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강해(17) 십계명강해(02) 제3계명과 제4계명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출20:7~11)_2018-12-26

by 갈렙 posted Dec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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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mpzCObRHPzY
날짜 2018-12-26
본문말씀 출애굽기 20:1~17(구약 11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제3계명,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제3계명을 받게 되면 받는 처벌, 십계명강해, 제4계명, 안식일준수, 안식일과 주일, 안식교의 주장, 주일성수, 안식일의 주인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성도인데도 왜 질병과 저주 가운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받았다고 하는데 왜 우리 자식들 중에 장애인이 있고 집안에 자살하는 사람까지 발생하는가? 그것은 십계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왜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제3계명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4계명인 안식일준수 문제는 오늘날까지 매우 혼돈된 상태에 있다. 안식교와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에서는 지금도 토요일 안식일준수를 외치고 있다. 안식교에서는 토요일예배를 드리지 않고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을 두고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천주교와 개신교인들이 십계명의 하나인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어 지키고 있는 것은 사탄의 작품이라고 하는 안식교인들에게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해 줄 수 있는가? 오늘날 주일예배는 정말 짐승의 표가 맞는 것인가? 안식교의 안식일 준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오늘 우리들이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왜 합당한가?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 계명 준수과 안식일준수 계명의 본 뜻과 실천방법까지 진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지켜야 할 도덕계명으로서 1~4계명이 있으며, 또 하나는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도덕계명으로서 5~10계명이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계명은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지켜야 할 도덕계명 중 제3계명과 4계명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지 말라는 계명이며(출20:7),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라(그것을 거룩히 지키기 위하여)는 계명이다(출20:8).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계명은 제4계명이다.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명령은 대체 어떤 명령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한 이후인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오늘날 기독교회는 대부분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서는 주일에 예배드리는 개신교인들더러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라고 정죄하며, 그런 자는 반드시 유황 불못에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들의 주장은 올바른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 계명와 안식일 계명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축복받는 성도들이 되려면 어덯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십계명은 꼭 지켜야 하는가?

  십계명(출20:1~17)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인가? 오늘날에 들어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만 믿으면 되었지 무슨 십계명타령이냐 하면서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말 예수님만 믿고 있으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과 멸망)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우리가 복(과 저주)을 받는 데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일까? 우리가 무엇인가의 옳고 그름을 살필 때에는 최종적으로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모든 성경의 기록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기록한 말씀은 다 육신을 입고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충하는 것들이지, 그것으 예수님의 말씀보다 우선시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판단기준은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로,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는 데에 지장이 없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구원받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위가 구원의 요소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 십계명을 준수하지 않는 자가 구원받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한 젊은 부자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는지를 질문했다(마19:16~22). 그때 예수께서는 십계명 중에서 제5~9계명을 지키고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그러자 그는 그것은 어려서부터 지켜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마지막 10번째 계명(탐심금지)의 준수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준 후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 부자청년은 재물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단적으로 십계명 중에서 인간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기가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제1~4계명에 나오는 하나님에 관한 계명을 준수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부활승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께서는 장차 누가 불못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말씀해주셨는데,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을 섬기고 있거나,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자는 다 불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하셨다(계21:8). 고로,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구원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용서받게 된다면 그도 구원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천국은 믿음과 회개로 들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마4:17, 막1:15). 여러분은 생각해보았는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신(우상)을 섬기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어도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의 죄를 빨리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슨 죄를 자복하고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십계명을 어기고 불순종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

  둘째로,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복을 받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사실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되느냐 하는 문제는 사람이 죽어서 자신의 영혼이 받는 복의 문제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복이란 그런 복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받게 될 복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과연 성도는 이 땅에서 복(물질의 복, 건강의 복, 땅의 복, 자녀의 복, 기업의 복 등등)을 받게 되며 그것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복을 받기는커녕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십계명 중 제2계명 우상숭배 금지 명령의 경우를 보자. 이것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우상숭배의 저주가 자손 3~4대까지 이를 것이라고 하셨다(출20:5). 더욱이 계2장에 나오는 두아디라교회의 경우, 질병과 환난과 살해당함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계2:21~23). 한편 십계명 중 제5계명 부모공경의 명령을 보자. 이 계명에 순종하는 자는 땅에서 장수의 축복이 주어진다고 했다(출20:12). 그렇다면 반대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그럼, 이 땅에서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을 받거나 복을 받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제3계명 즉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제 셋째 계명을 들려준다. 그것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녕되이(헛되이, 쓸모없게)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출20:7a).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명령을 준행하지 않는 자는 죄가 없다고 간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출20:7b). 그렇다면 어떤 처벌을 내리시는가? 레24장에 보면, 그런 자는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레24:11,16). 그러므로 성도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함부로 맹세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레19:12). 충분히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자랑스럽게 간증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음담패설 등을 함부로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알려지게 되면, 하나님의 명예에 심각한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도나 목회자 중에 일찍 죽는 자들이 왜 나오는지 아는가? 그것은 추도예배나 장례예배 같은 우상숭배를 해서 그렇다. 하지만, 실은 많은 부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해서 그런 경우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알려진 이가 더럽고 추한 행동이나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선에 이르지 못하는 행동을 하면 틀림없이 징계가 뒤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에, 제일 처음으로 해야 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은 존중히 여겨져야 하며, 흠숭을 받아야 하며, 찬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데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제4계명, 안식일 준수 계명은 왜 주셨는가?

  그런데 십계명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계명은 역시 제4계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4계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너는 안식일을 반드시 기억하라. 네가 그것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라는 명령이다. 그러므로 이 명령에 의하면, 성도가 그날을 지켜야 한다는 개념보다는 그날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지키고 기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셨다. 그것은 2가지다. 첫째, 육일동안은 힘써 자기의 모든 일을 행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기 원하는 자는 육일동안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둘째, 일곱째날에는 가족과 종 그리고 가축과 나그네에 이르기까지 절대 일을 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셨을까? 그것은 출20:11에 나온다. "[왜냐하면]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기 때문이라(출20:11)"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일곱째날에 "쉬셨다"라는 개념이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과연 쉬셔야 했을까? 하나님은 영이므로 피곤하지 않는 존재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일곱째날에 쉬셨던 것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창2장으로 가보아야 한다. 창2:1~3의 말씀을 우선 살펴보자.

창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놀라지 말 것은 창2:2~3의 말씀의 번역이 좀 잘못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식하시니라" 혹은 "안식하셨음이니라"는 동사의 본래 의미가 "쉬다. 안식하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동사는 "샤바트"라는 동사인데, 이 단어의 뜻은 "그만두다. 그치다. 중지하다."가 원래의 뜻이며, 파생적인 뜻으로 "쉬다, 안식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창2:1~3에 나오는 "샤바트"는 원래의 뜻에 따라 "그치다. 그만두다"라는 뜻으로 번역했어야 더 옳은 번역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창2:1~3의 말씀을 직역해보도록 하자.

창2:1~3[직역] 하늘들과 땅과 모든 군대가 완성되었다. 2 하나님이 그가 만드시던 일을 일곱째날에 완성하셨다. 그리고 그가 하시던 모든 일로부터 일곱째 날에 그치셨다.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주사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으니 왜냐하면 하나님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로부터 그날에 그치셨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일하다가 피곤하시어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여섯째 날까지 창조사역을 다 마치셨기 때문에 일곱째 날에 일을 그치셨던 것이다. 왜나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자 했던 모든 일들이 여섯째 날까지 다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는 빛을 창조하시고 이어서 식물과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각종 동물들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당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누리도록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러자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하시던 일을 그치신 것이다. 본래의 창조목적대로 창조가 다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5.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명령의 본래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의 본래적인 의미는 그날에 쉬고 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그날에 모든 일을 중지한 채 하나님께서 모든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 인간에게 누리도록 주셨으니, 그 모든 일을 행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감사하라는 뜻이다. 만약 그날이 되었는데도 일을 그치지 않고 계속 행한다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며, 나중에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비가 내리도록 엉뚱하게 해와 달과 별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고 다른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길 수 있기 때문에, 그날에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을 오늘에 맞게 조명하여 해석해보자. 안식일준수명령을 종합해서 정리해보면, 하나님께서 왜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하셨는지 파악할 수가 있다. 그 이유는 대략 4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그날에는 일을 그치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라는 뜻이다(레23:3, 출20:10).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날은 그분께 촛점을 맞추라는 뜻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일하러 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날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출16:25).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일하는 자가 있다면 죽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출31:15,35:2, 민15:32). 그리고  그날에는 물건을 사고 팔지도 말아야 하며(느13:15~18), 오락도 하지 말고 사사로운 말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사58:13).

  둘째, 그날에는 육체도 쉬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시간을 드리라는 뜻이다(신5:14). 자기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여 그분만을 붙들라는 것이다.

  셋째, 그날에는 제사장이 떡을 진설하게 함으로서, 생명의 양식을 먹는 날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레24:8, 대상9:32) 그날에는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그날에는 아침저녁에 상번제를 드림으로, 예배하는 날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대상23:31, 대하2:4, 8:13, 사66:23, 겔46:4). 그날에는 다른 것보다는 예배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날은 오직 하나님에게 집중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이 하신 일을 찬양함으로 자신의 육체가 아닌 영혼을 위해 사는 날이 되게 해야 한다. 그날에는 다른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자신의 영혼을 위한 생명의 양식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여 영혼이 강건해지게 하는날이 되게 해야 한다.

 

6. 오늘날에도 안식일 준수 계명은 계속해서 유효한가?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안식일을 준수해야 하는가? 신약의 성도들도 주간의 안식일인 토요일에 일을 중단하고, 그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아니면 오늘날처럼 주일에 예배드려도 되는 것인가?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일을 지키라고 명령을 바꾼 적이 없으니, 안식일을 준수해야 하며, 예배도 안식일에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부분 안식일계열의 이단들이다.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일교)와 안상홍증인회 등은 그래서 지금도 안식일인 토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그렇다면 성경과 초기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첫째, 성경은 안식일준수에 관하여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사실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문제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큰 문제거리였다. 그래서 모인 최초의 예루살렘공의회에서는 주께로 돌아온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의 멍에를 씌우지 말라고 결정하였다(행15:10~11,19~20).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율법의 멍에란 율법 중에서도 의식법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도 받아야하고, 안식일도 지켜야 하며, 음식을 가려먹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행15:1). 여기서, 어떤 의식과 절차를 통해서 사람이 거룩해지고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다고 하는 율법조항들이 바로 의식법들인데, 예수께서 오셔서 이러한 의식법들은 그것을 주셨던 본 뜻을 성취하심으로 인하여 사실 공식적으로 폐지하셨다. 예를 들어 보자. 행10장에 보면, 베드로가 보았던 보자기 환상을 통해 음식법은 이미 폐지되었음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행10장과 갈2장에 보면, 접촉으로 인한 정 부정(깨끗하고 더럽고 하는 판단)법도 이미 폐지가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마12장에 나오는 "안식일논쟁"을 통해서는,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준수의 기본 취지가 아니라, 그날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통해 사람이 생명을 얻고 악한 영으로부터 자유와 해방과 안식을 누리는 것이라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다(마12:5~8). 또한 안식일논쟁을 통해서 결론적으로 우리 주 예수께서는 "내가 안식일의 주(퀴리오스=구약의 여호와)"이라고 말씀하심으로서(막2:28), 구약시대에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을 주셨던 분이 예수님 자신이심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 그날 우리에게 안식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막2:27). 예수께서는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도 잘 아는 이야기를 통해서 안식일에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지적하셨다. 즉 안식일에 사람이나 짐승(소나 나귀 등)이 구덩이에 빠졌으면 그것을 건져내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14:5). 그리고 안식일에도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하셨다(눅13:15). 그러므로 사람에게 죄사함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사드리는 제사장들은 안식일일지라도 성전에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제사장더러 안식일을 어긴 것이 말하는 자가 없었다(마12:5). 더욱이 할례법과 안식일법이 충돌할 때에는 안식일법보다도 할례법을 먼저 적용하여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고 있어, 안식일법보다도 더 우선하는 법이 있다는 것도 말씀해주셨다(요7:22~23). 그러므로 어떤 규정을 들이대면서 그것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하면서 천편일률적으로 안식일법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제사드리며, 절기를 지키고 있었지만 실은 형식만 취하고 있었을 뿐, 마음은 이미 떠나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당신 앞으로 헛된 제물을 가지고 오지도 말라고 하셨다. 그들이 드리는 월삭이나 안식일 그리고 절기 등에 싫증이 난다고까지 말씀하셨다(사1:11~14). 급기야 나중에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호2:11)"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으로 치우쳐버린 안식일법과 같은 의식법들은 곧 폐지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오셔서 의식법들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받게 될 모든 율법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더이상 의식법을 준행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 주셨다(갈3:13).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그림자인 불과한 의식법들을 더이상 따라가지 말라고 했다(골2:16~17). 즉 의문에 속한 율법들 즉 의식법들은 예수께서 오심으로 다 완성되었으니 더이상 그것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처럼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자는 약하고 천박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치른 경륜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분명하게 말했다(갈4:9~11, 엡2:15~16).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자는 일주일 중에 어떤 날을 귀중하게 여겨 그날에 예배를 드리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게 된 것이다(롬14:5~6).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는 자는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고, 저 날을 이 날보다 낫게 여기는 자는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고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며 영원한 불못에 들어갈 것이라는 안식교의 주장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오셔서 율법중에서 어떤 율법을 한층 강화시키고, 어떤 율법은 폐지하셨는지를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한다. 첫째, 산상수훈이라고 일컬어지는 신약의 성도들의 규범들을 살펴보면, 십계명으로 분류되는 도덕법은 한층 더 강화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십계명에서는 직접 행동으로 간음해야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마음으로 간음해도 간음한 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하셨고, 십계명에 의하면 사람을 직접 살해해야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마음으로 미워하고 욕해도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둘째, 예수께서는 의식법들은 다 폐지하심으로 더이상 의식과 절차를 지키지 않아도 됨을 가르쳐주셨다. 이러한 의식법에는 안식일법, 절기법, 제사법, 정부정법, 음식법 등이 포함된다. 이런 것들은 실체인 예수께서 오심으로 다 성취되었기에 더이상 지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안식을 얻는 것이라고 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께로 가서 그분의 은혜를 얻는 것이 안식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안식하게) 하리라(마11:28)"이라고 말씀으로,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로 가면 안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참으로 독특한 것은 안식일 규정은 십계명인 도덕법에도 나오고(출20:1~17)과 그리고 의식법인 절기법(레23:1~3)에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도덕법으로서 안식일법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지만, 의식법으로서 안식법은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은 일주일의 하루는 반드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날 하루만큼은 하나님에게 집중하여 그분께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바른 일이다. 하지만 그날을 토요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의식법은 이미 폐지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초기기독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는가? 놀랍게도 초기 기독교회의 역사는 유대인이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기독교인들과 이방인이었다고 예수님을 믿게 된 기독교인들이 어떤 날에 모여 예배를 드렸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정리하면, 한 마디로 유대인이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자는 안식일에 모여 예배를 드린 자도 있었고, 주일에 모여(당시 이 날은 쉬는 날이 아니었기에 출근하기 전인 아침과 출근 후인 저녁시간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린 자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A.D.70년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고(120면명이 죽고, 10만명이 포로로 잡혀감)과 A.D.132~135년 바르코크바의 반란이후 유대인이었다가 기독교인들이 된 자들은 더이상 안식일예배를 버리고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처음부터 굳이 안식일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A.D.107년에 사도요한과 사도베드로의 후계자라고고 불렸던 안디옥교회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보낸 7개의 편지들을 보면,  유대인들이라도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 편지를 직접 옮겨 보면 이렇다.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제3장 이상한 꾀임에 속지 마라. 이상한 교리에 속지 마십시오. 유익하지 않은 낡은 우화들에도 속지 마십시오. 우리가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라 계속해서 산다면, 그것은 우리가 은총을 받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가장 거룩한 예언자들마저도 예수 그리스도에 따라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에서 자란 사람이 새로운 희망을 받아들이겠다면 그는 안식일을 버리고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주일에는 그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이 솟아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초기부터 주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은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디다케, 바나바의 서신 등 많은 초기교부의 서신과 책에도 주일에 예배드렸다는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다가 A.D.313년 로마의 콘스탄틴황제가 밀라노칙령을 통해서 기독교를 공적인 종교로 승인해주었고, A.D.321년 3월 7일부터는 일요일에 모든 사람들이 쉬게 함으로, 자연스럽게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에 모여 예배드리게 되었고, 그것이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기독교인들은 어느날에 모여 예배드리든지 상관이 없게 되었다. 안식일에 예배드려도 상관없으며, 주일에 모여 예배드려도 상관이 없다. 어느날이든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도덕법으로서의 안식일의 기본정신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쉬는 날이가 함께 모이기가 좋다면 그날에 예배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초기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은 유대교인들과는 달리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날에 모여 아침저녁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일요일 휴일이 발표된 이후에는 낮시간에 자연스럽게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7. 나오며

  십계명은 참으로  특별하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계명 중에는 도덕법으로 나오면서도, 의식법의 하나로서 동시에 등장하는 계명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안식일법"이다. 안식일법은 십계명의 제4계명에도 나오지만(출20:7~11), 의식법으로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절기법의 제일 첫번째 의식법에도 나온다(레23:1~3). 그런데 신약경륜으로 볼 때, 도덕법은 한층 더 강화되었지만 의식법은 폐지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모여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님이 받으시고 주일에 드리는 것은 우상숭배 행위라고 하는 안식교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 당시 할례파요 율법주의자들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어도 어떤 의식적인 절차를 거쳐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현대판 외식주의자들이 될 가능성일 가장 많이 가진 단체가 바로 안식교인 것이다. 속지 말라. 예수 이외에 다른 것으로 우리는 거룩함을 입지 않으며, 예수 이외에 다른 것으로 우리는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한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을 자격을 확보하며, 회개하여 자기의 죄를 용서받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의식적인 절차 곧 할례를 행하거나 안식일을 지키거나, 음식을 가려먹는다는 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거나 구원받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12월 26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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