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강해 시리즈(1강~3강)입니다.

by 갈렙 posted Dec 0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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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youtu.be/6mRcfvMDXmE
날짜 2013-11-06
본문말씀 베드로후서 1:1~3:18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베드로후서강해

베드로후서 강해 시리즈(1강~3강)입니다(2013.11.06~2013.11.20).

베드로후서강해(01) 신의 성품 참여와 주의해야 할 예언 해석(벧후1:1-21)
베드로후서강해(02) 거짓교사 심판예고 및 그들의 특성(벧후2:1-22)
베드로후서강해(03) 그릇된 종말관 경계와 재림을 대하는 태도(벧후3:1-18)

 

 

 
  날      짜 : 2013-11-06
  제      목 : 베드로후서강해(01) 신의 성품 참여와 주의해야 할 예언 해석(벧후1:1-21)
     
 
   
▒ 본문말씀 ▒
  :: 베드로후서 1:1-21(신약 384면) ::

 

  예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는몇몇 거짓교사들과 이단들이 숨어있는 모양이다.
  베드로 사도는 첫번째 편지를 보낸 다음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냐하면 베드로전서에서 어떠한 외부적인 핍박과 고난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아서 다시 오실 예수님으로부터 하늘의 상급을 받으라고 권면했었지만, 예수님의 재림자체를 부인하고 쾌락주의에 빠지게 유혹하는 세력이 교회에 침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대부분의 믿는 자들은 예수께서 자기의 세대 중에 오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의 재림은 지연되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통 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님을 찾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재림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교회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이 창조된 이후부터 그때까지 물로부터 시작된 피조된 세계가 그대로 있지 않느냐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설파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재림은 없으며, 심판도 없고, 천국도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흔들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풍조가 교회에 만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노사도는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리고, 주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가를 알리기 위해 베드로후서를 저술하게 된 것이다.
  베드로후서는 크게 3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 중에서 맨 첫부분은 서론부(벧후1:1-11)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모든 믿는 사람은 베드로와 같은 동일하고 보배로운 믿음을 지녔기 때문에 세상의 정욕의 썩어질 것에서 해방되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신의 성품 곧 신성한 본성이 성령과 함께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때부터 성령의 열매 곧 하나님의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것은 단계별로 8가지나 된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으며,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라. 만약 이런 것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자는 뭔가가 문제가 있다. 본다고 하지만 보지 못하는 맹인과 같은 사람에 속한다. 그렇지만 이런 아름다운 미덕의 열매들이 자신의 성품 가운데 맺혀지고 있다면, 당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은 넉넉하게 주어질 것이다.
  이어 베드로 사도는 본론부(1:12~3:13)의 첫부분인 벧후1:12-21에서 베드로후서의 기록목적과 주님의 재림의 확실성을 2가지로 제시한다. 먼저 베드로후서는 기록목적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주님의 재림의 확실성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베드로 사도는 2가지 근거를 말한다. 첫번째로는 자신이 영광스런 메시야를 직접 보았고 또한 그분으로부터 직접 재림에 관한 사실을 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메시야의 말씀보다도 더 확실한 구약의 예언들을 살펴보면 진정 예수님의 재림이 구약의 예언의 말씀에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약예언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말한 것이기에 사사로이 풀 것은 결코 아니며, 어두움을 비추는 등불과 같아서 날이 새어 샛별이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에 대해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다. 주님은 재림하신다. 우리의 회개를 위해 잠시 늦춰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미 순교자의 숫자가 거의 다 찼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다 찬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무화과 나무의 싹이 이미 났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독립국가를 세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잘못된 주장으로 성도들을 기롱하는 자들이 많은 시대이다. 더욱 똑바로 정신차리자. 그리고 주님의 말씀만을 믿고 따라가자. 그것만이 살 길이다.  

 

 

 
  날      짜 : 2013-11-13
  제      목 : 베드로후서강해(02) 거짓교사 심판예고 및 그들의 특성(벧후2:1-22)
     
 
   
▒ 본문말씀 ▒
  :: 베드로후서2:1-22(신약 385면) ::

 

  예나 지금이나 믿는 자들 곁에는 항상 미혹하는 자들이 서성이고 있는 것 같다. 베드로 사도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회에는 믿음이 굳세지 못한 자들을 유혹하는 거짓선생들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이야 오죽하랴. 정신차려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우리도 잘못된 이단의 가르침에 속아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거짓교사들은 공교한 말을 만들어 사람을 유혹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왜곡시켰다. 그러니 거짓된 가르침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특히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가 썼던 베드로전후서를 보라.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뼈속깊이 새겨놓았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A.D.66-68년에 교회내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단세력들은 어떤 세력이었을까? 그들은 한 마디로 거짓 종말론자이면서 또한 도덕 폐기론자들이었다. 종말은 안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베드로 사도는 이들의 특성이 어떤 것인지를 세부적으로 들려준다.
  그리고 한나님께서는 반드시 거짓교사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들의 속임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예로 든 것이 3가지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들을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용서하지 않으시고 최종심판의 시기까지 지옥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어놓으셨다고 말한다. 둘째는, 노아시대에 노아가 회개의 복음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아니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결국 물심판을 내리셨음을 언급한다. 이어 셋째는 소돔과 고모라성에 불을 비같이 내리는 불심판을 행하셨음을 언급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을 받기까지 길이 참으시고 있지만 회개치 아니하면 엄중하게 그들의 죄를 물으시고 그들에게 합당한 심판을 집행하신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교만으로 가득했다. 고집불통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이성없는 짐승과 같았다. 그들은 본능에 의해서 살았다. 그래서 육체의 쾌락을 즐겼다. 그리고 육체의 죄악이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자기들은 낮에도 술취함과 방탕함에 거했다. 음욕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까지 사냥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람선지자처럼 돈을 준다면 거짓가르침도 서슴없이 행하고 있었다.
  베드로 사도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이들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나을 뻔한 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자신도 지옥에 떨어지면서 남들까지 지옥에 떨어지도록 유도하고 있었으니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나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는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진실된 참된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그래서 영혼이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받아 스승도 죽고 제자들도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을 모른 자가 받을 형벌보다 주님을 알고도 범죄한 자들이 받을 형벌이 더 중하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 자신을 돌아보라. 그리고 잘못한 것이 없나를 살펴보라. 그것이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 육체의 쾌락을 즐기고 있다면 즉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자복하라. 그래서 살 수 있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날      짜 : 2013-11-20
  제      목 : 베드로후서강해최종회(03) 그릇된 종말관 경계와 재림을 대하는 태도(벧후3:1-18)
     
 
   
▒ 본문말씀 ▒
  :: 베드로후서 3:1-18(신약 386면) ::

 

  만약 어느날 갑자기 자신에게 임종의 시간이 찾아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유언으로 남길 것인가?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 있음을 알고 있었다(벧후1:14). 노사도는 그래서 마지막으로 교회를 위해 펜을 들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에 따라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편지를 남겼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전후서다. 그것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현재의 고난을 참고 견디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비록 재림의 날이 더디오는 것 같으나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니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라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특별히 두번째 편지(베드로후서)를 남겨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벧후 3장에 기록하는데, 그것은 말세가 될수록 나타나는 그릇된 종말론자들의 꾀임에 결단코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거짓교사들의 속임수에 넘어가버리게 된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주님의 재림이 어디에 있느냐"면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게 될 것이라고 베드로는 경계의 말씀을 남긴다.그렇다. 주님의 재림은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곧바로 있을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주님의 재림은 지연되었으며,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베드로사도는 이렇게 언급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3:15a)". 그렇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된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에서다. 그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 즉 구원받을 사람들이 다 구원받기까지 주님께서는 그 날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시간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분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분은 한 눈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신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밤의 한 경점 같은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시간개념으로 주님의 시간 개념을 바라보아서는 결코 아니 된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만을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한다. 이것은 결코 날짜의 문제가 아니라 분량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거짓교사들과 이단의 세력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 그들은 항상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기 바빴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사도바울이 쓴 서신서에도 주님의 재림에 관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언급하면서, 거기에 기록된 말씀들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른 자들이 많다고 하였다. 주의하라는 말이다. 날짜 계산해서는 결단코 아니된다는 말이다. 그 날을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 날짜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 아무리 주님의 재림의 날이 지연되는 듯 보인다 하더라도 불로 심판할 그 날은 반드시 오니 그날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아의 때에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할 것이라고 그렇게 노아가 외쳤을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는데, 그때도 그날이 뜻밖에 임한 것처럼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이라는 말이다. 그때는 숨을 쉬는 모든 생명체가 죽었지만 하늘과 땅을 불로 심판하는 그 날에는 모든 인간들이 다 심판받을 것이니 그날을 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주님의 재림의 날이 갑자기 닥친다 해도 그분 앞에 우리 자신이 점과 흠이 없이 설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분의 재림의 날은 우리 믿는 자들의 측면에서 보면, 자신의 믿음이 드러나는 날이요, 자신의 공력이 드러나는 날이다. 그러므로 그날까지 우리 성도들은 날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선물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탕과 술취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고 있는 자들에게 그날은 통곡의 날이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 날을 사모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날이 안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날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는가?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인 것 같다.왜 이미 무화과나무의 싹이 난 상태이니까, 그 날이 더욱더 가까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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