 전쟁하는 나라나 세력이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두 증인이 순교당하자, 사람들이 그들의 시체를 3일반동안 거리에 나뒹굴게 놔둔다고 했는데, 이들의 시체는 "시체들"이 아니라 단수명사인 "시체"이기 때문이다(계11:7,9). 이는 두 증인에 대한 확실한 묘사이기에, 두 증인은 어떤 단체적인 개인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 우선 두 증인은 먼저 증인들인 것이다(계11:3).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들인 것이다. 시대마다 일어나 우상숭배의 죄악을 외치고 회개를 외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목숨을 걸고서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인 것이다. 두번째로 이들은 "두 감람나무"라고 했다. 두 감람나무는 일곱금등잔에 기름을 흘려보내는 두 개의 감람나무다. 이러한 모습은 슥4장에서 스가랴가 본 환상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그때 당시 두 감람나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인 스룹바벨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두 사람은 성전건축 공사를 독려하는 인물이었다(학1:12,2:2). 그런데 이들이 일곱개의 관들을 통해 일곱금등잔에 기름을 흘려보내는 존재라고 나와 있고,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서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슥4:11,14), 이들은 주님을 대신하여 금등잔(금촛대)로 비유되는 지상의 교회들에게 성령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들인 뿐만 아니라, 주의 종들에게 아예 성령충만을 처음으로 제공하는 주의 종들인 셈이다. 이들은 누구에서 받은 은혜를 가지고서 사역하거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통해서 성령충만이 흘러나와 다른 주의 종들을 깨우고 가르치는 주의 종들인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이들은 "두 촛대"라고 했다(계11:4). 계1:20에 의하면, 두 촛대는 두 개의 교회를 가리킨다. 온갖 어둠 가운데서 빛을 발하는 2개의 지상의 교회를 가리킨다. 아니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추고 있는 주의 종들을 둔 교회인 셈이다. 이들이 누구인지를 굳이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교회를 통해서 살펴본다면, 이들은 칭찬만 들었던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리아교회"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당시 서머나교회는 핍박받는 교회의 상징이었고,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교회이지만 충성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교회"의 대표였다. 고로, 핍박을 견디어 충성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교회가 바로 두 증인인 것이다. 넷째로,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이다(계11:5~6). 왜냐하면 이들이 활동을 묘사하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선지자의 대표였던 엘리야와 율법의 대표였던 모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 해서 다른 사람들을 태워버렸으며, 3년반동은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한 선지자다. 그리고 모세는 애굽에 10가지의 재앙을 내리게 할 때 첫번째 재앙으로서 나일강의 물이 피가 되게 했던 인물이다. 그렇다. 두 증인은 어떤 두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일어나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하지 말 것과 회개를 외치는 역할을 감당하는 자들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두 선지자다(계11:10, 3,6). 이들은 예언자들이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자들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미 구약의 예언을 따라 메시야가 와서 속죄사역을 완성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속죄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소개하며, 회개하여 천국을 소유할 것을 외치는 사역자들인 것이다.  

 

3. 두 증인에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은 무엇이며, 그들은 언제 누구에 의해 죽임당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두 증인에게는 놀라운 특권이 주어져 있다. 그것은 이들이 사역을 마치기까지는 누구도 그들을 해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성전과 분향단과 성전에 경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키시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을 해치려는 자들이 해를 받거나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계11:5).

  하지만 이들이 사역을 마치게 되면, 무저갱에서 올라운 짐승에 의해 죽임당하게 될 것이다(계11:7). 다시 말해, 이들의 마지막은 짐승에 의해 순교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하지 말 것과 음행을 하지 말 것을 계속해서 책망하고 경고하였기 때문이다(계11:8).

  그렇다면, "무저갱에서 올라오고 있는 짐승"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요한계시록 13장에 가서 제대로 공부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여기서 그 짐승은 바로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귀신의 영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무저갱은 귀신들의 감옥이자 처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올라오는 영은 귀신의 영이지, 지옥에 있는 사람의 영은 아니다. 사람이 한 번 죽고 나면 다른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는데, 사람은 영은 이승과 저승을 왔다갔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지옥에 있는 사람의 영이 올라오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타락한 천사의 영이 올라와 사람 속에 들어가서는 역사하는 것이다. 이 짐승의 실체는 요한계시록 16장에서 정확히 언급해주는데(계16:13~14), 계20장 가면, 이 짐승의 마지막은 산채로 불못에 던져진다는 것이다(계19:20).

계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그렇다. 하나님께서도 삼위일체방식으로 역사하듯이, 사탄의 하나님을 모방하여 삼위일체 방식으로 일한다. 사탄의 삼위일체는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다. 용이 짐승에게 자기의 권세를 주고 나중에는 짐승이 거짓선지자에게도 그러한 권세를 준다(계13:2,15).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사탄을 대신하는 타락한 천사의 영이다. 바로 이가 밖으로 나와서 사람 속에 들어가서 특히 이 세상의 지배자들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는데, 그가 두 증인을 죽일 것이다.

  그럼, 죄없는 두 증인은 왜 죽이려하는가? 그렇게 되면 사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왕노릇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고 주님의 재림을 재촉하기만할 텐데, 왜 죄없는 두 증인을 죽이려고 하는가? 그것은 두 증인의 활동이 너무나 밉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때든지 그들을 죽일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시니 말이다. 그들의 사역을 마치는 날에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실 때에 그들도 그들을 죽일 수가 있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들이 활동하는 기간이었던 "1,260일"은 언제를 가리키며, 이들이 죽임당했던 "큰 성"이란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것일까?

 

4. 두 증인이 사역하는 기간 1,260일은 대체 어떤 기간일까?

  둘째로, 두 증인이 사역하는 1,260일은 어떤 시간일까?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믿는 자들은 두 증인이 활동하는 1,260일(452달, 3년반)(계11:3~13)은 다니엘의 한 이레 중에서 전3년반이 기간일 것이고, 성전밖마당이 이방인에게 주어지는 때(계11:1~2)는 후3년반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11장을 여섯째나팔이 울려퍼진 후에 일곱째나팔이 울려퍼지기 전에 시간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믿는 자들인데, 왜 여기서는 순서를 앞뒤로 뒤바꾸는지 잘 모르겠다.

 

5.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주의자들처럼 다니엘의 한 이레가 정말 마지막 어느 시기에 도래할 것인가?

 그렇다면, 정말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주의자들처럼 다니엘의 한 이레인 7년이 마지막 어느 종말의 시기에 성취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아니올시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잘못된 가설과 잘못된 성경해석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한 이레"에 대한 약속은 사실 단9:24~27에 나오는 약속이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은 분명하게 이스라엘 백성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위한 약속이라고 다니엘에 정의되어 있다(단9:24). 이것은 결코 마지막 시기에 일어날 일이 아닌 것이다.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성을 위하여, 70이레로 기한을 정해놓으신 하나님의 경륜이자 약속인 것이다. 그러니까 70이레의 약속은 그 약속의 실행되기 시작하면 쭉 일어날 것이고, 메시야의 속죄사역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어떤 약속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정한 70이레(한이레는 7년이므로 490년)라는 약속이다. 그것은 일곱이레와 예순두이레가 지난 후에 그리고 한 이레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이다. 그런데 그 시작은 예루살렘을 다시 지으리는 말씀이 나온 때부터라고 했다(단9:25).

  그런데 이러한 예루살렘 중건영은 사실 3가지 학설이 있다. 우선 그중에 가장 믿을만한 하나의 학설을 직접 대입해보자. 그것은 B.C.457년 바사왕 아닥스사왕 7년에 있던 예루살렘 중건영이었다(스7:8,11:25). 그리고 이때로부터 기간을 계산해보면, 49이레는 483년이 지난 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A.D.27년이다. 이때는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시기다. 그런데 이 약속은 69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랬다. 그리고 그가 많은 사람들과 한 이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희생제사와 곡식제사를 그칠 것이라고 했다(단9:27). 이것은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한 이레(7년)의 절반에 속죄제사를 완성하여 더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이다. 즉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완성으로 인하여 더이상 이스라엘의 성전제사가 필요없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속죄제사를 완성했던 A.D.30년 이후에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러자 그때로부터 40년이 지난 A.D.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은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그렇다. 이것만 보더라도 70이레의 약속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지, 69이레까지 이루어졌다가 무한 과도기를 보낸 후에 마지막 어떤 시기에 다시 한 이레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는 어떤 암시도 다니엘의 예언에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지지하는 자들은 다니엘의 한 이레의 언약이 남아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이스라엘과 한 이레 즉 7년간의 평화협약을 맺고, 그 이레의 절반인 전3년반 후에 그 언약을 파기하고, 성전에 우상을 세워놓고 자기가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며, 666표를 받게 하여 그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를 경배하지 않는 자를 다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 이레의 언약이 마지막 어느 시기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집행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정 자체가 틀렸다. 다니엘서 9장의 70이레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69이레가 지나고 공백기를 지나서 어느 시기에 한 이레의 언약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한 이레의 언약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 메시야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시는 언약이지, 적그리스도가 맺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언젠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이스라엘과 한 이레의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이레의 절반에 성전제사를 그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을 잘못 적용하여, 지금은 이스라엘에 성전이 없지만 언젠가는 이 언약의 성취를 위해 예루살렘에 제3의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다 상상의 산물이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천주교의 리베라신부(A.D.1537~1591)가 만들어낸 거짓된 해석이다. 그는 교황의 명령에 따라 당시 교황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퍼뜨리기 위해,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설책을 내어놓았는데, 거기에 미래적 해석을 집어넣었다. 그것은 다니엘의 한 이레가 미래의 어느날에 성취될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즉 미래의 어느날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이스라엘과 한 이레의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사실 천주교의 리베라신부가 이러한 미래주의적 해석을 내놓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는, 한 이레가 미래의 어느날 적그리스도와 이스라엘 간에 맺는 약속이라는 해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리베라신부의 해석은 결국 개신교회에 흘러 들어왔고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세대주의를 낳았으며, 우리나라의 초기의 목회자들이 미국에 건너가서 배운 종말론이 곧 리베라신부의 미래주의적 종말론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의 약 70% 성도들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이다. 아니다. 이처럼 다니엘의 한 이레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을 무턱대로 믿고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 성경대로 믿어야 하고 바른 번역에 따라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6. 두 증인이 활동하는 기간과 성전밖마당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히는 시기는 다른가?

  그렇다면, 두 증인이 복음을 전파하고, 이방인들에 의해 교회가 짓밟히는 일이 동시에 실현되는 42달 혹은 1,260일(3년반)은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 것일까?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그 어디에도 전3년반이나 후3년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예수께서 오셔서 한 이레의 절반에 속죄사역을 드리심으로 제사와 예물을 그치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므로 굳이 후3년반이 남아있다고 한다면, 예수께서 속죄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3년반이 지난 시점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후 3년반이 지난 후 지금까지 약 2천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오시지 않고 있다. 다니엘서의 70이레는 육적인 이스라엘백성에 관한 약속이었던 것이지, 전인류의 역사에 관한 약속, 아니 교회에 관한 약속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는 단지 42달 내지는 1,260일과 한때와 두때와 반때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이방인들에 의해 교회가 짓밟혀지는 시기요, 두 증인이 만국에 복음을 전파하는 시기다. 그러므로 굳이 1,260일이 어떤 기간으로 정의하려 한다면,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재림하시기 전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시기요, 동시에 교회가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혀지는 시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1,260일은 숫자적인 1,260일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숫자는 다 상징적인 숫자에 해당함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42달이나 1,260일은 다 상징적인 숫자로서, 하나님께서 정한 어떤 기간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숫자적인 기간으로 알고 해석해서는 많은 오류를 낳게 되는 것이다. 마치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숫자가 144,000명인데, 이것이 숫자적으로 144,000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7. 두 증인이 죽임당하는 큰 성은 대체 어디인가?

  셋째로, 이제는 두 증인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죽임당하는 장소인 "큰 성"이 어디인지를 알아보자. 우선, 큰 성을 예루살렘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왜냐하면 그 성에 대한 해설이 나오는데, 그곳은 두 증인의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곳이라는 해설 때문이다(계11:8). 얼핏 보면 두 증인이 죽임당하는 장소가 예루살렘 성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두 증인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승천이후에 주님의 재림때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자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이들이 꼭 예루살렘성에서만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이겠는가를 생각해보자. 아니다. 그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십계명의 준수를 외치고 회개를 외치는 사역자들로서 그 장소가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큰 성'이라는 것을 예루살렘성으로 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복음을 외치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 큰 성은 어디인가? 결론적으로 그곳은 "바벨론성"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오직 큰 성은 바벨론성이라고만 나와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10번이나 나온다(계11:8, 124:8, 16:19, 18:2, 10, 16, 18, 19, 21). 이 중에서 몇 개만을 살펴보자.

계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녀(음녀)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계17:18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계18: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렇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큰 성"이란 오직 멸망받을 바벨론성만을 일컫는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에 이 지구상에는 바벨론성은 실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것도 일종의 상징적인 표현인 셈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떤 성을 바벨론성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나중에 요한계시록 17~18장 강해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우선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이 죽었던 장소에 대한 자체 해설에 나온 것만으로 살펴보자. 그래도 그곳이 어디인지를 어느정도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곳은 백성들과 족속들과 방언들과 민족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어떤 장소를 가리킨다(계11:9). 그런데 계11:8에 의하면, 그곳이 어떤 장소인가를 암시하는 3가지 단서가 나온다.

계11:8(헬라어직역) 그것(그 성)은 영적으로 소돔들(복수)이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애굽[이라고도 불리운다]. 그리고 [그곳은] 그들(두 증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곳[이다]

  그렇다. 첫째, 큰 성은 영적으로 '소돔들'이라고 불리우는 장소다. 그리고 둘째, 영적으로 '애굽'이라고도 불리우는 장소이며, 셋째, 그곳은 두 증인들의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셨던 장소다. 우선 세번째 단서를 먼저 살펴보면, 예루살렘성도 바벨론성의 하나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큰 성 바벨론은 예루살렘성을 포함한 어떤 장소인 것이다.

  그러면 그곳은 어디인가? 첫째로, 영적으로 "소돔들"이라고 불리우는 장소라고 하였다. 여기서 '소돔들'이라는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성으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일시적으로 거주하였던 성이다. 그런데 그곳은 온갖 죄악이 난무하였던 성이요, 그 중에서도 동성애와 같은 음란이 가득한 도시였다. 결국 그 도시는 불과 유황불의 형벌을 받아 지구상에서 사라진 도성이다. 그러므로 큰 성 바벨론도성은 온갖 죄악이 난무하는 도성이자, 동성애와 같은 음행이 가득한 도시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음행은 요한계시록 17에 음녀로 표시되는 한 여자와 영적으로 간음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므로, 실제적인 음행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간음하는 자들이 가득한 도시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음행은 어떤 경우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결혼한 사람이 있는데도 다른 상대를 찾아서 음행을 즐기는 것을 상징한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이외의 것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사는 도시가 바로 큰 성 바벨론인 것이다.

  또한 둘째로, 큰 성은 영적으로 애굽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여기서 애굽이라는 것은 이스라엘민족을 수백년동안 노예로 삼아 압제하고 괴롭혔던 나라를 상징한다. 곧 영적으로 보면 마귀의 세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큰 성이 영적으로 애굽이라고도 말하는다는 것은 이 도시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구주로 믿고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는 도시나 세력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당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러한 도시는 어디였겠는가? 당시는 로마였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을 뿐만 아니라 온갖 음행이 가득한 도시가 바로 로마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 증인의 주께서 못박히던 곳이라는 말도 영적인 것이므로,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에 예루살렘도 하나의 바벨론에 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돈과 권력의 우상에 빠져 메시야를 보고도 메시야를 인정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예루살렘이 거룩한 도시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음행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한 도시였기에, 예수님 공생애 당시의 예루살렘도 하나의 바벨론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로마라는 나라는 망했지만, 로마의 바티칸성은 지금까지 땅의 임금들(왕들)을 다스리는 도시가 되었으니(계17:18), 중세의 로마천주교도 바벨론성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살후2장에 의하면, 언젠가는 불법의 사람이자 멸망의 아들인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하나님이라 불리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나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성전(나오스=교회)에 앉아 자기를 경배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살후2:3~4). 그가 누구이겠는가? 로마교황이 아니고 또 누구를 가리키겠는가? 그랬다. 중세시대에 바벨론성은 로마교황이 살고 있는 바티칸성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들은 바벨론성이다. 하지만 잠시 죽은듯 기회를 보고 있다. 지금은 이것 대신에 개신교회의 지도자들 중에도 바벨론성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자기를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는 주의 종들이 있으니 말이다.

 

8.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두 증인이 활동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래서 그들의 사역을 축복하시고 그들을 보호해주신다. 두 증인은 시대마다 활동했던 주의 종들 중에 있어왔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어떤 주의 종과 어떤 교회가 두 증인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까? 그것은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의 뒤를 잇는 자들이어야 한다. 십계명에 나온 것처럼 우상숭배를 하면 예수믿어도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외치는 주의 종이자 교회여야 한다. 그리고 회개를 통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외치는 주의 종과 교회여야 한다. 이러한 사역자들은 시대마다 있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역자를 만나야 하고 이러한 교회를 통해서 지금의 때를 분별하고 환난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환난후에 오신다. 결코 환난전에 휴거가 있고 7년이 지난 후에 주의 지상재림이 있다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미혹받지 말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는 결코 문자적인 숫자가 아니다. 다 상징적인 숫자다. 그러므로 42달이나 1,260일도 다 상징적인 숫자다. 이는 어린양의 뿔이 일곱개이고 어린양의 눈이 일곱개이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수가 144,000이었던 것이 다 상징적인 숫자였던 것과 같이, 3년반도 다 상징적인 기간인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승천이후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의 기간일 것이다. 이 시기는 교회가 핍박당하는 시기도 되지만, 두 증인과 같은 사역자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늘 이 시간에는 두 증인이 누구며, 두 증인이 활동하는 기간은 1,260일은 무엇이며, 그들이 사역하던 장소이자 사역이 끝나는 날 죽임당하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살펴보았다. 사실은 오늘 두 증인과 두 증인의 활동시기와 활동장소와 부활승천까지 알아보려고 했다. 그래야 1,260일이라는 기간이 언제인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때문이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두 증인의 부활승천에 대해서는 다음 이시간에 살펴보도록 하자. 건투를 빈다.

 

2017년 12월 6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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