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죄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음행의 죄요 간음죄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사람이 심령 깊숙히 박히는 죄가 되기 때문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왠만해서는 빠져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죄는 자신의 몸 안에 죄를 짓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행죄와 간음죄의 유혹은 미리 차단하는 것이 가장 좋다. 환경을 차단하고 멀리하고 조심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러한 죄에 빠졌다면 그는 사생결단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금식하며 몸부림쳐야 한다. 그리고 단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이 꼭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도둑질 죄다. 그것은 물질만이 아니다. 마음의 도둑질도 있고 시간의 도둑질도 있다. 오늘날 성도들은 예배시간을 빼먹거나 지각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도둑질해서는 아니 된다. 또한 하나님께 바쳐야할 것도 도둑질해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들은 꼭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원함으로 해도 되는 것인가? 율법의 의식법들이 십자가에서 이미 폐지되었는데, 십일조를 꼭 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은 이것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찾아보려고 한다. 주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1. 들어가며
십계명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규범을 제시한 도덕법들이다. 그중에서도 인간 사이에 지켜야 윤리조항은 총6가지(제5계명~10계명)인데, 이것들은 다 유심히 살펴보면, 제1계명에서 제4계명을 잘 지키기 위한 것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제5계명(부모공경)은 제1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 훈련과정이며, 제7계명(간음금지)는 제2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규범인 것이다. 또한 제8계명(도둑질금지)는 제3계명을 잘 지키기 위한 도덕법에 속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제7계명과 제8계명의 위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제7계명(간음금지)과 더불어서 동성애, 이혼, 재혼에 관해서도 같이 살펴볼 것이며, 제8계명(도둑질금지)과 더불어 십일조에 성경적인 가르침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왜 인간은 간음하지 말아야하며, 왜 인간은 도둑질해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인가?
2. 제7계명(간음금지)은 어떤 계명이며, 왜 주셨고,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제7계명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간음금지 명령이다. 그래서 흔히들 "7계"를 범하지 말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여기서 "간음"이라 함은 부부간의 정상적인 성생활을 넘어 다른 존재와 갖는 불법적인 성생활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부부간에 있어서 성생활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결혼한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존재(사람이나 짐승 등)와 성생활을 갖는 것은 문제가 된다. 왜 간음죄는 문제가 되는 것이며, 왜 간음죄는 저질러서는 아니 되는 것일까? 사실 간음죄는 부부간의 신뢰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큰 죄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간음죄를 저지르게 되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다른 신들을 섬길 수 있게 된다. 곧 두 마음을 품는 것이 간음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간음죄금지 명령을 주신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기로 했다면 죽기까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신뢰하라는 뜻이 들어 있다.
성경에 보면, 결혼한 사람이 간음죄를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이유들이 나온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 4가지만 든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창조의 법칙 곧 일부일처제의 질서를 깨뜨리는 악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창2:24). 남자는 부모를 떠나 한 아내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하신 신성한 법칙이다. 그런데 간음은 이런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가 된다. 곧 가정이 깨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부가 만나 한 몸을 이루는 가정은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신성한 영역이자 행복의 산실이다. 그런데 간음죄는 이 행복의 처소를 망가뜨리는 것이 된다. 둘째로, 간음은 배우자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레20:10). 결혼은 일종의 부부의 정조와 대의에 관한 쌍방의 약속이다. 하지만 이것을 깨뜨린다는 것은 부부의 신뢰를 깨뜨리는 가장 나쁜 행동이 된다. 셋째로,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간음행위는 성령의 전인 자신의 몸을 현저하게 더럽히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고전6:15,18~19). 사람의 모든 죄는 몸밖에 짓는 죄이지만 음행과 간음의 죄는 사람의 몸 안에 죄를 짓게 된다. 그러므로 죄가 양심까지 온통 더럽힐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으며, 멸하시겠다고까지 말씀하셨다(고전3:16~17). 넷째로, 간음은 당장 돌로 쳐죽일만큼의 큰 범죄가 된다고 했으며(레20:10), 죽어서는 지옥형벌을 면치 못할 죄가 되기 때문이다(고전6:9, 히13:4). 그러므로 혹 자신이 죽어서 지옥형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간음을 해도 된다. 하지만 죽은 후에 지옥형벌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간음하지 말아야 한다.
3. 간음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성경에서는 간음죄를 비단 부부이외의 성생활만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음행의 죄로서 간음금지만을 말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간음죄 금지와 더불어, 근신상간 금지(레18장), 매춘 금지(레19:29), 동성애 금지(레18:22,신23:18), 수간 금지(레20:15~16)까지도 다 명하고 있다. 특히 동성애나 수간(짐승과의 성생활)은 가증한 일이라고 규정하시면서 이런 자들은 반드시 돌로 쳐죽이라고 명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서양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동성애와 수간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추세가 되어버렸다.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의 원주민을 내쫓아내신 줄 아는가? 그들이 동성애와 수간으로 인하여 그 땅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와 수간의 죄를 끊지 못하는 자는 그가 예수님을 믿는 자라 할지라도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천국이 그 사람을 토해낼 것이기 때문이다(레18:22~30).
4. 예수께서는 간음죄의 범위를 어떻게 확대하셨는가?
더불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곧 예수께서는 사람의 간음죄를 행위로 나타난 것만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사람이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5:27~28). 그리고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5:29~30). 혹시 누군가를 쳐다보고 음탕한 생각이 지나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음욕의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간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이혼하고 재혼하면 그것이 간음이 되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자기의 배우자와 이혼하고 다시 재혼하면 그것이 간음이 되는가? 그렇다. 그것은 100% 간음이다. 그것은 100% 지옥갈 죄가 된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자신의 배우자로 선택하여 둘이 하나가 되는 것에 관하여는 우리의 의지와 선택을 존중하신다. 하지만 한 번 배우자로서 누군가를 선택했다면 그 배우자는 평생 버리지 말아야 한다. 둘이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마19:4~6).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성격차이라고 이혼하고,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고 하여 이혼한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려고 이혼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음행한 이유 이외에 결코 이혼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마19:9). 그러므로 그러한 이혼은 결코 이혼이 아니다. 별거일 뿐이다. 그러므로 음행한 이유 없이 이혼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결혼하게 되면 그것은 간음이 되는 것이며, 이혼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도 간음이 되는 것이다(눅16:18).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직접 들려주신 말씀이지 결코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다(마5:31~32, 눅16:18, 마19:9). 그러므로 사람이 한 번 결혼했으면 끝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 미우나 고우나 내 짝이며, 영원히 버릴 수 없는 배우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결혼했는데 이혼하고 싶다면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알고 이혼해야 한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든지 아니면 다시 전 배우자와 합치든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재혼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배우자의 죽음 뿐이다(고전7:39~40). 그것도 재혼할 때에는 이혼한 사람과 절대 재혼해서는 아니 되며, 처녀 총각이든지 아니면 사별한 사람과는 재혼할 수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혼하지 말라고 이러한 말씀들을 주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기의 배우자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마19:4~6). 이것을 넘어서면 곧 간음이 되며 가정이 파괴되어 자녀들에게 큰 상처만을 안겨줄 뿐이다.
6. 간음죄를 이기고 털어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이 짓는 죄들 중에서도 가장 털어버리기 쉽지 않은 죄가 바로 간음죄다. 왜냐하면 이 죄는 자기의 몸 속까지 파고드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은 인간은 죽는 그날까지 죄성에 노출되어 있는데, 한 번 간음을 경험한 자는 양심이 더럽혀져서 다시 간음하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4가지 처방이 도움이 될른지 모르겠다. 앞의 2가지는 소극적인 방법이요, 뒤의 2가지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첫째, 음행을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피하라는 것이다(창39:12). 요셉은 그러다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진정어린 마음을 아시고 그를 완전히 높여주신다. 둘째, 내가 이 죄를 저지르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되새기도 또 되새기는 것이다.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지옥에 갔다온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철저히 회개하되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이다(눅2:37). 아예 그 죄성을 도말하기 위해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할른지도 모르겠다. 넷째,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소욕이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갈5:16~17).
7. 사람은 왜 제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켜야 하는가?
도둑질의 죄는 나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나 하나님의 것인데도 그것을 몰래 훔쳐 오는 죄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8번째 계명으로서 허락없이 훔치는 것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시고 있는가? 그것은 사실 그 죄가 바로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요10:10).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온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요10:10)"이라고 말씀하셨다. 도둑 마귀의 속성이 도둑질이라는 것이다. 마귀는 원래 하늘에서 쫓겨난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다른 천사들의 마음을 훔쳐서 하늘에서 쫓겨났다.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사들의 1/3의 마음을 훔쳐 자신의 부하로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번역의 깃발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세력들을 하늘에서 내쫓아버렸고 그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을 만드셨다(마25:41). 그러므로 마귀와 귀신들은 지금도 사람의 영혼을 도둑질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요10:10, 13:2, 12:6).
8. 사람이 도둑질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사람은 결코 땀흘려 수고하여 정당하게 얻은 것이 아닌 것들을 자기의 것으로 몰래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도둑질하지 말아야 하는가? 성경은 3가지 정도를 말하고 있다. 첫째,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치지 말아야 한다(삼하15:6).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기 맘대로 이용하는 것이 바로 첫번째 도둑질 죄인 것이다. 압살롬은 자신의 잘 생긴 외모를 사용해 이스라엘의 여인들의 마음을 훔치더니 결국 나라까지 훔치고 말았다(삼하15:6). 하지만 그의 도둑질 죄를 얼마가지 못해 비참하게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다. 도둑질한 것으로 성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남의 시간을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 약속시간은 꼭 지켜야 한다. 지각은 상대방의 시간을 도둑질한 것이다.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도둑질한 것이다. 그리고 주일성수를 꼭 실천하라. 사실 일주일의 하루는 주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구약에 예표적으로 안식일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시간을 훔쳐서는 아니 된다. 셋째, 다른 사람의 물질(재물)을 훔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몰래 빼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재물일 수도 있으나 정보가 될 수도 있다. 세금을 떼먹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반드시 드려야할 십일조와 봉헌물이라고 했다(말3:8).
9.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
오늘날 성도들은 과연 십일조를 꼭 해야 하는가? 인터넷을 보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꼭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구약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처음에 십일조는 자발적인 감사로 하는 행위였다(창14:17~20, 28:20~22). 하지만 시내산에서 그것이 율법으로 제정됨에 따라 십일조는 의무사항이 되었다(레27:30~33). 그러나 이것을 행하지 않는다고해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바라신 것 같다. 왜냐하면 십일조가 쓰이는 용도가 바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의식주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에 있어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원래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하나님께 바쳐진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일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이 의무사항이기는 했지만 불이행시 어떤 불이익이 주어지지 않음에 따라 사람들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규정한 십일조는 3가지 종류였다(레27:30~33, 신12:17,14:22,25). 첫번째는 곡식(밀과 보리)의 십일조가 있었고, 두번째는 나무의 열매의 십일조로서 감람나무의 열매로서 감람유와 포도나무에서 나는 포도주가 있었다. 그리고 세번째는 소와 양의 십일조가 있었다. 그것은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는 소와 양 중에서 열번째로 지나가는 것을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바꾸지 말라고 하셨다. 이러한 백성의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쳐진 후 레위인들에게 돌려졌고, 레위인들은 백성으로부터 받은 레위인들의 십일조를 다시 하나님께 바친 후 그것은 제사장에게 돌려졌다(민18:21,28).
그런데 이러한 십일조를 백성들이 드리지 않게 되자,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살기가 막막해지고 말았다. 결국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은 어떤 집의 개인의 제사장으로 취직하여 입에 풀질을 해야 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빼돌리거나 돈을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B.C.400년 제사장들의 타락상을 언급하면서,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행위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범죄행위라고 엄하게 꾸짖으셨다(말3:8).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백성들이 저주를 받은 원인이라고 말씀하셨다(말3:9).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십입조를 내는 자가 받을 축복을 말씀해주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문들을 열고 복을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 복은 2가지였다. 하나는 메뚜기떼를 금하여 토지소산의 열매를 먹어 치우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이미 받은 복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이다. 또 하나는 밭의 포도나무의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했다. 이는 자기가 앞으로 얻게 될 축복이 하나도 없어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10. 율법이 폐지된 신약시대 이후에 십일조는 의무사항인가 아니면 선택사항인가?
사실 십일조법은 구약의 율법 가운데서도 의식법에 속하는 법이다. 어떤 행위를 통해서 복을 받는 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다 알다시피, 예수게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의식법들을 완성하심으로 의식법들은 모두 폐지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의식법들을 의무적으로 지킬 필요가 없다. 안식일법, 절기법, 성결법, 음식법, 제사법 등이 다 폐지된 것이다.
그렇다면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관하여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을까? 만약 예수님께서 특별히 주신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의식법에 속한 십일조이지만 그것에 관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다. 그것은 마23:23에 있다.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행하고 저것(십일조)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그렇다. 우리의 모든 판단기준은 예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그것을 뛰어 넘어서도 아니되고 부족해서도 아니 된다. 그런데 구약의 모든 의식법들 가운데 십일조에 관한 것만큼은 계속해서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 말씀하셨까? 그것은 아마도 십일조의 용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구약시대에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통하여 속죄가 이루어졌고, 축복을 받았고, 율법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신약시대 이후에는 목회자들에게 그 직분이 계승되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의식주를 위해서는 아마도 십일조가 교회에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십일조만큼은 계속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이러한 십일조를 했는지에 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뛰어넘어 전 재산을 바치는 일도 있었고, 이방 교회에서는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연보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폐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성도가 십일조를 바치지 않았다고 해서 지옥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십일조가 하나님에게 드려질 때, 교회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적은 교회는 십일조의 양이 작아서 다 목회자들의 의식주를 위해 쓰여질 수도 있겠지만, 큰 교회일수록 풍성하여 주의 종들을 위해 쓰고도 남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목회자가 자기 몫이라고 다 가져가는 종은 없다. 다 당회와 제직회를 거쳐 선교사역을 위해 쓰여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십일조는 더이상 의무사항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주의 종들의 의식주가 해결되며, 선교사역이 풍성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축복의 약속을 담고 있다. 1/10을 드림으로 나머지 9/10가 보호받게 되며, 받을 복이 없어지지도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급적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좋다. 또한 우리가 드린 만큼 천국에서도 다시 돌려받게 될테니 말이다.
11. 도둑질의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부지런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담의 타락이후 사람은 밭의 소산을 먹기 위해서 땀흘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악하고 게으른 것은 주님께 책망의 대상이 될 뿐임을 알아야 한다. 사도바울도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부지런해지라. 둘째, 가진 것에 대해 자족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고 있는 것을 더 섬기고 드리고 구제하기를 힘써야 한다. 셋째, 마지막으로 기왕이면 소비를 줄이고 절약하며 저축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빈궁해지 않기 때문이요. 그러면 도둑질할 일이 필요없게 되기 때문이다.
12. 나오며
성도들이 정말 조심해야 할 것들이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음행의 죄 및 간음죄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가정을 깨뜨리고 부부간의 정조와 대의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어서는 지옥형벌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간음죄는 하나님의 성전인 자기의 몸 안에 죄를 범하는 심각한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간음죄를 짓는 사람이 간음죄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쉽지 않다. 하지만 회개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길이 있다. 용서가 있다. 그리고 죽어서 천국에도 갈 수 있다. 곧 간음죄는 회개만이 살 길이다. 그것을 끊는 것만이 살 길이다. 만약 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빨리 그러한 환경을 박차고 벗어나라. 그래야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재물을 훔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하나님의 것도 훔치지 말아야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예배시간이요 십일조와 헌금 같은 것이다.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말고 예배시간을 빠지지 말아야 한다. 원래 주일의 예표인 안식일은 여호와의 날이었지 우리의 시간이 아니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드려야 마땅하다고 말씀한 것들 곧 십일조나 헌금에 대해서도 우리는 율법이 폐해진 신약시대에 살고 있기에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만 치부해서는 아니 된다. 비록 모든 구약의 의식법들이 다 폐해지긴 했지만, 십일조만큼은 예수님께서도 계속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3:23). 그것은 아마도 구약시대 때부터 그것이 쓰여지는 대상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하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시대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그러므로 십일조에 헌금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교회와 주의 종들을 사랑하고, 교회의 선교사역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물질을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01월 09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