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 데 꼭 지켜야 할 "도덕법"으로서 십계명법을 주셨다. 그리고 이어서 시민들이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법으로서 "재판법"을 주셨다. 이러한 재판법은 시민들의 삶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법이라는 측면에서 "시민법"이라고도 불린다. 출애굽기20장은 "도덕법"을 기록하고 있고, 출애굽기 21장부터 23장까지는 "재판법(시민법)"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출애굽기 25장부터는 "성막법"이 등장하는데, 이 법은 제사법와 제사장법을 주시기 전에 필요한 법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또다른 측면인 "의식법"으로서, 음식법, 정결법, 절기법 등을 말씀해주셨다(이것은 레위기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다룰 부분은 어디인가? 그것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전하신 후에 십계명을 잘 준수하도록 보조적으로 주신 말씀과 아울러 백성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재판처리방법에 관한 부분이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출애굽기20장 하반부에 나오는 우상제작금지법(출20:18~21)과 제단제단식 주의사항(출20:22~26)과의 재판법의 두가지 곧 종에 관한 법(출21:1~11)과 사형에 관한 법(출21:12~17)을 살펴보려고 한다.
2.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셨는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셨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에 만나서 보고 들었던 하나님은 크고 두려운 분이셨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큰 우레소리와 나팔 소리 그리고 번개와 연기와 불과 구름 가운데서 그들에게 강림하셨기 때문이다(출19:16,18,20:18). 사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아니 볼 수도 없는 분이다(딤전6:16). 왜냐하면 하나님은 본질이 영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시내산에 강림하시어 그들과 언약을 체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도록 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임재를 시청각적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타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왜 떨어야 했을까? 그것은 크고 두려운 하나님 앞에서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은 죄악 때문이었다. 출애굽1세대들은 유월절날 기적같은 주님의 은총으로 밤에 죽지 않았고 살아서 탈출할 수 있었고, 며칠만에 그 먼 거리를 홍해 앞까지 기적적으로 도착했으며, 애굽 땅 비하히롯(누웨이바)에서 아라비아 땅 바알스본 맞은편까지 18Km나 되는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3일 후 마실 물이 떨어지고 먹을 음식이 떨어지자, 그들은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면서 원망불평을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세에게 요청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마시고 모세를 통해서 말씀해주십사고 말이다(출20:19). 그리하여 모세가 중보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게 되었다. 이렇듯 오늘날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도 중보자가 계신다(딤전2:5). 그분은 바로 사람이자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에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우리를 이해하시는 분이며, 그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보이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우리 주 예수님만 붙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분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왜 토단이나 돌제단을 만들되, 높지 않은 낮은 제단을 만들라고 하셨을까?
이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보이지 않은 영이신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제부터는 절대 어떤 형태가 있는 은과 금으로 하나님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출20:22~23). 그리고 제사드리기 위해 제단을 쌓을 때에도, 토단을 쌓거나 아니면 다듬지 않은 돌로만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제단은 높지 않게 만들어서 계단처럼 만들어 높게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 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을 어떤 유형의 우상으로 만들게 되면, 무한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물건 안에 갇혀버리기 때문이요, 제단을 너무 화려하고 멋있게 만들면 하나님은 어디 가버린 채 제단 자체가 신성시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가짜를 섬기지 않도록 절대 우상도 만들지 말고, 제단도 화려하게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4.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법규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법규(미쉬파팀=재판법,시민법)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나님께서는 도덕법으로 십계명을 주셨다. 그후에 하나님께서는 시민들간에 충돌로 말미암아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해줄 법을 주신다. 그것을 "재판법" 혹은 "시민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출21~23장은 바로 이러한 재판법을 기록한 책이다.
그렇다면 재판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은 종에 관한 규례부터 시작하여 사형 죄목에 대한 규례, 상해보상에 관한 규례, 소의 보상에 관한 규례 등이 있다. 또한 각종 손해 배상에 관한 규례, 종교적인 사형에 관한 규례, 공평에 관한 규례, 안식년와 안식일에 관한 규례, 세 가지 절기에 관한 규례 등이 여기에 속한다.
5.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종에 관한 규례는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재판법의 제 일 번으로 "종에 관한 규례"를 정해주셨다. 종에 관한 법은 남종에 관한 규례(출21:1~6)과 여종에 관한 규례(출21:7~11)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남종은 계속 종으로 붙잡아두지 말고 7년째가 되면 그를 자유롭게 풀어주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것이 애굽에서 바로에게 종살이하던 것에서부터 그들을 해방하기 위함이었기에, 다시 서로 동족을 종으로 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의 동족의 종들은 6년까지만 일하고, 7년째가 되면 종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가 홀로 즉 단신으로 종으로 들어왔으면 홀로 나가면 된다고 하셨다. 만약 그가 이미 결혼해서 처자와 함께 들어왔으면 같이 나가면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종이 된 후에 주인이 자신에게 아내를 주어 자식을 낳게 되었으면, 나갈 때에는 처자식을 놔두고 가라고 하셨다. 아내와 그로 말마임아 낳은 자식은 원래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남종이 주인이 준 아내와 자식들을 사랑하고, 주인을 사랑해서 주인과 계속 함께 있고 싶어하면, 재판장에게 찾아가 문설주에 자신의 오른쪽 귀를 뚫어 종신토록 노예로도 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종신노예제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 인간을 신부로 취하여 영원토록 함께 살기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하여 자신의 몸을 대못으로 구멍뚫은 사건을 의미한다. 우리를 위해 종신노예가 되기를 서원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드린다.
6. 여종에 관해서는 어떤 것을 말씀하셨는가?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여종에 대해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그냥 돈주고 사온 여종은 남종과 마찬가지로 7년째가 되어 면제년이 되면 자유롭게 나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떤 여종은 주인의 첩으로 사온 여종들도 있었다. 그러한 여종들은 면제년이 되어도 나갈 수 없다고 하셨다. 주인에게 두번째 혹은 세번째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이 첩으로 데려왔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놓아보내라고도 말씀하셨다. 혹시 그 여종을 자신의 아들에게 아내로 주었다면, 딸처럼 여기라고 하셨다. 그리고 혹시 첩으로 사온 여종이 맘에 들지 않지만 같이 살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녀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게 해주라고 하셨다. 즉 그녀에게 음식과 의복 그리고 동침을 끊어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음식과 의복 그리고 동침을 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그녀를 놓아보내라고 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종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개인이 인간으로서 살 권리가 있으니 그러한 삶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사람을 종으로 사 왔어도 끝까지 그를 붙잡아두지 말고, 7년째에는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영원히 종으로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만 종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사람에게 영원히 종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신 것이다(레25:55).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든지 종으로 데려왔어도 7년째가 되면 자유롭게 놓아보내주어야 했으며, 혹 6년 안에 희년이 겹쳤으면 희년째 되는 날 자유롭게 놓아보내라고 하셨다. 오직 하나님만이 종에 대한 주인의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7. 사람이 사형언도를 받을만큼 큰 죄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을 마땅히 죽여야 할 사형에 관하여 4가지 항목(죄목)을 정해 주셨다. 그것은 첫째로, 살인죄(출21:12), 둘째로, 부모구타죄(출21:14), 셋째로, 인신유괴죄(출21:16), 넷째로, 부모저주죄(출21:17)"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4가지 사형죄는 사실 크게 두 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살인죄와 인신유괴죄를 말씀하심은 타인의 생명을 귀히 여겨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웃을 살인하게 되면, 그가 이 다음 세상인 저 천국에 들어갈 준비와 천국에서 받을 상급의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되고만다. 즉 사람을 억지로 죽이면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없애려 한 것임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내면적인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 중에 하나는 영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 것은 다른 사람을 살해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인죄와 인신유괴죄는 마땅히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출21:12,16). 특히 인신유괴죄는 그 목적이 돈벌이에 있었든지, 노동력의 착취에 있었든지, 성범죄에 있었든지간에 절대 그냥 놔두지 말고 반드시 돌로 쳐죽이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를 크게 물으시겠다고 하셨다. 부모를 구타하거나 부모를 저주하는 말을 하는 자는 살려두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왜 그렇게 엄하게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 부모인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는 보이지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부모를 통해 하나님의 섬기는 법을 배운다. 그러므로 부모를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자식은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8. 나오며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절대초월자이신 하나님과 직접 마주 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죄인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하다. 구약시대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의 예표였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이자 사람으로 오신 중보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주목해야 한다. 혹 그분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행위나 의식이 있다면 그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멋지게 꾸민 예배당 안에서 예배하는 것을 두고 행복을 느끼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분을 자신의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격은 귀하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돈이 없어 팔려온 종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계속 종으로 부려서는 아니 된다. 때가 되면 놓아보내야 한다. 그도 나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죽여서도 아니 된다. 사람은 자신의 육체가 살아있을 때에만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서 다음 세계의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인은 그러한 기회를 박탈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인신유괴죄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모든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가 되므로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절대 아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낳아 길러주신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존재의 시작이요 하나님을 알게 해주는 가장 귀한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부모공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준 최초의 재판법은 사람을 사람처럼 대우해주라는 것이었다. 그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존중해주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 보자. 건투를 빈다.
2019년 1월 23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