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강해(11) 메시야의 재림과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예언(1)(슥14:1~21)_2020-02-26(수)

by 갈렙 posted Feb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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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Ia5YGpt4gJs
날짜 2020-02-26
본문말씀 스가랴14:1~21(구약 132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메시야의예언,스가랴예언,아마겟돈전쟁,천년왕국,첫째부활,신천지이만희,여호와증인,역사적전천년설,세대주의적전천년설,무천년설,곡과마곡의전쟁

예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시는가?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어떤 일이 있어날 것인가? 그 전에 일어날 일들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장소는 어디인가? 신천지가 말하는 동방의 땅, 과천 청계산에 있는 증거장막성전인가? 아니면 부천의 소사인가?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의 순서는 어떠한가? 그리고 천년왕국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그 세계는 정말 육체를 가지고 들어가는 자들(유대인 제사장들과 땅의 백성들)과 부활체로 들어가는 자들이 공존하는 세계인가? 아마겟돈전쟁과 그리고 곡과 마곡의 전쟁은 각각 다른 전쟁인가 아니면 하나의 전쟁인가? 이 모든 것들이 이 영상에 다 들어 있다.

 

1. 들어가며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들 가운데 천년왕국과 관련지은 예언들은 주로 스가랴서와 이사야서에 나온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스가랴서의 예언은 메시야의 재림의 장소의 정보가까지 알려주는 아주 특별한 예언을 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이 재림예수를 자처하여 과천에 혹은 소사에 이미 육체로 재림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재림예언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스가랴선지자가 가르쳐주는 재림예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한편 왜 동방 특히 한국에 재림예수라는 사람이 그리도 많은 것인가? 그 이유의 하나가 바로 스가랴 14장에 나온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스가랴 14장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지어서 있을 아마겟돈전쟁과 지상의 재림장소로서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장소가 어디인지를 좀 더 다각적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2. 스가랴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스가랴서는 그것이 쓰여진 시기와 내용에 따라 크게 2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반부에 속하는 1~8장까지는 B.C.520~518년경 스가랴가 보았던 환상과 들었던 것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면, 후반부에 속하는 9~14장은 그때로부터 약 38~40년이 지난 시점인 B.C.480년경에 스가랴가 들었던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하겠다. 다시 전반부는 스가랴가 보았던 8가지 환상에 관한 부분(1~6장)과 금식에 관한 말씀(7~8장)으로 나눌 수 있으며, 후반부는 메시야의 공생애와 수난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는 부분(9~13장)과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는 부분(14장)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전반부의 말씀(1~8장)에서도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없는 것은 아니니, 스가랴 3장과 6장에 보면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슥3:8~9,6:12~13)"이 들어있기도 하다(이것은 이전에 했던 스가랴강해를 참고하기 바란다.)

 

3. 스가랴 14장은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어떤 예언들이 등장하는가?

  스가랴 14장에는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총5가지 예언이 나온다. 이것을 분류해보면, 메시야의 재림예언으로서 첫째, 여호와로 표현되어진 메시야가 그날에 이방나라를 쳐서 무너뜨릴 것에 대한 예언(슥14:3)이 나오고, 둘째, 메시야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에 대한 예언(슥14:4)이 나온다. 첫번째의 예언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전쟁을 "아마겟돈전쟁" 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두번째 예언은 메시야의 재림장소에 관한 예언으로서, 사도행전 1장의 메시야 재림장소예언(행1:11)에 대한 성취예언이다. 그곳은 물론 예루살렘 감람산이다(행1:11,슥14:4). 그리고 셋째, 여호와로 표현되어진 메시야께서 모든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실 것에 대한 예언(슥14:5)이 나오는데, 이는 메시야가 두 종류의 거룩한 무리들과 함께 오실 것에 대한 예언으로서, 한 무리는 예수님의 승천이후부터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고 있는 성도들(살전3:13)이고 또 한 무리는 거룩한 천사들의 무리들(계19:14)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넷째, 메시야의 재림의 날짜와 시간에 대한 예언(슥14:6~7)이 나오는데, 날짜는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라고 예언되어 있고9슥14:6), 그 시간은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며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4:7). 이는 그 날자와 시간은 아버지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치한다(마24:36, 행1:7). 왜냐하면 그 날짜와 그 시간은 아버지의 권한에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메시야가 오셔서 악의 무리들을 어떻게 심판하시고 처단하실 지에 대한 예언(슥14:12)이 나온다. 이때는 백마를 타고 거룩한 두 무리들과 오시는 메시야께서 초자연적으로 악의 무리들인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들 그리고 이들의 조종을 받고 전쟁에 참여한 땅의 왕들과 백성들이 어떻게 패배하고 멸망당하게 될른지에 관한 예언이다. 그런데 이때 백마타고 오신 재림주께서는 눈과 혀과 살이 썩는 재앙으로 그들을 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4:12).

 

4. 스가랴서에서는 인류 최후의 전쟁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스가랴선지자는 인류 최후의 전쟁에 대해 2가지를 예언했다. 하나는 인류최후의 전쟁이 있기 전에 이방 민족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약탈되고 부녀가 욕을 당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했다(슥14:1). 이것은 환난이 있은 후에 주님의 재림이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슥14:1에서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이었다. 하지만 메시야를 거부한 채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육적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특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후로부터는 이방인들과 똑같이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얻는 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을 지칭하는 예루살렘은 이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곧 "교회"가 되었다. 그러므로 슥14:1에서 예루살렘이 약탈을 당하고 부녀가 욕을 당하고 백성들이 잡혀간다는 말은 "사탄마귀와 그의 세력들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메시야가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비롯한 구약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도 역시 환난을 당할 때에 인내로 견뎌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때에... 환난이 있으리나. 이는 개국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단12:1)", "그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24:9),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겠고 후에도 없으리라(마24:21)",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계13: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그날 환난후에...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마24:29~30)" 그렇다. 예수께서는 환난후에 오신다. 그러므로 오늘날 환난전휴거(특히 세대주의자들)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들은 환난을 당하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견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편, 예루살렘과 싸우도록 하는 존재는 누구인가"아니다. "내가 이방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슥14:2)"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도록 허락하신다는 뜻이다. 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환난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환난을 통해 진정한 믿음이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난을 당하면서 알곡신자와 쭉정이신자가 구분되기 때문이다. 환난에 쭉정이신자는 환난을 피하여 도망칠 것이고, 결국에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어 또 하나, 인류최후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여 끝내시는 전쟁이라고 예언했다(슥14:3). "그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나라들을 치시되...(슥14:3)" 그렇다. 그날에 환난받는 백성들을 건져내기 위한 전쟁은 하나님께서 끝내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이 땅에 살 때 받을 환난은 우리가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이 오셔서 직접 끝내셔야 환난이 끝나는 것이다. 이 환난을 통해 주님은 알곡신자는 곡간에 들이시고, 순교자의 숫자를 채워 재림의 시기를 정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인류최후의 전쟁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때에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우리가 할 일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이왕의 전쟁의 날에 싸운 것같이 할 것(슥14:3)"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앞에서 애굽군대에게 쫓겨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에 모세가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4)" 그래서 하나님께서 홀로 애굽군대를 무찌르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날 행하실 일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는 인류 최후의 전쟁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인류최후의 전쟁에 대하여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 인류최후의 전쟁은 한 마디로 "아마겟돈전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여섯째 나팔재앙 때에 그것이 어떤 전쟁일른지 먼저 시연을 보여준다(계9:13~21). 이때 인류 1/3이 죽는다. 그리고 여섯째 대접재앙 때에 아마겟돈 전쟁이 준비될 것이다(계16:12~16). 그런데 이 전쟁은 개구리같은 세 가지 더러운 영들인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들이 합세하여 땅의 왕들과 왕들의 군대를 규합하여 그리스도에게 대항하는 전쟁이 될 것이다(계16:12~13). 그러므로 이 전쟁은 영적 전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전쟁을 이름하여 사도요한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이라고 불렀다(계16:14). 그리고 이 전쟁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19장에 그 모습이 정확히 묘사되어 있다(계19:11~21). 주님께서는 앞에서는 말씀드렸지만 두 무리들의 군대들(천국에 들어가 있던 성도들과 거룩한 천사들)을 데리고 백마를 타고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검으로 무찌를 것이다(계19:15). 그런데 그 검에 의해 죽임당하는 악의 무리들의 군대가 얼마나 많은지, 땅의 모든 새들이 그들의 살을 먹을 것이라고 했다(계19:21).

  한편, 아마겟돈전쟁에 관련되어 하나의 전쟁을 더 살펴볼 것이 있다. 그것은 "곡과 마곡의 전쟁"이다(계20:7~10). 그동안 대부분의 요한계시록 강해서들은 "아마겟돈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을 다른 전쟁이라고 본다. 즉 "아마겟돈전쟁"은 지상에 펼쳐질 천년왕국 전에 있을 전쟁으로 보고, "곡과 마곡의 전쟁"은 지상의 천년왕국 후에 있을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이러한 경우, 우리는 성경의 기록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먼저, "아마겟돈전쟁"을 살펴보자. 그때 백마를 타고 오신 예수께서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시는데, 먼저는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산 채를 불못에 던질 것이며, 이후에 그들을 따랐던 땅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계19:220~21). 그리고 요한계시록 20:1~6에 천년왕국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그렇다고 성경 기록의 순서대로만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천년이 시작되기 전에 무저갱에 갇혔던 사탄이 천년이 지난 후 잠깐 놓임을 받는데, 그때에 그가 땅의 사방백성들 즉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성도들의 진영과 사랑하시는 성인 예루살렘 성을 대항여 전쟁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계20:7~9). 그런데 마지막 최종결과를 보여주는 말씀에 놀라운 반전이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마귀와 그리고 짐승과 거짓선지자의 최후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말 개역개정성경부터 살펴보자.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20:10)" 이 번역으로 보면, 불못에는 이미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불못에 던져진 채 있고 그 상태에서 이제 마귀도 그곳에 던져지는 것처럼 번역되어 있다(현재까지 대한민국에 나와있는 수십 종의 모든 성경은 다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헬라어성경(네슬알란트28판)으로 직역해보면 이렇다. "그리고 그들을 [현재] 미혹하고 있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 안으로 [단번에] 던져졌다. 그리고 그곳에 역시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던져졌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들의 시대들 동안 밤낮으로 괴로움을 [장차] 받을 것이다" 그렇다. 헬라어원문을 보면, 마귀가 불못에 던져지는 시점에 역시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던져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와있는 모든 한글성경이나 영어성경은 다 우리개역성경처럼 잘못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볼 때, 아마겟돈전쟁 후에 천년왕국이 지상에 펼쳐지고 그리고 천년왕국의 끝무렵에 곡과 마곡의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하에서 번역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레고리 K. 비일(Beale)이라는 신학자가 "NIGTC 요한계시록"이라는 책(2016. 새물결플러스)에서 저와 같이 번역했다. 그리고 아마겟돈전쟁과 그리고 곡과 마곡의 전쟁을 한 가지로 보았다. 즉 다시 말해서 이 전쟁들은 다른 각도에서 본 하나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고로 지금의 세대주의자들의 천년왕국론이나 역사적 전천년설이 말하는 천년왕국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를 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에 이미 교리화되어있는 것을 가지고서 그것을 얼마나 교정할 수 있을른지 짐작할 수가 없다.

 

6. 헬라어원문으로 보는 천년왕국은 실제 어떤 왕국인가?

  여기서 천년왕국에 대한 모든 것을 논할 수는 없다(홈페이지에서 저의 요한계시록강해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결론만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다. 지금 이 지상에서 천년왕국은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만 등장하는 천년왕국은 실제 문자적으로 성취될 왕국이 아니라 영적인 왕국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000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산술적인 1,000년이라는 기간이 아닌 것이다. 마치, 144,000명의 사람이 산술적인 숫자가 아니듯 말이다(144,000은 구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12지파에다가 신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12사도들을 곱한 값에, 많은 것을 상징하는 1,000을 곱한 숫자값이다., 고로 144,000명은 신구약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1,000년이란 것은 아주 오랜 기간을 일컫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하늘에서 왕노릇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모든 성도들이 죽을 때에 잠자는 상태에서 무덤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죽은 즉시 심판을 받아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로, 요한계시록에는 이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있다는 것이 무려 7번 이상 나온다).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부른다, 고로 첫째 부활은 개인적인 부활로서 부활의 시기가 각각 다르다. 그리고 "둘째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있을 동시적인 부활, 우주적인 부활을 가리킨다. 때가 되어 예수께서 공중으로 오시면, 이 땅에서 아마겟돈전쟁으로 죽은 성도들이 즉시 부활체를 입고 휴거되어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고, 이어서 살아있고 남아있는 성도들도 그 다음으로 부활체를 입고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것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마중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휴거"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승천이후 재림까지는 성도들이 계속해서 휴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순간 부활체를 입고 천국으로 곧장 가는 것이요,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홀연히 그때 죽은 성도와 살아있는 성도들이 순서대로 변화하여 부활체를 입고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도들의 휴거는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재림시에 있을 딱 한 번만 있을 일이며, 그것도 오직 단체적인 휴거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에 천년왕국이란 실제하지 않는다.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우선 성경을 뜯어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때 가보면 무엇이 맞는지 다 알게 될 것이다.

 

7. 신천지 이만희가 말하는 육체영생한다는 천년왕국설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다면,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상 '신천지')의 이만희교주는 어떻게 144,00명이 육체영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그의 이론은 좀 독특하다(실제로는 허무맹랑하다). 그는 이미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 순교자의 숫자가 144,000명이 차고, 지상에서는 이만희와 같은 말세에 약속된 목자요 이긴 자가 육체영생으로 들어갈 성도들 144,000명을 모으게 되면, 둘이 서로 만나 신인을 이룬다는 것이 그 교리의 핵심이다. 그때가 되면 지상에서 신천지에 들어온 성도들 144,000명은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천지의 천년왕국론이다.

  그리고 신천지 이만희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로 요한계시록 20:4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말씀은 이렇다(이것도 역시 논리성이 없고 성경원문과도 거리가 먼 터무니 없는 주장인 것은 마찬가지다). 먼저 한글 개역개정을 보자.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20:4)" 그는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을 순교자로 본다. 죽은 성도들로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라고 본다. 그리고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신천지의 성도들이라고 본다. 지금 살아있는 신천지 성도들이다. 이 둘이 그날이 되면, 하나가 되면 신인이 되는데, 이것은 신천지성도들은 결코 죽지 않으며 육체를 가지고 영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터무니 없는 주장인가? 헬라어원문을 읽어보면, 계20:4의 "살아서"라는 말은 신천지 성도들이 천년왕국에 "살아서" 들어간다는 말이 아니라, 죽은 모든 성도들이 "살아나서" 첫째 부활에 참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살아서"라는 말은 죽은 성도들이 살아난다는 뜻인 것이지, 살아있어서 들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자, 이제는 헬라어로 직역해보자.

계20:4[직역] 그리고 나는 보좌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거기 위에 앉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심판하는 권세가 주어졌다. 또 내가 보았다. 예수의 증언으로 인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미 목베임을 받은 채 있는 자들의 영혼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짐승과 그것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이마 위와 손 위에 그 표를 받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났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왕노릇하였다(통치하였다, 다스렸다).

  이 말씀(헬라어원문)을 보면, 순교자들과 육체를 가진 신천지인들이 각각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니다. 순교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은 자들이고 그들이 이마와 손 위에 표도 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죽었다가 살아나서(부활하여서) 천년동안 왕노릇한다는 뜻이다. 고로, 신천지의 이만희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는 희대의 사깃꾼이다.

 

8. 스가랴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의 장소에 관하여 어떤 정보를 제공해주는가?

  한편 스가랴에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장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곳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감람산"이라고 말하고 있다(슥14:4). 그러므로 예수님은 결코 동방에 있는 과천의 청계산이나 계룡산에 오시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땅은 지금 있는 이 하늘과 이 땅(옛 하늘과 옛 땅)은 아니다. 그곳은 주님께서 완전히 질적으로 새롭게 하실 장소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질적으로 다른] 새 하늘과 [질적으로 다른] 새 땅으로 성도들을 데리고 가서 왕노릇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9. 나오며

  요한계시록은 결론의 책이다. 희미한 것도 요한계시록을 보면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사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심판과 회개를 외치면서도 늘 희망적인 회복의 역사를 외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 성취될지 모를 미래의 일들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앞뒤 순서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단회적인 것도 있으나 복합적인 것 혹은 점진적인 것도 있다. 그러므로 예언의 성취가 시간적으로 혹은 장소적으로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육적인] 이스라엘은 선지자이 예언한 대로 살지 못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을 버리고 영적인 이스라엘(교회)를 선택하셨고, 지금도 이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성취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장차 옛 하늘과 옛 땅이 될, 지금의 이 하늘과 이 땅에서는 완전한 성취란 있을 수 없다(마귀가 같이 있는 한 불가능하다). 완전한 성취는 저 천국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 있을 것이고, 장차 도래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희미하더라도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특히 스가랴선지자는 예수님의 재림의 장소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어디에서 펼쳐질른지를 놀롭게 예언한 선지자다. 우리에게 이러한 선지자들의 기록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아니할 수 없다.

 

2020년 02월 26일(수)

정병진목사