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서는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할 구약성경으로서 묵시와 계시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환상만을 보아서는 아니 된다. 이 환상을 통해서 계시되고 있는 메시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차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고 사탄마귀를 심판하시는 메시야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은 어떤 방식으로 그 일들을 성취하실 것인지를 스가랴서를 통해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제2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에 두 사람을 쓰실 것이라고 환상을 통해서 말씀해주셨다. 그 환상들 2가지는 무엇이며,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실체는 대체 무엇인가?
1. 들어가며
스가랴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6장까지는 B.C.520년 제2성전 재건사업이 시작될 무렵에 젊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하룻밤에 주어진 8가지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제7~8장까지는 B.C.518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기념 금식일 준수와 관련된 4가지 질문과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제9~14장까지는 B.C.480~470년경 이제 나이가 50대를 넘긴 스가랴가 받았던 묵시적이고 종말론적인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보면 장차 도래할 메시야의 공생애와 수난 그리고 재림에 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스가랴서의 제일 첫번째 부분은 8가지 환상 중에서 4번째와 5번째 환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러한 2가지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과연 누구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행하시며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의 궁극적인 실체가 누군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2. 스가랴서에 나오는 8가지 환상은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가?
스가랴서에 나오는 8가지 환상(슥1:7~6:15)은 수미쌍관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첫번째 환상과 마지막 여덟번째 환상을 처음과 끝으로하여, 두번째 세번째 환상과 여섯번째 일곱번째 환상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고, 중간에 네번째와 다섯번째 환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 중에서 첫번째와 여덟번째 환상은 말이나 병거 위에 탄 자에 대환 환상으로서, 하나님께 지금도 이 땅에 천사들을 보내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와 세번째 환상은 성전재건에 대한 긍정적인 환상으로 배치되어 있다면,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환상은 부정적인 환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에 네번째와 다섯번째 환상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성전재건의 핵심인물인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유다총독 스룹바벨에 대한 환상으로서, 이들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오실 메시야가 누군지를 말해주고 있다.
3. 우리가 스가랴서를 공부해야 하는 2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스가랴서를 공부하는 이유는 사실 2가지다. 첫째, 우리는 스가랴서를 통해서 메시야가 누구시며 오셔서 무슨 일을 행하실 것인지를 보다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고 하셨다(요5:39).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메시야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구약성경을 읽는 읽었으나 잘못 읽은 것이 된다. 둘째, 우리는 스가랴서를 통하여, 묵시문학과 계시의 핵심이자 결론의 책인 요한계시록을 보다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신구약성경 가운데 묵시문학과 계시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품은 역시 요한계시록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환상이나 상징들은 거의 다 구약성경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구약성경 3권을 들라고 하면, 그것은 에스겔서, 스가랴서, 다니엘서다. 사실 이 세 권의 구약성경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요한계시록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짓이라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단으로 빠지는 이상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 권의 책에 나오는 환상들과 상징들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계시들은 전부 요한계시록에서 완성되어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4. 스가랴가 보았던 네번째 환상은 무엇이었는가?
스가랴가 보았던 네번째 환상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사탄이 참소하는 모습을 보여준 환상이었다(슥3:1).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사탄을 책망하신뒤에,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게 하고 그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게 하시며, 정결한 관(터번)을 그의 머리에 씌우게 하신다. 그리고 그때에 여호수아 곁에 서 있던 여호와의 천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에게 전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먼저, 사탄은 누구며, 사탄이 참소하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구약성경 가운데 "사탄"에 대한 명칭은 욥기서 1~2장(11회)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의 명칭이 나오지 않는다(나머지 4회). "사탄"의 이름이 등장하는 곳은 딱 네 속 뿐인데, 첫째, 사탄이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를 하게하는 대목(대상21:1), 둘째, 다윗이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들 가운데 사탄이 그들의 오른쪽에 송사하는 자가 서기를 기도하는 대목(시109:6)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가랴 3:1절과 2절에 각각 한번씩 나올 뿐이다. 우리가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대적하는 자는 활동하는 사탄의 모습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성도들을 밤낮으로 참소하는 자고 있던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나 땅 속(음부)으로 내어 쫓겨나는 장면이 나온다(계12:9~10). 그렇다면, 적어도 B.C.520년까지는 아직 사탄이 하늘에서 참소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로 우리는 구약시대에 사탄이 계속해서 하늘에 거주하면서 인간을 참소하는 역할을 했다가, 적어도 예수께서 이땅에 공생애를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땅 속과 지상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 불법을 저지르게 되어 결박을 받아 무저갱 속으로 떨어뜨려졌고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는 제한조치를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성도들의 하늘에서의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 하나님께서는 그를 잠깐 놓아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까지 사탄은 어전회의에 참석하여 인간을 참소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스가랴가 보았던 환상 가운데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사탄은 여호수아의 오른쪽에서서 그를 대적하고 있었다. 사탄을 여호수아가 보았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분명한 사실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대제사장을 사탄이 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징계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책망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누군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그가 그것이다(슥3:2). 그랬다. 거의 탈 뻔 했는데 완전히 전소하기 전에 꺼내든 나무가 바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불 에서 건져내신 후에 그의 더럽혀진 옷을 벗기고 그에게 깨끗한 옷과 정결한 관을 쓰게 하셨다. 그동안에 그가 죄악으로 인해 옷이 더럽혀졌는데 그간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셨고 징계가 끝나자 그로부터 징계를 거두시고 그에게 다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작게는 여호수아 개인에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제사장 나라로 부름받았으나 그 사명을 감당치 못하고 죄만 짓다가 바벨론에 끌려가서 죽을 고생 하다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왔으나 거지가 되어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언한다. 이것은 앞으로 그가 곧이어 실천해야 할 직무이자 이스라엘의 사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이렇다. "네가 만일 내 도(길)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를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그렇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바라는 길을 걷지 않았다. 그리고 규례를 지키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을 거의 파멸에 가까운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여호수아는 시드기야왕과는 달리 하나님의 집(이스라엘 공동체)를 계속해서 다스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뜻(성전)이 더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지킬 수가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천사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온 인류의 죄악이 제거되고 인류를 죄짓게 만들고 대적하는 사탄마귀의 권세가 깨지고 그가 불못에 던져지게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그 모습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시대의 평화로운 한 장면을 들어내어 말씀하신다(슥3:10). 그 날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서로가 서로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여 평화롭고 한가로이 살아가는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왕상4:25). 이는 곧 메시야의 재림으로 인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 얼마나 평화로운 것인지를 비유적으로 말씀해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대제사장 여호수에게 주신 메시야 예언은 무엇이었는가?
우리가 스가랴서를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스가랴서는 모든 환상과 계시마다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들어있다고 보아야 한다. 네번째와 다섯번째 환상에도 역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들어 있다. 스가랴가 보았던 네번째 환상 속에는 중보자로서 "여호와의 천사"가 등장한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존재로서, 그가 여호수아에 들려준 말씀은 장차 누가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며 사탄마귀를 박살낼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예언의 말씀 속에 들어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장차 하나님의 종인 "싹"을 나오게 하여 이 땅의 모든 죄악을 제거할 것이라는 예언이다(슥3:8). 구약성경에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싹"이라고 표현하는 곳이 많은데, 사4:2, 11:1~2, 53:2, 렘23:5, 33:15에도 싹이 등장한다. 특별히 메시야를 "싹"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2가지인데, 하나는 연하고 순하다는 것이다(사4:2,53:2). 이는 죄가 하나도 없으신 메시야를 상징하며, 그분은 인간의 연약함을 가지셨기에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수 있다는 것을 계시해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메시야는 장차 혈통적으로 볼 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분이지만(렘23:5,33:15), 그분은 사실 줄기에서 나오는 "가지(호테르)"가 아니라, 뿌리에서 나오는 "싹(네째르)"이라고 함으로서, 그분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오시는 메시야이신 것을 말해준다(사11:1~2).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 세운 돌 곧 일곱 눈들을 가진 돌을 통하여 사탄의 머리를 박살낼 것이라는 예언이다(슥3:9). 이는 메시야가 강력한 권세와 능력을 지닌 분으로서(민20:11) 원수들을 쳐부수는 심판자가 될 것임(단2:35~45)을 말해주는 예언이며, 특히 돌에 일곱 눈들이 있다는 것은 그분은 온 세상을 완전히 감찰하시는 분으로서, 그분은 누구를 때려부숴야 하는지를 정확히 잘 아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다시 오실 예수님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악의 삼위일체인 용(사탄마귀)와 짐승(바다짐승)과 거짓선지자(땅짐승)을 철장권세로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음녀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음녀는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타락한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이 음녀가 바로 [첫째]짐승(바다짐승)을 타고 있다고 했고, 그래서 짐승보다 먼저 심판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장차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께서는 먼저 음녀를 심판하시고, 그 다음에 악의 삼위일체를 심판하실 것임을 알 수 있다. 성도들이라도 그 돌에 맞아 불의 형벌을 받지 않으려면 빨리 음녀에게서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6. 스가랴가 보았던 다섯번째 환상은 무엇이었는가?
이제는 스가랴가 보았던 다섯번째 환상을 살펴보자.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스가랴는 네번째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을 본다. 그리고 이어서 다섯번째로 유다총독"스룹바벨"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 결론적으로로 볼 때, 이 환상에 등장하는 '스룹바벨'은 유다총독을 가리키지만 실은 그는 장차 왕으로 오실 메시야를 예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장차 오실 메시야는 2가지 역할을 통해서 비로소 성전(교회)을 건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 중에서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라고 언급하고 있지만(히5:5~10), 동시에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분은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계17:14,19:16).
그렇다면, 스가랴는 무엇을 보았는가? 그는 순금등잔대와 그 등잔대 곁 좌우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를 보게 된다(슥4:2~3). 이때 순금등잔대에는 일곱개의 등잔이 있었으며, 이 등잔대의 위쪽에는 기름그릇이 하나 있었는데, 이는 양쪽에 있는 두 감람나무로부터 기름이 공급되고 있었다. 그리로 기름그릇에 모인 기름은 일곱개의 관을 통하여 일곱개의 등잔에 기름을 대주고 있었다. 그러자 스가랴는 그와 말하는 해설천사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어보게 된다.
7. 순금등잔대와 기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순금등잔대"와 "기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사는 그것을 슥4:6~10에서 해석해주고 있으며, 이어서 '두 감람나무'가 무엇인지는 슥4:11~14에서 해석해주고 있다. 먼저, "순금등잔대"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결론적으로 "순금등잔대와 일곱개의 등잔"은 일차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한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이 땅에 있어야 할 하나님의 공동체인 이스라엘 민족의 온전하고도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땅에 세워지게 될 바림직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보면,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니시고 있는데, 그때 일곱금촛대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이때까지 일곱개의 등잔에 등잔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는 순금으로 만들어진 등잔대 노릇을 하지 못했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은 '완전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꿈을 성전의 일곱순금등잔으로 구성된 순금등잔대를 통하여 예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곱금등잔에 공급되고 있는 "기름"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스가랴에게 말하는 천사는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하셨다. 그 천사는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성전공사는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그렇다. 조금 있다가 배우겠지만 두 감람나무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은 두 사람 곧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 이스라엘 민족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임받게 하는 것은 성령의 기름이었던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쓰임받지 못했다. 다만 간신히 그것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남은 자에 의해 메시야를 낳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룹바벨이 성전을 완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성령인 것이지 인간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일하시면 어떠한 대적이라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확인시켜주셨다(슥4:7a). 그러므로 그 천사는 스룹바벨이 이미 성전을 다 지어 머릿돌에 세울 것임과 백성들이 그것을 보면서 환호성을 친다고 하였다(숙4:7b). 성전의 기초를 놓았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결국 자기들의 손으로 그 일을 마칠 것이라고 한 것이다(스3:10, 슥4:9).
그리고 이어서 그 천사는 스룹바벨의 손에 새 성전을 짓기 위해 측량하는 돌로만든 다림줄이 있는 것을 보고서, 백성들이 그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슥4:10a).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다림줄에 매달린 돌 추에 일곱개의 눈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곱개의 눈들은 온 땅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들이라고 했다(슥4:10b). 이것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제 완전한 통제력으로 성전공사를 주관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8. 두 감람나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이어서 스가랴와 말씀하는 천사는 등잔대 좌우에 있는 두 감람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준다(슥4:11~14). 그때 두 감람나무는 기름을 흘러내려 큰 기름그릇을 채우고 있었는데, 그 기름이 일곱개의 관을 통해 순금등잔대의 일곱등잔에 기름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감람나무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시다(슥4:6). 고로 오직 성령으로만이 성전도 지을 수 있고, 하나님의 온전한 공동체도 만들 수가 있는 것이며, 신약에 들어와서 온전한 교회도 세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감람나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 천사는 "이것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들이니라"고 했다(슥4:14). 그들은 곧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유다총독인 스룹바벨"을 가리킨다(스3:10). 여기서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일하고 있는 대제사장을 가리키고, 스룹바벨은 여호야긴왕의 아들이었던 스알디엘의 아들로서, 사실은 메시야의 조상이자 다윗왕의 후손으로서, 왕과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고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대제사장의 직무와 왕직을 수행하는 두 사람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햐 할 것은 비록 기름이 두 감람나무에서 흘러나온다고 해서 기름을 감람나무가 생산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두 사람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되어서 기름을 흘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슥4:14). 그들도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자로서 성령을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지, 그들 자신이 기름을 생산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서 성령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흘러들어가게 하고 있으니, 이들로 인해 성전이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주의 종들 중에는 기름부음을 받아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흘러보내주는 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의 종들을 가르치는 주의 종, 주의 종들에게 성령의 기름을 공급하는 주의 종들이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9. 나오며
스가랴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예루살렘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있었고 유다총독 스룹바벨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두번째 예루살렘 성전이 이 두 사람에 의해 세워질 것임을 네번째와 다섯번째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 스가랴서 3장과 4장의 말씀다. 그렇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에 의해서 완성된다. 그것도 성령의 기름을 충만한 받아 그것을 흘러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지금도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우편에서 일하고 계시며(히1:3, 8:1~6, 요일2:1~2), 온 우주를 다스리고 계실 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때에는 심판주이신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로서 오실 것임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신약의 '예수'라는 이름의 히브리어식의 표현이다. 이것은 장차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사람들의 지도자와 더불어 성전을 지을 것인데, 그분은 성령을 충만히 받아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일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분이 오셔서 지은 성전은 곧 교회로 완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전3:16).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오늘도 성령충만을 공급받아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역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하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0년 1월 22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