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강해(1강~52강) 시리즈(1)입니다(눅1:1-6:49).

by 갈렙 posted Dec 0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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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2-06-13
본문말씀 누가복음1:1~24:53
설교자 정병진목사

2013년 6월 13일부터 진행된 누가복음강해(1강~52강) 시리즈 설교영상 및 요약입니다.

 
  날      짜 : 2012-06-13
  제      목 : 누가복음강해(01) 선구자요한과 메시야의 탄생예고(눅1;1-56)
     
 
   
▒ 본문말씀 ▒
  :: 눅1:1-56(신약 84면) ::

 

  오늘부터 누가복음강해가 시작된다.
  먼저 알 것은 이번 누가복음 강해는 강해라기보다는 본문에서 주제를 찾아내서 공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누가복음은 누가가 썼다. 그리고 그는 사동행전도 썼다. 그는 헬라이방인이자 의사로서 바울의 2차선교여행의 열매다. 그는 바울이 순교하는 끝날까지 그와 동행한 바울의 주치의였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에 관한 모든 내력을 다 듣고 그것을 저술한 것이 바로 누가복음이다. 이 복음서는 믿는이였던 로마관리인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낸 편지형식으로 쓴 것이다.
  그런데 모든 복음서가 특징이 있듯이 누가복음은 누가복음만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이 복음서의 주제가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만인의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헬라인답게 세상역사와 성경의 역사를 비교분석하여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약한 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고 대화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특히 당시 돈을 주고 사고 팔 수 있는 여자들에 대해서 아주 많이 기술했다. 그리고 병자치유장면에서는 의사가 지켜본 환자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중에서 눅1장은 복음서기술내력과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비사가 소개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모든 일들이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메시야의 도래와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의 출현이 다 성도들의 기도로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와 불임여성으로서 나이가 많은 엘리사벳이 기적적으로 아이를 출산하게 되는 배경이 사가랴의 향단의 향을 피우는 제사장의 전례를 맡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일생에 한 번 뽑힐까말까한 제사장의 직무를 제비뽑게 되는데, 그 직무 때문에 그는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고 그에게 메시야의 선구자인 요한을 낳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하나님께 청원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기도를 다 듣고 있다. 그래서 그 기도를 대접에 받아 하나님께 보고하는 천사들에 의해 하나님은 지금도 응답하고 계신다. 다만 그 때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반드시 하나님께 봉헌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데 그때 천사가 파송된다는 것이다. 그 천사는 기도응답을 성취할 때까지 그 사람의 곁을 떠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기도가 당장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은 것같은 생각이 들더라도 희망을 놓지 말라. 기도는 성취되지 않는 한 계속 살아 있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 천사는 그 기도를 이룰 때까지 우리 곁을 떠날 수 없으며, 설령 우리가 죽더라도 기도응답을 해 놓는다.
  이러한 영적 비밀이 세례요한과 메시야의 출생사건에서 적나나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 기도의 신비를 배워보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기도에 전념해보지 않겠는가? 이제 기도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고, 기도에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보자.
 
 
 
  날      짜 : 2012-06-20
  제      목 : 누가복음강해(02) 선구자 세례요한과 메시야의 탄생(눅1;57-2;20)
     
 
   
▒ 본문말씀 ▒
  :: 눅1:57-2:20(신약 88면) ::

 

  불신앙으로 말미암은 징계를 받은 자가 어떻게 하면 그 징계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자가 과연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달할 자로 선택받을 수 있을까? 오늘 말씀은 이 두 가지 물음에 대한 해답을 들려준다.
  눅1:57부터 80절까지는 세례요한의 탄생과 그의 작명 그리고 징계에서 풀려나는 사가랴의 그후 그의 찬가가 나온다.
  사가랴는 레위지파의 제사장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로서 태어나고 있는 아들도 레위지파 제사장이 된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제사장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이름은 부친과 친족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 붙여졌다. 그것은 천사가 사가랴에게 일러준 이름이었다. 하지만 당시 사가랴의 이웃들과 친척들은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사가랴로 짓고 싶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오직 '요한'을 고집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 지난 10달동안 사가랴는 벙어리와 귀먹거리로 지내왔었기 때문이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은 언제 징계에서 풀려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다. 순종이란 징계를 멈추는 도구임을 잊지 말자.
  이제 눅2:1-20절까지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비사로서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의 탄생과 더불어 주의 천사의 고지를 들은 목자들의 경배와 하늘의 군대의 찬송이 나온다.
  왜 예수님은 당시 부모가 살고 있던 갈릴리 나사렛에서 태어나지 않고 거기로부터 143km나 떨어져 있던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까? 여기에는 2가지 비밀이 들어 있다.
  첫째는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다. 하나님은 수백년전에 선지자를 미리 보내 장차 태어난 메시야의 탄생지로서 베들레헴을 지정해 주셨다. 그런데 그때 당시의 상태로서는 그 예언의 성취가 불가능상황이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로마황제를 들어쓰신다. 세금징수를 위한 호적령을 반포하게 한 것이다. 세상 역사의 주관자는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이다.
  더불어 둘째로 하나님은 요셉의 마음을 들어쓰신다. 요셉은 임신한 마리아를 혼자 놔두고 호적하러 가지 못한다. 그녀를 보호할 사랑의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적할 필요없지만 그의 약혼녀를 데리고 베들레헴에 갔다. 하재만 이미 호적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여관을 잡지 못해, 어느 여관집 마굿간을 빌려 거기에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게 된다.
  그렇다. 이 세상 사람치고 따뜻한 방의 아랫목이나 좋은 침구를 갖춘 병원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시는데, 그분의 첫 침대는 말구유여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주님은 낮고 천한 곳에 오셨다. 왜나하면 예수님께서 낮고 천한 자들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한편, 메시야의 탄생에 축하순서가 빠질 수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아무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자, 하나님은 그 밤에 양떼를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주의 천사를 파송하여 메시야의 탄생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한다. 목자들은 천사의 고지를 듣고 베들레헴 성으로 달려갔고, 거기에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말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찾았다. 그리고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
  누가 메시야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했으며 그 감격을 최초로 누렸는가? 그들은 다름 아닌 목자들이었다. 당시에 천민취급되었던 목자들이다. 왜 그런가? 그들이 메시야가 태어나던 날 밤 잠자지 않고 양떼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일에 충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 든다는 것을 우리도 기억하자. 세상 죄를 짊어지고갈 어린양이 태어났으니 당연히 목자들이 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죄인들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무엇으로 알릴 수 있을까? 그것은 동물의 구유가 적합했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낮고 천한 사람들의 친구자 되고자 오셨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분의 오심을 찬양드리자. "저 들 밖에 한 밤 중에..."

 

 

 
  날      짜 : 2012-06-27
  제      목 : 누가복음강해(03) 예수님의 정결예식과 12살에 맞이한 유월절 절기(눅2;21-52)
     
 
   
▒ 본문말씀 ▒
  :: 눅2:21-52(신약 90면) ::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어린시절 즉 영아기,유아기,소년기에 관한 기록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독특한 기록이다. 예수님은 느닷없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한 것이 아니다. 그분도 우리들처럼 어린시절을 겪으시면서 자라나셨다. 그분은 키와 지혜가 자라가셨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으면서 성장한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30세의 성년이 되었을 때, 그의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렇다면, 그분의 어린시절은 어떠했으며 그와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 것일까?
  첫째, 그분의 어린 시절은 부모와 랍비(율법교사)에 의해 교육받으셨으며, 율법의 규례안에서 자라나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율법아래 있는이스라엘의 구원자도 되기시 위함이다(갈4:4-5). 즉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야가 되기 위해 율법 안에서 태어났으며 율법을 지키셨고 율법을 따라 사셨던 것이다.
  둘째, 이와같은 사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까지는 자라나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렇게 되기까지는 부모와 교사와 같은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함을 말해준다. 당신에게 있어 멘토는 누구인가?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멘토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당시 최고의 율법교사였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율법교사 즉 랍비들이 몇몇 있다고 한다. 그중에 예수님께서 12살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월절을 지킬 때 함께 대화를 나눴던 랍비 중에도 있었는데 그들은 힐렐, 샴마이, 가말리엘 등이었다.
  그렇다. 어느누구도 혼자서 자랄 수는 없다.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한다. 예수님에게는 가정에서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고, 예루살렘에 성전에는 유명한 랍비들이 있었다. 그리고 갈릴리 나사렛동네에는 회당이 있었다.
  이처럼 예수님은 유아기 때에는 부모에 의해 성장할 수 있었다. 그의 부모는 예수님에게 할례받게 해 주었고, 초태생으로 구별하어 예수님을 하나님께 드리셨으며, 절기 때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데리고 사셨던 것이다
.
  우리들에게도 신앙이 좋은 부모가 있고, 훌륭한 교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예수님에게는 정말 훌륭한 부모와 교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영적인 부모와 교사가 될 차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도 잘 배워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좋은 멘토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은 오늘도 자라가야 한다. 

 

 

 

 
  날      짜 : 2012-07-04
  제      목 : 누가복음강해(04) 세례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세례(눅3;1-22)
     
 
   
▒ 본문말씀 ▒
  :: 누가복음 3:1-22(신약 91면) ::

 

  오늘 말씀은 드디어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나이는 그때 약 30세쯤되었다(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남). 그때 세례요한은 선지자로서, 예수님은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사역을 시작하신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선지자란 어떤 선지자이며,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를 왜 받으셨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세례요한이 사역할 당시는 어떤 때였을까? 로아의 2대황제인 디베료 가이사가 황제에 오른지 15년이 되던해였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안나스와 가야배가 대제사장으로 봉직하던 시기였으니, 역사적으로 치자면 A.D.26-30년 어간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왜 누가복음의 저자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출현당시를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을까? 그것은 두 분의 사역이 결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며 사실적인 것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공의 인물로 보기도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왜 30쯤에 사역을 시작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순종했고 사역을 시작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내 생각에는 아직 때가 이른 것 같아도 시작해야 하며,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내 생각에는 계속해야 할 것도 중단해야 한다. 하나님이 일하려는 시기가 하나님의 때이기 때문이다.
   이때 세례요한은 외식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속으로는 자신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실랄하게 심판을 선언한다. 왜냐하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없는 회개의 행위는 가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순한 뉘우침이 아니라 돌아섬을 의미한다. 실제 삶 속에서 동반되는 후속조치가 따라오는 것이 회개인 것이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역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는 자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메시야를 짐작하는 자들을 향해 분명하게 말한다.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분은 흥하여야 하겠지만 이제 나를 쇠하여야 할 사람이다. 그는 육신적으로는 내 동생이지만 그분은 나보다 앞선 분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앞에 서신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그를 말렸다. 하지만 예수님을 그것을 허락해달라고 하신다. 왜 그랬을까? 왜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까? 그것은 비록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도 하나님이 세우신 종 앞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적으로 자신이 세상죄를 전가받아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려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 때가 되자 하늘문이 열렸고 성령이 오셔서 그분을 인쳐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음성으로 그의 아들을 기뻐하셨다. 만세전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뤄어질 통로가 열려졌기 때문이다.
 
 
 
  날      짜 : 2012-07-11
  제      목 : 누가복음강해(05) 예수님의 모계계보와 시험받으신 예수님(눅3;23-4;13)
     
 
   
▒ 본문말씀 ▒
  :: 눅3:23-4:13(신약 93면) ::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예수님은 2가지 일을 수행하신다. 하나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었고, 또 하나는 광야에 가시어 사탄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이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자격을 얻으셨다. 
  누가복음은 이 2가지 사건 사이에 예수님의 족보를 끼워넣고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족보와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의 부친격인 요셉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계의 족보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첫째,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태복음의 족보와는 달리 상향식 족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아버지로 올라가고 또 그의 아버지로 올라가고 하여 그의 모든 조상으로 올라가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이어 그 족보는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구세주가 되실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심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둘째,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태복음의 족보와는 달리 마리아의 조상들의 족보라는 점이다마리아의 아버지는 헬리였다. 다시 말해, 헬리는 요셉의 장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윗대로 올라가보면, 다윗의 아들 대에 요셉의 족보와 마리아의 족보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리아와 요셉의 조상은 분명 유다지파였고, 아브라함이었고 다윗이었다. 하지만 요셉은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의 계보를 이은 자였고, 마리아는 다윗의 아들은 나단의 계보를 이은 여자였다. 이로 인하여 예수님께서는 유다지파의 후손이자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것을 드러낸다.
  셋째, 누가복음의 족보는 사람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이신 예수님까지를 말하고 있으니, 그 계보가 총 77대였다. 첫 사람 아담은 죄를 지어 인류에게 사망을 가져왔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그 죄를 청산하고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눅4장의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사건을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에서 몇가지 기억할 것은 첫째, 예수님께서 시험받은 시점을 보라. 그 때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바로 직후에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가 자주 쓰는 유혹의 방법은 꼭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격이 있는지 자신을 증명해보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 마귀는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을 빌미로 유혹하고 있으며, 이어 세상 만국의 영광으로 유혹하고,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시험하게 하여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의심케 하는 것으로 시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탄도 시험을 할수록 업그레이드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본문의 자세한 의도는 설교말씀을 통해 직접 살펴보도록 하자. 
 
 
 
 
  날      짜 : 2012-07-18
  제      목 : 누가복음강해(06)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치유하시는 예수님(눅4;14-44)
     
 
   
▒ 본문말씀 ▒
  :: 눅4:14-44(신약 93면) ::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사탄으로부터 죄의 유혹을 받으셨을까? 그분은 죄가 없기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고, 악의 화신인 사탄으로부터 죄의 시험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2가지 준비를 하셨을까? 그것은 눅4:14절부터 9장까지 진행될 그분의 사역을 잘 수행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2가지를 꼭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 하나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므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다. 이는 장차 올 메시야는 반드시 주의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사역할 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사61:1-2)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 만들었고 마귀에게 눌렸거나 포로로 잡혀 있거나 눈이 먼 자들을 치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 하나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그 시험을 이기시므로 전도하실 때에 반드시 부딪히게 될 질병의 치유과 귀신의 축사를 원활하게 하실 수 있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지만 3대0 심판전원일치의 판정승을 거두셨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에 예수님은 사탄마귀에게 눌려있어 신음하고 있는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갈릴리 초기 전도사역이 나온다. 예수님은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귀신들을 축사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전도사역을 2가지를 통해 이루어가시는데 하나는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들을 내어쫓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전도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능력전도방식이었던 것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일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달랐다. 또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사탄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만난 영혼들의 치유에서도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병에 시달리거나 귀신에 붙잡혀 있는 자들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 당신도 전도할 때에 예수님처럼 하고 싶은가? 그러면 우선 성령의 충만함과 기름부음을 받으라. 그리고 말씀을 공부하라. 그러면 당신도 예수님처럼 전도할 수 있다. 
 
 
 
  날      짜 : 2012-07-26
  제      목 : 누가복음강해(07) 베드로와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눅5;1-11 27-32)
     
 
   
▒ 본문말씀 ▒
  :: 눅5:1-11, 27-32(신약 95면) ::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들어오셨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우선적으로 사탄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를 얻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어찌하든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얻으셔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느날 죽으시더니 하늘로 다시 가버리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중단된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중단된 것이 아니라, 계승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예수님은 다른 이들에게 계승하시고 떠나신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결코 이 세상을 떠나실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심은 예수님께 하시는 일을 계승할 사람들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DNA를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 그것을 실천할 수 없기에 예수님은 하늘로 가시자마자 성령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0일동안 간절히 성령받기를 기도했다. 결국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온 세상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대로 전도와 양육을 병행한 것이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할 12제자를 어떻게 얻으셨는가에 대한 이야기들 중의 하나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수많은 제자들(120명에서 500여명) 중에서 12명을 골라내어 그들을 자신의 사도라 칭하셨다. 그들을 세상 속으로 보낸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나갔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대,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행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를 불러내신 장면을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선택하시고 관심 갖고 계시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12명의 사도 중에서 5명의 제자들의 소명장면을 공부할 것이다. 안드레와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세리 마태가 그들이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되어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며, 어떻게 귀한 존재로 쓰임받았을까? 이제 그 비밀을 찾아보기로 하자.

 

 

 

 
  날      짜 : 2012-08-01
  제      목 : 누가복음강해(08) 치유기적들 및 새 포도주와 새 부대 교훈(눅5;12-26 33-39)
     
 
   
▒ 본문말씀 ▒
  :: 눅5:12-26, 33-39(신약 96면) ::

 

 오늘은 예수님께서 그의 초기 사역가운데 가버나움에서 있을 때 일어난 치유사건과 금식논쟁에 관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치료하신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가버나움에 있는 예수님에게까지 나왔는지 의아하다. 왜냐하면 문둥병자는 겪리되어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요, 사람들에게 발견되면 돌에 맞아 죽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나기를 열망하면 사람들의 눈도 가리워지는가보다.
이어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치료하신다. 그런에 다른 여느때의 치유사건과는 달리 그에게는 죄사함을 선포하시는 일을 먼저 행하신다. 왜 그랬을까? 거기에는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는 병든 자가 아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더 이상 고칠 수 없이 딱딱하게 굳어져있는 질병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적인 질병보다도 사람의 내면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의 죄사함을 먼저 선포하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먼저 선포한 것은 그의 질병의 근원이 죄에 있음을 아시고 그것을 제거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비록 사람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은 죄사함을 선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예수님은 일부러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중풍병자가 즉시 일어나더니 자기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당시에 거기에 있던 자들이 얼마나 놀랬는지 아는가? 입을 쩍 벌어지더니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있는 세리 마태를 눈여겨보시는 그를 제자로 불러내셨다. 그러자 그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 그때 세리 마태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초청했다. 그리고 다른 세리들과 함께 잔치를 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말했다. 자기의 제자들과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며 즐기냐면서 그들고 금식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때 주님은 결혼잔치집의 신랑과 그의 친구들을 비유하면서, 그들은 잔치를 즐기는 사람들이지 금식할 사람이 아님을 언급하신 후,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하셨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새 부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그릇을 가리키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옛생활방식으서로 새 포도주를 받아들이려 하니 찢어질 것임을 언급하신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영의 새로운 가르침을 수용할만한 신축성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굳어진 사람인가?

 

 

 
  날      짜 : 2012-08-08
  제      목 : 마태복음강해(09) 안식일논쟁과 세우신 12사도들(눅6;1-19)
     
 
   
▒ 본문말씀 ▒
  :: 눅6:1-19(신약 98면) ::

 

  안식일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목숨처럼 여기는 그들의 규율이다. 오늘날 유대인이 어떻게 없어지지 아니하고 존재하고 있느냐를 묻는다면 그들은 3가지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첫째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것. 둘째는 할례를 행하는 것. 셋째는 부정한 음식과 정한 음식을 구별하는 먹는 것. 그 중에서도 유대인을 제일 유대인답게 하는 것은 역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사실 율법에는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지 지키되 그 날은 결코 일을 하지 말라고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출20:8-11). 그러므로 어디까지가 일이며, 어디까지가 일이 아닌지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어느정도를 들어야 일인지 일이 아닌지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의 해설서로서 미쉬나를 썼는데 거기에 보면, 어느 정도까지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율법 규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아니라 남을 정죄하는 판단잣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나쁜 용도로 사용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근본목적은 퇴색되어버린채 오로지 어떤 것이 그 규정을 어긴 것인지에 대해만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밀밭을 지나던 그날도 안식일이었다. 그때 제자들이 시장하여 밀이삭을 비벼 먹었다. 그러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안식일의 근본적인 긍휼에 있음을 말씀하셨다. 엿새동안 힘써 일을 해야 하지만 일곱째날은 숨을 돌리기 위해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제정된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이 무서워서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셨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배가 고픈 나머지 안식일에 제사장만이 먹어야 할 음식을 먹게 된 것을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어느 유대인도 다윗이 안식일을 어긴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으며 그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안식일은 사람이 쉬는 데에 그 목적이 있고, 그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예수님은 안식일임에 불구하고 그 다음 안식일에 회당에 오른손이 말라 비틀어진 사람을 치료해 주셨다. 동물이 웅덩이에 빠지면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건져내는데 사람은 더욱 건져야 하지 않겠느냐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율법규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근본목적과 의도를 알고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우리도 모든 것을 긍휼의 관점에서 보자. 하나님께서는 진정 인애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어 예수님은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 12제자를 선택하여 그들에게 '사도'라는 직책을 주신다. 그런데 그 제자를 뽑기 하루 전날 예수님은 산에 가셨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하여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러 가셨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기도는 밤새껏 계속되었다. 똑똑하지도 않으며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사람 하나도 없이 12명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2명 중의 하나는 예수님을 팔 자가 아니었던가! 당신은 무슨 일을 앞둘 때 어떻게 하는가?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려 하는가? 그리고 그분의 뜻에 맞추기 위해 몸부림치는가? 이제는우리자신을 돌아볼 차례다.
 
 
 
 
  날      짜 : 2012-08-15
  제      목 : 누가복음강해(10) 평지수훈(눅6;2-49)
     
 
   
▒ 본문말씀 ▒
  :: ::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설교중에 주옥같은 말씀을 마태복음에서는 '산상수훈(마5-7장)'이라고 부르지만 누가복음에서는 '평지수훈(눅6:20-49, 눅11-12장)'이라고 부른다. 오늘 우리는 평지수훈의 핵심요절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 평지수훈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사람이 진정 복있는 자인가라는 것이며, 복있는 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로 나온다.
  당신은 진정 복있는 자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있는 자는 자신에게 부족함이 많고 그것이 예수님 때문에 메구어질 수 있는 자요, 예수님 때문에 때로는 어려움을 당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얼마 안 있어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갖게 될 것이고 혹시게 잃어버렸다면 되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진 자나 배부른 자나 웃는 자나 오직 칭찬만을 받고 있는 자는 역전될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현재의 삶이 과연 주님 때문에 어떻게 변하질 수 있나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 주님께서는 천국백성의 가장 온전한 윤리로서 절대적인 사랑과 용서와 나눔을 실천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사랑할 수 있는 자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자를 용서하고, 나중에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있는 자에게 뭔가를 주는 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만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이방인도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방인도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니에 주님은 함부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고 주는 삶을 살라 하신다. 왜냐하면 우리의 헤아림으로 우리가 나중에 헤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어떠한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살펴볼 때가 되었다. 만약 우리 자신에게 선한 열매가 하나도 없는데도 자신을 선한 사람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행함이 없는 것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인 것을 알아야 한다.
  자, 이제 주님의 주옥같은 말씀의 실체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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