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강해(05) 에스겔의 소명과 파송(2)(겔2:1~3:27)_2019-07-10(수)

by 갈렙 posted Jul 10,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I5lhKxIEwYU
날짜 2019-07-10
본문말씀 에스겔 2:1~3:27(구약 115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에스겔의 소명, 에스겔의 파송, 선지자의 사명, 에스겔의 외로움, 두루마리 책, 애가과 애곡과 재앙의 말, 패역한 족속,, 가시와 찔레와 전갈, 강하게 하심

에스겔은 왜 강해져야 했는가? 에스겔의 이마는 왜 다이아몬드처럼 경도가 강해져야만 했는가? 그것은 이미 완악해지고 딱딱히 굳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보다는 더 강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들을 깨뜨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하고, 그 중에서 한 생명이라고 회개케 하여 구원얻게 하는 일에 자신이 쓰임받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에스겔은 선지자로서 부름을 받았지만 무려 7년동안 아무말도 못하는 벙어리로 지내야 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혀를 입천장에 붙여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것은 이제 곧 불어닥칠 이스라엘 멸망을 더이상 연기하거나 취소시키지 않으시겠다는 표시다. 심판을 받드시 집행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마음은 정말로 답답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순종과 겸손의 훈련부터 먼저 시키셨다. 그러자 에스겔은 정말로 강해졌으며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는 복음전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1. 들어가며

  에스겔은 30살(B.C593년)에 부름받아 22년간 사역(B.C.571년)하였다. 그의 사역초기에는 자신의 혀가 입천장에 붙어 있어서, 벙어리처럼 살아야했다. 만약 누가 선지자로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면, 가서 큰 소리로 외쳐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7년동안 벙어리처럼 말을 못했다. 하나님께서 막으셨기 때문이다. 다만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에게 그러한 일을 시키셨다는 말인가? 사실 에스겔은 이제 남유다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쳐야 할 당사자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외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것도 무려 7년동안이나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에스겔 보내었던 대상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이방민족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에스겔의 어떤 말이나 행동에도 전혀 반응하지 아니하는 패역한 민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패역한 족속을 향하여 에스겔을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역해야 할 선지자는 과연 어떤 자세와 각오로 현지로 들어가야하는가? 그리고  그곳에 가서 과연 무엇을 외쳐야 하는가? 오늘은 선지자가 가야 할 대상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민족이었으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할 예언의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어떤 대상을 향해 에스겔을 보내셨는가?

  B.C.593년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지 5년이 지난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갈대아의 그발강가에 있던 에스겔을 불러내셨다. 그런데 그때 에스겔은 갑자기 북쪽에서부터 강한 폭풍과 큰 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게 된다. 환상이었다. 환상의 시작은 하늘에 있는 네 생물(생명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환상의 끝은 궁창 위에 있는 보좌 위에 앉으신 이에게 있었다. 그러자 거기에 앉은 이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인즉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는 말씀이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선지자로서 보내는 대상은 누구였는가? 첫째로, 이방민족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이었다(겔2:3,3:5~6). 그들은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이 아니라, 말을 알아듣지 못할 나라가 아니라 자기 민족이었다. 둘째, 그들은 에스겔의 예언을 잘 받아주거나 잘 순종할 백성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그들의 이마가 얼마나 딱딱하고 마음은 굳어있고 얼굴은 뻔뻔한 사람들이었다(겔2:4,3:7).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마는 굳어져서 어떠한 말도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들의 마음도 닫혀 있어서 들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들이 반응할 사람들도 아니었다. 이미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있었던 것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왜 에스겔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내야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에스겔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지자로 보내려고 하는가? 그런데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깨우쳐 회개하게 하려함이 아니었다. 이는 그러한 때는 지난 뒤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에 대한 소망은 접은 상태였기 때문이.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내긴 보내지만 그들에게 아무 말을 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그의 혀를 입천장에 붙혀놓아서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게 막으셨다(겔3:26). 그래서 에스겔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지만 무려 7년동안이나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행동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행동예언"만을 하게 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에스겔에서 언어예언이 아니라 행동예언만을 하게 한 것인가?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하나님을 뜻을 전달해주는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을 그들이 알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겔2:5).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패역한 족속으로 전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겔12장에 보면, 패역한 족속이란 어떤 족속을 의미하는지 이렇게 나와 있다.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겔12:2)"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망과 기대를 이미 접은 상태였다. 그러니 그들이 듣고 회개하지 못하도록 아예 음성으로 예언하는 것을 막으셨던 것이다. 왜 이 지경까지 된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남유다의 제14대 왕이었던 므낫세왕 때부터 남유는 급속히 기울기 시작하였다. 므낫세왕은 남유다에서 가장 유명했던 왕 중의 하나인 히스기야였다. 하지만 므낫세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남유다의 멸망을 결정하게 하게 했던 못된 행동들을 골라서 했다. 그것도 무려 55년간이나 말이다. 므낫세왕을 지나서 아몬시대에 이르러 남유다의 범죄를 더욱 더 심각해졌으니, 그들이 섬긴 우상의 수가 무려 유다의 고을의 수만큼 많았으며, 그들은 성전에서조차 버젓이 태양신숭배를 자행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마저 멸하기로 작정하셨던 것이다. 그렇다. 다른 그 어떤 죄보다도 가장 큰 죄는 우상숭배의 죄다.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길 때에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신다.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집행하시는 것이다.

 

4. 하나님께 부름받은 선지자가 가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곳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인데, 하나님을 말씀을 전해야 할 대상은 그리 녹록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당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들려주고자 하는 말씀을 대신 그들에게 전하는데, 그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전하는 일을 해야 했다. 냉대와 박대 속에서도 꿋꿋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자가 바로 선지자의 직책이었던 것이다.

  사실 선지자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초기 선지자들로서 엘리야와 엘리사와 같은 선지자들이 있다. 이러한 선지자들은 가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도 행하는 선지자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지자는 대체로 지도자들로부터는 배척을 받지만 백성들로부터는 환영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후기 선지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한 명도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달하는 선지자였다. 그것도 대부분 책망하는 말과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후기 선지자들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에스겔도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와 더불어 후기 선지자에 해당하는 자로서, 가서 예언만을 할 수 있는 선지자였다. 그러니 그가 가서 해야 할 일은 어느 누구도 환영해 줄 자가 없는 상황에서 가서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선지자노릇을 하는 것이 힘들었을까? 그러나 사실 오늘날 주의 종들 중에는 능력있는 종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가진 은사와 달란트, 능력과 권세로서 기적을 행할 수 있다. 그러니 환영받는 주의 종들도 많은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불러내셨던 12제자들의 경우도 비슷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12제자들이 나가서 천국복음을 전파할 때에 주님은 그들을 빈 손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그들의 치유와 축사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주었고 그들을 믿고 따라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에스겔은 그 어떤 이적도 행할 수 없는 그러한 선지자였다. 그냥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그의 처음이요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7년동안은 말도 하지 못하는 선지자였으니 그 답답함이 오죽했을까?

 

5. 에스겔이 전해야 할 메시지는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어떻게 일러주셨는가? 그것은 귀에 들려준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두루마리에 써 놓은 글이었다. 그것도 안팎으로 쓰여있는 글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루마리를 에스겔에게 보여주셨는데, 하나님의 편 손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애가(장송곡노래)와 애곡(울음소리)과 재앙(치명적인 질병과 같은 재앙들)의 말이 기록된 것이었다. 주님은 그 책을 에스겔의 입에 넣어주시며 그것을 먹으라고 하였다(겔2:8,3:1). 그래서 에스겔이 그것을 먹었는데, 그 두루마리는 입에서 매우 달았다. 그 달기가 꿀 같았다. 하지만 창자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 그것은 매우 썼다(겔2:10,3:3). 그것이 재앙에 관한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스겔이 두루마리를 자기의 입으로 먹은 것과 똑같은 일이 후에 한 번 더 있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사도요한이 그러한 체험을 한 것이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로서 예수를 증언하고 복음을 전파했다는 이유 때문에 당시 로마황제에 의해 A.D.95~96년경 밧모섬이라는 섬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에게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를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셨다(계1장). 그러시면서 보낼 편지의 내용까지 일러주셨다(계2~3장).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도요한의 영을 불러 천상으로 데려가셨다(계4장).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상의 모습의 보여준 후 장차 되어질 일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보여주셨다(계5장). 그러나 상천하지에 그것을 열어볼만한 존재가 없었다. 하지만 일찍 죽임을 당한 예수께서 그 두루마리를 받으시더니, 그것의 인봉을 떼셨다. 그랬더니 장차 되어질 인류의 모든 역사가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차근차근 일곱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에 들어이는 우주의 역사가 다 공개되었다. 하지만 장차 되어질 일이 그것만으로 끝마쳐진 것이 아니었다. 어린양이 일곱번째 인을 떼었을 때에, 이번에는 일곱 가지의 나팔재앙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곱인을 떼기 직전에, 한 천사가 사도요한에게 작은 두루마리를 먹어준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역사상 두번째로, 천사의 손에 있는 두번째 작은 두루마리를 사도요한에게 보여주셨다. 그것은 B.C.593년에 에스겔이 보았던 첫번째 것과 거의 비슷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에스겔은 보좌에 계신 이께서 직접 두루마리를 먹여주셨다고 한다면, 사도요한은 천사가 두루마리를 먹여준다는 점이다. 물론 둘 다 글은 두루마리(파피루스)이 안팎으로 쓰여있었으며 그 내용은 재앙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먹을 때에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은 후에는 배에서 매우 썼다. 이것도 에스겔이나 사도요한에게 똑같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훗날 기록된 요한계시록의 말씀 중에 일곱나팔심판과 일곱번째 대접심판이 재앙의 심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6. 하나님은 왜 에스겔을 강한 자로 만들어야 했는가?

  에스겔의 사역할 당시 이스라엘은 타락할 대로 타락한 상태에 있었으며, 하나님을 대놓고 거역하곤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사역을 감당하다가 그만 사역을 중단할까봐 에스겔을 무장시켜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족속들의 이마가 딱딱하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있는 것을 뛰어넘도록 에스겔을 강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해주셨다(겔3:8~9). 그것은 먼저, 에스겔의 이마를 화석보다 더 강하게 해주시겠다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화석(히, '초르')"은 출애굽기서에서 십보라가 모세에게 할례를 행할 때 사용하던 바로 그 돌맹이이다. 우리말로는 "차돌"인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이마를 차돌보다 더 강력한 경도를 가진 금강석으로 만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겔3:7~9). 여기에 나오는 "금강석"이란 영어로는 "다이아몬드"에 해당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를 누군에게 보낼 때에는 선지자가 주눅이 들도록 대충대충해서 보내지는 아니하신다. 더 강력하게 무장해서 보내는 것이다. 그것으로 하나님은 우선 에스겔을 영으로 충만하게 해 주셨다. 그리고 어떤 사명을 감당하려 할 때에는 천상의 모습과 음성을 듣게 해 주셨다. 천국이 기다리고 있으니 더 강하고 담대하라는 의미다. 그렇듯 에스겔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지고 강해졌다. 그의 이름처럼 말이다. 그의 이름은 "에스겔(예제키엘)"이라는 말로서, "하나님은 강한 자다" 혹은 "하나님은 강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렇다. 에스겔이 패역한 족속을 상대로 사역해야 하니 더 강력한 훈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장 유능한 사람 중에 하나인 에스겔을 잡아 들어쓰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설 때에 또는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할 때에 절대 떨지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다(겔2:6,3:9).

 

7. 나오며

  그렇다. 선지자는 외롭고 힘들 길을 가는 자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앞에 반대와 고난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이상 에스겔은 그러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자신이 약해져서는 아니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강하게 하시려고 먼저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광경을 그에게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 영광을 위해서는 자신이 비록 "아담의 아들(벤아담=인자)"이지만 고군분투할 것을 권면하셨다. 왜냐하면 그가 가서 만나야 할 사람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자기의 민족이지만 가장 강퍅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결코 에스겔이 전한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해주셨다. 그렇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들의 이마가 딱딱한 상태에 놓여있기는 하지만, 에스겔의 이마는 차돌처럼 더 강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을 덧붙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에스겔의 이마를 금강석(다이아몬드)같이 만들어주실 것이라고까지 말해주었다. 그만큼 선지자는 강해져야 하고 반대와 냉대와 조소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믿는 이들이나 많은 주의 종들은 다 이러한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아니 이러한 길이 예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하지말고 업신여기지도 말라.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내 인생을 꽃피우게 해줄 수단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7월 10일(수)

정병진목사


Articles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