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강해(17) 회복될 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환상(겔40:1~43:11)_2019-10-23(수)

by 갈렙 posted Oct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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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mnuPdhHXrW4
날짜 2019-10-23
본문말씀 에스겔 40:1~43:11(구약 121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새예루살렘성전,새성전의회복,새제사의회복,새땅의회복,성전의담,동서남북의문들,바깥들,안뜰,하나님의보좌,외소와내소,번제단

에스겔은 그의 사역 20년만에 놀라운 하늘의 환상을 또 한 번 보게 된다. 그것은 이미 14년전에 파괴된 솔로몬의 성전보다도 훨씬 더 크고 위대한 성전이었다. 그런데 그가 보았던 "새 성전"을 두고 어떤 이는 천년왕국 때에 지상에 실제로 건축될 천년왕국성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또 어떤 이는 그것을 영적인 성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지상의 성전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을 더 많이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았던 성전(겔40:1~43:11)은 어떤 모습의 성전이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성전인가?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B.C.572~573년경 에스겔선지자에게 장차 회복될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관하여 환상을 보여주신다(겔40~48장). 에스겔은 그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지 25년이 되던 해에 능력의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그의 영이 바벨론에서 순식간에 이스라엘 땅으로 옮겨져 장차 새롭게 지어질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관한 계시를 본다. 그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가 보았던 "새 성전"에 관한 환상 부분(겔40:1~43:11)을 살펴보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성전을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천년왕국 기간에 이 땅에 세워지게 될 "제3의성전" 혹은 "천년왕국성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 땅에 다시 양의 피로 제사를 드리는 날이 진짜 올 것인가? 만약 이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면,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의 환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또한 새 생전은 어떻게 생겼으며 그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져 주님께서 3,500년전에 보여주신 새로운 성전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2. 새 성전에 대한 환상 예언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에스겔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심판이고(겔1장~32장), 또 하나는 회복이다(겔33~48장). 그중에서 에스겔40~48장은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대한 회복에 관한 예언을 다루고 있다. 에스겔은 그의 나이 50세되던 해 1월 10일, 또 한 번의 이상을 보게 된다(겔40~48장). 그는 바벨론의 델아빕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을 힘입어 그의 영이 빠져나간 뒤, 이스라엘의 땅으로 순식간에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거기에 가보니, 거기에는 장차 회복되어 건설될 새 생전이 눈 앞에 이미 있었다. 그때 새 성전의 이곳저곳을 안내할 안내자가 나타났는데, 그는 "놋같이 빛나는 어떤 사람"이었다(아마도 천사였든지 아니면 성육신 전의 하나님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그들은 에스겔과 함께 이스라엘의 매우 높은 산(아마도 감람산이었을 것이다)에 있었다. 그때 에스겔은 남쪽을 향하여 "성읍형상 같은 것"(성전은 성전인데 워낙 커서 성읍처럼 보임)을 보게 된다(이것이 바로 장차 회복되어 새로 지어질 새 성전의 모습이다).

 

3. 에스겔은 언제 새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환상을 보았는가?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본 때는 그가 포로로 사로잡혀간 지 25년 되던 해였다(겔40:1). 그리고 그 해는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지 14년이 되던 해였다. 에스겔은 사실 제2차 바벨론 포로기에 여호야긴왕과 함께 바벨론에 끌려간 귀족에 해당된다. 그때는 B.C.597년경이었다. 그리고 5년 뒤, 에스겔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는다. 그는 원래 사독가문의 제사장으로서 부시의 아들이었는데, 제사장으로서 직무 한 번을 수행해보지 못한 채 바벨론으로 끌려온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25년이 지나갔다. 그가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때 나이는 25세였고, 다시 25년이 흘러 그의 나이 50세 되던 해에 이제 새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해는 예루살렘이 성이 함락된 때부터(B.C.586년) 약 14년이 흐른 해였다(B.C.572년).

  그렇다면, 왜 여기에 "25"라는 숫자가 등장한 것일까? 에스겔에서 "25"라는 숫자는 첫째, 에스겔이 바벨론에 끌려갔을 때의 나이와 똑같다(겔1:1~3). 둘째,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동방태양을 경배하고 있는 제사장들의 숫자값이다(겔8:16). 셋째, 겔40:1~43:11에 나오는 새 성전에 올라가는 계단(층계)의 총숫자(7개+8개+10개=25개)이다(겔40:22,31,49).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땅의 길이와 넓이가 각각 25,000척과  25,000척이다. 그렇다면, 왜 에스겔서에서는 이렇게 "25"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가? 그것은 희년의 수인 "50"의 절반의 숫자와 관련이 있는듯 하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꺾어져서 희년으로 들어가는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심판이 끝나가고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숫자가 25인 셈이다. 그런데 이때 희년은 자유와 해방의 해에 해당한다.

  그리고 에스겔은 그 환상을 1월 10일에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월 10일은 의미있는 날이다. 왜냐하면 첫째, 1월 10일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유월절양을 준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출12장에 보면 유월절규례가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구대로 한 집에 한 마리의 양을 준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셨는데, 그때 양을 선택하여 집에 두고 검사하는 날이 바로 1월 10일이었다(출12:3~5). 다시 말해, 애굽의 포로생활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줄 출애굽을 준비하는 짧은 기간이 1월 10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진짜 있을 회복과 자유의 날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관한 환상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둘째, 1월 10일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텐트를 치던 날이었다(수4:19). 그러므로 1월 10일은 또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관한 환상은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4. 새 성전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렇다면,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은 어떻게 생겼는가? 새 성전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려 보면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말로 설명하려면 복잡하기 그지 없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의 사방의 담은 정사각형인데 길이와 넓이가 각각 500척이다. 1척이 1규빗(45.6cm)에 어른의 손바닥 길이를 더한 것으로서 보통 53.2cm라고 한다. 그러므로 500척은 약 266m정도 된다. 고로 성전의 크기는 약 20,450평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담의 크기는 두께와 넓이가 각각 6척(3.2m)이다. 새 성전(500척*500척)은 사실 성막(378평=100규빗*50규빗)에 비하면, 54배 차이가 난다. 그만큼 새 성전은 사이즈가 크다. 둘째, 성전은 이중구조(바깥뜰과 안뜰)로 되어 있으며, 둘 다 사방 중에서 동쪽과 북쪽과 남쪽에만 1개씩 문이 있다. 즉 서쪽에는 문이 없는 것이다. 문의 크기는 길이가 25척이요, 넓이가 50척이다. 문 안쪽에는 좌우에 각각 3개씩의 문지기의 방이 있다. 셋째, 외부에서 외소까지는 총 25개의 층계를 올라가야 한다. 즉 외부에서 바깥뜰 문으로 들어갈 때에는 7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바깥뜰에서 안뜰로 올라갈 때에는 또 8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며, 마지막 안뜰에서 외소(성소)로 올라갈 때에는 1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한 계단의 높이를 30cm로 계산한다면, 7.5m가 된다. 넷째, 외부에서 문을 통과하여 바깥뜰에 들어가면, 바깥뜰 벽으로부터 50척 정도의 크기가 벽에서부터 박석이 깔려있고, 문의 좌우에 각각 5개씩 방들이 있다. 그런데 서쪽에는 문도 없고 방도 없다. 그러니, 동쪽 벽에 붙어서 10개의 방이 있고, 북쪽과 남쪽에도 각각 10개의 방이 있으니, 새 성전의 바깥 벽에 붙어있는 방들이 총 30개 있는 것이다. 여기는 백성들이 기거하는 방이며, 거기서 제물을 먹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것 같다. 다섯째, 안뜰 동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앞에 번제단이 있고, 번제단을 지나서 더 앞으로 가면 성전이 있다. 성전은 외소(성소)와 내소(지성소)가 구분된 집이 있는데, 외소와 내소 모두에서 오직 외소에만 나무제단이 하나 놓여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고 불린다(겔41:22). 다시 말해, 새 성전 안에는 성막이나 솔로몬성전의 성소에 있었던 일곱금촛대, 분향단, 떡상이 없으며, 지성소 있었던 법궤도 없는 것이다. 달랑 하나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일컬어지는 나무제단만 있을 뿐이다. 여섯째, 외소와 내소의 성전 좌우에는 제사장들이 거하는 "거룩한 방"이 있고, 안뜰의 북쪽 문을 열고 내려가면 왼쪽 편에 회랑(다락방)이 3층으로 지어져 있다(겔42:10~14). 일곱째, 성전의 동쪽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그 물은 성전 남쪽으로 흘러가면서 강을 이루게 되고, 강 좌우편에 나무들이 심히 많고,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과 고기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특히 강 좌우편에 있는 나무들은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할 뿐더러 열매가 끊이지 않았으니 달마다 새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하였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약 재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겔47장).

 

5. 새 성전은 천년왕국성전일까 아니면 다른 것인가?

  그렇다면, "새 성전"은 과연 천년왕국에 사용되기 위해 건축될 미래의 성전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성전인가? 사실 이러한 성전이 장차 존재할 것인지에 대해서 랍비들의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A.D.90년 구약39권을 정경으로 결정하는 얌니야 종교회의 때에 에스겔서의 40장부터 48장까지를 과연 정경 속에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이것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에스겔이 말하는 새 성전은 실제로 예루살렘에 건축되기는 불가능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전의 크기나 땅의 크기로 볼  때, 이미 파괴된 예루살렘성전은 에스겔의 환상에 나오는 성전보다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예수재림 이후에 이땅에 건축될 "천년왕국성전(제3의 성전)"인가 아니면 "또다른 성전인가?" 그것은 다음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 이 땅 위에 세워질 물질적인 제3의 성전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성전의 크기가 실제 예루살렘의 땅의 크기보다 훨씬 크므로, 실제로 그대로 건축되는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둘째,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을 이룬다는 것은 사도요한이 A.D.95년경 셋째하늘에 올라가서 보았던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그대로 쏙 빼닮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은 에스겔의 성전과 비슷한 것이다. 셋째, 겔33~39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이미 예수님의 재림으로 회복이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은 새하늘과 새땅의 모습에 대한 견본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즉 겔33~39장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회개를 외치는 파숫꾼으로서 세례요한을 통한 회복, 직접 목자로 오시되 다윗이란 이름으로 오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통한 회복, 성령의 내주를 통한 회복, 하늘의 군대의 준비와 아마겟돈전쟁(곡과마곡의전쟁)을 통한 회복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이 다음은 하늘에 있을 새 성전과 새 예배와 새 땅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경륜상 제3의 성전을 이스라엘에 다시 건축케 하고 어린양의 피의 희생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구약의 예언과 예표에 따라 이미 어린양되신 예수께서 번제단에서 죽으심으로서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셨는데, 또 다시 어린양의 피의 희생제사를 드리도록 허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역행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는 위의 말씀들을 통해서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은 영적인 성전으로서 "교회"를 예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 이 땅 위에 세워진 교회는 구약의 물질적인 성전과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전의 중간단계에 있는 성전으로서, 사람공동체인 영적인 성전인 것이다(고전3:16).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의 속성과 더불어 하늘의 속성을 동시에 다 지니고 있는 독특한 성전이라고 하겠다. 즉 교회는 이 땅에 속한 성전으로서 일곱금촛대(성령의 인도하심), 분향단(기도생활), 떡상(말씀생활)을 필요로 한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면서 모세로부터 시내산 율법을 받아서 가나안땅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속성으로서 교회는 생명을 흘려보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성령을 통해서 생명주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교회는 하늘에 속한 성전이다.

  그렇다면, 새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사실 에스겔 11장에 보면, 남유다의 우상숭배와 음란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주변강대국들에 대한 의존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신다(겔11:23). 아니 떠나가신 것이다. 그것을 에스겔선지자가 전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만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문을 지나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즉시 남유다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게 멸망당하고 말았고 함께 성전도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하지만 새 성전이 완성되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동쪽 문으로 되돌아서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된다(겔43:4). 그때 에스겔은 한 사람(천사이거나 성육신 전의 하나님)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 목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서 많은 물소리와도 같았다(겔43:2).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있을 곳이라(겔43:7)" 그렇다.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은 "하나님의 보좌"였던 것이다.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새 예루살렘 성 안의 한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새 성전 중심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없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차 있었다. 왜냐하면 새 성전이 하나님의 보좌 자체였기 때문이다. 고로, 새 성전을 교회라고 본다면, 오늘날 지상의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보좌인 셈이다.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요, 그분의 발을 두시는(통치하시는) 곳인 셈이다.

 

6. 나오며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의 모습(겔40:1~43:11)은 지상의 그 어떤 성전보다도 거대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때껏 지상에 있던 성전과는 달랐다. 왜냐하면 성소와 지성소에 성물들이 없었기 때문이요, 성전 동문으로부터 생명의 물이 흘러나와 모든 생명체를 살리고 강좌우에 달마다 실과를 맺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은 "교회"를 예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가 거대하기에 그 어떤 사람들도 수용할 만하며, 지상의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처소이자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교회를 통해서 지금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교회를 아껴야 한다. 교회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교회의 보존을 위해 힘써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교회가 곧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곧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10월 23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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