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강해(34) 모세의 중재 및 회복선언과 하나님의 영광(출33:1~34:9)_2019-05-08(수)

by 갈렙 posted May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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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dAkLG_XL1BU
날짜 2019-05-08
본문말씀 출애굽기 33:1~29(구약 13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중보기도,모세의중보기도,우상숭배의죄,회개의분량,회개의시기,죄와형벌

내가 만약 어떤 죄를 지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는 반드시 그 죄를 회개해야 용서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회개해야 그 죄를 용서받게 되는가? 한 번 하면 그것으로 더이상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가? 아니면 죽을 때까지 회개해야 하는가? 그 답이 바로 오늘 말씀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람이 남을 위해 중보기도했을 때 그 효력이 어느 정도 되는 것인가? 내가 남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가 반드시 내 기도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아무리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그에게 아무런 영향이 끼칠 수가 없는가? 그 답이 또한 오늘 말씀 안에 들어 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기도하되 회개기도를 할 때에는 어느 정도까지해야 그것이 하나님께 상달되는지를 살펴보고자 또한 중보기도의 효력과 한계점은 어떤 것인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있기를 바란다.

 

1. 들어가며

  우리는 기도할 때면 우리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그것은 어쩌면 간단하게 답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요청한 것이 응답되면 그것으로 기도는 그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못했을 때에, 그 범죄에 대한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린다고 치자. 그럼, 그러한 기도는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전심을 다해 자신의 잘못을 주님께서 용서해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하면 그것 한 번으로 용서받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기도해야 하는가? 아니면 계속해서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나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기도할 때 그 효과는 어느정도 미치는 것인가? 즉 중보기도를 드릴 때에 나 자신을 위하는 기도가 아니라, 타인이나 어떤 단체 혹은 국가과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면, 기도를 받는 대상에게는 어떤 효과가 미치는 것인가? 완전한 것인가 일부분인 것인가? 예를 들어보자. 오늘 내가 내 자식의 구원의 문제를 놓고 중보 기도를 하고 있다 치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한대로 그녀를 구원해주시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기도한다고 한들 별로 소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구원해주시는가? 이러한 질문은 기도하는 성도라면 한 번쯤은 갖는 질문들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을 보고 기도를 끝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중보기도의 능력과 약점이 무엇인지도 함께 알려준다. 자,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중보기도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2. 모세는 왜 중보기도를 시작해야 했는가?

  하나님께서 율법을 받으러 올라갔던 모세는 왜 중보기도를 시작해야 했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의 간악한 범죄 때문이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의 죄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해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이 직접 말씀하신 말씀의 법에서 속히 떠나서 부패하여졌고, 그래서 송아지우상을 만들더니 그것을 예배하고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출32:7~8). 그러자 모세는 즉시 중보기도에 들어간다. 이것이야말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드린 "첫번째 중보기도"다. 그것은 우선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기도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죄를 짓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내리려고 했던 벌을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때 모세는 첫번째로 어떤 중보의 기도를 드린 것일까?

  모세가 드린 첫번째 중보기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기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진멸하여 없애버리려는 마음을 누구려뜨렸다. 아니, 대체 모세는 어떻게 기도한 것인가? 그것은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때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해서 그들을 진멸해서는 아니 되는 2가지 이유를 말했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죽여 없애버린다면 주변의 민족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죽여 없애려는 악한 의도가 있었다고 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과서 이스라엘 민족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 아행위가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뜻을 돌이켜 그의 백성에게 내리려고 하시던 화를 그의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신다(출32:14)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광란의 춤을 추며 음식을 먹으며 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주신 십계명을 두 돌판을 땅에 던져 깨뜨려버린다. 그리고 내려와서는 금송아지를 불살라 그것을 가루어 만들어 흐르는 시냇물에 타서 든 백성으로 하여금 마시게 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분노를 대신하여 칼로 우상숭배한 자들을 죽이라고 한다. 그리고 두번째 중보기도에 들어간다.

 

3. 모세의 2차 중보기도에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그래서 모세는 이번에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2차 기도를 드린다. 그는 이스라엘민족이 저지른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만약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려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간구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필사각오의 기도를 들으시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에게 그들을 이끌어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을 것이고, 대신 하나님의 천사를 딸려 보내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일종의 하나님의 동행거부선언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아니하시고 천사를 대신 보내겠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한다면 언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여 없애버릴른지 당신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출33:3).

 

4. 모세는 왜 진영 밖에 회막을 설치하였는가?

  그리고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자 그들 스스로 슬퍼하면서 자신의 몸을 치장한 단장품 곧 패물들을 차지 아니하기 시작하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만약 장신구들을 다 떼어낸다면 그 다음의 일을 그후에 결정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의 분노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끌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장막을 취하여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설치한다. 그러자 구름기둥이 진영밖 회막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이내 모세는 그리로 들어가서 중보기도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모세의 이러한 행동은 과연 무엇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떠나계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더불어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는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 하나는 모세가 거기서 다시 하나님께 회개기도하여 진밖에 계시는 하나님을 진영 안으로 모셔오게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모세가 진밖에 친 "회막"은 이스라엘 진영밖에 계신 하나님을 설득하여 그분을 진영 안으로 들어오시도록 하기 위한 회개처소였던 것이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의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께 절을 했다. 그러자 회막에 들어간 모세는 이제 세번째 중보기도에 들어간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이 기도를 시작했으면 언제까지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데 언제 끝내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원칙은 이렇다. 하나님께서 내린 징계조치를 없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나 주변사람의 범죄로 인해 떠나버린 하나님께서 다시 안으로 들어오실 때까지 기도해야 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5. 모세는 세번째 중보기도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진영 밖에 친 회막에서 모세는 이제 세번째 중보기도를 드린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을 돌이킬 수 있도록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전에 나에게 말씀하식를 나는 이름으로 너를 알고 있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고 하셨은즉, 만약 그것이 진짜라면 제가 드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기도를 들어주시길 원합니다." 그랬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곁을 떠났다. 오직 모세와만 함께 하고 계셨다. 그런데 모세마저도 떠나버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누구와 일하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서 3가지를 청원한다. 첫째, 주의 길을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알려달라고 했다. 둘째,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하시는 분인지를 알려달라고 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는 3가지 기도에 그대로 응답하신다.

 

6. 모세의 세번째 중보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이었는가?

  모세마저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보셨다. 그리고 그에게 3가지 청원에 차례차례 응답하셨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과 친히 동행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출33:14). 그래서 모세를 쉬게 해 주시겠다고 했다. 그렇지 아니하면 모세는 밤낮으로 기도할 것이라고 사실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약속의 표징으로 모세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볼 수는 없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바위틈에 잠시 숨겨놓았다가 하나님이 지나가신 후에 그 자취를 보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해 주셨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나가신 자리의 자취 곧 하나님의 영광을 본 몇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출33:20~23).

  둘째,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시는 분인지를 알려주셨으니, 그것은 "나는 은혜를 베풀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이다(출33:19b)"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다. 은혜를 받을 만한 자인데도 그에게 징계를 내리거나, 긍휼히 여김을 받을 만한 자에게 잔인하게 행하시는 분이 아니신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서 해석해보면, 하나님은 "두고 보겠다"는 것이다. 모세를 통한 대신 회개와 모세의 중보기도로 인해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진멸당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 민족이 진멸당하지 않기에 합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얼마나 없애버리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셋째,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당신의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제2차 언약식을 체결할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출34:1~9).

 

7.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더러 십계명의 두 돌판을 다시 깎아서 가져오라고 말씀하셨다(출34:1~3). 거기에다가 하나님께서 말씀을 다시 새겨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라올 때에는 하나님께서 죄악된 이스라엘 백성이나 혹은 동물들을 언제 칠 줄 모르니 모세 혼자서만 올라오라고 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깎아서 만든 두 돌판을 들고서 다시 시내산에 오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 앞을 지나가신다. 그런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아마도 천사의 음성이었으리라 본다.

출34:6-7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그렇다. 하나님은 첫째로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시다(출34:6~7a). 그분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분이시다. 하지만 둘째로, 그분은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출34:7b). 왜냐하면 죄를 지은 자를 그냥 넘어가시지는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반드시 죄에 대해 벌을 받게 하시되, 아들들과 손자들과 이어서 삼사대까지 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2가지 속성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뒤집어 살펴보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한 죄를 결코 그냥 넘어가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다시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이스라엘민족이 시내광야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결코 벌을 면제하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죄가 청산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냥 그 죄를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선포하신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죄값에 대해 누군가가 대신 그 벌을 받아야 죄가 청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피를 가진 존재인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이는 피흘림이 없은즉 용서하심도 없다는 영적인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히9:22). 죄는 벌을 받아야 사라지는 것이지 말로서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8. 우리의 구원자되신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피흘리시기만 했는가 아니면 형벌까지 대신 받으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죄를 용서하시기만 하셨는가 아니면 대신 벌까지 받으셨나? 사람이 지은 죄들에 대한 형벌이 어떤 것인지는 신30장을 읽어보면 자세히 나온다. 그것은 온갖 저주와 질병과 가난과 고통을 맛보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기만 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인류 대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저주의 십자가 위에서 매들리셨다. 사람들로부터 온갖 멸치와 천대를 받으셨다. 또한 자기를 믿고 따르던 모든 이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셨다. 그리고 온 몸이 발가벗겨진채 온갖 수치를 다 겪어야 했다. 또한 채찍에 맞으심으로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가시로 찔리시고 창으로 몸이 뚫리는 고통도 맛보셨다. 그리고 죽음의 고통까지 참아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그분이 대신 죽으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대신 형벌까지 받으셨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형벌로부터 자유함을 얻는다.

 

9. 예수믿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성도들 중에서는 온갖 저주와 질병과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는 자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는 왜 징계를 받는 이도 상당히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구약시대에는 아직까지 메시야가 대신 형벌을 받으시기 전이기 때문에, 죄용서를 받은 자라 할지라도 형벌은 면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약시대는 다르다. 예수께서 대신 피흘리시고 형벌까지 대신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 온갖 저주와 질병과 가난과 고통을 맛보고 있는 자가 수둑룩하다.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사도요한에게 들려주신 말씀에 보더라도,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성도라도 우상숭배하는 자들에게 징계가 임했다. 적어도 3가지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씀하셨다(계2:22~23). 첫째는 자기가 질병의 침상에 던져지는 것이다. 둘째, 자기와 견해를 같이한 자들이 환난이 던져진다. 셋째, 자신의 자식들이 죽어나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다 회개함으로 용서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있으니, 그러한 죄들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있는 것이다(계2:21). 다시 말해, 성도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저주와 질병과 가난과 고통은 그에게 회개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싸인인 것이다. 그가 예수믿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그들에게 징계를 받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아직도 징계가 계속되고 있다면 아직 회개해야 할 죄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그 죄를 끄집어내어서 회개하라. 그리고 회개기도는 징계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하라. 이것이 회개기도의 정석이다.

 

10. 나오며

  출애굽의 인도자인 모세가 잠시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우상숭배사건은 실로 하나님의 엄청난 분노를 야기하고 말았다. 그러자 모세의 목숨을 건 3차례의 중보기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목숨을 건 모세의 중보기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회하고 자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임할 진노와 그 결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자신의 칼을 가심이여. 자신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또 그를 위하여] 죽음의 무기들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들은 불화살들이로다(시7:11~13)". 그렇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계약을 맺은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그들은 금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가는 자가 되고 말았는가? 하나님의 분노는 실로 엄청났다. 모세가 그 불을 끄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모세가 아니었다면 진즉 이스라엘은 불에 타서 죽어서 없어졌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중보기도의 능력을 보게 된다. 죄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었지만 그를 살리기 위한 기도는 모세가 드리고 있다. 그래도 모세의 중보기도 덕분에 출애굽1세대들은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진정 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슴에 묻어두었다. 그것은 결국 12정탐꾼의 보고 이후 그대로 다시 타올랐다. 결국 출애굽1세대은 하나님을 믿지 못한느 불신 때문에 광야에 엎드려져 죽고 말았다. 죄를 지었으면 당사자가 회개해야 한다. 그렇다. 남이 대신 회개한 것 때문에 그리고 남이 대신 중보기도한 것 때문에 당사자가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거나 구원받지 못한다. 잠시 심판의 시기를 늦출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더 주는 것 뿐이다. 그래도 그것이 어디인가? 그 시간 안에 회개를 한다면 그도 구원받을 수가 있지 아니한가? 우리도 대신하여 회개기도 하는 것과 중보기도하는 것을 쉬지 말아야 하겠다.

 

2019년 5월 8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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